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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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
2019년 07월 16일 10시 02분  조회:1286  추천:0  작성자: 한영철
 큰 형 님
 
 
      오늘 우리는 뜻밖에 매부와 누님이 청도에 계시는 큰형님 보려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매부는 한국에서 들어오자 바로 누님을 배동하여 형님집 방문길에 오른 것이다.  이윽하여 누님이 오늘은 형님의 생일이라며 위챗에 축하 메시지를 올리였다. 오 오늘이 형님생일이였구나. 오늘은 원래 형님의 74주세 생일날이였던 것이다. 매부와 누님이 큰형님 생일 축하려 직접 청도로 간것이였다.
 
      나는 어려서 큰형님을 흑룡강형님이라고 불렀다.왜냐하면 큰 형님은 흑룡강성목단강시 목릉현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형님이란 우리와 아주 가까우면서도 또 머나먼 존재였다. 우리와 친형제인데  흑룡강성에 살고 있었고 자주 만날수도 이야기 할수도 없었다.
 

 
     형님은 현농업기술보급소에서 사업하였다. 내가 셈이 들어서 형님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신 때는 아마 20세기  70년대 초 였다. 형님은 그 당시 사업차로 해남도 출장이 잦은 편이였는데  해남도에 가서 벼종자 실험을 한다고 했다. 그때도 역시 출장길에 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연길에 석유곤로가 갓 류행될쯤 이였다.
 
     형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불의 크기를 조절하고 또 어떻게 청결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형님은 전기 목수 악기등 분야에 많은 흥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재간 많은 형님이 계시는 것으로 하여 우리는 늘 자랑스러웠다.

 
    당시 여느 집도 다 그렇게 했다 싶이 우리 집에도 벽에 사진틀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의 사진도 어울려 있었다. 그당시 사진이라도 많은 집은 역시 생활이 좋은 집 들이였다. 지금 보면 역시 자랑 항목에 속했다.
 
      우리집 사진틀에는 외태머리를 한 젊은 녀자의 큰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리집 방문하는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이 물어 본다.
  "이사람은 뉘시오?"
사진속의 주인공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 만한 이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분이 바로 나의 큰형수님이 였다. 환한 얼굴 두리두리한 쌍겹눈 그리고 새하얀 이빨을  소유한 미인이였다.
 
   내가 어려서 어머니는 단 한번 큰형님집으로 다녀왔다. 그때 언제면 어머니가 집에 돌아 오나 하고 많이 기다리였다. 날자를 맞춰 역에 나가니 평소 보다 곱게 차려 입고 까만 구두까지 신으신 어머님께서 기차에서 내리시였다. 내가 셈이 들어서는 처음 나들이 하신것이다. 어머님이 1985년도에 돌아 갔으니 그 뒤로는 다시 큰 아들집에 가보지 못했다.
 
   1976년 좌우에 큰형님이 일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왔다. 우리집에 한꺼번에 5명의 식구가 불어난것이다. 처음 보는 형수님 그리고 귀여운 조카들이다. 큰조카는 나와 동갑인 송죽이고 그 밑으로 성남이와 성만이 세명의 형제들이였다.  형님은 성격이 매우 활달 하였는데 웃으개도 잘 하였다. 그때 집집마다 정주칸 벽면에  아래와 같은 통지을 붙혀 놓았다. "오는 손님은 량표와 돈을 결산하고 가시오"
 
    이런 통지를 보던 형님은 하하 웃으시며 " 저것을 떼여 놓았다가 우리가 돌아간 다음 붙혀 놓으라"고 하였다. 우리 연변에서 쌀이 귀할때 흑룡강에서는 쌀 고생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소영에서는" 베쮼의사"라는 영화를 방영하였다. 영화보려간 우리일행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뉘집 자식들인가고 물어 보았다. 나는 자랑스럽게 나의 조카들이라고 말했다. 하긴 외가집 밖에 모르던 나에게 불씨로 이처럼 많은 친척이 생긴것이다.
 
