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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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수필편 (끝)
2019년 04월 02일 14시 07분  조회:437  추천:0  작성자: 최룡관
4 수필편
 
입술연지
 
 
입술연지는 가늘고 키가 작은 막대기 화장품이다. 하지만 입술연지는 화장품들중에서 가장 광범한 대중성을 가진 화장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녀가 되여도 입술연지를 사용하기 부끄러워하던 20세기 5,60년대가 아니다. 유치원생으로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립스틱으로 입술을 장식하지 않는 사람이 거이 없고, 남자들도 입술연지를 사용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인기물이다. 수메르에서 발견되여 5000년 력사를 자랑하는 입술연지는 영어로는 립스틱이고 프랑스 말로는 붉다는 뜻을 나타내는 루즈[rouge]라고 부른다. 
입술연지는 입술과 결합하여 조화를 부리고 입술에 생기를 부어넣고 인기를 부어넣으며 얼굴을 화사하게 다듬는다. 입술연지는 곡선미와 색갈로서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게도 하고 성스러움을 돋보이게도 하고 귀여운 맛을 보게도 한다. 입술선보다 약간 바깥으로 그리면 매혹적이고도 섹시해보이며 인상이 부드러워지지만 너무 나가면 펭귄같은 느낌을 준다고도 한다. 직선적인 느낌으로 윗입술을 각을 줘서 그리고 아래 입술을 갸름하게 보이도록 그리면 단정하고 활동적이고 샤프하고 지적인 느낌을 준다고 하기도 한다. 핑크계렬의 입술연지는 부드럽고 연약한 느낌이 들며 흰 피부에 잘 어울린다고 하고 , 오렌지나 브라운 계렬의  입술연지는 황인이나 백인이나 흑인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하고, 퍼플계렬의 입술연지는 침착한 느낌이 드는 보라색이 섞여있으며, 흰 피부나 붉은 피부에 잘 어울린다고 하고, 화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여 섀도 립스틱. 메니큐어는 색상이 조화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아무튼 입술에 연지를 바르는데는 여러가지 학문이 있는 것 같다.
연지로 입술을 그리면 꽃이 된다. 하얀 살구꽃이 되기도 하고, 빨간 장미꽃이 되기고 하고. 모자같은 나팔꽃이 되기도 하고, 노란 호박꽃이 되기도 하고, 민들레꽃이 되기도 한다. 연지입술은 별이! 별이 되기도 한다. 동서남북의 새별이 되기도 하고, 은하수속의 하나의 별이 되기도 하고 사자별자리 한 별이 되기도 하고, 소별자리 한 별이 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맘에 따라, 느끼는 매혹에 따라 이런 꽃이 되고 저런 꽃이 되고 이런 별이 되고 저런 별이 된다. 실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많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연지입술이다. 아마 당사자들도 이러한 신선하고 기의한 환상을 하면서 입술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빨간 입술은 해볕에 반짝이면서 무수한 쥬피터화살을 쏜다. 화살에 맞으면 황제도 장군도 무릅을 꿇고 녀성을 태양신으로 모시게 된다. 그래서 녀성의 부드러움이 강철도 녹인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녀성을 하나의 바다라고 한다면 빨간 입술은 하나의 신비한 섬이다. 파도는 섬두리를 찰삭이면서 노래 부르고 물새들은 섬을 넘나들며 섬의 향기와 싱그러움을 페부로 느끼면서 혹독한 매혹에 빠진다. 이 섬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한번 오르려면 배도 갖추어야 하고 섬둘레를 막고 있는 바리케트도 넘어야 한다. 그외에도 얼마나 많은 방위시설이 있는지 모른다. 섬에 오르기만 하면 기이한 꽃들을 만날수 있고, 신비한 새들을 만날수 있고, 우중충하고 푸르싱싱한 정글이며 무지개 폭포며를 만나게 된다.  섬의 태양은 각별히 둥글고 섬의 달도 각별히 둥글다. 태양의 빛은 유난히 따사롭고 달의 빛은 유난히 행창하다. 별랗게도 이 섬의 태양은 밤에만 뜨고 이 섬의 달은 낮에만 뜬다. 밤해의 따사로움을 만끽하면서 서로 손을 잡고 거닐면 서로의 유혹에 취하고, 낮달의 화사한 빛을 온몸에 바르고 마주 앉아서 담소하노라면 녀성은 남성의 향기에 전률을 느끼고 남성은 녀성의 향기에 전률을 느끼게 된다. 신성하고도 위대한 감각과 감성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그지없는 황홀속에서 둘은 하나가 되여 꾀꼴새처럼 버드나무 휘초리에 보시기같은 둥지를 틀고 바람을 따라 흔들리면서 환상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입술연지는 아담과 이브가 녀성들을 위하여 내려보낸 초창기의 치 장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류의 문명사와 더불어 5000년의 기록을 갖고있다한들 누가 나무리랴,  입술연지! 그것은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아니되는 사치품이고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이고 아름다움의 모태라고 하겠다.
                                 2013.1.2. 서재에서
 
 
 
