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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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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욱: 과잉된 기억(시평)
2019년 07월 12일 19시 15분  조회:30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과잉된 기억

조영욱

 

우도시인의 여섯수의 시를 접하고 나서 총체적으로 든 생각은 문학에서 말하는 기억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문학연구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점에 의하면 기억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억으로서의 상’이고 또 하나는 ‘조작적인 것으로서의 상’이다. 이 두가지 기억은 모두다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다. 

<개구리>는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 제일 앞에 위치해있다. 4련으로 구성된 이 시는 각 련 마지막 행에서 ‘…된다’로 압운 혹은 라임rhyme을 맞춘 데서 시인이 아주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대표작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 중에는 이른바 ‘뻥’이라고 한 점과 ‘정이 깊다’고 한 것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개구리 설화를 념두에 둔 것 같다. 이러한 것은 물론 개구리와 관련이 있지만 ‘목걸이 구슬, 고무줄, 팬티, 불가항력의 떡판, 지조, 이부자리’와 같은 것은 개구리와 어떤 론리적인 관련은 없어보인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현재의 지각대상에 많은 과거를 집중시키면 그 대상의 물질적 제한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지각대상에 속하는 개구리에 ‘목걸이 구슬, 고무줄, 팬티, 불가항력의 떡판, 지조, 이부자리’와 같은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개구리는 한층 더 연장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1, 2, 3련은 총체적으로 봄을 여는 개구리의 역할을 그리다가 4련에 와서는 봄이나 개구리와는 상관이 없는 묘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된 의미는 어설프기는 하지만 4련에서 개구리와 ‘상봉’함으로써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첫사랑>은 말 그대로 시적 화자의 첫사랑 얘기를 하고 있다. ‘로포수’는 련애경험이 아주 풍부한 ‘소년’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 선배로부터 소년은 어떤 수단(일곱가지 참새 사냥법)을 전수받았다. 그중에서 한가지 방법을 사모하고 있는 이성(참새)에게 써먹었다. 그러나 그 참새(첫사랑)는 지금 다른 사람과 결혼(남집 부뚜막으로 날아가다)해있다. 

참으로 가슴 시린 첫사랑, 조금은 유치한 첫사랑이다. 흔히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 들어맞는듯하다.

<수상한 부부>는 시어가 아주 명백한 데 비하여 이 여섯수 중에서 가장 난해한 시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가장 론리에 맞지 않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총제적으로는 부부싸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1련은 그나마 난해하지 않고 론리에도 맞다. ‘울아부지’와 ‘울어무이’가 ‘맞바람’을 하고 있다. 3련은 어머니 얘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련은 당연히 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확실치 않다. ‘사냥’, ‘고양이’ 등등 2련에 출현하는 단어들은 론리적으로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러나 2련을 아버지에 관한 얘기라고 가정한다면 이 아버지는 아주 잘생겼거나 금전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인심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3련에서 보듯이 어머니 역시 ‘파마기술’이 있어 돈을 좀 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바람을 피는 바람에 어머니도 ‘맞바람을 선포’하고 집을 나간다. 

이 충돌에 대해서 시적 화자는 어머니 편인듯 싶다. 그래서 4련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천의 바람이 되여’라고 한 2행에서 ‘천千’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몇가지 추측은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명확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천’이 무언가 중요한 기억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인은 특별히 괄호 안에 한자까지 써넣으면서 표기한 것 같다. 정녕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시인만이 알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5련은 4련의 마지막 행의 련속인듯하다. 어찌됐든 이 부부는 싸움 끝에 화해를 한듯하다.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과 같은 부부싸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화해를 마지막 행 ‘수상합니다 사랑 때문인가 봅니다’로 표현한다. 

