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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공룡 세계의 탐험- 코난 도일 지음김 상일 옮김
2023년 08월 23일 13시 11분  조회:327  추천:0  작성자: 강려
공룡 세계의 탐험- 코난 도일 지음김 상일 옮김 / 권 오웅 그림
 
 
이 전집을 펴내면서
 
눈 가득 다가오는 푸른 하늘, 밤이면 뭇별이 꿈처럼 반짝이는 하늘, 혹 여러분은 그 무한한 공간에 어떤 세계가 있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땅 속, 바닷속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이미 오래 전에 이런 호기심이 싹터, 공상 과학 소설(SF)의 개척자 쥘 베른은 달에 인간을 착륙시키고, 바다 밑 2만리를 '노틸러스 호'로 여행시켰습니다.
그 뒤, 상상 속의 일들은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SF는 고도의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신비한 우주 현상을 추적하고 과학 기기를 사용하는 등, 시대를 앞장서서 이끄는 과학적 사고 소설로 성장했습니다.
SF는 땅 속이나 바닷속은 물론 아득한 우주 공간이며 과거와 미래의 시간 속으로 인간을 여행하게 하여, 과학적 흥미와 함께 미래를 살아가는 힘을 길러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SF가 과학적인 면에만 치우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외계인과의 진정한 우정, 로봇끼리의 참다운 사랑 그리고 정의의 실현 등, 영원한 꿈과 환상이 펼쳐지고, 훈훈한 사랑이 꽃을 피웁니다.
《주니어 공상 과학 명작선》은 바로 과학의 시대, 우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미래를 이끌어 갈 여러분의 머리를 훈련시키고, 그 때를 위해 값진 예언을 들려 줄 것입니다. -- 편집 위원회
<차 례>
 
특종 기사를 찾아서··············· 5
교수와 대결하다················ 12
거짓말 같은 이야기··············· 17
뜻밖의 상황·················· 24
아마존의 오지로················ 32
나타난 뜻밖의 인물··············· 38
통나무 배로 바꾸어 타고············ 43
인디언의 공격의 북 소리············ 47
다투는 교수와 박사··············· 53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60
수수께끼의 해골················ 66
나타난 테라노돈················ 75
고메즈의 배신················· 82
끔찍한 발자국················· 92
덤벼드는 테라노돈··············· 98
어둠 속에 떠 있는 괴물············ 106
원숭이냐, 인간이냐?·············· 116
추격해 온 공룡················ 124
사라진 친구들················· 132
위태롭다! 사마리 박사············· 139
목숨을 건지다················· 148
원인과 인디언의 싸움············· 154
하늘을 나는 경기구(輕氣球)·········· 165
마침내 탈출구를 발견하다··········· 172
대환영···················· 180
믿을 수 없는 탐험 보고서··········· 186
증거, 살아 있는 테라노돈··········· 192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197
 
작품 해설··················· 201
 
특종 기사를 찾아서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그렇다, 먼저 내 소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나는 영국에서도 가장 유력한 신문으로 알려져 있는, 런던의 《데일리 가제트》 신문의 젊은 기자이다. 이름은 에드워드 머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아직 신출내기 신문 기자이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굉장한 기사를 발표하여 세상을, 아니 독자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그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여러분에게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그런 이야기인데, 사실은 나 스스로도 처음 얼마 동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인 여러분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내 자신이 이 눈으로 보았고,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군소리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자.
 
"머론, 잠깐......."
외근(外勤)을 마치고 편집국으로 돌아온 내 모습을 발견하자 편집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불러 세웠다.
편집국장-맥커돌 씨는 곱사등이처럼 허리가 굽은데다 붉은 머리카락이다. 대머리로, 얼른 보아 그다지 잘생긴 사람은 아니지만 신문 기자로서는 오랜 경험이 있는 실력이 풍부한 전문가였다. 나는 이 편집국장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있다. 그래서 월급(月給)에 비하여 너무나 바쁜 이 신문사에 아무 말 없이 참고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앉아요, 머론."
"예, 실례하겠습니다."
"어떤가, 뭔가 재미있는 사건이 없나?"
"요즈음은 세상이 정말 조용해서요. 위험이나 모험 따위는 도무지 없어요. 국장님. 무엇인가 어려운 사건은 없나요?"
"이봐, 그걸 찾아내는 게 기자들이 할 일이 아닌가. 아무튼 말이야........."
편집국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자네, 현대판 허풍선이 남작 얘기를 알고 있겠지?"
"유명한 동물학자 챌린저 교수 말인가요? 텔레그래프 신문사의 브라운 기자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하는?"
"알고 있군. 그 사람인데, 수완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야. 어떤가, 한번 만나 보지 않겠나?"
"예, 부딪쳐 보겠습니다."
"그 교수는 우리들 신문 기자를 현재까지 네 사람이나 상처를 입혔지. 게다가 진짜 사기꾼 같아. 그러니까 엉터리지. 신문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그 교수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어. 그 정체를 폭로하여 가짜 껍데기를 홀랑 벗겨 주어야겠단 말이야. 어떤가, 자네 한번 해 볼 생각이 없는가?"
"그러나 챌린저 교수에 대해서 소상하게 아는 바가 없는 걸요."
"그럴 줄 알고 여기에 메모를 해 놓았으니까 읽어 봐."
편집국장은 서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조지 에드워드 챌린저. 1863년 스코틀랜드의 라그스에서 출생하였다. 에든버러 대학 졸업. 1892년 대영 박물관 조수. 1893년 비교 인류학부 부부장(副部長). 그 해에 동물학 연구에 의해서 크레이튼 상(償)을 받았다. 해외 학술원. 소시에테 베르즈 회원. 미국 과학 협회 회원. 고생물학 대영협회(大英協會) 역사부원. 저서는 《칼무크 족의 두개골 연구》, 《척추 동물 진화 요강》, 《와이즈먼 학설의 과오》, 그밖에 동물학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취미는 등산. 주소는 런던 서구 켄싱턴 엠모어 공원......'
 
"경력은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또 무슨 일을 했나요 ? 제가 만날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별안간 편집국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편집국장은 곧 침착을 되찾더니,
"교수는 2년 전쯤 혼자 남아메리카에 갔다가 작년에 돌아왔지. 남아메리카에 들른 것은 확실한데, 어딜 갔었는지는 모르네. 어쨌든 뜻밖의 사건에 부딪혔을 거라고 하는데, 그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거지. 아무튼 무뚝뚝한데다, 꼬치꼬치 캐묻는 신문 기자를 계단에서 밀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니까 말이야. 머론, 자네도 충분히 조심을 하게. 부상을 입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하며 염려스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오히려 힘이 솟는다.
"제게 맡겨 두십시오, 국장님. 좌우간 부딪쳐 보겠습니다."
일어서서 문 쪽으로 나가는 나에게 편집국장이 뒤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으나, 이미 나는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문사를 뛰쳐나온 나는 걸으면서 조금 전에 편집국장에게서 받은 챌린저 교수에 관한 메모를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리고 이 일이 꽤나 어려운 작업이 되리라고 짐작했다.
'챌린저 교수는 꽤 고집쟁이인 모양이지. 게다가 신문 기자들을 싫어해, 조심하지 않으면 곤란할 거다!'
그래서, 나는 먼저 과학자들이 모이는 클럽에 들르기로 했다. 클럽에 들어서자 우연히도 자연 과학에 관한 신문을 만드는 신문사에 근무하는 헨리 선배가 있었다.
얼른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헨리 씨, 안녕하십니까. 잠깐 묻겠는데, 챌린저 교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죠?“
곧 헨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토해 내듯이 대답했다.
"대단한 허풍선이야. 몇백만 년이나 전에 이 땅 위에서 사멸해 버린 공룡이라든지, 익수룡이라든지, 또 쥬라기의 대 파충류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곳을 남아메리카에서 발견했다는 거야. 우리들 신문 기자를 집합시켜 자기 얘기를 믿도록 하려 했었어. 물론, 누구 하나 상대하지 않았지만 말일세. 그러자 교수는 신경질을 부리더니 그 후부터는 그 발견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말았어. 아마 자기의 허풍이 부끄러워서 잠자코 있는 것 같네."
헨리 선배 자신도 전혀 믿고 있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어,
"그리고 또 없나요?"
하고 다그쳐 물었다.
"응? 아, 자네도 알겠지만 내 전문은 세균학이야. 인간에 대해선 별로 시비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학자들 모임에서는 챌린저 교수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물학자로서의 그는 훌륭한 모양이야. 머리도 좋다는군. 다만 성미가 급하여 금방 노골적으로 흥분을 하지. 그리고 적잖게 허풍을 치며, 아마존 사건에서는 사진 위조까지 했고, 최근에는 빈 학회에서 와이즈먼 씨의 진화론을 공격하여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지."
"그 빈 사건을 간단히 말해 줄 수 없어요?"
"한 마디로 설명할 순 없어. 그렇군, 신문사에 자료집이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그걸 보러 오게."
"예, 부탁합니다."
선배의 호의로 나는 그 자료를 보러 그의 신문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자료집―다윈과 와이즈먼―에 있는 논문은, 나와 같이 과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문장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영국을 대표하는 챌린저 교수가 유럽 대륙의 과학자들의 의견을 낱낱이 부정하고, 그 때문에 빈 학회가 큰 혼란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된 논의(論議)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교수와의 인터뷰를 단념할 만큼 소극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선배의 신문사 이름을 빌어 챌린저 교수 앞으로 지도를 받고 싶다는 편지를 발송한 것이다.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나는 매일 선배 회사에 들렀다. 물론 교수로부터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은 답장이 없었다. 그 다음 날도 없었다.
'이거 편지 쓰는 법이 서툴렀나? 인터뷰를 하지 못한다면 편집국장을 만날 면목이 없잖아........'
하고 생각하면서 사흘째에 선배 회사를 찾아갔다가 나는 무척 반가워했다. 교수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던 것이다. 자리를 옮겨 봉투를 뜯어보았더니,
'오늘 11시에 만나러 와도 좋습니다........'
라고 답장에 씌어 있었다.
나는, 됐다! 싶었다. 어쨌든 이제 신문 기자를 싫어한다는 챌린저 교수를 만나야겠다는 첫 번째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약간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답장의 문면(文面)이 정말 투박했고, 더욱이 글씨체도 아무렇게나 마구 갈겨 쓴 점이었으나, 이 때 나는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기대 뿐으로 딴 일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교수와 대결하다
 
교수의 답장을 받은 것은 10시 반이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황급히 교수 집으로 갔다. 택시가 선 곳은 대문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앞이었다.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얼굴이 검고 몹시 메마르고 키 큰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내는 내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누구시죠? 무슨 용무입니까?"
"예, 나는 머론이라는 학생입니다. 교수님과 면회 약속이 돼 있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오셨나요?"
나는 챌린저 교수에게서 받은 편지를 그 사내에게 보여 주었다.
"좋아요. 들어와요."
이리하여 나는 어렵게 기인이라 할 수 있는 챌린저 교수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교수의 방은 과연 학자다운 서재였다. 사방의 책장에는 난해하게 보이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로서는 그 제목조차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책들이었다. 책장에 꽂히지 못한 책들은 큰 탁자 위에 지도나 괘도 따위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탁자의 건너편에 회전 의자가 있었고, 그 의자에 한 사람이 위엄 있게 앉아 있었다.
챌린저 교수이다. 그 모습을 한눈에 본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황소 같은 큰 몸집, 널찍한 이마, 두툼한 눈썹, 남을 꿰뚫어보는 듯한 파란 두 눈동자, 앞가슴까지 늘어뜨린 턱수염, 어깨는 넓고 가슴은 통나무처럼 두꺼웠다. 게다가 양팔이 굵고 길었으며, 더구나 손목에는 검은 털이 촘촘히 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교수에게서 받은 편지를 조심조심 탁자 위에 살며시 놓았다.
"아, 편지를 보낸 젊은이로군."
교수는 별안간 포효하는 듯한 음성으로 말하며 내 얼굴을 응시했다.
'이거 대단한 상대로구나. 어물어물하다가 큰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했으나 기분을 가라앉히고,
"예, 그렇습니다, 교수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챌린저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동물학 따위에 대해서 아무 기초 지식도 없는 나는 어떻게 말머리를 꺼내야 할 것인지 아찔했던 것이다.
우물거리고 있는 내 모습에서 교수는 금방 나의 위장술을 간파한 모양으로,
"나와 두뇌 시합을 하러 온 거야, 이 풋내기 기자가!"
하고 말하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일어선 모습을 본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교수는 몸집이나 얼굴 생김새와는 딴판으로 신장이 내 어깨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키만 보면 어린이와 같았다. 그런데 번쩍거리는 눈은 분명히 성이 나 있다. 그것도 보통 성이 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네 신문 기자들에게는 절대 방문하지 말라고 일러 둔 바가 있어. 당신은 이 따위 엉터리 편지를 보내어 나를 기만했을 뿐 아니라, 뱃심 좋게 찾아오기까지 했어. 찾아온 이상은 각오가 돼 있겠지!"
나는 그 순간 꿀꺽 하고 또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곧 응수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얻어맞거나 하진 않을걸요!"
하면서 뒤로 물러선 나는 뒤쪽의 문을 활짝 열었다.
교수는 탁자를 돌면서,
"뭐? 당신은 내게 얻어맞지는 않을 거라고?"
하고 말을 마치자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 쪽으로 접근해 왔다.
"나는 말이야, 지금까지 당신네 신문 기자들을 벌써 몇 녀석이나 이 집에서 몰아 냈어. 당신을 포함하여 넷인가 다섯 사람일 거야!"
"교, 교수님. 난폭한 행동은 삼가 주십시오. 교수님이 난폭해지시면 저도 그냥 당할 수만은 없잖습니까. 저는 럭비 선수 였으니까요....."
이 순간이었다. 챌린저 교수가 별안간 내게 덤벼 온 것이다.
"닥쳐!"
"앗!"
서로 상대편을 붙잡은 채 교수와 나는 방문 밖으로 밀려 나왔다.
조금 전에 내가 방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함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끝에 거리에까지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맛이 어떠냐, 이 풋내기 기자야!"
"뭐라고! 덤빌 테면 덤벼라!"
나와 교수는 서로가 욕설을 퍼부으며 겨우 일어섰다. 또 한 번 주먹다짐을 하려고 손을 들었을 때, 마침 운수 좋게 순찰을 하던 경찰관이 지나가다가 살기가 서린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게 뭐요, 점잖지 못하게!"
얼굴을 찌푸린 채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경찰관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오?"
"이 사람이 먼저 나를 쳤소."
"당신이 이 사람에게 폭행을 가한 거요?"
경찰관의 질문을 받은 교수는, 헐떡이며 어깨로 숨을 쉬고 있을 뿐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자 경찰관은 약간 준엄하게,
"또 했군요, 선생. 당신은 요전에도 이런 소란을 피우셨어요. 저것 보시오, 이 청년의 눈꺼풀에 멍이 들지 않았소."
하고 경찰관은 내 쪽으로 돌아서자,
"여보시오, 당신은 챌린저 교수를 고발하겠소?"
이런 질문을 받게 되자 나는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어리석게 소란을 피운 자기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아닙니다, 내가 나빴던 겁니다. 교수님의 연구를 방해했어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경찰관은 손에 든 수첩을 주머니에 넣었다.
"알았소. 어쨌든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범하지 마시오. ........ 아, 다들 물러나요! 다들 돌아가시오!"
모인 구경꾼들을 손짓을 하며 해산시키던 경찰관은 교수에게,
"아시겠습니까, 요 다음엔 절대 용서치 않겠소. 점잖지 못하게시리........“
이렇게 말하며 경찰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
 
교수와 나는 거리에서 잠깐 동안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교수의 눈에서는 조금 전에 있었던 노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음성만은 여전했다.
"들어와, 당신과의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고 악을 쓰듯이 말하고 벌써 자기 혼자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뜻밖의 교수의 말에 나는 내심 약간 놀랐으나 직업상의 의무도 있었으므로 아무 말 없이 교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아까 교수와 함께 굴러 떨어진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아무튼 거기 앉아요! "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했으나, 교수의 눈초리는 결코 나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의 경찰관에 대한 내 대답이 교수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 같았다.
그 증거로는 말투가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 것이다.
교수는 내 얼굴을 응시하면서,
"당신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신문 기자치고는 좀 보기 드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만은 특별 대우를 하겠소. 그러니까 말이야, 당신이 거짓 수법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한 진짜 목적, 곧 남아메리카 여행의 진상을, 특히―알겠소? 특히 당신에게 들려 줄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만 미리 일러두겠소. 내 얘기를 듣고 나의 비평을 하면 안 돼요. 또 내 허락을 받지 않고 딴 사람에게 얘기를 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신문 따위에 절대로 발표하면 안 됩니다. 어떻소, 약속할 수 있소?"
"예, 저는 신문 기자니까 교수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적이 어려운 노릇일 겁니다. 하지만 저도 사내입니다.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좋아, 당신을 믿겠소. 되풀이하지만 절대로 약속을 지켜 주시오."
교수는 일어서자 방문을 새삼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리고 다섯 시간 가량이나 나는 챌린저 교수가 강조하는, 절대 비밀을 지켜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것은 정말 내가 일찍이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나는 몇 번이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묘해지곤 했는지 모른다.
나를 놀라게 한 교수의 이야기란 다음과 같다.
챌린저 교수는 2년 전에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오지로 아마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조사하러 갔었다.
그 근방에는 지도에도 없는 많은 지류가 밀림 속을 누비며 흐르고 있었으며, 그 연안은 아직 일부분밖에 탐험되고 있지 않은, 문자 그대로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그 근처에서 동물 분포 조사를 뜻대로 할 수 있었소.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때마침 하룻밤을 어떤 인디언 부락에서 보내게 되었소. 그 곳은, 가던 길에도 묵으면서 추장을 비롯하여 몇 사람 토박이들의 병을 치료하여, 크게 인기를 얻었던 마을이었소, 내가 돌아온 것을 보자, 인디언들이 손짓으로 추장의 집에 중환자가 있다고 알리는 거였소. 그래서 서둘러 추장 집으로 갔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병자는 막 숨을 거둔 뒤였소. 그리고 놀란 것은, 그 병자가 토박이가 아니라 백인이었던 겁니다."
챌린저 교수는 완전히 기분이 회복되어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신기한 그 이야기에 가슴 설레면서 온몸이 귀가 되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인디언들이 들려주는 말에 의하면, 그 백인은 그 지방에서 보지 못했던 사람으로 밀림 속을 헤매며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이 마을에 다다른 모양이었소. 누더기를 걸친 것으로 보아 고통스러운 여행이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백인이 남겨 놓고 간 부대 안에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 레이크 거리의 메이플 화이트라고 주소 성명이 씌어 있었지요. 물건은 노트 한 권, 스케치북, 그리고 그림물감 상자, 권총 한 자루,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책상 위에 놓고 바라보는 구부러진 뼈뿐이었소."
교수의 책상 위에는 누더기처럼 된 스케치북이나 동물의 큼직한 뼈, 그리고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안개가 낀 사진 따위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나는 막연한 기분으로 스케치북을 들고 책장을 펼쳐 보았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본 순간, 나는 별안간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짐승의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머리는 새와 같고, 허리께는 도마뱀, 울퉁불퉁 비늘이 돋아난 길쭉한 꼬리, 등에는 수탉의 볏 같은 것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 곁에 서 있는 난쟁이와 같은 인간과 크기를 비교해 볼 때 여간 거대한 동물이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교수의 설명이 더 기묘했다.
"이 그림은 메이플 화이트-그 사망한 백인이, 실제로 있는 동물을 보고 그린 것임에 틀림없어요. 아니, 분명 그래요."
교수의 말에는 무엇인가 자신이 넘친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럴 수가 있는 것일까? 이 동물은 쥬라기라는 아주 옛날에 있었던 공룡과 같았다. 쥬라기란, 지금으로부터 몇억 년 전의, 아직 지구상에 인간이 없었던 시대를 가리킨다. 그런 시대의 동물이 현재도 살아 있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진지하게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교수 자신이 자기 눈으로 목격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교수는 아마존의 인디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클루프리라는 악마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결심한 끝에, 싫어하는 토인들을 설득하여 안내인을 데리고 클루프리가 살고 있는 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챌린저 교수는 이야기를 하면서 책상 위에 해묵은 사진과 스케치북의 풍경을 펼쳐 보였다.
"이걸 보시오, 이것이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는 낭떠러지요. 이것이 뾰족한 바위요. 보시오, 바위 위에 큰 나무가 있잖소."
아닌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진과 스케치에 그려져 있는 풍경은 분명히 같은 것이었다.
양쪽을 비교하고 있는 나에게 교수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도중에 내가 타고 있던 배가 전복했었지. 모처럼 찍은 필름이 전부 못 쓰게 돼 버렸어, 한 장 남은 이 사진도 보다시피 흐릿하고 말이야."
교수는 여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교수가 촬영했다고 하는 사진을 자세히 보니 나무에 무엇인가 새와 닮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펠리컨인가요?"
하고 묻자, 교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큰 소리로 웃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펠리컨이 높은 나무 위에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건 새가 아닙니다. 파충류지요. 테라노돈(익수룡,翼手龍)이라는 것으로서 나는 이걸 총으로 맞춘 적이 있었소. 어때, 놀랐지요!"
"그럼, 교수님은 현재 그걸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 유감스럽게도 이것도 날개의 일부분뿐입니다. 아까 얘기한 바와 같이 배가 전복되었을 때 이 귀중한 노획물을 잃어버린 겁니다. 날개만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에 찢겨져 내 손에 남아 있게 됐지요."
챌린저 교수는 못내 아쉬운 듯이 이렇게 말하며 테라노돈의 날개라는, 박쥐와 같은 날개를 펼쳐 보였다.
"굉장하군요. 이런 신바람 나는 얘기는 처음입니다!"
나는 외쳤다.
교수는 더욱더 신명이 나서 그 당시의 탐험 이야기를 내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신문에 그 탐험담을 싣지 못한다.
왜냐 하면 나는 챌린저 교수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거나 발표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던 것이다.
 
뜻밖의 상황
 
교수는 상대편의 생각을 간파하는 특이한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실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떻소, 오늘 밤 동물학회의 강당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학자 월드런이 《연대(年代)의 기록》이라는 강연을 합니다. 월드런은 일단 그 방면에서는 알려진 인물이니까 오늘밤의 청중은 제법 많을 겁니다. 과학자가 아닌 당신에게는 학술적인 강연은 약간 재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으나, 주최자의 부탁을 받아 하게 될 나의 강연자에 대한 감사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나를 새삼 재평가하게 될 거요."
교수의 말에는 무엇인가 까닭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느낀 나는,
"예, 꼭 참석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날 밤의 강연회에 참석한 일이 이후의 내 운명에 큰 문제를 일으키리라고는 그 때는 미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강연회는 밤 8시 반 부터 였으므로 그 때까지의 시간을 때울 셈으로 나는 클럽에 갔다. 선배인 헨리에게, 챌린저 교수와의 면담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보고라고는 하지만 교수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대강의 내용을 약간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예의 증거가 되는 뼈와 사진으로, 교수의 의견을 믿을 수 있다는 내 생각에 대해서 헨리는 크게 웃었다.
"자네, 돌지 않았지? 그런 굉장한 큰 발견을 했으면서 증거품을 잃어버렸다니 너무 어리석지 않나. 모두가 엉터리야. 지어 낸 얘기지."
"그럼, 메이플 화이트는?"
"교수가 만들어 낸 인물이야."
"하지만 그의 스케치북을 봤어요."
"교수의 스케치북이겠지, 그건."
"그러면 카메라로 찍은 테라노돈은?"
"그것도 교수의 말 뿐으로, 실제는 황새나 무슨 새 따위를 자네에게 그렇게 믿도록 말한 거야."
"그러면 뼈는 어찌 된 것일까요?"
"아마, 어딘가의 쓰레기통에서 주워 왔겠지. 사진과 마찬가지로 뼈도 적당한 가짜를 가지고 남을 속일 수 없는 건 아니지."
헨리 선배에게서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자신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를 도무지 상대해 주지 않는 헨리를, 그 날 밤의 강연회에 데리고 가는 일만은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직접 교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떻게 해서든지 교수를 믿게 하고, 또 내 생각이 전혀 잘못만은 아니란 것을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강연회장은 학자뿐 아니라 학생이나 일반 사람들도 많이 참석하여 만원이었다.
월드런 박사의 강연은 청중을 배려했기 때문이었는지, 누구에게나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테마는 《연대의 기록》- 풀이해서 말하자면 세계의 시작, 굉장한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들 인류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 지구상에서 그 모습이 사라져 버린 그 무서운 도마뱀 따위가........."
월드런 박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이의가 있소!"
별안간 청중의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강연자인 월드런 박사는 그 소리를 무시하는 듯이 새삼 천천히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인류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 지구상에서 모습이 사라진 그 무서운........"
"이의가 있소!"
두 번이나 발언이 있었기 때문에 점잖은 월드런 박사는 잠깐 말을 중단하고, 객석의 가운데쯤에서 손을 높이 든 발언자 쪽을 보았다.
그러나 곧 싱긋 웃더니,
"방금 발언한 사람은 당신이었지, 챌린저 교수?"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청중은 모두 웃었다.
강연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월드런 박사가 옛날 옛적의 생물에 대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면 그 때마다 챌린저 교수는,
"이의가 있소!"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것이 너무 빈번히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학생들까지 재미있어하며 그런 대목에 이르면,
"이의가 있소!"
하고 모두 악을 쓰는 것이었다.
월드런 박사도 마침내 화를 내며,
"챌린저 교수, 쓸데없이 훼방을 놓지 말아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챌린저 교수도 질세라 악을 썼다.
"아니, 그건 내가 할 소리요. 사실과 다른 말씀을 삼가하시오!"
이러한 입씨름이 단서가 되어 강연장 안은 별안간 소란스러워졌다. 사회자는 당황하여 손을 흔들며 외쳤다.
"챌린저 교수. 당신의 의견은 박사의 강연이 끝난 후에...... 제발........"
이리하여 강연은 계속 강행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외침 소리에 기분이 상한 월드런 박사는, 강연 내용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결론까지 마치기 전에 연단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월드런 박사가 좌석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챌린저 교수의 차례가 되었다.
천천히 일어선 교수는 작달막한 몸집으로 성큼성큼 연단으로 올라갔다.
회장에서는 청중의 외침 소리가 더욱 높아져 갔다. 그러나 교수는 그런 소란 따위는 아랑곳없이, 월드런 박사가 설명한 바 있는, 인류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모습이 사라진 그 도마뱀...... 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쥬라기 때에만 생존했었다고 생각되고 있는 이들 생물은 현재도 역시 이 지구상에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짓말이다!"
"증거 있느냐!"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그러자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방금의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나는 이 눈으로 실제로 그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엉터리다!"
"사기꾼! 물러가라!"
회장은 이미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장판이었다.
그러나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회장에 넘치는 사람들을 구석구석 노려보는가 싶더니 별안간 포효하는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믿는다면 스스로 답사해 보시오! 아무라도 상관없어요. 두, 세 사람을 선발하여 그 장소에 실제로 가서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회장은 고요해졌다. 그러자 이 때 키가 크고 메마른 한 사나이가 벌떡 일어섰다. 비교 해부학자로서 유명한 사마리 박사였다.
"챌린저 교수, 당신이 방금 말한 사실을 2년 전에 아마존 강 상류 지방을 여행하셨을 때 목격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장내는 새로이 시작된 결전의 결과를 들으려고 아주 고요해졌다
"아마존 강 유역은 이미 많은 학자나 탐험가들에 의해서 다 조사가 끝난 고장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건 약간 이상한 얘기가 아니오?"
비꼬는 듯한 이 질문에도 챌린저 교수는 침착하게 응수했다.
"사마리 박사, 당신도 아실 겁니다. 아마존 강은 이 템즈 강처럼 잔잔하게 조사를 마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잖습니까?"
회장에서 박수 소리가 약간 났다. 그러나 이 정도로 물러설 사마리 박사가 아니다.
"물론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챌린저 교수, 당신이 그 생물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셨다는 그 장소가 어딘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명확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학문의 연구를 위해서 아마존으로 조사를 하러 가실 분이 있으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장소를 가르쳐 드리겠소. 어떻습니까, 사마리 박사. 내 얘기를 그렇게 의심하신다면 당신 자신이 답사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가보겠소!"
사마리 박사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회장에서는 곧 박수 소리가 요란스럽게 일었다.
나는 이 박수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하는 동안에 완전히 흥분하게 되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신문 기자다! 신문 기자는 남이 모르는, 새로운 사건을 재빨리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큰 임무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벌써 일어서고 있었다.
"가겠습니다, 나도! 데일리 가제트 신문의 기자 에드워드 머론입니다. 나도 참가하겠소!"
그러자 키가 크고 메마른 사람도 일어섰다.
"당신은?"
하고 질문을 받은 이 사람은 조용히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존 록스턴."
"와, 와!"
하고 회장을 메운 청중들로부터 일제히 경탄의 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것도 당연했다. 존 록스턴이라고 하면, 영국에서는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귀족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만이 아니라 탐험가로서, 스포츠맨으로서 그 이름은 국외에까지 알려져 있었으며, 특히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의 탐험에는 몇 번이나 갔었던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학자, 탐험가, 게다가 신문 기자인 나 등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챌린저 교수가 2년 전에 들러서 분명히 목격했다고 하는, 문제의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아마존 탐험대>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아마존의 오지로
 