진달래
 
 
사월이 돌아오면 나는 며칠에 한번씩 산으로 간다. 목적은 하나 진달래꽃이 피였는가보러간다. 특이한 연분은 없지만 어쩐지 4월이 오면 진달래가 어느만큼 피였는가 하는 궁금증이 나를 산으로 가게 한다. 어릴 때 로인들이 진달래꽃살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산으로 진달래보러다닌 것이 이제는 버릇처럼 되였다. 꽃살이 열살이면 흉년이 들고 꽃살이 열한살이면 평년이고 꽃살이 열두살이면 대풍이 든다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못박혀있다. 농군의 아들인 나는 그해그해 작황이 궁금해서 그냥 산으로 다녔던 것같다.
우리 마을 뒷산 양지쪽에는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여나고 앞산 응지쪽에는 진달래꽃이 온산에 불길로 타오른다. 그 연분홍 꽃잎을 따서 이마에다 붙이고 코등에도 붙이고 볼에도 붙이면서 짱들끼리 호호하하 웃음을 터뜨린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신이났던지 모른다. 그러다가 진달래꽃을 꺾어 모닥불을 만들어 산에서 와야ㅡ 내려와 시내가에다 꽂아놓고 봄불을 지핀다고 야단치였다. 너는 내 색시하고 향녀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꽃무지 불무지를 돌아가던 소굽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달콤한 달이 뜬다.
진달래는 한두송이만 피여나는 외로운 꽃이 아니다. 진달래꽃은 핀다하면 무리로 피여나 온산에 바알간 불길이 훨훨 타오르게 한다. 그래서 그 불길에 굽히는 겨울의 고소한 냄새와 그 불길에 굽히는 봄의 향기로운 냄새에 목이 멘다. 그런 향기에 취하여 화살처럼 하늘에 오르고 돌덩이처럼 밭에 떨어지는 노고지리의 우지짓는 아름다운 노래에 취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른다. 아마 그 행복을 근으로 뜰수 있다면 적어도 열톤은 되였으리라.
진달래는 우리 배를 불려주는 밥이고 반찬이였다. 배를 곯으면서 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산으로 올라가 우리는 진달래꽃을 뜯어먹으며 주린 창자를 달래기도 하였다. 그것을 뜯어다 떡도 해먹고 찌개도 끓여먹고 헤식도 담그어먹었다. 진달래 뿌리는 자연의 조각품으로써 가꾸기만 하면 벼라별 형상이 다 나온다. 새가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곰이 앉아서 꾸물거리고, 노루가 뛰여가는가 하면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깍깍거리기는 까치도 보이고 까욱거리는 까마귀도 보이고, 꼬르르 울면서 날아다니기는 꾀꼬리도 보이고, 나플거리는 나비의 날개짓 소리도 들린다. 사람이 사랑하는 덕도 있겠지만 실은 신과 통한 진달래의 신통력이 아니랴. 신과 통했기에  혜안이 있는 조각가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뿌리로 만들고  그 녀석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리라.
진달래는 무더기로 피여나 여러가지 도안을 그린다.  어떤 도안은 애급의 금자탑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태국의 불상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프랑스의 파벨탑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   
도안구경을 하던 나는 갑자기 두눈이 휘둥그래 진다. 꼬옥 연변땅을 닮은 진달꽃래무지를 만나지 않았겠는가. 돈화의 사찰로부터 연변의 여기저기에 있는 사찰들이 보이고, 연변의 변경을 흐르는 두만강이 보이는가 하면 해란강 가야하도 보인다. 이건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숭선의 대동이고, 이건  화룡시의 평강벌이고 이건 로씨야와 조선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방천의 망원초… 연변에서 첫항일 유격대가 탄생했다는 개산툰학성이 보이고, 돈화, 왕청, 연길, 훈춘, 도문, 룡정, 화룡 연변의 어느 시가지나 모두 이 진달래의 도안속에 각인되여 있다. 여기 연길을 좀 보자. 이게 모아산이고 이게 부르하통하에 놓여있는 토끼다리, 갈매기다리가 아닌가 연변일보, 국제호텔, 연변대학이. 자치주정무중심. 연길백화 ㅎㅎ 내 친구가 있는 주공증처도 보이고 …. 와하! 인제 알것같네 연변이 왜 진랄래꽃으로 불리는가를.
하늘의 사랑과 대지의 사랑을 함뿍 안고 송이송이 피여난 진달래꽃! 하늘의 사랑과 대지의 사랑을 아름아름 전해주는 진달래꽃! 너는 연변의 딸이고 연변의 아들이면서 또 연변의 상징이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구름 별곡
 
