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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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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4차원의 전쟁 서광운 작
2023년 08월 23일 14시 03분  조회:315  추천:0  작성자: 강려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SF작가협회 편
 
4차원의 전쟁
서광운 작
 
서광운
도쿄 대학 수학과 수료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강사
한국일보 초대 과학부장, 외신부장, 사회부장
대우 서울신문 문화부장
현 한국일보 과학부장
한국SF작가협회 회장
번역한 책 : 버로우즈 작 {화성의 미녀}
지은책 : {항공, 기상의 과학}, {세계를 움직인 재벌} 등
 
편집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박홍근 / 문학박사 최인학
공학박사 양옥룡 / 이학박사 김회규
전교육감 김성묵
표지그림 신동우 / 속그림 최충훈
 
격려사
EMB00000dbc6502
 
EMB00000dbc6503과학기술처 장관
 
 
 
 
사람은 딴 동물과는 달리 스스로의 환경(環境)을 거의 마음대로 만들어가며 살게 마련이다. 정신적인 환경도 그렇지만 특히 물질적인 환경 개조에 더 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물질적인 환경 개조는 기초 과학(基礎科學)의 연구와 응용 과학(應用科學)의 발달이 이룩됨으로써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기계 문명(機械文明)의 원리를 먼저 깨달은 서양(西洋)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류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양보다 상당히 늦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도 1백 년 전부터 기계 문명이 밀물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전기, 수도, 전화, 기차, 전차 등 문명의 이기(利器)는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고 또한 과학과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자각을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국사(國史)를 돌이켜보면 세계 최초의 활자와 거북선(鐵船)을 만들어낸 과학의 핏줄기를 이어받고 있어 근대 과학(近代科學)을 소화하고 현대 과학에 도전하는 능력은 결코 남부럽지가 않다. 다만 그러한 능력을 가꾸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과학을 크게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조국 근대화(祖國近代化)라는 큰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리고 과학하는 마음은 청소년 시절부터 기르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 나라에도 과학 소설(SF) 작가 협회가 있어 청소년들에게 과학하는 마음을 재미있게 일깨워 주는 작품(作品)을 엮어 계속 출간한다고 하니 이것이 하나의 산 과학 교재로서 널리 읽혀 우리 나라의 과학 목표 달성에 이바지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1974년 12월
 
 
책머리에
 
한국 SF작가 클럽을 대표하여
서 광 운
 
우리에게는 단군 신화가 전해오고 서양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가 있다. 모두가 비롯된 일들을 미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거기에는 자못 이야기가 있어 대대로 몸받아 왔는데 기계 문명이 지구 위에 일어서기 시작한 후부터, 특히 우리의 개화 백 년 후부터 거기에는 무슨 신화가 생겼으며 또 창조되고 있을까요? 만일 지난날의 신화가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그 기원을 파고 캐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새로운 신화는 무릇 물질을 일구는 작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처음으로 촛대를 들어 우리의 눈길을 우주(宇宙)의 얼개에 돌린 이는 아인슈타인 박사였습니다. 이를테면 태극오행설과 같은 우주 운행의 이치가 아니라, 별의 탄생에서 빛의 얼개에 이르는 본질을 꿰뚫어 읊어 사람들은 이를 상대성 원리라고 노래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성 원리야말로 오늘의 새로운 신화 창조의 첫 장이라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똑바로 쏜살같이 달리는 광선도 무거운 물체(별) 옆을 지나칠 적에는 구부러진다는 것입니다. 직행(直行)이 곡행(曲行)이 된다는 말에 뭇 과학자들이 눈을 뜬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SF. 그러니까 {사이언스 픽션(科學小說)}은 그러한 신화를 가장 알기 쉽게 해설하는 작업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다. 딱딱한 과학에서 부드러운 문학으로 뛰어넘고, 또한 공상적인 문학력을 실증 본위의 과학 분야로 들어가는 쌍방 교통을 이룩하는 것이 바로 SF작가들의 일거리입니다.
베르느에서 시작한 SF는 백 년 동안에 놀랍게 발전하여 지금은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눈부시게 꽃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SF 작가 클럽이 탄생한 것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던 1969년의 4월 3일의 일. 당시 서울의 종로구 수송동에 자리잡고 있던 과학세계사의 편집실이 바로 산실이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날에 뜻을 같이 한 창설 회원들의 이름을 적어두면 김학수, 오영민, 강민, 신동우, 서정철, 이동성, 지기운, 윤실, 이흥섭, 최충훈, 강승언, 서광운 등입니다. 그리하여 잡지를 통하여 작품 활동을 한결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을 일독하면 우리나라의 SF 소설 수준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에스에프 한국편을 이처럼 알뜰하게 꾸며 내주신 아이디어 회관의 박훈 사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여러분의 성원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차 례
 
바닷물이 불어온다················· 8
빙하 시대가 오는가?··············· 12
성운인의 내습·················· 16
이상한 광체(光體)················ 21
비행접시의 정체················· 25
성운일들과 교전················· 30
성운인 금성 점령················· 34
히말라야에 착륙하라··············· 38
이게 무슨 꼭두각시냐?·············· 42
둔갑한 4차원 로봇················ 47
비행접시가 정지하다니·············· 51
출동 명령 제 1 호················ 55
비행접시 편대의 습격··············· 57
비행접시 함구령················· 58
제 자리를 지켜라················· 62
독일 원정대의 비극················ 64
비행접시와 교전················· 67
젠킨 대위의 고민················· 70
기포탄을 사용하시오··············· 74
그림자의 정체는················· 77
로봇끼리의 격투················· 82
기포탄을 투하·················· 85
소련군이 선제 공격················ 89
융해탄은 없었다················· 95
핵공격의 위력·················· 98
융해탄의 비밀·················· 101
아비타의 기습·················· 104
아비타와의 협상················· 107
불발탄의 오발·················· 111
 
■ SF 단편
 
미쳐버린 마차·················· 119
의식 교환기··················· 136
우주 여행···················· 164
 
작품해설···················· 178
 
바닷물이 불어온다
 
물때가 좋거늘, 하마하마 큰 놈이 물 것만 같아 조바심으로 지새운 밤이 벌써 희번하다. 장홍팔 노인은 동녘이 아슴프레 밝아올수록, 마음을 더욱 죄어치며 거슴츠레한 눈으로 낚시대의 끝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참이다.
바다의 겉면은 여전히 검어둑하고 하늘은 끄느름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새벽녘에 고기가 잘 무는 것을 장 노인은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터다. 한밤중에 대끝이 바르르 떨리면서 짜릿한 어신이 손끝으로 전해올 때마다 장 노인은 잠자코 옥돔을 여섯 마리나 낚아 올렸다. 여느 때 못지 않게 심심치 않은 밤이었다.
어느덧 동쪽 거제도 산모통이를 불그레하게 물들인 하늘에 아침 햇살이 댓줄기 기운차게 내뻗칠 무렵, 장 노인은 마디마디 불거진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며 새삼스러운 생각에 잠겼다.
'사리가 되려면 아직도 이레가 남아 있을 텐데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밤새도록 수위(水位)가 여느 날보다 한자나 더 높으니 말이다.'
마음 속으로 중얼대면서 내뿜은 담배 연기에 한눈이 시려 그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러면서도 자정(子正)을 넘어선 뒤에 문득 수위가 높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래저래 궁리를 쫓고 있는 참이었다.
'내 나이 쉰 여섯에 바다라면 물 속 17길까지 다 아는 처진데 별안간 수위가 한 자나 높아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덕분에 푸짐한 옥돔을 많이 잡았다마는 이건 보통 일이 아닐 게다.'
장 노인은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수수께끼가 힘에 겨운 듯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통영, 그러니까 오늘날의 충무에서 태어나서 16살 때부터 잠수부 생활을 해온 장 노인인지라 바다라면 그 밑바닥의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도 남는 인물이다. 평생을 잠수부로 35년 간이나 일한 뒤, 5년 전에 은퇴하여 지금은 툭하면 낚싯대를 짊어지고 홀로 바닷가에 도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생 몸을 담아온 바다에의 미련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장 노인은 이마에 새겨진 내천(川)자 주름살마저 어울리는 바닷사람이다.
'알고도 모를 일이다. 돌아가서 알만한 이에게 의논해 보자.'
장 노인은 불구족족하게 희번덕거리는 물결에 한 번 더 눈길을 던지고 나서 낚싯대를 챙기고 말았다. 이른 봄이어서 바닷물의 촉감은 여간 싸늘하지가 않다. 장 노인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한잠을 늘어지게 잤다.
꿈결도 썩 시원치가 않고 뒤숭숭했다. 아침밥을 느즈막히 먹고 나서 장 노인은 수산청 충무지원에 당도하여 낯익은 김 주사를 만났다.
"웬일이세요 영감님, 아침나절부터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보자마자 인사하는 김 주사에게 장 노인은 간밤에 갑(甲) 바위에서 겪은 심상치 않은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닷물이 한 자나 불어 오르다니 처음엔 난들 믿어졌겠는가!"
"영감님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달나라를 이웃집 마을 가다시피 하더니 달도 도깨비 장난을 시작했단 말이오. 천만에 그럴 리가…… 원."
김 주사는 손을 내저으며 맞상대를 하려하지 않는다. 농담을 하지 말라고 시답지 않게 여기는 김 주사의 태도에 적이 화가 난 장홍팔 노인은
"그럼 내가 미쳤단 말인가! 여보게 자네는 그래도 과학이다, 기술이다 하는 이론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내가 평소에 허풍 깨나 떨고 다니는 사림이었다면 꼭 망신을 당할 뻔했네 그려. 농담이 아니니까 제발 손닿는 대로 알아나 보게."
장 노인은 굽히지 않고 우겼다. 장 노인이 정색을 하고 덤비는 바람에 김 주사도 얼마간 멋쩍게 되어 요로에 알아보겠다고 그저 얼버무릴 도리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던 달포쯤 후에, 서울의 국민신보가 바닷물이 불어 오르기 시작했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수산청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3월 27일 현재 전국 해안선의 수위가 50cm나 높아졌다. 바다에는 물 마루라는 현상이 있어 지형에 따라 밀물과 썰물 관계로 보통 수면보다 수위가 높은 수면을 이룩할 수도 있으나, 이처럼 온 해안선의 수위가 한결같이 높아진 일은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원인은 기상청에서도 확인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수위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 그 비율을 따져본 즉 약 석달 전부터 증수가 시작된 것으로 미루어진다. 해안선에 위치한 어촌과 항구는 계속 경계를 요한다.
 
는 줄거리의 내용이었다.
이 사실이 텔레비전으로 현지 녹화되어 방방곡곡에 보도되자, 세상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충무의 바닷가에서 낚시질하던 장 노인이 우연히 발견한 사실이 바야흐로 확인된 셈이다.
관계 과학자들은 가까운 해안선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조사한 결과 바닷물의 짠 기의 도수는 다름이 없었으나 수온이 평균 1도 가량 낮아진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해수의 변화는 아마도 7백 년을 두고 주기적으로 변하는 바닷물의 팽창기에 상당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해양적 신라가 3국을 통일한 7백 36년이라든지,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에 이겨 독립 선언을 한 1776년, 그리고 미국이 태평양을 손아귀에 넣은 1950년대에 이어 2550년대에 해양성 기운이 전 세계를 휘덮는 주기에 해당한 것 같다.
 
이러한 학설을 내세운 역사학자마저 나타났다. 천지이변을 종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버릇이 있지만, 역사학자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조금도 놀라울 것이 없다고 안심시키려는 버릇이 있는 듯 하다.
어쨌든 지구물리학계와 해양학계는 수위 문제를 도마 위에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판이었다.
 
빙하 시대가 오는가?
 
날이 갈수록 바닷물은 야금야금 늘어만 갔다. 이 괴이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아니라, 전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확인되어 야단스러운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미국의 록키 산맥 속에서 반평생을 빙하(氷河) 연구에 골몰해 온 리처드 고든 박사는 서슴없이 경고를 했다.
"바야흐로 지구는 제 4 빙하기에 접어든 것이다. 백만 년의 빙하기를 거쳐 녹은 물들이 오늘날의 바다를 이룩하고 있는데, 지구의 빙하 활동이 시작되려고 바닷물이 증수되고 있는 것이다. 팽창은 반드시 수축을 가져오는 법이니 머지 않아 지구 위에는 무서운 한파가 밀어닥쳐 적도 근처까지도 꽁꽁 얼어붙는 무서운 빙하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짐작된다."
리처드 고든 박사의 경고는 오랜 전통을 지닌 뉴욕 타임즈 지에 실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때아닌 빙하 시대라니 이게 무슨 영문이야. 그게 사실이라면 인류는 지하 도시를 빨리 건설하여 동면할 준비를 서둘러야 된다."
"그 동안 쌓아 두었던 핵무기를 써서 히말라야 산 속에 동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말발 깨나 하는 평론가들은 당장에 피난 대책을 들고 나왔다. 정말 고든 박사의 말대로 제 4 빙하 시대에 접어든다면, 인류는 열대 지방의 일부 지역을 빼놓고는 전멸한 우려가 없지 않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식량을 합성해서 먹는다손 치더라도 수십억의 인구가 지하 도시에서 2만 년이고, 3만 년을 견디어낼 도리가 없지 않는가!
가공(可恐)할 사태를 앞두고 기상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지난 1천 년 간의 기온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 주고 있을 뿐, 기상적으로는 극히 안정되어 있다. 태양의 흑점 폭발도 11년의 주기에 따라 꾸준히 활동하고 있을 뿐, 지구가 태양 복사열의 급격한 변동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더욱이 지난 몇 달 동안의 기온 변화는 지난, 지지난 해와 별 차이가 없으니 갑작스럽게 빙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맞서게 됐다. 기상학자들의 견해도 그럴 듯한 것이, 아무리 바닷물이 불어난다 하더라도 지구 전체로 봤을 때, 기상상 두드러진 변화가 인정되지 않는데, 어찌 리처드 고든 박사의 학설을 사탕 먹듯 삼킬 수 있으랴.
논쟁은 국제적으로 벌어졌으나 나라마다 스스로의 갈 길에 결론을 내려야 할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서울만 해도 인천의 바닷물이 50cm나 불은 덕분에 인도교 근처의 한강 물이 염기를 띄게 되어 장차 식수 문제의 해결이 시급해졌다.
"하루에 평균 1cm씩 불어 오른다고 해도 대책을 세울 시간은 넉넉하다. 짠물이 양수리에 있는 팔당 댐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기본적인 식수는 문제없다. 짠 기가 낮은 강물은 원자력으로 민물로 바꿔치면 된다."
종합국토개발위원장 고흥우 박사는 자신만만한 담화를 발표하여 민심을 달랬다. 그럼에도 열흘이면 10cm씩 증수하는 바닷물에 장차 집이 침수될 것으로 내다본 시민들은 산비탈을 찾아서 옮기기 시작했다.
판판한 평지의 땅값은 개값으로 떨어지고 산값이 다락같이 뛰니 이게 무슨 어이없는 현실이냐.
이런 변동은 한국만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느닷없는 인구 이동이 고지를 향해서 옮겨지기 시작했다. 정부나 과학 기관이 염려할 것 없다고 소리 높여 설득해도 시민의 귀에는 곧이 들리지 않았다.
"한 달이면 30cm씩 증수하는 천지이변을 법률이나 병력으로 막아 낼 재주가 어디 있겠느냐.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바야흐로 성서의 묵시록에 예언된 말세가 온 것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소문이 퍼지고 어딜 가거나 불안에 휩싸여 아우성이다.
바닷물이 늘어만 가는 진상을 규명하려고 과학자들은 갖은 힘을 다 하고 있다. 성산포 우주 기지의 고일동 사령관은 남극(南極) 기지 사령관 오기남 준장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남극이나 북극의 얼음이 녹아나고 있지나 않을까? 이 점을 알아 내면 얼음이 녹는 원인도 밝혀 낼 수가 있으리라고 믿는데, 귀관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오."
이러한 지시를 받기 전에 에레버스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대원들은 이미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보통 영하 30도, 심할 때는 7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極限) 속에서 한국의 씩씩한 젊은이들은 이웃의 미국 대원(리틀 아메리카), 일본 대원(쇼와 기지)들과 겨루면서 관측을 계속하고 있는 판이다.
"현재로선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는 사실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소. 아마도 북극에서 무슨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예감이 듭니다. 그쪽을 알아보도록 하시오."
남극 기지로부터 채 1주일도 못 되어 그 동안의 상세한 관측 자료와 함께 보고해 왔다. 성산포 기지 사령관 고일동 소장은 곧장 미국에 조회를 했다. 미국은 북극권에 소련과 함께 방대한 관측소를 상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주일이 지나서 미국 관측 본부로부터 들어온 통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짧은 전보였다. 거기에는 자상한 관측 결과도 첨부되어 있지 않다.
EMB00000dbc6504'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모양이군.'
고일동 소장은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바로 이날 저녁, 세계의 텔레비전 뉴스는 뜻밖에도 금성이 정체 불명의 우주인에게 점령되었다는 몸서리치는 사실을 황급히 보도했다. 이 뉴스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공연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성운인의 내습
 
미국은 당장에 우주작전본부를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서쪽에 있는 아킬레스 산맥 속에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소련이 우랄 산맥 속에서 작전 본부를 두고 있는 사실은 그전부터 널리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우주 작전 본부는 50년 전부터 이미 한라산 깊숙이 마련되어 있는 터이다.
바로 그날 밤부터 고일동 소장 앞으로 수없이 많은 작전 명령서가 빗발치듯 날아 들어왔다.
"한국은 우주 특공대원 5명을 편성해서 우주 공간의 정찰 임무를 맡을 것. 정찰 결과는 본국은 물론이려니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아킬레스 산 속에 있는 국제우주작전본부에 통보할 것. 이상."
고일동 사령관은 작전 명령서를 손에 쥐고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의 바닷물은 나날이 불어가고 게다가 정체 불명의 우주인이 금성을 점령했다니 이게 악몽이 아니고 뭐랴.'
고일동 사령관은 갑자기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주인들이 태양계를 공격해 오지 않았는가. 무슨 영문인지 지구는 물바다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오랜 평화 끝에 무서운 세상이 오고 만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그에게는 너무 벅찬 문제가 던져진 셈. 머리를 싸매고 해결하려야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루만질 수조차 없는 우주 전쟁으로 돌입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서울에서 열린 긴급안보회의에서는 민족과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 총력을 다 하기로 의결됐다.
"국제작전본부의 지시를 준수하도록 해요. 이것은 국제협정으로 이미 약속된 일이니까 우리도 지켜야지."
대통령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짤막하게 지시를 했다.
워싱턴, 런던, 파리, 모스크바, 그리고 도쿄는 서울 못지 않게 불안에 싸여 있다는 신문 보도. 노이로제에 걸린 허약자 13명이 하룻밤 새에 비관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소식도 전해 온다.
고일동 사령관은 제트기 편으로 성산포 기지로 내려오자 특수전투부대의 김민수 박사를 사령관 실로 불렀다.
"방금 서울에서 국가안보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길인데, 국제 협정대로 아킬레스 본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기로 의결이 됐어."
고일동 사령관은 눈앞에 서 있는 김민수 대장보다 자기가 더 흥분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곧 말소리를 낮추며 의자에 앉도록 권한다. 그리고선 웃음을 씹으며 얘기를 이었다.
"아킬레스 본부는 우선 우주 정찰대 5명을 파견하도록 지시를 해왔어. 우리가 맡아야 할 공간은 여기 자세히 적혀 있으니 오늘 저녁까지 인선(人選)을 마쳐 주게."
김민수 박사는 덤덤히 앉아서 고 박사가 내민 서류를 받아들고 한 마디 물어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령관님, 우주인의 정체에 관한 속보가 들어왔습니까?"
"아직은 입수를 못했소. 그런데, 미국 측은 어느 정도 진상을 짐작하면서도 전세계가 너무 불안해 할까봐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것 같애. 안 그래요?"
"글쎄올시다. 저의 생각으론 금성을 점령했다는 우주인은 우리 은하계 우주인이 아니라 다른 성운(星雲)에서 온 이른바 성운인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금성을 점령할 필요가 있겠어요. 은하계 우주인이라면 직접 지구인과 교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대목이 석연치가 않아요."
"김 박사의 얘기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야. 그게 바로 한국 특공대가 확인할 문제꺼리가 아닐까요?"
"알았습니다."
김민수는 납득이 가지 않는 낯빛으로 경례를 붙이고서 사령관 실을 물러 나왔다.
그리고선 허겁지겁 자기 방으로 뛰어가서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대원 명단을 펼쳤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적힌 인물 카드를 뒤적이면서 생각을 더듬는다.
'특공대는 반드시 희생될지도 모른다. 젊은이를 골라야지. 용감한 사람들을……'
평소에 함께 고생을 해가며 우주 훈련을 받아온 1백 명의 대원 중에서 김민수 박사는 다섯 사람을 뽑아 냈다.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김민수(36) 박사, 화학 전공.
권우경(45) 박사, 심리학 전공, 안경을 낌.
박동운(25) 지구물리학 전공.
이성기(22) 재학 중, 해양학 전공.
문지향(27) 대졸, 전자공학 전공.
 