이 날 밤 나는 맥커돌 편집국장에게 강연회장에서의 경위를 모두 보고했다.
밤늦게까지 상의한 결과 나는 탐험 상황을 편지의 형식으로 편집국장에게 보고하되, 그것을 신문에 싣는가의 여부는 챌린저 교수의 희망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나는 벌써 이 이상 직접 여러분과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신문사의 신문을 통해서 여러분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전대 미문의 탐험에 참가하기까지의 경위를 쓴 수기를 나는 편집국장에게 맡겨 두었다. 만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 탐험이 기도된 경위의 기록만은 남게 되는 셈이다. 나는 이 마지막 몇 줄을 기선 <프랜시스카 호>의 객실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게 있어서 그리운 고향의 추억이 되는 하나의 정경을 쓰고자 한다.
런던 특유의, 안개 짙은 늦봄의 아침이다. 차가운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고무로 된 비옷을 입고 우리 세 사람-사마리 박사, 록스턴 경, 그리고 나 등 세 사람은 선창을 지나 큰 기선 쪽으로 걸어갔다. 트렁크나 외투, 소총의 케이스 따위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는 짐꾼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다리를 끌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사람은 사마리 박사, 뭔가 새삼스럽게 뉘우치고 있는 듯했다. 메마르고 단단한 얼굴을 헌팅 캡과 머플러 속에 반짝이면서 야무진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 것은 록스턴 경이다.
우리 세 사람이 기선 근처까지 왔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돌아보니까 환송하러 나온 챌린저 교수였다.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두세 가지 얘기해 둘 게 있소이다. 아니, 여러분이 이 여행을 떠나게 됐다고 해서 구태여 내가 생색을 낼 생각은 없어요. 여러분이 어떤 보고를 가지고 돌아오건 사실은 사실입니다. 나도 동행을 했으면 좋겠는데 당분간 손을 놓을 수 없는 연구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의 고장을 찾아갈 길 안내도가 이 봉투 안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지시대로 여행하시오.
다만 이 봉투는 아마존 강의 중류에 있는 마나우스라는 고장에 도착하여, 봉투의 겉에 씌어 있는 날짜와 시간을 바르게 지키고 나서 그 시간이 되면 개봉하시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여러분이 꼭 이 조건을 지켜 주시기를 나는 당부하는 것이오.
그런데 머론, 당신이 보내 올 통신문에는 아무 제한도 두지 않겠소. 사실을 전하는 것이 신문 기자인 당신이 이번 여행에 참가한 목적일 테니까. 다만 목적지의 바른 위치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공표하지 말기를 바라오.
록스턴 경, 당신은 과학에 대한 지식은 영점이나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당신 앞에 펼쳐져 있는 사냥터에는 반드시 만족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소. 당신은 아마 솜씨가 좋은 총을 사용하여 하늘을 나는 파충류를 맞추었다고 하는 경험담을 수렵 잡지에 기고하는 찬스를 얻을 수 있을 거요.
끝으로 사마리 박사, 나는 잘 모르지만 당신이 만일 수양을 더 쌓으려고 한다면 귀국 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현명해져 있을 것이오.
그럼 여러분, 잘 다녀오시오!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겠소이다!"
챌린저 교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가 할 말만을 마치고 한 통의 봉투를 우리에게 건네주자 획 뒤돌아 섰다.
그리고 1분 뒤에는 그 특징적인 네모꼴의 몸집을 흔들면서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를 태운 프랜시스카 호는 출범의 징 소리를 신호로, 닻을 올리자 영국 본토를 뒤로하고 저 멀리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로에 들어선 것이다.
바다는 잔잔했고, 우리는 무사히 파라 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배를 바꾸어 타고, 아마존 강 흙탕물의 흐름을 약 1천 6백 킬로미터나 거슬러 올라가 마나우스 시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다.
우리는 영국 브라질 무역 회사의 사장 쇼트맨 씨 덕분에 시골 여관에 묵지 않아도 되었다.
쇼트맨 씨의 저택에서 우리는 인정이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챌린저 교수가 말한 봉투를 개봉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이제부터 시작되는 탐험 여행의 준비만은 허술한 데가 없도록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잠깐 일행을 소개해 두고자 한다.
사마리 박사는 올해 예순 여섯이다. 깡마르고 철사와 같이 가느다란 몸매이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건강하고 피로할 줄 모르며 정력적인 데가 있다. 그 점, 이번과 같이 엄청난 여행에는 결코 부적당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성미로 남을 늘 의심한다. 그 증거로, 현재도 챌린저 교수를 사기꾼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번 여행도 교수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라고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나우스에 와서는 거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여러 가지 곤충이나 조류의 희한한 표본을 수집하는 데 정신이 없었으며, 도무지 싫증을 낼 것 같지 않다.
존 록스턴 경은 마흔 여섯 살의 장년이다. 5년쯤 전에 이 지방에서 염병만큼이나 두려워하고 있던, 혼혈인 노예 감독 페드로 로페즈를 쓰러뜨린 사건은 이 마나우스에서도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특히 그의 수고로 고통스러운 작업으로부터 구제된 노예들 사이에서 그는 마치 하느님처럼 대접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 머론은 스물 다섯 살이다. 제일 젊고, 보거나 듣거나 하여 얻은 신기한 일을 기사로 만들어 데일리 가제트 신문사로 송고를 하기 때문에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이 밖에 이 남아메리카에 와서 고용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해 둔다.
먼저 첫 번째는 점보라는 흑인 거한(巨漢). 몸집이 큰 까닭에 힘도 세고 말처럼 일을 썩 잘 한다. 이 사나이는 파라 항에서 선박 회사의 소개로 고용했다. 점보는 이 회사의 배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투르지만 영어를 약간 한다.
파라 항에서는 이 밖에 고메즈와 마누엘이라는 두 혼혈인도 고용되었다. 이 두 사람은 강 상류 지방에 살던 자들로, 미국 삼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아마존 강을 내려온 것이다. 두 사람 다 피부 빛깔이 거무스름했고, 얼굴은 온통 수염에 덮여 있었으며, 표범처럼 영리하고 용감하였다. 이들을 고용한 것은, 둘 다 우리가 앞으로 가려고 하는 아마존 상류 지방의 주민이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고메즈는 영어를 잘 했다.
이들 세 사람은 우리의 뒷바라지를 해 주고 한 달에 15달러의 급료를 받는다.
이 밖에 볼리비아 태생인 모조 인디언 세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아마존 유역의 토인들 중에서도 특히 낚시질에 뛰어나고 배를 잘 다루었다.
세 사람 중 인솔 책임자는 종족의 이름을 빌어 모조라고 부르기로 했고, 다른 둘은 호세와 페르난도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었다.
우리 탐험대는 이와 같이 세 명의 백인과 두 명의 혼혈인, 한 명의 흑인, 그리고 세 명의 인디언까지 합쳐 모두 9명으로 편성되었다.
 
나타난 뜻밖의 인물
 
우리는 챌린저 교수가 일러 준 대로 봉투를 뜯는 날이 올 때까지의 일주일 동안을 쇼트맨 사장의 저택에서 묵고 있었다.
이 저택은 과연 사장 집답게 근사했다. 선인장 울타리에 둘러싸인 넓은 뜰에는, 남아메리카 특유의 새빨간 햇빛이 빛나고 있었고, 군데군데 야자수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뜰 가장자리에는 빨강이나 희고 예쁜 꽃이 만발해 있었으며, 귀여운 벌새나 크고 파란 나비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고 있었다.
우리들-사마리 박사, 록스턴 경, 그리고 나 등 세 사람은, 지금 이 뜰이 보이는 방에서 등나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챌린저 교수가 건네 준 봉투가 시계와 함께 놓여 있다. 봉투 겉면에는 교수의 아무렇게나 갈겨쓴 필적으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존 록스턴 경에게. 7월 15일 정오, 마나우스에서 개봉할 것.'
오늘이 그 7월 15일이다. 그리고 곧 정오인 것이다.
"...... 아직 정오까지는 7분이나 남아 있소, 그 때까지 기다릴까요?"
시계를 탁자 위에 놓은 록스턴 경은 사마리 박사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비꼬는 것을 좋아하는 사마리 박사는 씁쓸하게 웃으며 울퉁불퉁한 손으로 봉투를 집어 올렸다.
"까짓 7분쯤 아무래도 좋지 않소. 필요 이상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것으로도 엉터리란 것을 알 수 있는 그 사내였으니까......."
"어쨌든 시킨 대로 합시다. 우리가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챌린저 교수 덕분이었으니까."
록스턴 경은 기분이 언짢아 있는 사마리 박사를 달래듯이 말했다.
"좋도록 하시죠. 하지만 나는 이 봉투 안에 만약 엉터리가 들어 있다면, 다음 배를 이용하여 강을 내려가 파라 항에서 볼리비아 호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소. 사기꾼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정력을 허비하기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내게는 많이 있어요. 자, 록스턴 경, 시간이 됐소."
"자, 시간이 됐다!"
록스턴 경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봉투를 집어들고 손 칼로 겉봉을 찢었다.
드디어 우리들이 가게 될 아마존 오지의 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가슴이 설레었다.
록스턴 경은 겉봉 안에서 접어진 한 장의 종이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것은 한 장의 백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뒤집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았다.
"불에 비춰 보라는 게 아닐까요?"
하고 나는 말했다. 얼른 불에 비춰 보았다. 그러나 역시 종이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상대편을 바라보았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사마리 박사가 기가 차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거 보라고. 뻔뻔스러운 사기꾼 같으니라고! 녀석이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지. 자, 우리는 다음 선박으로 영국으로 귀국하는 거야. 그리고 녀석의 낯가죽을 벗겨 줄 테다!"
사마리 박사는 화가 나서 악을 썼다. 한편 록스턴 경은 그 종이를 햇빛에 비춰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처음부터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았어."
그 때였다. 방 밖에서 땅딸막한 사내의 그림자가 가까워졌는가 싶더니,
"여러분, 들어가도 좋습니까?"
두툼하고 특징적인 음성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든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나동그라질 뻔했다.
챌린저 교수가 나타난 것이다!
색 리본이 달린 밀짚모자를 눌러 쓴 데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마치 어린이처럼 보였으나, 틀림없는 챌린저 교수였다.
방안의 세 사람은 잠시 동안 입을 벌린 채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축 처진 눈까풀과 고집스러울 만큼 까다롭게 보이는 눈초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오만했다.
"2, 3분 늦은 모양이군."
교수는 회중 시계를 꺼내어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이 봉투를 개봉시키고 싶지는 않았었지. 지정한 시간까지 이 곳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말이외다. 늦은 것은 안내자가 얼간이였기 때문이오. 그 때문에 사마리에게는 내 욕을 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소....."
"아니, 실은 말이오........."
록스턴 경은 약간 새삼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타나 안심했소. 이 여행은 이제 끝이 나는 줄 알았지. 하지만 왜 이런 장난을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그러나 챌린저 교수는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여행 준비는 다 된 거요?"
하고 약간 거드름을 피우며 반문하는 것이었다.
사마리 박사는 몹시 기분이 나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일이라도 출발할 수 있소."
록스턴 경이 대답하자 교수는 이어서,
"그러면 내일 출발하기로 합시다. 그런데 내가 직접 안내하는 것이니 지도는 필요 없겠지. 난 처음부터 이 여행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오. 아무리 자세한 지도라도 나 자신의 안내만은 못할 것이오. 이 봉투의 장난은 만일 내가 처음부터 이 탐험의 지휘자가 되겠다고 하면 당신네들로부터 반드시 시비가 있으리란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소."
"나는 따지지 않겠소. 그러나 싫증나면 언제든지 돌아가겠소!"
사마리 교수는 큰 소리로 토해 내듯이 말했다.
그러자 챌린저 교수는 벌떡 일어나서 온통 털뿐인 손으로 사마리 박사를 밖으로 밀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남아 있는 록스턴 경과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내가 방금 나타난 것을 잘 했다고 인정해 주시겠지. 이제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당신네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소. 그러나 알겠소? 이제부터는 내가 탐험대의 지휘자가 되겠소.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수 있도록 오늘 밤 안에 모든 채비를 갖추기 바라오. 내 시간은 참으로 귀중해요. 그러므로 가급적 서둘러 일을 처리하도록."
배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었다.
록스턴 경이 우수한 발동기가 달린 <에스메랄다 호>라는 대형 증기선을 빌려 온 것이다.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은 봉투를 건네주며 한 대 먹인 일을 생각하면 약간 분했으나,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 근방 지리에 밝은 챌린저 교수가 탐험대에 참가했고, 더구나 그 지휘자가 되어 준다는 것은 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여간 마음 든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예정대로 에스메랄다 호를 타고 마나우스 시를 뒤로 엔진 소리를 울리며 아마존 강 상류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통나무 배로 바꾸어 타고
 
장마철이 지난 지금은 아마존 강 탐험 여행을 하기에는 가장 알맞은 시기였다. 강어귀에서 1천 5백 킬로미터나 상류인 이 부근도 강폭은 광대 무변한 듯 했으며, 강의 중심에서 양쪽 기슭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저 멀리 보일 정도였다.
우리들― 챌린저 교수가 참가했기 때문에 일행 열 명을 태운 증기선은 넓은 아마존 강을 천천히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마나우스를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에 배는 지류로 들어갔다. 이 지류는 강어귀께 에서는 본류(本流)와 다름없는 강폭이었으나, 더 올라감에 따라 갑자기 좁아졌다. 이틀 뒤에 우리는 어떤 인디언 부락에 도착했다.
지휘자인 챌린저 교수는,
"여기서 상륙하여 배는 마나우스로 돌려보냅시다. 여기서부터 물의 흐름이 사나와져요. 이런 에스메랄다 호와 같은 큰배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하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는 벌써 목적지 가까이에와 있으니 데리고 갈 사람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아요."
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끝으로, 교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길에 대해서는 절대로 비밀로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고용한 일행들에 대해서도 맹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내가 쓰는 기사에 애매한 점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설명하게 될 지도나 도표 따위에도 방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손을 봐 두었기 때문에, 우리 뒤를 따라 실제 답사해 보아도 참고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미리 강조해 두는 바이다.
우리 탐험대 일행이 에스메랄다 호와 작별하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끊은 것은 8월 2일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벌써 나흘이 경과했다.
우리는 인디언으로부터 큰 통나무배를 두 척 빌렸다. 이 통나무배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틀에 짐승의 가죽을 펼쳐 두른 아주 가벼운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만일 교통에 방해가 되는 것이 나타나면 그것을 육지로 끌어 올려 어깨에 메고 갈 수 있었다. 이 근방의 인디언이 사용하고 있는 아주 편리한 배였다.
챌린저 교수가 2년 전에 이 곳에 왔을 때 죽은 메이플 화이트를 만났다는 인디언 부락이 이 곳에 있었다.
이 부락의 추장은 챌린저 교수를 극진히 존경하고 있었다. 통나무배를 빌려 준 것도 이 추장이다. 추장은 그밖에 두 인디언까지 딸려 보내 주었다.
아타카와 이페츠라고 불렀는데, 교수와는 물론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 두 인디언은 그 전과 같은 탐험을 또 한 번 한다는 말을 교수에게서 듣게 되자 소름이 끼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근방에서는 추장이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추장의 명령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군소리를 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기서 나흘간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며 계획을 검토했다.
그리고 마침내 통나무배에 짐을 실었다. 새로이 참가한 두 인디언은 통나무배를 젓고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드디어 내일 우리는 미지(未知)의 세계로 떠날 작정이었다.
이 기사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딴 통나무배에 부탁하여 보낸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맥커돌 편집국장님. 약속한 대로 이 기사는 국장님 앞으로 보냅니다. 제발 자유롭게 고치십시오. 제 예감으로는 챌린저 교수의 태도로 보아 교수가 한 말은 진실인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엉뚱하고, 그야말로 기상천외의 사건이 우리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인디언의 공격의 북 소리
 
어쨌든 우리 세 사람도 멀리 이 곳까지 와 보니, 적어도 챌린저 교수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낱낱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도 교수를 의심하던 사마리 박사조차도 요새는 교수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박사는 교수의 이야기가 전부 옳다고는 믿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별로 반대도 하지 않고 대체로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부상을 입은 인디언을 부락으로 돌려보내야 하므로 이 기사를 그 사나이에게 들려 보내기로 한다. 무사히 돌아간다고 하였으나 안심이 안 된다.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드디어 출발이라고 하는데, 조그만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고메즈라고 하는 혼혈인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한 녀석이었는데, 그런 녀석들이 흔히 그렇듯이 아주 호기심이 많은 사나이였다.
오늘 밤 우리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오두막 가까이에 숨어서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쁜 짓은 반드시 탄로 나는 법으로, 그 장면을 몸집이 큰 점보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점보는 개처럼 충실했는데 혼혈인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끌려 나온 고메즈는 우리들 앞에 세워졌다.
고메즈는 틈을 타서 나이프를 꺼내어 점보에게 덤벼들었으나, 힘이 센 점보의 반격으로 나이프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성난 점보는 온 힘을 다하여 고메즈를 죽여 버리려 했다. 이 소동을 알게 된 챌린저 교수가 큰 소리로 꾸짖자, 고메즈는 주눅이 들었고 점보는 상대를 놓아주었다. 고메즈는 교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으나, 아무튼 소동은 이것으로 일단 끝이 났다.
그러나 이런 조그만 사건과는 별도로 록스턴 경과 나는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 사이에 일어난, 계속되는 토론에 완전히 지치고 만 것이다.
챌린저 교수의 입이 사나운 것은 런던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나, 사마리 박사도 그에 못지 않은 독설가였으니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한쪽을 심술장이라고 할 수 있다면, 다른 한편은 보통 오만한 사람이 아니다. 둘 다 커다란 어린애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다같이 과학계를 대표하는 제일선의 학자이니 참으로 묘하게 되었다.
"나는 템즈 강가를 산책하노라면 내 앞날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므로 좋은 기분이 안 들어. 그래서 가급적 수면만을 바라보며 걷곤 하지."
챌린저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의미는, 물론 자기가 템즈 강을 따라 서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국가적인 대 과학자로서 묻혀야 할만큼의 인물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며 어린애처럼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입에 독기가 서려 있는 사마리 박사는 그것을 결코 잠자코 듣고만 있지 않았다.
"챌린저 교수, 분명히 템즈 강가에 있었던 밀뱅크 교도소는 오래 전에 허물어 버렸을 텐데."
이 핀잔에는 과연 챌린저 교수도 눈을 부릅뜨고,
"흠, 그건 사실인가? 흠, 그건 사실인가?"
하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은 보통 이 정도인데, 내 생각에는 하찮은 문제가 논쟁의 소재가 되곤 했으니, 곁에 있던 록스턴 경과 내게 미치는 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록스턴 경과 비밀리에 상의한 결과, 앞으로의 탐험 여행에는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교수를 각기 딴 통나무배에 나누어 태우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불필요한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의 실행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마침내 이 전대 미문의 탐험 여행길에 올랐다. 짐을 두 척의 통나무배에 다 실을 수 있었다.
일행은 두 패거리로 나누어져 한 배에 여섯 사람씩 탔다. 물론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는 이 이상 실랑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각기 딴 배를 타게 했다.
나는 챌린저 교수의 배에 탔는데 교수는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연방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나는 교수가 기분이 나쁠 때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그가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약 이틀 동안은 강폭이 제법 넓었으나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두 차례 사나운 급류에 부딪혔다. 그 때마다 통나무배를 뭍에 올려 짐과 배를 짊어지고 밀림 속을 1킬로미터 정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엄숙한 신비에 싸인 밀림을 나는 언제까지나 잊지 못 할 것이다. 하긴 보통 밀림보다도 훨씬 걷기가 수월했으므로 통나무배를 운반하는 작업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밀림에 선 나무들의 높이와 줄기의 크기는, 도시에서 자라난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큰 기둥과 같은 모양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올려다보면 저 먼 상공에 가지가 있었으며, 그것은 커다란 지붕과 같았다. 그 사이에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어둑한 밀림 속을 밝게 해 주었다. 나무에서 떨어져 썩은 잎이 쌓인 곳을 걸어가면 발자국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 왔다. 마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어둑한 빛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시끄럽게 떠벌리던 교수조차도 소곤소곤 음성을 낮추었다.
지식이 별로 없는 나에게, 교수와 박사는 솟아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잇따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어쨌든 모든 것이 내게 있어서는 처음 대하는 식물뿐이었다.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학자들의 설명은 때로는 난해하였다. 그러나 그 호의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란 밀림 속의 모든 식물-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까지, 모든 것이 빛을 찾아 위로 위로 뻗어 나가려고, 자기보다 키가 큰놈에게 달라붙어 숲의 표면으로 나오려고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은, 땅 위에 동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나뭇가지 따위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것들이 뱀이나 원숭이나 새들이란 것을 알았다.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높은 곳에서 지상의 어두컴컴한 데를 부스럭거리며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불가사의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석양 때에는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으나, 한낮에는 그야말로 곤충의 날개 소리만 마치 먼 바다의 물결 소리처럼 들려올 뿐이고, 수풀 속에는 무엇 하나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통나무배 안에서 깊은 숲 속에서 들려 오는 기묘한 그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별안간 데리고 온 인디언들이 모두 그 소리를 두려워하며 배를 젓는 손이 거칠어져 갔다.
"뭡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북 소리지."
록스턴 경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공격의 북 소리,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지."
혼혈인 고메즈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숲의 오지에 살고 있는 식인종들의 소리죠. 그 녀석들은 저녁때부터 우리 뒤를 추격해 오고 있었습죠. 그건 강 건너에서도 들려 오고 있습니다."
나는 별안간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꼈다. 식인종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이자 분명히 강 건너 숲 속에서도 북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다.
'같이 온 인디언들이 이렇게 놀라다니! 정말 야단났다! 큰일이 날 것 같다!'
나는 걱정하면서 챌린저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투는 교수와 박사
 