나는 지금 비행의 날개를 벌리고 하늘을 날고 있다. 일망무제한 우주는 무한히 열려있다. 나의 발밑에 구름의 세계가 펼쳐져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수 없는 구름의 세계! 그 세계는 북빙양의 눈얼음 세계이다. 무한을 자랑하는 이 세계의 저 빙평선(冰平线)에서 눈보라가 허리를 폈다가 구부리기도 하고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직선락하기도 한다. 백색의 북극곰무리들이 왕왕 소리치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하얀 수풀의 무리가 앞으로 날아오며 뒤로 서서히 사라지기도 한다.
북국의 변화는 더더욱 가관이다.
어허, 저기서는 얼음이 패이고 꺼지며 파란 호수가 나타난다. 물새떼들의 울음소리, 물고기들이 여유작작한 헤염이 방불히 들리는것 같고 방불히 보이는것 같다. 그것도 잠간, 성에장들이 흘러들며 무대의 막처럼 모든 것을 가리워버린다.
갑자기 전률이 온몸을 습격한다. 근육들이 부르르 떤다. 아니 글쎄 북빙양얼음세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180도로 뒤번져진다. 나는 얼음밑으로 급강하한다. 얼음밑은 차디차고 파아란 바다물이다. 온몸이 찬 바다의 기습을 받아서 나의 살이 죄여들고 뼈가 심하게 저려난다. 숨은 각일각 더 가빠지고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상념이 혼미상태로 나를 질질 끌고 들어간다.  여보 하고 옆에 앉은 마누라가 엽꾸리를 지르는바람에 정신이 펄쩍 든다..
이윽고 나의 발밑에 북빙양의 광활한 얼음세계가 또다시 펼쳐진다. 그위에  거대한 루각이 나타난다. 금빛이 번쩍이는 문학관이라는 세글자가 해빛에 반짝인다. 나는 두팔을 벌린다. 나의 몸에서 날개가 태여난다. 나는 날개를 훨훨 저으며 문학관으로 들어갔다. 휘둥그래진다. 그래 두눈이 휘둥그래진다.
눈 언저리뒤로부터 머리를 부시시 불궈놓은 [베니스의 상인] [햄리트]등 명작을 쓴 쉐익스피어, 목에 레스를 두룬 [동끼호떼]의 작가 쎄르반테스, 하얀 속옷에 분홍마노핀을 꽂고 날카로운 눈길을 한 [파우스트]의 시인 괴테. 석자수염을 기르고 책을 들고있는 [부활]의 작가 톨스토이. 허벅지에 두손을 깍지고 한점을 응시하고 있는 [죄와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끼.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번대머리를 한 [좁은문]의 작가 앙드레지드. 푸른 창공을 바라보는 [데미안] 작가 헤르만 헤세, 길지 않는 털로 얼굴을 장식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작가 헤밍웨이, 가슴에 훈장을 달고 검은 옷 검은 머리로 [적과 흑]을 쓴 스탕달, 아롱아롱한 파마머리, 가발같은 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드리운 [로빈손쿠루소]의 작가 디포와 [걸리바려행기]를 쓴 작가 스위프트, 검은 눈섭, 파마머리를 한 [포걸작모음
의 작가, 호돈과 미녀같은 얼굴의 눈을 말똥하게 뜬 [주홍글씨]의 작가 포, 하얀 수염 푸른 머리를 한 [처녀지]작가 투르게네프, 청자기에 박힌 측면초상화같은 모습을 한 [폭풍의 언덕]을 쓴 브론데. 처녀애같은 아릿다운 얼굴을 보이는 [맨스필드걸작모음]을 내놓은 캐서린 맨스필드. 하얀 코수염을 기르고 넙적한 번대머리를 선보이는 [보바리부인]의 작가 플로베르, 검은 코수염에 청춘의 패기가 넘치는 [여자의 일생]을 쓴 작가 모파상, 오른쪽에 줄이 드리운 안경을 건 [6호실]의 작가 체홉, 뻔뻔한 얼굴에 코수염만 기른 [첼카쉬]작가 고리끼, 처녀애들 머리처럼 단발을 한 [외투]의 작가 고골리가 보인다. 그외에도 이마에 주름이 많은 번대머리로 [테스]를 쓴 작가 토마스 하디, 녀자들처럼 머리를 길러넘긴 [마농레스코]작가 프레보, 입을 꾹 다물고 쏘아보듯한 눈길을 가진 [의사기온]을 쓴 작가 카로사, 형형한 눈길로 나젊은 모습을 보여주는 [말테의 수기]를 쓴 릴케, 붉은 머리 붉은 수염 투성이 [체텔리부인의 사랑]을 쓴 작가 D.H. 로렌스, 팔장을 끼고 군얼굴살로 앉아있는 [달과 6펜스]의 작가 S. 몸, 빨죽한 귀 정기 넘치는 눈길로 바라보는 [성]의 작가 카프카, 흰 와이셔츠에 점박이 넥타이를 맨 [개선문]의 작가 레마르크, 젊은 패기가 넘치는 얼굴을 한 [아Q정전]의 작가 로신, 람색채양모를 쓰고 목걸이를 건 [대지]를 쓴 펄벅, 잠옷바람으로 안경을 걸고 서있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남긴 작가 J. 조이스가 보인다.  또있다. [인형의 집]을 남긴 입센, [나나]를 남긴 졸라며, [의자지바고]를 남긴 파스테르나크, [인간의 조건]을 남긴 앙드레 말로며, [이방인]을 남긴 카뮈, [어린 왕자]를 남긴 생텍쥐페리며, [권력과 영광]을 남긴 그린, [파리대왕]을 남긴 월리엄 골딩이며, [음향과 분노]를 남긴 포크너, [구토]를 남긴 사르트르며,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를 남긴 하인리히 뵐이며, [이반데니소비칭의 하루]를 남긴 솔제니친, 설국을 남긴 가와바다 야스나리, [생의 한가운데]를 남긴 루이젠 린저며, [동물농장]을 남긴C. 오웬이며, [빵만으로 살수 없다]를 남긴 두진체프, [분노의 포도]를 남긴 스타인백,,,,,,
문학관 외에도 또 있다. 과학관이며 미술관이며 력사관이며 의학관 이며 하는 으리으리한 빌딩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이 북국의 빙하우에 인류의 력사가 조각되였고, 인류가 쌓아온 보물들이 전방위적으로 배렬되여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고금중외가 여기서 숨쉬고 있는것이 아니 겠는가
구름의 세계는 얼음의 세계이기도 하고 인간력사의 사책이기도 하다. 나는 력사가 빚어놓은 꿀을 맛보는 한마리 까만 개미가 되였는가, 자연의 위대함과 성스러움을 우러르는 한 신도가 되였는가
 
