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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아들을 구하기 위해
2009년 05월 06일 11시 08분  조회:3959  추천:0  작성자: 人和

1998년 5월 29일, 단오절 전날이였다. 무한시 강하구 오리계진 라립촌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폭죽을 터뜨리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원래 농민 리공부와 채려평부부가 쌍둥이아들을 보았던것이다. 이날 리공부와 그의 안해 채려평은 쌍둥이아들 리남삼과 리남빈을 안고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줄을 몰랐다.


채려평과 리공부는 광동성에서 품팔이를 할 때 서로 알게 되여 사랑을 나누다가 1997년 5월에 결혼했다. 이번에 쌍둥이아들을 보게 되자 그들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기뻐했다.
1999년 5월, 채려평은 첫돌이 된 쌍둥이를 아이의 할머니와 고모에게 맡기고 광동성으로 가서 남편과 함께 품팔이를 하면서 음력설에 한번씩 아이를 보러 왔다.


2003년 5월 29일은 리남삼과 리남빈의 5살 생일이였는데 채려평은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얼마후 돌아가서 집을 사놓고 다시는 외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그때 아이들의 고모가 전화를 바꿔가지고 “올케, 빨리 돌아와요. 쌍둥이가 자꾸 넘어지는데 내가 보살피기 매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려평은 그 길로 휴가를 맡고 밤도와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쌍둥이가 여러번이나 절룩거리면서 걷다가 넘어지는것이였다. 무한아동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의사가 “두 아이는 ‘진행성근육영양불량’이란 병에 걸렸는데 쌍둥이가 동시에 이 병에 걸릴 확률은 억만분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런 병은 세계적으로 불치의 병인데 10살정도가 되면 완전히 전신마비가 되고 18살전에 죽게 됩니다”라고 알려주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채려평은 눈앞이 캄캄해났다.


광동성에서 품팔이를 하고있던 리공부는 이 기막힌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는 쌍둥이아들을 안고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채려평은 비통에 싸여있는 남편을 위안해주고나서 “앞으로 아이들을 치료해주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할거예요. 그러니 당신은 돌아가 츨근하세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다니면서 치료해주겠어요. 어찌 이 큰 중국에 우리 아들을 치료해줄 병원이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채려평은 오진이였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아이들을 데리고 호남성 장사시의 상아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보았는데 무한아등병원에서 내린 진단과 똑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이런 병은 치료할 가망이 없으니 아까운 치료비만 허비하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채려평은 쌍둥이의 병을 꼭 치료해주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2004년 봄, 채려평은 광서의 계림에 있는 로중의가 이런 병을 치료할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쌍둥이를 데리고 그 로중의를 찾아갔다. 로중의는 비방이라면서 이름모를 약을 끓는 물에 넣은후 그 약물로 두 아이의 관절부위를 찜질해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따가움을 참지 못해 울고 몸에 물집이 생기는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이런 방법은 너무 잔인해요. 치료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한후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채려평은 크고 작은 병원은 다 돌아다니고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보았으나 쌍둥이의 병은 하루하루 더 엄중해질뿐이였다. 2006년 3월, 쌍둥이는 완전히 마비되여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저금한 돈을 몽땅 써버린 채려평은 친정에 가서 돈을 꿔다가 아이의 약비를 대는수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며칠동안 내린 소낙비로 집이 무너져서 채려평은 위급한 병에 걸린 두 아이를 데리고 남의 헐망한 집을 빌려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느날, 남편한테 돈을 부쳐달라는 전화를 걸고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쌍둥이중 형이 갑자기 “엄마, 엄마는 우리더러 웃으면 이쁘다고 했는데 난 아무리 웃으려고 애써도 웃을수가 없어요.이러다가 우리가 곧 죽게 되는것이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채려평은 가슴이 덜컥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이후엔 죽는다는 말을 입밖에 내서는 안되다”고 말했다. 일찍 셈이 든 8살된 리남삼은 인차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웃을수 없으니깐 가슴이 답답해요”라고 말했다. 채려평은 “아이들이 10살이 되면 전신이 마비되고 18살이 되면 죽게 됩니다”라고 하던 의사의 말이 생각나자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이 2년 앞당겨 마비되였는데 이러다간 정말로 18살이 되기전에 죽는건 아닐가? 아니야. 우리 쌍둥이는 절대 죽을수 없어. 어떻게 하나 꼭 살려내야 해!


2006년 7월 5일, 채려평은 쌍둥이를 데리고 북경병원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이 꿔온 돈 2만여원을 가지고 북경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북경에 도착한 채려평은 돈을 절약하기 위해 60원을 내고 지하실려관의 침대 하나를 빌렸다. 너비가 1메터밖에 안되는 침대에 두 아이를 눕힌후 그녀는 침대곁에 엎드려 잠을 잤다. 려관주인이 그녀에게 침대 하나를 더 놓으라고 하자 그녀는 돈을 더 팔지 않기 위해 다른 곳에 주숙하려고 자리를 떴다.