그런데,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교수는 사마리 박사와 사방에 자라난 나무 종류나 새 이름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토인들의 습격 따위에 대해선 아랑곳없는 것이다.
나는 물론, 점보를 비롯한 데리고 온 인디언들까지도 노 젓는 소리조차도 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 판인데, 두 학자의 머리 속에는 학문에 관한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 두 과학자에 대한 존경심이 일어났다.
이윽고 알게 되었는데, 록스턴 경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라이플 총에 실탄을 재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을 보자 나의 혼란된 마음도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교수와 박사의 입씨름은 출발한 이래 계속되었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완고하며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챌린저 교수였다. 입이 사납고 무엇이나 교수의 의견에는 반대하는 사마리 박사였다. 이러니 논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기는 단 한 번, 식인종 인디언에 대해서 두 학자가 논의했을 때에는 예외였다.
"저건 미란하나 아마쥬아카의 식인종이다."
교수가 북 소리가 들려 오는 숲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지."
"그들은 몽고인 형의 인종이었지, 아마......."
"맞아......."
이런 식이었다.
어쨌든 이런 형편이니 두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우리들만이 식인종의 습격에 응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날은 아무 일 없이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무거운 돌을 닻으로 하여, 두 척의 통나무배를 멈춰 세워 놓고 불침번까지 두고 경계를 한 것이다. 점보는 날이 샐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고 감시를 계속했는데, 어쨌든 무사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 안심이 되었다.
동이 트는 동시에 북 소리는 점차 멀어져 갔다.
"이제 식인종들은 추격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녀석들은 클루프리가 무서운 겁니다."
고메즈가 별안간 생각난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만일 숲의 마귀 클루프리가 교수의 말처럼 쥬라기 이래의 살아 남은 괴물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 근방에까지 도달한 셈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후 3시경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급류보다도 더 센 격류의 고빗길에 이르렀다.
"음, 여기다. 내가 전에 왔을 때 배를 전복시켜 귀중한 수확을 모두 잃었을 뿐 아니라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챌린저 교수는 감개 무량한 듯이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사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왜냐 하면 이야말로 교수의 설이 엉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째 증거가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배를 내렸다. 인디언들은 빽빽이 가로막고 있는 수풀 속을 헤치며, 먼저 통나무배를, 이어서 짐을 운반했다. 그 동안에 우리 네 명의 백인은 총을 메고 토인들의 선두에 서서 만일의 위험에 대비했다.
석양 때까지 우리는 무사히 격류를 지나 상류 2킬로미터 지점에까지 배를 끌고 갔고, 그 날 밤은 거기서 휴식을 취했다.
나의 계산으로는 본류를 떠난 후 이미 1백 60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지류를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행은 출발했다. 교수는 이 때부터 줄곧 양쪽 기슭에 시선을 주고 있었으나, 갑자기 신바람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한 나무를 가리켰다. 그것은 기묘한 각도로 기슭에서 수면으로 외롭게 돌출해 있었다.
"저 나무다! 내가 표지로 삼은 것이 저 종려나무란 말이오! 비밀의 통로는 저 나무의 정면 기슭에 있지. 거기선 숲이 중단된 데가 없어. 이상한 일이야. 그러나 언뜻 보면, 큰 나무가 빈틈없이 밀생하고 있으므로 잘못 볼 수가 있지. 그러나 그 나무들 사이에 연둣빛 골풀이 자라는 곳이 있어요. 그 곳에 미지의 세계 -잃어버린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있소. 가서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그 곳은 정말 불가사의한 곳이었다. 우리가 배를 저어가 보니까 과연 연둣빛 골풀의 숲에 가린 조그만 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물도 여태까지의 흙탕물과는 달리 맑고 투명했다. 바닥의 모래를 손으로 집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열대어가 우리들의 배 밑을 헤엄쳐 다니고 있는 것이 마치 수족관의 물과 같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머리 위에는 나뭇가지와 잎이 빈틈없이 무성했으며 그것이 강물 위로 지붕처럼 어디까지나 이어져 있었다. 햇빛은 겨우 비쳐들고 있을 뿐이었다.
쳐다보니까 나뭇가지에서 까만 빌로드와 같은 털을 가진 조그만 원숭이가 장난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살며시 엿보고 있는 것은 얌전한 맥이다. 한가롭게 물소리를 내며 헤엄을 치고 있는 놈은 악어였다. 선명한 줄무늬가 있는 표범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학이나 백로 따위의 거대한 무리는 우리 배가 접근해 가도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이 사람에 대해서 조금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 곳엔 이제 인디언이 없습니다. 클루프리를 두려워하고 있습죠."
고메즈가 말했다.
"클루프리란 것은 이 밀림의 요정입니다."
록스턴 경이 설명했다.
"토인들은 악마는 모두 클루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이 근방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소. 그래서 접근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의 통나무배는 이 꿈과 같은 아름다운 강물을 꼭 사흘 동안 저어 갔다.
그런데 나흘째부터는 더 이상 배로는 나아갈 수 없었다. 물이 갑자기 얕아져 배 밑바닥이 스치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기슭의 숲 속에 배를 묶어 놓고 이 날 밤은 강기슭에서 쉬었다.
이튿날 아침에 록스턴 경과 나는 강물을 따라 숲을 3킬로미터 가량 가 보았다. 그러나 물은 더욱 얕아졌다. 되돌아와 그것을 보고했다. 챌린저 교수의 생각대로 이미 배로 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물에서 끌어올려 수풀 속에 숨겨 놓고, 가까운 나무 줄기에 도끼로 표시를 했다. 그리고 총과 탄약, 식량, 천막, 담요 따위를 짊어지고 더욱더 어려운 최후의 여행길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또다시 교수와 박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발단은 챌린저 교수가 사마리 박사에게,
"당신은 이 아네로이드 청우계를 책임지고 가지고 가야겠소."
하고 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리로 내게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거요?"
"박사, 나는 이 탐험대의 대장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대장으로 인정할 수 없소."
"옳거니. 그러면 내게 적당한 역할을 정해주겠다는 말씀이신가? 어디 들어보자고."
교수는 빈정거리며 응수했다.
"말하지. 자네는 진실인지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는 피고의 입장이야.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현장 조사를 하기 위해 여기 와 있는 재판관과 같은 사람이지."
"좋소.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는 자네들끼리 멋대로 해 보게나. 난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따라가겠소. 대장이 아닌데 앞장서서 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고맙게도 두 사람의 온전한 사람-나와 록스턴 경-이 있어, 교수와 박사의 기분을 북돋워 같이 빈손으로 런던에 돌아가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이러한 일로 달래는 데 애를 먹었다.
박사는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빈정거리는 미소를 띠고 걷기 시작했다. 교수는 그 뒤에서 툴툴거리며 따라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우연한 일로, 이 무렵에 교수와 박사가 다같이 에든버러 대학의 이링워스 박사를 몹시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그 박사는 우리들의 구세주가 돼 주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가 수상해지면 우리는 그 동물학자의 이름을 꺼내는 것이다. 그러면 두 사람은 논쟁을 중지하고, 이링워스를 공격하기 위해서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이가 좋아지는 것이다. 이 방법을 발견한 후 우리는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강물을 따라 일렬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도 강물의 폭은 좁아졌고, 마침내 물줄기는 해면(海綿)같은 이끼가 자라는 큰 못에서 없어졌다. 그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늪이었다.
간신히 이 늪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섰을 때는 모두 입 밖에 말은 내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두려운 모양이었다.
이리하여 통나무배를 버리고 걷기 시작한 이틀 뒤에 주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밀림은 완전히 없어지고 가도가도 종려나무 숲이었던 것이다. 마치 재목 사이를 걷고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키가 작은 나무만이 자라고 있는 풀밭으로 나왔다. 앞에는 완만한 고갯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위투성이의 고개를 넘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
걷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도중에 사람이 야영을 했음직한 흔적이 있었다. 모닥불 재나 빈 통조림 깡통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챌린저 교수는,
"저것이야말로 최초의 탐험가였던 메이플 화이트 씨가 노숙한 흔적이다. 전에 내가 본 적이 있어."
하고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는 신비로운 세계가 마침내 다가오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이 근방부터 길은 더욱더 걷기 힘들었다. 점점 나무는 적어지고,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나, 그 대신 바위나 돌이 많아지고 들쭉날쭉한 고갯길은 한눈이라도 팔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이런 거친 길을 열흘 동안이나 걸어가자 이번에는 대나무 숲이 나타났다. 길이 전혀 없었으므로 대나무를 하나하나 잘라 내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나무 숲이 끝나자 길은 평탄해져서 걷기가 다소 수월해졌다.
마침 밤이 되어 우리는 이 곳에 천막을 치고 야영하기로 했다. 긴 하루의 계속된 피로로 우리는 지쳐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완만하게 경사진 둥그스름한 언덕을 향하여 아침 일찍 떠났다.
우리는 점심때쯤 그 곳에 도착했다. 그러자 건너편에 찬란한 골짜기가 있고 다시 둥그스름한 언덕 뒤로 지평선이 저 멀리 보였다.
이 언덕을 올라가고 있을 때 앞장서서 걷고 있던 챌린저 교수가 별안간 멈춰 섰다.
"어, 저걸 봐라!"
교수가 흥분한 모습으로 가리키는 오른쪽을 우리는 일제히 바라보았다. 약 1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을까. 잡초의 수풀 속에 뭔가 회색의 큰 새 같은 것이 천천히 날개를 펼치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멀리 밀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일까? 날고 있었으니 조류인 것만은 틀림없겠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교수는 숨을 거칠게 쉬며 외치는 것이었다.
"사마리 박사. 어떤가, 그걸 보았겠지? 그걸 당신은 뭐라고 생각하지? 내가 보는 바로는 테라노돈이야. 쥬라기에 나타났다고 알려진 하늘을 나는 파충류란 말일세. 틀림없네."
그러나 사마리 박사는 예의 빈정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응수했다.
"어리석은 이야기는 이제 진력이 났소. 당신 눈은 이상해. 내가 본 건 황새야."
사마리 박사가 조소하듯 말하자 교수는 화가 난 얼굴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때 록스턴 경이 뒤쪽에서 다가와서 나에게 말했다.
"보았소, 머론?"
"예, 보았습니다. 이상한 새였어요."
"그건 황새가 아니야. 나는 오랫동안 사냥을 해 왔지만 사냥꾼의 명예를 걸고 말하겠는데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만은 맹세해도 좋소."
망원경을 손에 든 록스턴 경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긴장해있었다.
우리는 다시 사방을 경계하면서 계속 나아갔으나 별다른 것이 날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분, 나는 내가 보고들은 바를 모두 있는 그대로 여러분에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보고서가 여러분의 눈에 띄게 될 것인지 어떤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챌린저 교수가 말하는 <미지의 세계>에 진짜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맨 처음의 언덕을 넘어서자 그 너머에 두 번째 언덕이 있었다. 이 곳을 넘어서자 이곳 저곳에 야자나무가 서 있는 울퉁불퉁한 땅이 누워 있었다. 저번에 교수의 방에서 본 적이 있는 메이플 화이트 씨의 스케치북과 교수가 찍었다는 그 희미한 사진의 풍경과 꼭 같은, 불그스름한 낭떠러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인, 주위보다 높고 편평한 대지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 이렇게 보고서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그 것은 이 앞에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 위에 있는 대지가 우리의 목적지인 것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우리의 천막에서 10킬로미터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대지는 저 멀리 큰 반원을 그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교수는 적이 흥분하여 사방을 걸어다녀 보고 있었다. 박사 쪽은 잠자코 있었으나 아직 믿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머지 않아 명확해질 것이다.
고용되어 따라온 호세는 팔에 부상을 입었으므로 그만 돌아가겠다고 보채고 있었다. 그래서 이 보고서는 그에게 들려 보낼 예정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는 한 보고할 것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여행도를 동봉해 둔다.
낭떠러지는 가까워질수록 교수가 말한 것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백 미터 가량 되었는데 꼭대기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양으로, 가장자리에는 수풀이, 안쪽은 큰 나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살아있는 짐승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날 밤은 낭떠러지 밑에 천막을 쳤다. 낭떠러지는 수직이었을 뿐 아니라 위쪽은 바깥으로 오목하게 굽어 있었으므로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다.
우리들 천막 곁에는 교회의 탑과 비슷한,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었다. 그 꼭대기는 대지와 거의 같은 높이였으나 낭떠러지와는 별도로 외롭게 서 있었다. 맨 위 꼭대기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바위나 낭떠러지나 높이는 3, 4백 미터쯤 돼 보였다.
이 바위는 원래 낭떠러지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 어떤 원인으로 중간 부분이 무너져, 우리가 탐험하고자 하는 미지의 세계인 대지(臺地)로부터 단절되어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와 대지의 꼭대기와의 거리가 겨우 14, 5미터밖엔 되지 않았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신비의 세계를 답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수수께끼의 해골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형편없는 아침 식사를 끝마친 다음―탐험이 언제 끝날 지 몰라 식량을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절벽으로 둘러져 있는 대지에 오를 방법을 상의했다.
챌린저 교수는 조그만 바위 덩어리에 걸터앉아서 묘한 밀짚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특징이 있는 턱수염을 흔들어 대면서, 마치 재판관과도 같이 당당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정말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다.
교수를 중심으로 우리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마리 박사는 여전히 파이프를 빨면서 교수의 말이나 움직임을 비판적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록스턴 경은 단단한 몸집에 총을 안고 앉은 채 날카로운 눈매로 교수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며칠 동안 산야를 걸어왔으므로 햇볕에 그을어 원기 왕성했다.
우리 네 사람 뒤쪽에는 두 혼혈인과 인디언들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교수는 눈앞을 가로막고 우뚝 솟아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 꼭대기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머론, 자네는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너도밤나무의 거목에 대해 아는 게 없나?"
"예, 저 지난번에 보여 주셨던 사진 속의 나무군요."
"그렇지. 그 나뭇가지에 테라노돈이 머물고 있었던 거야. 난 사진을 찍은 후 저 바위산을 반쯤 올라가 총으로 쏘아 떨어뜨린 거지."
이 이야기를 사마리 박사도 곁에서 듣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구태여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본 바로는 그 얼굴에는 여느 때와 같은 빈정거리는 웃음은 없었고 놀라움과 흥분 때문에 회색으로까지 느껴졌다.
챌린저 교수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신바람이 나서 싱글벙글하며 ,
"사마리 박사, 당신은 황새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황새는 깃털이 없고, 그 대신에 가죽과 같은 피부와 막강한 날개와 이빨을 가지고 있었던 거요......“
사마리 박사는 옆을 본 채 떫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 절벽을 올라가려 했소.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소. 물론 누가 시도했다 하더라도 실패했을 것이오. 그 때는 장마철이 시작되었고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소. 단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동쪽으로 10킬로미터쯤 걸어가 보았지만 절벽을 올라갈 길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오. 어쩌면 좋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소. 동쪽을 조사해 보았다면 이번에는 서쪽을 살펴보는 일이야."
사마리 박사가 말했다.
"그렇군. 저 대지는 그렇게 넓지 않은 것 같소. 한 바퀴 돌아도 대단하지 않을 거요. 그러니 도는 동안에 한 군데쯤 입구를 발견할는지도 모르지요....."
하고 록스턴 경도 찬성했다.
그러나 교수는 나를 가리키며,
"런던에서 이 젊은이에게 한 말이 있었소. 그 대지는 어디나 수월하게 들어갈 곳이 없을 거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 대지가 수백만 년 동안이나 딴 세계와 고립돼 있을 까닭이 없쟎소. 하긴 우리들의 선구자인 메이플 화이트 같은 등산가만 오를 수 있고 큰 동물은 내려올 수 없는 길이 어딘가 한 곳 있을 법도 한데 말이야."
이 말에 대해서 재빨리 박사가 질문했다.
"그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요?"
"이유는 단순해요. 이 대지를 발견한 미국인 메이플 화이트가 실제로 올라갔었기 때문이오. 그가 만일 올라가지 못했더라면 그 스케치북의 그림은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
"그것은 조금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론이오. 아닌게 아니라 대지는 보다시피 눈앞에 있으니까 나도 인정하오. 그러나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는 그 괴물에 대해서 무엇 하나 그것을 증명할 만한 사실이 없잖소."
언제나처럼 빈정거리는 말투로 사마리 박사는 비웃었다. 교수는 화가 났다.
"당신이 인정하건 말건 나는 지금 당신 눈앞에 대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보니 흐뭇한데."
또 두 사람의 입씨름이 시작될 기미가 보였다. 그런데 이 때, 낭떠러지 위를 쳐다보고 있던 교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느닷없이 사마리 박사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 얼굴을 위로 향하도록 틀며 외쳤다.
"보라고! 저 꼭대기에는 분명히 생물이 있잖아!"
나나 록스턴 경도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저 꼭대기 위에 호스와 같은 것이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끝 부분을 약간 쳐들고 흔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호스가 아니었다. 넓적한 머리를 가진 큰 뱀이 아닌가! 그네처럼 길쭉한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 때마다 비늘이 아침 햇살을 받아 끔찍스럽게 번뜩이고 있었다.
"챌린저 교수, 하찮은 구렁이 따위를 보고 흥분하지 말라고."
강제로 얼굴이 비틀린 것이 몹시 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교수는 신바람이 나서 외쳤다.
"어쨌든 저것으로 생물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어. 자, 이제부터 서쪽으로 가서 절벽에 오르는 길을 찾아봅시다!"
낭떠러지 아래의 길은 바위투성이로 몹시 울퉁불퉁했기 때문에 매우 걷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10킬로미터 가량 걸었을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오래 전에 천막을 친 적이 있는 자리로, 시카고 제 쇠고기 통조림과 빈 브랜디 병, 그 밖의 잡동사니가 흩어져 있었다. 구겨진 신문지 한 장이 있었는데 《시카고 데모크랫》 신문이란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날짜가 찢겨져 언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 것은 아니오. 메이플 화이트 것이오."
챌린저 교수가 말했다.
나는 여기서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양치류의 잎에 나뭇 가지 토막이 묶여 있는 것이다.
"보십시오. 길 표지를 해 둔 모양이지요?"
"그런 것 같소."
록스턴 경이 내 의견에 즉각 동의했다. 교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소. 우리들의 선배였던 메이플 화이트는 뒤를 이어 오는 사람을 위해서 표지를 남겨 둔 겁니다. 틀림없어요. 내가 생각한 대로야. 이대로 서쪽으로 서쪽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이런 식의 표지가 있을 거요."
하고 자못 확신 있게 외쳤다. 교수가 상상한 대로 이윽고 우리는 또 다른 표지와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뜻밖에도 무서운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더욱 서쪽으로 걸어가는 동안에 대나무 숲에 부딪혔다. 대나무는 높이가 거의 6미터 가량이나 되었으며 끝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대창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대나무 숲 가장자리를 따라 길을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선두에 선 박사가,
"앗! 저건?"
하고 별안간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나도 다급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소름이 끼쳐 옴을 느끼며 박사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그것은 퇴색한 해골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 가슴께의 뼈에 대나무 토막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저런 변이라니!"
지금까지 무엇을 보아도 놀라지 않았던 록스턴 경조차도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참혹하군. 그러나 이 사람은 여기서 죽은 것이 아닌 것 같소. 아마 저 절벽에서 떨어진 것인지도 몰라요. 아니면 누군가가 밀어서 떨어뜨렸든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리가 없고 가슴에 대나무 토막이 꽂혀 있을 리도 없어요."
우리는 모두 겁이 난 얼굴로 낭떠러지를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도 록스턴 경은 허리를 굽혀 해골이 있는 곳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가,
"이 해골의 인물이 사망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닌 것 같소. 이것 봐요, 이걸 보시라고……."
하고 흙이 묻은 금시계와 만년필을 주워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물건이나 거의 녹이 슬지 않았다. 금시계는 뉴욕의 허드슨 회사의 상표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사방을 조사해 보았다. 이윽고, 라고 새겨져 있는 은제 담배 케이스를 찾아냈다.
곁에 서 있던 챌린저 교수가 신음하듯이 말했다.
"나는 이 사내 이름을 알고 있어요. J. C.―제임스 콜버요. 분명히 메이플 화이트는 이 사내와 동행하였던 것이오. 그의 노트에서 본 이름이야."
우리는 제임스 콜버의 주검을 대나무 숲 곁에 정중하게 묻어 주었다.
'그런데 콜버 씨는 어쩌다가 이렇게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일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소름이 끼쳤다. 어쩐지 앞으로 가공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다른 일행도 나와 같은 기분인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걷기 시작했다.
이틀 후에도, 다시 사흘 뒤에도 걷고 있었으나 대지로 통하는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따금 낭떠러지에 백묵으로 길 표지가 그려져 있긴 했다. 정녕 화이트나 콜버가 그린 것일 것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온통 바위뿐인 길 아닌 길을 걷던 우리는 마침 일주일째 되던 날에, 비로소 낭떠러지에 깊은 골짜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골짜기 폭은 10미터 정도였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에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끝이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침내 찾아냈다! 여기가 대지로 통하는 입구다!"
 
나타난 테라노돈
 
챌린저 교수의 흥분된 소리를 들은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의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깊은 골짜기의 입구 근처를 이 날의 야영지로 하고, 우리 네 사람은 점보와 토인들을 이 곳에 두고 좁은 길로 들어갔다.
혼혈아인 고메즈와 마누엘만 데리고 갔다. 이 두 사람은 날렵할 뿐 아니라 재치가 있고 게다가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골짜기는 어두컴컴했고 습기 찼다. 직접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를 쳐다보니 멀리 약 30미터쯤에 파란 하늘이 마치 띠처럼 가늘게 보였다.
4백 미터 가량 더 들어가자 길은 가파른 고갯길이 되었다. 아니 고갯길이라기보다는 그 곳이 막바지였다. 낭떠러지에서 바위가 무너져 자연히 고개를 이룬 것이다.
회중전등을 손에 들고 선두에서 가던 록스턴 경이 무너져 내린 바위 쪽을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를 발견하고 그 쪽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앗! 위에 굴 같은 것이 보인다."
록스턴 경은 앞질러 올라갔다. 그러나 이윽고,
"안 되겠어. 큰 바위가 굴을 가로막고 있는걸."
실망한 듯한 록스턴 경의 음성이 들려 왔다. 우리는 등불을 의지 삼아 서둘렀으나, 아닌게아니라 큰 바위 위에서 굴러 떨어진 모양으로 길은 거기서 막혀 있었다.
모두 달려들어 밀었으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소. 내려갑시다."
챌린저 교수는 맥이 빠진 듯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나는 굴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바위를 들어 낼 수 없는 이상, 메이플 화이트가 올라갔음직한 이 길은 이미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말할 기운도 없이 어둑한 고갯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때 갑자기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굴 입구 근처에서 큰 바위가 굴러 내려온 것이다.
와그르르! 하고 야단스러운 소리에 놀란 우리들은 엉겁결에 한 옆으로 물러났다. 이 때문에 가까스로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큰 바위가 어떻게 해서 굴러온 것일까?
"우리들 머리 위에서 느닷없이 떨어졌으니 하마터면 벼락 맞을 뻔했네."
고메즈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렇게 의심하게 되었다. 굴 안에 무엇인가 숨어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려는 것을 방해하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제임스 콜버를, 저 높은 낭떠러지 꼭대기에서 밀어 낸 것도 그들의 수작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튼 저 대지에는 동물 이상의 지혜를 가진, 더구나 잔인한 생물―즉 야만인이 살고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비좁은 골짜기에서 적의 습격을 받는다면 도망치거나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허둥지둥 골짜기를 내려와 입구로 되돌아왔다.
"아니오. 아직 단념하는 건 빨라요, 대책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록스턴 경은 우울해진 일행을 격려해 주었다. 아무도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모두 마음속으로 무슨 대책인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낭떠러지 아래쪽을 걸었다.
사흘째 날 밤이었다. 우리가 캠프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록스턴 경은 총을 손에 들고 어딘가로 가는 것 같았다.
탕! 하고 총 소리가 들려 왔다.
잠시 후에 싱글벙글하면서 천막으로 돌아온 록스턴 경의 어깨에는 조그만 멧돼지 같은 짐승이 얹혀 있었다.
이 돼지 같은 짐승을 점보가 재빨리 요리해 주었다. 절반은 인디언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꼬챙이에 꽂아 모닥불 위에 얹었다.
기름이 녹아 떨어지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났다.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며 맛있는 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 갔다.
이런 데서 싱싱한 돼지 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리는 모처럼 뚜껑을 연 통조림에는 손을 대지도 않고 지글지글 타고 있는 불고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느닷없이 바람이 일며 모닥불의 불꽃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꽥 꽥 ― 하는, 소름이 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는가 싶더니 어두운 하늘에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새카맣고 큰 것이 굉장한 속도로 내려온 듯 하였다. 우리는 머리 위에서 막(幕) 같은 것이 덮여 오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검은 것은 이윽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자 끔찍한 소리를 남겨 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명확하게, 이 눈으로 그 무서운 것을 목격했다. 뱀과 같은 목, 핏발이 선 눈, 악어처럼 갈라진 혀, 길쭉한 부리 속에 촘촘히 박힌 이빨, 악마를 연상케 하는 그 모습. 박쥐였을까? 아니, 그처럼 거대한 박쥐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분명히 10미터 정도 크기였다.
사방에서 마치 전장에 뒹굴고 있는 주검과 같은, 피비린내가 섞인 썩은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모닥불의 불고기가 아주 말끔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민첩한 록스턴 경조차도 총을 가지러 천막으로 달려가는 것을 잊고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네 사람 가운데서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사마리 박사였다.
"챌린저 교수."
이 음성은 감동한 나머지 떨리고 있었다.
"미안하오. 나는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겠소. 제발 지금까지의 일은 깨끗이 잊어 주시오. 방금 그것이야말로 테라노돈이오!"
챌린저 교수는 다만 미소를 지으며 사마리 박사에게 두툼하고 길쭉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런던을 떠난 이래 줄곧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두 학자는 이 날 밤 비로소 화해를 한 것이다. 이 최초로 나타난 테라노돈 덕분에 두 사람의 마음은 결합되었으나, 한편 우리는 기대하고 있던 돼지 불고기의 근사한 저녁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몇 십억 년이나 전의 생물이 아직도 살아서 하늘을 난다는 것이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이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결코 꿈이 아니었다. 덕분에 우리는 이 날 밤 흥분하여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전진하였다. 어쩌면 다시, 그 테라노돈과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 유사 이전의 짐승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을 수 없었던 모양으로, 그 후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황폐하여 을씨년스러운 고장을 자석과 태양의 위치만을 의지하여 북에서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돌멩이가 수없이 뒹굴고 있는 사막과 들새가 쓸쓸하게 떠 있는 늪이 교대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방면으로도 도저히 낭떠러지를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낭떠러지 밑을 달리고 있는, 단단한 선반과 같은 바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되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늪의 수렁으로 우리는 몇 번이고 허리 근처까지 빨려 들어가곤 했다. 더구나 이 근방은 남아메리카에서도 가장 무서운 독을 가진 쟈라카카뱀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었다. 늪의 표면을 타고 습격해 오는 이 무서운 뱀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 독사들은 대단히 공격적으로, 사람을 보면 늪의 썩은 물을 튀기며 모가지를 들고 돌진해 오는 것이다. 너무나 많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다. 허겁지겁 도망칠 수밖에 없다. 도망치다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면 수면에는 온통 뱀 대가리뿐이다. 우리는 이 곳을 <쟈라카카뱀의 늪>이라고 이름을 지어 지도에 올렸다.
다행히 누구 한 사람 이들 독사에게 물리지 않았으나 정말 소름이 끼치는 늪이었다.
간신히 이 곳을 지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것은 열 나흘째였다. 결국 딴 입구는 찾아 내지 못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낙심한 끝에 피라미드형으로 꼭대기가 뾰족한 바위산 기슭에 웅크리고 있었다. 모두 아무 말이 없었고, 원기는 더욱 없었다.
테라노돈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대지 속에는 굉장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수월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낭떠러지를 올라갈 수는 없다. 메이플 화이트가 백묵으로 표시한 길은, 현재는 전혀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식량은 그 후 총으로 사냥을 한 덕분에 아직 당분간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보충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운수 나쁘게 두 달 후면 장마철이 된다. 그렇게 되면 천막생활은 무리다. 하늘 높이 솟은 절벽은 대리석보다도 단단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갈 길을 낸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과 지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을까? 완전히 우울해진 우리는 거의 말도 나누지 않고 잠자코 담요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지칠 줄 모르던 챌린저 교수도 특징적인 그 큼직한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생각에 잠겼다. 모닥불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뒷모습은 거대한 식용 개구리처럼 보였다. 내가 '편히 주무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는데도 아무 대꾸가 없었다.
지휘자를 스스로 맡고 나선 그는 실망이 더욱 컸을 것이다.
 