나는 지금 비행의 날개를 벌리고 하늘을 날고있다. 일망무제한 우주는 무한히 열려있다. 나의 발밑에 구름의 세계가 펼쳐져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수 없는 구름의 세계! 그 세계는 북빙양의 눈얼음 세계이다.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있고 무한한 시간이 쌓여있고 무한한 문명과 죄악이 쌓여져있다.
 
 
안개
 
 
6월의 이른 새벽이다. 하늘이 서서히 서서히 내려와 산을  품었다. 봉우리들은 걸음발 타는 아이들이 되여 자박자박자박 하늘속을 걷는다.
나무들은 안개의 샤와를 한다. 아아히 솟구친 미인송도, 언덕의 떡갈나무도 .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란 느릎나무들도. 터슬터슬한 줄기도 일매지게 빠진 가지들도, 여러가지 풀들도 벼랑이나 돌들도 안개의 샤와속에서 어제의 먼지때, 묵은 해살 때를 벗기느라 여념이 없다. 나무잎들은  겉의 때도 안의 때도 뻔질나게 닦아내느라고 종알거릴 사이도 없다. 샤와를 하고 나면 한결 정신이 드는가보다. 색갈들은 반짝이고 모양들은 신선하다. 그것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청청한 하늘아래 자기의 모든 것을 청신하게 드러낸다. 안개샤와를 하는 것은 식물들만이 아니다. 바위들도 돌들도 하고 산토끼나 노루나 메돼지들 같은 짐승들도 샤와를 한다.
귀 기울이면 쫍쫍쫍 입질하는 소리가 고요를 물들인다. 나무의 줄기들이랑, 가지들이랑, 잎들이랑, 풀들의 줄기들이랑 가지들이랑 이파리들이랑, 꽃들의 꽃잎들이랑, 꽃살들이랑, 바위들이랑, 돌들이랑 그 모든 것들의 입들이 겨끔내기로 안개를 빨아먹는다. 그때 안개의 하나하나의 방울은 뽀오얀 젖방울이지 수중기방울이 아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고 녀석들은 안개를 먹어야 사는가보다. 그 달콤한 젖을 먹고 나무들은 한결 살이지고 꽃들은 한결 향긋한 향기를 풍기고 바위들은 한결 깨끗한 몸들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실로 자연의 섭리, 우주의 섭리를 터득한 짬짜미들이 아니랴.
안개는 산에다 티끌이 한알도 없는 그 순한 옥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힌다. 해살은 그 옷들은 한벌한벌 벗겨낸다. 두루마기도 적삼도 런닝구도 팬티도 한견지두견지 다 벗겨낸다. 산의 알몸은 그렇듯 부드럽고 그렇듯 푸르르고 그렇듯 다부지여 얼마나 순박하고 대견한지 모른다. 하지만 때론 안개는 산사이의 골연에 자기의 하얀 살점을 남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안개의 조화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푸른 수림과 안개가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놓았다고 할가, 학무리가 내려 앉았다고 할가, 목화무지가 하늘에서 내렸다고나 할가, 하얀 돛을 단 배들이 푸른 바다에 무리로 떠있으며 출정을 기다린다고 할가, 푸른 가슴을 드러낸 파도가 물바래를 부셔낸다고나할가! 아무리 해도 여실하게 그려낼수 없는 언어의 빈곤을 사무치게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자연의 미묘한 조화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물의 어머니이신 물의 몸에서 태여나고, 하늘이 내리시는 사신의 아름다움 몸짓의 기기묘묘한 신비를 바라보면서 나도 그 일속으로 살아 있다는 것으로 하여 다함없는 행복을 만끽하게 되는 것은 또 무엇 때문 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옷깃을 여미고 6월의 안개에 사설시조 한수를 올린다
 
 
 대지와 하늘을 이어놓은 안개여
 
그대는 하얀 날개 그대는 하얀 다리 그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아올라 별들의 세계를 유유히 유람하다가 그 다리를 처억처억 디디며 한발작 두발작 하늘을 밟으면서 땅에 내리는 날들이 올 수는 없을가
 
