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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정론
2013년 05월 31일 21시 00분  조회:786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개관정론”
                                   
                                                    최 균 선

    아침, 떠난지 오랜 모아툰에서 먼조카벌되는 사람이 느닷없이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옛정을 보아서 아니갈수 없어 부랴부랴 떠났지만 영결식은 끝나고 제사차비를 하고있었다. 제사에 앞서 추도식이 있었다. 빈의관에서 고용한 사람이 추도사를 읽었다. 추도사라야 보통농민으로서 생산대 대장직을 한외에는 별로 기릴만한 업적이란 별로 없어 추도사는 질박하고 간단명료했다. 
    추도사란 글자 그대로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추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나 글을 말하지만 죽어간 이를 상대하여 하는것이 아니라 그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하여 하는 연설과 같은것이다. 현대중국에서 추도회가 시작된것은 아마 장사덕이란 전사가 희생된후 열린 그번 추도대회부터인것 같다.
    추도문에 쓴 본인의 생애와 업적은 곧 죽은 사람이 민초백성이든 위인이든간에 그 본인에 대한 평가, 일컬어 “개관정론”인 셈이다.《개관정론》을 찾아보니 (명,려곤 (明ㅡ吕坤)”《대명가의대부형부좌시랑신오 려군묘지명(大明嘉议大夫刑部左侍郎新吾吕君墓志铭)》에《선악재아,회예유인, 개관정론, 무적우자손 지걸언이(善恶在我,毁誉由人,盖棺定论,无藉于子孙之乞言耳)》이라고 쓴데서 기원했다. 뜻인즉 한 사람에 대한 평가 는 죽은 다음에야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릴수 있다는것이다.
     중국고대인들은 “개관정론”을 특별히 중시해왔는데 당송이후 묘지에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쓰는 풍조가 일었다, 묘지명은 전부 좋은말만 쓰면서 악행은 감추고 덕행만 고양하며 금상첨화하는게 관례였다. 심지어 동에도 닿지않게 조작하여 어느게 진짜인지 어느게 가짜인지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효자현손들이 보면 흐뭇하였을것이다. 조상이 덕망높은자라 분명 음덕을 입을것이니 말이다.
    현대인들의 시각에는 분명 틀에박힌 교조로서 한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불리한 작법으로 보일것이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이외의 변화가 있을수 있으므로 너무 서둘러 결론내릴수 없다는것은 도리있으나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후 몇십년이 지나서야 제기될수도 있고 우연한 경우에 다시 재평가되면 행운이요 억울함이 영영 땅속에 묻히는 경우도 많았다.
    자고로 죽음에 대한 문제는 관념문제로서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산사람들의 기억의 힘으로 “영생”하도록 바라는 마음으로서“개관정론” 역시 가치관념문제인것이다. 원인이 곧 결과일수는 없으나 존재는 리유이자 결과이다. 기실 죽은후 “개관정론” 하든 불후의 묘비문을 새겨넣든 그 본인에게는 아무 실익도 의의도 없다.
    초민백성들에게는 “개관정론”이 버거운것으로서 관습상 력사인물들에만 해당한것으로 인지되여있다. 그러나 력사인물에 대한 평가표준에 대하여 사학계에서는 오래동안 쟁론이 그치지 않았고 바람직한 해답이 묘연한 난제로 남아있다. 쟁론에서 대표적인것은 “당시당지”표준과 “현실수요”표준인데 두가지 표준이 다 편파적이라는데 제 3자의 의견도 있다. 이런 낡은 화제에 대한 명랑한 해답을 함에서 관건적인 환절은 력사인물을 부동한 류형, 부동한 정황에 따라 획분한후에 부동한 류형과 정황속에서 부동한 대상들을 부동한 평가표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것이다.
     력사학의 발전사상에서 본다면 력사인물에 대한 “정론”이 매우 적다. 평가객체의 복잡성 그 활동에 수반하는 사회발전의 불일치로 하여 실제상 “개관정론”은 불가능하 다는게 많은 사가들의 관점이다. 평가주체가 받은 여러가지 인소의 제약성 및 인식의 부단한 번복현상에서 보아도 역시 불가능하다. “개관정론”은 력사가들의 주체의식의 발휘를 제한하거나 비틀어놓기를 잘하며 사람들의 가치규준의 변화로 하여 그럴듯한 “정론”은 영원히 미시적이 아닐수 없다. 표준은 표준이로되 왕왕 “현실수요”기준이 우세하는것같다. 마치 력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잠규칙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개관정론”이라 해서 절대적으로 공정한것은 아니다. 고왕금래, 력사상의 부동한 조대, 부동한 시기 종종의 원인으로하여 어떤 사람과 사건을 억울하게 처리하였거나 혹은 모종 원인으로 객관실제를 등지고 왕청같이 “정론”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자고로 “개관정론”이 뒤엎어진 선례가 적지 않은바 억울한 일, 그릇된 결론을 다시 평판하여 원혼을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하여주었다. 혹은 진상을 덮어감추고 미명으로 휘감아놓은 소위“정론”을 뒤엎고 력사의 진면목을 회복하기도 하였다.
