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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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31)문명과 몽매
2015년 11월 13일 16시 44분  조회:500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문명과 몽매
 
                                       진 언
 
   문명과 몽매란 물과 불처럼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불가분리적이여서 시비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화제이기도 하다. 인류는 문명을 창조하였기에 이 지구촌에 종횡무진하고 좌충우돌하는 절대적지배자로 군림하였으며 문명을 찬미하여 자기 자신을 자화자찬한다. 지혜의 대가는 모순이다. 이것은 인류가 인류에 대한 헷갈린 롱담이다.  
   이 지구덩이에는 억조창생이 살지만 모든것이 내것이라고 집착하고 욕심부리는 물종은 오직 인류뿐이다. 자연의 품에서 살면서도 략탈밖에 모르는것이 또한 인간이다. 자연의 립장에서 보면 인간은 차라리 없기만도 못한 백해무익한 동물일것이다. 자연을 파괴한 사필귀정이건만 자연재해라 칭하고 극도의 리기로 다른 생명까지 멸종시키고 있으니 하느님이 두번째 노아방주를 제시하기는 백번도 틀린 이 시점이다.
   기실 문명과 몽매지간에는 이것이 아니면 곧 저것이듯이 뚜렷한 계선이 있는듯 하지만 인류의 자신에 대한 렴치없는 찬가속에는 명확하게 말할수 없는 가설이 담겨있다. 만약 이 가설이 성립된다면 인류는 부단히 자기 령지를 확장하고 부단히 암흑을 전승하고 지구를 평화로운 세계로 만들것이지만 문명과 몽매사이에 분명한 계선을 그을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한것은 문명이 구체적인 인류활동이 될 때 순수의 광명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광명과 암흑의 혼합체가 되기때문이다.
   문명의 원천을 거슬러올라가면 완전히 광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 문명이 이 세계를 비추기시작해서 시작된 부락간의 전쟁도 원시문명의 산물이였다. 동일물종간의 전쟁은 자연과의 박투보다 더욱 잔혹하고 훼멸성적인 문명활동이였다. 인류는 이미 고통과 죽음을 제조한“예술가”로 둔갑하여 포로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목을 자르고 각을 뜯는 등 못살게 굴며 동류를 소멸하는 살륙의 예술을 장악하였다.
   노예제의 탄생은 이런 예술발전에 질적비약을 가져오게 하였다. 날따라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무기가 이를 증명하였다. 이 지구촌에서 인간보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혹독하고 잔인하게 동종을 학대하고 소멸하는 동물은 없다. 상상의 극치에 이른 온갖 형구와 형벌방법은 두말할것없이 인류문명의 중요한 조성부분으로 부상하였다. 허나 그네들의 지혜의 결정품에는 우매한 목적이 담겨있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문명인이면서도 야만인의 각색을 연출함으로써 자학적동물이 되였다.
   문명한 인류는 허다한 면에서 지혜의 증장과 더불어 날따라 몽매에로 나아갔다. 20세기는 인류문명사상에서 가장 문명해진 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문명하다는 20세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벌여놓고 수천만 인명을 앗아가는 “문명”의 기적을 창조했다. 동류를 살해하는 수단도 최고급이여서 독가스로 집단학살하고 원자탄으로 한꺼번에 수십만을 학살하는 기술을 고안, 창조해냈다.
   소위 황군제씨들은 남경대학살에서 사람의 머리를 총창에 꿰들고 사진을 찍는 끔찍한 인간상을 세상에 과시하였고 생체실험도 서슴치 않았다. 인류는 20세기에 철저히 자멸의 낭떠러지로 용왕매진하였다. 인류로 말하면 가장 문명한 단계에 가장 우매한 우매와 가장 위험한 위험도 감행했고 지금도 시일야 진행하고있다.
   정체성으로 볼 때 문명의 자연적발전과정에서 비할바없이 휘황한 성취를 거두었지만 문명이 정체적으로 광명만으로 도배질된것이 아니다. 모든 문명의 형식이 죄다 그러하였다. 공업문명은 인류의 문명사이래 가장 고차원적인 문명의 형식이다. 이런 공업문명은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해냈고 빠른 교통수단, 보다 나은 생활조건을 마련 하는 동시에 전례없은 생태파괴와 재난을 동시다발적으로 자초하고있다.