김민수 대장이 명단을 정리한 서류를 들고 고일동 사령관을 다시 만난 것은 오후 4시의 일.
"좋습니다. 잘 뽑아 냈군요. 그러면 이 명단대로 본인들에게 통고해 주시오."
고 사령관은 아킬레스 본부에서 시시각각으로 내려오는 전문의 뭉치 속에서 한 장의 전문을 썩 뽑아 김민수 대장에게 내 보였다.
"한국 특공대의 출발은 4월 3일 하오 3시 정각으로 지정되었음. 이상."
전문 지령에는 불필요한 말이 한 마디도 없어 차라리 김민수의 마음에 들었다.
국제우주작전 본부와 사전에 작전 연습을 해 본 적은 없었으나 고도의 컴퓨터 조작에 손익은 최근의 의사 소통은 극히 기계적이어서 차라리 손쉽다.
김민수는 원자력 엔진이 장치된 로켓 '톱상어 호'를 우주선으로 쓰기로 정했다.
연락을 받은 특공대원 4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김 대장실로 모였다.
"이번엔 죽을 각오를 해야될 것 같애. 발진 시각은 모레의 하오 3시 정각. 아킬레스 본부의 작전 명령인즉, 지구와 화성과 금성을 연결하는 3각 공간을 정찰하라는 거야. 알겠지!"
"네!"
그들에게는 새삼스러운 다짐이 필요 없었다. 준비를 마친 한국의 특공대원들은 홀연히 성산포 기지를 치솟았다. 물바다로 변해 가는 조국 땅을 내려다보면서.
 
이상한 광체(光體)
 
흔히 사람들은 하늘이 푸르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우주선이 귀청이 떨어질 듯한 요란스러운 지동(地動)을 멀리하고 하늘 높이 용솟음치고 나서 궤도에 오르면 발밑에 굽어보이는 지구는 온통 보라색이요, 새하얗게 햇빛을 반사하는 구름 떼에서 눈길을 돌리면 우주 공간은 늘 컴컴하기만 하다.
4월 3일 오후 3시. 예정대로 발사되어 우주 공간까지 솟구쳐 오른 톱상어 호에서 김민수 박사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평소와 다른 점을 느꼈다.
'이번에는 지구의 표면이나 둘레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구나. 바닷물과 구름이 희번덕거린다손 치더라도 너무나 강렬한 은빛이다. 무슨 까닭일까?'
김민수 박사는 눈 아래 동그만이 깔린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참 씨름을 계속했다. 알쏭달쏭한 현상이다.
"대장님,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셔요."
문지향 양이 성산포 기지와 통화를 나눈 뒤에 넌지시 묻는다.
"아무 것도 아니야. 지구의 빛깔이 새삼스럽게 은빛을 띄고 있는 게 좀 수상한 것 같아서."
"대장님도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지구의 표면은 가끔 둔갑할 때도 있지 않아요."
"하기야 그렇지만……"
김민수 박사는 말끝을 맺지 않은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박동운을 부른다.
"금성 근처로 먼저 가보는 것이 어떨까?"
"금성을 차지하고 있던 소련 원정대가 급기야 철수한 모양이던데요. 괜찮을까요?"
박동운이 걱정스럽게 대꾸하자, 문지향은 퍼뜩 떠오른 경멸의 눈초리를 감추느라고 얼른 눈시울을 두어 번 깜빡이고 나서,
"반대로 화성엘 가서 뭣합니까? 소련 원정대가 겪은 일은 모조리 우랄 본부와 아킬레스 본부에 보고되어 있지 않겠어요. 우리 한국 특공대가 직접 안드로메다 성운인과 마주치는 일만이 우리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지 않을까요?"
하며 한 마디 던진다.
"권 박사의 생각은 어떻소?"
김민수 대장은 문지향의 의견에 대답하는 대신에 권우경 박사를 보고 묻는다.
"아킬레스 본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본부의 작전 관리실이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권 박사는 안경 너머로 너무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눈빛을 던져 준다.
우주선 톱상어 호는 그러나 금성과 화성을 연결하는 3각형의 꼭지점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다.
"금성을 정찰해 보기로 합시다. 아킬레스 본부의 지시도 중요하지만, 기지 사령관 고일동 소장의 의견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소. 미국의 작전 본부가 무엇인가 진상을 죄다 알려 주지 않고 있는 눈치가 엿보인다는 거요."
김민수 대장의 결론이 떨어지자 특공대원들은 온몸의 핏줄기에 북받치는 애국의 순정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우주 전쟁의 위험이 다그쳐 오고 있더라도, 전 지구보다는 자기 나리의 권익을 먼저 따지는 심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인듯.
그러나 톱상어 호는 방향을 태양의 황도면에서 32도로 꺾어 타원 궤도를 따라 금성이 있는 우주 공간으로 직행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도 반이 넘어서려는 무렵, 전파 망원경의 스크린을 꼬박 지켜보고 있던 이성기 군이 우주선의 궤도 왼쪽에 이상한 광체를 발견했다. 이성기는 나이 스물 둘. 처음엔 가슴이 적이 울렁거렸으나,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시간을 관찰해 본 즉, 그 광체는 제 자리에 고정된 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김 대장님, 저 물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체의 지름을 계산해 보니까 100m가 넘는 듯 합니다. 접근해 보는 게 어떨까요?"
"움직이지 않는다니 그게 될 말이야."
"그래도 지구와의 상대 속도(相對速度)를 따져 보니까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 측정치를 보여 주게."
이성기로부터 측정 표를 받아들은 김민수 대장은 한참 들여다보고 있더니,
"음!"
하는 소리와 함께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추적하라!"
명령을 내리고 난 김민수 대장은 권우경 박사의 곁으로 걸어가서,
"저게 바로 지구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장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머리처럼 멀리서 지구에 붙어서 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며, 콩알만하게 스크린에서 반짝이는 광체를 가리켰다.
"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소. 그러나 일단은 아킬레스 본부에 보고하는 게 어떻겠소."
"그야 물론이죠."
그리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아킬레스 본부에 그 물체를 조회해 본즉, 그것은 지구의 어느 나라 비행체도 아님이 밝혀졌다. 톱상어 호의 특공대원들은 긴장을 아니할 수 없었다.
 
비행접시의 정체
 
"엔진을 초속도로 점화하도록!"
김민수 박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르고 나서 저마다 EMB00000dbc6505전투 태세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로켓은 빛살처럼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질주한다. 마치 바다 속에서 먹이를 쫓는 날쌘 상어처럼.
숨을 죽여가며 한달음에 이상한 광체를 향하여 돌진하는 톱상어 호. 컴컴한 우주 공간에서 저 물체는 이쪽의 움직임을 이미 포착했을까?
다섯 시간의 숨막힌 질주 끝에 그 광체의 근처에 다다르고 보니 그것은 엄청난 비행접시였다. 얼핏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떠 있었으나, 특수 장치로 측정해 본즉 비행접시는 하체에서 엄청난 광선의 다발을 발사하고 있지 않는가!
태양 광선보다 훨씬 짧은 층자선(層磁線)을 발사하고 있는 비행접시는 발사의 목표를 지구에 맞추고 있지 않은가!
"요것들이!"
김 박사는 멀찍이 그 광체를 감돌면서 정찰하기로 작정했다.
"대원들은 잘 듣게. 저 비행접시에 어떤 모양의 우주인이 타고 있는지 탐지해 내야만 공격할 수 있겠다. 적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가름해야겠다."
김 박사는 사령탑에 꼿꼿이 앉아서 마이크를 통해 일러준다. 대원들은 저마다 관측 장치 앞에 앉은 채 침묵을 지킨다.
톱상어 호는 반 투명체로 보이는 비행접시의 둘레를 타원 궤도를 그리면서 선회하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제 3 자가 이 광경을 구경했더라면, 비행접시는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비쳤으리라.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는 비행접시의 탑승원들.
'안드로메다 성운인이 금성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저놈들은 어떤 놈들일까?'
김 박사뿐 아니라, 특공대원들은 긴장 속에서도 호기심에 찬 눈초리를 한시도 놓지 않았다.
"층자선의 흐르는 방향에 로켓탄을 발사해 보시오."
참다못해 김 박사는 가느다란 소리로 호령한다.
"오케이!"
박동운은 거침없이 허리를 구부리며 조준을 맞춰 로켓탄을 한방 쏜다. 쏜살같이 내달은 로켓탄은 그러나 아무 일 없이 층자선의 흐름을 뚫고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김민수 대장은 소스라치게 놀랬다.
'이게 웬 일이냐. 만일 층자선이 북극의 얼음을 녹일만한 열량(熱量)을 지니고 있다면 로켓탄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고 말 게 아닌가. 그런데 탄알은 무쪽 같이 통과하고 말았다. 층자선이란 도대체 무슨 광선일까?'
두려운 생각마저 든 김민수 대장이 창 너머로 비행접시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을 때, 비행접시에 느닷없이 둥근 창문이 나타났다. 마치 똑같은 빛깔로 여태까지 가리고 있던 커튼이라도 치워버린 듯 비행접시의 방 속이 환히 비쳐 보인다.
"저게 뭐야? 외뿔을 이마에 꽂은 우주인!"
"여러 명이다. 아마도 수십 명은 되겠다."
"다리가 몸체에 비해 짧은 편이다."
특공대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외친다. 김민수 대장도 처음으로 보는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의 기이한 모습을 한참 관찰 아니할 수 없었다.
생물이 어떻게 진화를 했기에, 저처럼 외뿔이 구부러진 채 이마 위에 남아 있을까?
저 뿔이 과연 무슨 구실을 하는 것일까. 흔히 말하는 개미들의 촉각 구실을 한다면 저렇게 굵지 않아도 되는 것을. 거기에도 무슨 비밀이 있을 것으로 김 박사는 짐작했다.
'어쨌든 놈들은 상당한 문명 수준으로 지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를 안 이상 여기서 우물쭈물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김 박사는 이처럼 판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의 무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생각이 속을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성운인과 맞붙은 이상 36계를 놓을 수는 없지. 일단 공격을 해서 저놈들의 실력을 시험해 보자."
김 박사가 결단을 내리자 이성기 군은 누구보다도 흥분했다.
"먼저 로켓탄을 쏘아봅시다. 놈들은 아까 우리가 시험삼아 층자선 흐름에 쏜 로켓이 불발한 것을 얕잡아 보고 창문을 연 듯 합니다."
기운찬 소리로 외치면서 그는 발사 장치의 단추를 꾹 누른다. 로켓탄은 이 날, 이 순간을 기다렸노라는 듯 쏜살같이 내달아 비행접시의 심장부를 향하여 돌진한다.
하나, 둘, 셋, …… 그리고 네 발.
내닫는 족족 로켓탄은 보기 좋게 비행접시에 명중하여 꽝꽝 터진다. 후련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비행접시는 끄덕도 하지 않고 구멍 하나 뚫리지 않지 않는가! 대원들의 얼굴은 순간에 새파래졌다.
"얼토당토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어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김민수 대장이 얼결에 숨가쁘게 소리지른다.
톱상어 호는 기수를 번드치며 전속력으로 비행접시의 근처를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우주인들이 킬킬 웃고 있어요. 아무래도 어린애 장난 같아서 그러는 거죠."
어느 겨를에 창 너머로 그들이 비웃고 있는 모습을 훔쳐보았는지, 문지향이 재빨리 일러 준다. 혼비백산한 특공대원들은 정강이야 나 살려라고 줄달음치려고 허우적거렸으나 일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비행접시의 우주인들이 이번에는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성운인들과 교전
 
"이크, 눈앞이 어지럽구나!"
권우경 박사가 졸지에 안경을 바로잡으며 외친다.
"어서 성산포 기지와 아킬레스 본부에 우주인과의 교전 상태를 보고하라!"
김민수 대장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신경총의 조준단추를 누른다. 톱상어 호의 특공대원들은 느닷없이 받은 공격 - 그것도 정체 불명의 원인 때문에 발이 휘청거리며 앞이 어지럽다.
문지향은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 까무러치고 만 듯, 박동운은 두 눈을 부라리고 이를 악문 채 신경총을 발사하며 대항하고 있다.
이성기는 로켓 조종에 진땀을 흘리고 있고, 권우경은 지구와의 통신 연락에 골몰하고 있다.
"이군! 로켓을 비행접시와 평면으로 몰 게 아니라 수직방향으로 몰아 주게. 수많은 창구와 겨루다간 남아날 게 없어."
김 박사가 알맞게 명령하는 바람에 톱상어 호는 다시 균형을 되찾아 비행접시와 수직면에서 교전 상태로 들어갔다.
김대장은 비행접시를 위 아래로 회전하며 창구에 마주칠 때마다 무자비하게 신경총을 쏘아댔다. 박동운 역시 오른쪽에서 마찬가지 자세로 항전하고 있다.
과연 한국 특공대원들이 쏘아대는 신경총이 저편에 얼마만한 피해를 주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불이 확 달아 붙는다든지, 그 무엇인가 엔진이 천둥소리를 내며 폭발한다든지 하는 반응이 있다면 금새라도 전과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초음파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신경 섬유에 장해를 일으키는 이른바 신경총에는 소리도 없고 피해 상황도 뚜렷이 헤아릴 수 있는 기준도 없다.
다만 총격의 틈틈이 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외뿔 우주인이 픽픽 쓰러지는 광경만이 신경총의 효과를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에 지나지 않다.
톱상어 호는 비행접시를 빙글빙글 감돌면서 마구 공격을 가했다. 이쪽이 우주인의 방사선 총에 맞아 쓰러지는 확률도 마찬가지다.
문지향이 먼저 쓰러지고 권우경 박사도 마침내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김 박사! 일단 후퇴하면 어떻겠소?"
박동운이 총을 쏘아대면서도 넌지시 의논한다. 고개를 똑바로 가눈 채로.
"여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여기서 후퇴하면 놈들은 지구인을 더욱 깔보고 말 거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공격을 끈질기게 계속하면 놈들은 우리의 끈기에 질려서 도망칠 수도 있어."
김민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꼿꼿이 가눈 채 등 너머로 얘기만 던진다.
"이군! 선회 시간을 10분으로 줄여 주게."
김대장은 기를 쓰고 덤비려는 눈치다.
"그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직경 100m의 물체를 두고 10분만에 선회할 타원 궤도는 계산상으로나 실제로도 불가능합니다."
이성기 군이 서슴없이 대꾸한다.
"핫하하하. 그랬던가?"
김민수 대장이 느닷없이 큰 소리로 웃는 바람에 우주선 안의 긴장에 휩싸인 공기가 조금 풀렸다.
"김 박사, 너무 고집을 쓰지 마시오. 이미 희생자가 두 사람이나 나왔는데 일단 후퇴하는 편이 이로울 것 같습니다."
박동운이 차근차근하게 권하면서 마냥 겨냥에 바쁘다.
상대방도 어지간히 희생자가 나왔는지 심한 대항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럼 일단 화성 기지로 되돌아가 보기로 할까?"
김 박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힐끗 박동운을 돌아본다. 박동운이 저도 모를 결에 돌아보는 눈길이 김 박사와 마주친다. 박동운은 조금도 불안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오케이. 일단 후퇴하자."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성기는 키를 돌려 여태까지의 타원 궤도를 훌쩍 벗어나고 말았다.
"저봐요. 비행접시도 창문을 내리고 있어요."
이성기가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 한 손으로 가리킨다.
'그럼 놈들도 지쳤단 말인가? 어쨌든 대단한 적이 나타난 거야. 이대로 어물어물하다간 온 지구가 놈들에게 전멸 당할는지 모르겠다.'
김민수 박사는 벌써 주먹만하게 멀리 떨어져 보이는 비행접시를 바라보며 몇 번 다짐했는지 모른다.
박동운에게 조종석을 물려 준 이성기는 바닥에 까무러친 권우경 박사와 문지향의 어깨를 양팔로 번갈아 흔들며 귀에 대고 소리친다.
"이젠 정신을 차려요. 아무 일없으니 빨리 깨어나요."
어깨며 머리를 마구 흔들어도 두 사람은 곤드라진 채 아무 대답이 없다.
 
성운인 금성 점령
 
비행접시와 한국의 톱상어 호가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꼴을 지켜 본 제 3 의 목격자가 있었다. 말할 나위조차 없이 그것은 미국의 원정대였다.
그들은 태양계의 고요의 공간에서라면 비록 1억km나 떨어진 곳의 숨소리까지도 도청할 수 있는 도청 장치를 지니고 있는 정예 부대. 톱상어 호가 희생자를 달래면서 화성 기지로 후퇴하고 있을 때, 미국 원정대는 아득히 비행접시를 추적했다. 그들의 보고는 시시각각으로 화성 기지와 지구의 아킬레스 본부에 전해졌다. 미국 원정대가 도청한 녹음의 일부를 살펴보면 이렇다.
"사르만다 대장, 지구인이 덤벼드는 꼴이 마치 장사벌 같아서 우습기 짝이 없었어요. 꽤 끈질긴 공세를 취하던데 신경총 정도의 무기밖에 개발하지 못했으니 어린애 장난 같기만 해요."
종달새처럼 드맑게 지저귀는 목소리는 아마도 소년의 음성인 듯.
"깔볼 수는 없어. 지구의 으뜸가는 약점인 북극의 얼음을 녹이려니까 벌떼처럼 도전해오지 않았느냐. 지구인들의 기계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야."
대장이라고 불린 사르만다는 퍽 신중한 말투로 계속 소년을 타이른다.
"아비타, 안드로메다 성운의 문명이 은하계보다 더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가?"
"그럼요. 우린 4차원 로봇을 개발하지 않았어요?"
"너무 자만하고 있군 그래. 아무리 4차원 로봇이 있더라도 그것을 막아 내는 장치를 지구인이 개발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리가 정작 맞부닥칠 상대는 반드시 태양계의 인류만이 아닌 거야. 장차 은하계의 생물들을 정복해야 된단 말이야. 그 때까지는 행동을 신중히 해야 돼. 알겠나."
대장 사르만다가 차근차근 일러주는 목소리를 들은 미국 원정대의 온몸에선 소름이 끼쳤으리라.
비행접시는 멈춰 걸떠 있는가 하면 느닷없이 미끄러지듯 눈 깜박할 새에 수백km를 비행해 버리곤 했다. 아마도 광속보다 빠른 그 무슨 추진력을 개발해 낸 듯.
한참 도청 소리는 잠잠하더니 금성 기지에 다다른 듯, 달EMB00000dbc6506카닥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엇 때문인지 씩씩거리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혹 그 소리는 한국 원정대의 신경총을 맞아 까무러친 성운인들이 다시 되살아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아닐까?
"다 왔다. 부상병들을 먼저 들것에 실어 내라."
대장 사르만다의 쉰 목소리가 호령했다.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듯 잡음만이 요란하다. 대장은 분명히 먼저 빠져 나왔는지 한참 후에 소리가 들려온다.
"소와르, 지구의 북극을 녹이려던 작업을 일단 중지하고 돌아왔습니다. 지구인들이 눈치를 채고 상어 모양의 로켓으로 공격을 가해 왔어요. 퍽 용감한 전법을 써서 우리측의 희생자도 일곱이나 됐어요."
보고를 듣자 벌떡 일어나는 기색의 도청 소리 끝에,
"그까짓 것을 한 몫에 처리하지 못했어요? 지구 따위에서 세월을 보낼 수가 없지 않아요. 우리의 은하계 정복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깐깐한 목소리가 호통을 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와르라고 불리는 자는 안드로메다 원정대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는 남자가 아닌 중성에 가까운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령관이라는 속된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좌표장(座標長)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수학에서의 좌표가 X, Y 축으로 4등분되는 것처럼 어머니 모(母)자가 좌표의 네 가지 상한(上限)을 가려내고 있는 사실과 우연한 일치일는지 모른다.
더욱이 총사령관이라면 저마다의 좌표를 일러 주고 새로운 좌표로 옮겨주는 어머니 구실도 겸해야만 할 것이다.
사령관이라는 직선적이고 원시적인 명칭 대신에 좌표장이라는 공간 칭호로 부르는 일도 참고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대화는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녹여온 북극의 얼음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웬만한 연안 도시는 피난 소동이 나는 등 법석입니다. 도시 지구인들은 하천과 바닷가의 도시 문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요. 얼마나 원시적인 흔적입니까. 공간을 이용하고 광선을 활용하는 과학을 이제야 개발하기 시작한 모양이야."
사르만다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럼 대장! 금성의 기지를 빨리 정비해서 비행접시 편대를 꾸며 지구를 단숨에 공격해버리는 스케줄을 새로 짜요. 조그마한 땅덩어리 속에서 서로 잘났다고 시샘을 하는 생물은 벌레나 다름이 없지 않아요. 전우주의 이름으로 멸망시켜 버린들 누가 상관하겠소."
좌표장 소와르는 원한에 사무친 소리로 투덜거린다.
화성 기지에 이르는 동안 가까스로 권우경 박사와 문지향을 소생시킨 한국의 특공대원들은 이런 도청 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온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뿌리칠 도리가 없었다. 안드로메다 성운인은 분명히 인류를 적으로 삼고 있지 않는가!
 