    이런 현상을 력사상에서 흔히 “번안(翻案)”이라 한다. “번안”은 원뜻 외에 주요하게 정의와 공정의 립장에서 객과사실을 존중하는 전제하에서 착오적인 판결을 뒤엎고 완전히 상반되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것을 가리킨다. 학술계에서는 “번안”에도“정번안”과 “반번안”으로 나눈다. 원래 나쁜사람, 나쁜일로 결론지어 반면교재로 삼은것을 좋은사람, 좋은일로 되돌려놓아 명예를 회복하는것을“정번안”이라 한다.
    곰팡이 낀 봉건력사인물들은 제쳐놓고 개국공신인 류소기가 타계한후 “자본주의 길로 나아간 집권파두목, 당에 숨어든 역적, 간첩, 공적이며 죄악이 가득한 제국주의, 현대수정주의와 국민당반동파의 주구”라고 결론을 내렸다. 만약 후에 “사인무리”가 타도되지 않았더라면 류소기는 그때에 내린《개관정론》이 영원히 굳어졌을지 모른다.
    반대로 정면적인 력사인물로 부각된것을 뒤번져 원형을 드러냄으로써 나쁜인물, 나쁜사건으로 정정하는것을 “반번안”이라 한다. 례하여 어떤 사람이 홍수전을 민족 영웅으로부터 끌어내리고 민족의 패류, 력사의 죄인으로 번안하였다. 한족들의 심목속에 영웅인 악비를 암해한 진회나, 력사의 죄인으로 락인찍혔던 증국번이나 리홍장의 거듭나기, 드라마에서 부각된 강희, 옹정, 건륭 등 제왕들의 형상은 일찍 우리가 력사에서 배운것과는 뒤틀려도 너무 뒤틀려있다. 역시 “현실수요”에 기준한것인가?
    력사상 조조만큼 성격이 복잡하고 이미지가 다양한 인물이 없을것이다. “치세의 능신, 란세의 간웅”이라 평판나있던 조조였지만도 곽말약, 전백찬의 붓끝에서 환골탈태하여 민족영웅, 걸출한 정치가, 군사가로 거듭나게 되였다. 그리고 곽말약이 권위 자의 구미에 맞춰 “리백”은 하늘만큼 올리띄운 대신 사실주의시인 두보는 별볼일이 없는 시인으로 덧칠해놓지 않았던가?
    각설하고, 사람은 늙으면 뒤일을 걱정한다고 하더라만 평민백성들은 사후 한줌흙이나 한오리 연기로 사라지면 그만이다. 대저 력사에 남을 인물들은 확실히 후사가 걱정이다. 육체의 소실로하여 그 존재는 사라지지만 명성이나 사상같은것이 오래오래 남았을것이니 천고의 력사죄인이 되느냐, 치욕의 기둥에 매달리느냐는 생전보다 더 근심될수밖에 없다. 생전에는 개인숭배를 강요할수 있으나 사후에도 마음대로 될리가 없다. 그래서 후대에게 멋진 “개관정론”을 기탁하는것이다.
    그러나 살아서 혼군이 죽어서 명군으로 분식된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력사는 우롱할수 있지만 사실은 문질러버릴수 없다. 이면에서 원견이 있기로 무측천을 꼽아야 할것이다. 무측천의 무자비에 대하여 의론이 분분하다. “무자비”가 기실 자기를 자랑하는것으로서 문자로서는 크낙한 공덕을 표달할수 없다는 뜻이라고도 하며 혹자는 스스로“무자비”를 세우게 한것은 자기가 지은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비문을 쓰지 않는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늘것이라는것이다. 관덥개를 덮기전에 자기에 대하여 정론한것이라고 인식하여도 무방할것같다.
    먼 얘기는 여기서 접어두고 우리 민족사에 속하는 일로 말할 때 리승만, 박정희, 김대중, 로무현 등 력대의 한국대통령들에 대한 소위“개관정론”은 끝났는가? 네편, 내편을 전제로, 내리익, 네리익을 기준해 중구난방인데 그나마도 번복이 무상하고 자가당착이 많아서 누구도 바람직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있다. 흘러간 물 방아를 돌릴수 없듯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이 현시대의 수레바퀴를 돌릴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죽은사람이 산사람들을 조종하는 현상은 지금 진행형이다. 실감나는 감수를 표달할수 없어서 제멋대로의 시조로 대충 얼머부려본다.
 
                                 호랑이 죽으매 여우가 슬퍼하고
                                 사자가 쓰러지니 나귀도 걷어차네
                                 어즈버 개관정론도 이같지 아니한가
 
                                                 2012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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