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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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동시비평시리즈 .2
2008년 12월 02일 19시 41분  조회:1397  추천:38  작성자: 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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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어떤 시를 보면 너무도 묘해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피ㅡ어디 그런 시가 있니? 있다. 바로 김사림시인님이 쓴 시가 그래. [꽃비]라는 제목으로 썼는데 제목부터가 너무너무 아름다운 언어지 뭐야. 세상에 비라는 말과 꽃이라는 말은 있지만 꽃비라는 말은 없단말이다. 꽃비라는 말은 김사림시인님이 만들어낸것이 틀림 없어. 꽃이 너무너무 많이 피니까 그것을 꽃비로 표현한거지 뭐야! 언어를 새로 조합한것이 돋보인단  말이다. 시인이 시를 쓰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는것은 이러한 언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니. 꽃과 비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언어이지만 하나로 묶어놓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그래 언어라는것은 워낙 어떠한것을 나타내는 표징이야. 고대로부터 흘러내려온 표징인데 우리는 지금 그 표징들을 쓰고있잖아. 너나 나의 이름도 그렇지. 우리가 금방 태여났을 때 네이름 순희를 해옥이라고 지었더라면 너는 지금 순희인것이 아니라 해옥일거야. 옛날에 제일 처음 지금의 아빠를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를 아빠라고 불렀더라면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바꾸어서 부를거야. 그래도  아무런 불편함도 없을거야. 그러니까 사회가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말이 생길뿐만 아니라 언어와 언어를 새로 조합하여 [꽃비]처럼 고운 언어들을 많이 만들어낼수록 좋단 말이다. 아야, 말이 너무 빗나가재. 이만큼하고 김사림시인님이 쓴 [꽃비]의 원문을 보자.


    꽃비

       김사림


 먼산에

꽃비

비그르르 돌아


마을에

내려서

살구꽃 된다


살구꽃 환한 마을을

비그르르 돌아


뜨락에

내려서

나비가 된다.


   요렇게 깜직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울수가 없어. 언어가 물 흐르듯 조르르 흘러내려가재. 그것도 말짱 비단처럼 부드러운 언어가. 토라는게 ㄴ,ㄹ,ㅊ 세개가 있는데 [ㅊ]는 꽃이라는 명사에 붙은것이여서 할수 없지만 나머지 둘은 모두 유향자음이여서 기막히게 부드럽고 친절하단말이다. 첫두련을 먼저 보자. 첫두련은 한가지 내용을 표현하고 있어.


먼 산에

꽃비

비그르르 돌아


마을에 

내려서

살구꽃 된다


  봄이면 산에 하얀꽃, 빨간꽃, 노란꽃 벼라별 새갈의 꽃들이 가득 피는거야. 산은 꽃이불을 포옥 쓰고 있는거 아니겠니. 그런 오색찬란한 꽃들이 비그르르 돌면서 마을로 내려와 살구꽃이 된다하니 현실인게 아니라 아름답고 황홀한 동화세계지 뭐야. 그 꽃들이 또 어쩌지? 삼련과 사련을 보면 알아.


살구꽃 환한 마을을

비그르르 돌아


뜨락에 

내려서

나비가 된다


    꽃비는 살구꽃을 마을에 가득 피워놓고 환한 마을을 비그르르 돌고 돈 다음 뜨락에 내려서 나비가 된다는거야.  이것도 동화지뭐야. 동화래도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어. [비그르르 돌아]를 발음할때 입안에서 사탕알이 사르르 녹는 같지 뭐야. 나비란 뭐겠니? 꽃잎이 떨어진거지. 꽃잎의 짝이 나비인거야. 꽃잎이 다 떨어져 나비가 되면 살구나무에 애기살구들이 가득 열리지. 얼마나 평화롭고 아늑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니! 한번 이런 마을에서 살아보고싶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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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요, 꽃이요 하는 봄에 대한 시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번을 강에 대한 시를 보자. 강이란 어떤거니? 봄이면 얼음을 깨고 나와 마가을까지 흘러가는 놀이터야. 낮이면 해랑 구름이랑 와서 놀고 밤이면 달이랑 별이랑 와서 놀고. 어디 그뿐이야. 산도 제얼굴이 어떤가 비춰보고 새도 날아지나며 제모습이 어떤가 비춰보재. 물속에는 여러가지 고기들이 자유로이 헤염치고 가재랑 물벌거지랑 벌벌 기여다니재. 산에서 노루가 내려와 물을 마시며 빙그레 웃고 우리들은 물장구치며 목욕하재. 이 세상 모든 사물이 물을 떠나면 살수 없는거야. 물은 모든 사물을 낳고 키우는 어머닌거야.

   이런 물이 흐르는 강을 어떻게 쓰면 재미있을가? 강현호시인님이 해답을 주고있는거야.어떻게? 보면 알거야.


    강물

     강현호


작은 고기들이

떼를 지어

강물의 겨드랑이를 간지르고 있다.