   스스로 자기 가원을 망태기로 만든 장거는 극단적인 몽매한 행위결과라고 말해도 실언이 아닐것이다. 공업문명, 고기술의 표면적인 번영창성속에 극단에로 치달아오른 몽매의 론리가 잉태되여 있었다. 이러한 몽매의 론리의 부추김하에 이미 세기말적인 재난에 림박한줄도 모르고(외면한?) 더욱 미친듯이 지하자원에 대해“3광정책”을 다 그치고있으며 그도 성차지 않아 해저속에 자원에 마저 손을 뻗쳤으며 땅과 바다속에 일체생물을 “물종청소”를 하는데 열을 올리며 무지경의 호화사치한 소비정책을 실시하며 개발이라는 기치아래 절주빠른 광란적인 디스코를 추고있다.
   악의 대명사격인 싸탄도 인류의 그 많은 재난은 신성의 명의하에 진행된다고 말할수 있게 되였다. 인류의 문명찬가란 문명과 몽매라는 두개 음부의 변주곡이며 힘이 승패를 겨루는 격투기이다. 싸탄의 흑색유혹이 있기에 인류를 구제하려는 하느님의 의의가 체현될수 있다고 해야 할가? 싸탄의 악이 있으므로 해서 세계는 풍부하고 다채롭게 변화하고 매 생명개체로 하여금 피와 살이 있게 되였다고 해야 하는가?
   력사발전은 평탄할수 없고 인생극장에 다만 희극만 있다고 말할수는 없다. 근대서방의 많은 학자들이 악의 의의를 강조하였고 심지어 혹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승냥이와 승냥이관계와 같아서 인애란 없다고 한다. 인애를 상실했다는것은 원시공동 체성원들 앞에서도 면괴할 일이다. 인류의 파괴성을 문명건설의 기점으로 삼는다면 실제상 그 론리는 인류자신의 야만성과 우매성을 긍정하는것과 같다.
   가공할만한 공업문명이 탄생해서 짧디짧은 기간에 인류는 지구상의 대부분 물종을 소멸해버렸으며 자연계를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로 몰아넣었는바 청청 맑은 하늘을 잃어버렸고 맑고 푸른 바다와 강물을 상실했으며 화해로운 대지를 엉망진창으로 아니,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구ㅡ어머니는 인제 불치의 의난잡증에 걸린 로약한 늙은이가 되였다. 그래도 지구인들은 새끼비탈거미들처럼 모체를 파먹으며 살쪄간다.
   문명이란 공상적인것을 현실화하고 무형의것을 유형화하며 유효한 가치를 보편화한다. 공업문명의 고효률적인 만가동은 되돌아와서 자기의 가원을 훼멸시키는 작업에 만가동을 걸고 고효률을 추구하는 유모아를 빚고있다. 그냥 이대로라면 멀지않은 장래에 인류는 소위 문명과 몽매의 관계를 해명할 기회마저 없어질것이다. 인류의 물질문화생활의 다채로움과 풍부함은 자기의 가원을 훼멸시킨 대가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쾌거인가? 얼마나 행복한 풍경인가? 얼마나 눈물겨운 자아풍자인가?
   대저 한다리가 너무 길면 한다리는 짧은법이다. 인류의 문명과 몽매의 변증관계 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속에 몽매가 가져주는 인류의 희비극적인 잠대사가 엮어지고 있는것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문명은 영원히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닐수 있다. 고양이는 고기를 먹기좋아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헤염을 칠줄 모른다. 고기는 지렁이를 먹기좋아한다. 그러나 고기는 뭍에 오를줄 모른다. 조물주는 너에게 수없이 많은 유혹을 던져주었지만 그만큼 쉽게 얻을수 없도록 하였던것이다.
   인류가 자신의 문명행위에 대한 반성은 문명발전을 위한 가장 문명한 표지이다. 문명에 대한 문명한 비판과 성찰은 문명이 자신을 비추는 밝은 빛으로 되여 문명속에 숨겨진 몽매성을 소멸해줄것이다. 지구는 영원히 돌고 돌겠지만 인류가 영원히 이 지구에 앉아 하루에 10만8천리를 갈수 있을지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
   바다속에 고기는 말했다.“네가 내 눈에서 눈물을 보아내지 못하는것은 내가 물속에 있기때문이”라고, 인류는 문명속에서 저지른 몽매함의 비애를 모른다. 물론 위대하고 성스러운 인류문명의 정체적인 발전을 부정할 뜻은 없다. 다만 인류는 늦었 지만 랭철하게 반성해야 하고 소잃고 외양간고치는 식이라도 대안마련에 착수해야 한다는 사회공론을 여기서 재차 중계방송하는 차원에서 횡설수설할뿐이다.

                                   2011년 6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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