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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에 따르는 수필의 품격
2016년 12월 23일 21시 31분  조회:4003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시대변화에 따르는 수필의 품격
         
                                       최 균 선
    
    작금의 많은 수필들은 삶의 숨은 진실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모지름보다 세인들 에게 익숙한 일상에서 자아도취를 발굴하는데 자족하고 있는 모습이다. 설사 능란한 문필로 재치있게 피루어져 문학성이 돋보이는 수필일지라도 작자의 창작좌표가 또렷 이 찍혀지지 못하고 마냥 혼자의 감동에 젖어서 인간적, 철학적사색이 배제된 개체 경험을 표술하는데 자족하고 있기때문이 아닐가싶다.
    작자는 독자들에게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개인적인 감구지회를 담은, 내용이 잘 염글지 못한 수필을 쓰는것으로 자아실현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필을 너무나 편면 적으로 가볍게 생각하는것이다. 고백의 수필이라해도 그냥 주관성에 매료되지 말고 타성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몽테뉴처럼 “삶의 진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독창적인 안목과 사색의 발굴에 매진해야 창조적인 수필이라 할수 있다.
    수필은 시종일관 자기의 느낌, 기분, 정서를 표현하는 글이라는 공식에 매달린다면 신변잡기에서 벗어날수 없다. 변화다단한 현시대에 살면서 이젠 수필이 붓가는대로라는 막연한 관념을 갱신해야 시대의 호흡에 맞출수 있을것이다. 초기엔 다른 쟝르와 구별하기 위해 비유적형태로 표현했지만 이젠 인간정신기사로서 인생과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적시각의 예리함과 철학사색이 점철되는 자기 변화가 요청된다.
    달리 말하자면 수필의 개성적, 관조적, 인간적이라는 굳어진 관념에 대하여 깊은 통찰이 요청된다는 견해이다. 시대변화에 부응되는 시대적인 정서와 표백이 필연적이 아닐수 없다. 수필은 문학성은 물론 철리도 동시에 포함되여야 할것이다. 문학성은 글의 예술적인 요소라 할것이고 철리적요인은 수필속에 나타나는 사상, 작자의 인품, 글자체의 품격이 따르는 사상내용적요소라 할것이다. 그래서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허구가 아닌 진실된 정서에서 쓴 글이면서도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정신적 인 개척을 시사하는 글이여야 바람직하다.   
    수필은 무엇을 제재로 하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그 특징이 우선 비유적여야 문학성이 가미되는바 사실을 시시콜콜 서술하기보다는 은근슬쩍 빗대여 기술되여야 생산적이라는것이다. 다음 리치, 생활론리,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발전론리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고 시비를 밝히면서 자기 의견을 해설하는것이 되여야 감화 력이 고유하게 된다. 수필은 자기표백의 글이지만 독자에게 작가의 경험을 소개하면 서 모종의 교훈성을 은근슬쩍 담아야 보다 큰 공명대를 이루게 된다고 믿는다.
    피천득선생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는 말은 수필의 개념을 수사학적 표술로서 “청자연적”은 수필의 우아함을 비유한것, 청자와같이 아름다운 빛을 엿볼수 있게 하라는 주장이고 차분하게 필요한만큼 안으로 지니는 연적의 속성을 추구한것이라고 해석하면 왜지밭인가? 그리고 “난”과 “학”,“날렵한 여인”은 품위와 품격을 최대한 독자의 미적감수에 일치시키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것이라 리해한다면 무리일가?
    한폭의 잘 그린 수채화를 보는듯 회화적인 묘사로 의미부여, 주의, 주장을 배제함으로써 도교적인 경지를 펼치여 분위기와 정서에 초점을 맞춘 보여주기의 수필이라도 주제의식이 깊지 않고 “그래서 그다음 어쨌다는것인가?”에 대한 의미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의미로운 수필이 못된다. 훈훈한 인정이라든가 자기 가정의 행복한 모습이라든가 각종 교제와 교감 등이 주제일수도 있지만 자랑에 그치면 랑패이다.