쌍둥이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고서 북경의 거리에 나선 채려평은 가로세로 뻗은 립체교와 쉴새없이 질주하는 차량들을 보노라니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핑글핑글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그녀는 달리는 차앞으로 막 뛰여들어가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에 두 아이의 무게가 느껴지자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때 거리에서 음료를 파는 로인이 그녀에게 한 려관을 알려주었다. 그 려관의 주인은 그녀를 매우 동정하여 30원을 받고 침대 2개가 있는 방을 내여주었다.


주숙할 곳이 있게 되자 그녀는 쌍둥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그녀는 두 아이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고 걸어서 북경의 여러 큰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매일 5원어치의 밥을 사서는 아이들에게 먹이고는 나머지가 있으면 먹고 나머지가 없으면 굶군 했다.엄마가 가끔씩 머리가 어지러워하는것을 본 쌍둥이는 엄마더러 먼저 밥을 들라고 권했다. 엄마가 먹으려고 하지 않으니 두 아이는 울면서 “엄마, 엄마가 자시지 않으면 힘이 없어 우리를 업고가지 못할거예요”라고 말했다. 채려평은 할수 없이 몇입 먹는체했다.


4개월이 지났으나 아이들의 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때는 가지고간 돈도 다 써버렸다. 다행히 중국적십자총회 아동중병소조에서 쌍둥이의 정황을 알고 《북경석간》의 기자를 통해 쌍둥이의 이야기를 발표하게 했다.


마음씨 고운 시민이 500원을 기부했지만 그 돈으로는 며칠밖에 더 지탱할수 없었다. 중국적십자총회 아동중병소조의 만주임은 채려평을 보고 “먼저 집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시오. 우리는 이미 쌍둥이의 정황을 서류에 기록해두었으니깐 새로운 의료소식이 있으면 꼭 당신한테 전해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06년 10월, 채려평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해 겨울 그녀는 북경에서 언제면 소식이 올가 하고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하지만 북경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2007년 3월, 쌍둥이는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는데 온종일 한가지 자세로 있으면서 눈도 뜨려고 하지 않는것이 조각을 해놓은것만 같았다. 말할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려평은 두 아들에게 큰소리로 “지금은 대낮인데 잠을 자선 안된다! 빨리 눈을 뜨거라. 너희들이 잠을 자면 다시는 이 어머니를 볼수 없단다. 엄마가 부탁한다. 엄마 말을 들어다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집의 텔레비죤의 음량을 가장 큰 소리로 높여놓았다. 두 아들은 맥없이 말했다.


“엄마, 우리도 눈을 뜨고 엄마를 보고싶지만 너무 졸려요.”


“졸려도 눈을 감아선 안된다. 너희들은 굳세야 한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가서 2007년 4월에 들어섰다. 어느날 채려평은 심양해방군463병원 세포치료중심의 양효봉주임이 간세포이식수술로 혈전페쇄성맥관염환자를 치료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이를 데리고 심양해방군463병원으로 찾아갔다. 양효봉은 직접 심양기차역에 나가 채려평과 두 아이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진행성근육영양불량환자를 치료한 사례가 없었다. 양효봉과 그의 연구소조에서는 10여년래 줄곧 흰쥐와 토끼의 몸에 독특한 간세포쌍이식방법을 시험하여 모두 성공했다. 양효봉은 채려평의 동의를 얻은후 자체간세포쌍이식방법으로 쌍둥이를 치료해주기로 결정했다.
쌍둥이의 생명이 위급했기때문에 병원에서는 빠른 시일내에 수술방안을 확정했다. 양효봉은 먼저 두 아이의 체내에서 일정한 량의 골수간세포를 채취한후 세포분리, 배양, 유도분화를 하여 세포가 다른 일종의 세포로 변화되게 한후 두 아이의 체내에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치료비가 36만원에 달하며 2년내에 적어도 세번 간세포이식을 해야 하는데 매우 큰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채려평이 1전도 낼수 없다는것을 안 해방군463병원에서는 수술비용을 줄이는 한편 보도매체를 통해 사회의 기부를 받게 하였다. 2007년 5월 4일, 쌍둥이에게 처음 간세포이식수술을 해주었는데 수술후 20일도 안되여 기적이 나타났다. 두 아이는 물건을 잡고 몇분씩 일어설수 있었고 눈도 맑아졌다.


2007년 10월, 전문가소조에서는 쌍둥이에게 두번재 간세포이식수술을 해주었다. 1개월후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웃을수 있게 되였다. 리남삼과 리남빈은 너무도 격동되여 큰소리로 “어머니, 어서 보세요. 우리는 웃을수 있게 되였어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채려평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면서 머리만 끄덕였다. 2008년 7월,양효봉은 쌍둥이에게 세번째 간세포이식수술을 해주었다. 2개월후 기타의 보조치료를 거쳐 거의 정상인처럼 회복되였다. 리남삼은 기계에 의해 일어서 걸을수 있었고 리남빈은 자유롭게 걸어다닐수 있게 되였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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