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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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고) 겨레의 얼을 지켜 한생을
2015년 06월 24일 18시 54분  조회:472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겨레의 얼을 지켜 한생을
 
   존경하는 선생님들!친애하는 벗들!
   한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치욕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 과 인격가치를 훼멸당하는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서못받을 어리석음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자기를 잃어가면서도 그런줄 모르고 끝까지 자아을 찾지 못하는 그것입니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조우는 무엇일가요? 그것은 곧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중핵인 얼을 잃은 인간으로 전락되는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치욕, 우매와 슬픈 최후가 옹근 민족의것이 될 때 민족의 수치, 민족의 우매, 민족의 쇠망이라 할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민족자질제고, 민족경제의 진흥, 발달의 소망을 품고 탐색하고 분투하면서 비약을 도모하는 현시대 가 아닙니까?  주지하다싶이 민족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민족어교육이 기본으로 되고 민족의 진흥이라 하면 곧 민족의 얼과 슬기와 지혜의 정화인 민족문화재부의 축적을 종국적목적으로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당의 영명한 민족정책, 민족어문정책의 빛발이 포근히 감싸주어 마음껏 자기 민족문화자주권을 행사할수 있는 우리 조선족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어생 활권내에는 스스로 혀를 깨무는 사람들이 비일비재이니 심사숙고할 일이 아닙니까? 례를 든다면 우리는 종종 조선어무용론의 뇌까림소리를 듣게 되고 자기 자녀교양에서 100%의 한어화를 긍지로 삼고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냥 존재한다는것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한어를 한답시고 그 좋은 제 말마저 바로 번지지 못하는 사람들, 크고작은 회의나 연설식장에서 청중의 민족성분이야 여하튼 한어를 해야만 체면이 선 듯이 자부하는 이 사회의《중견》들을 볼 때, 대중이 알지 못하는 외래어단어를 마구 람용하여 잡탕말이 되여진 그런 문풍을 숭상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유식》 이나《현대의식》을 과시하려는 이들을 일견할 때 당신은 왼고개가 탈리지 않습니까? 더구나 자기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할 때 실로 조상의 해골도 자리차고 일어나 꾸짖을 일이 아닙니까?
   이런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뼈짬속에 백두의 정기가 고여있고 우리의 혈관속에서 흐르는 피에 반만년 찬란한 문화사를 엮어온 배달민족의 얼이 융화되여 있을진대 중화의 진흥에서 민족인다운 어엿한 모습과 자기 특유의 슬기와 지혜로 공헌해야 중화대가정속에 떳떳한 일원으로 나설수 있다는것을, 그가 상인이든, 농민이든, 로동자이든, 대학생이든, 학자이든, 작가이든 그리고 고급간 부이든 우선 인간이며 민족적인간임은 피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창조해왔고 그 후대들이 대를 이어 창조해나갈 물질문화재부의 모든 가치는 민족군체의 창조이자 곧 민족인 개개의 가치창조로 되기때문에 더욱 그 러합니다. 묻거니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독특한 국민성, 민족정기와 남다른 문화를 향수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그 모든 슬기와 재능을 자 기들의 국어, 민족어로 나타내지 않는가요?
   누가 만약 민족언어문자를 그저 동일민족군체내에서의 교제도구, 수단, 부호로만 인식하였다면 얼마나 가련한 사유방식입니까? 세계 모든 민족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말과 글은 우리 자신의 얼굴이자 얼로서 우리의 선조들이 사랑으로 다듬어온 문화의 재부이며 불멸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러기에 간악한 일제놈들의 피비린 문화말살정책과 탄압속에서 살아온 망국노의 36년.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하면서도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마음들을 백두산 칡넝쿨처럼 얽히게 하고 그 끈질긴 힘으로 끝끝내 불사조처럼 살아남게 한것이 바로 우리 말,우리 글이 아닙니까? 참으로 세기와 더불어 줄기차게 쏟아져내려 장하를 이룬 백두폭포처럼 굴함이 없고 기백있는 우리 말, 우리 글이라 하겠습니다.
