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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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약
2014년 12월 11일 20시 19분  조회:6302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기아약
 
                                        최 균 선
 
    옛날 어떤 황제가 멀리 사냥을 나갔다. 한창 사냥에 재미를 쏟을때는 그런줄을 몰랐는데 점심때가 지나 이슥하도록 수종이 오찬을 들라는 말이 없자 황제는 갑자기 배가 아파나면서 눈앞이 노오래지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는것이였다. 그날따라 수종들이 그만 점심거리를 가지고 가는것을 깜빡 잊다보니 제때에 점심을 올릴수 없었다. 굶주림이 무엇인지 몰랐던 황제는 자기가 죽을병에 걸린줄 알고 식은땀을 흘리며 수종신하에게 말했다.
   《여봐라, 짐이 아마도 몹쓸 극병에 걸린것 같노라.》
   《페하, 황공하옵나이다. 죽을 죄를 지었으나 잠간만 참고 견디시옵소서》
   수종은 고두백배 사죄하고는 산아래로 내려가 어느 농가집에서 구운떡 하나와 랭수한병을 구해다 바쳤다. 속이 허전하여 무엇이든 먹고 싶었던지라 게걸이 감식으로 구운떡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우고 랭수한병을 다 마시고난 황제는 대번에 배속이 편안해지고 기운이 돌아오는것을 느꼈다.
   《짐이 오늘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던것이뇨?》
    신하가 짐짓 태연한체하며 아뢰였다.
   《다른 병이 아니라 바로 기아병에 걸린것이나이다.》
   《어허, 세상에 고이한 병도 있도다. 기아병에 음식이 령단묘약인줄 알겠구나.》
      평시같으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을 구운떡이 배가 몹시 고팠던 그에게 천하일 미였을것이고 랭수는 옥체에 대뜸 원기를 돌려준 천하보약이 되였을것이다.
    8국련합군의 총포성에 혼비백산해서 서안으로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이르는곳마다에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식도락을 즐긴 자희할망구야 기아가 목구멍에서 나오는지 밑구녕에서 나오는지 알턱이 있었으랴! 부하고 고귀한자들의 식도락과 가난한 백성들의 기아의 맛이 그렇게도 다르지만 식욕과 진미가 그렇게 꼭 맞아떨어 지는것은 아니였다.
   만복의 불룩한 배가 무거워 생걱정이 되여진 판에 재수없이 기아란 불길한 말을 들먹거리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격이 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기아의 맛이 무엇인줄도 모르는 새세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우다가 코등을 데였다는 얘기를 하는것처럼 허황하게 느껴질것이고 기아의 맛을 신물나게 맛보았지만 이미 싹 잊고있는 이들에게는 새삼스러울것이다.
    거국적으로 아사자가 부지기수로 나타났던 저주로운 기아의 시기는 확실히 력사의 락엽속에서 썪고있음은 사실이다. 이제 더는 낟알때문에 죄없는 참새들과 싱갱이질하지 않아도 되였고 얼마간의 흙투성이 낟알이라도 얻겠다고 쥐굴을 파헤치지 않아도 되였으며 소위《량식절약공약》으로 어쩌다 찾아온 친지들에게 축객령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한끼 에때우고 다음 끼니거리가 한걱정이던 그 시절에 제일 한숨을 썩인 사람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과 안해들이였으리라. 어떻게 하면 남편과 자식들을 배곯게 하지 않을가 가슴을 뜯지 않을수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끼니때마다는 아니여도 좋은 음식을 마주할때마다 나의 밥그릇에 가마굽을 훓어서 다 퍼담고는 자신은 숭늉만 마시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회한에 가슴이 쓰릴때가 드믄하다.
   예로부터 흉년에 어미는 굶어죽고 아이는 배터져죽는다고 그때 영양실조로 황천길 앞당긴 사람이 얼마였으랴! 어느해 봄이던가, 청명날 안굽이라고 부르는 논을 갈다가 쉬는 참에 들었던 한 녀인의 통곡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생생하다. 역시 마라초로 허기진 배를 다독이며 논둑에 기대여 앉았는데 바로 지척인 뒤산의 어느 묘지앞에 한 로친네가 넋을 놓고앉아 제돌을 치며 울고있었다.   
  《애고애고…남들은 모두 그런대로 살아남았겄만 당신은 어찌믄 그리도 박명하우, 흐흑!먹을것두 못먹구 입을것두 못입구 처처  고생만 하더니 아이구, 령감만 불쌍해서 내 어찌 사누…》
   그때 여러 지탑군들이 함께 담배를 태우며 그 소리를 들었지만 감수는 저마끔 이였을줄 안다. 그러게 장난기가 심한 애숭이지탑군들속에 어느 애가 그 통곡을 흉내내여 창작한 걸작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에구에구, 령감아, 입을것두 못먹구 먹을것두 못입구, 에구, 내사 초기들어서 울맥도 안나우, 나 이제 갈라우…》 사실 그때 이 마을 저 마을들에서 대식품으로 생긴 변비로 고생하다가 맥이 없는 늙은 이들이 많이 죽어나갔다.
