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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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푸른 꽃
2006년 06월 22일 00시 00분  조회:6617  추천:66  작성자: 황유복
푸른 꽃

황유복


독일 랑만파의 대표시인인 노발리스(Novalis)는 1801년, 29세의 나이에 페병으로 죽으면서 "푸른 꽃(Die Blaue Blume)"이라는 소설을 남겼다. 소설의 주인공 하인리히는 꿈에서 푸른 꽃과 푸른 꽃이 변한 상냥한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를 찾아 먼 려행길을 떠난다. 마침내 아우구스부루크에서 시인 크링스오르와 그의 딸, 푸른 꽃에서 본 모습의 마틸데를 만난다. 그는 다시 마틸데가 거센 풍랑을 만나 죽는 꿈을 꾸는데 그 꿈은 현실로 변하고 마틸데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녀의 죽음은 그가 시인으로 되는 결정적인 체험으로 된다.

노발리스가 푸른 꽃을 사랑과 행복의 상징으로 선택했고 또 주인공이 그것을 찾아 먼 려행길을 떠나게 하는것을 보아 독일에서는 푸른 꽃이 너무나 희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문단의 한 수필인은 최근에 발표한 수필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장백산" 2005년 5호)에서 "푸른 꽃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우리 조상들은 왜 "하늘빛과 초록빛⟫을 구별하지 않고 합쳐서 푸른빛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푸른 꽃⟫이라면 번거롭더라도 일단 그것이 하늘색 꽃인지 초록색 꽃인지를 가릴수밖에 없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하늘색(Blaue) 꽃이 분명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하늘빛의 푸른 꽃으로는 현호색이나 염아자를 들수 있다. 현호색은 양귀비과의 독이 있는 작은 풀로 이른 봄 양지바른 숲속이나 논둑에서 연한 하늘색의 꽃을 피우는 약용으로 쓰이는 풀이다. 염아자는 도라지과의 식물로 골짜기 습지변에서 자라는데 꽃은 짙은 하늘색이다.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를 쓴 수필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푸른 꽃"은 초록색 꽃인것 같다. 글쓴이는 "꽃은 푸르른 생명의 빛갈인 초록을 피"한다면서 "수많은 꽃중에 유독 저 흔한 푸른색은 없는 리유를 다시 생각는다. 빨강, 노랑, 분홍, 하양, 감장, 보라, 주홍 그리고 알락달락 혼합 꽃"그러나 유독 파란 꽃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푸른빛 꽃을 상상해보라. 너무 기름져서 꽃이 꽃다워 보이겠는가"라고 자신의 주장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 "푸른빛 꽃을 상상"해야 할 리유는 전혀 없다. 초록색의 푸른 꽃은 현실세계에 엄연히 존재할뿐만아니라 "꽃이 꽃다워 보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그 푸른 꽃들은 "과학이 발전"하여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것도 절대 아니다.

우리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산이나 들에서 볼수 있는 고유식물중에서 초록빛의 푸른 꽃으로 가장 흔한것은 아마 천남생일것이다. 천남생과의 유독성식물로 중국 고대의 청동술잔모양의 록색 혹은 자색 꽃을 피우며 가을에는 붉은 열매를 맺는데 덩이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북경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푸른 꽃은 록색꽃 란초와 록색꽃 국화일것이다. 꽃과 잎이 모두 록색이지만 꽃의 색갈은 잎보다 좀 연하기때문에 소박하면서 운치가 있어 좋다. 홍화록엽(紅花綠葉) 의 꽃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눈에 강한 자극을 주기때문에 글을 쓰거나 책을 보다가 지친 눈을 휴식시키기에는 별로이다. 그러나 연한 록색꽃이 피는 춘란, 나비란(蝴蝶蘭) 그리고 소국(小菊), 국화는 서재에서 키우면서 눈의 피로를 가셔내는데는 일품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불교학사전"에서 수련(睡蓮)을 찾아보면 수련을 우담바라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푸른 꽃이 피는 수련을 가장 높이 치고있다. 련꽃도 푸른색 꽃을 피우는데 불교에서는 푸른색 꽃이 피는 수련을 가장 귀중하게 본다는것이다.