강물은

온 몸을 뒤척이며

깔깔거리고 있다.


이따금씩 입술사이로

은이발이 몇 개

반짝이고있다.


   이렇게 모두 세개련이야. 리건호시인님이 [봄]을 쓸 때 제비를 가지고 쓰던것처럼 강현호시인님도 강을 쓰면서 물고기를 쓰고있지 뭐야. 그러니까 제목이 크더라도 그 제목에 포함되는 내용을 다 쓰는것이 아니라 자신있게 표현할수있는 한두가지 사실만 잘 쓰면 되는거야. 우리 함께 기억하자.


작은 물고기들

떼를 지어

강물의 겨들랑이를 간지르고 있다


   첫련이야. 히히 고기들이 물에서 헤염치는걸 [강물의 겨드랑이를 간지르고있다]고? 매짜다! 땡땡 여물었지뭐야. 강물엔 겨드랑이라는것이 없지만 강물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겨드랑이가 있을게 아니야.  고기들이 몸을 흔들거리며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헤염치니까 겨드랑이를 간지른다는것이 자연스럽재. 겨드랑이를 간지르니까 어찌겠니? 웃지. 그럼  강물이 어떻게 웃는가 보자. 그건 2련에 썼거던.


강물은

온 몸을 뒤척이며

깔깔거리고 있다


   이 2련이 강물이 웃는 모습이야. 그저 웃는것이 아니라 [온 몸을 뒤척이며/깔깔거리고] 웃는거야. 강물은 흐를 때 모든 물이 다 흐르는거야. 한방울도 정지상태에 있는건 없거든. 정말 온 몸으로 흐른단말야. 흐르느라면 몸을 마악 뒤번지게 되는거야. 흐르면서 소리를 내지 쐇솨ㅡ하고. 그것을 의인화해서 [깔깔]했지 뭐야. 강물이 대단히 간지러웠던 모양이야.


이따금씩 입술사이로

은이발도 몇 개

반짝인다


   이것이 마지막 3련이야. 강물의 웃는 모습을 한번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것으로 시를 마치고있어. 은이발도 몇 개  반짝인다 했어. [은이발]이란게 뭐지? 그렇지. 물이 흐르면 물결이 일고 물결이 일면 하얗게 물이 부서지게 마련이지. 그 하얗게 부서지는 짝을 찾은것이 [은이발]이야. 강물이 흐를 때 온 강물이 단김에 물결이 부서지는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부서지거든. 그래서 [은이발이 몇개/반짝인다]고 한것이 아니겠니! 사람도 웃으면 이발이 보이니까 그렇게 한거지뭐야. 강현호 시인님은 강물을 쓰면서 강물이 어떻게 웃는가 하는 한가지를 표현하였고 리건호 시인님이 <<봄>>을 쓸 때도 바줄에 앉은 제비만 썼어. 한 사물에서의 어느 한 측면을 틀어쥐고 잘 쓰는 것이 동시를 잘 쓰는 비결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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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봄철의 동시를 어떻게 쓰는가를 보는 사이에 어느새 여름이 왔구나. 이제부터 그럼 여름에 대한 시들을 어떻게 썼는가 보자.

   여름은 모든것이 무성하게 자라는 계절이야. 나무도 풀도 물도 곡식도,,,뭐나 다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계절이야. 시를 쓸것도 엄청나게 많은 계절이야. 먼저 리국재시인님이 쓴 [여름산]부터 보자.


  여름산

     리국재


여름산은 

아직

덜익은

풋풋한 과일이다


한줄기 

소나기 쏟아질 때마다

조금씩 익어가고

조금씩 커가고


얼마만큼 익었는지

한번쯤

두들겨 보고싶다

쪼개여 보고싶다

   

   어때?, 참 멋있지. 시인의 상상이 대단하지 뭐야. 일련에서 여름산의 짝을 [아직 /덜익은/풋풋한 과일]이랬단말이다. 산을 어떻게 상상하면 [풋풋한 과일]이 되는거야? 정말 미치겠다  급해할것 없어. 벌판에 산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멀리서 보면 평평한 곳에 둥그런것이 아니겠니. 우리가 여름에 수박밭에 가보자. 큼직한 수박이 달려있는것도 평평한 곳에 둥그런게 아니겠니. 둘이 다 둥그런것이니까 산을 수박이라고 할수있고 수박을 산이라고 할수있는거야. 수박이 과일에 속하니까 산도 과일이라고 해서 안될거 없단말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모양으로 짝을 찾은거야. 문학적 언어로 말하면 이러한것을 모양으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였다고 하는거야. 또 산을 과일로 변형시켰다는거야.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이런 말은 리해하기 바쁘니까 짝이라고 한거지. 모양으로 짝을 찾는다하면 얼마나 알기 쉽니? 기억하자 꼭 알았지. 히히ㅡ알았다!!