신비를 그리여주는 오색안개 안개여
 
                       2013년 3월 14일 이른 아침 서재에서
 
 
련꽃 이야기
 
 
7월하순의 연길공원으로 가면 크지도 않는 손바닥만한 못에서 피여난 련꽃들이 손님들의 발을 묶어놓고 손님들이 눈에 복을 부어준다. 푸른 련이파리 바다우에다 기다란 목을 빼들고 란만하는 련꽃들을 보노라면 가슴에서 감회가 술렁거린다.
파아란 수면을 뚫고  갓 솟아오른 꽃봉오리는 몽당 붓이다 연한 갈색과 푸른색이 물든 이 몽당붓은 이제 무슨 글을 쓸려고 솟아오르는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마련된 것일가? 며칠이 지나지 않으면 몽당붓은 우산같은 잎사이를 지나 쑤욱 키를 돋구며 연분홍 초롱으로 변한다. 참 자연이란 야릇하기를 이를데 없다. 꽃봉오리가 태여날 때 연분홍 빛갈 이라곤 전혀 없던 꽃봉오리 , 해빛과 이슬과 바람을 먹더니만 선연한 연분홍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해살에도 이슬에도 바람에도 다 련꽃 봉오리가 연분홍 색갈로 변하게 할 색갈들이 있었단말인가.
꽃봉오리는 봉오리마다 초롱불이다. 누구를 들고 가라고 이렇게 많은 초롱불들이 총총총 널려있단 말인가. 하늘의 칠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어서 가져가라는 말씀인가 시집가는 누이가 밤길을 걸을 때 들고 가라고 마련한 마음인가  천진란만한 애들이 밤에 뛰놀 때 돌에 채워 이마를 쪼을가봐 환하게 길을 밝히려 태여난 사랑인가….
공원못의 얼음이 풀렸을 때에도 나는 여기로 왔다. 수면은 고요한것 같았지만 귀를 기울이면 대패소리, 톱질소리, 망치소리가 귀바퀴를 간질렀다. 그 썩은 흙속에서, 여러가지 오물이 물과 한덩어리가 되여 구린내를 피우는 물속, 련은 거기에서 집을 짓고 있었다. 썩음과 오물이 한방울도 묻지 않는 청정한 집을 말이다. 맨 밑층에는 실닷타가 산다는 방이였고 그우에는 미륵이 산다는 방이였고 그우에는 아마 현장이 사는 방이라고 들었다. 지붕에는 푸른 기와를 얻는다는 것이였다.
물속에서 솟아나와 수면에 찰싹 붙어서 동그란 몸으로  온 못을 덮은 첫세대의 잎들은 푸른 기와였으리라. 하지만 첫세대 잎들은 기와 작용만 하는것이 아니다. 녀석들은 두번째 세번째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꽃들의 탄생을  위하여 길을 닦은 것이였다. 그뒤를 이어 두번째 세번째 세대들이 겨끔내기로 앞을 다투어 쑤욱 물위로 길죽한 얼굴을 내민다. 녀석들은 첫세대가 닦은 길로 걸어나오는 것이 부끄럽기라도 하듯 제몸들을 량쪽으로 도르르 말아가지고 속이 보이지 않게 나오다가, 공원산에서 흘러내리는 솔바람을 먹으며 크다가,  때가 되면  자신의 둥그런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며 푸른 우산도 되고 푸른 양산도 돈다.
보슬비 오는 날이면 활짝 피여난 련잎들은 수은을 몸으로 또르르 또르르 쉼없이 굴리여 옥빛구슬을 빚는다. 빚어서는 아래에 있는 형님 누나들에게 보내준다. 형님 누나들은 그 구술로  몸을 치장한다. 볼수록 눈시린 눈시린 은구슬들이다.
후둑후둑 열콩알같은 비방울이 떨어지면 련밭에서는 북소리 징소리가 우렁차고 소나기가 쏟아지면 뽀얀 물안개가 인다. 물안개속을 대달리는 천군만마의 발굽소리가 천지를 진감한다. 진승오강, 리연, 홍수전… 24사의 영웅들의 얼굴이 언뜰언뜰 언뜰거리기도 하고, 량산박의 108두령들의 얼굴이 반짝이기도 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10대원수들의 얼굴이 올인되였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러 수평선을 향하여 올린 돛도 보이고,  정화가  첫사람으로 钓鱼岛에 올라서 날리던  채색기발들의 펄럭임도 보인다…
아늑한 아침이 밝아온다. 련밭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울린다. 새날의 밝음을 감축하는 현악의 무대가 열린다. 바이올린소리, 거문고소리 앵금소리, 컴퍼스소리,가야금소리들이 서로 몸을 어울려 향기롭고 아름다운 선률을 엮는다. 새들의 울음소리, 솔바람소리, 시내물의 조잘돼는 소리, 이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만이 흐른다. 그 속에서 채색의 구름이 무럭무럭 피여나기도 하고 칠색의 무지가 여기저기서 련줄련줄 머리를 들기도한다. 선녀의 하르르한 치마자락이 날리도 하고 선남의 의젓한 관들이 클로즈업되기도 한다.
앙징스러운 련꽃열매도 기이하다. 사우나꼭지라 할가 어린이들이 겨울의 얼음판에서 즐기는 팽이라 할가 소학교를 다닐 때 교정에서 울리던 종이라 할가. 금빛오리로 지은 레스를 목에 걸고 동글납작한 정수리에 뱅글뱅글 돌아간 자잘한 구멍들은 할락할락 숨을 쉰다. 대기에 쏘다니는 티끌을 마시고 신선한 공기를 뿜어낸다 열매속에는 알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각시가 시집 오는날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선물로 쓰기도 하였다나. 하하…
련꽃은 전설도 많다. 동양의 불교에서는 오물속에서 싹터도 청정함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피여난다고 하여  불교상징의 꽃이라 하였고, 이집트에서는 해뜰 때에 피였다가 해질 때에 지는 꽃이라고 숭상하면서 태초의 물에서 태여난 최초의 꽃이기에 태양은 련꽃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화가들은 련꽃을 그리기에 붓을 아끼지 않았고 조각가들은 련꽃을 조각함에 칼끝을 아끼지 않았고 도자기장인들은 련꽃을 수놓음에 조예를 아끼지 않았고, 시인들은 련꽃의 신비를 노래함에 필묵을 아끼지 않았다. 작자가 기억 안 나도 글귀는 남아있다.
 