히말라야에 착륙하라
 
김민수 박사는 우주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성산포 기지 사령관 고일동 소장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4차원 로봇이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고일동 소장이 근심스러운 전문을 보내왔다. 아직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4차원 로봇. 김민수 박사는 화학이 전공이어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자공학을 전공한 문지향도 아무리 기를 써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사령부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미국 원정대는 씩씩하게도 금성의 둘레를 멀찍이 감돌면서 끊임없이 도청 보고를 보내오고 있는 중.
보고는 계속된다.
"지금 남아있는 원정대원은 몇 사람이지?"
소와르 좌표장의 소리.
"합해서 99명이 남아있습니다."
대장 사르만다는 덤덤히 보고한다. 아마도 그들은 회의실에서 무엇인가 의논하고 있는 모양.
가끔 다른 숨소리가 섞갈린다.
"저 스크린에 비친 지구의 확대판을 보니까 넓은 바다가 보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태평양을 뜻한 거다) 바다에 내려서 지구 기지를 확보하느니 보다, 높은 산을 이용하는 편이 우리 산악인으로서는 편리할 것 같아요. 넓은 바다의 서쪽에 높은 산들이 깔려 있습니다. (아마도 히말라야 산맥을 뜻한 듯) 저 산 속에 기지를 정하는 게 어떨까요?"
사르만다가 설명하고 있다.
"빛깔이 온통 은빛이군. 꽤 높은 산인 듯한데 거기에 평지가 있을까?"
소와르의 물음을 받아 이번에는 소년 아비타가 귀여운 소리로 대답했다.
"소와르님, 산은 아무리 높아도 계곡이 있지 않아요. 계곡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델타(三角洲)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걱정은 마셔요. 지구인들은 아직도 산봉우리가 무장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소년의 또렷또렷한 말소리를 듣자 문지향은 입속말로 종알거린다.
"쳇, 깜찍하기도 하구나. 무슨 어린애가 히말라야 산맥에서 지구를 공격하도록 권한단 말이야. 꼭 만나서 혼을 내주고 싶군."
"미스 문, 뭘 실없는 소리를 입에 담고 있어. 상대방이 비록 어린애일지라도 IQ가 지구인보다는 높다는 걸 알아두어야지."
EMB00000dbc6507해양학을 공부하고 있는 22살의 이성기가 눈을 흘기며 나무란다.도청 소리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럼 그 산맥을 기지로 정하도록 해요. 1주일이면 준비가 다 되지 않을까요? 사르만다."
"문제없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해서 지구인들이 (소련 원정대를 뜻함) 파놓은 지하 기지까지 정비해 놓겠어요."
사르만다는 자신 있게 답변하고 일어서는 모양이다. 의자를 뒤로 당기는 듯한 소리까지 울렸다.
그 소리를 도청하고 있던 특공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말이 없다. 김민수 대장은 가벼운 기침 소리를 두어 번 내뱉은 후, 고개를 창 밖으로 돌리고 혼자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비상시에 이용할 지하 기지를 정비하겠다니 이게 웬 말이냐. 그렇다면 놈들은 금성의 지표에 기지를 건설하고 있단 말인가? 콘세트식의 돔형 건물일까? 그렇더라도 밤낮으로 심하게 바뀌는 온도를 무슨 수로 조정하고 있느냐 말이다. 더욱이 금성에는 구름이 많아 비바람이 심한 곳인데 도깨비 장난이 아니고서야 땅 위에 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꼬리를 맞물고 일어나는 문제와 아무리 씨름을 해보아도 신통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은 1주일 후면 행동을 개시할 작정이다.
1분, 1초를 조바심 속에서 허송한다.
이것은 한국 원정대로선 여간 분한 일이 아니다.
"대장님 차라리 선수를 쳐서 금성을 기습하면 어떻겠어요. 기습하면 그만큼 놈들의 준비 기간이 늦춰지지 않겠어요. 그 틈을 타서 아킬레스 본부도 전지구의 동원 태세를 확고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답답증을 참다 못한 박동운이 우겨댄다.
"솔직해서 좋아요. 그러나 작전상 큰 뜻이 있을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공연히 우주인들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아. 지금 원정대가 금성을 감돌면서 도청하고 있는 까닭도 다 아킬레스 본부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손이야 불쑥 내밀기는 쉬워도 한번 붙잡히는 날이면 오므리기가 어렵지 않아. 고일동 소장의 지시가 있을 거야."
김민수 박사는 피가 뒤끓는 박동운을 달랬다. 화성 기지에는 미국, 영국, 일본의 수비대도 깔려 있기 때문에 박동운은 더욱 흥분했을는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꼭두각시냐?
 
성산포 기지의 고일동 소장은 그대로 아킬레스 본부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취하는 중,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아킬레스 국제 작전 본부는 한국 특공대가 비행접시와 교전한 전황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미국 원정대의 도청 보고를 들으면서 종합 작전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한 중간 보도는 시시각각으로 성산포 기지에 통보되는 것은 물론이다.
"고일동 사령관 귀하. 아킬레스 본부는 우주 원정대의 정보를 종합한 결과, 금성을 기습하느니 보다 우주인들이 지구에 착륙하려는 순간을 잡아서 공격하는 편이 피해가 덜 하리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억누르기 위해 한국 특공대는 비행접시가 다시는 북극의 얼음을 녹이지 못하게 막아 주는 임무가 가장 긴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이 지령은 화성 기지에 전달되겠지만 귀하께서도 별도의 지령이 있을 때까지 한국 특공대로 하여금 현재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아킬레스 본부가 마지막으로 종합 작전을 세운 모양이다. 고일동 사령관은 부관이 들고 뛰어온 종합 작전문을 한 눈에 읽고 나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은 이미 반이나 물 속에 잠기고 서울의 한강이 넘치려고 찰랑찰랑하는 마당에 한국 특공대가 이를 막지 못한 일이 원통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국제 협력을 저버릴 순 없었다.
잘 받아보았다는 회신이 이내 아킬레스 본부로 타전되었다. 그리고는 고일동 사령관은 화성 기지를 불러 냈다.
"북극에 대한 층자선(層磁線) 방사를 계속 막아달라는 거야. 전투도 중요하지만 지구가 물 속에 잠기지 못하도록 지키는 임무도 중요하지 않는가?"
고일동 사령관의 시무룩한 말소리를 전해들은 김민수 대장은 그러나 한국 특공대의 임무가 한결 긴급하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오케이. 우주인과의 접전이 심해질 때는 언제라도 현장에 날아갈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겠소. 아킬레스 본부를 더 설득해 주시오."
김민수 박사는 더 이상 구질구질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제나름의 작전 계획이 서 있기 때문에.
아킬레스 본부의 지령에 따라 한국 특공대의 톱상어 호는 이내 화성 기지를 발견해서 금성과 화성과 지구를 이은 3각형의 꼭지점으로 급행했다.
특공대원들의 용기는 용솟음치고 있었다. 화성 기지에 가만히 앉아서 지령을 기다리는 조바심은 톱상어 호가 발진함으로써 완전히 가시고 말았다. 원자력 엔진에 점화한 뒤, 경계 공간으로 들어서자 톱상어 호 안에서 귀신이 곡할 사태가 마침내는 벌어지고 말았다.
권우경 박사가 웬일인지 등뒤가 오싹해서 뒤돌아본즉 거기에는 외뿔 우주인이 한 놈 말없이 서 있지 않는가!
"이게 무슨 허깨비야!″
권우경 박사는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기겁을 하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우주선 안에서 갑자기 찬바람이 일었다.
다른 대원들의 눈길이 한 군데로 쏠렸다. 거기에는 비행접시와 교전했을 때 창너머로 보던 안드로메다 성운인이 버젓이 서서 싱글싱글 웃고 있지 않는가! 가장 나이 어린 이성기는 얼결에 쇠망치를 불끈 쥐고 안드로메다 우주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우주인은 얻어맞은 채로 방바닥에 쓰러져야만 한다. 그 만큼 이성기의 동작은 민첩했다.
그럼에도 외뿔 우주인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꼿꼿이 선 채 여전히 웃고 있지 않는가! 이성기의 쇠망치는 결국 허공을 내리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이번에는 번개처럼 허리를 무찔렀다. 그러나 허깨비는 요동도 하지 않는다. 순간 김민수는
'아, 이게 투명 우주인이구나. 4차원 로봇의 수수께끼가 풀릴 듯 하다.′
생각이 문득 떠오르자 허리춤을 쥐고 껄껄 웃어댄다.
대원들의 의아한 눈초리가 김민수에게로 쏠린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외뿔 우주인의 환상에 지나지 않아. 보라 ! 이게 뭔가 무섭단 말인가. 일종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아."
김민수는 두 손으로 미친 사람처럼 외뿔 우주인의 얼굴이며 가슴을 찔러보였다. 주먹은 허공을 지나칠 뿐 우주인의 환상은 그대로 여전하다. 특공대원들은 그제야 저마다 허공을 만져 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허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주인의 이미지는 여전히 서 있다.
"저놈들이 기묘한 교란 작전을 하고 있는 거야. 이것은 광선의 장난에 지나지 않아. 원 망할놈들 같으니……"
박동운이 따라 웃으면서 손을 내젓는다.
두 눈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군은 허깨비인지 꼭두각시인지를 감시하게. 다음의 모션이 무엇을 뜻할는지 모르니까."
김민수는 지시를 내리고선 새삼스럽게 꼭두각시 우주인을 뜯어보았다. 살갗이며 모습이 진짜와 꼭 같다. 광선의 장난치고는 기막힌 걸작이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표정을 보니 다음의 동작도 마음대로 자아낼 수 있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김민수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4차원 로봇은 웃음을 멈추고 조종석의 박동운 쪽으로 헤적헤적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김민수 박사는 머리끝까지 쭈뼛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전진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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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한 4차원 로봇
한 발자국씩 조종석으로 말없이 다가서는 4차원 로봇. 비록 그것이 물렁 팥죽 같이 살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더라도 되돌아 지켜보는 박동운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질려 있었다.
"어서 피하지 않고 뭘 우물쭈물이야 ! "
김민수 대장이 얼결에 꽥 하고 고함을 지르자, 조종석에 앉아 있던 박동운은 날쌔게 자리를 박차고 비켜서며 몸을 사린다.
"이 낮도깨비가 어쩌자는 거야, 원."
잦아들어가는 가는 목소리를 어이없다는 듯 내 뱉으면서 박동운은 접근하는 4차원 로봇으로부터 몸을 피했다.
그러자 꼭두각시도 잽싸게 한 팔을 내뻗으며 박동운의 어깨를 붙잡으려고 덤비는 게 아닌가 !
박동운은 새파랗게 질려서 다시 몸을 돌려 벽에 철석 달라붙은 채 꼭두각시를 노려본다.
"에이, 망할 것이!″
나이 어린 이성기가 보다 못해 불끈 쇠망치를 휘두르며 4차원 로봇의 뒤통수를 보고 후려 갈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쇠망치가 로봇의 뒤통수에 닿기가 무섭게 이성기가 기겁을 하며 나동그러지는 것이 아니냐.
4차원 로봇은 단순한 허깨비나 물렁 팥죽이 아니었다. 둔갑한 것이다. 그 무슨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괴물로 어느새 둔갑한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기적을 본 박동운은 우주선의 벽에 달라 붙은 채 끈질기게 뻗쳐오는 로봇의 손길을 피하느라고 연신 바둥거릴 수 밖에.
로봇은 마치 박동운을 껴안으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외뿔이 어른거리는 이마를 쇠귀신처럼 들이댄다. 광선이 빚어 내는 꼭두각시의 윤곽을 무슨 수로 피해야 옳을 것인가.
숨이 목에 차서 허덕이며 이마에는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르는 박동운을 김민수 대장도 당장에 구해 낼 길이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4차원 로봇의 손이 박동운의 몸에 닿자마자, 지구 물리학을 전공한 박동운이 으악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선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로봇의 손길이 무섭다. 놈들은 아마도 레이저 광선에 전자력을 실어서 동력을 보내는 것처럼 필연코 층자선(層子線)에 자력을 실어보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김민수는 승리자처럼 두리번거리는 4차원 로봇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면서 머리 속에선 부리나케 생각을 쫓았다.
'그렇다면 우주선 톱상어 호의 온 겉면을 특수 물질 민들렁으로 칠해 주면 되지 않을까? '
번개처럼 떠오른 긴급 대책을 해치우려고 김민수 대장은 단숨에 바른 쪽 기계실로 뛰어든다.
"대장님! 우린 어떡해요? "
문지향이 소리지르며 황급히 뒤따른다. 권우경 박사는 온 몸을 움츠리고 로봇을 노려 보며 말이 없다.
김민수 대장은 기계실로 들어서자 다자고짜로 민들렁 방출장치의 네모꼴 단추를 기운차게 누르고선 TV 스크린의 스위치를 켰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뿌연 액체가 무너진 수문을 뚫고 흐르는 봇물처럼 우주선의 겉면을 뒤덮는 광경이 스크린에 뚜렷하다.
김민수 대장은 액체가 우주선을 완전히 덮힌 것을 확인하자 숨쉴 새도 없이 이번에는 제 2의 단추를 누른다.
톱상어 호의 기수에서 뿌연 안개 모양의 기체가 뿜어지면서 로켓은 더 없이 반들반들한 은빛으로 반사하기 시작한다.
1초, 2초, 3초, … 몇 초가 지났다. 그러자 옆 방에서 꼭두각시와 맞서 사생(死生)을 걸고 겨루고 있던 권우경 박사가 한 손에 안경을 벗어 들고 기계실로 뛰어 들며 외친다.
"빨리 나와 봐요. 4차원 로봇이 귀신처럼 사라지고 말았어.″
"정말이에요?″
문지향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뛰쳐나간다. 김민수 박사는 그러나 계속 기계실에 남아서 TV 스크린을 뚫어지게 지켜 볼 따름.
'됐다. 역시 민들렁의 위력이 세다. 이젠 살았다.‘
그는 속으로 다짐하면서 눈 앞에 삼삼거리는 남극 기지 사령관 오기남 준장의 모습에 새삼 감사의 뜨거운 정을 느꼈다.
민들렁이라는 특수 반사체는 오기남 준장이 남극 기지에서 개발해 낸 경험과 연구의 결정체이다.
광선뿐 아니라, 온갖 전파를 반사시켜 버리는 미립자군(微粒子群)으로 된 민들렁은 초 콜로이드 상태로서 나무를 제외한 온갖 금속체에선 100%의 효과를 내는 새 발명품.
김민수 대장은 우주선의 겉면이 민들렁으로 포장되자 4차원 로봇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고 마음 깊이 읊조리고 나서 조종실로 옯겼다.
문지향은 바닥에 쓰러진 박동운과 이성기의 머리와 팔, 다리의 요소를 골라가면서 정신없이 침을 놔 주고 있었다. 층자선이나 전기력에 마비된 신경은 오직 침술만이 회복이 가능하다.
문지향은 기초 교육을 받을 때, 이미 경락(經絡) 계통을 이용한 신경 의학을 공부해 놓았었다.
굳이 말하자면 혈관이나 신경 계통이 유선 통신망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동양의 경락은 무선 통신망이라고 이를 수 있다.
침을 놓기 시작한지 30분 후에 두 사람이 다 숨을 몰아 쉬고 되살아난 것은 물론이다.
 
비행접시가 정지하다니
 
'자, 이젠 4차원 로봇의 발생 근거지를 때려 없애야지.'
김민수 박사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 대원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로봇의 손길이 닿자마자 마치 전기가 옮은 듯이 짜릿하면서 정신이 나가버리던데 , 이번엔 혼을 내 줘야지."
박동운은 어금니를 악물고 눈을 부라린다.
4차원 로봇을 광선으로 내보낸 근거지를 찾아서 톱상어 호는 벌써 3일 간이나 비행을 계속했다. 김민수 대장은 처음에는 분명히 비행접시에서 꼭두각시가 방사된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도 타원을 나사못 모양으로 이어가는 타래 비행으로 지구와 금성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많은 운석(隕石)과 마주쳤을 뿐, 컴컴한 공간에서 반짝이는 비행접시의 그림자도 찾질 못했다.
"혹 놈들이 금성의 기지에서 방사한 게 아닐까요?"
답답증을 참다못해 이성기가 이마를 찌푸리며 들떼놓고 묻는다.
"글쎄, 있음직도 해. 그러나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은 지구를 괴롭힐 작전을 세우고 있지 않겠어. 무슨 행동 대원이 움직이고 있을 거야."
김민수 대장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궁리에 잠긴다. 고일동 소장에게 문의해 보자. 북극의 얼음이 녹아나고 있는지 체크해 보면 성운인들의 활동 상황을 어느 정도 종잡을 수 있을 테지.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그는 권박사에게 성산포 기지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회답은 부정적이었다. 성산포 기지 사령관 고일동 소장은 바다의 수위가 요 1주일 간 불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 그렇다면 성운인들의 작전이 정지됐다는 뜻일까?
5일째 되던 날 오후, 금성을 감돌면서 정찰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 원정대로부터 짤막한 무전 연락이 들어왔다.
"금성의 황도면 S125도 시그마 지점에서 반짝이는 비행접시를 발견, 아마도 지구로 향하는 성운인의 우주선인 듯."
무전이 해독되자마자 한국의 특공대원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가자! 이젠 놓치면 안 된다.″
김민수는 그동안 몸 안에 침체된 활기를 불러일으키듯 평소의 말소리보다 훨씬 높은 소리로 호령했다.
그리고선 조종석의 박동운 옆으로 뚜벅뚜벅 다가서서,
"이온 엔진을 가동시키는 게 어떄? 24시간 안에 가야겠어." 하며, 소리를 낮췄다.
이성기는 이미 마취총을 손질하고 있다. 김민수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기분에 감싸였다.
아무래도 젊은 투지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온 엔진이 점화되자 톱상어 호의 속도 계기판은 초속 8만 km를 넘어서 바늘 끝이 한들거린다. 우주 공간에서는 광속이 아니고선 아무리 총알처럼 달리더라도 육체적으로 실감이 나지 않는 법.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한결 더 넓은 우주의 거대함을 증명해 줄 뿐이다.
대원들은 교대로 잠을 자면서 목표 지점을 향하여 한달음에 치닫고 있다. 장차 벌어질 전투에서 결국 체력이 마지막 판가름을 한다는 것은 지난 번의 교전에 체험한 터다.
"대장님, 레이더권 내에 비행접시가 들어왔습니다. 여기 보이지 않습니까?“
문지향이 당돌한 목소리로 외치는 말소리를 듣고 잠자던 사람들까지 벌떡 깨어나서 모든 눈길이 레이더 스크린에 쏠린다.
"지난 번 것과 비슷한 비행접시로군."
김민수 대장은 지구를 향해 쾌속도로 날아가는 비행접시의 크기가 더욱 뚜렷해지자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5시간에서 4시간으로, 4시간에서 3시간으로, 또 3시간에서 2시간으로 거리가 단축되자 이성기는 마취총의 가늠자를 기수 쪽으로 겨누고 숨을 죽인다.
드디어 비행접시가 톱상어 호의 사정권 내에 들어오자 민수 대장은 마구잡이로 사격 명령을 내렸다. 선수를 치고 나가는 편이 전투에서는 늘 유리한 법. 두 눈을 간잔지런하게 좁히며 비행접시의 창구를 겨누고 마취총을 마구 쏘아대는 이성기의 뒷모습은 마치 얼룩말을 노리는 사자처럼 부르르 떨고 있다.
김민수 대장도, 권우경 박사, 문지향도 마취총의 방아쇠를 힘차게 잡아 당기는 순간순간이 계속된다.
박동운은 톱상어 호를 비행접시의 둘레로 핑글핑글 감돌게 몰면서 노상 태경을 배경으로 조종하고 있다.
"대장님, 왜 놈들이 반격 해 오지 않을까요? "
이성기가 조바심을 한다.
"반격이야 왜 안하겠어. 혹 민들렁 도료 때문에 층자선이 조정실까지 침투 못하는지도 몰라."
김 민수는 고개를 갸우뚱 말을 끊고 방아쇠를 다시 꼬나쥔다.
"이상해요. 마취총을 발사한지 30분이 넘었는데, 아무 대꾸가 없을 리가 있어요?"
문지향이 고개를 들며 되돌아 본다.
"미스터 박, 톱상어 호를 비행접시와 나란히 몰아 주게."
대장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톱상어 호는 급선회하여 비행접시의 꼬리를 맞출 듯이 후면에서 나란히 치솟는다.
그러자 얼마 후부터 비행접시의 속도가 눈에 보이도록 떨어지면서 마침내는 정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일이야? 설마……″
김 대장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비행접시를 지켜본다.
설마 성운인들이 전멸한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김민수의 머리를 퍼뜩 스쳐갔다.
 
