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끝내자 술석잔붓고 깊은절을 하고 텅빈 하늘을 바라보니 쪼각구름이 시름없이 떠도는데 내상념도 자연좇아 쪼각무늬로 엮어진다. 해란강을 옆에끼고 평화롭게 누웠던 푸른논벌, 이맘때면 해마다 황금물결 파도치던 고향마을의 문전옥 답이 간데없고 산을 허물어 메운 훤한 공터만 허무를 안겨준다. 유신촌, 모아툰의 과수원, 논과 마을까지 팔려 개발구가 된다는 소문이 사실이였다. 과수원주인이라는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한족사내였다.
다른 사람들은 산중턱에 묘지를 다 처리했는데 이묘통지를 받지못했는가 물었다. 몇해 외지에 있다가 방금 돌아와서 모르노라고 했더니 이 과수원도 이미 팔렸으니 묘를 옮기는게 좋을것이라고 충고했다. 담배를 나누어 피우면서 좀 익숙해지니 살아 갈일이 망연하다고 하소연했다. 유신촌과농들이 시내에서 살게 됐지만 땅과 집터를 판돈에만 목을 매달게 되였으니 곰이 제발바닥을 핧기가 아닌가고 허구프게 웃었다.
도대체 경제발전에 무슨 리익을 가져주는 공정인가 물었더니 이런저런 소문들이 무성한데 도대체 어쩌자는건지 우리같은 농포들이야 알택이 있는가고 개탄했다. 하긴 나도 자세한 사정을 알수 없거니와 알았다한들 한낱 보통국민으로서 그저 고향의 논벌은 이렇게 매몰되거니 하는수밖에 없었다.
우리 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새삶터에 괭이를 박아 100여년, 피땀으로 걸구어낸 문전옥답이 묻혀버린 현실, 물론 사들인 해당자들이나 세세대대로 뿌리박은 삶터를 팔아치우게 된 고향사람들이나 제나름대로의 리유와 경제타산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저 할말을 잃고 왼고개만 비탈리였다.
마을에 내려가 몇안되는 내또래들을 찾아 한담삼아 심중을 떠보았더니 한평생 등허리휘도록 농사지어봤자 요모양요꼴로 인생이 저물었는데 이제 더바랄것이 무어냐? 먹을알없는 농사일에 넌덜머리 나던차 백여만원씩 쥐고나니 꿈에도 생각못했던 갑부가 되였다고 웃음주머니를 흔들고있었다. 고향마을이 흘러가고 논과 밭이 영원히 사라진 사실에 실망했지만 무슨말을 더할수 있단말인가?
농민들로 말하면 그 백여만원이 목돈이겠지만 그 돈이 새끼를 치기전에 거진 날려가버릴게 뻔하고 어디에가 안치할것인지 구체적인 방안도 없단다. 돈은 있다가도 훌 날려가버리지만 농토는“아리바바의 동굴”은 아니여도 생계의 원천임에는 틀림 없는데 왜들 땅이 부담스러운 재산이 되였을가? 마을사람들이 급공근리에 매달리였다는 아쉬움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농촌시책이 좋아지는데 그리도 홀가 분하게 지페뭉치와 고향을 바꾸다니?
땅은 어디서든 위대하다. 아름다운 외투를 걸치지않고 그 색채도 지극히 평범하다. 그저 검지않으면 붉거나 누른색이다. 땅은 대공무사하여 일체 생명이 있는것도 생명이 없는것도 사심없이 품어주고 받은것을 몇십배로 되갚아준다. 해마다 갈아번지고 살찐 등허리가 여위도록 짜내여도 말없이 바치기만할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렇듯 땅은 이 세상의 위대한 어머니들의 젖가슴같은 생명의 품이다.
땅은 제품에 받아들인것이 무엇이든지 발아시키고 성장시키는 강한 실행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땅ㅡ흙만이 가질수 있는 미덕이다. 자고로 농민들이 순박했던것도 땅의 정기를 마시며 살아서였을가? 땅은 심은대로 거두려는 농부들의 소망을 무던히도 잘 받아주었다. 콩이든 감자이든 심는대로 받아들여 싹을 틔우고 여름내내 소리없이 키우는 자률성이 있는 땅, 지금은 콩크리트건물을 짓는것이 능사가 된 셈이다.