한줄기

소나기 

쏟아질 때마다

조금씩 익어가고

조금씩 커가고


 두번째 련이다. 여기서는 과일이 소나기를 맞으며 익어가고 커간다고 하재. 수박이랑 여름에 커가고 익어가는데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재. 그러서 소나기 올 때마다 조금씩 익기도 하고 크기도 한다는거야. 세번째련을 보자.


얼마만큼 익었는지

한번쯤

두들겨 보고싶다

쪼개여 보고싶다


   이 마지막련에서 과일이 익었는가 두드려보고 쪼개여 보고싶다고 하였어. 어째 요런 표현을 썼느냐고? 그래 고것이 문제지. 수박이나 참외밭에 가면 사람들은 수박이나 참외가 익었는가를 판정할 때 보통 참외나 수박을 두드려 보지 뭐야. 두드려 봐서 맑고 쟁쟁한 소리가 나면 익은거고 무겁고 둔중한 소리가 나면 그건 익지 않은 생거야. 산을 과일이라고 하였으니까 익었는가를 알기위하여 두드려본다는거지 뭐야. 그러나 수박같은것이 확실이 익었는가를 판정하는데는 속을 보아야 하는거야. 여름에 수박장사군들이 수박을 팔 때 수박을 칼로 쪼개여서 손님들한테 빨간 속을 보이는건 자기 수박이 잘 익었다는것을 증명하는것이 아니겠니. 그래서 시인도 과일을[쪼개여 보고싶다]고 한거야. 그럼 과일을 수박이라고 할거지. 그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렇다는건 수박이라고 하면 확실히 더 좋은것은 맞아. 아니라는건 과일상점에는 남방에서 나는 야자랑도 있을거야. 아마 야자랑도 익었는가를 판정할 때 두드려보는지 몰라.  전면성을 기하기 위해 그랬는지 몰라. 과일이라는건 류개념이여서 뻥뻥하재. 수박은 종개념이여서 인차 영상이 떠오르지 뭐야. 시를 쓸 때면 종개념에 속하는 언어를 쓰는것이 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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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시를 쓸 때 뭐가 제일 중요한건지 아니? 히히, 그걸 누가 모르게, 시적발견이지. 맞다.시적발견이란게 뭔지 아니? 같은 제목이라도 남보다 따게, 새롭게 쓰는게지. 맞다. 남보다 따게 새롭게 쓰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아니? 그야 남들이 못쓴것을 쓰면 되지. 맞다. 남들이 못쓴것을 쓰자면 어떤 방법으로 하지? 얘, 네가 날 심문하니? 글쎄 맞춰봐. 새로운 짝을 찾는거야. 맞다. 남들이 한번도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짝을 찾아쓰는 시가 좋은 시고 그런 시인이 훌륭한 시인일거야. 시를 많이 쓰는게 시인인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를 쓰는게 시인이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새로운 시를 쓴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야. 그런 시를 봤니? 봤다. 누구걸? 문삼석시인님걸. 제목이 뭐야? [이슬].


밝음을

토해내는

밝은


맑음을

토해내는

맑은

눈.

   

  요리 짧은거. 응, 짧아. 짧은게 시가 안되는것이 아니라 길어도 시적발견이 없거나 짝이 없는게 시가 안되는거야. 이슬에 대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썼지만 눈이라고 한 시인은 없었어. 모두가 구슬이요 보석이요 진주요 하고 썼지만 눈이라고 한 시인은 없었지 뭐야. 문삼석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슬을 눈이라고 했을가? 두가지 원인이 있어. 한가지는 이슬이 눈처럼 밝기때문이고 다른 한가지는 이슬이 티 하나 없이 눈처럼 맑기때문이야.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어. 눈도 모양이 동그랗고 이슬도 모양이 동그랗기 때문이야. 이 시는 문삼석시인님이 모양으로 짝을 찾은 시야.

  문삼석시인님은 모양으로 짝을 찾는 능수야. 전문적으로 코풀레기 애들을 대상한 시를 쓰기를 즐기면서 모양으로 짝을 찾는데는 이골이 튼 시인이거든. 원숭이라는 시 한수를 더 보자.


 원숭이


원숭이는 

날 때부터

할아버지래

주름살 

오글오글 

할아버지래


  원숭이는 새끼원숭이래도 이마에 주름살이 쪼글쪼글해. 우리 할아버지들도 늙으면 이마에 주름살이 쪼글쪼글해. 문삼석시인님은 주름살이 쪼글쪼글한것이 같은것을 보아내시고 원숭이의 시적짝을 할아버지를 찾은거지 뭐야. 어때, 근사하니?

  모양으로 짝을 찾는다? 전번에 말할 땐 좀 알빤하던게 인제 똑똑히 알려. 참 묘하구나! 세상 사물이 모양이 얼마나 많니? 생김새가 모두 다르거던. 우리들이 사는 집만 봐도 여러가지가 아니고 뭐야. 우리 친구들도 그렇지. 얼핏 보면 비슷한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백이면 백이 다 다른거야. 같은 사물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사물사이이야 더 이를데 있니? 그래 세상 사물의 모양이 각각이여서 세상이 아름다운거야. 모양이 다 같으면 얼마나 따분하겠니.

