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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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의 단상 ― 접사
2013년 07월 06일 16시 27분  조회:1484  추천:0  작성자: 최룡관
 
 
20 사화집하이퍼시출간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물결
 
통일신문
 
 
 
 
 
▲ 현역시인 20인의 사화집 ‘하이퍼시(hyperpoetry):시문학사 240쪽 17000원     ©통일신문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역시인 20인의 사화집 ‘하이퍼시(hyperpoetry):시문학사)’가 출간됐다. 이 사화집은 ‘IT시대를 배경으로 한 현대인들의 복합의식(의식+무의식, 현실+가상현실)을 시로 표출하고 있다. 사화집의 시들은 일상의 사실적 이미지와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의 뒤섞임을 통해 기존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 비약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관념에서 해방된 이미지 세계의 밑바탕에는 한국 현대시를 오래 동안 지배해온 관념시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저항의식이 깔려있다. 이는 “단선구조의 틀을 다선구조의 틀로, 시인의 독백적 서술을 객관적 이미지로, 정적 이미지를 동적 이미지로, 시인을 시의 주체에서 이미지의 편집자로, 고정된 관념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상으로, 읽고 생각하는 시에서 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라는 발간사(편집발행인 김규화 시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화집은 강영은, 고종목, 김규화, 김금아, 김기덕, 김영찬, 김은자, 박이정, 손해일, 송시월, 신규호, 신진, 심상운, 안광태, 위상진, 이선, 이솔, 정연덕, 조명제, 최진연 등의 시인들이 참여해 100편의 시로 엮었다.

사화집 끝부분에 「하이퍼시 개관」(문덕수시인),「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심상운시인)라는 ‘하이퍼시론’이 실려 있어 독자들에게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자생적인 시론인 하이퍼시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중견시인 동인지 시현장(詩現場, 발행인 겸 주간 정연덕) 5호도 출간됐다.
 
 
 
부드러움의 단상접사

                                                 오남구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산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
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
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
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이선의 읽기>
겹쳐 그리기 기법 - ‘다시점’, ‘다초점’
 
하이퍼 시의 개념과 정의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은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그는 이 조직체들이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는 하이퍼텍스트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문서의 열람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을 뜻한다. 문덕수는 넬슨의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1930년대의 이상(李箱)의 시에 대입하여 새로운 하이퍼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것이 이 시론집에 인용된 문덕수의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의 시론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시론은 이미지의 가지치기를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의 링크(link)이론이다. 이 링크(link)시론은 디지털시론에 없는 새로운 시론이다. 심상운은 이런 시론의 개발을 적극수용하고 그 시론을 근간으로 하여 하이퍼시의 시론을 종합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론집은 하이퍼 시론 정립의 중요 자료가 된다.
Ⅳ.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 시론집에서 주장하는 ‘다선구조론’은 하이퍼시에서 보여주는 ‘다시점’에만 초점을 맞춘 이론은 아니다. 다선구조론은 시창작 과정을 총체적이며 다각적인 복합 텍스트 이론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심상운의 다선구조론이 모든 하이퍼시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남을 것 같다. 필자는 시론집에 실린 심상운의 아래 시를 통하여 그의 다선구조의 한 형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
  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    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
  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    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       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 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線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
  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
  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심상운,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전문
정리하고 있다. 이 9가지 조건은 하이퍼시가 어떤 형태의 시를 지향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하이퍼시의 9가지 조건들은 디지털시의 10가지 조건과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1,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탈관념의 언어와 집합적 결합
2, 인지단계의 관념수용
3, 현실의 샘플링과 가상현실
4,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을 바탕으로 한 사물 이미지의 충돌과 융합
5, 심리적 현상 속의 관념허용
6, 직관을 통한 염사 접사
7, 순수한 가상현실의 증류수 같은 정서와 순수한 현실감각의 지장수 같은 정서
8, 다시점 다감각의 세계지향
9, 독자 참여의 열린 시 지향
10, 동적인 영상의 시 구현
 
하이퍼시 성립조건의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가상현실의 보여주기, 다시점과 동영상의 이미지, 탈관념 등은 디지털시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와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하이퍼텍스트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앞의 서술 내용을 요약하면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9가지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變換)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9가지 방법은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무한한 상상의 변화와 에너지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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