출동 명령 제 1 호
 
비행접시의 출입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 본 이성기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첫눈에 비친 광경인즉 성운인들이 숨진 메뚜기처럼 갈가리 늘어져 있는 판이 아닌가!
거기에는 손가락이라도 삐걱 움직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 엎드린 채 축 뻗어버리자, 누운 채로 굳어버린 자, 딩굴고 있는 자, 모두가 처참한 꼴로 숨져 있었다.
"내려가 봐야지. "
권우경 박사가 뒤에서 재우치는 소리를 듣고 이성기는 출입문의 사다리를 내려간다. 권우경 박사도 조심스레 뒤따르며,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
이성기가 마이크로폰으로 톱상어 호에 남아 있는 김민수 대장에게 묻는다.
"팔, 다리를 묶어 놔야지 않어 ."
"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비행접시를 폭파시키겠습니까, 연행하겠습니까? "
"아니야, 그것을 조종하고 톱상어 호와 합세해야 돼."
조종하라는 말을 듣자, 이성기는 이내 이마를 찌푸린다. 자신이 없기 때문에…….
"조종 기술은 박동운 형이 더 우수합니다. 권 박사와 교대로 박동운 형을 보내 주시오."
"알았어요, 좋도록 하지."
이성기와 권 박사는 우선 바닥에 뻗어 있는 성운인 16명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살갗이 거치러웠다. 그리고선 권 박사가 박동운과 교대를 해서 휑뎅그렁한 비행접시 속에는 오직 박동운과 이성기만이 남았다.
"이놈들은 자동 비행 장치로 비행접시를 몰았군. 이군, 이 구멍뚫린 파이프를 보란 말이야. 자기(磁氣) 테이프를 컴퓨터에 물려서 저절로 비행체가 날아가게 만들었어. 상당한 실력이군."
비행접시의 조종실을 둘러본 박동운이 한참 감탄 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조정 방법이 있을 텐데…….″
"물론이지.“
두 대원이 주고 받고 있는데, 별안간 무전 신호가 빗발같이 들어온다. 당장에 알 수는 없으니 개미 모양의 글자가 TV 스크린에 주사(走査)되기 시작하지 않는가.
"통신 두절을 탓하는 연락문이겠지.″
박동운은 걱정없다는 듯이 눈길을 조종 계기판에 돌려 계기판의 배열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두 대원이 비행접시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톱상어 호는 선체를 접하여 함께 표류하고 있는 중.
김민수 대장은 비행접시를 점령한 사실을 자상하게 성산포 기지에 보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축하하오. 성운인의 비행체를 지구인으로서 처음으로 한국 특공대원이 나포한 사실은 여간한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지금 기지의 모든 대원들이 여러분의 얼굴을 사진으로 얼싸안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소. 계속 성공있기를……고일동."
성산포 기지 사령관이 제 1 차로 보내온 격려 전보이다.
 
비행접시 편대의 습격
 
그러나 아킬레스 본부는 성산포 기지에 보내는 동시에 메시지를 톱상어 호에도 보내왔다.
"금성을 정찰 중인 미국 원정대는 금성 기지에서 출발한 일단의 비행접시 편대를 발견했다. 편대는 지구를 향하여 타원 비행 중, 한국 특공대가 중도에서 우주 편대의 정찰임무를 이어받도록 귀관에게 지시한다. 또한 추격 중인 비행접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가는 곳을 밝혀 주기를 요망함. 아킬레스 본부.“
희비가 엇갈리는 말, 그대로 톱상어 호의 특공대원들의 가슴에는 기쁨과 긴박감이 엇갈릴 수 밖에.
"박동운, 박동운, 성운인들이 비행접시 편대로 지구로 향발했다. 우리에게 추격 임무가 새로 내려졌다. 되도록 빨리 비행접시를 가동시키도록 하시오.“
김민수 대장의 긴박한 목소리를 전해들은 박동운은 겨드랑이 속에서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안간힘을 다해서 비행접시를 가동시켜야만 되겠는데, 박동운은 배열판의 으뜸가는 실마리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으뜸가는 실마리란 결국 동력원 말이다.
안절부절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성기가 한손으로 가리켰다.
"동운형! 혹 이게 동력원 스위치가 아닐까?"
 
비행접시 함구령
 
스위치와 계기판이 옹기종기 천장까지 즐비하다. 여간해서는 조종 계통의 수수께끼를 풀기 어렵겠다고 반쯤 단념하고 있는 참에 이성기가 손으로 가리킨 것이 있다.
박동운은 반사적으로 굵직한 스위치를 켜 봤다. 다급할 적에는 망설여 볼 겨를조차 못 느끼는게 사람의 심정인 모양이다.
만약에 비행접시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사를 걸고 접전 끝에 나포한 성운인들의 우주선도 한낱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보다 우주 공간에서 표류하는 한, 성운인들에게 발견되는 날에는 톡톡히 복수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럴 경우 비행접시를 점거한 승리자의 입장이 순식간에 포로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도리어 화근을 불러들이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박동운은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를 순간적으로 빌었다. 다급해져서 청하는 기원이었으나 박동운의 처지로선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다.
찡! 하는 울림과 함께 이윽고 계기판의 불이 켜지면서 가느다란 바늘들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하자, 박동운과 이성기는 얼굴을 마주 볼 뿐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성기의 직감대로 기적적으로 동력원이 움직이는 것을 한참 살피다가 두 사람은 달겨들다시피 말없이 껴안고 서로 상대방의 등을 두들기며 좋아했다.
"살았다 ! 저 스크린을 봐. 바깥이 환히 비치지 않아."
"실마리는 잡았으니까 어서 톱상어 호를 따라갑시다."
이성기는 재우치면서 삐삐 소리가 들리는 무전기 쪽의 좌석에 자리잡고 놈들의 통신 테이프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톱상어 호의 지시를 받아야 겠는데 워키 토키로선 무리하다. 김대장과 너무 떨어졌어."
이번에는 박동운이 서둘면서 뒷방에 묶어 논 성운인들의 꼴을 훔쳐본다. 놈들은 여전히 까무러진 채 뒹굴고 있다.
"동운형! 김 대장이 나왔습니다.″
김동운은 이성기로부터 비행접시의 마이크를 받아들고 장차의 행동 방침을 물었다.
"성산포 기지로 직행하게. 우리 특공대가 비행접시를 나포한 사실은 성산포 기지에만 보고해 놨으니까. 알겠지."
EMB00000dbc6509"네, 앞으로 지시는 어디서 받을까요 ? "
"물론 성산포의 고일동 사령관으로부터 받아야지.″
박동운에게는 귀환 임무가 맡겨진 것이다.
김민수 대장의 말투로 미루어 비밀리에 안착하라는 뜻이었다.
박동운과 이성기가 제주도의 성산포 기지에 도착한 것은 이로부터 3일 후의 일.
미리 통보해 놓은 까닭에 착륙은 손쉽게 유도되었다.
"성운인의 수는 몇이지?"
비행접시가 땅에 내려앉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기내에 들어온 고일동 소장은 첫마디에 묻는다.
"16명이라구. 좋아요. 꽁꽁 묶어 놔야지. 섣불리 난동을 부리면 귀찮아. 이 사실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게."
고일동 사령관은 박동운과 이성기에게 조심을 시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안드로메다 성운인의 문명 기계를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기지에 남아 있던 대원들 몇몇이 비행접시 안으로 올라와서 외뿔 우주인의 손발을 고쳐 묶으면서, 그 비늘과 같은 꺼칠꺼칠한 살결을 보고 얼굴을 일그린다.
"4차원 로봇가 있었다지 않아. 분명히 그 발생 장치가 있을 텐데. 알 수 없나?"
고일동 사령관이 답답증을 감추지 못한다.
"저희들은 가까스로 기지까지 몰고 왔을 따름이지 온갖 기능을 일일이 체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사령관께서 전문가를 동원하셔야죠."
고일동 사령관은 박동운의 대답은 귀넘겨버리고 넓다란 계기실을 구석구석 거닐며, 신비로운 형체의 비밀을 한시라도 바삐 알아내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날 밤, 대통령을 비롯한 전 각료와 전문가가 비밀리에 성산포로 날아와서 긴급 회의를 연 결과 비행접시의 비밀이 규명될 때까지 외국에 통보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아무리 전 지구의 연합군이 일치단결하고 있다 손치더라도 역시 자기 나라의 이익이 앞서지 않겠어요. 과연 미국과 소련 및 중국의 이익이 어떻게 일치되느냐 하는 문제는 대의명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기회에 상대방의 국력을 소모시키려고 꽁무니를 빼는 나라가 없지 않다고 누가 단정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자위책을 갖기 위채서도 4차원 로봇의 정체를 덮어 두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고일동 사령관의 강력한 주장이 결국 성공이 된 것이다. 정부는 마침내는 고일동 사령관에게 비행접시의 확보와 비밀 해명의 임무를 내맡겼다.
 
제 자리를 지켜라
 
한편, 금성과 지구 사이의 정찰 궤도를 지키던 톱상어 호는 예정대로 금성을 떠나서 지구로 향하는 비행접시 편대를 추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번처럼 덮어 놓고 비행접시와 교전해서는 안된다. 미국 정찰대가 꾸준히 금성 주변을 감시하고 있으니 한국 특공대는 금성 사이의 궤도에서 소정의 임무만 수행하면 족하다."는 지령이 아킬레스 본부로부터 들어왔다.
"우리가 맡은 구역만 감시하면 그만이 아니겠어요. 쓸데없이 기를 쓸 건 없을 것 같아요."
김민수 대장 앞으로 찍혀오는 전문을 그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면서 문지향이 넌지시 말을 머금는다.
"합동 작전은 이래서 탈이란 말이야. 여태까지 뒤따르던 공이 폭삭 무너져버리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가 본디 맡은 책임은 북극의 얼음판을 녹이는 괴물을 적발하는 데 있었으니까 그런대로 자위를 해야지."
권우경 박사가 안경테를 매만지면서 중얼거린다.
김민수 대장은 아킬레스 본부의 지령에 따라야 하겠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속으로는 여간 마땅치가 않았다.
톱상어 호를 민들렁으로 완전 무장한 지금은 적이 아무리 4차원 로봇을 들여보내려고 기를 쓰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기왕이면 한국 특공대가 끝까지 추격했으면 하는 욕심을 저버린다는 것은 여간 서운하지 않다.
김민수 대장은 성운인과의 전쟁 규모가 어떤 것인지 알아 볼 겸 아킬레스 본부에게 추격 요청을 해 보았다. 톱상어 호는 4차원 로봇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석을 그는 꼬리에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참만에 회전이 튕겨왔다.
"성운인이 지구 착륙을 모색하고 있는 지역은 아직도 뚜렷하지가 않다. 아킬레스 본부로선 성운인과 지상에서 맞싸우는 편이 인류에게 유리하다는 전번의 결정을 그대로 밀고 나갈 뿐이다. 만일 지상의 전투에서 성운인이 불리하게 되는 날에는, 놈들이 반드시 응원을 금성에 요청하거나 일단 금성으로 후퇴하지 않겠는가. 한국 특공대는 그러한 경우에 대비해서 지구와 금성 사이의 공간을 지켜달라는 것이지, 결코 전투에서 제외하려는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다.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
아킬레스 본부의 전문은 김민수 대장의 요청을 보기좋게 물리친 것이 아닌가.
김민수 대장은 쓴맛을 다시는 도리 밖에 없었다.
"미스 문이 항성 관측을 계속해 줘. 난 잠깐 쉴 테야.″
김민수 박사는 시덥지 않는 낯빛으로 침대실로 들어가 버린다. 귄우경 박사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조종실의 바닥에 뒹굴고 만다.
한국 특공대는 운수가 사납다는 것인가. 저 멀리 아득한 공간을 햇빛을 반사하면서 덩그렇게 줄지어 가는 비행접시 편대를 천체 망원경으로 지켜보면서 문지향은 톱상어 호를 U턴(Turn)시키고 말았다.
 
독일 원정대의 비극
 
정찰 임무는 화성에서 출동한 독일 원정대에게 인계되었다.
독일 원정대는 시시각각으로 아킬레스 본부에 비행접시 편대의 동향을 보고해 왔다.
한 발짝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침묵의 컴컴한 공간에서 반딧불처럼 소리없이 날아가는 비행접시 편대. 놈들은 한 달음에 지구에 내려와서 단숨에 지구를 파멸시킬 작정일까? 온 지구를 파멸시키고 인류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만한 무슨 수단을 가지고 있기에 저처럼 덤비는 것일까?
독일 원정대의 한스 유벨 박사는 감시의 눈을 더욱 조리며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의문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 원정대의 우주선 속에 느닷없이 외뿔 우주인의 4차원 로봇이 옹기종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
한스 유벨 박사는 좁은 조종실 안에서 너울거리는 낮 도깨비를 보자마자 외마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까무러치고 말았다.
대원들은 영문을 모른 채 눈이 휘둥그래질 수 밖에.
기겁을 한 대원들은 빈손으로 덤비는 4차원 로봇을 보고 한 사람씩 쇠망치로 대결하느라고 허우적거리는 판.
무전사는 아킬레스 본부에 급히 4차원 로봇의 출현을 알렸다.
"정체 불명의 광선체가 별안간 우주선 내에 침입했다. 방금 전 대원이 격투 중. 한스 유벨 박사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지령 있기를 고대함."
회전은 이내 들어왔다.
"독일 원정대는 지체 없이 비행접시 편대에서 멀리 떨어져라. 4차원 로봇을 당장에 막을 길은 없을 것이다. 한국 특공대를 현장에 급파하겠다. 이상"
이런 회전이 들어오는 동안에도 외뿔 우주인의 환상들은 독일 원정대의 몸을 겹치면서 조종실을 점령하다시피 다섯 놈이나 득실거리고 있다.
아직은 그 무서운 에너지가 로봇의 몸에서 발생하지 않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날에는 독일 원정대가 전멸할 것은 뻔하다.
한스 유벨 박사는 졸지에 까무러친 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났다. 목구멍을 막았던 숨을 몰아쉬고 나니 눈앞이 조금은 뚜렷해졌다.
"대장님, 아마도 레이저 광선과 비슷한 환상인 듯합니다. 정신을 차리십쇼."
당돌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유벨 박사의 머리를 스치자 그는 기운차게 일어서서 로봇을 쏘아보았다. 정말로 알쏭달쏭한 도깨비들이 아닌가. 대원들의 모습과 겹쳐서 세상에서도 이상야릇한 모양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한스 유벨 박사는 다시 두 눈을 딱 감고 이윽이 탈출구를 더듬어 봤다.
총은 쏠 수가 없다. 광선이나 전파의 침입을 막을 도리는 없을까?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신통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유벨 박사가 다시 눈을 뜨고 로봇을 노려보고 있는 그 때, 전기를 옮은 듯이 대원들이 여기저기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로봇의 기능이 발휘되고 만 것이었으나 유벨 박사가 이를 해명하기 까지에는 너무 여유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유벨 박사도 몸을 피하느라고 진땀을 빼긴 했으나, 상대방의 수효도 만만치가 않아 그는 마침내는 로봇에 감전되어 또 다시 졸도하고 말았다.
한국 특공대가 부리나케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독일 우주선은 죽음의 배처럼 우주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4차원 로봇의 희생이 되고 말았나 보다. 민들렁과 같은 물질을 개발했더라면 난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김민수 대장은 권박사를 보고 말을 이었다.
"서양의 전통적인 과학은 모든 것을 흡수해서 폭발시키거나 관통시키는 방법에만 너무 집착해 왔어요. 자연의 것, 인공적인 것을 그대로 공간에 돌려 보내 버리는 반사의 과학을 좀 더 개발했더라면 위기를 면했을텐데…… 그러나 로봇의 감전력으론 일시 전신 마비가 생길 뿐이니까 언젠가는 되살아날 거요."
당장에 독일 우주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에서 김민수 박사는 쓸쓸하게 한 마디 던져 줄 따름이었다.
 
비행접시와 교전
 
아킬레스 본부의 긴급 지령으로 한국의 톱상어 호가 비행접시 편대의 감시 임무를 다시 도맡게 됐다. 다시 U턴한 톱상어 호는 편대의 진로를 성산포 기지와 아킬레스 본부에 동시에 통보했다.
"아마도 히말라야 산중에 착륙할 것 같다. 비행접시는 북극과 남극을 멀찍이 정찰한 뒤, 속도를 낮추고 태평양 상공을 거쳐 히말라야 쪽으로 강하하고 있는 중임. 이상."
톱상어 호의 이러한 보고뿐 아니라, 달 기지에서도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행접시 편대가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레이다 망에도 포착되어 비상 경보는 도처의 작전 사령부를 순식간에 전쟁 기분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는 완전히 지구 주변으로 들어온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의 편대를 물샐틈없이 포착하고 있는 아킬레스 본부는 우랄 산맥의 굴속에 설치된 소련 우주 사령부와 공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성운인들은 금성에서 정하기를 히말라야의 시요네르 봉우리 근처에 착륙할 작정이었으나 예정을 바꿔 좀더 북쪽에 깔린 카라코람 (Karakoram)의 K2 봉우리인 가드윈 요스틴(8611m) 계곡에 내려앉을 듯함. 소련군의 긴급 출동을 바람. 미군은 파키스탄과 인도양의 부대를 출동시켜 K2의 남쪽에서 성운인들과 접할 예정이다. 이상."
아킬레스 본부의 이러한 협동 작전을 우랄 사령부는 크게 환영하고 있다. 카라코람은 소련과,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의 접경을 이루는 고원 지대니 만큼 지리적으로 소련에 가깝다.
우주인들이 카라코람에서 발작하는 날에는 피해가 소련에 먼저 미칠 것은 뻔하다. 소련은 그러한 속셈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참이다.
소련이 대 부대를 헬리콥터 편으로 카라코람 산중에 출동시키고 있을 때, 비행접시 편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거침없이 K2 계곡의 넓은 평지에 차례차례 내려 앉았다. 마치 나비가 살포시 꽃 위에 내려 앉는 양.
역시 밤이었다. 모든 기습이 어둠을 틈타서 감행되는 것처럼 성운인들도 태양을 가리고서 6대의 비행접시를 지상에 착륙시킨 것이다.
그리고선 맨 처음에 땅에 발을 내 딛은 놈은 소년 아비타였다. 한 놈, 두 놈씩 대담하게 내려서는 군상들. 때마침 으스름 달밤이어서 검은 그림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EMB00000dbc650a꼴이 바위 틈에서 엿보인다.
미국의 결사대원들이 이미 선발대로 파견되어 계곡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진을 치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비행접시가 내려앉은 계곡의 북녘에서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가 밤하늘을 울리더니 우렁차게 메아리친다.
"소련군의 선발대일 게다. 신호탄을 쏘아라."
미국 결사대의 리차드 M. 젠킨 대위는 나지막이 명령한다. 아무래도 맞싸워야 할 상대방이다. 조만간에 싸우게 될 바에야 소련군에게 미군의 위치를 알리는 동시에 우주인에게 겁을 줘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신호탄이 붉은 꼬리를 싸리비처럼 끌면서 밤하늘에 치솟았다. 하나, 둘, 셋, 수없이 꼬리를 끌며 줄지어 올라가는 바람에 우주인들은 이내 눈치를 챈 듯.
가물거리던 그림자들이 허겁지겁 비행접시 안으로 사라지더니 비행접시는 일제히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뻘건 불길을 소리없이 창구마다에서 쏘아대는 모양을 한참 관찰하다가 젠킨 대위는 추켜들었던 손을 썩 내리고선 미군에게 발포를 명령했다.
 