  시를 쓸 때 짝을 찾는것도 딱 같은것으로 찾으려하면 안돼. 모양이 비슷하면 되는거야. 그렇잖구. 어디에 백프로 같은게 있니? 아무데 다르나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지.

  리건호시인님이 쓴 [봄]에서 제비를 [음표]라 한것도, 리국재시인님이 쓴 [여름산]을 과일이라 한것도, 문삼석시인님이 [이슬]을 눈이라 한것도 [원숭이]를 [할아버지]라 한것도 모두 모양을 보고 짝을 찾은거야. 그러니까 널반대기에다 못을 딱 박아놓는것처럼 기억해.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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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나무랑 풀이랑 무성하게 자라고 시내물도 강물도 모두 자라지 뭐야. 시골애들이 학교를 다닐 때 뚝뚝 뛰여넘던 개울물도 비가 자주 오는바람에 뛰여넘을수 없게 됐지 뭐야. 그래서 어느 마음이 고운 애가 신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개울물에 뛰여들어 돌다리를 놓았지 뭐야. 그런 돌다리 몇 개를 보고 시를 쓴 시인이 있어. 함께 볼가?


 징검다리 

리석장


개울물 오선지에

그려진 

하나, 둘, 셋, 넷...

음표들


잠자리가 앉아서

무슨 음표일가

고개만 갸웃하다

그냥가고 


앞산 소나무들이

들어보란 듯

몸까지 흔들며

솔솔솔


일곱 살 순이가

음표 하나씩 밟으며

도레미파...

팔짝팔짝 건너오며

도시라솔...


순이 친구 삽살이

따라부른다고 

캉캉캉캉

  

얘, 동시란게 정말 재밋지. 읽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 1련부터 볼가.


개울물 오선지에

그려진 

하나, 둘, 셋, 넷...

음표들


    1련에서 리석장 시인님은 개울물에 놓여진 징검다리의 짝을 찾고 있지 뭐야. 개울물을 오선지라고 돌다리는 개울물에 그려진 음표라고 했지 뭐야. 비슷하재. 첫련에서 징검다리를 음표라고 하면서 이제부터 음표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려 준거야.

아래의 련들은 음표에 대한 부동한 사물들의 반응을 표현한거야. 처음에는 잠자리가 앉아서 무슨 음표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숑 날아간 것을 쓰고 , 두 번째는 앞산소나무들이 제가 안다로 몸까지 흔들며 솔솔솔솔 한다고 썼지 뭐야. 기실 소나무도 잠자리처럼 모르는거야. 시인이 바람이 불면 소나무가 흔들리는소리가  음표의 음 쏘처럼 소리난다고 생각되여 솔솔솔이라고  표현한거야. 세 번째는 순이가 징검다리를 팔짝팔짝 건너갔다 건너왔다 하는 것을 음표를 하나씩 밟으며 도레 미파 하고 시창을 부른다고 썼지 뭐야. 네 번째는 삽살이가 순이를 따라서 도레미 소리를 낸다는게 캉캉캉캉 짓는다고 그랬지 뭐야.

    호호호...우습지. 실은 음표를 알이는 순이 밖에 없어.  음표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거니까 . 그런데 시인은 소나무며 삽사리며가 아는 것처럼 의인화를 하는바람에 재밋게 됐지야. 잠자리는 소리를 못내니까 고개만 갸웃거렸다는거야.

   리건호 시인님이 <<봄>>을 쓸 때 전기줄에 앉은 제비들을 <<음표>>라고 표현한적이 있잖니. 이번에는 리석장 시인님이 또 징검다리를 <<음표>>라고 표현했단다. 부동한  사물에서 똑같은 짝을 찾은게 아니고 뭐니. 이래도 되니? 되고말고. 두시인님이 찾은 짝은 같지만 표현하려는 사물이 다르거든. 또 표현하는 내용도 완전히 다르단 말이다. 그러니까 괜찮은거야. 만약 비슷한 사물이거나 비슷한 내용으로 쓰면 그건 문제야. 그럴 땐 모방성이  있는거야. 시내물이 꼬불꾸불 흘러가니까 장난꾸러기라고 하고 오솔길이 꼬불꼬불 산으로 넘어가니까 장난꾸러기라고 하는 것 같은 것은   삼가하는것이 좋아. 제일 좋기는 아무도 써먹지 않은 것으로 짝을 찾는거야. 그래야  최고 좋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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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는 모든 것이 푸르다. 산도 푸르고 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해도 푸르고 달도 푸르다. 물도 푸르고 지어는 바위도 푸르다. 그래서 여름은 푸르른 계절인거야. 푸르른 계절을 노래한 시가 있어. 김종영 시인님이 쓰신 시야. 내가 한번 읽을게 들어봐


여름의 문을 열고

푸른 나라를 걸어간다


초록빛 바다가 우쭐대며

가슴에 들어서 출렁이고

어깨동무 푸른 산이 정답게

가슴에 앉아 날개친다.