고울사 련꽃이여, 향기도 기이하다
표묘히 단장하고 몇사람을 반기였뇨
아마도 화중군자는 너뿐인가 하노라
                   
 
내가 돌이 되면
돌은 련꽃이 되고
련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련꽃이 되고
련꽃은 돌이 되고…
 
어찌 이런 시조, 시들을 한두편 뿐이라고 하랴. 시조는 꽃중에서 련꽃의 빼어남을  노래한 것이고 시는 이 세상사물의 서로의 화합과 변화를 노래한
오행설이라고 할가.
련꽃들이 만개한 공원 못의 련꽃밭은 별유천지이다. 송이송이 화사하고 호함지게 피여난 꽃봉오리들은 현란하다.  어찌보면 어제밤 밤하늘에서 왕별들이 내려온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분홍빛 호랑나비들이 모여들어 날개를 파닥이는듯. 어찌보면 연길의 가로등들이 낮에는 여기에 모여와서 불들을 켜고있는 듯 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미니봉황들이 모여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듯하다. 실로 련꽃들은 송이마다 환상의 덩어리 꿈의 덩어리이다. 그래서 련꽃은 매화, 모란과 더불어 티끌만한 손색도 없는 꽃들의 3군자가 되였으리라.
벗이여, 당신이 새로운 당신으로 태여나고 싶거든 공원 못의 련밭에 와서 한식경만 흔상하시라. 당신도 새로운 당신을 만날것이다.    
2013.7.27-28.
 
 
 
 
시에 대하여
 
시인은 시에 충성해야 한다. 시에 충성하는 것은 언어에 충성하는 것이며, 언어에 충성한다는 것은 민족에 충성하는 것이며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며 인류에 충성하는 것이다.
 
시는 사상으로 쓰는것이 아니라 상상( 想象)으로 쓰는 것이다.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장악하는 것이 시의 기교이다. 기교가 없으면 우연히 좋은 시를 쓰는 수도 있겠지만 그냥 좋은 류형의 시는 쓸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는 기술의 산물이다. 황차 시야 더 말할나위 있으랴.
 
류협은 시를 쓸 때 기성관념을 깨끗이 버리라고 하였다. 얼마나 잘 말하였는가. 이 말은 오늘에도 유용한것이며 미래에도 유용한것이리라. 기성관념을 버리는가 버리지 않는가는 시인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엘리어트는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 것이 예술의 둘도 없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다. 당신이 시를 쓸 때 시적상관물이 떠오르지 않으면 필을 들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시를 쓸 때 세가지 사유방법이 있는같다. 하나는 현실관념을 그대로 적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을 더듬어 내는 것이고, 세번째는 무의식으로 쓰는 것이다. 말그대로 무의식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같지만 무의식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다 들어있다. 그것을 꺼내여 보여주는 자가 시인이 되는 같다.
 
원사물을 그대로 쓰는것이 아니라 원 사물을 그와 다르기도 하거니와 맞지도 않는 다른 사물로 둔갑시킬 때에 이미지란 것이 산생된다. 그것이 바로 현대예술이라고 한다. 이미지를 떠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시란 언제나 새롭게 쓰는 일이다. 처음 새롭게 쓴자는 천재요 두번째 답습한자는 둔재요 세번째 답습한자는 바보라고 한 명언은 영원히 시인의 거울이 될것이다. 시를 쓴 다음 흥분에만 들뜨지 말고 내가 천재인가 둔재인가 바보인가를 한번쯤은 자성해 볼 일이다.
 
한국의 정끝별은 모방에 대한 여러가지 경우를 말하였다. 남의 언어를 차용하는것, 남의 시줄을 따오는것, 남의 시 한개 련을 가져오는것, 남의 시전부를 가져오고 제목을 바꾸어 주제를 다르게 하는 방법까지 도합 네가
지 방법을 례를 들었다. 첫째와 둘째는 써볼 필요있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째와 네째는 삼가하는 것이 좋을 같다. 색채가 짙은 모방은 절대 명작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 시를 가리는 자대가 되여야 하지 않을가..
 