   언어를 떠난 인간은 상상할수 없으며 민족어를 빼앗긴 민족만큼 불행한 민족은 없을것입니다. 이와같이 언어란 개인에게 있어서는 곧 그 인격이요, 민족에게 있어서 는 곧 민족자체라 할수 있습니다. 저 유명한 로빈손이 27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절해 고도에서 외로이 생명의 홰불을 태울 때 가장 큰 불행과 고통이 무엇이였겠습니까? 그것은 삶의 고달픔도 생사고비의 위험도, 이성에 대한 갈구도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참을길없는 지리한 고독을 물리쳐줄 힘인 언어생활을 잃은것입니다. 자기의 모국어에 대한 련련한 정으로 하여 앵무새와 한두마디 말을 주고받으면 한낱 미물 일지라도《로빈손》이라고 불러주고《굿빠이》라고 말하였을 때 왈칵 솟구쳐오른 그 뜨거운 눈물에 담긴 의미가 과연 무엇이였을가요?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말을 떠나서 살수 없으며 자기 민족어를 떠나 사는 비애는 무엇보다 큼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구요? 때때로 객지의 려관방에 홀로 누워 고독에 모대길 때 우리 말로 된 시 한구절이라도 나직이 외워보십시오. 먼산에 적설이 녹아내리듯 만시름이 풀어지고 애틋한 사랑의 정이 봄물마냥 차분히 스며들것입니다. 흥겨울 때 아리랑 한 곡조 넘겨보십시오. 부드럽고 그윽한 그 정서와 선률을 받쳐주는 우리 말의 아름다운 음향이 은방울소리처럼 귀맛당길것입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 마음을 칭칭 동여나 보십시오. 도라지, 양산도, 산천가의 가락은 어떠합니까? 열두가락 가야금소리 둥기당 둥기당당 심금을 뜯을 때 어깨춤은 어찌하여 절로 나며《좋다!좋지!》의 여운은 어찌하여 길게 메아리치더이까? 울밑에 봉선화 피는 그 한때처럼 아기자기한 정서를 안겨주어서 그처럼 푹 취하는게 아니며 감미로운 미주를 마신듯, 꽃내음 향긋한 꽃다발을 안은듯 기쁨을 주는 우리 말소리여서 그늘졌던 마음도 가신듯 푸르게 열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녕 그렇습니다. 말할수록 하고싶고 들을수록 듣고싶은 우리 말입니다. 때로는 산곡간에 돌돌 흐르는 청계수처럼 맑고 잔잔하고 때로는 천지의 폭포처럼 쏟아져내려 가슴을 쾅쾅 울려주고 때로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푹 찌르는 우리 말, 백의겨레의 가슴가슴에 감동의 메아리로 전해지는 우리 말입니다.
   그러기에 타관땅 낯설은 거리에서 까닭없이 고독을 느끼다가도 문득 가슴가득 정을 안겨주는 그 소리ㅡ우리 겨레의 말소리를 들었을 때 그처럼 반가울수 없으며 생면부지이나 와락 두손을 부여잡고 흉금을 터놓고싶어지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말인즉 그 겨레의 정서와 사유와 감정까지 윤색해주고 떨어버릴래야 떨어버릴수 없는 민족혼과 더불어 숨쉬기때문입니다.
    나는 감히 단언할수 있습니다. 자기 민족어에 대한 태도롤부터 매개인의 민족적 인격가치가 단정된다고, 그렇습니다. 자기민족어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자기 민족에 대한 정애가 있을수 없으며 조국애란 더구나 운운할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어가 살아있어야 민족이 살이있고 앞길이 창성할수 있듯이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려 더욱 눈부시게 하고 대를 이어 지켜가도록 선배된 우리의 마음가짐부터 바로합시다. 민족문화전통의 계주봉이 우리 세대에 와서 녹쓸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우리 민족지성인들이여!한생이 진하도록 겨레의 얼인 우리 말 우리 글을 지켜 빛나게 합시다!
 
                                    1996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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