길을 가도 푸른 눈

책을 봐도 푸른 마음

꿈을 꿔도 푸른 생각


나는 이 여름

사람들속을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빛 심는

푸른 나라 푸른 새 되련다.


   어때? 특색이 있지. 그래 여름의 모든 것을 푸르게 표현한 것이 특색이야. 시는 그래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야. 생활에서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새롭게 표현하는거야. 표현한다는게 어떤거지. 자기가 본것이나 느낀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본것이나 느낀 것을 표현할수  있는 새로운 사물이나 사건이나 사실을 찾아서 쓴다는거야. 잘 알아 못듣겠다고. 제일 간단하게 말하면 짝을 찾아서 쓴다는거야. 그럼 그렇다고 할거지 왜 다람쥐 채바퀴돌 듯 뱅뱅 도니? 그건 왜 자꾸만 짝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도리를 강조하여 은이 배기에 하자는거야.


 여름의 문을 열고

 푸른 나라 걸어간다


   첫련이야. 김종영 시인님은 처음부터 푸른 여름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지 뭐야. <<여름 문>>이니 <<푸른 나라>>니 뭐니 하고 있잖아. 어디에 여름이란게 문이 있고 나라라는게 있니. 여름의 문을 열고는 여름이 왔다는 뜻이고 푸른 나라를 걸어간다는건 여름철이 온통푸르다는걸 표현한거야 . 이 첫련은 시의 기승전결의 기에 속하는것이고 시의 계기로서 시인이 여름의 푸르름을 노래한다는 표징이지 뭐야.


초록빛 바다가 우쭐대며

가슴에 들어서 출렁이고

어깨동무 푸른산이 정답게

가슴에 앉아 날개친다


    이 두 번째 련은 여름날의 움직임을 표현한거야. 두가지를 틀어쥐였는데 한가지는 벌이고 한가지는 산이야. 벌은 초록빛 바다 산은 어깨동무로. 벌은 바다니까 출렁거릴건 사실인데 가슴에 들어와 출렁거린다고 했지 뭐야. 산을 어깨동무라 한 것은 의인화한 것이야. 산이 가슴에 와 날개친다는 것은 또 다른 맛이야. 산이라는건 봉우리가 제일 높은것이고 봉우리밖의 줄기는 봉우리보다 낮게 멀리로 뻗어나간것인데 어찌보면 새가 날개를 퍼덕인다고 할수도 있는거야. 가슴에 들어와 바다가 출렁이고 가슴에 앉아 산이 날개친다는 것은 산이나 들과 가까이 노는 우리들 마음의 표현, 넓은 흉금의 표현인거야.

  이 동시에서 2련은 승이고 3련은 전이고 4련은 결이야. 전에서 <<길을 가도 푸른길/ 책을봐도 푸른 책 / 꿈을 꿔도 푸른 꿈>>이라고 전개시키지 않고  <<눈>> <<마음>> <<생각>>등 언어와 길, 책, 꿈을 련계시킨 것은 여름의 푸르름을 우리와 더 가깝게 하고 친절하게 하기위한 표현이야. 이런 표현을 함으로써 여름이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거야.

  4연은 결이니까 종결이지. 사람들에게 푸른 노래 푸른 빛을 심어주는 푸른 새가 되어 날아다니겠다고 했지 뭐야. 왜 새가 되겠다고 했을가 ? 왜 심어준다고 했을가 ? 절로 생각해봐.

    

                17


이런 시가 있어. 리동식 시인님이 쓰신  동시야. 제목은 <<개나리 노란 배>>야.


내가에 갔었다

바람 따라

물길따라 


동동

개나리꽃 하나

떠내려간다

외나무다리밑으로


하얀 나비가

떠가는 꽃위에

사쁜 앉았다


개나린 개나린

노란 배가 되었다

나비는 나비는

노란 손님되였다


물길따라 떠간다

멀리 멀리 떠간다


   얘, 이 시의 특점이 뭐야?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시제목이 짝을 찾은거야. <<개나리 노란 배>> 하고. 개나리 짝을 노란 배라고 설정했어. 그러니까 제목부터 의문을 주거던. 왜 개나리를 노란 배라고 했을가 하는 의문을 말이다. 그래서 인차 독자를 흡인하고 있어. 한번 읽어보면 답은 풀리는거야. 으응, 노란 개나리가 다리밑으로 떠내려가니까 개나리를 노란 배라 하였구나. 노란 나비는 노란 개나리가 떠내려가는데 앉았으니까 노란 손님으로 되었구나. 물이 개나리꽃을 싣고 멀리 멀리 가니까 <<물결따라 떠간다/ 멀리 멀리 떠간다>>로 결말을 지었구나. 이러한 시의 내용은 인제 한두번만 읽어봐도 알수있는거죠? 그렇죠.

