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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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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동: 립춘(시, 외2수)
2019년 07월 11일 14시 31분  조회:42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립춘(외2수)

성해동

 

가슴 속에 

겹겹이 닫힌 장지문

찢어진 창호지가

바람에 팔랑인다 

 

칼칼한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미련에

아직도 기침은 멎지 않고 

욕망으로 뒤틀린 창자는

살얼음판이겠다 

 

방울방울 

녹아내리는 고드름에

처마에 매달린 낡은 풍경이

한숨도 쉴 수가 없다

 

한파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가슴이 콩닥거려 

부랴부랴 붙이는 립춘방이겠다

 

어둠이 있어 빛나는 저 별

겨울이 있어 반가운 이 봄

 

 

스치는 풍경

 

수많은 차와

수많은 사람

수많은 산과 강과 논과 밭을 스치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고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와 관계 맺고

꽃은 어떻게 피우고

풍파는 어떻게 견디는지 

 

연연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단지 공허한 웨침에 불과한 

모든 걸 스쳐보내는 시속 230키로메터 

 

얼마나 많은 다음을 기약하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 세상을 사는가?

 

나만 빠르게 달려

결국 혼자가 되여버린 

멈추는 법을 잊어

넘어지는 일만 남은 나

 

기쁠 땐 누구와 공유하고

힘들 땐 누구에게 의지하지 

 

소홀하거나 

민망하거나 

마음을 쓴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

꼬여버린 실타래 

한올이라도 잘리면 

그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되는 

달빛의 위로가 필요한 나

 

애써 기억 속에 붙잡는다

바람과 나무

기차에서 내리면 

잊어버릴 저 풍경이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나는야 양치기 소년 

 

어릴 때부터 만들어 

하나의 집착이 되여 

이번엔 진짜 튼튼히 만들어 

평생 함께 하리라 믿었는데 

 

리유도 시기도 가물가물한 어느 날

당황하며 찾은 망치와 나무판자로

눈물을 훔치며 하는 망치질

 

처음으로 부서진 

울타리 안에서

나는야 

너를 부르는 

양치기 소년

 

바람에 목적지가 없듯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평생 함께 가야만 하는 

양치기 소년

나는 너희가 되고 

너희는 나 되는가 

 

부서진 울타리 안에

홀로 남은 이 몸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을

간단히 부정할 수 있었던 오늘도 

튼튼한 판자와 못을 찾아다니는

나는야 양치기 소년

출처:<장백산>2018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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