젠킨 대위의 고민
 
카라코람의 고원은 험준하다. 산봉우리마다 깎아 세운듯 우뚝우뚝 솟아 쭈뼛한 심산유곡에서 우주인과 접전하고 있을 줄이야 세계의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결사대장 리차드 M. 젠킨 대위의 응전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레이저총은 파르스름한 불꼬리를 찍찍 갈기며 일제히 비행접시 쪽으로 집중한다.
서로 불꽃을 튀기는 숨막히는 순간 순간이 벌어지고 있건만, 자동 소총이나 기관총처럼 콩 볶는 듯한 요란스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역시 4차원 전쟁의 특색이다. 광선과 광선이 찍찍 엇갈리며 날아가는 침묵의 전쟁. 비행접시의 창구마다에서 내뿜는 광선이 퍽 여유가 있다.
"로켓포로 공격하라. 적의 맨 앞에 있는 비행접시를 먼저 목표로 삼도록 하라."
젠킨 대위는 소리를 높였다. 10여 분을 쏘아댔는데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을 뿐더러 상대방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가 않는다. 열이 올라 소리칠 수밖에.
거북이처럼 바위에 달라붙어서 레이저총을 굴리던 소대원이 지체 없이 로켓포를 발사했다. 쌕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불길을 뿜으면서 내뻗친 로켓탄은 토끼를 노리는 독수리 못지 앉게 날아들었다.
한 발, 두 발 꼬리를 맞물고 날아가는 로켓탄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기대는 순식간에 어긋나고 말았다. 로켓탄은 비행접시 언저리에 접근하자 어이없이 폭발하고 말지 않는가.
"놈들은 특수 장치로 비행접시를 감싸고 있다. 로켓탄 발사를 중지. 레이저총으로만 공격하라!″
젠킨 대위는 얼결에 고래고래 소리칠 뿐, 뾰족한 묘안을 당장에 발견할 수도 없었다.
지상전에서 쓰여온 최신 무기가 이처럼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할 때, 다음 차례는 어떻게 해 보라는 작전법이 교련 교과서에는 전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달아오른 젠킨 대위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보람없는 전투 경과를 아킬레스 본부에 보고했다.
"뭐라구? 로켓포도 소용이 없단 말이야. 알았어. 후속부대가 20분 내로 도착할 거야. 우선 현 위치에서 감시 임무를 계속하도록 하라! "
아킬레스 본부의 지시도 별로 신통한 것은 못됐다.
"소생이 비행접시에 접근해서 우주인의 동태를 정찰해 보겠습니다. "
핏대가 오른 제임스 하사가 젠킨 대위 옆으로 다가와서 자원한다. 그는 특수 훈련을 받은 몸. 이런 기회에 실력을 과시해 보고 싶은 심정인가 보다. 표정이 돌처럼 굳은 채가 아닌가.
"좋아. 두 사람만 데리고 내려가 보게.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게. 신호탄 준비는 돼 있나? "
"네, 빈틈없습니다."
"좋아. 가 보게."
젠킨 대위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우두커니 있을 순 없다. 손을 써볼 대로 써보는 게 지휘관의 임무인 것이다.
제임스 하사가 당장에 부하 2명을 거느리고 바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젠킨 대위는 흐뭇하게 여겼다.
'그는 끝내 깨닫지 못했지만 직업 군인으로서의 훈련과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기 때운에 군대는 규율이 제일이라는 생각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쟁은 사람 아닌 로봇이 하는 것이라는 우주 차원의 사고 방식을 깨닫기에는 아직도 까마득 했다. 장교로서 지휘관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맹목적으로 믿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참 후에 제임스 하사 일행은 모종의 임무 수행에 성공했다. 그들은 기어가다시피 비행접시 편대에 접근해서 도청 장치를 바윗장에 설치해 논 것이다. 선발대의 진지에 기묘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국인이라고 했지. 저 쪽 산등성이에 진을 치고 있는 인종은 뭐라구? 소련인? 지구 위에는 웬 인종들이 저다지도 많느냐? 도무지 알 수 없는 소인들의 땅덩어리구나."
이내 해독된 대화는 이런 뜻의 말을 주고 받고 있다.
종달새 모양으로 종알거리는 목소리는 분명히 소년 아비타의 말소리일 것이다.
그는 좌표장(총사령관) 소와르가 말리는 데도 기어이 지구 원정에 나선 영리한 소년이다.
"어쨌든 지구인도 만만치는 않다. 마지막 무기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층자선(層子線)총으로 놈들의 접근을 막아 내자. 우리에겐 이미 작전이 서 있지 않는가."
아비타의 말소리가 여러 대화 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들려온다.
그 소년이 혹 지휘관이 아닐까?
도청 장치를 통해서 흘려오는 정보를 귀엽게 듣고 있던 젠킨 대위는 문뜩 우주인들의 마지막 무기가 무엇일가 하는 상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핵무기라면 지구에는 얼마든지 있다.
'놈들은 모종의 생물 무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놈들은 도대체 지구를 말살시킬 작정일까? 지구를 지배할 생각일까? 그 목적에 따라서 사용하는 무기도 다른 것이다. 놈들의 의도를 알아 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젠킨 대위는 도깨비 불장난 같은 싸움터에서 고민했다.
문득 고개를 들고 쳐다본 밤하늘엔 헤아릴 수 없는 별만이 총총하다.
 
기포탄을 사용하시오
 
한편, 오스트랠리아의 산 속 동굴에 자리잡은 아킬레스 본부의 상황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대로 우물쭈물하다간 우주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는지도 모르는 긴박한 사태가 아니겠어요? 전 인류를 순식간에 멸망시킬지도 모를 우주 무기를 먼저 사용하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저의 의견으로선 우리 편이 핵무기로 선수를 쳐야 옳을 것 같습니다. "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참모장 사뮤엘 O. 하야시 장군이 조바심 끝에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괴로운 표정을 지은 채 덤덤히 방 안을 거닐면서 가끔 걸음을 멈추곤선 발 끝으로 벽을 툭툭 차보기만 하는 총사령관 에밀 C. 브라운 제독은 참모장의 건의를 귀넘겨 듣고만 있는 것일까. 아무런 대꾸가 없다.
하야시 장군은 의견을 이어갔다.
"자고로 미국은 세계가 곤궁에 빠져 있을 때, 뒷짐을 쥐고 이를 외면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지구가 사느냐 죽느냐하는 시련의 순간입니다. 어째서 제독께서는 말이 없으십니까. 핵무기 사용에 싸인을 하시요. 나는 참모장으로서 건의하는 것입니다."
하야시 장군은 브라운 제독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결의를 재우친다. 총사령관이 너무 우유부단한 것만 같다.
"아니야. 내 생각은 달라. 지금 핵무기를 쓴다는 것은 졸렬하다."
"까닭은? "
참모장은 재빨리 제독의 말끝을 가로챘다.
"까닭이라니? 뻔하지 않아. 만일 우주인의 비행접시에 반물질(反物質)이 있는 경우 지구가 눈깜박할 새에 폭발하고 말는지도 모를 게 아니야. 여태까지의 전쟁관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게 아닌가."
"반물질, 새로운 관점……″
하야시 참모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팔장을 끼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핵무기를 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여파가 뜻하지 않게 인류의 전멸을 가져온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이다.
하야시 장군은 머리 속에서 부리나케 대안을 더듬어갔다.
'기포탄(氣泡彈)을 사용하면 어떨까? 우주인들도 분명히 무슨 원소를 호흡하고 있을 것이다. 레이저 광선도 로켓탄도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 마당에서 핵무기 대신에 기포탄을 써봄직도 하다.'
참모장은 컴컴한 사색(思索)의 수렁 속에서 문뜩 깨어나자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총사령관 앞으로 다가갔다.
"기포탄을 사용합시다. "
"기포탄 ? "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우주인들의 숨통을 막아버릴 수 있겠습니다."
하야시 장군이 우긴다. 그가 주장하는 기포탄은 로켓으로 발사 폭발시키면 공중에서 수억, 수십억의 플라스틱 거품이 낙하산처럼, 안개 모양으로 내려앉아 거품에 덥힌 생물은 주위의 원소를 빼앗겨 일종의 진공 상태에 덮이고 마는 무서운 화학 무기이다.
미 국방성과 일본이 합자해서 개발해 낸 이 최신 무기는 그동안 실전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비밀 무기인 것이다. 하야시 참모장은 어째서 맨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가벼운 뉘우침마저 들었다.
"기포탄이라. 써봄직도 하지. 그러나 성급히 사용해서 도리어 아군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될 일이야. 또한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주인을 생포하는 것이 지상 명령이니까."
브라운 제독은 넌지시 덧붙였다. 하야시 참모장은 속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총사령관의 태도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전쟁에는 타이밍이 있지 않는가? 브라운 총사령관은 자칫하면 타이밍을 놓칠 정도로 결단을 내리는 데는 소걸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많은 공수대가 오스트랠리아 기지를 발진하기는 했으나, 아킬레스 본부는 그들을 엉겁결에 발진시켰을 뿐이 아닌가?
 
그림자의 정체는
 
미국의 증원부대가 카라코람의 현지에 급파된 후 젠킨 대위의 선발대는 결사대로 몸바꿈했다.
제임스 하사가 구축한 진지로 진출한 젠킨 대위는 비행접시 편대로부터 불과 1km 지점에서 레이저총을 튀기고 있는 판.
"돌격을 해서 아예 비행접시로 침투하는 게 어떨까?″
젠킨 대위는 파란 눈동자를 굴리며 대원들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나는 우주인 한 놈을 생포하고 말테요.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재미가 아니겠어요. 핫하하하.″
제임스 하사가 거리낌없이 웃는 목소리는 맥없이 고원의 수풀 속으로 잦아든다. 제임스 하사는 자기가 생각해도 우주인과의 대결은 멋있을 것 같았다.
"그럼 결사대는 사명을 다 해야겠다. 우리가 제 1 비행접시에 접근하는 동안, 아군은 제 2의, 제 3의 비행접시에 레이저총을 집중시킬 것이다. 놈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엎드려서 힘껏 기어가기로 하자.“
젠킨 대위는 말을 마치자, 이내 엎드려서 가제 모양으로 꾸불텅꾸불텅 기어가기 시작한다. 30여명의 결사대원들이 뿔뿔이 헤어져서 뒤따르는 모습을 그는 가끔 뒤돌아본다.
그러면서도 과연 우주인들이 이쪽의 움직임을 환히 내다보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 물결치듯 솟구쳐올 때마다 젠킨 대위는 고개를 들고 비행접시 쪽을 바라보았다.
별빛에 아련한 비행접시의 그림자. 거기에는 전혀 불빛이 없으며 다만 간간히 쏘아대는 방사선총의 불길이 공기와 화합해서 시퍼렇게 꼬리를 끌 따름이다.
미국의 증원부대는 전 화력을 동원해서 비행접시마다에 레이저총을 쏘아부치고 있다. 죽음의 광선만이 오가는 고용의 격전이다.
역사상 이런 전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 젠킨 대위는 엎드려 목격하고 있다.
집채 같은 바위에 다다랐을 때, 젠킨 대위는 멈춰서 숨을 돌리기로 했다. 잇따라 대원들이 도깨비처럼 말없이 모여든다. 더 지시하거나 명령할 것조차 없다. 별빛에 반들거리는 대원들의 눈동자들이 모든 것을 양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사대장은 문뜩 떠오른 생각을 쫓아보았다. 자기는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이처럼 싸우고 있을까 하고.
인류를 위해서? 아니다. 미국을 위해서? 아니다. 그럼 뭐냐? 우주인을 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 아닌가. 그들과 겨뤄서 한 놈이라도 생포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는 판이었다.
비행접시까지의 거리는 나머지 400m 가량. 젠킨 대위는 한 손을 들어 내두르면서 전진하도록 신호를 했다.
무난히 한 달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 제임스 하사의 두 눈이 부라린 탓인지 올빼미 눈처럼 동그랗게 보인다.
젠킨 대위는 순간 본능적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 무엇인가 앞을 가리는 그림자가 수없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게 아닌가.
흠칫 몸을 움츠리며 앞을 조심스레 살펴 보았다. 어느새 비행접시는 제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수백 명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이 허깨비처럼 이쪽을 보고 걸어오고 있지 않는가!
미국 결사대는 죽살나게 검은 그림자에 총을 쏘아 댔으나 모두 허사였다. 외뿔 인간처럼 아른거리는 그림자의 손이 젠킨 대위의 얼굴을 제치자마자 그는 강한 전기를 받은 듯 소스라치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30여 명의 대원들도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의 손길에 붙잡히기가 무섭게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뻗어버리고 말았다. 결사대원들은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어서 이상야릇한 그림자들이 4차원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결사대원들을 짓밟으며 쑥밭을 만들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미국 증원부대의 진지로 전진해 오는 로봇 부대 !
전투사령관은 졸지에 벌어진 변화를 급기야 아킬레스 본부에 타전했다.
"괴물의 정체는 4차원 로봇이다. 독일의 한스 유벨 박사 일행도 우주 공간에서 놈들에게 변을 당한 일이 있다. 한국의 우주 특공대만이 로봇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즉시 연락해서 무슨 묘안을 짜내겠다."
아킬레스 본부의 회전은 매몰스러웠다.
일선 지휘관으로서 1개 공수사단을 거느리고 있는 지휘관에게 미리 4차원 로봇에 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일종의 작전 미스테이크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공수사단장은 화가 머리까지 올랐으나, 항의를 한대도 아킬레스 본부가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을 적엔 헛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어른거리며 푸서리처럼 다가오는 로봇을 당장에 어떻게 막아내라는 말인가.
공수사단장은 흔히 토론해 온 3차원 전쟁의 작전법이 아무 소용없는 사실을 순간순간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신의 무력감 속에서 헤메일 수밖에.
로봇과의 거리는 나머지 2km! 진퇴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동쪽 산봉우리를 넘어 멧발 위에 동그마한 비행접시 한 대가 찬란한 불빛을 뿌리면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킬레스 본부에서 거의 동시에 통보가 다다랐다.
"한국 특공대가 그 동안 우주에서 철수하여 생포한 비행접시를 몰고 현장에 급행 중. 염려말고 증원 부대는 비행접시 편대를 감시하게."
EMB00000dbc650b로봇 부대의 위압에 눌려 간이 써늘해진 공수 사단장의 머리 위에 나타난 또 1대의 비행접시가 바로 우군(友軍)기라는 보고를 받자, 그의 기름진 얼굴에 희색이 빙돌았다.
미군 진지에서 급히 쏘아올린 조명탄이 카라고람 고원을 대낮같이 밝혔다.
한국의 비행접시는 성운인의 비행접시 편대를 하늘에서 맴돌면서 도무지 착륙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미군 진지에선 실망이 엇갈렸다.
이 숨막히는 순간에 미군의 전 초소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이번에 사람 모양의 새로운 로봇이 비행접시 주변에 수천 개 나타났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모습이 지구인과 비슷하다."
지상에서 몸이 달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동안 김민수 대장은 드디어 4차원 로봇의 비밀을 해득하고 마침내는 유사 로봇의 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카라코람 고원에서 김민수 대장이 조종하는 유사 로봇이 막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끼리의 격투
 
꿈질꿈질 움직이면서 4차원 로봇 부대를 뒤쫓는 한국 로봇의 수는 점점 불어난다. 우주인들의 외뿔 로봇 부대는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헤적거리며 미군 진지를 보고 돌진해 간다.
둥실둥실 떠 있는 조명탄의 파르스름한 불빛에 어려 야릇하게 어른거리는 로봇을 비행접시 안에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박군! 초점을 미군 진지 앞으로 급히 돌려 줘 로봇을 결투시켜 보자. "
김민수 대장은 이제는 손익은 비행접시의 기능을 테스트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박동운이 선뜻 포커스를 전방으로 맞추자 환영같은 지구인 로봇은 서브렁섭적 몸을 날리어 4차원 로봇의 대열 뒤에 대어 서며 팔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전원을 넣어 봐요."
김민수 박사는 조심스럽게 이르며 밖을 뚫어지게 내다본다. 저 아래서 가물거리는 한국 로봇들이 전원이 들어가자마자 꾸역꾸역 4차원 로봇의 뒷덜미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미군진지까지 간신히 500m를 남긴 곳에서 아슬아슬한 격투가 벌어진 셈. 미군들도 분명히 손에 땀을 쥐고 이 해괴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1초, 2초, 3초가 지날 무렵 4차원 로봇의 대열이 별안간 몸을 뒤로 바꿔 서더니 키가 나직한 한국 로봇의 팔을 붙들며 메어치려는 듯 덤비기 시작한다.
'저게 어쩌자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 김 대장은 박동운에게 B스위치를 넣도록 지시했다.
박동운이 분명히 B스위치를 넣고 나니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닌가 !
한 눈에 굽어보이는 고원 위에서 격투하던 로봇들의 자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지 않는가! 두 눈을 비벼대며 다시 확인하려고 애써도 로봇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게 웬 일이야? 도깨비에 홀린다는 속담이 있더니 도깨비 장난같군. 이유는 무엇일까?'
어이없이 사라진 로봇의 모습을 김대장도 당장에는 납득하질 못했다.
'반물질끼리라면 폭발한다는 학설도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끼리 소멸해 버리는 현상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안경을 낀 권우경 박사가 창 밖을 열심히 내다보며 자문하는 소리.
"B 스위치의 에너지 때문에 4차원 로봇이 승화해 버렸는지 또는 우주인들이 딴 에너지로 걸맞게 했는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나머지 로봇을 다시 남아 있는 4 차원 로봇 쪽으로 집결시켜 보자.″
김민수 대장의 더듬는 듯한 말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모험인 만큼 자칫 잘못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일.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박동운은 나머지 로봇들의 초점을 유도해 주고 나서 새로이 로봇 환상을 빚어내 보려고 계기를 조작해 봤다. 단추를 누르고 주파수를 맨 처음의 그것에 맞춰 봤으나 형상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렇라면 한 대의 비행접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4차원 로봇의 수효는 한정되어 있단 말인가. 그럴 법도 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혹 다른 주파수로서 딴 차원의 로봇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수수께끼는 당장엔 풀리지 않았다.
"어쨌든 미군 진지의 아슬아슬했던 위기를 구해 냈으니 천만다행이다."
감사하다는 아킬레스 본부의 전문이 들어왔다.
김민수 대장은 여태까지 고정되다시피 떠 있던 비행접시를 소련군 진지가 있는 쪽으로 이동시키면서,
"그래도 고원에 앉아 있는 비행접시 편대가 가만히 있는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지 않아." 하며 중얼거린다.
과연 우주인의 비행접시는 미군들과 한바탕 교전하고 난 뒤부터 4차원 로봇 부대만 내 보냈을 따름이지 한국 특공대가 나포한 비행접시로 재주를 부리고 있음에도 당장 쓰다달다 한 마디조차 없다.
 