고메즈의 배신
 
그런데 이튿날 아침, 우리 세 사람이 일어나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교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녕. 여러분, 편히 주무셨소?"
보기 드물게 기분이 좋은 것 같아서 세 사람은 우뚝 멈춰 서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교수는 유쾌한 듯이,
"여러분은 나를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축하하면 됩니다. 문제는 하룻밤 사이에 해결이 됐어요."
"그럼 입구를 찾아냈단 말이오?"
"그렇소!"
"어떤 방법으로? 그건 어디 있소?"
다그쳐 묻고 있는 록스턴 경에게 교수는 잠자코 오른쪽에 솟아 있는 피라미드형의 바위산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긴 올라갈 수 있다 하더라도 건너편 대지는 못 건너갑니다. 10미터 떨어져 있으니까요."
나는 맥이 빠져 투덜거렸다.
"아니야, 저 피라미드형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내 재능이 쓸모 있는 일을 하리란 것을 여러분도 새삼 알게 될 것이오."
챌린저 교수는 무엇인가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달리 좋은 수가 없었으므로 교수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문제의 바위산의 뾰족한 꼭대기에 올라갈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록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평지 같으면 누구보다도 빨리 달릴 자신이 있었으나, 바위산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한 가닥의 줄 위에 매달려 내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자 머리털이 삐죽서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대학 시절에 럭비로 몸을 단련해 두었기 때문에 몸만은 튼튼하여 어떻게 해낼 수가 있었다.
뾰족한 바위산은 원래는 대지와 접속되었던 모양으로 바위 꼭대기는 대지와 거의 같은 높이였다.
바위 꼭대기에서는 한눈에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거무스름하게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숲, 그 사이를 아마존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 당하여 넋을 잃고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챌린저 교수였다.
"머론, 여기서 자네 힘을 좀 빌어야겠어."
언제 가지고 왔는지, 교수는 손에 든 도끼를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뾰족한 꼭대기는 좁다란 초원(草原)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초원에 한 그루의 너도밤나무가 서 있었던 것이다.
건너편 대지까지 눈짐작으로는 불과 10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건널 수가 없다면 10킬로미터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너도밤나무의 줄기를 꼭 붙잡고, 절벽 쪽으로 몸을 내밀어 보았다. 저 아래에,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이 쪽 절벽은 건너편 낭떠러지와 마찬가지로 도끼로 내려친 듯이 수직이었다.
너도밤나무는,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분명히 예의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던 큰 나무다. 챌린저 교수가 전에 왔을 때 맞춰 떨어뜨렸다는 테라노돈이 앉아 있던 나무인 것이다. 높이는 20미터쯤 되었다.
교수는,
"이 너도밤나무를 저 쪽 낭떠러지 쪽으로 넘어뜨려 대지와의 사이에 통나무 다리를 놓도록 하게. 이것이 어제 밤에 생각해 낸 내 계획이야. 어때, 근사한 생각이지?"
하고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근사한 착상이었다. 나무 높이는 20미터 이상 되었으므로 요령 있게 넘어뜨리기만 한다면 훌륭한 다리가 되는 것이다.
"머론, 자네는 팔 힘이 세어 보이니까 이 작업을 맡길 수 있어. 그러나 자네 멋대로 해선 안 되고 나의 지시에 따르도록."
나는 교수가 명령한 대로 나무가 안성맞춤으로 넘어지도록 너도밤나무 뿌리 근처를 도끼로 찍어 자국을 냈다. 원래 나무는 대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므로 성공할 지도 모른다.
"어떻소 ? 챌린저란 사내는 필요할 때 비로소 진짜 재간을 발휘하잖소."
교수는 혼자서 신바람이 났다.
나는 록스턴 경과 교대로 열심히 도끼질을 했다. 한 시간쯤 후 너도밤나무는 소리를 내며 전방으로 넘어져 건너편 낭떠러지의 숲 속으로 가지를 묻었다.
쓰러진 그루터기는 우리가 있는 꼭대기에 있었다. 하마터면 뿌리째 뽑혀 실패할 뻔했으나 다행히 이 나무가 미지의 세계―대지로 건너가는 다리가 돼 준 것이다.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모두 말없이 챌린저 교수와 교대로 악수를 했다. 교수는 밀짚모자를 벗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러면 여러분, 이 챌린저가 아직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그 신비로운 고장에 맨 먼저 건너가는 것을 용서해 주시겠지?"
하면서 교수는 통나무 다리 쪽으로 갔다. 그러자 록스턴 경이 교수의 상의를 잡으며,
"아니, 그건 용서할 수 없소."
"뭐라고요?"
교수가 얼굴을 뒤로 젖히자 턱수염이 앞으로 나왔다.
"학문에 관한 한 모든 것은 선생의 지시에 따르겠소. 선생은 과학자니까. 그러나 내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내 명령대로 해야 하오, 그러니까 서로가 각자 전공이란 게 있는 법이오. 군대식은 내가 전문이란 말입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우리는 지금 적지로 돌격해 들어가려는 참입니다. 어떤 적이 숨어 있을지 모르오. 공을 다투려다 크게 실수를 해선 안 됩니다."
이 말은 제법 이치에 닿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 고집쟁이 교수도 어쩔 수 없이 경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먼저 캠프에서 무기와 식량을 운반하는 작업을 해야하오."
결국 록스턴 경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고용된 인디언들이 총과 식량을 운반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교수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도밤나무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 완전히 기분이 풀리어 싱글벙글했다. 이런 점에서 교수는 순진한 어린이와도 같았다.
챌린저 교수를 선두로, 우리는 마치 앉은뱅이가 된 꼴로 건너편의 낭떠러지를 향해서 너도밤나무를 천천히 조심조심 건너갔다. 단 한 사람 록스턴 경만은 총을 든 채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건너갔다. 과연 경험을 쌓은 탐험가다운 데가 있었다.
다 건너간 우리는 록스턴 경이 날라다 준 총을 손에 들었다. 풀숲 속에서 무엇이 뛰쳐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방을 경계하면서 나무숲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전진했다.
챌린저 교수만은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찾아냈소!"
두 손을 만세를 하듯 높이 들었다. 물론 기분 상으로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우리는 마침내 이 신기한 세계에 비로소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교수처럼 그 기쁨을 겉으로 드러내 놓지 못했을 따름이다.
우리는 총을 쥔 채 새삼 이 지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대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조용한 채, 일찍이 보지 못한 아름다운 새가 날아올라 눈앞을 가로질러 나무숲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리하여 우리 네 사람은 메이플 화이트가 그리던 상상의 나라―잃어버린 세계에 선 것이다. 우리는 최고의 시간을 맞이한 듯했다. 이 때 도대체 누가, 이것이 무서운 재난의 시작이란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 대지에 들어서서 약 50미터쯤 밀생한 숲 속에 들어선 바로 그 무렵이다.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퍼뜩 놀란 우리는 다투어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앗! 다리가!"
우리는 멈춰 섰다. 방금 건너온 너도밤나무 거목이 자취를 감춰 버리지 않았는가!
우리와 건너편 바위산을 잇는 단 하나의 다리가 저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니 아득한 낭떠러지 밑바닥에 부러진 가지 째 뉘어 있던 거목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낭떠러지 가장자리가 무너져 떨어진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하하하........"
우리가 떨어진 너도밤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느닷없이 건너편 바위산 꼭대기에서 조롱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뭘까?"
깜짝 놀라 그 쪽을 바라보자, 오, 그것은 고메즈― 그 혼혈인 고메즈가 아닌가! 늘 얌전하게 우리 지시대로 잘 따르던 고메즈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바위산 풀밭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것이다. 그 얼굴은 증오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눈은 번뜩거렸으며 복수의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록스턴 경! 야, 존 록스턴!"
그는 외쳤다.
"뭔가, 난 여기 있지 않나!"
록스턴 경은 응수했다. 고메즈의 악쓰는 소리가 끔찍한 웃음소리와 함께 울려 왔다.
"그렇지, 너는 그 쪽에 있어! 영국의 개새끼! 하하하, 넌 이제 절대로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거기서 마귀에게 잡아먹히거나 말라죽어라. 나는 이 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마침내 기회가 온 거다. 요전에는 굴속에서 바위덩어리로 짓이겨 죽여 버리려다가 실패했지만 이번만은 만사가 끝났어. 야, 영국의 보잘 것 없는 남작아. 페드로 로페즈의 원한은 무서운 법이다. 난 말이야, 네가 죽인 로페즈의 아우다! 생각이 나겠지, 5년 전 네가 푸트마요 강가에서 쏘아 죽인 그 로페즈는 나의 친형이었다. 난 이제 기꺼이 죽을 수 있다. 형의 원수를 갚았으니 말이다."
고메즈는 우리를 향해 증오심에 찬 주먹을 휘 둘러 보였다. 그러고 바위산 꼭대기를 신바람이 나서 뛰어 다녔다. 그러나 다음 순간, 탕! 하고 록스턴 경의 라이플 총이 불을 토한 것이다.
꽥하는 소리와 함께 페드로 로페즈의 아우 고메즈는 3백 미터 아래의 골짜기로 거꾸로 굴러 떨어졌다.
 
끔찍한 발자국
 
페드로 로페즈란 사람은 브라질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백인과 토박이의 혼혈인이었다. 로페즈는 인디언들을 힘으로 눌러 종으로 삼아 심하게 학대하였다. 그래서 마음이 곧은 록스턴 경은 사람들을 위해 로페즈를 죽인 것이었다. 그 후 브라질에서는 혼혈인이 난폭한 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의 죽음을 한스럽게 여기던 고메즈는 이 아마존의 오지에까지 록스턴 경을 쫓아 온 것이다. 얼마 전 굴속에서 갑자기 머리 위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진 것도 사실은 고메즈가 동료인 마누엘과 짜고 록스턴 경을 해하려고 저지른 일이었다.
고메즈가 쓰러진 순간 마누엘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곧 점보에게 잡혀 맞아 죽고 말았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뜻밖의 사건으로 긴장한 록스턴 경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
"나 때문에 여러분의 신경을 쓰게 해서 미안합니다. 더 조사한 후에 고용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새삼 그것을 책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앞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상의 끝에 우리는 얼마 동안 이 곳에서 묵기로 했다.
점보가 록 클라이밍 때 사용한 튼튼한 줄을 이쪽으로 던져 주었다. 이윽고 식량이나 탄약도 던져 주었다.
데리고 온 인디언들은 클루프리의 마귀가 두려워 한사코 돌아가겠다고 보챘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점보 한사람만 남겨 놓고 전원을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 인편에 추장에게 부탁하여 가급적 빨리 길고 튼튼한 줄을 보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리하여 나는 대지(臺地)에서의 첫날밤을, 촛불 밑에서 이 보고를 쓰고 있다. 부락으로 돌아가는 인디언들에게 주어 추장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영국의 신문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빌 따름이다.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적어 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대로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이다. 큰 나무가 있으면 돌아갈 다리라도 다시 가설하련만 이 근방 50미터 안팎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몇몇 사람의 힘으로 딴 곳에서 운반해 올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로프를 가지고서는 낭떠러지가 너무 멀다. 아, 그야말로 절망이다!
이 날 밤 우리는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여 모닥불조차도 피우지 않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 사방을 경계하면서 불안한 하루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은 모두 의논이라도 한 듯이 일찍 깨어났다. 나는 너무나 다리가 가려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깨어났다. 가려웠다기보다는 아파 왔다.
급히 바지를 걷어올리고 보니까 무릎 바로 밑에 잘 익은 포도알과 같은 것이 대롱거리고 있지 않은가!
"와아, 이건 뭐야!"
나는 깜짝 놀라 그것을 잡아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사방에 피를 뿌리면서 터지고 말았다. 나의 외침 소리에 교수와 박사가 달려왔다.
"이거 굉장하구나!"
하고 사마리 박사는 내 정강이께를 굽어보았다.
"큰 진드기군. 이런 진드기는 아직 분류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가 고생한 최초의 수확이다. 이 진드기는 이 진드기는 이크데스 머론이라고 이름을 지어 줍시다. 잠깐 물리기는 했으나 동물학사상에 영구히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머론 자네는 정말 행복한 젊은이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네는 이 굉장한 표본이 충분히 부풀어오르기 전에 짓이겨 버렸어."
챌린저 교수는 예의 학자다운 말투로 적이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 고약한 진드기 같으니!"
하고 나는 악을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마리 박사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챌린저 교수. 그렇게 아쉬워할 건 없어요. 당신 목 속으로 한 마리 들어갔으니까."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챌린저 교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악을 쓰며 버둥거리는 것이었다.
교수는 당황해하며 셔츠와 상의를 벗으려고 버둥거렸으나 너무 서두른 탓으로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우리가 거들어 주어서 겨우 교수를 홀랑 벗길 수 있었다.
이 근방은 교수나 나에게 달라붙은 진드기뿐 아니라 독충이나 그밖에 피를 빨아먹는 벌레가 많이 있었다. 도저히 캠프 따위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란 것을 알게된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 허둥지둥 이동하였다.
이번 장소는 숲 속의 공지였다. 중앙에 큰 은행나무가 솟아 있었다.
상의한 끝에 모두들 숲 속에 가서 가시가 많은 나뭇가지를 많이 모으기로 했다. 천막 주위에 <철조망>을 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 익숙한 록스턴 경이 우리를 지휘했는데 즉각 훌륭한 성(城)을 쌓아올렸다. 공지 중앙의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튼튼한 가시의 성을 완성한 것이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적에게 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침입해 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성곽이 무너질 염려도 없었다.
출입구는 가급적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즉각 출입구를 막을 수 있도록 한 옆에 가시 다발을 쟁여 두었다. 은행나무 곁에 널찍한 바윗돌이 있고 그 바위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 나왔으므로 음료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머리에 짐을 이고 한 줄로 서서 온 길을 되돌아가는 인디언들의 모습을 멀리 평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점보는 바위산 기슭의 조그만 천막에 남아 우리와 외부 세계와의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척후병이 되었다.
이 날 밤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오늘밤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잘 수 있다.'
담요 속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나는 어느 덧 피로로 인해 잠이 왔다.
그런데 아무 까닭도 없이 잠이 깊게 들지 않는 것이었다. 잠이 드는가 싶다가도 별안간 정신이 맑아지곤 했다.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노려보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몇번이고 눈을 뜨곤 했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까닭에 흥분한 것이다. 틀림없다.........'
나는 자신을 타이르면서 총을 안듯이 하고 눈을 다시 감자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모두 힘있게 기상했다. 마침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흐르는 샘물을 따라 조심스럽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물을 따라가면 돌아올 때 길을 잃지도 않을 것이다.
캠프를 떠나 얼마 가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날의 세계 속에 말려 들어갔다. 이 곳은 매우 널따란 늪이었다. 캠프에서 늪까지 겨우 5백 미터 가량밖에 안 되었는데 깊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 키의 몇십 배나 되는 듯한 양치류의 잎, 사람 머리만큼 큰 고사리, 그야말로 지금까지 본 것의 몇십 배나 되는 거대한 야자수..... 대학자들-사마리 박사는 물론 챌린저 교수도 이름조차 모르는 식물이 무성했다.
늪지를 선두에서 걷고 있던 록스턴 경이 별안간 멈춰 서더니 지면을 가리켰다.
"이건 뭐지? 새의 발자국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큰 조류가 있을 수 있을까?"
물가에 세 발가락의 큰 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발자국이 팬 곳에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이 발자국은 생긴 지 아직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새는 이 근방에 있을 거요."
록스턴 경은 이렇게 큰 발자국을 남긴 괴물을 잡겠다는 것일까?
"이건 새 따위가 아니야. 네발짐승의 것이다. 여러분, 보시오. 조금 앞에 다섯 발가락의 조그만 자국이 있지 않습니까!"
허리를 굽혀 살피고 있던 챌린저 교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상의한 끝에 어쨌든 이 기묘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총을 고쳐 든 우리 네 사람은 늪을 건너 풀밭을 헤치고 전진했다.
전진함에 따라 우리는 더욱 긴장되었다. 걸어가는 숲은 풀이 짓밟히고 조그만 나무 따위가 뿌리째 쓰러져 있었다. 분명히 다소 육중한 짐승이 풀숲 위를 지나간 것이다.
우리는 허리를 굽히고 한 걸음 한 걸음 경계를 하면서 발소리를 죽여 나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문득 그 자리에 말뚝처럼 멈춰 서고 말았다. 갑자기 눈앞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
 
덤벼드는 테라노돈
 
풀숲 저 쪽에는 널찍한 공지가 있었는데 거기를 본 순간, 우리 네 사람은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눈에 비친 것은 현재 이 세계에 생존하는 어떤 동물보다도 훨씬 거대하며, 더구나 누구 한 사람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모습의 동물이었던 것이다.
크고 작은 것을 합쳐 모두 다섯 마리였다. 두 마리는 어미이고 세 마리는 새끼다. 새끼조차 코끼리만큼 크다.
캥거루와 큰 도마뱀을 섞어놓은 듯한 몸집에다 잿빛 피부는 반들반들 빛났고, 그것이 햇빛을 받아 번뜩거린다. 조그만 머리통, 길쭉한 목, 크고 긴 동체와 꼬리. 세 발가락의 뒷다리로 선 채 다섯 발가락의 앞다리로 머리 위의 나뭇가지를 끌어당겨 어린잎을 먹고 있다.
우리는 숲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웅크리고 앉아 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동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이 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숲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이따금 새끼 쪽은 껑충껑충 어미의 둘레를 뛰어 다녔다. 어미 쪽도 이따금 껑충 뛰었다 쿵! 하고 땅에 떨어졌다. 어미들의 힘은 굉장한 것이었다. 한 마리가 조금 큰 나뭇잎을 먹으려다 닿지 않게 됨을 알자 앞다리로 줄기를 부러뜨려 버렸다.
가끔 어미는 자못 성가시다는 듯이 놀고 있는 새끼들을 발길질했다. 그러면 새끼들은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의 동작으로 보아 근육의 발달은 실로 굉장했으나 두뇌의 발달은 늦은 것 같았다. 왜냐 하면 큰 나무가 쓰러졌는데도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고 열심히 몸집으로 막으려고 악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위기를 느꼈는지 다른 네 마리를 거느리고 어기적어기적 숲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 때까지 록스턴 경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이 커다란 동물을 지켜보면서 몇 번이나 손에 든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곤 했었다. 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과연 영국 신사였다. 쏘면 우리는 발각될 것이고 발각되면 어떤 봉변을 당할 것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는 둘 다 손을 쥔 채 반하기라도 한 듯이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이 것을 연구심에 철저한 학자의 참모습이라고 여겼다.
동물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사마리 박사는 한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이것을 영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과연 뭐라고 할까?"
"뻔하지. 허풍장이요, 큰 사기꾼이라고 떠벌리겠지."
챌린저 교수가 이렇게 말하며 벌쭉 웃었다. 사마리 박사는 챌린저 교수의 비꼬는 말투에 씁쓸하게 웃었다.
이 놀라운 동물은 교수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20세기의 오늘날엔 사멸해 버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브론토사우루스(뇌룡,雷龍)라고 불리는 일종의 공룡이라고 한다. 물기가 많은 식물로 덮여 있던, 몇 십억 년 전의 옛날에 지구상의 도처에 서식하고 있던 짐승으로, 현재는 화석으로 발견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에도 살아 있으니 누가 참말로 받아들이겠는가. 어쨌든 8일 28일, 우리는 처음으로 이 큰 동물 브론토사우루스를 발견한 것이다.
이 대지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앞으로 시작될 탐험에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것과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 기분을 눈치챈 모양인지 록스턴 경은 억지로 세 사람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자기 혼자 선두에 서서 척후 역할을 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교수와 박사는 희한한 잡초의 꽃이나 새, 곤충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거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학술어만 늘어놓거나 토론을 벌이면서 자기들이 지금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아가는 걸음은 더디었으나, 그런데도 20 킬로미터는 걸었을까?
한 옆에 울퉁불퉁한 바위가 모여 있는 듯이 보였다. 화산의 분화구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 바위들 저 쪽에서 실로 기묘한 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무엇인가가 들끓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많은 새들이 투덜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앞서 가던 록스턴 경이 우리에게 멈춰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혼자서 기어가듯 하며 바위들이 모인 곳으로 올라갔다.
바위 한옆에 엎드려 살며시 저 쪽을 살핀 록스턴 경이 무엇인가에 놀랐는지 얼른 고개를 움츠렸다. 그 자세로 잠시 꿈쩍하지 않았다.
이윽고 살며시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그 자세로 보아서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우리는 기어서 바위더미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위 건너편을 슬며시 넘어다본 순간 나는 고함을 치려다 말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바위더미 저편은 조그만 분지처럼 생겼다. 그 안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짐승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비위가 거슬리는 고약한 냄새가 풍겨 왔다.
테라노돈이다! 이 곳에는 테라노돈이라는 날개가 있는 공룡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원래 분화구였을 것이다. 분지의 제일 낮은 곳에 거무스름하게 썩은 물이 괴어 있는 못이 있었다.
그 곳 주위 일대에는 몇백 마리인지 셀 수 없이 많은 테라노돈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까의 기묘하고 시끄러운 소리는 이놈들 사이에서 들려 왔던 것이다. 알을 품고 있는 놈도 있었다. 어미와 꼭 닮은 새끼도 있었다. 수컷은 암컷이나 새끼들을 지키고 있는 모양으로 못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끔 옆을 날아다니는 벌레를 낚아채려는 듯이 목을 길게 뻗치며 벌름 입을 벌린다. 사방의 바위 사이에는 많은 물고기 뼈와 새 뼈가 흩어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 속에서 교수와 박사는 조금 전에 브론토사우루스를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 귀에 입을 대고 무엇인가를 수군거리고 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광경이 더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냄새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는 모양으로 열심히 수군거리고 있는가 싶더니, 이윽고 예에 따라 흥분해 버린 챌린저 교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박사에게 뭔가 항의했다. 그 바람에 양팔이 움직여서 기대고 있던 바위 하나가 굴러 떨어지게 하고 말았다.
바위는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분화구의 비탈을 굴러 내려갔다.
그러자 테라노돈의 무리 속에서 굉장한 혼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한 마리의 수컷이 날카롭게 휘파람을 부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6, 7미터나 되는 큰 날개를 펼치더니 공중으로 날아 올라갔다.
암컷과 새끼들은 당황하여 못 둘레에 모였다. 둥글게 모여 있던 놈들도 뒤를 따라 공중으로 올라갔다.
백 마리 가량의 거대하고 끔찍한 괴물이 제비처럼 날렵하게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가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멍청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그것들은 위험의 정도를 확인하려는 듯이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았다. 그러다가 소리를 지르며 우리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잿빛의 큰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마치 비행기의 폭음처럼 사방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숲 속으로 달아나자. 움직이지 마라, 놈들이 습격하려고 노리고 있다!"
총을 휘두르면서 록스턴 경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허겁지겁 바위더미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바위덩이 위에서는 빨리 달릴 수 없었다.
머리끝이 쭈뼛하는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쏴아 하며 테라노돈이 날아 내려왔다. 나는 얼떨결에 처음 날아오는 놈을 총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놈들을 성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어렵게 한 마리를 후려쳐 낼 수 있었으나 놈들은 계속해서 교대로 덤벼 왔다. 그 큰 부리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앗, 당했다!"
교수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특징이 있는 그 두툼한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보고 놀란 순간 나도 등에 날카로운 공격을 받았다.
에잇! 하고 투덜거릴 사이도 없이 내 눈앞에서 교수가 넘어졌다. 급하게 뛰어가려 하는데 테라노돈 한 마리가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나는 기겁을 하고 챌린저 교수를 덮치듯 하며 쓰러졌다. 그 때였다.
탕!
내 귀 옆에서 록스턴 경의 라이플 총이 불을 뿜었다. 이윽고 한 마리의 테라노돈이 우리 옆에 퍽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테라노돈의 붉은 눈은 더욱 붉게 핏발이 서 있었다.
과연 록스턴 경의 사냥 솜씨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큰놈을 단 한 방으로 해치운 것이다.
총성에 놀라 놈들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록스턴 경이 외쳤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우리는 일어서자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숲 몇 걸음 앞에서, 또 놈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맨 먼저 내려온 놈이 큰 날개로 사마리 박사를 땅 위로 쓰러뜨렸다. 물론 록스턴 경이 총을 쏘았으나 이번에는 날개만 맞추었을 뿐이었다.
교수와 나는 그 사이에 넘어져 있는 박사를 끌다시피 하여 간신히 숲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테라노돈은 너무 컸기 때문에 숲 속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동안 단념하지 못하고 숲 위를 날고 있다가 한 마리, 두 마리, 차례로 분지 쪽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새삼스럽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조금 전의 소란 따위는 꿈만 같았다.
 
