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며칠 전 설악산 백담사엘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과 바다 곳곳에서 문학행사가 펼쳐지는
데, 제가 다녀온 백담사에서는 만해의 짙은 흔적에 걸맞게 한 계간문예지가 매년 '만해시인학교' 를 개
최하고 있습니 다.
아직도 시는 건재했습니다. K, 어린 학생부터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스스럼없이 먼길을 달려가게 만
들 만큼 강한 흡인력을 지녔더군요. 대구에 서부터 일행들과 함께 12시간을 소요해서 찾아간 그곳이 저
역시 만족스러 웠습니다. 온산을 휘감던 엷은 구름떼, 흐느적거리는 물안개의 몸짓하며, 사방으로 줄기
차게 튀어 오르던 물소리... 그리고 3박4일의 일정 내내 마 치 시에 처음 매료된 듯한 눈빛을 가진 사람
들과 스치고 부딪고 마주치느 라 마냥 즐거웠지요.
K, 시라는 것은 비단 문학성뿐 아니라 인생이라든가 종교, 문학 전반의 모든 깊이를 두루 갖추어야 한다
는 것, 이미 잘 알고 있겠지요. 때문에두 귀, 두 눈은 무조건 열어두어야 하는 거지요. "백담사 계곡물은
부지런 히 흘러서 인제 원통을 지나 동해 바다로 뛰어들었을텐데 여러분들은 왜 아직 여기 남아있습니
까" 하던 '만해시인학교' 교장 고은시인의 말은 참 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시에 대
한 집착을 안고 앉 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던진 화두(話頭)였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더 절실히 와닿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고은시인의 말 인데 다른 어떤 말보다 악센트가
강하더군요. "니네 스승 잘 모셔라" 는 한 마디.
그래요, K,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핵심의 말 아닐까요. 스승, 아니 부 모조차 필요없는 시대에 도대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든든 한 버팀목이 없다면 넝쿨식물들은 땅바닥에 맥없이 쓰러졌을
겁니다. '문 학 이전에 인간성' 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잊지 말아야 할 건 절대 잊지 말아야지요.
<이은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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