하나의 조약돌이 새로 될수 있고 강물로 될수 있고 해로 될수 있고 인간으로 될수있고 호랑이로 될수 있다는, 한 사물을 이 세상의 모든 사물로 자유로이 둔갑시키는 상상을 가질수 있을 때 시인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때가 아닐가
 
시의 예술에는 지역이 따로 없고 국경이 따로 없다. 우리로 말하면 조선어로 쓰는 시이면 무슨 기교로 썼든 시가 좋으면 그만이다. 이건 서양식이요 이건 동양식이요 하는 말들은 믿을바가 못된다. 우리 민족의 언어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숨쉬고 우리 민족의 전통이 숨쉬고 우리 민족의 문화가 집대성해 있고 우리 민족의 소리가 있다…
 
시는 무엇을 위한다는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시이지 어떤 의미를 선전하는 시는 좋은 시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류협은 사상과 감정이 시에 나타나면 골수가 흐르는 것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시는 총통이 보나 감옥안의 죄인이 보나 다 어떤 즐거움을 줄 때 비로소 가치가 있고 품위가 있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시인은 절대적인 자유를 향수하면서 시를 써야 한다. 그 어떤 철학도 관습도 도덕도 리성도 시를 지배하게 해서는 아니된다. 시인은 음과 양의 기의 어울림과 분리로 이미지를 만듬으로써 자연의 섭리로 시인의 상상을 촉구하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 시인만이 하느님과 대화한다는 말은 백번 옳은 같다.
 
시는 무엇을 썼는가가 주요한것이 아니라 어떻게 썼는가가 중요하다. 무엇을 썼는가를 론하는 것은 중학교 어문 선생들도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떻게 썼는가를 론하는 것은 전문가가 할수 있는 일이다. 시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썼는가를 론하게 되는데 이런 론은 시의 연구에도 발전에도 가치가 없게 된다.
 
그림을 모르면서 그림을 평하고 음악을 모르면서 음악을 평하고 시를 모르면서 시를 평하는 것은 다재가 무재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파운드가 말했던가 주목할만한 작품을 쓰지 못한 평론가의 말은 듣지 말라고. 참 잘 말했지.
 
올챙이는 꼬리를 자르고 개구리가 되고 새새끼는 둥지에서 떠나야 새의 이름을 가질수 있고 호랑이새끼는 절로 사냥을 하여 먹거리를 마련할 때만이 명실에 부합되는 호랑이가 된다. 시인도 자기절로 꼬리를 자르고 둥지에서 나오고 먹이 사냥도 해야 존재가치를 가지게 될 같다.
 
정치인은 맞으면 죽지만 문학인은 맞으면 살아난다. 글이 나갔는데 말이 없으면 죽은 글이 되기가 일수이다. 진정 출중한 시인은 맞아대는 시인이다. 최남선도 그러했고 정지용도 그러했고 리상도 그러했다.  실락원 복락원을 쓴 J.밀턴이나 신곡을 쓴 단테는 자기작품은 100년후에야 알아볼 것이라고 하였다. 읽자마자 다 알리는 시는 탄생하자마자 생명력을 상실하는 작품이리라.
 
리해되지 않으면서도 통하는 시가 좋은 시다. 시가 몽롱하다면서 부인하 는 것은 리해력이 약한 사람이다. 그것은 시의 새로운 기교를 장악하지 못한 사람의 말이다. 몽롱한 것은 워낙 시 특성의 하나이다. 시에 몽롱성이 없다면 누가 시를 쓰겠는가? 차라리 산문을 쓰고 말지. 그래서 류협은 지인은 천년에 한번씩 통한다고 하지 않았을가? 시인은 이미지로 말하는 사람이지 론설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몽둥이로 종을 쳐봐라 나무는 탕 소리나게  종을 치지만 종의 소리는 떵 하고 멀리 퍼지여간다. 한 사람이 이 시는 모르겠소 하는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며 공명이 일어난 것이다. 공명이란 작자와 독자의 생각이 다 같아야 한다는 말만은 아니다. 독자에게 어떤 자극을 주면 공명인것이다.
 
시인에게는 언어를 새롭게 만들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한수의 시에 한마디 언어도 새로운 것이 없다면 그 이상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연이네 늪을 읽어보다
 
  덴마크에 있는 나의 딸 연이네 집앞에는 늪이 있다. 너비가 50메터 좌우되고 길이가 100메터 됨직한 늪인데 바로 그 늪으로부터 차가 두대 통할만한 길을 사이에 두고  딸집이 있다. 그림이라고 하자니 그림보다 아름답고 책이라고 하자니 책보다 많은 사연이 적혀있는 같았고 보물이라고 하자니 보물보다 귀한 것이 많은 같아서 나 역시 어느새 정이 들었다.
  늪의 오른쪽 기슭에는 커피색머리를 한 광주리나 떠인 총각나무가 서있다. 총각은 늪 건너를 응시하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그가 서있는 대안에 금방 목욕을 하고 나온 하얀 몸매의 봇나무 두그루가 머리발을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드리우고 서있다. 총각은 바로 그 녀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있다. 나는 나무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아직 총각과 이름이 뭐냐고 묻지 못했다. 늪 둘레에는 한쌍의 처녀와 총각이 있을 뿐만아니라 버드나무아저씨도 있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 팔들을 하늘로 치켜들고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 사이에는 파아란 주단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이다. 나는 어결에 " 님과 함께" 라는 코노래가 나간다.
 