    이 동시에서 배울점은 짝을 찾는것보다 다른 것이 있어. 한가지는 짝을 찾을 때 자연물의  짝을 인위적인 사물에서 찾는거야. 인위적인 사물이란 사람이 만든 것을 말하는거야. 개나리는 자연물이고 배는 사람이 만든 것을 말이다. 그러니 자연물의 짝을 인위적인  사물에서 찾은 것이 아니고 뭐야. 이렇게 짝을 찾으면 찾은 짝이 우리와 가까이 있는사물이여서 더 친절해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재.

   두 번째로 배워야 하는 것은 이 시의 치명적인 결함이야. 결함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고? 시를 잘 쓰려면 남의 쓴 시의 우점도 알아야 하거니와 그 시의 단점도 알아야 해. 우점은 따라 배워 자기가 시를 쓸 때 발양하고 단점은 시를 쓸 때 그런걸 범하지 않는 거울로 삼는거야. 시는 기승전결이 우에서 있다고 말했는데 이건 옛날 리론 같지만 매우 중요하단 말이다. 개나리 노란 배는 기에 문제가 있어. <<내가에 갔었다/ 바람따라 / 물길따라/동동/ 개나리꽃 하나/떠내려간다/ 다리밑으로>> 이것이 시의 1,2연인데 문제가 있어. 시란 가장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거야. 언제 느렁뱅이처럼 천천히 할사이가 없어. 이 시를 쓰려는 것은 노란 개나리가 노란 배로 되고 노란 나비가 노란 손님이 되어 노란 배에 노란 손님이 앉아간다는 것을 쓰는거란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화자가 어떻게 강가로 갔는가하는 따위는 알릴것도 없는 것을 알리고 있다는거야. 표현하려는 대상이 개나리와 나비인데 한 개련이나 할당해서 쓸데 없는 미사려구를 쓰고있단 말이다. 만약 내가에 간 것을 꼭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제2련의 <<동동>>의 앞에 <<내가에>>를 넣어서 <<내가에 동동>>하면 그만이지 뭐야. 이쯤만 하여도 큰 허물이 없이 시가 간결해 지였다고 말할수 있겠진만 더 엄격하게 따지면 이것도 안되는거야. 필요없어. 1연의 언어는 한마디도 필요 없다는거야. 1련을 통채로 뽑아던져도 시적표현에는 안무런 손상이 없지 뭐야. 2연부터 시작해 써도 이 시에서 표현하려는 시적대상이 나왔단 말이다. 2연의 내용이면 시적계기나 기승전결에서의 기가 충분하단 말이야. 그런데 1연을 해서 뭘 하겠니. 뱀을 기다랗게 그려놓고 뱀한테 발을 그려넣는거나 마찬가지야.


                                   18


  여름산에 가면 청포도가 두룽기두룽기 달려있지 뭐야. 콩알같은 포도알들이 오롱조롱 달려있는게 정말 희한하지 뭐야. 포도원에 가면 더 굉장하지. 열콩알같은 포도알들이 가득 달린게 보기만 해도 입안에 시쿤물이 확 돌거든. 우리 주먹 두 개만한  포도송이들이 두룽기 두룽기 드리워서 구경거리가 대단하단 말이다. 포도알들은 날때부터 고로로한게 정말 귀엽기도 하지. 이런 청포도를 정형택 시인님이 시로 썼어. 한번 읽어보자.

 

청포도

정형택


꼬오옥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동글동글 

모나지 않은  마음


쉬엄쉬엄

꿈을 

키워갑니다.


도란도란 

꿈이 같은 애들끼리


초롱초롱 

파아란 눈망울로


주렁주렁 

꿈 엮어

매답니다.


  동시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이 동시도 참 고소한거야.


꼬오옥

고만곤만한

애들끼리


   요게 첫련이야. <<꼬오옥>>이란 <<꼭>>자를 느려서 쓴거야. 크기가 비슷한 포도알들이 포도송이에 빽빽하게 달려있으니까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꼬오옥 고만곤만한 애들이라고 묘사한거야.  작은 포도알들이니까 아이들이라고 의인화한거 아니겠니! 아이들이라건 포도알의 짝이야. 시는 짝을 찾은 다음 원래의 사물과 관계있는 사물들을 합리하게 결합시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 말이야. 원 사물을 쓰는 것 같지만 짝을 쓰고 짝을 쓰는 것 같지만 원 사물을 떠나지 않게 말이야. 정형택 시인님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지 뭐야.


