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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2008년 10월 14일 04시 52분  조회:3213  추천:72  작성자: 이승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둘째날 아침 조반을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임대버스를 타고 서둘러서 연변대학으로 갔다. 9시부터 민족연구원 회의실에서 학술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소식을 듣고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이 몇 분 회의에 동참했다.

전신자 교수께서 사회를 맡았고, 나의 인사말에 이어 손춘일 박사(민족연구원 원장)께서 기조연설을 해 주셨다.
그는 연변대학 출신으로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형 인물이다.

손 원장의 발표는 연변대학 개황, 조선족의 동북지역 이주사, 조선족의 공헌(항일 투쟁운동, 수전 개발 등), 최근‘동북진흥전략’에 따른 두만강유역 개발 전망에 대한 내용을 주로 했다.

연이어 토론에 들어갔다.

여러 사람들이 민족문화계승과 발전에 대하여 의견을 발표했으며, 사안에 따라 질의, 답변하는 형식으로 특별한 순서없이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을 하다보니 언어학 전공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민족언어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시대 조류에 적응하는 국제공용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내몽골 대학에서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문적인 몽골족어 교육과 중국어 교육을 병행실시하고 있는데 비해,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어학부외에는 모두 중국어로만 강의를 하고 있는점이 지적됐다.

북경 우전대학 같은데서는 소수민족을 위하여 전문적인 예비학과가 설치되어 있어서 지역별로 우수학생을 선발, 중국어 교육을 시킨 후 일정 수준이 되면 전공분야에 배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학점을 취득하고 졸업하면 출신지역으로 돌아가게 해서 분야별로 취업토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위구르족들은 위구르어만 알았지 중국어는 잘 모르므로 1~2년간 예비학과에서 중국어를 공부시킨 후 전공학과에 배치한다고 했다. 그런 반면에 조선족 사회에서는 인구 분산과 함께 중,소학교가 많이 폐지되고 있으며, 또 중국어 교육에 비해 조선어(한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변대학 같은데서는 조선족 학생들의 신입생 초생(입학전형)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지적이 계속 언급되었다.

이 점은 졸저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에서도 동일하게 지적한 내용인데, 장차 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진로를 감안할 때 중국어 교육과 더불어 조선어 교육을 보강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될 단계라고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적응하는 소수민족들의 인재 육성방안은 기본적으로 자체 민족언어를 일정 수준까지 학습해야하고 거기에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같은 국제 공용어까지 겸비한 인물로 키워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결론이 났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는 이와같은 언어 교육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학습하는 것이 그들 사회의 자체 역량을 키우고 세계화시대 현실에 대처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2시간 가량 진행 된 좌담회를 마친 후 우리 일행들은 연변대학내 주요 시설을 잠시 둘러본 후 곧장 연길시 북산가에 있는 연변과기대로 향했다.

공식적으로는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이지만, 흔히 연변과기대로 약칭해서 쓴다.

본 대학은 중국 안에서 외국인이 설립․운영하고 있는, 캠퍼스가 있는 유일한 중외합작 대학이며, 학교 안에 있는 화장터를 개조해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특별한 대학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조선족 공동묘지였던 곳이다.

과거 죽음의 땅이 이제는 중국 안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재를 키우는 생명의 땅으로 변화되었다고 해서 우리들은 이곳을‘기적의 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여명이 넘는 13개국 출신의 교직원들이 모두 자비량으로 봉사하면서 학생들을 섬기고 지역사회 발전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민박회」 일행들은 내가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고, 또 대학 설립 정신과 운영방침이 특별한 국제대학이라서 평소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가, 직접 학교를 방문하게 되니 느낀바가 컷던가보다.

시간이 없어서 버스를 탄 채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설명을 해 주었지만, 나의 설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듣고 메모까지 했다.

대학 정문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마친 후, 우리는 곧장 하남(河南) 모아산 기슭에 있는 뉴코어 식당으로 갔다.

원래 배밭이었던 곳을 야외 레스토랑으로 꾸민 아주 격조가 있고 연길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한식당이었다.

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모임이라서 그런지, 특히 여성 멤버들은 음식이 하나하나 나올때마다 사진을 찍고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냐고 종업원들에게 꼬치꼬치 묻곤했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하늘은 쾌청하고 공기가 너무나 맑았다.

일행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욱 고맙게 생각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제 백두산 행이다.

백두산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주로 이용했던 길은 안도현 돈화를 거쳐서 가는 길이다. 도로 포장이 잘 되어있고 노선이 완만하여 이용도가 높았다. 그러나 소요시간이 버스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코스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용정, 화룡을 거쳐서 두만강을 따라 가는 산복도로가 전 구간 포장 작업을 완료해서 개통 되었다고 한다. 이 길은 도로세 부담이 크지만 지름길이어서 주행 시간이 3시간 반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갈 때는 용정, 화룡 코스로 가고 돌아올 때는 안도, 돈화를 거쳐서 오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백두산 가는 일행들의 표정은 마치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 같았다.