어둠 속에 떠 있는 괴물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다리를 절면서 물가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이건 좋은 경험이었소. 성난 테라노돈의 형태와 공격법을 잘 알 수 있었소. 실로 중요한 점을 알게 된 크나큰 수확이었소."
부은 다리를 물에 식히면서 챌린저 교수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마리 박사는 드물게도 그런 말에 대해 아무 항의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입을 다물고 날개로 얻어맞은 다리의 상처를 천으로 동여매고 있었고, 허벅다리도 아픈 지 쓱쓱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부리로 공격을 당한 등에 심한 아픔을 느끼며 안절부절못했다.
단 한 사람 록스턴 경만은 상의를 날카로운 부리로 쪼였을 뿐, 네 사람 중에서 제일 원기가 왕성하였다.
"하마터면 목숨을 빼앗길 뻔했지 뭡니까!"
록스턴 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까짓 짐승에게 당하고 죽는다는 건 별로 꼴이 좋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내가 총질을 한 건 잘못이었으나 방법이 없었소."
록스턴 경이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 때 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살아나지 못했을 걸요."
"그러나 그렇게 염려하실 건 없어요. 아무튼 빨리 캠프로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야 할겁니다. 그 짐승에게 어떤 독이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불을 따라 천막의 가시 울타리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우리는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되어 빨리 손발을 뻗고 쉬고 싶었다. 그런데 이 희망은 천막에 도착한 순간 사라져 버렸다.
문이나 울타리는 무사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우리의 부재중에 온 것이다. 발자취는 볼 수 없었으므로 그것이 어떤 놈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굉장히 힘이 센 놈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 증거로 통조림 깡통이 납작해졌으며 안의 물건도 없어졌고 탄약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까닭 모를 공포에 사로잡혀 겁먹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뭔가 무서운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다.
이 때 바위산 꼭대기에서 점보의 소리가 들려 왔다.
"별일 없습니까, 챌린저 교수님? 별일 없냐고요!"
하며 점보는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나, 여기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우직해 보이는 점보의 얼굴과 아마존의 지류(支流)에 이어진 광대한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새삼스럽게 20세기의 지구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있었던 일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교수와 박사는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나, 완전히 기분이 언짢아져 있었다. 그리고 예에 따라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약간 떨어진 곳의 나무 뿌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때까지의 경험으로 두 사람이 입씨름을 할 때에는 가급적 곁에 있지 않는 편이 수습이 빨리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록스턴 경이 다가왔다.
"머론, 그 동물이 있던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가?"
"예,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분화구 흔적 같았지?"
"그렇습니다."
"지질에 대해 알고 있나?"
"아마 바위였지요."
"아니 못 근방 말이야. 그 야자수 있는 둘레 말이오."
"진흙과 같은 푸르스름한 흙이었어요."
"그렇다, 파란 점토의 분화구였다!"
록스턴 경이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것이 약간 이상해서 나는 물었다.
"그게 어쨌단 말이지요?"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저 쪽으로 갔다. 교수와 박사는 여전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오늘 우리를 습격한 테라노돈에 대한 학문상의 분류인 것 같았다.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두 사람의 입씨름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동안에, 낮 동안의 피로 때문인지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한밤중에 나는 허리에 심한 아픔을 느끼며 높은 열이 났다. 이윽고 사마리 박사와 챌린저 교수도 나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역시 그렇다. 테라노돈의 부리에는 독이 있어."
우리들 세 사람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둘러보던 록스턴 경이 말했다.
록스턴 경은 상의의 옷자락을 찢기었을 뿐 별로 상처를 입지 않았으므로 원기가 있었다. 단번에 세 명의 환자가 생겼기 때문에 록스턴 경은 몹시 바빴다. 그는 친절하게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그는 또 울타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튿날은 온종일 혼자서 근방의 숲에서 가시덤불을 거두어 가지고 저녁때 돌아와 천막 주위를 종전보다 두 배 이상이나 높이 쌓아올렸다. 록스턴 경은 정말 대단한 정력가임을 알았다. 그의 정성에 탄복했다.
다행히 열은 하루만에 내렸으나 그 후 스스로 생각해도 형편이 없을 만큼 몸에서 기운이 쑥 빠졌다. 게다가 열 때문이었는지, 전보다도 더욱 어디서 누군가가 노려보고 있는 듯한 두려움이 끊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사흘째 날 밤에 우리 세 사람은 모닥불 곁에서 졸고 있었다. 이 날 밤은 기분 탓인지 어쩐지 끔찍할 만큼 고요한 밤이었다. 록스턴 경은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을씨년스럽게 고요하기만 했다.
그런데 별안간 나는 기관차의 기적과 같은 소리로 우는 동물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사마리 박사와 챌린저 교수도 들었는지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줄곧 들려 왔다. 외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과 같은 소리여서, 듣고 있는 나까지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급히 총에 실탄을 쟀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비명과 같은 소리에 섞이어 힘찬 소리가 들려 왔다.
"록스턴 경은 어찌 되었을까?"
나는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려 했다.
"무리하지 마. 록스턴 경은 힘도 있고 슬기도 있는 사람이오. 꼭 무사하게 돌아올 거야."
사마리 박사가 짓누르는 음성으로 나를 붙잡았다.
이러고 있는데 록스턴 경이 발소리를 죽이며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며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불을 지펴요, 불을!"
하고 악을 쓰듯 외쳤다. 그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번득이고 있었다. 평소의 차분함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시키는 대로 허겁지겁 불에 장작을 던졌다. 불은 확 타오르며 모두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윽고 짐승의 비명 소리는 갑자기 잠잠해졌다.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두려움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침이 되면 알게 돼요. 가까운 곳이야―공지 근방이오."
록스턴 경이 대답했다.
"나는 동물들이 싸움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소. 쥬라기의 큰 공룡이 조그만 공룡을 학대하는 비극적인 광경이오."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인간이 그들보다도 훨씬 뒤늦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었어. 그 당시에는 아직 인간의 용기나 슬기나 기계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던 괴물이, 이 지구상에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지. 오늘 밤 본 괴물들에 대해서는 돌멩이나 화살 따위로는 물론 라이플 총으로도 아무 쓸모가 없었을 거요."
교수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나는 이걸 믿어요."
록스턴 경은 애용하는 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야 승리는 괴물 쪽이 될는지 모르지만."
"쉿! 무슨 소리가 들린다!"
사마리 박사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귀를 기울이자 고요 가운데, 나지막하고 규칙적으로 터벅터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동물이 조심스럽게 지면을 밟고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육중한 발자국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이며 천막 주위를 걷고 있는 그 소리는 이윽고 출입구 가까이에서 멈춰 섰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려 왔다. 괴물과 우리들 사이에는 가시 울타리가 있을 뿐이다. 네 사람 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은 채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았다.
"보인다!"
록스턴 경이 살며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울타리 사이로 내다본 나는 잔뜩 긴장했다.
보였다! 분명히 어두운 나무 그늘 속에 더욱 검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 희미한 윤곽을 통해서도 거대한 몸집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분 탓인지 파란 눈빛이 번뜩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접근해 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총을 겨누었다.
"쏘면 안 돼! 절대로! 이렇게 조용한 밤에 발포하면 몇 킬로미터 밖에까지 들리게 돼요. 쏘는 것은 최후 수단이야!"
록스턴 경이 나지막하게 타일렀다
"하지만 울타리를 넘어오면 끝장이 아니오?"
사마리 박사의 음성은 떨리고 있다.
"그래요.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해. 그러나 쏘는 건 최후예요. 아무튼 내게 맡겨 두시오. 운수에 맡길 수밖에 없어요."
록스턴 경이 말했다.
그는 결심한 것처럼 허리를 굽힌 채 모닥불 곁으로 가서 불이 붙은 장작을 손에 들자, 입구를 통해서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괴물은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러나 록스턴 경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고 돌격하여 불이 붙은 장작을 괴물의 머리를 향해 냅다 던졌다.
순간 사마귀 투성이의 두꺼비와 같은 큰 얼굴이 보였다. 벌어진 입으로부터는 선지피가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윽고 수풀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 오자 당장 괴물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놈도 불에는 덤비지 못하는군."
돌아온 록스턴 경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위험한 짓을 하면 곤란해요."
챌린저 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러나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달리 방법이 없었소. 만약 들어오기만 했으면 쏘아 버렸을 것이오. 그러다가 설맞기라도 하면 큰일이 벌어질 터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멸할 거요. 아무튼 겨우 피할 수 있어 다행이오. 그런데 도대체 그건 뭐였습니까?"
질문을 받은 교수와 박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먼저 사마리 박사가 대답했다.
"나로서는 정확히 분류할 수 없습니다."
"그럴 거요. 참된 과학자라면 그래야 합니다."
교수는 지나치게 정중하게 말했다.
"나도 어떤 종류의 육식 공룡일 것 같다는 정도로 치부해 두고, 그 이상의 의견은 삼가겠소. 이런 생물이 생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소. 자세한 일은 날이 새면 명확해질는지 몰라요. 어쨌든 그 때까지 실컷 잠을 자 두어야겠소."
챌린저 교수가 말했다.
"그러나 불침번은 어떻게 하고요? 이런 데서는 건성으로 매사를 처리하면 안 돼요. 한 사람이 두 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맡읍시다."
록스턴 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이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내가 첫 번째 불침번을 하겠소."
박사는 손에 든 파이프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이 날 밤부터 우리는 교대로 경비를 맡았다.
 
원숭이냐, 인간이냐?
 
날이 밝아 오자 우리는 록스턴 경의 안내로 어젯밤 무서운 소리가 들려 온 현장으로 가 보았다.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하였다. 살해된 것은 브론토사우루스의 어미와 새끼 두 마리 같았다. 사방이 피바다로 그 가운데 고기 토막이 두 개 뒹굴고 있었다. 잿빛 피부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내장은 모두 들어내어 자취도 없었다.
나는 그 참혹함에 놀라 외면하고 말았다. 그러나 교수와 박사는 바지가 피투성이가 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뼈다, 척추다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두 학자는 학문상의 일에 부딪치면 다른 일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날 캠프로 돌아온 후 우리들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챌린저 교수가,
"점점 더 흥미가 있군. 이렇게 되면 앞으로의 탐험은 더욱 재미있을 것이오."
라고 말했는데, 사마리 박사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무엇이? 탐험이라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야 하지 않소. 쥬라기의 생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게된 이상 그 목적은 달성한 거요. 한시라도 빨리 귀국하여 이 성과를 보고해야 하오."
"그럼 사마리 박사, 당신은 앞으로도 대단한 것이 있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되돌아가겠다는 거요?"
"그렇소. 이 고장을 완전히 조사하기 위해서는 더욱 대대적이며 또 과학적인 설비를 갖춘 탐험대가 필요하다고 보아요. 따라서 현재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여 그 준비를 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 아니겠소."
사마리 박사는 자신에 넘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기서 지금 그런 논쟁을 해 보았자지요. 첫째는 이 대지에서 어떻게 내려가느냐 그게 문제 아닙니까."
하고 내가 참견했다.
챌린저 교수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고 나의 얼굴을 보았다.
"물론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일이 모두 매우 곤란해."
~그러니까 챌린저 선생, 어차피 곤란한 일이라면 여기서 물러나는 일을 먼저 해야 해."
박사는 완고하게 고집을 부렸다.
이 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록스턴 경은 파이프에 담배를 쟁이면서 조용히,
"어쨌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적어도 이 곳이 어딘가를 알아야 할 게 아닙니까?"
했다. 우리는 모두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문득 나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이 곳은 중앙으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이 큰 은행나무에 올라가 보면 이 토지의 모양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럴 듯하군. 그건 좋은 아이디어요."
내 생각에 록스턴 경이 맨 먼저 찬성해 주었다.
"분명히 이 고장 지도가 완성되면 앞으로의 계획도 세울 수 있어. 하지만 잠깐, 누가 이렇게 큰 은행나무에 올라가지?"
"내가 말했으니 내가 올라가겠어요. 자신이 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나무를 탔으니까요."
나는 얼른 은행나무 밑에 짐 꾸러미 따위를 포개 놓았다. 그런데도 닿지 않았으므로 록스턴 경의 어깨를 빌어 목말을 타고 겨우 그 첫 가지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은행나무란 것은 참으로 올라가기 어려운 나무였다. 줄기의 어디에도 발판이 없었고, 게다가 미끄러웠다. 가지와 가지의 간격도 멀었기 때문에 나는 나무에 붙은 담쟁이덩굴에 매달리곤 하면서 올라갔다.
이미 챌린저 교수의 큰 음성도 저 아래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아주 높았기 때문에 위를 올려다봐도 아직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한 가지를 잡았다. 그 가지에는 기생하는 나무가 밀생하고 있었다. 그 건너편을 살피려는 순간 하마터면 손이 미끄러져 땅 위로 떨어질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1미터 가량의 눈앞에 있는 기생하는 나무들 속에 나를 노려보고 있는 생김새가 고약한 짐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멀건 상판으로 납작한 코에 아래턱이 앞으로 나왔고, 턱 근처에는 밤송이 같은 수염이 있었다. 짙은 눈썹 안의 눈은 아주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상대편은 입을 딱 벌리고 요란하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뾰족한 어금니가 보인다. 그 눈은 적의로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별안간 깊은 공포를 띠었다. 우지직 하며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미친 듯이 가지들 속으로 달아났다. 그 모습은 붉은 돼지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외침 소리가 들렸던지 아래쪽에서 록스턴 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왜 그래? 이상이 있는 거야?"
"방금 짐승을 보셨어요?"
"새 같은 것이 가지 사이로 달아난 것 같던데."
"그럼, 아래서는 정체가 보이지 않았군요?"
"자넨 보았나? 뭔가, 고릴라던가?"
"아닙니다, 인간 같았어요. 내 눈앞에서 도망쳤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나는 너무 놀란 탓으로 힘이 빠졌기 때문에 일단 나무에서 내려가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다가, 그것도 성가신 일이라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꼭대기를 향해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지가 세차게 흔들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진 데로 올라와 거기에 다리를 걸치고 눈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대지는 길이가 50킬로미터 가량이고 너비는 그보다 약간 좁은 타원형으로 가운데가 오목하였다.
그곳은 호수(湖水)로 햇빛을 받아 수면이 반짝이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호숫가의 모래톱에 검고 길쭉한 것이 많이 누워 있었다. 악어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통나무배로 보기에는 너무 길었다. 역시 생물임에는 틀림없었으나 어떤 성질의 것인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호수의 저편 대지의 끝으로 보이는 근방에는 검붉은 현무암의 험준한 절벽이 있었고, 그 중간쯤에 굴 입구 모양의 검은 점들이 옆으로 여남은 게 즐비하게 보였다. 그건 너무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나는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무 위에 앉아 약도를 그렸다. 그리고 나무 밑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에게 내려갔다.
나는 약도를 보이기 전에 먼저 느닷없이 만나게 된 그 원숭이 같기도 하고 인간 같기도 한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분명히 그놈이었습니다. 나는 줄곧, 이 곳에 캠프를 치면서부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놈이 나무 위에다 움집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아닌게아니라 그런 말을 했었지. 신문 기자의 직감은 날카롭군."
사마리 박사의 말에 이어 챌린저 교수가 질문했다.
"옳거니. 직감이라든지 영감 따위는 큰 문제이지만 현재로선 유감스럽지만 그건 논의를 하고 있을 틈이 없군. 어쨌든 머론, 자네가 보았다는 그 동물이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굽히고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보지 못했나?"
"안쪽으로 굽어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럼 꼬리는 있었나?"
"아니 , 없었습니다."
"발로 가지 따위를 붙잡았나?"
"글쎄요. 하지만 발로 가지를 붙잡지 않고는 그와 같이 가지에서 가지로 이동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겠군. 그렇다면 아마 원숭이는 아니오. 내 기억에 따르면 남아메리카에는 35종 가량의 원숭이가 살고 있는데 자네가 본 것은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동물, 그러니까 유인원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원숭이 쪽에 가까우냐, 아니면 인간과 닮은 부분이 보다 많으냐 하는 것이야. 만일 후자의 경우라고 하면 지금까지 상상의 동물로 꼽고 있던 유인원의 존재를 실증한 셈이 된다. 이것은 동물학상 극히 중대한 문제가 되오."
챌린저 교수는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사마리 박사는 언짢다는 듯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그 이상 중대한 문제는 머론이 만든 약도를 연구하여 한시라도 빨리 이 위험스러운 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오."
"그러면 머론, 약도를 보여 주게. 먼저 이 곳 지세부터 연구합시다."
하고 교수가 뜻밖으로 순순히 양보했다.
"자네가 보았다는 많은 굴은 아마 예의 골짜기 근처에 있는 모양이니 막히진 않았을 거야. 탈출할 길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든 그 쪽에서 통로를 찾아내야 한다."
록스턴 경이 말했다.
"그러면 대지를 횡단하여 그 굴까지 가 볼까?"
"거리가 있는데 도중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은 어떻게 방지하지요?"
"그러나 이 곳에 있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야."
이렇게 의견을 나누면서 어쨌든 이 날 밤늦게까지 내가 대충 그린 약도를 참고하며, 어딘가에 탈출구가 없는가 하고 여러 가지로 토의했다.
 
추격해 온 공룡
 
모두들 나에게 감사했다. 나이는 물론, 경험이나 지식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도저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던 참이라 신바람이 났다. 잠자리에 든 뒤에도 흥분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침번은 사마리 박사였는데, 눈을 반쯤 뜨고 박사 쪽을 바라보니 총을 무릎 위에 얹어 놓고 모닥불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록스턴 경도 잘 자고 있었고, 챌린저 교수는 낮 동안의 피로 때문인지 굉장히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쳐다보니까, 하늘은 활짝 개어 있었으며 보름달이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웬일인지 달에 비친 고원(高原)을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그 호수 근방으로 가 보자. 무엇인가 멋있는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 아침 식사 때, 모두에게 이야기하여 깜짝 놀라게 해 줘야겠다.'
나의 공상은 더욱 나래를 폈다.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는 런던으로 돌아간 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다. 맥커돌 편집국장은 아마 3단 전단으로 톱기사 취급을 해 주리라. 출세의 지름길이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자 곁에 있던 총을 집어들고 총알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살금살금,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박사 앞을 지나 울타리의 출입문을 헤치고 재빨리 빠져나갔다.
그러나 1백 미터도 채 못 가서 나는 자신의 경솔함을 크게 뉘우쳤다. 그러나 이대로 되돌아가면 겁쟁이가 되는 것 같아서 단호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아갔다.
머리 위쪽으로 빽빽이 덮여 있는 나뭇가지 때문에 숲 속은 낮과는 달리 달빛이 전혀 비쳐들지 않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뭔가 뛰쳐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나는 거의 손으로 더듬으며 걸어갔다.
죽음을 당한 그 브론토사우루스의 비명이 떠올랐다. 잇따라 록스턴 경의 횃불에 비추어진 피투성이 괴물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그 괴물이 먹이를 찾는 숲 속에 있는 것이다. 언제 그 괴물이 덤벼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별안간 겁이 나서 총을 고쳐 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려 왔다. 내가 가지고 온 것은 새 따위를 잡는 산탄총으로 라이플 총이 아니었던 것이다.
'괴물들에게는 라이플 총이든 산탄총이든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아무러면 어떠냐! 어차피 기분 풀이를 위해 산책을 하는 건데.........'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빠른 걸음으로 숲 속을 걸어갔다.
숲을 빠져 나와 낯익은 테라노돈의 못 가를 지나가고 있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마리의 테라노돈이 달빛 속으로 날아갔다. 나는 잠깐 넋을 잃었다. 아무 이상이 없었으므로 다시 전진을 계속했다.
나는 냇물을 따라 걸어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 근방을 흐르는 물은 모두 호수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 밑을 달려가는 조그만 동물에조차도 내 신경이 곤두섰다. 하물며 나무 줄기를 짓밟고 지나가는 짐승의 발소리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나는 풀밭을 기어가다시피 하며 걸었다.
오전 1시쯤이었을까? 나는 밀림에 둘러싸인 공지의 중앙에 하얗게 번쩍이는 것을 발견했다.
"앗, 호수다!"
나는 두려움도 잊고 호숫가로 달려갔다. 몹시 목이 말랐기 때문에 엎드려서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물은 맑고 차가웠다.
사방을 둘러보자, 여기는 동물이 물을 마시는 장소인지 여러 가지 동물의 발자국이 있었고, 그리하여 자연히 길이 나 있었다.
일어서면서 저 멀리 몇 개나 되는 빨간빛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다, 저건 모닥불일까? 아니면 용암의 빛일까? 낮에 본 적이 있는 굴이 있는 쪽인데, 만약에 저것이 불빛이라면 그 곳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이외에 이 고장에 인간이 있다면...... 이건 실로 큰 발견이다. 빨리 돌아가서 모두에게 알려 주자.'
되돌아가려 한 순간, 수면에서 요란스러운 물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그 쪽을 보니 은빛 복부를 드러낸 커다란 물고기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였다. 이와 동시에 수면이 또다시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길쭉한 목을 가진 거대한 동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윽고 이놈은 머리부터 먼저, 통과 같이 크고 길쭉한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다시 물 속으로 숨었다.
'놈은 틀림없이 물에서 서식하는 파충류라고 불리는 쥬라기 동물의 한 가지일 것이다. 교수나 박사에게 보여 주면 기뻐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또 수면에서 물결이 일었다. 방금 물 속으로 들어간 괴물이 또다시 길쭉하고 두툼한 목을 들고 떠오른 것이다. 보니까 그 주둥이에는 큰 물고기가 물려 있다. 물고기는 연신 퍼덕거렸으나 목이 길쭉한 괴물이 그것을 고쳐 물더니 꿀꺽 삼키며 다시 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둘러보니까 수면 도처에서 물고기나 파충류 따위가 뛰거나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내 주변에서 물을 마시던 사슴과 같이 순한 동물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에 놀라 일제히 달아난 것이다.
그러자 이윽고 터벅터벅 하는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두려운 나머지 나는 허둥지둥 풀숲 속으로 숨었다.
나타난 거대한 동물은 새와 같이 조그만 머리에 등에서 꼬리까지 물고기 지느러미와 비슷한 모양의 두툼한 세모꼴의 혹이 서 있었다. 마치 온몸에 갑옷을 뒤집어 쓴 듯한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한눈에 메이플 화이트의 스케치북에 있었던 그 동물―챌린저 교수의 흥미를 돋운 그 동물―스테고사우루스(검룡 劍龍)란 것을 알았다.
분명히 그것이다! 지면은 거대한 체중으로 흔들리는 듯 싶었고, 꿀꺽 꿀꺽 들이마시는 물소리는 고요한 밤 공기를 진동시켰다.
바위 뒤에 숨어서 잠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괴물은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큰 바위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 반이다. 이제 돌아갈 시각이었다. 그리고 공포에 찬 밤의 산책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모닥불이 있는 천막으로 되돌아가 편히 쉬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모두 보고해야 한다.
천막까지 절반쯤 왔을 때 나는 등뒤에서 퍽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똑같은 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멈춰 서서 나무 뒤에 숨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 발소리라고 생각되는 소리와 함께 신음 소리 같기도 하고 코고는 소리 같기도 한 낮고 둔중한 소리가 들려 왔다. 웅크린 채 천천히 그 쪽을 응시했으나 나무들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가까운 곳에 무엇인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정신없이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1킬로미터쯤 걸었을까? 그러나 여전히 발소리와 기묘한 숨소리는 어디까지나 등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보다도 더 가까이 들렸다. 틀림없이 뭔가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흠칫했다.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쳤고 온몸의 피가 뒤집히는 듯했으며 머리털이 거꾸로 섰다. 브론토사우루스의 그 무서운 싸움 장면이 떠올랐다. 또 야영지에서 록스턴 경의 횃불에 비쳐 드러난 피투성이의 그 무서운 얼굴이 다시 한 번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달려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으나 무릎의 힘이 빠져 멈춰 서서 뒤쪽을 살폈다.
그러나 그 수상쩍은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고요했으며 그것이 오히려 더욱 소름을 끼치게 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공지의 저 풀숲이 소리를 내며 검정 동물이 밝은 달빛 속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캥거루와 같이 앞다리를 굽히고 강한 뒷다리로 곧게 선 채 뛰쳐나왔다. 몸집은 우뚝 선 코끼리처럼 거대하고 강해 보였으나, 동작은 큰 몸집에 비해 몹시 민첩했다.
두꺼비와 같은 입에서 하얀 입김을 토해 내고 있는 모습이 달빛 속에 잘 보였다. 브론토사우루스 따위보다 훨씬 날렵하다. 색다른 생물의 냄새를 맡고 이놈이 내 뒤를 따라온 모양이다
나는 뛰었다. 럭비 선수였던 나는 달리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곳은 땅바닥이 울퉁불퉁하며 도처에 나무 뿌리가 뻗어 나와 있었기 때문에, 럭비 운동장과는 달리 달리기가 힘들었다. 그뿐 아니라 이 근방에는 높은 나무들이 없어 앞이 트여 있었으므로, 뒤에서 추적해 오는 것이 내 모습을 놓칠 리가 없다.
사나운 포효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뛰어오는데, 길쭉한 코를 들고 약 20미터씩 사이를 두고 다리를 옮기는 것이다. 아마 내 발자국에서 무슨 냄새를 맡아 내려는 몸짓이었다. 이따금 머뭇거리곤 했으나 곧 냄새를 맡아 내고 따라온다.
손에 총이 들려 있었으나 그런 것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도망칠 수밖에 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전방에 한 줄기 길이 보였다. 짐승들이 다니던 길이었다.
이 길 같으면 어디론가로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총을 버리고 달렸다. 다리가 아프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더 이상 달릴 수 없어 발을 멈추고 말았다. 뒤에서는 이미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나는 상대를 신통하게 따돌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안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면서 괴물이 다시 추격해 왔다. 더구나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뛰었다.
이 때까지 괴물은 냄새를 맡고 추적해 왔다. 그러므로 추적 속도도 약간 늦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리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이제부터는 눈으로 보고 추격해 왔다.
길은 곧바로 뻗어 있었으므로 내 모습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윽고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뒤돌아보니 괴물은 성큼성큼 여전히 쫓아오고 있었다. 크게 튀어나온 눈과 날카로운 이빨과 번뜩거리는 발톱이 달빛에 반짝인다.
나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르면서 마치 미치광이처럼 뛰고 또 뛰었다. 바로 등뒤에서 괴물의 헉헉 하는 숨소리와 발소리가 육박해 왔다.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 같았다.
'아, 이젠 끝장이다!'
하고 생각했을 때 느닷없이 발부리가 허공에 뜬 느낌이 들었다.
'앗!'
마침내 내 몸뚱이가 공중에서 곤두박질하고 있다고 느껴졌다―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사라진 친구들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경과했을까? 캄캄하고 사방은 축축하다. 무엇인가 곰팡이가 슨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문득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이 보였다. 별이 반짝인다. 정녕 나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모양이다. 그 괴물에 쫓기어 넋을 잃고 달리다가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일어섰다. 사방의 상황을 살피려고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어 켜 보았으나 좀처럼 켜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물컹한 것을 밟았다. 느낌으로는 살덩이 같다. 단단한 것이 발바닥에 닿기도 했다. 아마 동물의 뼈인 것 같다.
구덩이 중앙에 두툼한 말뚝과 같은 것이 서 있다. 만져보니 미끈미끈하며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고약한 냄새였다.
한시라도 급히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구덩이 위에 괴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괴물은 힘은 세지만 지능이 낮은 것 같다. 먹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냄새도 사라졌으니 곧 잊어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앙의 말뚝과 구덩이의 흙벽을 짚으면서, 여러 번 미끄러지면서도 간신히 기어올라갈 수 있었다. 몸뚱이가 밖으로 나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구덩이 깊이는 30미터쯤이었는데 말뚝 길이는 1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구덩이 위로부터 덩굴이 늘어져 있었고, 또 구덩이에도 울퉁불퉁한 데가 많아서 간신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달빛이 사방을 고요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물론 염려했던 괴물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왔다. 죽을 둥 살 둥 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구덩이에 떨어질 때 입은 허리의 아픔도 되살아났다.
그러나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시바삐 캠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땅 속 깊이 구덩이를 파고 말뚝을 박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챌린저 교수가 이 곳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가지고서는 이 곳에 있는 괴물들과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로써 어떻게 인간이 그들과 대항해 왔는가를 알았다. 이 곳에 있는 인간은―어떤 인간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입구가 좁은 구덩이를 피난처로 삼은 것이다. 그 곳에는 몸집이 큰 파충류는 들어가지 못한다. 또 그래서 이런 구덩이를 생각해 낸 것이다. 그것을 동물들이 지나가는 길에 만들고 위를 수풀로 덮어, 어떤 강한 동물이라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위의 벽은 인간 같으면 올라오는 데 별로 힘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사방이 점차 밝아 왔다. 이에 기운을 얻어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았다. 조금 간 곳에서 총을 주워 들고 이윽고 눈여겨보아 둔 냇물로 나왔다. 이리하여 도중에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면서 천막을 향하여 걸었다.
이 때 조용한 아침 공기를 깨고 별안간 탕! 하는 총성이 들려 왔으나, 총 소리뿐 아무 일도 없었다.
교수들에게 무엇인가 위험이 닥쳐왔는가 하고 생각하니 끔찍스러웠다. 이미 날은 밝았다. 모두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내가 길을 잃었는가 싶어 총을 쏘아 방향을 알려 주고 있으리라. 총을 함부로 쏘지 않는다는 것은 엄격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내가 위험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주저하지 않고 발포한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모두를 안심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지친 몸을 끌듯 하면서 서둘렀다.
숲을 빠져나가 캠프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하늘은 완전히 밝았고, 모닥불도 다 사윈 뒤였다.
"돌아왔습니다!"
4, 5미터 앞에서부터 소리를 질렀으나 캠프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떨렸으나 다리를 끌듯 하며 뛰었다.
울타리 통로는 열려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들어가 보니 뜻밖의 광경이 눈에 비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무엇인가에 의해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예의 총성은 그 시각을 일러주고 있었을 것이다. 총성이 단발로 그친 것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나 버렸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총은 땅에 뒹굴고 있었다. 록스턴 경의 총엔 빈 총알이 들어 있었다.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의 담요가 모닥불 곁에 있는 것은 그 때 두 사람이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탄약 상자와 식료품 상자 따위는 엉망이 돼있었으나 없어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드러난 식료품은 남은 것이 없다. 기습해 온 것은 인디언이 아니라 역시 동물이다. 인디언 같으면 무엇 하나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어찌 되었는가? 동물이 엊저녁에 나를 추적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면 수월하게 누군가를 낚아채 갈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되었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뒤를 추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총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머리는 더욱더 혼란에 빠져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 때 나는 한 가지 일을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결코 혼자가 된 것은 아니다. 낭떠러지 밑에 충실한 점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대지 가장자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그만 캠프의 모닥불 옆에 담요로 몸뚱이를 감고 웅크리고 있는 점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또 한 사내가 앉아 있다. 나는 일행의 누군가가 무사히 내려갔는가 싶어 설레는 가슴으로 다시 한 번 본 순간, 그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침 햇빛을 받고 있는 그 사내의 피부는 붉다. 인디언이다. 나는 힘차게 손수건을 흔들면서 소리질렀다.
소리를 들은 점보는 손을 흔들며 끝이 뾰족한 바위산으로 올라왔다. 이윽고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슬픈 얼굴로 내 말을 듣고 나서,
"클루프리에게 끌려간 겁니다. 머론 씨, 머론 씨도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잡힙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달아나지?"
"튼튼한 덩굴을 찾아보십시오. 그걸 이 쪽으로 던지시면 내가 이 나무 밑동에 동여매겠어요. 그렇게 하면 다리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 점이라면 나도 생각했어. 그러나 여긴 다리를 가설할 만한 덩굴이 없단 말이오."
"줄을 가지고 오도록 시키면 되죠."
"어디로? 누굴?"
"인디언 부락이죠. 인디언 부락에는 가죽으로 만든 줄이 얼마든지 있습죠. 아래에 인디언이 와 있으니까 그 자를 보냅시다."
"누구지?"
"알고 지내는 녀석이죠. 딴 놈이 두들겨 패고 품삯을 뺏어 갔다면서 다시 왔습죠. 편지도 가지고 가고 줄도 가지고 오고…― 무엇이든 잘 합니다."
편지도 가지고 간다! 잘 하면 구조(救助)해 줄 사람을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사내 덕택에 우리는 개죽음을 하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손에 넣은 귀중한 자료를 빠짐없이 영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두 통의 보고서를 작성할 참이었다. 이것을 저 인디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저녁때에 다시 한 번 올라오도록 점보에게 부탁하고, 온종일 어젯밤의 사건을 소상하게 적었다. 이것과는 별도로 한 통의 편지를 써서, 그 인디언이 백인 상인이나 기선의 선장을 만나면 건네주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꼭 로프를 보내 주어야 하며, 우리의 목숨은 로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저녁때 이 보고서와 편지와 금화 세 닢이 들어 있는 지갑을 점보에게 던져 주며,
"로프를 가지고 돌아오면 이 세 배의 돈을 주겠다고 인디언에게 전해주시오!"
하고 약속했다.
 