동글동글 

모나지 않는 마음


  이게 2련인데 동글동글은 두가지 의미가 있어. 한가지는 포도알이 동글동글 하다는 의미이고 다른 한가지는 애들이 마음이 모나지 않은 동그란 마음이라는거야. 왜 모가 나지 않는 동그란 마음이랬을가? 애들의 마음은 순하고 깨끗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이야. 모가 나면 어떻겠니? 마주 치면 아프지. 애들이 마음은 동그래서 마주쳐도 아프지 않거던. 그래서 싸우다가도 다시 돌아서면 희희 웃지 . 언제 다퉜거나싶게  싸웠나싶게 금방 서로 마음이 통하는거야.

  3,4련은 서로 련계된단다.

 

쉬엄쉬엄

꿈을

키워갑니다


도란도란 

꿈이 같은 애들끼리


   포도들도 천천히 크고  애들도 천천히 크니까 <<쉬엄쉬엄>> 했지 뭐야. 그들은 서로 자기의 꿈이야기를 속삭이며 쉬엄쉬엄  자라는거야. 꿈이란게 뭐냐고? 포도들은 커서 달콤하게 익을 궁리를 하고 아이들은 자라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거지. 청포도나 애들이나 다 창창한 앞날이 있는거야. 그게 바로 꿈인거야.

  5,6련도 한가지 내용이니까 함께 보는 것이 옳아.


초롱초롱 

파아란 눈망울로


주렁주런 

꿈 엮어

매답니다


   초롱초롱은 포도알을 가리키기도 하고 애들의 눈을 가리키기도 해. 포도도 동그랗고 애들의 눈도 동그랗단 말이다. <<파아란>>이라고 한건 포도알의 색깔도 나타내지만 희망찬 애들의 눈에 대한 표현이기고 한거야.


주렁주렁 

꿈을 엮어

매답니다


   마지막 련인데 참 잘 표현했어. 얼핏 보기에는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를 말한 것 같지만 실제상에서 는 애들을 표현한거야.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며 자기 절로 자각적으로 자기의 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니! 어디서 그런 의미가 나타나느냐고? <<꿈을 엮어 /매답니다>>에서야. 자각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주렁주렁 꿈이 익어갑니다>>로 표현하였을 거야.

                                   19

                               


백두산 폭포를 본 기억이 나니? 얼마나 장쾌하고 어마어마한 폭포였니. 금벽과 옥벽사이로 하아얗게 부서지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 하늘 땅을 울리는 장쾌한 폭포소리는 우리 민족의 발걸음 소리같고, 하아얗게 일어나는 물안개는 우리 할머니들의 치마자락을 날리는 것 같단 말이다. 우리는 또 조물주의 재간도 보는거야. 어쩜 이런 폭포를 백두산에다 만들어 놓아 수천수만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당기고 있는가. 폭포는 아무곳에 있으나 모두 자연의 경관을 이루기에  그곳은 자연적으로 유람지로 되는거야. 이런 폭포를 어린이들의 마음에 맞게 쓴 동시가 있어. 한번 읽어보자.


폭포

정춘자


떠밀지마!

겁먹은 소리로

애원을 해도

 

사정 없이 떠밀어대는

장난꾸러기들


으아아!

아이쿠!


엎어지고 자빠져도

아파할 사이 없이


산이 떠나갈듯한 웃음

하아얗게 부서지는 웃음


   제목은 <<폭포>>지만 지문에는 폭포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고 폭포의 짝으로 내세운 애들이 어떻게 장난질을 하고 있는가를 표현하고 있을뿐이야. 이런 짝을 의인화수법으로 찾았다고 하는거야. 누구 말이지. 당연히 내 말이야. 의인화의 수법으로 짝을 찾을 때, 동시의 경우에는 그 짝을 아이들로 설정하는 것이 좋아. 왜냐하면 동시의 대상이 아이들일뿐만 아니라 동시는 아리들의 심미세계를 그리기 때문이야. 어른들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으로 시를 볼가.


떠밀지마 

겁먹은 소리로

애원을 해도


사정 없이 떠밀어대는

장난꾸러기들

 

    이것이 첫두련이다. 시인은 폭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장나꾸러기들의 떠밀내기를 쓰고있어. 밀지 말라는데 자꾸 밀어부치는거야. 남은 무섭다고 애원해도 상관 없어. 마구잡이로 사정 없이 민다는거야.  장난이 심해도 한심하게 심한거야. 애들의 이 장난이 바로 뒤물결이 앞물결을 밀며 물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의 폭포현상을 표현한거지 뭐야. 물은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마련이야. 낭떠러지는 낮은 곳에 있단말이다. 떨어지기 싶어도 떨어지고 떨어지고 싶지 않아도 떨어진단 말이다.


으아아!

아이쿠!


  이 3련의 표현이 얼마나 새치스럽니! 갑자기 놀라고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지만 그속에는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 환히 보이지 않고 뭐야.

  4,련이야말로 정채로운 표현이야.


엎어지고 자빠져도

아파할 사이도 없이


   정말 그래 . 언제 떨어지며 아파할 사이가 있겠니! 뒤물결이 마구 앞물결을 밀며 쏟아져 내리는데야.