그동안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다가 일년만에 다시 한곳에 모여 여행을 떠나니 모두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버스가 백두산 산문(山門)입구에 도착할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하고 웃고 떠들며 손뼉치곤 했다.

산문 입구에서 우리가 타고 왔던 임대버스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용주차장으로 돌아갔고, 일행들은 입장권을 구입한 후 경내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2년전부터 백두산 관광지 관리운영권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이관되었다. 관광지 시설과 경내 환경이 많이 정비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 한국에서 투자했던 시설들이 불법적으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여 지금 법적 소송 중에 걸려 있는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숙박시설이 우리가 투숙 할 예정인 천상관광호텔이다.

이 호텔은 한국의 참빛그룹(眞光集団)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위치가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다.
자연 분출되는 유황온천수로 난방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일행들이 천상관광호텔에 짐을 푼 것은 저녁 6시경이었다. 우선 온천부터하고 저녁 식사를 빨리 마치기로 했다.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막되는 북경올림픽을 백두산에서 맞이하게 된 「민박회」일행들은 모두가 구름에 떠 있는듯한 표정이다.

다들 온천수가 너무 좋다고 야단들이다.

내몽골자치구나 신장자치구에서 온 분들이 특히 그랬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기온도 낮엔 뜨거웠지만 산상에 오르니 선선하고 상쾌했다.

건물 바깥에 있는 야외용 노상 온천탕에 둘러앉아 멀리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용암이 흘러 생긴 가파른 계곡 위 푸른 하늘에 하얀 반달이 걸려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온천 후 활기에 넘치는 모습으로 남녀노소 12명이 한상에 둘러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다만, 한창 시즌인데 올림픽 때문인지 아니면 천지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지난달 폭우에 무너져 내려 당국이 등산로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관광객들이 별로 없어서 한산 할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욱 오붓하게 만찬을 즐겼다.

술은 나중에 올림픽 개막식 구경을 하면서 마시기로 하여, 간단히 식사만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얼마있지 않아 우리 일행들은 특별히 예약해 둔, 이 호텔에서 가장 넓은 단체용 온돌방으로 집합했다.

방안 한 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미리 준비해 온 맥주와 음료수, 과자, 안주거리 등을 벌려 놓았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의자들을 모아보니 12명이 모두 앉을 수 있는 숫자가 되었다. 장시간 앉아 있으려면 의자가 없이는 매우 불편한데 마침 부족함없이 준비되었다.

이제 모든게 준비 완료 되었다.

2008 북경올림픽 개막을 앞둔 호기심과 열기는 어디 북경 냐오차오 스타디움 뿐이겠는가!

백두산 천상호텔 온돌방에서 맞는 「민박회」의 올림픽 개막식은 어쩌면 문자 그대로 '백두천상'에서 벌리는 잊지못할 소수민족 올림픽 잔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북경올림픽이 개막되었다.

1908년 한 중국인이 올림픽 개최 희망을 피력한지 꼭 100년만에 ‘중국 100년의 꿈’이 꽃피는 순간이었다.

개막식 직전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VIP석에 입장하면서 장내 분위기는 뜨겁게 고조되었다.

8시 정각에 개막식이 시작되어 중국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이 이어지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중국 관중은 물론이고 행사를 진행하던 경기장의 자원봉사자들까지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돌방에서 50인치 TV를 통해 개막식을 보던 「민박회」일행들도 56개 민족의 어린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중국 국기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기인 오성홍기가 하늘 높이 게양되자 모두 일어나 숙연한 모습으로 경례를 표했다.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전 세계 8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했으며, 또한 204개 국가와 지역, 그리고 1만 50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해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선수가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모두 3부로 나눠진 개막식은 오륜기 등장 등 예식행사와 예술공연, 마지막으로 각국 선수단 입장,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등 관계자들의 인사말,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개최 선포, 성화 점화 순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올림픽 주제가는 영국의 뮤지컬 가수 세라 브라이트먼(48,女)과 중국의 국민가수 류환(劉歡,45)이 각각 영어와 중국어로‘You and Me'를 불렀다.

특히 개막식의 마지막 순서인 성화 점화가 하이라이트였는데, 그동안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21개국과 중국 국내 등 13만7000km를 달려온 성화가 최종주자인 체조 스타 리닝(李寧,45)에 의해 점화대에서 불이 밝혀지는 순간 냐오차오 스타디움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 절정에 달했다.

이날 지구촌을 하나의 꿈과 감동의 열기 속으로 몰아넣은 개막식에는 3만발의 불꽃이 터져 나와 대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며, 예술 공연의 진행 순서가 하나씩 바뀔때마다 관중들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열렬히 환호했다.