기포탄을 투하
 
이즈음, 아킬레스 본부는 우주인들의 통신 연락을 도청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참이었다. 금성 기지에서는 그들의 통신 연락을 손쉽게 포착하여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는데 지구에 내려앉은 편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놈들이 혹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통신 방법을 쓰고 있지나 않을까?"
총사령관 에밀 C. 브라운 제독은 조바심이 나서 막료들에게 물었다. 상황실에 둘러앉은 막료들인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글쎄요. 답답하기는 매한가집니다마는……"
참모장 사무엘 O. 하야시 소장이 시무룩한 말투로 중얼거릴 뿐, 머리속에서는 어서 기포탄(氣泡彈)을 투하할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의 성산포 기지에 무슨 뾰족한 수라도 없을까?"
"연락은 해보겠습니다마는……"
"한국의 특공대는 우주인의 비행접시를 나포했다지 않아."
브라운 제독의 답답증을 속시원하게 풀어 줄 수 있는 건더기가 없는 것도 역시 답답한 노릇이었다.
"소련군의 동태는 어때?"
"비행접시의 북쪽 산중에 진지를 구축 중이랍니다."
"놈들은 왜 그리도 슬로 모션이야."
브라운 제독은 푸념 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적이 무슨 수작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의 장군의 초조함은 자고로 어슷비슷 하리라.
"총사령관님,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야시 장군이 내민 쪽지를 낚아채다시피 잡아쥐고 브라운 제독은 단숨에 내리 읽는다.
"한국 특공대는 비행접시 운행을 위해 일시 우주 편대에서 철수했음. 까닭에 우주 정보는 두절되고 다만 카라코람의 비행접시에서 우주인의 연락 통신을 입수했음.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음. ① 우주인은 4차원 로봇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뜻밖의 사태에 당황하고 있는 듯. ② 지구 원정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금성 기지에 지령을 요청중이나 아직 회답이 없음. ③ 원정을 계속하게EMB00000dbc650c되는 경우 어떤 수작을 부릴 것인지 경계를 요함. 이상."
브라운 제독은 다시 한 번 전문을 뜯어 읽는다. 그리고선 힘없이 전문을 하야시 장군에게 돌려 보낸다.
"난데없이 한국 측이 우주 전쟁의 열쇠를 쥐게 되고 소련군은 곰처럼 우물거리고만 있지 않아. 미군만 전면에서 싸우게 되면 무슨 피해를 입을는지 알 수 없는 전세가 꽤 고약한 편인데 어떡하지?"
제독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기포탄 편대를 출동시키겠어요."
"좋아요. 몇 분 후면 현장에 도착하지?"
"30분이면 넉넉합니다."
하야시 참모장도 이제는 낯에 생기가 돌고 말소리도 또랑또랑해졌다. 그가 일선 사령관에게 명령하는 목소리도 가벼웠다.
카라코람의 미군 사령관은 기포탄 폭격기가 출격한다는 연락을 받자 가슴이 공연히 두근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차원 로봇 등쌀에 애가 말라붙듯 했으나 한국 로봇의 응원으로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번에는 희소식이다. 기포탄 세례로 비행접시들이 옴씰 못하고 생포될 일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아까부터 줄곧 공중에 터뜨리고 있는 조명탄의 불빛은 한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한국의 비행접시도 연락을 받은 듯 멀찍이 치솟아 올라가 버린다. 고원에 깔려 있던 인간 로봇들도 저절로 걷히고 말았다.
붕하며 이윽고 남쪽 하늘에서 쏜살같이 날아들은 제트 폭격기의 편대가 어렴풋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선 조명탄에 덩그랗게 비친 평지를 향하여 수없이 많은 기포탄을 빗발처럼 떨어뜨리며 스쳐간다.
한 개, 두 개, …… 아니 스무 개, 스물 다섯 개, …… 폭탄이라기보다 드럼통 모양의 검은 기포탄은 공중에서 쾅 소리와 함께 차례차례 터지더니 내려앉은 비행접시 위에 실 모양의 커텐을 순식간에 친다. 속도는 좀 더딘 편이었으나 폭포수가 비행접시 편대의 지붕을 덮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실오라기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거품이 되어 부풀면서 땅 위에 등근 지붕을 쳤다. 마치 거미줄 그물로 목표물을 들씌운 것처럼 그 속에 든 생명체는 꼼짝도 못할 지경이다. 특수 플라스틱의 거품은 쉴새없이 움찔거리고 있다.
 
소련군이 선제 공격
 
기포탄으로 완전히 밀폐된 공간. 거기서는 수천 수억의 거품마다가 기체를 흡수하는 바람에 빈틈없는 진공 상태가 빛어지게 마련. 식물도, 동물도, 심지어는 박테리아까지 숨통이 막혀 얼마 후에 죽을 것은 뻔하다.
비행접시 편대가 기포탄 세례를 받은 후 1시간 쯤 지나자 난데없이 로켓포 공격이 시작된다. 미군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작전이었는데 별안간 소련군이 포격을 가하며 쳐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속셈인지 모르나 미군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지금 비행접시 편대는 거품의 돔 속에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전혀 짐작할 길이 없다.
무턱대고 포격을 가하는 것이 올바른 공격법인지 또는 신중히 반응을 보고나서 공세를 취하는 편이 옳은지 판단은 엇갈리고만 셈이다.
미군도 덩달아 사격을 하면서 비행접시 편대가 들어 있는 거품의 장막을 향하여 돌진해 갔다. 싸움터에서는 먼저 선수를 치는 편이 유리하단 말인가.
소련군과 미군이 제나름의 속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고 있을 때, 어렵쇼. 비행접시는 불사조(不死鳥)처럼 후들거리며 일제히 거품의 지붕을 뚫고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는 게 아닌가!
"갓 뎀 !"
미군 사령관은 기가 차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소련군 쪽을 쏘아본다. 서로 연락해서 차근차근 공동 작전을 취했더라면 이처럼 어이없이 적을 놓치지는 안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상군은 훌쩍 떠올라서 소리없이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6대의 비행접시를 향해 대공 포화를 집중시켜 봤으나 행차 뒤의 나팔에 지나지 않았다.
우주인들은 지상군을 얼리는 듯 비웃는 듯 곧추 치솟은 후, 방향을 동쪽으로 잡고 밤하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기포탄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만 사실을 연락받은 아킬레스 본부는 적이 당황했다.
"한국 특공대로 하여금 비행접시를 미행하도록 하라."
브라운 제독은 서슬이 파래지며 긴급 지시를 내렸다.
명령은 성산포 기지를 통해 한국 비행접시에 이내 중계됐다.
"놈들은 카라코람에서 능히 버틸 수도 있었는데, 왜 후퇴하는 걸까? 원정 계획이 바뀐 모양이지."
인공 위성의 속도로 비행접시 편대를 뒤쫓으면서 김 민수 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레이다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킬레스 본부의 통보는 잇따랐다.
"미군과 소련군이 미사일 공격을 개시하겠다. 한국 비행접시는 정확한 진행로를 시시각각으로 통보하도록."
우주인의 비행접시 편대는 그럼에도 유유히 고도 300km를 유지하면서 지구 정찰을 계속하고 있다. 태평양 상공을 지나서 미국을 횡단하여 유럽 지역까지 한눈으로 내려다보는 정찰 비행이다. 한국 특공대는 멀찍이 떨어져서 뒤를 따를 뿐 1대 6의 비율로 공격하는게 도시 무리한 짓이다.
비행접시 편대가 우랄 산맥을 스쳐갈 때, 돌연 소련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땅 위로부터 탄도탄이 여러 개 소리없이 고개를 쳐들고 치솟아 오는 게 아닌가. 우주의 넓은 공간에서는 마치 종달새가 하늘로 치닫는 듯한 인상밖에 주지 않는다.
비행접시 편대도 결코 잠자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허등지등 피하느라고 고도를 급히 올리거나 진로를 바꾸지도 않았다.
비행접시는 저마다 저절로 온 겉면이 보라빛 불빛을 띠며 마치 반딧불처럼 사방 수십 km를 환하게 비쳐 주는게 아닌가.
미사일은 기운차게 치달았으나 반딧불 세력권 내에 돌입하자마자 폭발은 커녕 찍소리도 못한 채 녹아버리는게 아닌가. 이상야릇한 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꼴을 보며 김민수 대장은 속으로 감탄 아니할 수 없었다.
"대단한 문명이다. 물체를 송두리째 녹여버릴 수 있는 광선의 장막을 우리는 아직껏 발명해 내지 못했는데……"
아마도 미사일을 추적하고 있는 레이다망은 미사일이 돌연 없어지는 신기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김 민수 대장은 아킬레스 본부에 통보를 했다.
"비행접시의 보라빛 광선권이 마치 반딧불처럼 형성되어 있어 거기에 다다른 미사일은 오는 족족 녹아 버린다. 무리한 전법을 피하는 게 좋겠다."
물론, 이러한 정보는 이미 지상에서도 분석되었으리라.
그럼에도 비행접시가 미국 상공에 이르렀을 때, 무수한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국 비행접시에서 도청한 우주인들의 작전 비밀은 알쏭달쏭한 것이 많았다. 암호의 일부를 해독하고 있을 뿐이어서.
비행접시 편대는 벌써 지구의 둘레를 등서로 일곱 바퀴, 남북으로 다섯 바퀴나 돌고 있다. 상황은 성산포 기지를 통해 일일이 아킬레스 본부에 보고됐다.
"어쩌자는 거야. 지구에 대한 정찰만으로 일단 철수할 것인지."
"저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정찰을 하는 놈들이 그저 돌아가겠어요. 한바탕 할 작정이 아닐까요?"
김민수 대장의 말을 이 성기가 받아 넘긴다.
"아무래도 수상해. 그러나 덮어놓고 공격하지는 않겠지. 저나름의 무슨 기준이 있을 게 아닌가."
권우경 박사가 뒤를 돌아보며 한 마디 했다.
한국 특공대가 걱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안간 반딧불을 거둔 비행접시 편대는 태평양 상공을 천천히 하강하더니 무수한 물체를 뿌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허겁지겁 레이다 스크린을 들여다봐도 거기에는 흔적조차 비치지 않는다. 김 민수 대장은 곧 성산포 기지에 연락했다. 얼마 후, 성산포 기지의 고일동 사령관이 통보해왔다.
"비누 모양의 단단한 물질이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수없이 떨어졌다. 마치 우박 같다고 한다. 그러나 정체가 무엇인지 당장에는 알 길이 없다."
"비누 모양이라?"
특공대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도 관제가 풀리어 통보된 상황은 어마어마 했다. 비누 모양의 물질을 멋 모르고 줍던 시민들은 그 물질에 손이 찰싹 붙은 채, 온 몸이 그 자리에서 녹아버리고 말았다. 물질과 함께 곤죽이 되어 흐르는 액체는 광물성은 해치지 않았으나, 모든 식물과 동물이 이에 젖거나 닿기만 하면 저절로 스스르 녹아버리는 죽음의 액체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분명히 융해탄이다.
물질의 기운은 상당히 오래 계속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선 뜻밖에도 25만 명 이상이 녹아버리고 식물과 가축까지 휩쓴 죽음의 홍수가 저지대를 향해서 서서히 흐르고 있다지 않는가!
우주인들은 어쩌자고 그런 가공할 물질을 던졌을까?
경고삼아 한 짓일까? 지구를 과연 멸망시킬 속셈의 하나일까?
김 민수 대장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문득 외쳤다.
"이 비행접시 안에도 혹 그 비누 모양의 물질이 숨겨져 있나 찾아 봐라!"
문 지향이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가령 융해탄을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당장에 써 먹을 데가 없지 않아요. 실망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애요."
적이 어른스러운 말투다.
"미스 문은 단순해서 좋아. 당장에 융해탄을 입수할 수만 있다면 한달음에 금성 기지로 쫓아가서 성운인들의 본거지를 폭격할 수도 있지 않겠어. 전쟁이란 서로 견제하는 작전을 쓸 때도 있는 법이야."
 
EMB00000dbc650d융해탄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봐서 공격용 무기는 으례 비행체의 밑바닥 근처에 쌓아두게 마련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샅샅이 뒤져 봐도 비누 모양의 융해탄(融解彈)은 꼴도 볼 수가 없었다.
"역시 놈들은 금성 기지를 떠날 때, 따로 적재하고 왔나 보지. 이 비행접시는 우리가 그 전에 나포하지 않았어. 할 수 없는 노릇이야."
김민수 대장은 어깨를 으쓱 추켜 보이며 별 도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비행접시 안에서는 가벼운 수심이 흘렀다.
박동운이 퉁명스럽게 받아 넘긴다. 김민수 대장은 박동운의 발상이 그럴 듯하다고 느꼈다. 허나 그 비누 무기가 당장엔 없을 뿐더러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빚어지고 있는 대참사를 한 대의 비행접시의 힘으로 막아 낼 길도 없었다.
김민수 대장은 줄곧 안드로메다 성운인의 비행접시 편대를 감시 비행하면서도 그 동안의 중간 보고를 성산포 기지로 보낸다.
저 멀리 반딧불처럼 까물까물 빛나면서 제자리 비행을 하고 있는 비행접시 편대는 태양의 강한 빛을 보라색으로 반사시키는 미국의 태평양 연안을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있는 듯. 아마도 그들이 투하한 비누 무기의 효력을 공중촬영이라도 하고 있는 성 싶었다.
김민수 대장은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이 보라는 듯이 융해탄을 떨어뜨린 것은 분명한 복수라고 느꼈다. 미국이 함부로 미사일 공격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정찰 비행 정도로 스쳐 갔을지도 모른다.
김 대장은 성운인들이 그만큼 신중하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대장님, 회전이 막 들어왔습니다……"
해양학을 전공한 이성기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전문을 내민다. 잠자코 전문을 받아 쥔 김민수는 두 줄째 읽어 내리다가 눈이 휘둥그래진다. 뜻밖의 지시였다.
"아킬레스 본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비행접시 편대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하기로 정했다. 지금 캘리포니아 주 일대의 시민들은 생지옥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다. 비행접시가 또다시 융해탄 세례를 하기 전에 이를 격추하라는 항의로 전 미국이 벌집 쑤셔 놓은 듯 하다. 사상자수는 이미 45만 명을 넘고 있다. 지령을 받은 시각으로부터 15분 후면 지구연합군의 핵공격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국 특공대는 비행접시 편대를 멀리 피하여 감시 임무를 계속하도록. 사령관 고일동."
김민수 대장은 전문의 내용을 지체없이 대원들에게 방송해 주고 나서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창 밖을 다시 한번 내다 보았다.
우주 편대는 여전히 제자리 비행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어서 기수를 지구의 그늘로 돌리자."
"오케이!" 하며, 긴장한 목소리가 우주선의 벽에서 금속성을 머금고 울린다.
한국 특공대는 살며시 현장을 떠나 방향을 바꿨다.
 
핵공격의 위력
 
시간은 어김이 없었다. 조종실의 시계 초침이 정확하게 제자리에 서자, 레이다 스크린에 비친 비행접시 편대의 광점(光點)의 언저리에서 대여섯 발의 핵폭발물이 번쩍 무딘 빛다발을 순식간에 발사시키는 게 아닌가!
수소탄 한 발이면 수백만 명의 목숨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위력이 아니었던가! 그것도 한 발이 아닌 대여섯 발이 동시에 터진 위력이다. 만일 그 광경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였다면 장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익은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오렌지 빛깔도 레이다 스크린을 통해서 보자니 먼 발치에서 성냥불을 몇 개 켜보이는 것만 같았다.
김민수 대장은 그러나 관찰이란 이처럼 객관화되기 때문에 무정한 것일까 하고 감상에 잠길 겨를조차 없었다.
번쩍 타오른 빛다발 속에서 비행접시 편대가 전멸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촉각처럼 대상물을 더듬는 레이다 스크린이 더디어 조바심만 등줄기를 솟구친다.
"실패했어요, 겨우 한 대가 명중해서 불덩이가 되고 말았어요."
권우경 박사가 안경을 고쳐쓰면서 돌아보지도 않은 채 보고한다.
"한 대라니요. 한 대라도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7"
문지향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뭐라구? 끔찍하다구. 융해탄에 말려서 송두리 채 녹아버린 인명은 어떡하구."
이성기가 걸쌈스럽게 대든다. 한국 특공대원들은 잠시 흥분에 휘말려 왈가왈부했으나 비행접시 편대를 감시해야 하는 임무는 결코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편대는 어디로 피했나?"
김민수 대장은 재우쳐 물었다. 나머지 비행접시들이 감쪽같이 레이다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권우경 박사는 이마를 계기반에 비벼대다시피 사방을 더듬어 자취를 찾아 내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다. 김민수 대장은 급한 대로 비행접시 한 대가 핵무기의 밥이 되고만 사실을 성산포 기지에 통보했다. 물론 한라산의 레이더 추적소가 탐지하고 있겠지만.
"저런, 황경(黃經) 135도 선상에 나란히 보입니다!"
권우경 박사가 당황한 소리로 외친다. 졸지에 귀신같이 몸을 피한 비행접시의 성능을 한국 특공대원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솜씨는 여간하지 않다고 김 대장은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킬레스 본부의 통제 아래 놓인 핵기지에서도 제 1 발이 실패한 탓인지 또는 비행접시와 탄도탄의 속도 차를 계산해 본 것인지 두 번째 발사 통보는 아직도 없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 돼 버렸군. 놈들이 또다시 복수할지도 모르겠는 걸."
김민수 대장은 혼잣말로 걱정을 한다.
"융해탄 세례를 다른 도시에도 하면 도시라는 도시는 모조리 폐허가 되고 말겠어요. 막아 낼 도리는 없을까?"
권우경 박사도 기운 빠진 소리로 중얼거린다. 대원들도 한결같이 머리 속에서는 무슨 묘안을 더듬고 있으리라.
저마다의 눈길이 다르다.
"아무래도 성산포 기지로 일단 돌아가야겠어. 붙잡아 놓은 성운인이 있지 않아, 그 놈들한테 물어 보면 뾰족한 수가 있을지 모르지 않아."
"좋은 아이디어올시다. 급히 돌아가야겠죠?"
"아무렴, 그렇지 않고."
김 대장의 방안을 대원들은 대환영이다. 오랜 우주 생활에 갑자기 싫증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리라. 어쨌든 비누 무기의 공격에서 지구를 구해 내려면 적의 비밀을 알아 내야만 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훈령을 구하시오."
김민수 대장은 결단성 있는 목소리로 짤막하게 지시했다.
얼마 후, 성산포 기지에서 돌아온 훈령은 비행접시 편대의 감시 임무를 그대로 계속하라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성운인들은 기지의 전문가들이 심문할 수 있으니 번거롭다는 뜻이었다.
"어렵쇼. 감시 임무야 레이더 망으로 추적할 수도 있지 않아요. 모처럼 뭍에 발을 디디고 싶었는데……."
이성기가 툴툴댄다. 나머지 대원들도 속셈이야 따로 있었겠지만 실망의 빛을 굳이 내색하려 들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직접 심문해 봐야겠어. 그렇지 않고서는 사내로서 성금이 서지 않아."
김 대장은 결코 굽히지 않았다. 다시 사유를 설명하고 한국 특공대는 가까스로 성산포 기지의 귀환 명령을 받아냈다.
 
융해탄의 비밀
 
기지의 드넓은 벌판에는 남서풍이 불고 있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산들바람이다.
"수고했어요. 그런데 핵무기가 그다지도 명중하지 않는 것일까?"
사령관실에서 김민수 대장과 마주 앉은 고일동 소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처음엔 전멸한 줄 알았지요. 비행접시의 움직임이 워낙 감쪽같아서요. 별 도리가 없을 것 같아요."
신통치 못한 말투로 김 대장은 대답할 뿐. 인사치레가 끝나자 김 대장은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을 수용한 별관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넓은 회의실에서는 이미 심문이 시작되고 있는 참이었다. 살갗이 비늘모양으로 꺼칠꺼칠한 외뿔 우주인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심문에 끼어든 김 대장은 그 동안 가꾼 생각대로 협상하기로 했다.
으름장이나 협박으로 그들이 비밀을 토해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더우기 성운인들의 문명 수준은 지구보다 높다. 그들의 눈에는 인류가 야만인처럼 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약속하겠다는 거요. 만일 여러분이 융해탄을 막는 비밀을 알려 준다면 비행접시를 돌려주며 금성 기지로 귀환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하겠오. 지지하게 따지지 않고 결론부터 말한 겁니다."
김민수 대장은 두 눈을 간잔지럼하게 뜨고서 진지한 표정으로 성운인들에게 말을 건넸다.
"‥‥‥‥"
"왜 대답이 없습니까? 못 믿겠다는 거요. 무슨 증거를 제시하면 되겠오?"
"알겠소. 인질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칼은 지구인들이 빼들고 있지 않습니까. 신의만 지켜주면 협상할 수 있는 겁니다."
외뿔 성운인 한 놈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문을 열었다.
김 대장은 솔깃해졌다.
"당신들 지구인은 우리의 원정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본디 당신네들은 생명의 기원(起源)을 찾아서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파헤친 과거를 지니고 있지 않아요. 우리는 지금 그러한 수준을 넘어 물질의 기원을 찾아서 태양계를 답사하러 왔을 따름입니다. 태초에 수소(水素)가 응결하여 폭발함으로써 우주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설에 지나지 않아요. 정말로 그랬는지 증명해야 됩니다. 우리들 안드로메다 사람들은 그래서 물질의 기원을 밝히느라고 은하계를 여러군데 탐험하고 있는 중이오."
외뿔 성운인은 잠깐 말을 멈추고 창 밖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구인들이 우리의 평화적 목적을 이해하고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협상의 열쇠가 달려 있는 거에요. 신의란 결국 상대방의 뜻을 이해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떻습니까? 납득이 갑니까?"
외뿔은 김민수 대장을 적이 얕잡아보는 말투로 타이른다. 김민수 대장은 벌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고 말을 받았다.
"그러한 원정 목적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예요. 당신네들이 먼저 층자선 장치로 북극의 얼음을 녹이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인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해서 싸움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당신네 비행접시 편대는 융해탄을 투하해서 45만 명이 넘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소. 이 일을 어떡하자는 거요!"
김 대장은 이마에 핏대를 올려가며 호통을 쳤다.
"그러니까 협상에 응하겠다는 게 아니오. 분명히 우리와 우리의 비행접시를 석방시켜 준다면 융해탄의 비밀을 공개해 드리겠소. 어떻소? 날짜를 정할 수 있겠소?"
외뿔은 날짜라는 말에 힘을 주며 김 대장의 표정을 살핀다.
"좋습니다. 날자를 정하지요. 오늘로부터 10일 후라면 어떻겠소?"
"약속합니까? 문서로 교환하는 게 좋겠는데……"
외뿔 성운인은 조심스럽게 협상을 진행시킨다. 여간한 솜씨가 아니다.
그리하여 김민수 대장과 성운인 사이에 협상이 성립되어 융해탄을 막아 낼 수 있는 물질은 오직 석회(石灰․탄산칼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급기야 아킬레스 본부로 보고되어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융해탄 소동이 석회를 뿌림으로써 고비를 넘기게 됐다. 흘러 내리는 악마의 액체는 석회분과 결합하자 이내 굳어지고 말았다. 인류는 성운인과의 대결에서 우선 일차적인 승리를 거둔 셈일까?
 