위태롭다! 사마리 박사
 
널따란 평원에 저물어 가는 석양을 등에 받으며, 저녁놀 속에 사라져 가는 인디언의 뒷모습을 먼발치로 보고 나는 캠프로 돌아왔다.
이미 이 캠프가 안전한 장소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으나, 숲 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 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출입구를 막고, 세 군데에 세모꼴로 모닥불을 피우고 나서 배부르게 저녁 식사를 마치자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이튿날 동이 틀 무렵에 무엇인가 팔을 스친 것이 있어 퍼뜩 눈을 떠 본 순간, 나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록스턴 경이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지 않은가!
"머론, 서둘러. 곧 총을 들어요!"
팔을 잡혀 일어선 나는 록스턴 경의 거동을 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나 원기가 왕성한 록스턴 경이 하루 밤사이에 완전히 변모된 것이다. 볼이나 눈이 움푹 패이고 온몸이 피투성이다. 그뿐 아니라 옷도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늘 쓰고 있는 헬멧도 없었다.
"빨리! 빨리!"
재촉을 받은 나는 말할 사이도 없이 총과 통조림을 들고 캠프를 뛰쳐나갔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나는, 록스턴 경에게 이끌려 숲을 지나 가시덤불 숲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교수와 박사님은 어디 가셨어요?"
"쉿!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놈들은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귀가 예민하니까 소리를 내면 안 돼."
록스턴 경은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놈들이라니, 도대체 누구입니까?"
"원인. 오늘 아침에 놈들은 그 큰 은행나무로부터 잠자고 있는 우리를 습격해 왔소. 한 마리는 해치웠는데 좌우간 셀 수 없을 만큼 숫자가 많아요."
순간적으로 나는, 은행나무 위에서 노려보던 밉살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원인이란 것은 원숭이인지 인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존재야. 온몸에 털이 잔뜩 나 있는데, 어쨌든 영리한 놈으로 몽둥이나 돌멩이를 손에 들고 무기로 사용할 줄 알아요. 게다가 뭔가 말과 같은 소리를 지껄였지."
여기까지 단숨에 전해 준 록스턴 경은 겨우 침착함을 되찾은 모양으로, 웃긴다는 듯이 어깨를 들먹였다.
"챌린저 교수는 진짜 겁도 없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소리를 질렀다오."
"그러면 원인들에게 얻어맞았나요?"
"아무튼 들어 봐요, 머론. 이제부터가 재미있으니까."
무엇이 재미있다는 것인지 록스턴 경은 혼자서 킬킬거리며,
"새끼줄로 묶인 우리들 앞에 한 마리의 늙은 원인이 나타났지. 우두머리였던 모양이야. 그놈의 상판을 본 순간 우리들은 사로잡혔다는 생각 따위는 망각해 버리고, 느닷없이 폭소하고 말았지. 꼭 닮았지 뭐요, 머론."
"뭐가 말입니까?"
"챌린저 교수와 꼭 닮았단 말이야. 교수의 얼굴을 붉게 칠한 것 같았어. 사마리 박사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야단스럽게 웃어대었지. 챌린저 교수와 원인의 우두머리가 닮았다는 것을 원인들도 느낀 모양이었소. 우두머리는 교수의 어깨에 앞발을 얹고 싱긋 웃었지. 박사와 나는 새끼줄에 묶여 끌려 다녔지만 교수만은 네다섯 마리의 원인의 목말을 타고 뽐냈다오."
갑자기 록스턴 경은 이야기를 그쳤다. 먼 곳에서 무엇인가 대나무 토막 따위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놈들이다! 우리를 찾고 있는 거다. 총에 실탄을 재요!"
두 사람은 가지고 온 네 자루의 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그런데 방금 얘기의 계속인데, 우리들은 놈들의 서식처로 끌려갔지. 여기서 5, 6킬로미터쯤 떨어진 큰 숲 속으로. 그 곳에는 나무 위에 만든 움막이 많이 있어. 움막이 원인들의 집이지. 놈들은 물고기를 잡는 데도 능숙했고, 덩굴을 이용하여 어망도 솜씨 있게 만들었더군.
사마리 박사와 나는 한 그루의 나무에 묶였소. 그런데 챌린저 교수만은 대우가 달랐단 말이오. 예의 교수와 닮은 우두머리와 나무 위에서 과일인지를 먹고 있었다니까. 그리고 즐겁게 뭔가 노래를 불렀지. 녀석들은 귀가 발달했기 때문인지 음악을 좋아하더군. 챌린저 교수가 노래를 부르니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뻐하는 것 같더라니까."
나는 록스턴 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챌린저 교수의 노래를 연상하자 어쩐지 즐거워졌다.
게다가 록스턴 경의 이야기 소리는 비록 낮았으나, 방금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머론, 자네는 어젯밤 습격을 당하기 전에 호수 건너편에서 불을 보았다고 말했지. 그건 분명히 불이었네. 여긴 인디언도 있어요.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 제임스 콜버의 두개골이 있던 그 숲 속 말이야. 그 대나무 숲에서 인간의 뼈를 보았잖아. 머론, 놀라지 말라고. 그건 실수로 떨어진 게 아니었어. 낭떠러지 위에서 원인들에게 떠밀려 떨어졌단 말이오. 그 대나무 숲 위가 그들의 서식처였으니까."
록스턴 경의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참으로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것이었다.
원인(猿人)들은 록스턴 경 일행 세 사람 외에, 어디서인지 몇 명의 인디언을 포로로 하여 끌고 왔다. 그리고 두 인디언을 때려 죽였고 한 사람은 팔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의식(儀式) 비슷한 행사를 가지며 포로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예의 콜버도 같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사마리 박사는 너무나 참혹하여 기절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혼자서라도 도망칠 궁리를 했지. 두 친구를 어찌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감시하는 놈의 방심을 이용하여 새끼줄을 끊고 도망쳐 온 거야. 원인들은 몸이 민첩하지 못 하고 다리가 짧더군. 어기적거리며 빨리 뛰지 못한다고."
"그러면 교수와 박사는?"
"그들을 이제부터 구하러 가야 해. 원인들은 총의 위력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총을 캠프에 버려 둔 거라네. 총만 있으면 뭘 못 하겠나. 놈들은 파충류처럼 가죽이 두꺼운 건 아니니까 한 방이면 족하다고."
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백 미터 가량 저 쪽으로 원인의 한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다리가 쩍 벌어져서 걷고 있다기보다는 기우뚱거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개중에는 가끔 손으로 몸을 땅에 의지하고 있는 놈도 있었다.
"저놈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록스턴 경은 손 칼로 통조림을 열었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록스턴 경은 연방 사방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 영국 신사는 선천적으로 모험가인 것일까.
위험이 다가올수록 용기가 솟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 후에, 우리가 원인의 서식처 가까이 도착했을 때, 무서운 의식이 이제부터 벌어질 참이었다.
"잘 됐어, 적당한 때에 왔다."
록스턴 경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내게 속삭였다.
밀림의 중앙 광장에는 사마리 박사와 몇 명의 인디언이 묶여 있었으며, 그 주위를 원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나무 위에는, 아무리 보아도 쌍둥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챌린저 교수와 원인의 우두머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두머리가 긴 수염을 바람에 너풀거리며 일어서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한 손을 들었다.
이윽고 한 인디언이 끌려 나와 순식간에 낭떠러지 가장자리에서 깊은 골짜기로 밀려 떨어졌다.
이 순간 광장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이윽고 와아 하고 환성이 일어났다.
잇따라 끌려 나와 골짜기로 밀쳐지는 포로의 모습을 숨을 삼키며 응시하고 있던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앗, 사마리 박사다!"
끌려 나온 사람은 우리 일행인 사마리 박사였다. 박사는 손발이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으나 세 놈의 원인을 당할 수는 없었다.
챌린저 교수는 일어서서 우두머리에게 연방 무엇인가를 떠벌리고 있었다. 사마리 박사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성가시다는 듯이 교수를 밀어내자 조용히 손을 들었다. 이때 탕! 하고 귓전에서 요란한 총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순간, 바라보니 우두머리가 나무에서 굴러 떨어졌다. 교수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탕! 탕! 탕!
박사를 붙잡고 있던 세 원인이 잇따라 쓰러졌다. 그러나 원인들은 무슨 일이 발생했고 왜 우두머리가 나무에서 떨어졌는가, 그 이유를 도무지 알지 못한 모양으로 다만 악을 쓰며 일어섰다가 펄쩍펄쩍 뛸 따름이었다. 박사도 정신이 이상해진 것처럼 원인들과 함께 허둥거리고 있었다.
여기에 챌린저 교수가 뛰어가서 박사의 팔을 꽉 잡았다. 교수는 우리가 구하러 왔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교수는 총 소리가 들려 오는 방향으로, 박사를 끌다시피 하며 달려 왔다.
"쏴, 머론. 마지막 한 발까지 쏴!"
록스턴 경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라이플 총을 고쳐 들고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퍽퍽, 재미있게 거꾸러진다. 아무튼 놈들은 한군데 엉겨 있었으므로 그 쪽만 겨누고 쏘면 적중하는 것이다. 교수와 박사도 나머지 두자루의 총을 집어들자 발사하기 시작했다.
지쳐 있는 박사를 격려하면서 우리는 풀숲 쪽으로 뛰어갔다. 밀림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만사는 잘 될 것이다. 록스턴 경은 우리를 지키면서 맨 뒤를 달려온다. 그 총 솜씨는 참으로 훌륭했다. 한 발의 허비도 없었다. 전부 맞추었다.
그러나 원인들 중에도 용감한 자가 있어 1, 2킬로미터까지 추격해 왔으나, 그 동안에 총의 무서운 힘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접근해 오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캠프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추격해 오는 놈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었다.
 
목숨을 건지다
 
울타리의 출입구를 막고, 시원한 샘물을 마셨을 때, 비로소 간신히 살아났다고 생각하며 우리 네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 때였다. 울타리 밖에서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와 동시에 애걸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기어코 왔구나!"
록스턴 경은 재빨리 총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그 곳에는 원인에게 사로잡혔던 인디언 가운데 살아 남은 네 사내가 벌벌 떨면서 서 있었다.
인디언들은 뒤쪽 숲을 가리키며, 공포에 넘치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은 교대로 록스턴 경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애원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어찌 된 영문일까요?"
록스턴 경은 난처한 듯이 수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박사는 일어서며 파이프에 담배를 쟁이면서,
"이 녀석들도 구해 줘야겠지요. 여러분은 우리 둘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준 훌륭한 일을 하셨소."
"분명히 그래요. 동물학계의 귀중한 인물인 우리 두 사람을 구해 주신 거니까."
교수는 예나 다름없이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였다. 그러나 그 귀중한 인물인 두 학자는, 머리카락이 흩어지고 앞가슴을 드러내 놓고 누더기를 입고 있는 형편이다.
네 명의 인디언들은 쇠고기 통조림을 열고는 연방 고기를 먹으면서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교수를 보자, 모두 안색을 바꾸며 록스턴 경의 다리에 매달렸다.
"하하하, 두려워할 건 없어요. 저 사람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야."
록스턴 경은 큰 소리로 웃었다. 지쳐 힘이 없는 박사나 나도, 나무 위에서 원인의 우두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을 때의 당당한 교수의 모습을 생각하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연하지."
교수는 부루퉁하여 말했다.
"하하하. 그러나 말입니다, 교수님이 그 원인과 닮았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교수는 몹시 기분이 상한 모양으로 록스턴 경에게 항의했다.
"자네 말은 도무지 이해 못 하겠어. 그런 일보다도 어쨌든 이들 인디언들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이들이 있던 곳을 알면 우리 손으로 안전하게 보내 줘야 할 게 아닌가."
교수는 원인의 우두머리와 닮았다는 문제에서 화제를 바꾸려는 듯이 말했다.
"녀석들이 있는 곳은 아마 호수 건너편의 동굴이겠지요. 밤에 호숫가에서 그 동굴의 입구에 불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거기까지 거리는 얼마나 되나?"
"40킬로미터가 못 될걸요."
내가 대답하자 박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40킬로미터라고? 나는 이제 1킬로미터도 걷지 못하겠는데 ........"
이 때 풀숲 쪽에서 원인들이 떠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인디언들은 겁이 나서 록스턴 경의 뒤로 숨으려고 했다.
"여긴 위험하다. 짐은 이 네 사람에게 운반시키고 어쨌든 동굴로 갑시다."
록스턴 경의 재촉을 받으며 나는 지쳐 있는 박사를 업고 걷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조금 전에 옮겨 올 때 눈여겨보았던 가시덤불 속으로 갔다. 그러나 이 곳도 안전할 것 같지 않아서, 손짓으로 인디언들에게 동굴로 안내하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몹시 기뻐했다.
나는 걸으면서 네 인디언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원인과는 달리 마르고 단단한 몸집에 동작도 민첩했다.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까만 머리털을 가죽끈으로 묶었고 지껄이는 말도 제법 복잡한 듯했다. 원인 족을 가리켜 <도다>라고 했고, 자기네를 가리켜 <아카라>라고 했다. 제일 젊고 머리를 반쯤 깎은 사내가 넷 중에서 가장 뽐내고 있었다. 다른 셋은 이 사내에게 순종하며 존경까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젊은 녀석이 아마 추장일 거요."
록스턴 경이 말했다. 그러자 챌린저 교수가 그야말로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이 인디언들은 두개골이나 얼굴 형태로 보아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지능이 낮은 인디언보다는 지능이나 생활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자 사마리 박사가 끼여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쥬라기의 생물과 같이 있지요?"
"어디선가에서 쫓기어 도망쳐 온 것일 테지요."
"원인들도 쫓기어 온 건가요?"
"아니, 놈들은 이전부터 이 근방에서 서식하고 있었소. 그러니까 이 고장에서는 동물의 발달 형태에 질서가 없어요. 한편으로는 두뇌가 발달된 원인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쥬라기의 파충류도 있어요."
"아니, 그건 잘못이오. 도대체........."
토론은 이런 식으로 계속되어 언제까지나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있었다.
이런 일보다도 나는 물을 길러 간 인디언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토론에 넋을 잃고 있는 두 학자의 곁을 떠나 냇물 쪽으로 찾으러 나갔다.
내가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리란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냇물은 가까이에 있었는데 물가에까지 온 나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조금 전에 나간 인디언이 무엇인가에 의해 살해되어 벌렁 누워 있는 것이다.
나는 큰소리로 일행을 불렀다. 그리고 죽은 인디언을 굽어보려다가 우연히 그 곁에 있는 나무를 쳐다보게 되었다.
"앗!"
나는 무의식중에 물러섰다. 털에 덮여 있는 두 팔이 막 나를 붙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손은 날렵하게 내 목을 잡았다. 그 순간 내 몸뚱이는 떠오르는 듯하며 동시에 세찬 힘으로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는 정신없이 상대의 손을 밀어냈으나 털에 덮인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흰 이빨을 드러낸 그 무서운 얼굴이 내 눈앞에, 아니 내 얼굴 바로 앞에 접근해 왔다.
내 목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손발을 버둥거리던 나는 점점 숨을 쉬기가 고통스러워졌고, 버틸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때 먼 곳에서 총 소리 같은 것을 희미하게 들은 것 같았으나, 이미 나의 의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숲 속의 풀밭 위에 뉘어 있었다. 록스턴 경이 내 머리에 물을 뿌리며, 교수와 박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 때까지 학문상의 논쟁 외에는 어떤 일에도 흥미나 관심도 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온 나는 새삼스럽게 두 학자의 인간다운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누운 채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도대체 어찌 된 셈이지요?"
"정말 위험했었네. 자네의 절규 소리를 듣고 달려갔지. 자네가 고개가 꺾인 채 버둥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난 글렀구나, 하고 생각했어. 당황하여 쏘았기 때문에 맞지 않았지."
록스턴 경이 설명해 주었다.
"머론, 자네는 단순히 기절했던 것일세. 상처는 없으니까 안심해도 좋아요."
교수는 기운을 북돋워 주듯이 말했다.
"아무튼 그 원인이란 놈들은 너무 집념에 사로잡혀 있거든. 무서운 존재야."
박사는 원인의 본능에 관해 탄복하고 있었다.
30분 가량 지나자 나는 원기를 회복했다. 그러나 원인에 대한 공포는 다른 세 사람보다 강하여 한시라도 빨리 원인이 있는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고 싶기만 했다.
 