저 푸른 초원우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여
겨울이면 행복하네
………
 
 아니, 내가 아니라 목석이  와서 이 늪을 보아도 이렇게 흥얼거릴것이다. 나는 이 이름도 없는 늪을 "연이네 늪" 이라 부르고 싶다. 물을 것도  없다. 늪은 연이네 집앞에 있으니까.
  연이네 늪은 사랑이 데이트하는 곳이다. 야생오리들이 쌍을 지어 날아온다. 이따금 갈매기들도 쌍을 지어 날아온다.  암컷과 수컷. 수컷은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암컷은 조르르 수컷을 따른다.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이 더벅머리 총각은 멍청하게 처녀를 바라보고만 섰다. 등 돌린 처녀 둘은 부끄러워 감히 몸을 돌리지 못하고 금방 분통에서 나온듯한 하얀 몸을 머리채로 가리고있다. 그외에도 아름 모를 나무들과 풀들이 늪과 조용히 교감하고있다.
  연이네 늪은 작아도 허구  많은 것들을 품고 산다. 두리의   나무며 강이며 집이며를 품고 있을 뿐만아니라 하늘의 바람과 구름과 해와  달 그리고 무수한 별들을 품고 산다. 그 모든 생명들을 품고 있으면서 연이네 늪은 잔소리 한마디 없다. 하늘이 흐리거나 밤이되면 늪이 품었던 생명체들이 다 멀리로간 것 같지만 연이네 늪은 그 모든것들을 하나도  보내지 않고 있다.  바람과 구름과 해와 달, 별들이 모인 다정한 집이 연이네  늪이다. 하늘의 이러한 생명체들은 때론 집을 떠난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다시 돌아와 늪의 품에   안겨 소곤거리기도 하고 새근새근 달콤한 잠을 자기도 한다. 오붓하고 앙증스럽고 아늑한 집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으랴. 그래서 연이네 늪은 물밑에도 하늘이 있고 물우에도 하늘이 있어 마냥 하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랴. 
  연이네 늪은 장백산의 천지에 비할만한 장려함과   웅위로움과 숭고함과 신비한것은    없다. 강남의  호한한 태호에 비길만한 그런  무한함도 물론 없고, 서호처럼 황홀한 풍경도 없지만 연이네   늪은   한없이 매혹적이고  한없이 인자하고  한없이 살 뜰하다,
  연이네 늪은 "ㄷ "형이다. 자음 “ㄷ”와 모음 "ㅏ "가 어울리는 것만 하여도 그 함의가 헤아릴수 없이 다양하다. 다 하면 오늘의 시대를 말하는  다국부대, 다민족국가, 다문화가정과 같은 싱싱한 내용들을 나태내는 개념들이 떠오른다. 또 그런가 하면 인류의 대가들인 다윈, 다빈치도 떠오른다. 다! 현대의  철학과 문학을 대변하는 질 들뢰즈와 가타리의 다양체도 있다. 다! 입맛을 돋구는 구미료 다시마, 다! 창고로 쓰는 다락, 다! 다각사랑 ... 하하 많기도 하다.
  해빛이 쨍 하고 비추면 연이네 늪 저쪽에서 물이 하얀 머리들을 송송 내밀며 쏠라닥거리다도 미풍이 살랑거리면 잔잔한 물주름을 늘이기도 한다. 그 물주름을 다리미질하여 반듯하게 펴는 고즈넉함은  또 흔상해 볼만한 일품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살얼음이 살짝 간 물우로 눈이 내린다. 뒤에 오는 눈송이들은 이미 내린 눈들에게 소리친다. 얘들아 어깨를 세워 내가 간다. 우리도 자리를 잡아야지. 그러면 먼저 내린 눈들이 어깨를  치키느라고 모지름을 쓴다. 드디여 눈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햐얀 눈의 세계, 티끌 한알도 묻지 않은 순하디 순한 세계가 연이네 늪에서 새로이 탄생한다. 한해에 한두번 태여나는    새 세상이란다. 이 은은한 새 세계를  하얀 백지라고 하자. 시인이 달려와서 시를 쓰려다 얼떠름해 서있을 것이다.   화가가 달려와서 그림을 그리려다 얼떠름해 서있을 것이다.  설계사가 달려와서 설계도를 그리려다 얼떠름해 서있을 것이다. 서법가가 와서 명필을 날리려다 얼떠름해 서있을 것이다.   너무도 깨끗하고 순해서 눈이 시리다. 감히 필끝으로 오물을 떨어뜨릴 수  없다.
  연이네  늪 주위에는  우물 정자 같은 길이 있다. 이 길은 경도와 위도처럼 온 세상과 통한다. 연이네 늪은 길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함께 어우려져 외로운 것 같아도 외롭지 않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와 하냥 손을 잡고 있으므로 연이네 늪의 사전에는 고독이라는 낱말이 적혀있지 않다.  그래서 그리우면서도 그립지 않는 연이네 늪이다.
  연이네 늪이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가 바로 이 길이 아니랴!
 
 
작자소개
 
최룡관 1944년 1월 22일 생. 대학졸.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 현대시인협회 회원.
연변일보 문화부 주임, 연변작가협회 부부석 등 력임.
현임: 연변 동북아 문학 예술 연구회 고문, 명예회장.
저서: <<최룡관시선집>>등 시집 6권, <<최룡관문집>>(4권), <<이미지시 창작론>>, <<하이퍼시 창작론>>,<<동시창작론>>(련재중) 등 시론. 도합 18권.
수상경력: 중국작가협회 제11기 전국 소수민족문학상<<준마상>>,   <<한국 청마문학연구상>>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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