아비타의 기습
 
"웽웽."
한밤중의 성산포 기지에 비상령이 걸렸다. 레이더가 비행접시 편대의 접근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놈들의 술책에 걸렸구나!"
김민수 대장은 대뜸 뉘우침으로 온 몸이 떨리는 것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고일동 사령관이 일러 준대로 감시 임무만 계속 지켰더라면 비행접시 편대에 미행 당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놈들은 한국 특공대의 비행접시를 건드리지 않은 채 그 행방을 넌지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 준비를!"
고일동 사령관은 쏜살같이 내달리며 외친다. 지하 작전실로. 거기에는 핵전쟁에 대비해서 오래 전부터 작전 상황실이 꾸며져 있다.
김민수 대장은 한달음에 비행접시로 뛰어들었다. 벌써 대원들이 비행접시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10초 후면 떠오르려는 참이다. 이 때, 비행접시의 수신 장치가 별안간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분명히 성운인들의 통신 연락이다."
김 대장은 들여다 보면서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자는 거야! 속으로 반발을 느꼈으나 권우경 박사가 통신문을 해독하고 나서 아비타가 사라미사를 부르고 있다고 일러 준다.
"사라미사를? 그 놈은 나하고 협상한 외뿔이 아닌가. 어쩌자는 거야."
김 대장은 혼잣말로 외쳤다.
"불러 오지요. 그 놈만 불러와서 아비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 현명하지 않겠어요?"
권 박사의 말대로 김 대장은 사라미사를 수용소에서 불러들였다.
"아비타로부터 연락이 오고 있다. 무슨 얘기인지 설명해 다오."
김 대장이 공손하게 일러 주자 사라미사는 곧장 수신 장치로 뛰어가더니 금방 얼굴에 생기가 돌지 않는가.
그는 물어보지도 않는데 외쳤다.
"비행접시와 포로들을 무사히 돌려보내 주지 않으면 기지를 융해탄으로 전멸시키겠다고 합니다."
"전멸?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러한 공갈이 안 통한다는 것 쯤은 자네가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통보해 주게. 서로 언약한 일이 있으니까 일단 금성 기지로 철수해 달라고."
"그렇지만 아비타는 총사령관이요. 내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순 없오."
"뭐? 김민수 대장의 이름으로 통고하란 말이야. 이쪽에는 자력총이 있는 사실을 아비타도 알고 있지 않는가?"
사라미사는 멈칫거리더니 아마도 그러한 뜻을 전한 듯.
"금성 기지로 철수할 순 없다고 합니다. 끝까지 말을 안 들을 때는 전 지구에 융해탄 세례를 하겠답니다."
사라미사는 짐짓 웃음을 담으면서 일러준다.
아비타와의 연락이 자신을 준 것은 틀림없는 일.
"전지구를……. 안될 일이지. 융해탄이 무섭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게. 그리고 핵공격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도."
사라미사는 김 대장의 단호한 호령에 적이 당황한 듯 떨리는 말소리로 보고한다.
 
아비타와의 협상
 
난데없이 융해탄이 빗발치듯 하지 않는가!
"망할 자식들! 협상도 채 끝나기 전에 위협하려는 심뽄가."
김민수 대장은 서슬이 새파래져서 온 몸의 기운을 불끈 쥔 주먹 안으로 모아 내흔들었다.
"고 사령관, 핵무기를 써야겠어요.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김민수 대장이 외치는 소리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성산포 기지의 핵무기는 여기저기서 퍼런 불을 내뿜으며 치솟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경고없이 습격해 올 때는 거침없이 맞서야 되는 법.
그러나 김민수 대장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라미사를 보고 호통을 쳤다.
"아비타에게 일러 줘. 아무리 융해탄을 퍼븟는다고 해도 조금도 겁날 건 없다고. 우리의 동해안은 말짱 석회 (탄산칼슘)로 구성돼 있는 만큼 융해탄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게."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오. 설득시키겠습니다."
얼결에 넋이 나갔던 사라미사도 멍했던 정신을 바로잡고 골똘히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우주인들은 핵무기는 결코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인들의 비위를 거슬리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비타만은 성산포 기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에 어두운 듯 융해탄 세례를 계속하고 있다.
고일동 사령관의 빈틈없는 조처로 지상에 떨어진 융해탄이 채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석회가루에 엉기고만 것은 물론이다. 아비타는 그 무엇인지 크게 오산하고 있는 참이었다.
"납득이 갔나 봅니다. 협상을 계속하자는 전갈이요. 어떻게 할까요?"
사라미사는 황급히 김민수에게 보고했다. 그의 거치른 숨소리가 긴박감을 돋아줄 뿐.
"오-케이, 그렇다면 공격을 멈추고 아비타 더러 성산포 기지까지 내려오라고 전하게. 신변은 보장하겠다고."
융해탄 공격이 이윽고 멈췄다. 헛공격에 지나지 않았다. 동시에 한국의 핵공격도 중지되었다.
"어쩌자는 건가?"
고일동 사령관이 비행접시 안으로 들어와서 묻는다.
"아비타 더러 내려와서 협상하자고 일러줬습니다. 아마도 곧 내려올 거요."
김민수 대장은 잘라 말할 뿐, 수신기의 신호는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사라미사의 말대로 과연 아비타가 타고있는 비행접시만이 소리없이 성산포 기지에 앉은 것은 2시간 뒤의 일이었다.
1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비행접시의 계단을 내려오는 아비타는 소년 우주인이 아닌가.
여느 우주인과 마찬가지로 외뿔에 비늘 모양의 거친 살갗을 지니고 있었으나 파란 윤기가 반짝거리는 점이 딴 우주인과는 달랐다. 사라미사는 헤적거리며 급히 아비타 쪽으로 내닫는다. 두 우주인 사이에서 귓속말이 오갔다.
아비타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가 이 기지의 고일동 사령관이오. 어쨌든 반갑소."
"나는 안드로메다의 아비타. 좌표장 소와르의 명령을 받고 동료를 구출하려고 왔오. 어쨌든 귀관을 만나니 반갑소."
소년 아비타의 목소리도 어딘지 드레진 데가 있다.
협상은 회의실에서 시작됐다. 아비타의 옆자리에는 사라미사가 앉고 맞은 편에는 고일동 사령관과 김민수 대장 등이 대어 앉았다.
우주인들은 포로와 비행접시를 고스란히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고일동 사령관은 그러나 비행접시만은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고집했다. 왜냐 하면 사라미사와의 언약이었기 때문. 김 대장도 끼어들어 융해탄의 비밀을 캐낼 때, 어쨌든 우주인들을 석방해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주인 대표와 성산포 기지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사실은 시시각각으로 아킬레스 본부에 통보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당한 희생자의 분통을 생각해서라도 아비타를 생포해 버리라고 독촉이 빗발같다.
소련의 건의인즉 아비타를 사로잡아 놓고 제 2 차 협상대표와 교섭을 벌리는 편이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고일동 사령관은 아비타에게 일부러 미국과 소련의 의견을 알려 주었다. 국제적으로 성운인들이 저지른 행동이 크게 반발을 사고 있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성운인들은 그들대로 금성 기지와 끊임없는 연락을 하곤 했다, 아마도 좌표장 소와르의 훈령이 도착한 듯, 아비타는 쪽지를 훔쳐보는 시늉을 하더니 연설조로 말문을 열었다.
"전에도 연락한 바 있지만 우리의 태양계 원정 목적은 생명의 기원이 아닌 물질의 기원을 탐사하려는 것인 만큼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특공대가 우리 동료들을 납치해 갔기 때문에 부득이 융해탄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더우기 핵공격을 가해서 우리 비행접시 한 대를 송두리째 잿더미로 만든 것도 지구인들이 아닌가. 지구인의 인상은 퍽 호전적인 것 같다. 우리가 대항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좌표장 소와르는 이미 나포된 비행접시 한 대와 지구의 상당한 물질과 교환하기를 원하고 있다. 받아들이겠는가?"
마지막 조건이 시달된 모양 같았다.
"지구의 물질 - 그것은 다른 행성계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원한다면 흔해 빠진 한라산의 돌이나 참죽나무 따위를 주지 못할 정도로 인색치는 않다."
고일동 사령관은 선선히 아비타의 조건을 받아 주었다. 그들은 기념이 될만한 물질을 요구했을 뿐 호전적은 아니었다.
 
불발탄의 오발
 
고일동 사령관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협상을 매듭짓고 우주인들을 날려보냈다. 더 이상 지구 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히 고려했다. 미국이나 소련의 의견에 따르자면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잇따를 것은 뻔하다.
사라미사는 김민수 대장에게 고맙다고 코가 땅에 닿도록 합장을 하고 떠나면서 태양계를 떠날 때까지 서로 교신할 것을 기약했다.
그런데 아비타 일행이 성산포 기지를 떠난지 불과 30분만에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은 금성 기지로 돌아가는 도중에 정원이 초과된 비행접시의 무게를 조정하려고 남아 있는 융해탄을 시베리아와 북극의 얼음판에 버리는 게 실수였다. 우랄 산맥 동쪽에 있는 소련의 비밀 공업 지구에 융해탄이 느닷없이 빗발치자 소련군은 핵무기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비행접시에 타고 있는 사라미사로부터 숨가뿐 문의가 성산포 기지에 들어왔다.
"당신네들이 잘못을 저지른 거요. 어쩌자고 시베리아에 융해탄을 버렸오. 소련은 정식으로 도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오. 탄산칼슘의 비결을 일러주긴 했으나 졸지에 변을 당하여 소련은 홍분하고 있소. 어서 도망가는 편이 상책일 것이오."
김민수 대장은 지체 없이 전후책을 일러 주었다. 우주인들은 시베리아를 그저 허허벌판이라고만 판단한 모양이었다.
EMB00000dbc650e약이 오른 소련의 우주 함대가 비행접시 편대를 추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더우기 우주인의 높은 문명의 이기 - 비행접시 한 대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사실도 얄밉다면 얄밉게도 시샘이 생기는 일이었다.
추격을 받은 우주인들은 층자선(層紫線)총으로 저항하면서 상투적인 4차원 로봇를 소련 함대 속에 투입하고 있는 모양.
우주 공간에서 솔개와 독수리의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동안 지상에서는 또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면 엎드려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대로 소련이 발사한 핵무기 중 두 발이 하늘에서 불발된 채 미국의 시카고 근처에 떨어져 폭발해 버린 다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시카고 인구의 태반이 핵폭발로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국은 졸지에 뒤집히고 말았다.
"소련은 우주인과 짜고 미국을 공격해왔다. 시카고 시민의 반이 희생된 이 마당에 우리가 좌시할 수 있겠는가! 미국 군부는 뭘하고 있는가!"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직결하는 텔렉스가 아무리 사태의 진상을 주고 받아도 술렁대는 여론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정부는 이미 설득력을 잃고 만 것이다. 미국의 침착한 신문들은 국민들이 냉정하기를 바라는 사설을 쓰고 계몽에 안간힘을 기울였으나 선정적인 텔레비전 해설자들은 시카고의 생생한 참경을 스크린에 보도하여 민심에 마구 불질러 놓을 뿐이었다.
미국의 올리버 대통령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상 부득이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언론을 통제하기로 했으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는 딱한 입장에 몰리고 말았다.
"비록 오발탄이 터졌다고 변명할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3백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국민의 총의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부득이 소련에 대한 상당한 보복을 아니할 수 없다."
올리버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국민에게 입장을 밝히고 시베리아에 대한 핵공격을 군에게 지시하고 말았다.
소련은 소련대로 졸지에 미국과 전쟁을 해야되는 궁지에 몰렸으나 올리버 대통령의 딱한 입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텔렉스가 사전에 통보한 한정된 구역에 대한 핵무기 공격이 자칫 벗어나기만 하면 전면 전쟁으로 옮길 비상령을 전국에 내렸다.
미국의 핵공격은 우랄 동쪽의 융해탄 세례를 받은 공업지구에만 한정되었으나 이번에는 소련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정부가 일부 시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이 중앙 위원회에서 날카롭게 벌어졌다.
그러나 언론 통제를 전통화 해온 소련으로서는 진상을 전국민에게 알리지 않고서 사태를 수습하기엔 편리했다.
이 무렵 금성 기지의 좌표장 소와르는 지구 위에서 벌어진 전투를 이용해 보려고 이모저모로 생각에 잠겨 있다.
"김민수 대장, 당신네 지구인들이 얼마나 호전적이며 바꿔 말하자면 얼마나 야만스럽다는 것이 지금 입증되고 있EMB00000dbc650f지 않습니까.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은 서로 헐뜯고 살려는 생명의 더러운 일면을 말살시키는 새로운 무기를 투입할 수도 있소. 그것은 다름아닌 박테리아 무기요. 안드로메다의 특수 박테리아를 뿌리면 사람은 물론 무쇠까지도 좀먹히고 마는 지구 전멸의 순간이 시작되오. 지금 우리 좌표장은 태양계에서 생물을 없애 버리느냐 또는 그대로 얼마간 진화하는 더딘 길을 남겨 주느냐 하는 판단을 서두르고 있소. 김민수 대장, 미국과 소련에 어서 이 소식을 전하시오."
사라미사의 전갈이다. 한동안 포로였지만 그래도 한국군과의 인연을 맺고 이해하게 된 성운인은 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우선 일러 준 것이다.
고일동 사령관의 이름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의 동정이 급히 아킬레스 본부와 소련의 우랄 작전 본부에 통보 되었다.
"전투를 중지해야 되겠어. 보복이란 얼토당토 않은 관념이야. 도대체 핵무기를 만들어 놓은 게 재앙을 자초한 것이 아니겠는가. 안 그래요?"
브라운 제독은 평소의 호전적인 군인과는 딴판으로 전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서 올리버 대통령에게 건의하시죠."
하야시 소장이 재우친다.
고일동 사령관의 전갈이 성금이 서서 미국과 소련은 다섯 시간이 채 못되어 휴전을 선포하고 말았다.
동시에 아킬레스 본부는 전지구인에게 성운인들의 박테리아 공격에 대비하도록 호소했다.
지구가 우주인에 의해 전멸하느냐 인류가 스스로 할퀴고 헐뜯어 자멸하느냐 하는 갈림길이 금성에 도사린 소와르 좌표장의 판단 하나로 결정된다는 것은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니었다 .
그러나 만일 김민수 대장과 사라미사와 같은 완충의 연락로가 없었더라면 4차원 전쟁으로 지구와 인류는 전멸했을는지도 모른다. 지구와 인류가 위험한 고비에 다다르고 있었다는 일련의 경위는 휠씬 후에 전모가 밝혀졌다.
"그럼 그렇지. 바닷물이 불어났을 때부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우주인들의 수작이었군 그래."
충무의 갓바위에서 이날도 시울을 드리우고 낚시를 하는 장홍팔 노인은 꿈인지 생시인지 자기가 전인류를 건져준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히죽 웃어 보았다.
 
