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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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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춘각: 일하면서 글쓰기
2019년 07월 11일 14시 01분  조회:28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일하면서 글쓰기

살춘각

 

최××이란 동창생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만났더니 이 녀석이 허풍을 꽝꽝 쳐대는 것이였다. 한국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하고서 가봤다고 돈이랑 펑펑 써제끼는 것이였다. 처음에 나는 정말로 믿었다. 그러다가 사실을 알고 나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녀석은 시장에서 선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들키고 나서 녀석은 도살장을 구경시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도살장 구경을 한번 잘했다. 소들이 거꾸로 매달려 피를 뿌리면서 흐름식 생산선을 통과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이런 것이 소설이구나 하고 언젠가는 써야지 마음 굳혔다. 물론 그 때부터 나는 선지를 먹지 않았다. 

이 소설을 구상한 지 15년이 너머 된다는 것을 예서 감히 고백한다. 그 사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럼에도 쓰지 못했던 것은 내 게으름 탓일 것이다. 

십년 동안 눕혔던 붓을 다시 세웠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이 이 소설이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마 편집부에서 독촉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백산》에 더구나 감사한지도 모른다. 

오십대가 쓴 글하고 사십대가 쓴 글은 다르다. 내 나이가 오십대란 말이다. 어딘가 달라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온밤을 하얗게 새우던 2016년 12월 31일이 생각난다. 이 밤만 지나면 오십대에 들어선다는 현실은 나를 안절부절 방안을 바장이게 했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꽉 찼고 나는 혹 아래층에서 내 한숨소리라도 들을가봐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나는 창문 카텐을 열어젖히고 어스름한 달빛 아래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성자산성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방문길에 허리춤에서 지린내에 절은 빨간 돈 몇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힘없이 자리에 누우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나를 만나 아버지의 전 재산을 쥐여줄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이튿날 바로 세상을 등졌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향한 기다림이 그 날까지 아버지를 지탱하게 하였을 것이다. 

2017년 1월 1일, 급기야 오십대의 회오리바람은 플라이어를 들고 달려와 내 녹 쓴 이발을 뽑아갔다. 그리고는 내 지나온 세월의 귀때기를 힘껏 후려쳤다. 결국 나는 내 지나온 비틀비틀 50년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자문했다. 나는? 왜? 하필? 새해 정초에 아버지를 떠올렸을가? 나는 나의 후반생을 재설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3월 17일 이른새벽, 푸름한 달빛 속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나는 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은 내 아들의 생일이였다. 나는 자못 진지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한번 바라보고는 한줄 쓰고 또 한번 바라보고는 한줄을 쓰고 했다. 그렇게 해서 씌여진 것이 《장백산》에 나간 살춘각 계렬수필과 <킬리만자로의 달>이란 소설이다. 몇편의 발표도 안할 칼럼과 쓰레기 같은 시도 배가했다. 그리고 소설이 발표되는 것도 보지 않고 주저없이 내가 발 딛고 있던 연길땅을 떠나 연태행 비행기에 올랐다. 연태서 2박3일 체류하고 청도서 장학규와 몇몇 문인들과 짧은 시간 회동한 다음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날은 잊지도 못할 7월 22일이였다. 

 

인천국제공항에 몸을 내리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삶을 살리라. 

나는 달라지리라. 

물론 글도 달라지리라. 

내 서재의 한낱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살춘각杀春阁이 오늘부터는 걸어다니는 살아숨쉬는 살춘각으로 되리라… 했다. 

 

한국에 온 지 반년이 되였고 일을 시작한 지는 석달이 되였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소설의 경우는 더하다.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들어오는 청탁은 소설이고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하면서 쓴 두번째 소설이다. 일하면서 쓴 거라 그런지 특별히 애착이 간다. 특별히 두번째 소설을 쓸 때는 소설 못지 않은 아픔을 주기도 겪기도 했다. 

하나는 《도라지》에 줬고 하나는 《장백산》에 줬다. 둘 다 톱으로 나간다는 기별이다. 안 떠지는 눈을 잡아뜯으며 쓴 보람을 예서 느낀다. 

일하면서 글쓰기. 

한국에서의 내 일상이다. 

아니, 작가로서의 숙명이요 운명이다. 

 

인간의 복합성을 구현하기 위해 상하편으로 나눠썼다. 

하편에서의 반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편을 설치했다. 따라서 상편은 의도적인 부분이 많다. 마지막 한줄을 위해 나는 앞에다 천마디의 헛소리를 쳤던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르나 나는 나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너무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처음에 나는 하편만으로 소설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편만으로도 소설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나는 상편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인간은 단순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일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또 다른 동창생을 떠올렸고 나는 그 둘을 오버랩시켜버렸다. 이것이 이 소설이 탄생한 과정이다. 아무튼 나왔으니 판단은 독자들한테 맡기련다. 

 

창작후기인지 작가노트인지 참 쓰기가 싫다. 이것을 읽어줄 독자가 있을가 하고 잠간 생각해본다. 

그래도 써야겠지? 이것도 창작의 일부이고 보면?

그래, 

너는

써야 해. 

너한테 다른 길은 없어. 

아픈 눈을 집어뜯으면서라도 너는 쓰거라.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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