정춘자시인님은 마지막련에다 이렇게 쓰고있어.


산이 떠나갈듯한 웃음

하아얗게 부서지는 웃음


    이건 절창이야. 폭포의 소리에서 웃음을 찾은거야. 폭포를 웃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나 구사해낼수 있는 것이 아니야.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자세하게 말하겠어. 폭포가 어떻게 웃음으로 둔갑할수있는가는 잠시 비밀이야. 뭐 시뚝한다고. 아니야. 우선 여기서는 시인의 기발한 상상을 보아내는 것이 중요해. 기발한 상상이란 아무도 보아내지 못한 것을 보아내고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을 들어내는거야. 폭포를 쓴 시를 적잖게 보았는데 폭포를 웃는다고 한시는 이번이 처음이지 뭐야. 제일 처음 글에서 우리는 시를 쓰려면 눈은 현미경이 되어야 하고 귀는 청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어. 그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야.


                               20


야, 요기 재밋는 시가 또 있다. 무슨 시야. 해바라기야. 누가 썼니? 서효석 시인님이야. 어떻게 썼나 보자.


해바라기

    서효석


흙돌담위에 

고개를 얹어놓고

빈 집을 지키는

해바라기


담 넘어로

얼굴 내민


빠알간 대추

누가 와서 따갈가봐

보살펴주고 

추석 차례상에

올려질 홍시

행여나 떨어질라

쳐다봐 주고


하루종일 혼자서

살피느라고 

눈알이 많아진

해바라기


    어때 ? 특점이 있어. 사실 해바라기는 엄마랑 아빠랑 부탁을 받고 집을 지키고있는 아이로 되어있지만 서효석 시인님은 그렇다는 말씀은 한마디도 없단말이다. 이런 뜻을 이미지로 밝히고 있는거야. 첫련에서부터 해바라기를 의인화시켜 놓아서 해바라기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로 되었지 뭐야. 나가 놀지도 못하고 대추랑 홍시랑 지키는 외로운 아이가 되어 뜨락에 갇쳐있는 불상한 애가 되었단말이다.

    1령에서 서효석  시인님은 해바라기가 어떤 해바라기인가를 밝히고 있는거야. 


홁돌담위에 

고개를 얹어놓고

빈집을 지키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절로 자라나는 해바라기인 것이 아니라 흙돌담위에   택을 고이고 빈 집을  지키고 있는거야. 집사람들은 모두  일하러가고 강아지도 없어. 닭들이 노는것도 보이지 않는 빈집에서 해바라기만이 외롭게 서있는거야. 무엇 하느라고 혼자서 있을가? 그건 2련에 해석 이 있어.


담 넘어로

얼굴 내민

빠알간 대추

누가 와서

따갈가봐

보살펴 주고

추석  차례상에

올려질 홍시

행여나 떨어질라

쳐다봐 주고


해해해...왜 웃니? 해바라기가 한다는 일이 우습지 뭐야. 담 넘어에 열려있는 대추를 누가 따가는가고 보초를 서고, 추석 차례상에 오를 익은 감이 떨어지는가를 쳐다본다재. 웃을게 아니야. 서효석 시인님은 추석전야의 시골의 풍요롭고 아늑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우리들의 눈앞에다 그려주고 있는거야. 그건 그래.


하루종일 혼자서

살피느라고 

눈알이 많아진

해바라기


   마지막 련이 정채롭단 말이다. 해바라긴 열심히 일하고 있는거야. 하루종일 혼자서 대추랑 감이랑 지키지 뭐야. 그러는 사이에 눈알이 많아졌다는거야. 얼마나 묘하니. 눈알이 많아졌다는건 해바라기가 다 여물었다는 얘기야, 그런걸 눈알이 많아졌다고 했어. 꼭 여문 해바라기알을 알마다 집을 지키느라고 부릅뜬 눈이라고 한건 기막힌 절창인거야. 어찌 열심히 대추랑 감이랑 지켰으면 숱한 눈알이 생기였겠니.

   동시를 배우면서 한가지 알아둘것이 있어. 시인은 자기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이미지속에다 용해시켜 넣어야 한다는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 시는 추석전의  시골마을의 평화롭고 아늑한 풍경을 쓴것이지만 그렇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거야. 재간 없는 시인이라면 꼭 아름다운 시골이니 시골은 포근하다느니 하고 개념적인 말을 써넣었을 거야. 동시라는건 자기가 쓰려는 시적대상을 잘 그려놓으면 되는거지 의도적인 언어가 끼여들면 안 되는거야. 우리의 동시들은 개념을 끼워넣는 일이 너무 많단 말이야. 우리의 동시가 한국의 동시보다 재미 없는건 바로 이때문이기도 해. 우리의 동시는 애들이 시를 보고 저절로 무엇을 느끼게 하고 게발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자신이 나서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어떤 의도를 내리멕이려 하는거야. 선전을 하고 교육을 하고. 참 싱거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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