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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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기의 잠규칙
2014년 08월 31일 08시 06분  조회:5110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글읽기의 잠규칙
 
                                              최 균 선
 
    글읽기란 바로 흔상주체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체험하고 재창조하는 정신활동이다. 문학흔상은 곧 작자ㅡ작품과 독자의 대화라 할수 있다. 문학적대화가 시작되기전 독자는 자각적이거나 비자각적인 어떤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접수심경이라 한다. 이런 접수심경속에 기대시야라 부르는 열독심리지향이 산생된다. 기대시야는 접수자가 접수과정에 들어가기전에 이미 가지고있던 접수객체에 대한 기대, 혹은 리해전의 심리상태라고 할수 있다. 독자들의 경험의식, 습관, 취향, 기호, 상식, 교육, 심미규범 등은 모두 기대지평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글읽기는 기계적반응이 아니다. 흔상과정에 독자의 기대시야와 작품사이에 흔히 순향적공감과 역향적반감 이 두가지 정황이 수시로 나타난다. 기대시야에는 작품의 예술형식과 심미특질 등에 기대를 가지는 문학적기대와 작품의 생활내함과 사상의의 등에 기대를 가지는 생활기대가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어떤 유익점을 줄수 있겠는가 하고 미리 예산하고 흔상에 림하는 가치론적인 기대도 있다.
    독자가 작품의 보다 심층적인 의미, 정감의 경계, 인생태도, 사상경향 등에 대해 기대하는 의미기대가 있고 열독경험 기대시야도 있다. 열독경험 기대시야는 개체성 기대시야와 집체성기대시야로 나뉜다. 전자는 일반독자의 기대시야이고 후자는 전문 비평에 종사는 특수독자의 기대시야이다. 문학흔상의 고조에는 공명감, 관념의 일치성, 정감경험의 동조, 의지와 념원의 접근과 친밀성 등이 있다.
    작품감상에서의 심미희열, 예술향수는 반드시 객체예술작품에 대한 관조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예술향수를 느낄 때 흔히 객체자신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객체 의 자극에서 산생된 감정, 정서로써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이것을“내부집중”이라고 한다. 문학적대화후에 재음미하는 정서적반성과 사고이다. 문학감상ㅡ예술접수활동은 독자의 차이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되고 독자의 선천자질, 생활경력, 사회분공, 주관 노력 등 개체의 심미수양으로 하여 다다소소 차별이 있게 한다.
    첫째로 나서는것이 심미취미인데 심미취미는 주관애호의 형식으로 표현되므로 애호, 정취의 풍부함과 결핍함 등 차이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주관선택과 편애를 배제하지 않는다. 둘째로 취미판단은 추상적리론인식이 아니며 또한 적라라한 도덕 개념도 아니다. 심미주체의 성격, 기질에 따라 각자의 심미취미와 애호가 표현된다. 정체상에서 독자의 흔상과정은 열독주체의 능동적해석과 재창조과정이다.
   독자의 각이한 해석은 심미적창조의 작용에서 온것이다. 동화(同化), 감정이입의 경지에 들어서면 작가나 독자는 서로 공감하는 가운데 작가보다 독자가 더 상위에서 작품을 제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흔상판단은 론리적판단이 아니라 심미 적이므로 이런 심미감각은 정신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정신세계로 나오는 고상한 생명활동이 된다. 그리함으로써 독자는 유익한 계발이나 조언을 얻어내군한다.
    감수성은 자연이나 예술미의 숭고에 대한 강렬한 정서적반응이라는 뜻이며 인식으로서의 문학, 경험으로서의 문학의 전제조건이다. 문학감수는 그저 한부의 두터운 소설책, 지어낸 이야기를 적은 문학서적…등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파묻혀 개체자신의 정감반응정보에 목적을 두고있다.  문학흔상에서“기계적반응”도 있게 된다. 말하자면 판에 박힌 반응, 무비판적반응 등을 이르는 말이다.