<소>는 전형적으로 시인의 동년의 기억을 그린 시다. 시인은 이른바 70후70后다. 시에서는 85년이라고 했으니 시인이나 ‘소년’은 10대일 때이다. ‘벼 한이삭 훔쳐먹은 리유로’ ‘소년’은 소를 울면서 때렸다. 지금은 이를 후회하며 ‘화해’를 하고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벼 한이삭’이다. 소가 그 작디작은 ‘벼 한이삭’을 훔쳐먹은 것 때문에 ‘소년’과 충돌이 생긴 것이다. 이는 아마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던 70, 80년대 시인의 어떤 기억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소’로 표현되는 상대가 꼭 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는 어느 인간일 수도 있다. 그 인간과 먹을 것 때문에 생겼던 어떤 충돌을 오늘날에 와서는 후회하고 그것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날 산너머 하늘은 그렇게 푸르렀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을 산 인간이라면 비슷한 경험들이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다.

<락엽>은 시인이 아마 기본적으로 어떤 동일성identity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인 ‘나’는 세계(락엽)에서 동일한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그 ‘나’는 ‘나’처럼 ‘한치 오차 없’어야 한다. 그런 끝에 ‘나’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색갈은 좀더 진한 원색으로 화알화알 불타올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 시에는 또한 시인의 도플갱어적 시각도 보이고 있다.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리론처럼 우주 어딘가에는 지구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하는 데 의하면 괴테가 도플갱어를 경험했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이를 경험하고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자의식 혹은 기억의 과잉이 이러한 현상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폰생폰사>는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 제일 맨 마지막에 위치해있다. 여섯수의 시 모두다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이 마지막 한수는 특별히 신경을 쓴듯하다. 

제목에 휴대폰을 뜻하는 폰이라는 글자가 있어 휴대폰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라는 90년대 류행가 제목을 빌어 <폼생폼사>라고 이름 하였다. 이 시는 두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꿈에서 겪는 일이다. ‘폰도 자고 바람도 엎드린 밤’에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꿈에 아마 휴대폰 내부를 상징하는 얼키설키 뒤엉킨 전기선은 ‘선택받은 인체기관들’로 나타난다. 이는 또한 ‘십색찬연十色灿然’이라는 독특한 낱말로도 표현되고 있다. 아무튼 이는 꿈속에서 본 내용이다. 인간은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는가? 꿈을 꾸었는데 아주 생뚱맞아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을 때. 어찌됐든 꿈에서 깨여나 보니 꿈에 내부를 보았던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됐다. 

둘째는 시적 화자인 ‘내’가 밤에 잠을 못 이루고 21세기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는 여느 인간이 그러듯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1련의 ‘작은 호롱불’은 ‘내 마음에 밝힌 불’인 동시에 휴대폰 액정화면의 불빛인듯하다. 휴대폰으로 여러 정보를 접하는 것이 바로 2련이다. ‘내’가 접한 정보들은 별의별 게 다 있다. ‘천국, 목사님’과 같은 종교적인 것도 있고 남성을 상징하는 ‘뱀장어’와 녀성을 상징하는 ‘자궁’처럼 섹슈얼리티한 것도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사실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면 이른바 스마트폰 시대의 다량의 정보는 사실 정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온밤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 보니 새벽이 되였다.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돼 ‘랭증에 울고 있’다. 인간의 급한 생리현상도 해결할 겸 충전기도 찾아온단다. 

그야말로 요즘 ‘스마트 시대’ 혹은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는 시인 본인의 자화상이면서도 우리의 자화상이다. 말이 스마트폰이지 전화기가 스마트한지는 몰라도 그것을 쓰고 있는 우리는 꼭 스마트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화자는 1련과 2련에서는 신비한 무엇을 만들고 있다가 3련에서는 자조 섞인 어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듯하다. 과학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딸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시에 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상상에서 출발하여 상대성 리론을 고안해냈고 얼마 전에 타계한 스티브 호킹도 상상에서 출발하여 블랙홀을 발견하였다. 시인도 바로 이러한 상상력이 있기에 일도 할 수 있고 이러한 예술행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은 추억으로서의 기억보다는 연장된, 과잉된 기억이 리얼리티를 가진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과잉된 기억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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