땅은 농민들에게 배고픔도 주었지만 배도 불리여준 락토요 하늘아래의 전부이고 으뜸이였으며 혼이고 숨결이였으며 삶과 생활의 가락이였다. 오로지 땅을 뚜지여 곡식을 심는일밖에 다른길이 없어서 분하고 원통한 일이 있어도, 페농이 되여도, 흙 묻은 손으로 땅을 치면서 땅꺼지는 한숨으로 고달픈 삶을 보듬던 그들에겐 땅이란 다름 아닌 정의 원천이요 한의 대상일수밖에 없었다.
땅은 강개하다. 땅은 인류문명의 요람이다. 인류가 공업을 모르기전에는 땅이 넓고 기름지면 그 위에 문화도 풍성해지고 땅이 좁고 거칠면 그위에 문화도 령락하였다. 루루천년, 넓고넓은 땅에서 내가 부칠땅 한뙈기도 없는 민초들이 뚜져먹을 땅을 얻기 위해 벌인 처절한 싸움이 력사의 장하에 격랑을 일구지 않았던가? 새세상을 찾으려고 이 땅에 피를 뿌린 수많은 열혈지사들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친 그 정신적인 동력도 내나라, 내땅을 가질수 있다는 그 한가지 불타는 념원이 아니였던가?!
그 시절, 비록 빈궁했지만 향촌에서만의 특색적인 풍경이 있었고 풋풋한 서정이 있었더랬다. 여름이면 울타리에 얽힌 열콩넝쿨에 오롱이조롱이 열콩이 달리여 생명의 신비로움과 무성하는 계절의 영화를 자랑하고 터밭에 마음껏 넝쿨을 뻗어 피워낸 호박꽃에는 꿀벌들이 생활의 단꿀을 빚었댔다. 가을이면 태양따라 웃는 해바라기들이 초병처럼 줄느런히 지켜선 그아래 가지나무는 커다란 종자를 몇개 달고 기죽어있는데 제철을 만난 고추는 크는족족 붉게 타며 미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향촌에서만 볼수 있는 풍경이요 서정시였다.
자그마한 터밭의 풍요로움을 가꾸려면 얼마나 많은 땀동이를 흘릴가 하는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는 땅의 의미를 알수 없다. 농사는 절대로 아무나 짓는것이 아니다. 농사는 손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정성으로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뿌린대로 거두는것이 농사일만은 아니겠지만 농부가 흘린 땀은 그처럼 순수하고 끈끈하다.
하건만 왜 고향사람들은 그런 땅을 잃고도 무거운 봇짐을 벗어던진듯 홀가분해 하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도시에서 살지만 역지사지로 내가 지금 늙은농부로 고향에 남았더면 어찌 생각했을가?하고 자문해 보았다. 대답은 두루뭉실하되 내땀과 로력도 슴배여있던 고향땅이 묻혀버린것에 아쉬움만 그들먹한것 사실이였다.
지금 땅을 팔고 쾌재를 부르는 고향사람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면 합당할지 모르겠으나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땅이 있어야 고향이 있고 나라가 있고 민족도 있다. 이렇듯 소중한 땅을 빼앗겼을 때 리상화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하늘 우러러 개탄하였고 김소월은《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하고 피터지게 한숨을 쉬였으며 한용운은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가 없습니다"라고 슬퍼했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에겐 이미 던져버린 정한인데 내사 혼자 구시렁거리니 흘러간 옛노래가락만 가슴을 울린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기름진 논과 밭을 팔아 목돈을 쥐였다고 시내살림을 차린 사람들의 그 심정의 음영을 곁에서야 다 알리있으랴만은 언젠가는 마을도 허물려야 한다는 사실에서 마음이 그렇게 개운하지는 못하리라. 고향땅을 잃는다는것은 부평초의 신세가 된다는 징표는 아닐것인가? 아직도 잡초우거진 논벌을 바라보니 곤혹스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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