    문학접수에서 공명감은 고조단계에 들어갔다는 주요한 표지이다. 문학의 사회적기능은 독자의 문학경험이 그 삶의 실천속에서 우러나온 기대지평속으로 파고들어 그의 세계에 대한 리해를 미리 형성하고 그리함으로써 되돌아와 그의 사회적태도에 작용할 때 그 진정한 가능성이 발현된다. 독자에게 정감이라는 심리품질이 없다면 아 무리 뛰여난 필력도 흉금을 사로잡을수 없다. 누군가 작자는 반드시 먼저 나를 놀래 우고 마음을 찢어놓고 두렵게 하며 전률시키고 감동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하며 분노하게 하고 그다음 만약 남은 힘이 있다면 나의 두눈을 즐겁게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인간은 각자 자기가 보는 만큼의 세상을 마주하고 산다.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만물은 자기를 닮지 않은것을 낳는 특기가 없다. 문장도 그 나름의 감지와 지각에 국한된것이니 공명이 가면 공명할 일이요 아니 공명된다면 그만두면 될것이다. 그 어떤 경물, 경상이든 누구나 모두 눈으로 볼수 있고 어떤 감각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문학적정서를 가지는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것은 더구나 별개이다. 문학정서는 그 사물로 무엇을 깨우쳐주는것이 아니며 그 정서적느낌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건반을 울려줄뿐 시비의 판가름이 아니다.
    사람의 감수에는 원래 짝이 없다. 그것을 글로 옮길때 독자를 의식하며 쓰지만 그에 매이지는 않는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은 심심해서 공연히 해본 소리가 아니다. 어둠속에서 보는 고양이는 모두 회색일수밖에 없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상은 그 안경알의 빛에 따라 달리 보일수밖에 없다. 제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뭘 이런걸 다”하고 부정하는것은 그의 자유일세 자신의 주관판단이 곧 진리일리 만무하다.
    말하자면 한 작자에 대해 모종 선입견이나 편견을 앞세우고 그 작품을 읽는다면 읽는 사람의 흔상심리도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잃기마련이다. 인간은 감정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때문이다. 달걀에서 뼈를 찾아내려는 자세로 작품을“심열”하면 문제는 곧 수두룩해질수 있다. 털면 먼지가 나지않는 옷이란 없듯이 완전완미한 글이란 대가들에게서나 가능한 일로서 나는 고양이도 그릴수 없지만 너는 호랑이를 그리라는식으로 작자에게만 턱없이 기대치를 높이는것은 공정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글은 우선 감정적으로 읽은후 지적인 평판이 따르게 된다. 대저 문장을 바로 읽으려면 우선 어감이 있어야 하고 다음 문감이 있어야 한다.《살구꽃 담장밖에 팔을 내밀고 붉은웃음짓네》를 그냥 살구꽃가지로 읽으면 천성 어감이 없는 표현이고 그로부터 규방심리의 분방함을 련상한다면 문감에다 정감까지 성숙한 지적인 독자가 되는것이다. 이런 독자의 심미취미는 작자의 심미취미와 정비례된다
    수필은 시가 아니지만 감정이입이 허용된다. 사회상에 어떤 열기띤 화제를 곧잘“ 뜨거운 감자” 로 비유하는데 그것을 진짜 뜨거운 감자로 생각하고 감자농사의 유래와 용도,공헌에 대해 수다스레 늘여놓는다면 그 열독능력과 감지수준은 제로이다. 수필에 담긴 감정은 나름대로이고 표현도 정의나 공식이 아니기에 어학적으로 따지면 읽을맛이 싹 없어지고 말것이다. 감지에도 피상적인것과 본질적인것이 있다.
    피상적인 감지는 작품의 형식, 언어구사, 예술기교에 대한 피상적인식에 의거한 즉흥적인 감지이다. 본질적인 감지는 작품에 표현된 상황을 감지한뒤 자신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을 작자의 관점. 감정에 비추어보며 자신의 흔상심리를 조절, 수정한후의 합리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가능껏 공정할수 있다. “그저 그렇겠지뭐…”하는 선입견을 앞세우면 말타고 꽃구경도 아니고 “참새 방아간을 지나는격”이 되기십상이다.
    보통 어떤 새 건물을 구경할 때 건물의 배경과 설계적특징 등 외관에 눈빗질하고 집안에 들어가서 내부구조와 장식, 실용성 등을 감지하며 다시 창문밖에 환경을 보며 감수를 새기게 된다. 문학흔상도 마찬가지다. 한편의 작품에 스며있는 그 어떤 내재 적가치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면 공명대신 반감부터 찾을수 있다. 귀에 대고 하는 말은 귀로 듣고 심장으로 하는 말은 심장으로 듣고 정서적으로 하는 말은 정서적으로 들을법한 일이 아닐가싶다. 불원이면 무감각자이던가, 

                                           2008년 10 월 2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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