13억 인민들의 꿈을 담아 7년간 준비한 끝에 펼친 대 역사드라마, 장이모우 감독의 화려한 행위예술이 선보인 개막식 광경은 중화 부흥을 알리는 지상최대의 ‘올림픽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민박회」일행들은 특히 인문사회, 문화, 언어학 부문 전공자들이 많아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첨단 IT기술, 현란한 색조의 조명예술과 입체적인 공간연출 기법 등에 접목시켜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개막식 공연을 꾸민데 대해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

길이 70m짜리 전자 스크린 위에서 춤을 추면서 그린 그림이 하늘로 올라가는가 하면, 중국의 고대 복장과 춤을 통해 종이와 인쇄, 화약, 나침반 등 중국의 4대 발명품을 표현할때는 다들 기가 차다는 듯 숨을 죽이며 TV박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3000명의 예술단이 그려내는, 입체로 표현 된 한자들이 변환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어울릴 화(和)’자를 떠 올릴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 “和”자는 공자께서 강조했던 ‘화위귀(和爲貴)’를 가리키는 글자이기도 하고, 후진타오 주석의 정치이념인 ‘화해(和諧)’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평화(平和)’를 상징하는 글자이기도 할 테다.

“오늘밤 북경의 역사는 새로 쓰여진다. 중국은 이제 세계를 품는다.”

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8월 8일자 조간신문 사설에 나온 글이다.

중국은 개막식 공연을 통해 과연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는가?

그들이 품고 있는 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

잠자는 시자와 같았던 대륙의 혼을 깨우고, 13억 인구를 굴기(崛起, 떨쳐 일어남)의 도장으로 이끌어가는 기본 정신이 바로 ‘和’이었던가!

200여년전,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 잠에서 깨면 귀찮아질 테니까”

천하를 호령했던 ‘강한성당(强漢盛唐, 강한 한나라와 성세의 당나라)’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중국의 기대가 엿보인다.

그들은 어쩌면‘다시 일어서는 중국의 모습’을 세계 앞에 펼쳐보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패권 추구를 뜻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잠자던 사자가 깨면 사자(중국)가 조련사(서구열강)를 물수도 있다. 사자가 조련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조련사는 알지만 사자는 정작 모른다. 그러나 사자가 그 사실을 알아버렸는데도 조련사가 예전처럼 사자를 길들이려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는 내가 묻는 질문이 아니다.

10여년전 중국 신세대 지식인들이 탐독했던 초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에서 내 뱉은 경고성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차례 「민박회」 회원들에게 화두로 던져봤다.

그들의 대답을 종합해보면, 중국은 결코 패권 국가로 발전하지는 않을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북경올림픽 개막식에 담긴 기본이념은 한마디로 “和”를 뜻한다는게 중론이었다. 서영 박사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이 개막식 공연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내용은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문화대국으로서의 위용을 보임으로서 대 내외적으로 새로운 중국 부흥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문화의 기본은 “和”에 있으며, 이것은 진시황 이후 2000년간 중국 역사를 이어온 맥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현 지도부가 대외정책을 화평발전에 두고 있는것도 중국의 발전에 있어서 이 “和”의 윤리체제가 정립되지 못하면 중국은 또 한차례의 세계 냉전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렇게 되면 중국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와 EU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전략이라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이러한 의도를 세계인들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없이, 왜곡됨이 없이 받아드릴 수 있도록 만들것인가?

중앙민족대학에서 만족어를 전공했던 고와 박사가 힌트를 주었다. 그는 몽골족이지만 만족어를 전공했고 지금 중앙민족대학 중국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 언어연구소에서 만족어를 가르치고 있는 재원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은 메이저 그룹인 한족과 더불어 대 가정 국가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자원입니다. 중국 내 56개 민족의 화합이야말로 중국 체제의 키워드입니다. 중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 지구촌 사회에서 중국처럼 화합을 중시하는 나라는 없을것입니다. ‘和’자는 국제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가체제 유지를 위한 대내 정책의 핵심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지만 만일 세계인들이 중국의 이와같은 화평정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국제관계의 분쟁과 시비를 해소하는 방책으로 활용한다면 지구촌 전체의 화합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나는 전신자 교수가 통역해 주는 내용을 차분히 마음에 새기면서 중국 소수민족 정책에 대한 소수민족 엘리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진화의 악순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국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의 나라인가?

 내 마음속에 일말의 의문이 일어났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체제안에서 지역편차와 민족 성향의 다양성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화평(和平)정책을 기조로 삼는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만일 중국 지도부가 일방적인 국가권력으로 통합체제를 유지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권과 민족 단위의 자결 의식을 최대한 고양시키면서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자유주의’ 체제로 대 가정 국가를 통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
Ⅰ. 민박회
Ⅱ. 경희궁의 밤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Ⅴ. 흐름의 미학
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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