    개살구를 씹으면 시쿤침이 절로나오듯 그저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란 창작관념은 미래지향적이 못된다. 작자와 독자사이의 뉴대는 시대의 이런저런 양상, 얼 룩덜룩한 사회에 대한 공분, 다 파악할수 없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제시에서 얻은 깨달음 등으로 구축된다. 즉 소재선택과 주제발굴 및 심화문제이다.
    려행하면서 감탄속에 본 자연의 걸작인 명승도 나의 프리즘을 통하여 재생된 자연인 까닭에 새롭게 느껴졌더라도 잘 려과된 감정이라야 모두가 아름답다고 동감하며 잘 발효된 사색이라야 그속에 사적인 정감도 모두의 정감벽을 울릴수 있다. 이는 자연과 사회, 인생, 인간에 대한 자기나름의 재해석문제이다. 고요히 흐르는 대하의 물속에 격류가 있음을 시사하는 식의 암시는 수필의 깊이와 여운을 제공한다.
    나자신의 조우를 쓰면서 인간공통의 운명적 요소들을 꿰뚫어보아야 주제의식이 강렬하고 핍진하여 깊은 울림을 줄수 있다. 대수로울것 없는 일상의 풍경과 개인의 체험에도 근원적인것을 이끌어내 보편적주제를 발굴해야 읽고나서도 같은 사색을 하게 할것이다. 수필이 자기 일상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문학작품으로서의 공성을 잃을수밖에 없다. 그 사실은 읽는 사람으로서는 무의미할것이기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실존적자각,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 작가적인 사색이 없다면, 엄혹한 시대상황 등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개인적인 정서와 과거의 기억에 함몰되면 공성은 근저로부터 류실되고만다. 자기고백이라도 삶에 대한 의미화나 성찰이 부재한다거나 사회성이나 시의성, 력사인식 등을 배제하고 삶에 대한 해석이 뒤따르지 않는 자연례찬, 남들에게 감동을 요청하는듯한 자아감각, 신변의 그렇고 그런일을 적은 생활글, 나와 가족에 대한 자랑섞인 감개무량,자랑아닌, 자기만의 감명깊은 이야기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수필의 사상적경지를 좁히고 말뿐이다.
    수필문학의 변혁을 도모한다고 하여 자신과 관계없는 허구적인 내용을 두서없는 의식의 흐름식으로 기술하면서 읽는 사람의 사유를 억지로 유도, 혹은 비약시킨다면 피곤하게 할수 있다. 수필은 본디 성격적으로 차분하고 다소 느긋하게 한걸음 물러서 인생을 바라보는 면도 없지않으나 천편일률적일수는 없다. 수필도 시나 소설처럼 치렬함, 실험성, 본격성, 전문성, 개성, 참신성을 추구해 나가게 되여있다. 오늘날 무한경쟁, 무한변화의 현실에서 어찌 숲속의 오솔길을 걸어가는 아릿다운 녀인의 모습만을 그릴수있으며 도고한 학의 자태만을 흔상하게 할수 있겠는가?
    수필은 그냥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물론 수필의 형식상 자유스러움을 말하는 부분이 있지만 내키는대로 쓴 글, 아무렇지 않게 써도 되는 글쯤으로 인식하고 접어든다면 곁길로 빠질수밖에 없다. 하긴 수많은 인생수련과 습작을 통해 고도의 구성과 표현기법과 질서를 획득하여 물흐르듯, 붓가는대로 막힘없이 써내는 경지에 이른 달필작가도 있겠지만 보편적이 아닌데서 문제가 제기된다.
   수필은 짧은 글이기때문에 오히려 치밀성, 함축성, 철리적사색을 요하는 글이 아니면 안된다. 수필이라해서 덮어놓고 산만과 무질서, 무형식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작자에게 창의성과 자유성이 많이 부여되고 있다는것은 별개이다. 형식과 구성이 있으되 엄격한 형식의 틀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재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할수 있다는것은 오히려 장점이 될수도 있고 무형의 속박이 될수도 있다.
    피천득선생의“청자연적”은 기능과 깨달음으로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최고경지에서 피워올린 꽃으로 생각한것이겠지만 역시 개인의 추구, 내지는 창작개성으로 보아야 할진대 모든 사람이“청자연적”을 추종할 필요가 없고 또 그런 수필만을 쓸수도 없다. 인간의 삶의 현장처럼 수필도 “질그릇”, “유리그릇”이 될수도 있고 노래하는 꾀꼴새의 지저귐만이 아니라 딱따구리가 해충을 콕콕 쪼아대는 되알진 소리일수도 있다. 회고보다 진행형의 현실에 대한 감수를 써야 시대적이 아닐가 자문해 본다.

                                                       2015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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