   자고로 미식가들의 구미에서 새록새록 진수성찬이 고안되였다면 그때 먹거리에 대한 기발한 창조력은 기아를 말리기 위한데서 온것이였다. 그만큼 사람들의 모든 관념은 먹거리에 매달려있었고 상상력이 총동원되였다. 앉으나서나 무엇을 먹을 궁리 에 머리가 돌아갈지경이였고 누가 한번 잘 먹었던 얘기를 할라치면 지레 군침부터 삼켰고 그런 날 밤이면 의례히 베개가 축축하기 십상이다. 꿈속에서 흘린 게침과 눈물에 젖었던것이다.
   그래도 쩍하면 숭엄한 마음으로 구사회의 인간지옥을 저주하고 성토하는데 열정을 아끼지 않았으며 오늘의 행복을 기리는 마음을 사람마다의 본분으로 여겼다. 그속에서 가난한 사회주의에 자족할줄 아는 숭고한 정신승리법을 철저히 배워냈다. 대식품시기를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밭머리에서 콩단채 불을 싸지르고 가맣게 그을린 콩알을 주어먹을 때 그렇게 고소하고 감미울수 없고 보리밭무우를 씹어먹을 때 그처럼 시원달콤할수 없었으리라.
   그때의 그런 진미를 아직도 기억하고있는 사람들은 오늘 식당들마다에서 저가락도 대보지 않은 고급채들이 그대로 구정물독에 들어가는것을 보며 말못할 어떤 느낌이 있을것이며 밥상에 흘린 밥알에도 저도 모르게 눈길이 돌려질것이다. 우리 로세대들 모두가《천년기아》는 알지 못하지만 그 어렵던 시기의 기아의 맛은 너무도 뼈저리게 절감할것이다.
   사흘굶어 담 아니넘을 놈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기아는 량심과 체면을 상실하게 할뿐만아니라 인성을 매몰시키고 야성이 발작하게 한다. 수양제시기 오합지졸을 끌어모아 란을 일으킨 악마 주찬이라는자가 군량이 떨어지면 곳곳에서 닥치는대로 부녀자와 아이들을 잡아들여 잡아먹었다고 고서에 기재되여 있거니와 천하무적이라던 일본군도 동남아의 도서들에서 미국군에게 포위되여 절경에 이르렀을 때 전우의 인육으로 악착같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지고있다. 이는 20세기 기아의 비극이였다. 참으로 기아의 맛은 백사에 선행하는 생사ㅡ그 자체인것이다.
   어릴 때는 김치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신맛이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직 설익어서 배추 따로, 소금따로 된 김치였던 그런 기억도 난다. 또한 어릴때란 음식맛을 챙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배불릴가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맛은 뒤전일수밖에 없었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는 끼니때마다 돌격전이 벌어진다. 그 작은 배에도 멀건 시래기국을 두세발씩 훌쩍 삼 던 나였다. 형들에게 밑질가봐 배터지라고 먹고싶었던 나였다.
   어릴 때 아침점심을 다굶고 앞집 은주와 함께 놀음으로 주린배를 달래는데 그애 할머니가《은주야 날래 들어와 밥을 먹어라. 물에 말아놓은 밥이 다 퍼진다.》하던 말이 지금도 귀전에 생생하다. 밥이 퍼지도록 먹지 않고 놀음에 탐한 행복한 내친구, 그 살짝곰보의 얼굴이 언제나 방불히 보이는듯하다. 그래서 평생 음식타발을 해본적이 없다. 그저 너무 입에 거슬리지 않고 배가 부르면 만족으로 생각한다. 찬밥이면 찬밥, 식은국이면 식은국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배부르게 먹고 산다는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이다. 등허리 휘도록 농사지을 때 배불리 먹지못한 밥을 지금은 흙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배불러서 식욕이 떨어져서 못먹고 사니 내 팔자도 되게 펴인것같으니 감사가 아니나올가?
   어린시절 원족가서 먹는 이밥의 맛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설날이나 생진이 아니면 얻어먹기 어렵던 이밥 한종지. 그런 밥을 하늘의 빛나는 태양아래에서 어느 때보다 더 밝은  자연광아래에서 먹고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식도락이 아닐수 없었다. 도시락속의 밥이 그냥 밥이기보다는 밥알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그 모습을 기억해 낼수도 있다.
