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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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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수필)
2019년 07월 12일 19시 21분  조회:47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

곽미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연한 노랑빛으로 망울져있던 창밖의 목련꽃이 터질듯 활짝 피여나 은은한 향기를 뿜어올리고 있었다. 목련꽃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몰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2년 전 이맘때였다. 엄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상해 민항체육공원에 가서 꽃구경을 하셨다. 하느적거리는 수양버들과 눈이 시도록 하얀 벚꽃나무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남기셨다. 그런데 그 이튿날부터 엄마는 련속 며칠 동안 머리가 지속적으로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는 가혹했다. 간암 말기였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일년 동안 엄마는 자연치료법과 기도와 명상으로 치료를 했다. 락천적인 엄마는 신념으로 병마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고 가족들과 엄마의 친구들도 모두 엄마에게 많은 신심을 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전혀 차도가 없고 정직하리만치 차곡차곡 간암 말기에 나타나는 모든 증세의 단계를 밟아왔다. 겨울 환절기에도 용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이겨낸 엄마는 이제 봄이 오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공원놀이하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인지 뼈만 남아 앙상궂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희미하게 어리는 걸 여러번 봤다. 하지만 청명절 날 위험은 예고 없이 엄마를 덮쳤다. 

 

주말이였고 나는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구급차 불러. 위급하다.”

나는 엄마의 방으로 뛰여들어갔다. 롱구공처럼 빵빵하게 부은 엄마의 하얀 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투명한 배가죽을 뚫고 울퉁불퉁하게 솟은 혈관은 당장이라도 배가죽을 뚫고 밖으로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가 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얼굴은 무섭게 이그러졌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복수가 찬 거였다. 간암 말기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수시로 찾아올 수 있는 위험신호였다. 나는 부리나케 다시 거실로 달려나가 120 에 전화를 걸어 앰뷸런스 요청을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엄마는 배를 부여잡고 계속 신음을 토했고 링겔을 꽂았지만 고통은 전혀 해결이 되지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일련의 검사절차를 거치고 나서 엄마에게 진통제를 투여하기까지 한시간 반이 걸렸다. 엄마의 진통은 도저히 멈추지를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 날부터 엄마가 주관하던 우리 집안의 평화로움은 리듬이 깨졌고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자잘한 마찰은 수시로 타닥타닥 불꽃을 튕겼다. 거기에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우리의 삶에 접근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졌다. 엄마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가 하는 생각이 언뜻 미치는 순간 나는 심하게 머리를 내저었다.

응급실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입원실로 옮겨간 이튿날 오전, 나와 동생은 수차례 담당의사한테 불리워갔다. 매 한차례 검사결과가 나올 때마다 의사는 위급통보를 전했다. 결국 그 날 나와 동생이 들은 최종의 통보는 삼일을 넘기지 못할 것 같으니 스물네시간 꼼짝 말고 환자 곁을 지키라는 것이였다.

엄마는 통증이 조금 가시자 자신의 병세를 의식했는지 우리를 불렀다. 엄마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찾았다. 이튿날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인 민성이 할머니가 병원에 오자 엄마는 가까이 불렀다.

“민성이 할매, 이젠 나를 놔주게.” 눈물을 비오듯 흘리는 민성이 할머니에게 엄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알아, 이제 마지막 길인 것 같으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마지막 길에 한복 입고 가고 싶으니 우리 집에 가서 한복 좀 찾아놓게. 두벌이 있는데 노란 저고리 있는 걸로.”

그 한복은 3년 전 환갑을 맞으면서 새로 지은 거다. 그 전에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엄마도 한복을 한벌 맞춘 게 있어서 그걸 입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환갑이라고 새 한복을 지었길래 나와 동생들은 못내 아니꼬와하고 있었다. 한복은 평소에 별로 입을 일도 없고 나와 동생들도 다 결혼을 했으니 기껏해야 엄마가 한복을 입을 일이라고야 교회에서 명절에 성가 부를 때나 한번 입을가말가 하기 때문이다. 류달리 한복에 집착하는 엄마가 살짝 밉기까지 했다. 딸들한테 미안하지 않을세라 엄마는 한복을 입을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그래 봤자 네댓번이나 입었을가.

내 인상 속의 엄마는 날씬한 몸매를 지녔던 적이 한번도 없다. 언젠가 앨범에 끼워져있는 엄마의 처녀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엄마는 날씬한 몸매에 기다란 외태머리를 땋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여나서부터 본 엄마의 모습은 늘 파마머리에 남정네들 못지 않은 일솜씨를 자랑하는 굵은 팔뚝이였다. 엄마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솜씨가 잽쌌다. 엄마는 펑퍼짐한 엉덩이에 굵은 팔뚝, 통통한 다리를 가진 전형적인 조선족 농촌 아줌마의 체형이였다. 그런 엄마에게 한족들이 명절 때나 행사 때 입는 치포우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엄마에겐 곡선미를 강조하는 치포우보다는 몸매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통 너른 한복저고리와 치마가 훨씬 잘 어울렸다. 하지만 시골에선 치포우든 예쁜 한복이든 입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은 때가 절은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쓱쓱 문지르며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거나 땀냄새가 배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흙이 묻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며 밭고랑을 타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이다. 한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은 평소의 억척스러운 모습과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인정하기 싫지만 엄마가 한복을 입은 모습은 참 아름답다. 

 

엄마의 한복을 찾아놓고 광목천으로 이불과 요를 만들며 민성이 할머니는 계속 눈굽을 찍는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삶은 늘 우리의 생각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몇번 안되는 엄마의 한복 입은 모습을 떠올렸다.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하얀 저고리에 핑크 치마 한복을 차려입고 새색시처럼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던 엄마의 모습, 평소엔 웃음소리도 크고 성격도 괄괄한 편인 어머니가 한복을 입으면 마치 딴 사람으로 변한듯 싶다. 그리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날 한복을 차려입고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이였다. 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벚꽃나무 아래 한복을 입고 서서 찍은 엄마의 사진은 분명 행복에 겨운 모습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이 함께 사는 가정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늘 넉넉함과 드넓은 아량으로 집안의 평화를 지켰던 엄마의 성품은 풍성한 한복의 치마자락과 닮아있다. 그러고 보면 한복은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였다. 나는 너무나 늦게야 알았다. 살아생전에 몇번 못 입어본 한복을 그 곳에 가서는 원 없이 입어보게 하고 싶었다. 

   

나는 한복을 곱게 싼 보자기를 들고 집문을 나섰다. 고통과 질병과 전쟁이 없는 그 곳에서 엄마는 매일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평화롭게 지낼 것이다. 엄마의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복장 한복을 입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엄마는 갔다. 목련꽃 피는 계절에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평화로운 얼굴로 갔다. 

며칠만 지나면 만개했던 목련꽃은 이 봄에도 속절없이 벌써 지겠지. 흩날리는 목련꽃잎이 왠지 엄마의 치마자락 같아 나는 눈앞이 흐릿해진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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