그보다도 우리가 가장 흔히 볼수 있는 푸른 꽃은 아마 강아지풀일것이다. 시골은 말할것도 없고 도시의 길가에서도 곧잘 자라기때문에 누구라 할것 없이 자주 만날 수 있는 풀꽃이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과 놀면서 강아지풀의 꽃차례를 따 반으로 갈라 코밑에 붙여 수염으로 삼기도 했고 또 꽃차례를 따 손바닥에 놓고 가볍게 흔들어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강아지풀 게임도 했다. 우리는 흔히 강아지풀을 보잘것 없는 잡초로 생각하기때문에 강아지풀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린다. 그러나 그토록 하찮게 보이는 강아지풀꽃에도 아름다운 꽃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옛날 로마에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료로 병도 치료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머리도 깎아주었다. 또한 그는 왕실 사람들의 치료와 리발도 맡아해주었다. 하루는 왕자가 평민들의 머리를 자르는 의사의 가위가 싫어 황금가위를 주면서 머리를 깎으라 했다. 황금가위가 잘 들리 없었고 몇올의 머리카락이 가위에 씹혀들자 왕자는 벌컥 화를 내면서 의사를 처형하겠다고 감옥에 처넣었다. 의사는 자신의 생명보다 왕자가 무고한 자기를 처형함으로써 왕자의 덕성에 허물이 생길것이 걱정되여 자결했다. 한편 부왕의 꾸지람을 듣고 잘못을 깨달은 왕자가 감옥을 찾았을 때 의사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후 의사의 무덤에 작은 풀이 돋아나 바람에 나부끼면서 긴 목을 빼들고 누군가를 향해 그건 아니라고 애처롭게 도리질을 했다. 바로 강아지풀이였다.

그 강아지풀들이 이제는 《푸른 꽃은 없다》고 하는 인간의 독선을 향해 그건 아니라고 도리질하지 않나 싶다.

"꽃이 푸른빛을 피하는 까닭을 알면 세상이 편해진다.⟫라는 담론으로 시작되는 수필 《꽃은 지고 욕망은 남고》의 짜임은 3단 구성으로 되여 있다. ①꽃은 푸른빛을 피한다(파란 꽃은 없다) ②그 까닭을 알면 ③세상이 편해진다. 그런데 론술의 대전제로 되는 ①⟪파란 꽃은 없다⟫는 판단이 완전히 틀리기때문에 ② 푸른 꽃이 없는 까닭에 대한 론리의 전개는 공중루각일수밖에 없고 ③ ⟪세상이 편해진다"는 결론도 무효일수밖에 없다.

그리고 론술과정에 "꽃은 여러 식물중에서도 유독 생명력이 짧다"라는 주장도 보이는데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여서 리해가지 않는다. 꽃을 식물의 한 종류로 분류할수 있단 말인가? 꽃은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에게 있어서 생명의 한 순간일뿐이다.

론술형 수필을 쓰면서 잘못된 판단을 대전제로 삼은 글들이 가끔 보인다. 수필 《팔이 안으로 굽혀지는 리유》("도라지"2005년 제5호)에서 글쓴이는 "조물주는 왜 인간에게만 안으로 굽히는 팔을 선사했을가"라는 질문으로 론리를 전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물주"가 인간뿐만 아니라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이나 원숭이들에게도 "안으로 굽히는 팔을 선사⟫했음은 유치원어린이들도 다 알고있는 상식이라는 점이다.

과학철학자 어니스트 네이글은 "과학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상식이란 코앞의 헛간을 총으로 쏘아 맞히는 정도의 헐렁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지식이라고 했다. 누구나 다 알고있는 "헐렁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지식"조차 올바르게 쓰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꽃은 인간을 위해 피는것이 아니다. 꽃은 자기 종족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피여난다. 렬악한 환경에서 피여난 야생화일수록 꽃의 색갈과 향기가 더 짙어진다는것은 너무 어렵게 만나는 벌이나 나비들을 놓치지 않고 유혹하기 위하여 한껏 꽃의 매력을 발산하기때문이다. 꽃을 피우는것은 절박한 상황에서 종족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식물들의 처절한 몸짓이다.

그러한 꽃을 바라보면서 인간들이 정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된다. 한떨기의 작은 풀꽃들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전설이나 꽃말을 만들어주는것은 인간의 랑만이다. 보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작은 풀꽃 하나라도 생명이 소중하다는 리치를 알고 그 꽃들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이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으니 이런 혹은 저런 꽃은 없다든지 내가 싫어하는 색상의 꽃은 없다는, 상식조차 무시한 인간의 독선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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