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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손자병법
2010년 04월 07일 08시 26분  조회:4784  추천:0  작성자: 人和

 

손자는 손무(孙武) 라고도 한다. 자는 장경(长卿)인데 제나라 낙안, 지금의 산동성 혜민 출생이다. 손자는 춘추 말년의 저명한 군사가다. 그의 선조는 진국의 공자 진헌이다. 기원전 672년 진선공 21년, 진헌은 내란으로 제나라로 피신해 이름을 전헌이라 고쳤다. 제나라를 위해 전공을 세운 전헌에게 제나라 왕은 손씨라는 성을 하사해 이름을 손서라고 부르게 했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손서는 손자의 할아버지다.

 

 

후에 제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손자는 고향을 떠나 지금의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일대인 오나라로 피신했다. 손자는 한동안 은거생활을 해오다가 나중엔 한 대신의 천거를 받아 오나라 왕 합려를 알현하게 되었다. "사기-손자열전"의 기재에 보면 손자가 오왕을 알현할 때 오왕이 "그대 13편의 병서를 모두 읽었소."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그 13편의 병서가 바로 병법서로서 사상 최초 그 권위를 자랑하는 "손자병법"이다.

 

전해지고 있는 손자의 일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화는 "사기-손자열전"에서 나오는 기록이다. 그 일화는 이러하다. 손자는 오왕 합려를 만난 자리에서 궁녀 180명을 두 진영으로 나누고 오왕이 총애하는 두 궁녀를 대장으로 삼은 후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마치 새로운 유희를 하듯 희희낙락 하면서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이에 손자는 대장을 맡은, 오왕이 총해하는 두 궁녀를 그 자리에서 참수한 후 다시 훈련을 시켰다. 다시 훈련을 시키자 궁녀들은 섶을 지고 불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훈련에 열중했다. 오왕 합려는 손자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손자는 초나라, 제나라, 진나라를 제압하여 마침내 오왕 합려가 패업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약 6천여 자에 달하는 "손자병법"은 시계(始计),작전(作戰),모공(謀攻),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 등 13편으로 되어있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보편적인 의의가 있는 일련의 작전원칙과 작전방법을 제기했는데 손자병법은 풍부한 군사변증법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병법사상은 중국 고대 군사학이 성숙되었음을 보여준다. "손자병법"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기원 8세기에 "손자병법"이 일본에 전해진 후 18세기 후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어로 출판되었다.

 

 

"손자병법"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반드시 충돌이 있기 마련이며 충돌이 벌어지면 전쟁을 하게 되고 전쟁은 곧 생사존망과 연결되기에 계속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道), 천(天), 지(地), 장(将), 법(法)의 다섯 가지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손자병법"에서 적고 있는 도(道)란 백성이 기꺼이 윗사람과 더불어 생사를 함께 하고자 결심하고 위태로움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고 천이란 것은 음양, 추위, 더위, 때와 같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자연의 혜택이며 지라는 것은 땅이 가져다주는 지리적 조건으로 전쟁을 하는 당사자 간의 거리, 지형, 땅의 면적 등을 말하고 장이란 군을 통솔하는 장수가 지략, 신뢰, 인의, 용맹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며 법은 군대의 편성과 그 조직, 명령계통이 잘 되어 있는가 하는 것과 병기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를 이해하게 되면 언제 용병을 하며 어느 때는 용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자병법"을 통해 우리는 손자가 천시(天时),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백성들이 전쟁을 싫어한다면 그 어떤 작전을 쓴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사를 거느리면 반드시 그 마음도 함께 거느려야 한다. 또한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전쟁의 가장 높은 경지는 모략의 운용이라고 하면서 군사를 쓰는 최상의 방법은 적의 계략을 파악하여 이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으며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를 조정하여 자기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여 싸움터로 허겁지겁 달려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아낀다는 것이다. 손자는 이 모든 것보다 우선은 백전백승하는 사람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손자가 반드시 물리적인 접촉을 통한 싸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승패에 관계없이 양측이 모두 큰 손실을 입는 싸움보다도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략의 운용을 첫자리에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자병법"은 중국 고대 군사사상에서 빛나는 한 폐지를 수록했다."손자병법"은 2000여년전의 군사이론을 계통적으로 연구한 저서이다."손자병법"은 군사지리학, 군사 후근보장학, 군사심리학 등 여러 군사 분야의 지식을 망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지금까지도 "손자병법"을 지혜의 결정체로 인정해 오고 있는 그 까닭은 "손자병법"의 바탕으로 되고 있는 철학성이 심후하고 정치 경향성이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손자는 선인들의 진보적인 유물주의 전통을 계승 발양했으며 군사 활동 자체의 특징에 근거해 자신의 소박한 유물주의 립장과 태도를 "손자병법"을 통해 천명했다.

 

 

손자는 천도는 일종의 자연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으며 전쟁을 객관 물질운동의 현상으로 대하면서 전쟁활동의 자체 특성에 따라 실사구시적으로 전쟁실천을 지도해 나갈 것을 주장했다. "손자병법"에서 군사문제에 대한 손자의 이성적인 인식은 민본주의정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민본주의 사상은 "손자병법"의 또 하나의 철학사상이다. 손자는 현명한 정치와 백성의 이익은 전쟁활동을 진행함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전제라고 했다. 그는 전쟁 중 결책과정에서 백성의 이익을 돌보는 기초에서 적합한 결책을 내려야 하며 가장 적은 대가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자가 군졸들을 사랑하고 포로를 우대하며 상과 벌을 평등하게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손자의 민본주의 정신이 군사정책면에서의 집중적인 구현이라고 볼 수 있다.

 

 

변증법적이고 능동적인 사유방식은 "손자병법"의 영혼이다. 손자의 병법사상은 일찍부터 그 영향이 군사범위를 초월했다. 각국의 정치가, 외교가, 경제가와 과학, 체육계 인사들도 "손자병법"에 대해 절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해군 상장 라크스트는 "손자병법"의 모략은 "전쟁에 적응될 뿐만 아니라 중대한 정치적인 결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10권에 달하는 "손자병법 경영총서"를 펴냈는데 이 책은 경제 분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학자 죠지는 "손자병법"은 오늘의 군사 지휘관과 현대 경영학자들이 참답게 연구할 명작이라고 하면서 손자병법은 여전히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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