      1982년 나는 난생처음으로 큰형님집을  바라고 길을 떠났다. 목릉현 팔면통진 보흥촌으로 떠나간 것이다. 그때 내 나이가 18세였다. 우리집에서는 자식이 18세가 되면 팔면통에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팔면통에 갈려면 우선 계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문에 도착한 다음 목도(牡图)선으로 갈아 타야 한다. 목단강역에 도착하면 또 동방홍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바꾸어 타야 하는데 한족말이 약한데다가 기차까지 두번 갈아 타야하는 로정이니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때는 여름 방학이였다.  어렵게  팔면통역에 도착하여   홈에 나오니 먼발치에서 형님의 모습이 안겨온다. 얼마나 반갑던지.  형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동생이 왔구나"라고 반긴다. 형님이 집적 오터바이를 타고 역전에 마중 나온 것이였다.
 
       기차가 연착이 되여 원래 어제 밤에 도착하기로 했던 기차가 오늘 정심때에야 도착했던 것이다. 그당시 아무런 련락도 없이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 형님의 마음이야 오죽 조급했으랴. 집에 도착하니 형수가 손방아로 찰입쌀가루를 낸다. 내가 왔다고 찹쌀가루 떡을 굽는단다. 그때 형수님 나이를 따져야 40살이 안되였다.

 
     1983년 여름방학에 나는 또 다시 형님집을 다녀 왔다. 도착하던 그날이 바로 형님의 38세 생일날 이였다. 그날 형님집에는 계서(鸡西)에서 올라온 처가편 친척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들은 내가 형님생일을  때문에 찿아 온 줄로 알고 형제우정이 깊다며 극찬하였다. 그날이 바로 36년전의 오늘이였다.   그날 형님은 작은 동생이 연길에서 왔다면서 대단히 즐거워 하시였다.  
 
    그뒤로 나는 다시 보흥촌에 가보지 못했다. 1995년 년말쯤 둘째조카 성남의 결혼식에 참가하려 목릉에 갔는데 그때 형님네는 이미 팔면통진에 이사해 살고 있었다. 앞마당에는 작으마한 채전이 있었는데 역시 농업기술 전문가답게 과일나무 몇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뒤 형님은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상하였다. 원래 튼튼하던 신체는 수술뒤로 몹시 쇠약해지였다.  기가 빠진 것이다.
 
      두명의 아들은 일자리를 찿아 먼저 청도로 갔다.  그뒤 형님도 집을 정리하고 자식들을 따라 청도로 갔다.  한뉘 살아 오던 팔면통을 떠나 올때 형님의 심정이 어떠했겠느냐는 말하지 않아도 알것 같다. 허나 어찌하랴. 자식들은 먹고 살아야하고 부모님들은 또 마지막 보탬을 해주려고 하니 말이다.

 
       2009년 겨울 나는 사업차로 상해갔다 돌아 오는 길에 청도에 들리였다. 큰형님과 형수님을 만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청도에 있는 김사장이 차로 나를 형님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어렵게 집을 찿아 갔는데 큰형님을 뵙는 순간 나는 마음이 알알해났다.
 
       과거의 힘으로 차 넘치던 풍채는 어느새 점차 사라지였다.  원래 넓던 어깨는 좁게 보였고 가슴도 엷어 지고  허리도 살짝 휘였다. 허나 호탕한 목소리만은 변하지 않았다.  "아. 동생이 왔구나"
 
       그때 형수님은 중풍후유증으로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원체 체구가 큰 형수님이였기에 운신하기가 몹시 힘들어 했다. 그뒤 2년후 나는 또 한번 청도를 찿았다. 형님 본인도  년세가 있는데 형수님 시중을 들려니 몸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아. 사람이란 이런 것이 구나. 젊어서 날아 다니며 축구를 하고 크라네트 독주를 하던 큰형님이 년세에  걸맞지 않게  먼저 로문한 것이다. 형수님은 14살 어린 나이에 공소합작사로 출근하였다고 했다. 그뒤 형님을 만나 20살에 결혼하고 남편의 뒤바라지도 해주고 아이 3명을 자래웠다. 어러가지 곤난을 다 이기여 내고 자식들 결혼까지 시켜놓으니 당신들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였다.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몇해전 형수님은  먼저 돌아가시였다. 그뒤로 형님은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고 하였다. 금년 설에 전화로 설문안을 올리니 그렇게 반가워 하시였다. "신체는 건강하냐. 공작은 잘하냐. 아들은 지금 뭘하냐" 모든것이 궁금한 큰형님이였다.
 
       오늘 큰형님의 생일을 축하하려 청도로 간 매부와 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누님이 일깨워 주었기에 형님의 생일인것을 알았고 또한 큰형님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였다.
 
큰형님 부디 건강하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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