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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서 토지는?
“토지는 작가의 삶의 터전이고 토지는 작가의 창작의 원천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말인지 아니면 오늘 오전에 있었던 “거장 박경리의 삶과 문학”이라는 특강을 듣고 문뜩 떠오른 나만의 생각인지는 가늠이 안간다. 하지만 특강이 끝나고 있은 간담회에서 내가 이렇게 자기의 소감을 피력한것만은 사실이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내 느낌은 진실했고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의 마음은 진실할뿐이다.
10대 후반에 문학을 내 출세의 지름길로 삼고저 한적이 있었다.
나는 고중 2학년을 다니다가 가정의 이러저러한 여건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고 입대하게 되였다. 부대에 가서야 나는 나의 지식의 한계를 알게 되였고 또 약속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것을 느끼게 되였다. 미래를 약속할수만 있다면 어떤것이라도 잡고싶었다. 그때 나의 손에 잡힌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짚으라기”였다.
15살, 초중 2학년에서 공부할 때 《연변일보》에 첫 통신을 발표하면서 작가가된다고 가슴을 들먹이던 한 문학소년이 잡을수 있었던 유일한 삶의 끈이 문학이였던것 같다.
나는 그 힘든 부대생활중에서도 죽기내기로 글을 쓰고 책을 보았다. 그때는 진실한 그 무엇을 쓰려는것이 아니라 어떤 글이라도 써서 어떤 간물에라도 발표하려는것이 목적이였다. 어떤 글이 어떤 곳에 발표되든 발표만 되면 그만큼 부대에서의 위치가 달라질수 있었고 그만치 미래가 약속될듯싶었던것이다.
수필이랍시고 동시랍시고 소설이랍시고 두루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다. 발표되는 차수가 많아지자 나는 과연 그 지긋지긋 힘들기도 하던 련대를 떠나 퇀 정치처에 발탁되여 통신간사로 되였다. 소문이 부대주둔지의 조선족문화관에 전해졌던지 나는 문화관에 림시 전근되여 문학편집으로 일하는 기회도 잡게 되였다. 그곳의 추천으로 어느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문학공부도 하게 되였다.
그게 계기가 되여 퇴대후 방송국이며 텔비죤방송국이며를 돌다가 오늘 출판사에 굴러들게 된것이다.
어쩜 어릴 때 받았던 삶에 대한 콤플렉스때문이였든지 나에게 있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나의 밥줄—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 크지 못했다. 정력을 사업에 쏟으면서 나는 차츰 날마다 문학과 멀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고 차츰 문학의 끈마저 놓아버리게 되였다. 간혹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문학”에 대하여 돌이켜볼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문학은 나에게서 떠나버린 렬차처럼 느껴질뿐이였다. 나는 가끔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문학앞에서 날뛰던 10대의 소년을 그리며 애수에 젖었던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다시 문학의 끈을 잡아쥐게 된것이 2007년이였다. 운명의 장난이였다 할가? 그해 5월 나는 행운스럽게도 연변작가협회의 추천으로 중국작가협회에서 꾸리는 로신문학원 “제6기 중청년작가 고급연수반(아동문학반)”에 들어가 3개월간 공부할수 있은 기회를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그 3개월간 나는 문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을 접촉하게 되였으며 문학앞에서 자신의 천부를 가늠해보게 되였다. 따져보면 나는 문학에 천부가 없는 사람이다. 천부가 없다면 노력을 해야겠는데 과연 나에게 얼마만한 문학적잠재력이 있는것일가?
나는 나의 삶에 대하여 나의 인간자체에 대하여 차근차근 돌아보기 시작했다.
1989년 6월에 연변인민방송국에 입사하여 접촉한 사업이 청소년프로 제작이였다. 1993년 6월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전근하여 맡은 사업도 역시 청소년프로 제작이였다. 사업에 참가하여 장장 18년을 청소년들을 위한 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달려왔던것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했던 이 18년이 바로 내 문학의 토지가 아니였을가?
2007년 5월의 어느날, 나는 내 문학의 토지에 첫삽을 박았다. 그렇게 시작한것이 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이다. 단편소설 한편 변변히 써내지 못했던 내가 장편소설창작에 달려든것이다. 그 작품을 쓰면서 나는 내가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를 쓰고싶었을뿐이였고 꼭 써내고싶었을뿐이였다. 그렇게 20일만에 17만자에 가까운 소설을 끝냈다.
작품에 종지부를 찍고 나는 뜻밖에도 너무나 차분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구경 내가 써낸 글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길이 없었지만 쓰고싶어서 썼고 쓰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썼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의 글에 만족할수 있을것 같았다.
박경리님은 필생의 정력을 다하여 “토지”라는 제목으로 민족의 “토지”, 나라의 “토지”를 써냈다.
오늘 한국 원주 박경리문학공원 소장 고창영님의 특강을 들으며 박경리님의 인생자체가 바로 토지에 뿌리를 내린 작가의 훌륭한 보기가 아닐가를 생각해보았다.
요즘에 와서 나는 전처럼 발표나 수상에 연연하고싶지 않다.
다행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를 만나서 나름대로 글을 쓰고 나름대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과연 세상사람들 몇분이나 나의 글을 읽을수 있고 또 읽은후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겠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글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읽는 사람이 없어도 역시 무방할것 같다. 워낙 아무 욕심없이 쓰고싶어서 쓴 글인데 차곡차곡 내 문학의 토지에 옮겨 놓으면 그만이 아닐가?
어느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들어와서 물 한바가지 마시고 가면 어떻고 심심한 아줌마가 들어와서 꽃 한송이 따가면 또 어떠랴. 쉴줄 모르고 뛰노는 어느 개구쟁이가 숨어들어왔다가 오줌 한번 찔 갈기고 도망가도 만족이겠다.
이 시점에서 문학은 더이상 나의 무엇을 위한 지름길로 될수 없다.
아동문학작가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진정 토지처럼 소박한 모습을 보여야 겠다.
아동문학작가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진정 토지처럼 순박한 글을 남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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