원인과 인디언의 싸움
 
한가롭게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길을 재촉했다.
석양 무렵에 호숫가에 도착했다. 한숨 돌리며 쉬고 있으니까 젊은 인디언 추장이 갑자기 환성을 지르며 무엇인가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인디언들도 짐을 동댕이치고 호수 수면을 가리키며 풀쩍 풀쩍 뛰면서 기뻐한다.
바라보니 이미 어둑해진 호수의 수면을 열 척쯤의 통나무배가 이 쪽을 향하여 저어 왔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였으나 뜻밖에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가까이 왔다.
배 위에서도 인디언들의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이윽고 많은 인디언들이 모래톱 위에 뛰어내렸다. 그리고 젊은 인디언 앞에 넓죽넓죽 엎드렸다.
마지막으로 유리구슬로 된 목걸이를 하고, 표범의 모피를 몸에 걸친 노인이 조용히 배에서 내렸다. 젊은 인디언은 그 노인에게 뛰어가 얼싸안으며 서로 기뻐했다.
"저 노인은 젊은 인디언의 부친인 모양이군.."
록스턴 경이 나에게 말했다. 아들 인디언은 우리 네 사람을 가리키며 무엇인가 연방 지껄이고 있었다. 이윽고 부자가 나란히 네 사람 앞에 오자 부친 쪽이 네 사람을 하나씩 정중하게 안았다.
그리고 데리고 온 인디언들을 돌아보며 무엇인가 외치자, 모두 달려와서 우리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추장 아들의 목숨을 구해 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디언들은 모두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긴 대나무 끝에 뾰족한 뼈를 붙인 창이나 화살, 곤봉, 돌도끼 따위를 손에 들었다. 원인에게 사로잡혔던 추장의 아들에 대한 복수전을 벌일 모양이었다.
젊은 추장은 인디언들에게 무엇인가 연설을 시작했다. 원인이 서식하고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증오의 표정을 지으며 '도다, 도다.'라고 지껄인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아카라' 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일어선 늙은 추장이 격렬한 말투로 길게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의 대목 대목에서 오! 오! 하고 맞장구를 치는 듯한 소리가 청중 속에서 일었다. 그리고 늙은 추장의 연설이 끝나자 모두 환성을 질렀다. 그것은 출전(出戰)에 앞서 사기를 돋울 필요가 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연설을 마친 노(老)추장은 우리 네 사람에게 접근하여 허리를 굽히며 무슨 시늉을 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이제부터 원인과 한바탕 벌일 것이니 도와 달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우리도 원인들이 이 곳에 있는 이상 밤에도 편히 잘 수 없으니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어떻소?"
록스턴 경이 말했다. 교수나 나도 그 자리에서 찬성했으나 사마리 박사만은,
"나는 인디언들과 한통속이 되어 원숭이와 싸우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게 아니오."
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박사님만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 남아 계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박사는 당황하며,
"나 혼자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할 수 없군, 같이 갑시다. 젠장, 런던 친구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박사는 원인들과 또 상면하는 것이 진정으로 싫은 모양이었다.
이 날 밤은 호숫가에서 야영했다. 사마리 박사는 피로하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우리 세 사람은 호수 주위를 산책했다.
교수와 록스턴 경은 뜨거운 물과 가스가 솟아오르는 파란 점토의 샘 근처에 이르자 움직이지 않았다. 록스턴 경은 흥미가 있다는 듯이 점토를 파헤치며 토질을 조사하고 있었고, 교수는 갈대 줄기를 토막내어 분출하는 가스의 거품을 줄곧 휘젓고 있다. 어쨌든 이 두 사람은 나와는 달리 묘한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밤 동안에 동굴에서 지원군인 인디언들이 뒤따라왔다. 이튿날 일찍, 호숫가에 정렬한 인디언들은 4, 5백 명의 대군을 이루었다.
인디언 군은 창을 든 한 부대를 앞에, 활을 든 한 부대를 뒤로하여 옆으로 늘어섰다. 록스턴 경과 교수는 오른쪽에, 박사와 나는 왼쪽에 각각 총을 들고 참가했다.
우리는 이대로의 대열을 이루고 원인의 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돌멩이나 몽둥이를 든 원인들이 나나 인디언군의 중앙을 격파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없는 전쟁이다. 원인들이 평지에서 어물거리고 있는 것을 인디언 군이 이들을 포위하고 창으로 찌르고 활로 쏘아 맞추는 등 선제 공격을 하여 대세를 잡아 버린 것이다.
불리하다고 판단한 원인들은 재빨리 나무로 올라갔고,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면서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이렇게 되자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화살도 무기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는 듯싶었고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인디언 군은 점차 패색(敗色)이 짙어져 가고 있었다.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때는 이 때다!"
록스턴 경의 소리를 신호로, 손에 든 라이플 총의 방아쇠를 일제히 당겼다.
이윽고 몇 마리인가의 원인이 나무 위에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다. 개중에는 총 소리에 놀라 떨어진 놈도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인디언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돌진하였다.
조준은 정확했고 원인들은 차례 차례로 쓰러져 갔다.
원인들은 점점 몰려 자기네 서식지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살아 남은 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하지. 나머지는 인디언들에게 맡깁시다."
총을 한 손에 든 록스턴 경이 말했다.
원인들은 광장에서 최후의 도전을 하려고 공격해 왔으나 나무가 많은 밀림과는 사정이 달랐다. 곧 공격을 당하여 절반은 찔려 죽었고, 나머지 절반 가량은 예의 낭떠러지에서 골짜기나 대나무 숲으로 떠밀려 떨어져 갔다. 원인들이 인디언들을 사로잡아 떨어뜨려 죽인 바 있던 그 대나무 숲에, 이번에는 반대로 원인들이 곤두박질치며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전쟁은 끝났다. 그리고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수컷이 죽은 원인의 암컷이나 새끼들은 인디언 군에게 사로잡혀 담쟁이덩굴로 단단히 묶인 채 인디언 부락으로 끌려갔다.
늙은 추장을 비롯한 인디언들은 우리의 협조에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동굴로 이루어진 그들의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귀중한 손님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상의한 끝에 동굴 근방에 천막을 치고 거기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추장은 동굴에서 같이 있기를 바라는 모양으로, 종종 우리에게 동굴의 좋은 점을 보여주며 손짓으로 설명하였는데,
"나의 오랜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문화가 낮은 야만인들은 비록 목숨을 구해 주는 후의를 베풀어주어도 언제 어느 계기로 배신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특징이오."
하는 록스턴 경의 강력한 의견에 대해 교수나 박사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네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대지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인디언들에게 여러 차례 그것을 물어 보았으나 누구 하나 알고 있는 자가 없었다.
"뛰어난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우리들을 언제까지나 자기네가 있는 곳에 묶어 둘 심보인지도 몰라요."
교수는 곁에 세워 둔 총을 곁눈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박사는,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녀석들은 그 길을 몰라요."
하고 우겼다.
이런 일까지도 두 사람의 의견은 대립되었다. 나는 박사와 같은 생각이었으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인디언들의 동굴이란,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를 이용하여 옆으로 굴을 낸 것이다. 낭떠러지 꼭대기까지는 2백 미터쯤 될까. 거기까지 가려면 가파르고 좁다란 돌층계를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동굴의 깊이는 여러 가지였다. 굴의 안벽에는 숯검정으로 동물의 그림이 몇 군데 그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는 예의 테라노돈이나 티라노사우루스도 있었다.
이것들은 문화가 낮은 인디언이 그렸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그 솜씨가 대단했다.
이들의 마을에서는 온순한 브론토사우루스가 마치 개나 고양이와도 같이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대충 알게 된 후로는, 이 부락에서의 우리들의 생활은 참으로 단조롭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연구심이 강한 두 학자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는 매일 통나무배를 타고 호수를 조사하러 갔다. 이 두 사람은 심심하다는 것을 도통 모른다.
록스턴 경도 어디를 가는지 아무튼 매일 자취를 감춘다. 결국 제일 심심한 것은 나뿐이다. 그래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젊은 인디언을 상대로, 손짓 몸짓으로 이야기했다. 그 밖의 시간은 일기를 쓰거나 하는 일뿐이어서 시간을 보내는 데 큰 고통을 겪었다.
이런 어느 날이다.
"스토아! 스토아!"
갑자기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들려 왔다.
록스턴과 나는 총을 들고 급히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다. 보니까 인디언들은 사내는 물론, 부인과 아이들도 앞을 다투어 돌층계를 올라간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이다. 한 여자는 허리를 다쳤는지 기어간다. 그 얼굴들은 모두 공포 때문에 굳어 있었고, 소리를 지르는 자도 없었다.
바로 그 때다. 도망치는 그들 뒤에서 모습을 내미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앗!"
하고 외치고 말았다. 그놈인 것이다. 예의 무서운 티라노사우루스! 내가 추격을 당했던 바로 그 거대하고 아주 난폭한 공룡인 것이다! 더구나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나 된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밤에만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것이 낮에 나타난 것은 정녕 누군가가 그 서식처라도 짓밟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짐승은 도망치고 있는 인디언들을 바짝 따라붙었다. 맨 뒤의 사내가 티라노사우루스의 앞다리에 채어 쓰러졌다. 이윽고 커다란 뒷발로 사내를 짓이기고 말았다.
꽥!
사내는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즉사한 것이다. 괴물은 잇따라 다음 먹이를 덮친다.
몸집의 크기에 비하여 그 동작은 참으로 민첩했다. 살해하는 방법도 그야말로 참혹 그것이었다. 차례로 제물이 되는 인디언들은 짓밟혔고, 이것이 인간이었던가 하고 생각되리만큼 처참한 꼴이 되어 갔다.
총을 겨누어 든 록스턴 경과 나는 정신없이 계속 이 괴물을 향하여 발사했다.
탄알은 한 방도 빗나가는 법 없이 차례로 명중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괴물은 총을 맞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알아차린 한 마리의 티라노사우루스가 이번에는 돌아서서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위험하다! 뛰자!"
록스턴 경의 소리를 신호로 우리는 인디언들과 함께 허겁지겁 돌층계를 올라갔다.
인디언들이 다 도망친 것을 확인한 노 추장은 낭떠러지 위에 서서 무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낭떠러지 위의 이곳 저곳에서 일제히 인디언들의 화살이 날기 시작했다.
총을 가지고서도 안 되었는데 화살 따위로는 어림도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였다.
세 마리는 낭떠러지 위의 인디언과 우리를 향하여 돌층계를 기어올라가려고 앞다리를 사용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몇 번이고 시도하는 동안에 잇따라 화살이 날아갔다.
요란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면서 돌층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던 세 마리의 괴물은 쿵! 쿵! 소리를 내며 차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하여 얼마 동안 그대로 땅바닥에서 괴로운 듯이 버둥거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세 마리 다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인디언들의 화살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 문명의 무기인 라이플 총에 비해, 원시적인 인디언들 화살의 위력 따윈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던 우리 네 사람은, 그 화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을 하니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화살을 맞고 독 때문에 죽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주검은 잘게 토막내어 멀리 물 속에 버려졌다. 이것은 독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두 학자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는 귀중한 자료를 잃은 나머지 완전히 실망한 모양이었다. 록스턴 경과 나는 동굴 앞에 버려진 티라노사우루스의 심장이 그 후 사흘 동안이나 팔딱팔딱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과, 라이플 총보다도 그들의 화살 쪽이 더 위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똑같이 놀랐다.
 
하늘을 나는 경기구(輕氣球)
 
우리는 삼 주일 동안이나 인디언 부락에서 살았다. 그 사이 매일 어떻게든 이 대지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까 하고 그것만 궁리하며 보낸 것이다.
인디언들은 원인과의 싸움이래 우리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여기며 언제까지나 이 고장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의 탈출 계획은 그들에게 탄로 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왜냐 하면 때가 되었을 때 그야말로 그들은 폭력으로라도 우리를 붙잡아 두려고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공룡과 부닥칠 위험은 있었으나 여전히 낭떠러지 아래에서 감시를 하고 있는 점보와 만나기 위해 이 삼 주일 동안에 두 번 본래의 캠프에 가 보았다.
그러나 선인장이 흩어져 있는 대평원은 아득한 대나무 숲에까지 멀리 펼쳐져 있을 뿐, 구조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곧 올 겁니다. 인디언이 로프를 가지고 틀림없이 올 겁니다."
점보는 나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는 듯이 외쳤다.
두 번째 갔을 때 묘한 일이 있었다. 테라노돈의 늪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나는 큰 대나무로 된 광주리를 쓴 자와 만났다. 처음에는 놀랐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록스턴 경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웃으면서 다가왔으나 그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당황한 빛이 보였다.
"머론인가,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군."
"웬일이시지요?"
하고 내가 물었다.
"예의 테라노돈을 찾아보려고 말이야."
"그건 또 왜요........."
"상대하기 힘은 들지만 재미있는 짐승이라고 생각지 않나? 알다시피 이 짐승은 난폭하다. 그래서 이런 광주리를 만들어 본 걸세."
"도대체 그런 늪에 무슨 용무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순간, 록스턴 경의 얼굴에 주저하는 빛이 나타난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니지. 알고 싶은 사람은 학자만이 아니지. 그러니까 나도 연구하고 있는 거라고. 자, 이 정도로 해명하면 되겠지."
"저는 무슨 딴 생각으로 물어 본 건 아닙니다."
"알고있네. 마음 쓰지 말게나. 챌린저 교수를 위해서 악마의 병아리쯤 한 마리 잡아서 이 광주리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올 참이었어. 하지만 자네에겐 위험한 일이야. 도와주지 않아도 돼. 해 지기 전에 캠프로 돌아올 테니까. 그럼 실례."
록스턴 경은 몸을 돌리더니 묘한 모양의 광주리를 뒤집어쓰고 숲 쪽으로 걸어갔다. 좀 이상하다.
이상하기로 말하자면 챌린저 교수 편이 더 이상했다. 교수는 언제나 큰 종려나무 잎을 손에 들고 걷는다. 까만 수염을 꼿꼿이 세우고 유연하게 걷는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인디언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다녔다. 그 모습은 마치 희극 속의 임금님 같아서 우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 본인은 자못 신바람 나는 모양이었다.
한편, 사마리 박사는 교수와 토론을 하는 이외의 모든 시간은 아침부터 밤까지 곤충이나 새의 채집에 열중하며, 그 표본의 손질이나 정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교수는 종려나무 잎을 손에 들고 우리를 비밀스러운 작업장으로 안내하여 자기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 곳은 샘물이 솟는 종려나무 숲 한가운데의 조그만 공지였다. 샘 주위에는 테라노돈 가죽으로 만든 몇 갈래의 끈과 한 개의 큰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 자루는 호수에서 잡은 큰 도마뱀의 밥통을 말린 것이다.
이 큰 밥통의 한쪽 끝은 꿰매져 있었으나 다른 한쪽은 조그만 주둥이로 돼 있었으며, 그 곳에 대여섯 개의 대나무 토막이 꽂혀 있었다. 대나무 한쪽 끝은 샘에 꽂혀 있는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스를 모으는 장치였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교수는 대나무 대롱 끝을 샘물에 꽂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람이 빠져 있던 밥통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교수는 밥통에 달아 놓은 끈을 곁에 있는 나무에 묶었다.
30분쯤 지나자 제법 큼직한 기구가 완성되었다. 묶여있는 끈이 팽팽해진 것으로 보아 상당한 상승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교수는 히죽히죽 웃으며, 늘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수염을 매만졌다.
먼저 사마리 박사가 말문을 열었다.
"챌린저 교수, 당신은 설마 이런 물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건 아니겠지?"
평소와 다름없이 상대를 비꼬는 말투다.
"아무튼 구경이나 하시오. 이 기구의 위력을 알게 되면 당신도 안심할걸."
"어리석기는! 제발 집어치우게. 나는 절대로 타지 않겠어."
박사는 내뱉듯이 말했다.
"록스턴 경, 당신은 설마 이 미치광이 같은 생각에 찬성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 굉장한 아이디어인데요. 어쨌든 어떤 것인지 들어봅시다."
록스턴 경이 말했다.
"좋아요."
챌린저 교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이 며칠 동안을, 어떤 방법으로 이 대지에서 탈출하느냐 하는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소. 머론에게 이 샘에서 수소가 솟는다는 말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기구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인 거요. 그러나 기구로 사용할 재료를 찾아내는 데 적잖게 고생을 했지만, 도마뱀의 밥통을 생각해 냈지. 덕분에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됐어요. 보라고, 이것이 그 결과야!"
교수는 늘 취하는 자세로, 한 손은 가슴의 누더기 같은 조끼 위에 얹고, 한 손으로는 고생 끝에 만들어 낸 기구를 가리켰다.
보니까 기구는 벌써 훌륭하게 부풀어 나무에 묶인 끈을 팽팽히 당기고 있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 같군!"
박사는 코방귀를 뀌었다. 록스턴 경은 처음부터 전혀 문제를 삼고 있지 않은 모양으로 교수가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한눈을 팔고 있더니,
"훌륭하신 계획이오, 교수님. 그런데 이 기구를 넣을 광주리가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다음은 광주리지. 그것을 만드는 법과 장치하는 법도 다 생각해 두었지. 그러나 오늘은 이 기구가 여러분의 무게를 견디어 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는 점만을 보여주겠소."
"전원을 다같이 말이겠지요?"
"아니, 내 계획으로는 한 사람씩 이용해야겠소. 저마다의 무게를 지탱하며 조용히 오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오. 기구를 원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오. 어쨌든 그 힘을 보여 드리겠소."
교수는 제법 큼직한 돌 뭉치와 한 가닥의 줄을 가지고 왔다. 30미터 가량의 가늘고 튼튼한, 예의 바위산을 오를 때 썼던 줄이었다. 이 밖에도 많은 끈이 있었다. 가죽으로 된 목사리 같은 것도 장만해 둔 것이 있었다.
챌린저 교수는 의심하는 우리들의 얼굴빛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가죽 목사리를 기구의 위쪽에 눌러 씌우고 나서 자잘한 끈으로 기구를 엮어 아래쪽에다 한데 모아 묶었다. 이 것은 한쪽으로 힘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한 군데로 묶은 끈 끝에 돌 뭉치를 매단 교수는 자기 팔에 줄을 세 번쯤 동이고 나서 그 끝을 돌 뭉치에 단단히 묶었다.
"오래 기다렸소. 그럼 여러분, 이제부터 내 기구의 운반력을 보여 드릴 참이오."
이렇게 말하며 기구를 붙들어 매고 있던 줄을 손 칼로 절단했다.
붕!
잔뜩 부풀어 있는 기구는 굉장한 속력으로 공중으로 떠올라갔다. 차라리 날아 올라갔다고 해야할 것이다.
순식간에 챌린저 교수의 발은 지구를 떠나 끌려올라 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교수의 허리를 붙잡고 같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참이다.
록스턴 경이 내 발을 붙잡았다. 그러나 경의 다리도 땅바닥에서 끌려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의 모습은 세 사람이 한 줄로 엮은 소시지와도 같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되었다.
그러나 다정스럽게도 줄의 힘에는 한도가 있었던 것이다. 바위에 묶여진 부분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우리는 10미터쯤의 공중에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비틀거리며 일어섰을 때 기구는 돌 뭉치를 매단 채 저 푸른 하늘을 조그만 점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사마리 박사는 허리가 자유롭지 못하여 일어서지 못하는 우리를 보고,
"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 창공을 쳐다보고 있는 교수의 콧대가 얼마나 높아졌겠는가! 아파 오는 허리를 손으로 쓸어 내리며,
"아, 근사하구나, 근사하구나!"
하고 혼자서 감탄하고는 이어서,
"아무튼 대성공이다. 이렇게 성공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지. 좋아, 일주일 내에 또 하나를 보여 주겠소. 여러분, 기뻐하시오. 여러분은 안전하고도 더구나 쾌적하게, 얼마 후에는 귀국의 여행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오."
 
마침내 탈출구를 발견하다
 
지금까지 나는 체험한 하나하나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적어왔다.
이 이야기의 결과를 나는 지금 점보가 오랫동안 말없이 기다리던 바위산 기슭의 캠프에서 쓰고 있다.
어쨌든 우리 네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무사히 대지에서 빠져 나왔다. 물론 네 사람이 다 원기 왕성하다. 앞으로 한두 달 있으면 런던으로 돌아간다. 이 소식을 뒤따라 고국으로 돌아가리라.
챌린저 교수의 실험에 웃어 버린 우리들이었으나, 사실은 그것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기분이 젊은 추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 날 밤은 여느 때보다도 캄캄한 밤이었다. 젊은 추장이 우리 천막에 찾아와, 나무껍질을 돌돌 만 조그만 물건을 살며시 내 손안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자기네 동굴을 가리키며, 비밀이라는 표시로 입에 손가락을 세워 보이더니 돌아갔다.
나는 일행과 같이 모닥불 빛으로 그것을 펼쳐 보았다. 사방 30센티미터 크기의 흰 나무껍질의 안쪽에는 숯검정으로 기묘한 선이 몇 개나 그려져 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있어서는 퍽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어요. 이걸 건네 준 젊은 추장의 표정으로 보아서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마리 박사는,
"녀석들의 못된 장난인지도 모르지."
하였다. 챌린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 분명히 뭔가 씌어 있다."
곁에서 목을 빼고 들여다보고 있던 록스턴 경이,
"알겠다."
하며 별안간 그것을 덥석 쥐더니,
"여기 선이 열 여덟 개 있소. 그들의 동굴도 열 여덟 개 있단 말이야."
"아닌게 아니라 그 추장은 이걸 건네 줄 때 동굴을 가리켰어요."
나는 약간 상기하며 말했다.
"이제 알았어요. 이건 그 동굴의 그림이오. 지도입니다. 여기 X표가 있는데 뭐겠습니까? 다른 것보다 길쭉한 굴에 표시되어 있는데........."
"그 곳에 통로가 있다는 게 아닐까요?"
하고 나는 외쳤다
"음, 과연 머론이 수수께끼를 푼 것 같군. 만일 통로가 없다면 X표를 할 이유가 없어. 이 곳이 밖으로 통한다면 내리는 곳은 30미터가 안 될 거야."
교수가 말했다..
"로프는 아직 30미터 이상이 남아 있습니다. 반드시 내려갈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하며 말했다.
"그러나 동굴 속에 있는 인디언들은 어쩔 셈인가?"
이번에는 사마리 박사가 말했다.
"그 동굴에는 인디언이 없습니다. 그 동굴은 창고 따위로 사용합니다. 아무튼 가서 조사해 보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이 대지에는 인디언들이 횃불로 쓰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당장 짐을 꾸리고 나서, 각자 그 나무 다발을 들고 잡초가 우거진 돌층계를 거쳐 X표지가 있는 동굴로 향했다.
동굴 안은 내가 주장한 바와 같이 텅 비어 있었고, 수없이 퍼덕이며 날아 돌아다니고 있는 커다란 박쥐 외에 생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디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들어가서 가지고 온 나무 다발에 불을 붙였다.
둘러보니 터널처럼 돼 있었는데 잿빛의 번들번들한 벽에는 인디언의 표지 같은 것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땅에는 흰모래가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굴 안을 열심히 걸어 나갔다.
"안 되겠다. 길이 막혔어!"
록스턴 경의 아쉬워하는 소리가 앞쪽에서 울려 왔다.
"속은 걸까?"
하고 박사는 말했다. 내가 말했다.
"동굴을 잘못 들어왔을까요?"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록스턴 경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른쪽으로부터 열 일곱 번째, 왼편에서 두 번째다. 분명히 여기야."
록스턴 경이 가리킨 곳을 볼 나는 느닷없이 외쳤다.
"알았어요! 나를 따라오십시오."
횃불을 들고 우리는 되돌아 나왔다. 그리고 아까 성냥을 켠 지점에까지 돌아와 땅에 떨어진 불똥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면에서는 이 동굴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요. 분기점을 우리는 횃불을 붙이기 전에 지나치고 말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되돌아가면 오른쪽에 반드시 길쭉한 샛길이 있을 겁니다."
내 추측은 옳았다. 10미터도 채 못 가서 시커먼 구멍이 보였다. 여기서 기운을 얻은 나는 정신없이 4, 50미터나 전진했는데, 별안간 앞길의 어둠 속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반짝이는 빛의 장막은 우리들 앞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면서 동굴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땅바닥의 모래는 마치 보석가루처럼 보였다.
접근해 감에 따라 빛은 둥글게 윤곽을 드러냈다.
"앗! 달이다! 마침내 통로다!"
그것은 낭떠러지의 조그만 틈 사이로 비쳐 들어온 달빛이었던 것이다. 좁다란 바위틈은 우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다.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니, 줄을 사용하면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좋아 날뛰며 천막으로 돌아왔다. 남은 문제는 인디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의논한 끝에 총과 탄약 외에는 모두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챌린저 교수에게는 여러 가지 짐이 있었으나 기어코 그것들을 가지고 떠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특히 커다란 상자 하나―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는 몹시 힘이 들었다.
이튿날, 사방에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이미 출발 준비가 완료돼 있었다. 짐을 전부 돌층계 위에 운반해 둔 우리는 곧 작별하게 된 이 불가사의한 대지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 요술과 낭만의 꿈나라요, 동시에 갖가지 괴로움을 당했고, 또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배운,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추억의 나라였던 것이다.
왼편에 있는 인디언의 동굴에서는 불이 밝게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아래쪽 경사지에서는 인디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 온다. 그 저 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숲 가운데는 널찍한 호수가 달빛을 받아 안개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 때, 또 그 끔찍한 동물의 외침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왔다. 우리는 서둘러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두 시간 후에 우리는 낭떠러지 기슭에 내려와 있었다. 챌린저 교수의 짐 외에는 특히 운반하는 데 어려운 물건은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고 곧 점보가 기다리고 있을 캠프로 향했다.
캠프 가까이에 당도했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캠프에는 많은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기다리던 구원대가 도착했다는 사실이었다. 말뚝이나 줄을 가진 스무 명의 인디언들이 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짐을 운반하는 데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마친다. 우리의 눈은 크나큰 불가사의를 보았고, 우리의 마음은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단련된 것이다. 덕분에 우리 네 사람은, 각기 보다 나은, 보다 깊이 있는 인간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파라 항에 도착하면 우리는 준비를 갖추기 위해 잠시 체재할는지 모른다. 그 때는 이 기사가 한 발 앞서 도착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 런던에 당도하겠지.
친애하는 맥커돌 편집국장님, 우리는 곧 악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환영
 
여행 초에 통나무배를 빌려 준 인디언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 때의 추장의 후의에 대해 감사하는 뜻에서 라이플 총 한 자루를 기념으로 선사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아마존 강을 내려와 마나우스를 경유, 파라 항에서 대서양을 횡단하여 무사히 영국의 사우스햄프턴 항으로 향했다. 귀국 도중에 특히 친절하게 호의를 가지고 접대해 준 바 있는 아마존 강 연안의 나라들과 그 국민에게 충심으로 감사의 말을 바치는 바이다.
이와 같이 남아메리카 각지에서 우리 탐험대 일행은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나 유럽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탄 이베르니아 호가 사우스햄프턴 항에서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도 채 못 가서 각지의 신문사나 통신사로부터 잇따라 전언이 왔는데, 우리 탐험대에 대해 성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챌린저 교수의 주의도 있고 해서 우리는,
'우리를 탐험에 파견해 주신 동물학회에 정식 보고가 있기 전에는 신문사 따위에 대한 상세한 발표는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는 약속대로 굳게 침묵을 지켰다.
발표된 것은 단 한 가지, 내가 파라 항에서 해저 전신으로 보낸, 놀라운 미지의 세계 탐험 제 1신이 가제트 신문의 톱뉴스로 대대적으로 게재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도―메이플 화이트 씨가 병사한 그 인디언 부락을 뒤로, 탐험대 일행이 드디어 그 미지의 세계의 입구에 도달하기까지를 보도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부터 독자 사이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신문의 발행 부수가 당장 두 배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배가 사우스햄프턴 항의 선창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많은 신문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으나, 입을 굳게 다문 채 한 마디도 탐험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11월 7일 밤의 동물학회의 모임에 집중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여기서 독자 여러분에게 마지막에 일어난 뜻밖의 중대 사건에 대해서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어떻게 적어야 할 것인지 골치를 썩이고 있을 때, 문득 나의 시선은 11월 8일자 우리 가제트 신문의 조간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동료인 맥도널이 쓴, 굉장한 기사가 실리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옮겨, 독자 여러분에 대한 나의 보고에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약간 어려운 표현이 있었으므로 적당히 손질을 해 두었다.
 