   자신이 먹을 음식이 그냥 그대로 먹음직하게 눈앞에 나타나있을 때 점심때가 되기를 은근히 기다리던 나, 이제 그것을 먹기시작한다고 생각해 본다. 시각을 통해서 전달된 음식의 모습은 다시 침샘을 충분히 자극하여 밥을 씹을 만반의 태세에 돌입하는것이다. 평소 집에서 식사할 때처럼 밥소래에 눈길박고 욕심을 부릴것도 없이 나 혼자에게만 차례진 밥이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를 합목적적인 존재로서 리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왜 그 때는 그렇게 먹는문제가 어려웠던지…
   지금 내 손자놈이 밥을 먹기싫어해서 약을 먹이듯 쫓아다니며 한술한술 떠먹이는 모양을 보며 동년시절 사흘이나 굶어서 오남매가 구들바닥에 늘어져있던 정경이 떠오르고 피골이 상접해 있는 이 세상 다른 어린애들을 련상하게 되고 어쩌다 때를 건네고 먼길을 가며 허기진 배를 달랠때도 내내 굶주리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라니 참아야지!하고 자신을 다잡는다. 나는 결코 미륵보살이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다만 보통 인간이면 다 가지는 그런 인간상정을 가지고있을뿐이다.    
   진정 태평성대가 도래하기까지 국민들에게는 기아의 의미가 곧 생존의 내용으로 되여 각별하였다.《부자집에 술과 고기 썩어나건만 길가엔 얼어죽은 시체 딩구네》를 단순히 두보의 명구로 읊기에는 인간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했고 주리고 종된자들의 비침한 력사가 너무나 지루했던것이다.
   기아가 수많은 아사자를 낳았고 지금도 낳고있는데 현시대 만포식이 자초한것이 부귀병과 비대증이라면 얼마나 아이니러컬한 력사의 유모아인가? 입맛이 없다는 식욕불진이 생기지 말아야 할 골치거리가 되여졌고 너무 기름진것을 먹어 생기는 귀족병인 지방간이요 고혈지요 하는 시대특색의 병으로 약을 먹는다고 야단이고…녀자들은 다이어트인지 살까기인지 하느라고 몸살을 앓고있으니 얼마나 살맛이 나는가?
   옛말 그른데없이 쌀독에서 인심이 나는 법이라서 먹거리가 흔해지자 사람들은 배포가 유해졌고 심성들이 착해져서 고양이도 쥐를 말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키우고 한가함과 부귀증으로 애완견도 키우면서 그 시기에는 외동아들에게도 먹일 궁리를 못하였던 별식을 먹인다. 주린배에 애국이 없다더니 내 배가 부르니 뒤늦게 나마 박애와 《물종평등》의식이 대대적으로 시장되는듯 싶기도해서 개탄이 절로난다.
   세월이 하도 좋아져서 지금은 모이면 너무 잦은 연회상에 질색하는 사람들까지 다 생겼으니 그야말로 력사가 우리에게 희한한 롱담을 한다고 해야 하리라. 아무튼 밥사발에 밥을 보며 가마안에 밥을 생각하고 가마안에 밥을 보고 밭에 나락을 생각 하는 사람을 지금은 등불을 켜들고 찾아도 찾지 못할것이다. 개혁개방후 우리 나라에 서는 먹고 입는 문제가 기본상 해결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수천만이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전 지구적으로 무려 30억인구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바 매일 8억 5400만명이 저녁을 굶은채 잠자리에 들고있고 기아인구는 매년 400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유엔세계 량식계획(WFP)사무총장 제임스가 2007년 1월 16일에 밝혔다. 현재 기아 인구는 개도국 8억 2000만명, 과도기국가 2500만명, 선진국 900만명 등 총 8억 5400만명에 달하는것으로 “FAO”는 추산하고있다.
   인류의 기아의 력사는 종식되지 않았다.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한두끼가 아니라 오래동안 굶주림에 시달려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고가 무엇인지 모른다. 기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생활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이기때문이다. 고생고생해도 배고픈 고생이 첫고생이란다. 어떤 사정으로 한두때를 거른것으로 배고픔을 체험해보았겠지만 그것은 시장기의 맛이지 기아의 맛이 아니다. 기아의 력사는 인류의 문명사와 동보해왔고 지금도 수반되고 있는 사활적인 문제이다.
   제배부르니 평안감사가 조카같아 보인다는 우리 말 속담이 있다. 력사가 죽지 않는한 기아의 참상은 언제까지나 존재할것이며 장차 언젠가《천년기아》가 악마보다 더 흉악하게 인류에게 덮쳐들수도 있다. 말을 타고있다 해서 소수레를 타던 왕사를 잊는다는것은 그리 명지한 일이 아닌가싶다. 지금 배부르다고 자기가 겪었던 기아의 맛을 싹잊지 말아야 하고 잊어서는 아니될 일이다. 자기가 겪었던 기아의 쓰라린 맛을 인생의 보따리속에 그냥 간직해 두자. 그러면 저승에 가서도 배고픈 고생이 없을줄로 믿는 나이다.
                   
 
                                         2007년 3 월 1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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