새로운 세계
킨즈 홀의 큰 모임
 
일찍이 없었던 사건
리젠트 거리의 밤의 소란
 
(특보)
남아메리카 대륙에 유사 이전의 생물이 생존한다는 챌린저 교수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조사할 목적으로, 작년 같은 곳으로 조사단이 파견되었는데 그 조사 보고를 듣기 위한 동물학회의 모임이 어젯밤 킨즈 홀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정녕 이 날은 과학사상의 한 축일이 되리라고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날의 의사는 당일의 참석자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모든 사람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입장권은 원칙적으로 회원과 그 친구들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친구들이란 말이 몹시 융통성이 있는 말로, 8시인 개회 시각 몇 시간 전부터 큰 홀은 초만원의 성황이었다. 입장을 거절당한 사람들은 8시 10분전에 입구에 밀어닥쳐 장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마침내 몇 사람의 부상자를 냈으며, H지구의 스코블 경감은 불행하게도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청중의 수는 5천을 헤아렸다.
그 곳에는 영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의 일류 과학자가 앉아 있었다. 스웨덴을 대표하여 유명한 웁살라 대학의 동물학자 세르기우스 교수도 참석하였다.
이윽고 일행은 모습을 드러내어 연단 앞에 착석했다.
네 사람의 탐험대원이 입장을 하자 초만원의 청중은 모두 기립하여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으며 야단스럽게 대환영하였다. 그러나 회장(會場)에는 이 갈채에 끼지 않은 자도 있었는데, 진행은 화기애애하다기보다는 제법 활발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결과가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 것인가!
이윽고 회장 안이 조용해지면서 청중이 자리에 앉자, 의장인 다아럼 공작이 일어서서 인사말을 했다. 그는 일행이 난관과 위험을 극복하고 무사히 귀국한 데 대해 충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착석했다. 회장을 메운 청중의 우렁찬 박수에 밀리게 되어, 심지어 챌린저 교수까지 함께 손뼉을 치고 말았다.
사마리 박사의 등단은 회장 안에 다시 이상한 흥분을 불러일으켰으며, 강연을 하는 사이에도 흥분이 몇 번이나 되살아나곤 했다. 그러나 그 강연 내용은 여기서 자세히 말할 수 없다. 탐험대가 행한 모험의 상세한 내용은 일행의 한 사람으로 동행한 본사 특파원 머론 기자의 펜에 의해서 부록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박사의 강연 요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박사는 먼저 이 탐험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동료인 챌린저 교수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 교수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며, 당시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점을 깊이 사과했다.
사마리 박사는 아마존 강의 본류에서 이번의 탐험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 놀라운 신비의 대지의 골짜기에 이르는 길을 대강 이야기하고, 또 몇 번이나 그 대지에 올라가려고 고생을 거듭한 상황을 강조하여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일행이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 다시 거기서 외나무다리를 놓았다가 배신을 당한 후의 공포를 청중에게 재현해 보였다.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는 박사는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고 주로 그 신비로운 대지의 진기한 짐승이며, 곤충, 식물 따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박물학 전공의 박사는, 1백 40여 종의 새로운 종류를 발견했다는 점을 특히 힘주어 설명했다. 그것들을 불과 몇 주일 동안에 채집했다고 하는 박사의 보고를 들은 사람들은 학자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정열에 마음이 사로잡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장 흥미를 끈 것은 거대한 동물, 특히 아득한 옛날에 멸종되었다고 믿어 온 거대한 동물이었다. 이에 대해서 박사는 많은 종류를 들어 설명했으나 더 자세히 조사하면 훨씬 더 많은 종류가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행은 현재의 동물학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동물을 적어도 12종류는 목격했으며, 이러한 동물은 곧 정식으로 분류된 후에 연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한 보기로서, 허물이 15미터나 되는 큰 구렁이나 캄캄한 밤인데도 인광(燐光)을 발산하는 흰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또 인디언들이 맹렬한 독을 가지고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큰 모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신바람이 난 박사는 탐험대원이 종종 습격을 받은 적이 있는 육식 공룡에 대해 이야기하여 청중을 떨게 했다. 그러나 청중의 흥미를 최고조에 도달하게 한 것은 박사가 대지의 중앙에 있는 신비로운 호수에 대해 설명했을 때였다. 세 개의 눈을 가진 거대한 도마뱀이라든지 거대한 물뱀에 대해서 담담한 말투로 박사가 이야기하면, 회장을 메운 청중은 모두,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완전히 도취된 것 같았다.
박사는 계속하여 그 대지에 살고 있는 인디언과 원인(猿人)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서 다소 웃음을 섞어 가면서 챌린저 교수의 독창적이며 아주 위태로웠던 기구의 발명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생 끝에 간신히 문명사회에 되돌아오게 된 탐험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이로써 마침내 강연이 끝난 것이다.
동물학회의 행사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는 조사단에 대한 감사와 축하의 결의안이 제출되어 만장 일치로 가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정대로 되지 않았다.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이링워스 박사가 느닷없이 회장의 중앙에 나타나 결의안의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의장: 좋소,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
이링워스 박사: 수정할 필요가 있소!
의장: 그러면 즉각 수정안의 토의에 들어갑시다.
 
이번에는 사마리 박사가 일어섰다.
 
사마리 박사: 의장, 나는 방금 수정 동의를 낸 인물과 《계간과학》 지상(誌上)에서 심해저 원생물에 관한 학술상의 논쟁을 되풀이했었는데, 이 후로 내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의장: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의장으로서 언급할 수가 없어요. 이링워스 박사, 발언을 계속하시오.
 
의장인 다아럼 공작은 감정에 치우쳐 있는 사마리 박사를 제지하고 조용히 의사를 진행시켰다.
 
믿을 수 없는 탐험 보고서
 
의장의 허가를 얻어 계속해서 발언하는 이링워스 박사의 말은 탐험대의 편을 드는 사람들의 방해로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개중에는 흥분한 나머지 박사를 쫓아내려는 청중도 있었다. 그러나 이링워스 박사는 남달리 큰 몸집의 사나이로 사람들의 소란을 제압하며 끝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처음부터 박사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링워스 박사는 먼저 챌린저 교수와 사마리 박사의 업적에 대해 크게 칭찬을 하고 나서 은근히, 자기 주장은 과학적 진리에 대한 열의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처사라고 역설했다.
이링워스 박사: 지금 내 입장은 지난번 모임 때 사마리 박사의 입장과 거의 같아요. 그 모임에서 사마리 박사는 챌린저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던 것이오. 그런데 지금, 사마리 박사는 그 때의 챌린저 교수와 꼭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행하고 있으면서 자기의 주장은 절대로 옳다는 것이오. 이것이 과연 학자다운 일입니까!
'찬성이오!', '반대요!' 하는 외침 소리의 연발로 이링워스 박사의 발언이 약간 중단되었다. 이 때에 이링워스 박사를 회장 밖으로 몰아 내자는 동의를 구하는 챌린저 교수의 소리가 신문 기자석에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박사는 여전히 계속했다.
"1년 전에 어떤 한 인물이 어떤 이야기를 했었소. 이번에는 네 인물이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나 그 일만으로 이 혁명적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사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미지의 나라에서 돌아온 여행자의 이야기가 경솔하게도 받아들여진 예는 최근에도 얼마든지 있었소. 런던 동물학계도 그런 경솔한 행동을 취하려는 것입니까?
나는 이번의 탐험대 여러분이 인격자인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질이란 것은 매우 복잡해요. 비록 대학 교수나 박사라 할지라도 공명심에 사로잡혀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모두가 나방과 같은 것으로, 불 속으로 뛰어들기를 좋아합니다. 사냥꾼은 자기의 적수에게 허풍을 떨기를 좋아하며, 신문 기자는 비록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특종 기사를 조작해 내고 싶어하는 법입니다. 탐험대 여러분은 저마다의 입장에 서서 자기가 한 일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창피한 줄 알아라!', '창피한 줄 알아라!' 하는 소리―.
이링워스 박사: "물론 그로 해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불쾌한 건 당신이다!', '집어치워라!' 하고 떠드는 소리―.
이링워스 박사: "아니오, 나는 추호도 여러분을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소. 첫째, 이 놀라운 보고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요. 불과 몇 장의 사진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사진이 발달한 시대에 있어서 사진이 과연 증거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밖에 무슨 증거가 있단 말이오. 로프를 의지하고 절벽을 따라 탈출했기 때문에 큰 동물의 표본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로 멋진 핑계인데 그건 남을 설득시킬 수 없어요. 존 록스턴 경은 포로라카스의 두개골을 가지고 귀국했다는데, 이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록스턴 경: "이 사내는 날더러 거짓말장이라는군!"
청중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의장: "조용히 해요! 조용히! 이링워스 박사, 이제 결론을 내어 수정안을 제출하시오."
이링워스 박사: "할 말은 많으나 의장님 말씀에 따르도록 하겠소. 사마리 박사의 흥미 있는 보고에 대해서 감사하는 동시에 이 문제는 아직도 분명한 증거가 없는 안건으로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조사 위원회에 일임하도록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일어난 혼란을 정확하게 그리기는 어렵다. 많은 청중은 저마다 악을 쓰며 탐험대원에게 가한 모욕에 대해서 흥분했다. 그러나 한편 반대파가 있어 수정안을 제시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내며 이들 또한 소리를 질렀다. 뒷좌석에서는 몰려온 의과 대학생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별안간 회장이 조용해졌다. 챌린저 교수가 일어섰기 때문이다. 교수의 표정이나 태도에는 기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있었다. 그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보이자 청중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귀를 기울였다.
챌린저 교수: "내가 연설을 행한 지난번 모임에서도 이와 같이 어리석고 무례한 일이 벌어졌었다는 것을 오늘 출석하신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줄 압니다. 그 때는 사마리 박사가 소란을 피운 장본인이었소. 박사는 현재 그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때의 상황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런데 또 오늘 지난번과 같이 사람은 다르지만 더욱 심한 모욕을 당했습니다.
오늘밤은 사마리 박사가, 탐험대를 대표하는 조사 위원장으로서 이야기해 주셨지만,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이 탐험의 최초의 제안자는 본인이었고, 본인은 세 대원을 무사히 목적지로 안내하여 내 주장의 정당함을 확인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시비를 걸어오는 자가 없으리라고 기대했어요. 그러나 지난번의 경험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증거를 가지고 귀국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마리 박사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들의 카메라는 원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어 원판도 대부분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뒤쪽에서 조소와 '더 성실한 답변을 하라!' 하고 악쓰는 소리. .
챌린저 교수: "나는 지금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여러분의 떠벌리는 소리는 그 흥미진진한 동물을 상기시켜 주고 있어요."
청중의 폭소 소리―.
챌린저 교수: "이와 같이 많은 원판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 수중에는, 아마존의 대지의 생물 상태를 보여 준 사진이 몇 장인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께선 이와 같은 사진도 조작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 하는 한 청중의 소리에 이어 몇몇 사람이 회장 밖으로 쫓겨나기까지 연설은 잠시 중지되었다.
챌린저 교수: "우리가 가지고 돌아온 원판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전문가의 감정에 응하겠소. 탈출할 때의 절박했던 상황 때문에 많은 짐을 가지고 올 수는 없었지만, 사마리 박사가 수집한 나비나 갑충류 따위는 가지고 왔어요. 그 가운데는 많은 신종(新種)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들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대여섯 군데서 '노우! 노우!' 하는 소리.
챌린저 교수: "방금, 노우라고 말씀하신 분이 어느 분이신가요?"
이링워스 박사가 일어서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수집은 다른 장소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오."
챌린저 교수: "나는 당신이 권위 있는 과학자란 점은 인정하오. 하기는 당신 이름은 그렇게까지 유명하진 않은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건 아무래도 좋소. 그럼 사진이나 곤충의 수집은 별도로 하고, 일찍이 밝혀진 바 없었던, 정확하고 더구나 색다른 자료를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소. 가령 테라노돈―그러니까 익수룡의 가족적인 버릇인데―."
'엉터리다!', '집어 치워!' 하는 따위의 소리로 회장은 다시 소란해졌다.
 
증거, 살아 있는 테라노돈
 
이 때 만원을 이룬 회장 안의 청중의 심리는 이상하리만큼 흥분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다. 잇따라 듣게 되는 신기한 일들이 결국은 일반 청중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탐험대 일행에 참가한 나는 실제로 이 눈으로 확인했으므로 물론 알고 있었으나, 이런 경우 그러한 나도 손을 들어 발언을 요구하고, 흥분한 청중을 설득할 만한 용기와 자신이 유감스럽게도 없었던 것이다. 그건 어쨌든 독자 여러분은 맥도널 기자의 기사를 계속 읽어 주기 바란다.
챌린저 교수: "우리는 테라노돈의 가족적 습성에 대해서 많은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 사람의 노트에 한 장의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조명해 봅시다. 살아 있는 테라노돈을 촬영한 것으로, 그것을 보면 아마 여러분은 물론 이링워스 박사도........."
이링워스 박사: "사진 따위로는 증거가 되지 않아요."
챌린저 교수: "그러면 실물―그러니까 진짜 살아있는 놈으로 보여 달라는 거요?"
이링워스 박사: "그렇소."
챌린저 교수: "실물을 보여 주면 믿겠다는 거요?"
이링워스 박사: "물론, 말할 것도 없어요."
이 날 밤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은 이 때였다. 그것은 학회의 모임으로서는 참으로 처음 있는 극적 소동이었다.
챌린저 교수가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신문사의 머론 기자가 일어서서 연단 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두 흑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흑인들은 큼직한 상자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무거운 모양이었는데, 이윽고 교수 앞에 놓였다.
객석은 고요했고 청중은 모두 연단 위의 상자를 노려보고 있다.
천천히 접근한 챌린저 교수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면서,
"자, 나와다오......... 착한 녀석 같으니........."
하며 마치 어린애를 어르듯이 말하는 소리가 기자석까지 들려 왔다.
그러자 상자를 북북 할퀴는 소리가 나면서, 보기에도 무섭고 끔찍하게 생긴 짐승이 상자 위로 올라왔다. 의장인 다아럼 공작은 깜짝 놀라 오케스트라 박스에 떨어졌으나, 청중은 이 사실조차 아는 자가 없었다.
이 짐승의 얼굴은, 미친 중세의 건축가가 아니면 그릴 수조차 없는 기괴한 가고일(고대 건축물에 장식되어 있는 괴물)이라는 괴물, 그것이었다. 두 개의 조그맣고 빨간 눈은 번뜩거렸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독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쯤 벌린 주둥이에는 상어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두 줄 보였다. 어깻죽지께는 혹이 달려 있는 듯했고 등 쪽에는 회색의 숄과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어린 시절에 듣던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타나는 그런 마귀와 같은 짐승이었다.
청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맨 앞줄의 두 아낙네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걸상에서 굴러 넘어졌다. 연단 위에서도 의장을 뒤따라 오케스트라 박스 안으로 뛰어내리는 자가 잇따라 있었다.
회장은 수습이 될 수 없을 만큼의 공포가 감돌았다. 챌린저 교수는 소란을 진압시키려고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곁에 있는 짐승을 놀라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기묘한 숄 같은 것이 느닷없이 활짝 펼쳐지면서 날개가 되어 파닥거렸던 것이다. 당황해하며 다리를 붙잡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괴물은 3미터 가량의 높이를 천천히 날기 시작했다. 고약한 냄새가 온 회장 안에 풍겨와 코를 찔렀다.
이층에 있는 사람들은 번뜩이는 눈과 날카로운 부리가 가까워 올 때마다 두려움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괴물은 더욱더 흥분하여 점점 속도를 더하면서 마구 벽이나 샹들리에에 부딪치며 날아다녔다.
"창문! 창문을 닫아 줘요!"
연단 위의 교수는 걱정스럽게 두 손을 비비고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러나 그 소리도 아무 소용없었다. 괴물은 가스등 속에 뛰어든 큰 나방처럼 퍼덕이면서, 벽을 따라 날고 있는 사이에 열려 있는 창문을 발견하자 그리로 나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챌린저 교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움켜잡은 채 털썩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청중은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아, 또 일어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청중 중의 다수파도 소수파도 의견 대립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홀 뒤쪽에서 큰 인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객석에서 일어선 것이다. 그 수는 점차 증가되어 오케스트라 박스를 넘어 연단에까지 몰려가 네 영웅을 그 소용돌이 속에 말아들이고 말았다.
회장을 메우고 있는 청중은 모두 기립하여 술렁이며 절규하며 탐험대원들의 영광스러운 성과를 찬양하는 의지를 몸으로 나타낸 것이다.
"헹가래! 헹가래를 쳐주자!"
사람들은 저마다 외쳤다.
곧 네 사람은 군중 위로 번쩍 들려졌다. 도망치려 했으나 허사였다. 네 사람은 영광스러운 명예를 차지한 것이다. 네 사람은 모두 활개가 들린 채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 없을 만큼 군중들에 의해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리젠트 거리로! 리젠트 거리로 가자!"
하는 소리가 노도처럼 일었다. 네 사람을 어깨에 얹은 군중들은 서서히 회장 출구로 몰려가고 있었다.
한길에서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족히 십만 명쯤 되는 대군중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길을 메운 사람들의 물결이 랭검 호텔 맞은편에서 옥스퍼드 곡마단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목말을 탄 네 모험가가 밝은 가로등 밑에 모습을 드러내자, 와아 하는 환성이 일제히 일어났다.
"행진이다! 행진이다!"
군중은 시커먼 덩어리를 이루며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메우고 있었다. 행진은 리젠트에서 펠멜을 거쳐 세인트제임스 가를 지나 피카딜리 가로 향했다.
런던 중심가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행진하는 군중과 경찰관이나 택시 운전사 사이에 몇 번이나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챌린저 교수를 포함한 네 명의 탐험대원이 존 록스턴 경의 저택 앞에서 간신히 풀려난 것은 한밤중 12시가 지나서였다. 한편, 열광한 군중은 《유쾌한 친구》를 합창하였으며, 끝으로 영국 국가를 부른 후 해산했다. 이리하여 런던이 오랜만에 맞이한 이 기념할 만한 밤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상이 동료 맥도널이 쓴 기사이다. 수식이 많은 문장이지만 제법 정확한 기록이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그런데 예의 괴물에 대해서인데, 여러분은 록스턴 경이 호신용 광주리를 쓰고, 챌린저 교수를 위해 마귀의 병아리를 잡으러 가는 도중에 테라노돈의 늪 근방에서 나와 만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 예의 대지에서 탈출할 때 교수의 짐 때문에 몹시 고생을 했다는 사실도 앞에 적어 두었다.
고생을 하면서 가지고 온 테라노돈의 그 후 소식에 대해서 한 가지만 말해 두어야겠다. 명확한 일은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날 밤, 홀을 빠져나간 이 괴물이 회장의 지붕에 마귀처럼 잠시 웅크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상당수 있었다.
다음으로, 말보로 궁의 경호병 하나가 그 날 밤 근무를 하다가 이유 없이 그 장소를 이탈하여 도망쳤다는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는 곧 체포되어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근무 중에 우연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달과 내 중간을 기괴한 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총을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다시 또 한 가지 소식으로는, 몇 시간 후에 해외에서 전해 온 뉴스였는데, 네덜란드와 미국간의 정기선 프리슬랜드 호가 대서양을 항해하는 도중에 선미(船尾) 방향에서 거대한 박쥐와 비슷하고 길쭉한 목을 가진 괴조(怪鳥)가 무서운 속력으로 날아왔는가 싶더니 곧 남서쪽을 향하여 사라진 것을 당직원이 목격했다는 것이다. 남서 방향이라고 하면 아마존의 대지 쪽이 된다. 만일 런던을 날아간 테라노돈이 고향을 그리는 동물의 본능으로 바른 진로를 날고 있었다면, 정녕 그들의 친구가 서식하는 아마존의 늪으로 되돌아갔으리라.
어쨌든 열광한 군중에게 사지를 번쩍 들린 채 온 시내를 떠받들리어 다니던 우리 네 사람은, 록스턴 경 저택의 응접실에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경의 후의로 늦은 저녁 식탁 앞에 앉은 우리는 식후에도 이번 탐험의 즐거운 추억담에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문득 의자에서 일어선 록스턴 경은 선반에서 묵은 담뱃갑을 꺼냈다. 그것은 탐험 여행 중에 늘 경의 주머니에 담겨 고생을 함께 했던 물건이었다.
"나는 오늘 밤, 새삼스럽게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게 있어요. 여러분, 내가 처음으로 그 무서운 테라노돈의 늪을 발견했을 때를 상기해 주기 바랍니다. 거긴 파란 점토로 된 분화구였었어요. 그랬었지요, 교수님?"
"그렇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소."
"남아프리카의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 역시 파란 점토의 분화구였소. 나는 인디언의 동굴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그 고약한 냄새가 나는 동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 광주리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삽을 들고는 매일 분화구의 자취가 남아 있던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이건 그 때 파란 점토에서 채취한 겁니다."
록스턴 경은 담뱃갑을 열고 이삼십 개의, 콩알에서 밤톨 정도 크기의 광석을 탁자 위에 놓았다.
"나는 오늘날까지 여러분에게 입을 다물고 있었소. 그도 그럴 것이, 알다시피 보석이란 것은 아무리 커도 빛깔이나 모양이 나쁘면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런던에 도착하자 그 날로 곧 스핑크 보석상으로 가지고 가서 연마한 뒤에 감정을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록스턴 경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보석이 들어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록스턴 경은 말을 계속했다.
"스핑크 보석상에서는 남아프리카산보다도 훨씬 질이 좋다면서 보증해 주었소. 그리고 모두 20만 파운드를 줄 테니 팔라는 것이었소. 그러나 이건 네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져야 할겁니다. 챌린저 교수, 당신은 당신에게 할당된 5만 파운드로 무엇을 하시겠소?"
"친절하게도 그렇게 해 준다면 나는 오랫동안의 소망이었던 박물관을 세울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사마리 박사는?"
"글쎄올시다. 나는 오래 종사해 온 교직을 내놓고 평소에 하고 싶어한 백악층의 최종적인 분류 연구에 여생을 바치겠소."
사마리 박사는 기쁨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것도 훌륭한 사업입니다."
록스턴 경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챌린저 교수가 록스턴 경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떤 계획을 세웠지요, 록스턴 경?"
"나 말이오?"
록스턴 경이 말했다.
"글쎄요. 나는 더 충분한 장비를 갖춘 대규모의 탐험대를 조직할 비용에 충당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그리운 대지―신비스러운 세계를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록스턴 경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대답했다.
교수와 박사는 그 고생스러웠던 탐험의 여러 가지 사건을 상기하느라 잠깐 이야기가 끊어졌다. 그러자 화제를 바꾸려고 록스턴 경은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머론, 자네는 돈을 어디다 쓸 생각이지?"
"저는 선생님만 좋으시다면 다음에도 꼭 동행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록스턴 경은 말없이 햇빛에 그을은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따뜻한 손을 꼭 쥐었다.
작품 해설
 
작가에 대하여
 
《공룡 세계의 탐험》을 쓴 사람은 영국의 문학가인 아더 코난 도일입니다. 코난 도일은 또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를 탄생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코난 도일은 1859년 5월 22일, 영국의 에든버러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곳은 런던 북쪽에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수도입니다.
소년 시절의 도일은 대단한 독서가였던 모양으로,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다 읽은 책을 바꾸기 위해 도서관에 출입했습니다.
소년은 열 살 때 천주교 계통의 공립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개구쟁이이기도 했던 도일은 여러 차례 벌을 받았습니다. 이 학교를 마친 후 오스트리아에 있는 같은 계통의 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한 다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에든버러 대학의 의과에 입학, 5년 동안 과학적 관찰법을 익혔습니다. 이 대학에는 챌린저호라는 선박이 있어 온 세계 바다의 생물학적 연구를 했었는데 유명한 두 교수가 한 인물로 합쳐져 나중에 《공룡 세계의 탐험》의 챌린저 교수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1880년, 대학 재학 중에 포경선 호프 호의 선의(船醫) 견습생이 되어 북극해로 가서 여러 가지 희한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듬해 대학을 졸업하자 개업 자금을 벌기 위해 이번에는 정식으로 선박의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가는 화물선에서 약 5개월 동안 근무하며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됩니다.
1882년 가을, 영국 남해안의 항구 포츠머스 시 교외에서 개업했으나 신출내기에게는 환자가 별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헌 책방에서 책을 사들여 탐독하는 동안 자기도 소설을 써 봐야겠다고 공상한 끝에, 마침내 단편을 두세 편 쓴 적이 있었고, 드디어 1886년 《주홍빛 연구》라는,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 소설을 완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출판해 줄 출판사가 없다가 겨우 25파운드로 한 장사꾼에게 팔리기는 했지만 책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도일은 더 이상 소설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한 출판사가 도일의 탐정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두 번째 작품을 요구하게 되고, 도일은 그것이 기가 막히게 반가와 《네 가지 서명》이라는 장편을 쓰게 된 것입니다.
1892년, 도일은 그 동안 발표한 12편의 단편을 모아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집을 출판합니다. 이것이 인기를 끌었고 그는 마침내 유명 작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도일은 탐정 소설가보다는 역사 소설가가 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역사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이카 클라크》, 《백의단》, 《망명자》, 《거대한 그림자》, 《제럴 대장의 공적》 등 장편을 잇따라 썼습니다.
1911년이 되자, 도일은 이번에는 색다른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때마침 그가 살고 있는 서섹스 다운의 언덕에서 공룡의 일종인 이구아노돈의 화석이 발견되어 신문이나 잡지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도일은 이 공룡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한 끝에 1912년 과학 모험 소설 《공룡 세계의 탐험》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작품은 세계 SF의 한 고전으로서 부동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이 밖에도 도일이 챌린저 교수를 등장시키고 있는 작품으로 《독가스 지대》,《안개의 세계》 등 5편이 있습니다.
도일은 말년에 심령학에 열중하다가 1930년 7월 7일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71세 때였습니다.
 
작품에 대하여
 
방금 소개했듯이 《공룡 세계의 탐험》은 SF의 고전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공룡은 약 2억 년 전에서 6천만 년 전까지의 약 1억 4천만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지구 위에 서식한 파충류입니다. 이 시대는 중생대라고 하지만 한편 공룡 시대라고 말하기도 할만큼 공룡이 많은 시기였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조류나 원숭이 따위의 동물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공룡이 지배하던 시대는 어디까지나 죽음과 같이 조용한 세계였다고 상상되는 것입니다.
이 공룡의 화석이 처음 발견된 것은 1871년 미국 유타주에서입니다. 그 이래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오랜 지층에서 많은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공룡은 악어나 도마뱀 등과 마찬가지로 알을 낳는 동물이란 것이 증명되었고, 육식 동물로 어떤 것은 몸길이가 15미터, 높이 6미터, 무게 10톤이나 되는 공룡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공룡 중 테라노돈은, 큰 것은 날개를 펼치면 9미터나 되었다고 합니다. 또 브론토사우루스라는 공룡도 나오는데 이것은 도마뱀 공룡에 속한다고 하며, 한편 티라노사우루스라는 무서운 공룡도 나타나 등장 인물들을 괴롭힙니다. 이 모험 소설은 머론이라는 젊은 신문 기자가 주인공이 되어, 챌린저 교수 등 학자들과 함께 아마존 강 상류의 한 분지에서 그러한 공룡들이나 유인원과 싸우며 그 생태(生態)를 보여 준 이야기입니다.
 
 
 
주니어 (SF) 공상과학 명작선
전 32권
㉧ KUM SUNG PUBLISHING CO., LTD.1886, 1888
 
초판발행    1985년 12월 5일
중판발행    1988년 2월 10일  
발 행 인   (주) 금성출판
발 행 처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242의 63,
      등록 1965. 10. 19 1110-6호,
      전화 (713)9651~8 우편번호121
제 판      삼화인쇄 주식회사
      평화당 인쇄 주식회사
인 쇄      삼화인쇄 주식회사,
      평화당 인쇄 주식회사
제 책      태성 제책, 신호 제지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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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별을 쫓는 사람-E E 에반스 2021-09-19 0 430
10 우주 괴인 자이로 박사 - 에드먼드 해밀턴 지음 2021-03-20 0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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