<끝>
 
■ S.F 단편
 
※ 우주 여행기
※ 미쳐버린 마차
※ 의식 교환기
EMB00000dbc6510
 
 
미쳐버린 마차
 
"이것은 콜레라 균(菌)의 표본입니다. 누구나 다 무서워하는 콜레라의 바이러스입니다."
세균학자(細菌學者)는 현미경 밑으로 슬라이드 글라스를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나이는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분명 이런 일에는 익숙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횐 손으로 다른 한 쪽 눈을 가리면서
"잘 보이지 않는데."
"그 조준 장치를 돌려보시오. 아마 렌즈의 촛점이 당신의 눈에 맞지 않고 있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시력은 제가끔 다르니까요. 그 조준 장치를 이쪽이나 저쪽으로 조금씩 돌려보면 됩니다."
세균학자가 가르쳐 주었다.
"아, 이제 보입니다!" 하고 방문객은 말했다.
"그런데 대단한 것은 아니군요. 조그만 줄기가 있고 핑크색의 덩어리 같은 부분도 있군요. 이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물건, 원자처럼 작은 이 하잘 것 없는 것이 그렇게도 번식력이 강해서 이 도시의 모든 인간을 전멸시킬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얘기야!"
그는 일어나서 글라스 판을 현미경에서 꺼내어 창가로 가서 보였다.
"이렇게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고 그 표본EMB00000dbc6511을 아무 말없이 여러 가지 각도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이건 아직 살아 있는 것입니까? 지금도 위험한 물건 입니까?" 하고 물었다.
세균학자가 설명을 했다.
"아닙니다. 죽은 것입니다. 지금도 염색이 돼 있읍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콜레라 균을 모조리 죽여 염색해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창백한 얼굴의 사나이는 엷은 미소를 띠우며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무서운 것을 옆에 놓고도 용케 태연할 수 있군요. 아직 살아 있고 활동할 수 있는 표본을……."
그러나 세균학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여기에……"
그는 말을 중단하고 방을 가로질러 저쪽 구석에 놓인 몇개의 시험관 중에서 하나를 들고 돌아와서
"이것이 살아 있는 놈입니다. 살아 있는 병원균(病源菌)을 이렇게 해서 배양하고 있는데……"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건 콜레라 균의 통조림 같은 것입니다."
그 때, 방문객인 창백한 사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빛이 잠시 번득였다.
"이런 것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군요." 했다. 그리고 그는 탐스러운 듯이 그 조그만 시험관을 들여다 보았다.
세균학자는 방문객의 표정에 나타난 병적인 기쁨을 읽었다. 그날 오후 옛 친구의 소개장을 가지고 처음으로 찾아온 사내이기는 하지만 그들 학자들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검은 머리와 짙은 녹색의 눈, 야윈 표정에 신경질적인 동작, 제멋대로인 점도 있지만 일단 관심을 표시하자 상당히 날카로운 데가 있다. 보통 세균학자들이 교제하고 있는 과학자 클럽의 모든 사람들의 점액적(粘液的) 인신중성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더구나 그가 연구 과제로 하고 있는 인명에 위험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세균류의 문제에 이렇게까지 깊은 감명을 표시하는 것을 듣고는 그 얘기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균학자는 어색한 몸짓으로 시험관을 받아들자,
"그렇습니다. 여기 고약한 병균이 가득히 갇혀 있습니다. 이 조그만 시험관을 부숴 구도의 수원지에 던졌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이 미소한 존재, 염색을 해서 현미경의 기능을 빌리지 않으면 볼 수도 없는, 냄새도 없고 맛도 없는 이 미세한 바이러스에게 '가라. 그리고 번식하라. 수원지의 저수지에 가득 번져라'하고 말만 하면 죽음은 무섭고, 고통스럽고, 오욕이 넘치는 이 도시에 가득 퍼지고 사방에서 무수한 희생자가 나타나겠지요. 그것은 아내의 손에서 남편을, 어머니의 손에서 아이들을 빼앗았습니다. 정치가를 그 정부(政務)로부터, 가난뱅이를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상수도의 관을 통해서 골고루 퍼져 물을 끓여 먹지 않는 가정을 골라 벌을 줍니다. 미네랄 워터 제조소에 침입하여 샐러드 속에 흘러 들어가고, 때로는 물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기도 합니다. 물통 속에서 말이 목을 들이밀 때를 기다리기도 하며 부주의한 아이들이 공중 수도 꼭지에 입을 대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일단 땅 속에 스며들면 지하수 줄기를 따라 무수한 우물이나 약수터 같은 곳에 다시 얼굴을 내밉니다. 이 시험관을 한 번 수원지(水源池)에 던지기만 하면 이 도시의 전 인구를 멸망시켜 버릴 수도 있겠지요."
세균학자도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말을 그쳤다. 그는 언제나 자기 말에 열중하는 것이 결점이라는 비난을 종종 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안에 갇혀 있는 이상 안전합니다. 절대로 안전합니다."
창백한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기침을 한 번 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면 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란 놈들은 악당들이면서 무척 어리석군요. 천치들이 아닙니까? 이렇게 유효한 물건이 있는데 폭탄 같은 걸 가지고 사람을 죽이니 말입니다."
그 때,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톱 끝으로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의 소리였다.
세균학자가 가서 문을 열자
"당신 잠깐만 오세요." 하고 그의 아내가 속삭였다.
아내와의 용건을 마치고 세균학자가 연구실에 돌아와보니 창백한 그 방문객은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런, 정신 없이 얘기를 듣고 있었군. 한 시간이나 선생님 시간을 빼앗았군요. 네 시 십이 분이나 됐습니다. 세시 반에는 물러갈 예정이었는데, 너무 얘기가 재미있어서…… 아니 어쨌든 이 이상 선생님 시간을 뺏으면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네 시에 약속도 있었구요."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인사를 하며 그 방을 나갔다.
세균학자는 문밖까지 나가 전송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복도를 통해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는 그 방문객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병적인 면이 있는 사나이야." 하고 세균학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병원균의 배양물(培養物)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의 그 기쁜 표정! 그것은 단순한 표정이 아니야."
순간 그는 무서운 상상에 사로잡혀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황한 그는 증기통 옆에 있는 시험대를 돌아보고 또 급히 책상을 바라보았다. 계속하여 어쩔줄 모르고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고 나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홀의 테이블 위에 놓았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홀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네, 왜 그러시죠?"
아내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 당신하고 얘기할 때, 내 손에 뭘 쥐고 있지 않았었나?"
잠시 후에 아내의 대답이 들렸다.
"아니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셨어요. 내가 분명히 보았어요."
"이걸 어쩌나!"
세균학자는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집 앞의 계단을 뛰어내리자 거리로 나섰다.
아내는 현관문이 난폭한 소리를 내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놀라 창가로 다가섰다. 바깥 길 저쪽에서 비쩍 마른 사나이가 마차를 타고 있었다. 남편인 세균학자는 모자도 쓰지 않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쫓아가고 있었다.
두 팔을 크게 흔들며 마차를 향해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쪽 슬리퍼가 벗어졌지만 그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이가 정신이 돌았나 봐!" 하고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모두 저이가 하는 무서운 학문 탓이야."
그리고 그녀는 창문을 열고 남편을 불러 들이려 했다.
그 때, 수척한 사나이도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의 아내처럼 세균학자가 돌았다고 생각되었는지 당황하여 세균학자 쪽을 손가락질하면서 마부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마부는 채찍을 흔들었다. 잠시 후 마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뒤쫓는 세균학자를 남겨두고 길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버렸다.
세균학자의 아내는 잠시 동안 창가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안으로 몸을 돌이켰다. 그녀는 넋이 나가 있었다.
"본래 좀 이상한 데가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하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쓰 바람에다 양말발로 거리를 뛰어다니시다니!"
그러나 잠시 후 좋은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급히 모자를 쓰고 구두를 들고 홀로 뛰어 갔다.
벽에 걸린 남편의 모자와 오바를 벗겨 들자 현관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다행히 마차가 한 대 천천히 뛰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세웠다.
"이 거리를 곧장 가 주세요. 샤쓰 바람에 모자도 쓰지 않은 신사가 양말발로 뛰어가고 있을테니 그 분을 좀 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채찍을 흔들었다. 이런 주문은 흔히 당하는 것이라는 듯이.
얼마 후, 마차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모여 있던 한가로운 마부들은 갑자기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다 보았다. 밤색 털의 늙은 말에 채찍을 가하며 마차 한대가 굉장한 속력으로 그들 옆을 지나갔다.
그 마차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있다. 잠시 후 그 마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사 정신을 차린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저게 하리 힉스란 녀석 아냐. 왜 저렇게 미친듯이 마차를 몰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 중에서 떠벌이 아저씨라고 불리우는 건장한 사나이였다.
"역시 늙었어로 채찍을 흔드는 솜씨가 대단해."
감탄한 것은 견습을 하는 어린 마부였다.
"어!"
그 때, 한 마부가 소리쳤다.
"또 한 대가 오는데. 이것도 미친 놈처럼 몰고 있어 무서운 속력인데……"
"저건 조지 녀석인데."
떠벌이 아저치가 말했다.
"정말 미친 놈처럼 무서운 속력을 내고 있구나. 어쩌면 먼저 지나간 마차를 쫓아 가겠는데."
마부들은 활기가 돌았다. 제가끔 뭐라고 떠들고 있다.
"잘 해라. 조지!"
"경쟁이구나!"
"곧 따라갈 수 있겠어!"
"좀 더 빨리 몰아라!"
"저 암말은 무척 빠른데!"
이렇게 말한 것은 견습을 하는 어린 마부였다.
"정말 그렇구나!"
떠벌이 아저씨도 소리치고 있다.
"나도 한 번 따라가 볼까. 어 저것 봐! 또 한 대가 더 있구나.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인데. 오늘은 이 거리의 마차가 모조리 미쳐버린 모양이구나!"
"이번 마차에 탄 손님은 여자다."
하고 견습의 어린 마부가 말했다.
"여자가 남자를 쫓아가고 있는 거야. 이건 거꾸론데."
이것은 떠벌이 아저씨의 말이었다.
"저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뭐지?"
"모자 같은데."
"재미 있는 일이다! 어느 쪽이 이기는가, 아마 조지 할아버지가 이길 거야."
견습하는 꼬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럼 이 뒤는 누가 달려올까?"
마부들의 박수갈채가 떠들썩한 거리를 세균학자의 아내가 탄 마차가 달려갔다. 기분이 나쁘지만 그녀는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버스톡크 힐거리를 내려가서 킴넬 타운 하이 스트리트를 향해 달렸다. 그 동안 그녀는 앞에 달리는 마차의 마부의 어깨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앞의 마차의 마부는 그대로 열심히 말에 채찍을 가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남편을 그녀로부터 점점 멀리 태워가는 것이었다.
맨 앞 마차 속에서는 조금 전의 사내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팔장을 꼭 끼고 있었지만 손에는 시험관을 잔뜩 움켜쥐고 있다. 이 조그만 시험관 속에는 무한히 퍼질 가능성이 있는 파괴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기분은 공포와 환희가 기묘하게 뒤섞인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체포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일인가를 생각할 때 막연하기는 하지만 커다란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희는 불안을 휠씬 능가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어떤 무정부주의자도 이와같은 명안(名案)에 생각이 미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명성을 부러워하고 있던 유명한 무정부주의자들은 이제 그의 옆에 서면 모두가 희미한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수돗물을 배급하는 수원지에 들어가서 이 조그만 시험관을 그 곳 물 탱크 속에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흘륭한 명안을 생각해 낸 것인가! 소개장을 위조하여 연구실에 들어가서 얼마나 완벽하게 찬스를 잡은 것인가!
얼마 안가서 전세계에 나의 공적이 떠들석하게 퍼질 것이 아닌가. 지금껏 나를 냉소하고, 괄시하고, 그리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앞세웠으며, 또 나와 함께 앉는 일 조차도 마땅치 않게 생각했던 녀석들도 싫어도 내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 죽음, 죽음!
세상 녀석들은 언제나 나를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전세계의 인간들이 나를 잡아 누르기 위해서 공모하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이제야말로 그녀석들에게 인간을 한 마리씩 고립시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착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눈에 익은 길 같은데 도대체 어디일까? 그렇다. 그레이트 세인트 앤드류 스트리트임에 틀림없다. 무척 많이 달려왔구나. 마차비는 얼마나 달라고 할까?
그는 목을 길게 빼고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세균학자의 마차는 50야드 이상 떨어지지 않고 쫓아온다. 이 녀석은 좀 서투르군. 잘못하면 내가 탄 마차는 잡히고 나는 체포될런지도 모르겠는데. 그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냈다. 그것을 좌석 천정 창문으로 마부의 코 밑에 내밀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더 줄 수도 있어. 잡히지만 않게 달려주면 말이야."
마부는 즉시 돈을 받아 갔다.
"걱정 마세요."
라고 대답하면서 천정 창문을 닫았다. 채찍이 땀에 젖은 말의 옆구리에서 빛났다. 순간,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창백한 사나이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다 시험관을 잔뜩 움켜 쥔 손이 마차의 벽에 부딪혔다. 유리 기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깨진 조각이 마차 바닥에 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소리를 냈다. 그는 당황하여 정신없이 사방을 휘둘러 보다가 앞문 위쪽에 묻은 두세 방울의 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떨렸다.
"이거 큰일 났는데. 잘못하다가는 내가 첫번째 희생자가 되겠는걸. 이제 다 틀렸다! 그러나 나라는 사나이는 어차피 순교자로 태어난 것이다. 그것도 훌륭한 순교자로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건 너무 처량한 죽음인데. 얘기로 들은 것처럼 괴로운 것인가?"
잠시 후, 그는 생각이 하나 떠올라 발치를 살폈다. 떨어진 조각에는 아직 조그만 물방울이 남아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마셔 버렸다. 이것을 마셔 놓으면 죽음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고 있는 동안 그에게는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세균학자의 추적을 무서워하며 도망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웰링톤 스트리트에서 그는 마부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발이 발판에서 미끌어졌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콜레라 균의 독은 이렇게 빠르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일까?
그는 마부에게 손짓을 하였다. 부지런히 물러가 버리라는 듯한 몸짓을 하고 그 뒤 팔짱을 끼고 길 위에 우뚝선 채, 세균학자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그런 자세에는 어딘지 비장한 데가 있었다. 다가온 죽음의 의식이 그에게 어떤 위엄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고 서서 대담한 웃음을 띠고 추적해 오는 세균학자의 도착을 기다렸다.
"무정부주의 만세! 자네 좀 늦게 왔어. 나는 그걸 마셔버렸단 말이야. 콜레라균은 내 몸 속에서 활동을 시작했어."
세균학자는 마차 속에서 안경 너머로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마셨다고? 그리고 당신이 무정부주의자라고? 역시 그렇구나. 이제 알았다."
그리고 세균학자는 무슨 말을 더 하려 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릴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러자 무정부주의자는 이별을 고하는 극적인 몸짓을 남기고 으쓱대는 걸음거리로 워털루 다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독이 침입한 자기 몸이 행인들의 몸에 부딪치도록 일부러 휘적거리면서……
세균학자는 그의 뒷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갑자기 모자와 신발 등을 가지고 그의 옆에 나타났어도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가지고 왔군, 미안해."
그는 이렇게 말했을 뿐, 이제 멀리 사라져 가는 무정부주의자의 모습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 먼저 마차를 타고 가요."
그는 역시 시선을 무정부주의자 쪽으로 돌린 채 아내에게 말했다.
그의 아내는 아내대로 이런 자기 남편이야말로 정신이 돌았다고 믿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마부에게 남편과 함께 집에까지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마차가 오던 방향으로 돌아섰다. 당당한 몸짓으로 걸어가는 무정부주의자의 검은 그림자는 (그것은 이미 멀어져 조그만 점으로 보였지만) 세균학자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세균학자는 그의 아내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신을 신으라고 했지? 당신 말대로 신어야지."
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세균학자는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건 사실 중대한 일인데……"
그리고 계속하여
"알고 있지. 저 사내는 나를 만나려고 우리 집에 왔지만 사실은 무정부주의자였어. 여보 왜 이래? 나를 찾아왔던 사람이 무정부주의자라고 해서 그렇게 새파랗게 질릴 건 없잖아! 그렇게 마음이 약하면 알맹이가 되는 그 뒷이야기는 못 하겠는걸…… 어쨌든 나는 아까 저 사나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 물론 무정부주의잔지 뭔지는 모르고 말이야. 그래서 당신한테도 말해서 알EMB00000dbc6512고 있는 그 박테리아의 새로운 배양물(培養物)말이야. 여러 가지 원숭이의 피부에 푸른 반점(班點) 만드는 그것을 아세아성(性) 콜레라 균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거야. 그러자 그 사나이는 그것을 가지고 도망쳐 버렸어. 런던시의 수원지에 그걸 풀어버리기 위해서야. 그 녀석이 하려는 일이 성공했으면 이 문명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새파랗게 변색(變色) 되었을런지도 모르지. 그런데 녀석은 그것을 자기가 마셔 버렸단 말이야. 그 녀석이 그걸 마셔 버렸으니 앞으로 녀석의 몸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런지는 나도 정확한 짐작이 안가지만 당신도 알고 있듯이 그 박테리아의 실험으로 우리 집의 어린 고양이를 푸른 색깔로, 그리고 세 마리의 강아지를 푸른 색깔로 만들었잖나 말이야. 강아지의 경우는 푸른 반점(班點)이 되었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망아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푸른 말이 되었잖아…… 그 녀석에게는 안됐지만…… 그러나 저러나 나도 손해를 단단히 보았는 걸. 그 박테리아를 다시 배양해야 하게 됐으니 말이야. 시일과 비용이 또 들게 됐어. 어처구니 없이……"세균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마차의 뒷문으로 무정부주의자가 간 워터루 다리 쪽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마차는 올 때와는 달리 보통으로 천천히 세균학자 부부를 태우고 달려갔다.
<끝>
 
의식 교환기
 
이상한 소리
 
"마키타, 들리나, 마키타!"
그는 깜짝 놀라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누군가 부르고 있다.
여기는 대도시 뉴욕의 한 구석, 어떤 낡은 아파트의 한 방이다.
"마키타! 들리면 대답을 해 주시오!"
그는 움찔했다. 머리 속에서 들리는 것이다.
'나, 나는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
"아닙니다! 내가 당신의 마음에 대고 부르고 있는 거요!"
"누구요, 다, 당신은?"
그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소리를 내서 말할 필요는 없소. 생각하기만 하면 되오 - 나는 더어스 아룬. 20만 년 후의 중앙 은하 제국(中央銀河帝國)의 인간이요."
마키타는 멍해졌다……
"20만 년 후의 미래? 무슨 소리요? 그런 세계가 있을게 뭐요.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여 어떻게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소. 물질은 시간EMB00000dbc6513을 초월할 수 없소. 하지만 사고(思考)는 물질이 아니오.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하여 얘기할 수 있는 거요. 기계의 힘을 빌리면……"
"과연 그럴 듯하군. 그런데 내게 무슨 용무요?"
"난 고고학자(考古學者)요. 지금 여러 가지 과거의 일을 조사하고 있는데, 꼭 한 번 과거를 이 눈으로 보고 싶소.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이 있소. 나하고 당신하고 일시적으로 몸을 교환해 보지 않겠소? 즉 내 마음은 당신의 몸에 들어가고, 당신의 마음은 내 몸에……"
"뭐, 뭐라고? 농담 마시오. 그런 미친 짓을……"
"조금도 위험할 것 없는 거요. 나하고 여기 있는 벨쿠엔이 공동으로 발명한 의식 교환기(意識交換機)는 절대 안전한 보증이 붙어 있소."
"그,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시오. 마키타, 이렇게 좋은 찬스는 다시 없을 거요. 당신은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를 직접 볼 수 있는 거요. 인류는 지금 바야흐로 전 은하계 (銀河系)에 퍼져 수많은 나라를 세우고 있오. 우리 중앙 은하 제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국가요."
마키타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런 세계가 있다면 가보아도 좋을 것 같다. 가령 무슨 착오가 있더라도 이야기꺼리 쯤은 되리라…….
"좋소, 해 봅시다!"
"고맙소. 그럼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 시작합시다.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뭐요?"
"이 실험이 탄로나면, 곤란한 일이 일어나오. 그러니까, 이 비밀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해 주시오."
"알았소. 약속하리다."
"그럼 마음을 편히 갖고, 잡념(雜念)을 쫓아 버리시오. 알겠소? 그럼 스위치를 넣겠소!"
갑자기 마키타는 머리 속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침을 느꼈다. 날카로운 금속성(金屬聲)이 높아졌다.
다음 순간, 그의 의식은 깊은 암흑 속으로 끝없이 말려 들어갔다.
 
20 후의 미래 세계로
 
문득 의식이 되돌아왔다.
눈을 뜨자, 복잡한 기계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실험실인 듯한 방의 중앙에 놓인 침대 같은 것에 그는 누워 있었다.
"정신이 들었군. 실험은 대성공이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내가 벨 쿠엔. 더어스의 선생이야. 자, 일어나서 자네 몸을 보게."
마키타는 깜짝 놀랐다. 둥글둥글하고 굳건했던 원래의 몸은 날씬하게 마른 몸으로 변하고, 아주 부드럽고 몸에 착 붙는 옷과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손발은 마치 자기의 것처럼 움직였다. 그는 희한한 듯이 실내를 둘러보고, 복잡한 기계를 가리켰다.
"이게 그…… 의식 교환기입니까?"
"맞았어. 나와 더어스의 공동 발명품이지."
늙은 과학자는 그 장치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이 실험은 아직 아무도 모르네. 앗바스까지도."
"앗바스라니, 그게 누구입니까?"
"중앙 은하 제국의 통치자인 임금이야. 그런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지. 그게 더어스야!"
"네? 그럼 내가 들어가 있는 이 몸은 왕자인가요?"
"맞았어. 헌데, 더어스는 과학자야. 정치엔 전혀 흥미가 없단 말야."
마키타는 가슴이 뛰었다.
"어떤 세상인지 빨리 보고 싶군요."
"아, 아직 멀었어. 여기는 중앙 은하 제국의 끝에 있는 별인 하발라야의 산 속이야. 수도성(首都星)인 스룬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린단 말야. 그 전에 남이 수상히 여기지 않을 만큼의 지식을 알아 둬야겠어."
벨 쿠엔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도어를 걷어차며, 시커먼 옷을 입은 사나이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꽈당탕 뛰어 들어 왔다.
"네, 네놈들은, 암흑 성운 연맹 (暗黑星雲聯盟)의……"
벨 쿠엔은 낯빛이 달라져 밖으로 달아났다, 그리고는 어디다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 때, 한 사나이의 무기에서 붉은 섬광이 뻗쳐 나갔다.
휘르르르! 리드미컬한 소리를 내며, 열선(熱線)은 벨쿠엔의 가슴을 꿰뚫었다. 노인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털씩 쓰러졌다.
"무, 무슨 짓이냐!"
마키타는 감연히 사나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더어스 왕자, 쓸데 없는 반항은 그만 두시죠."
사나이들은 열선총을 그에게 정확히 겨냥하고 둘레를 에워쌌다.
"우리는 암흑 성운 연맹의 인간들입니다. 당신은 쇼르․칸 장관(長官)한테로 모셔 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싫다면?"
"억지로라도 모셔 갈 뿐이죠."
무엇인지 잘은 알 순 없지만, 이 암흑 성운 연맹인가 하는 녀석들은 앗바스를 유괴(誘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중앙 은하 제국과는 적대 관계(敵對關係)에 있는 모양이다.
"그, 그렇지만 난 더어스가……"
그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진짜 더어스와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약속을 어길 수 없다.
그는 재촉을 받고 비밀 연구소의 뒤쪽 산봉우리에 에워싸인 우주선 발착장(發着場)에 나왔다.
그 때, 문득 머리 위에서 폭음이 들려 왔다. 푸른 하늘에 반짝 세 개의 흰 점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왔다. 은빛 우주선이다!
"앗, 제국의 패트롤 정(艇)에게 발견당했다!"
땅 위에 내려와 있던 암흑 연맹의 검은 우주선이 쾅!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
그 폭풍에 휩쓸려 쓰러졌던 마키타가 다시 의식을 찾았을 때는,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미소녀 리안나
 
"이 중대한 시기에 또 쓸데없는 연구에 빠져 있었단 말이냐? 국민에 대한 의무를 잊진 않았겠지!"
국왕 앗바스는 불쾌한 표정으로 마키타를 맞이했다.
여기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항성(恒星) 카노오브스를 에워싸고 도는 행성(行星) 스루운이 중앙 은하 제국의 수도성(首都星)이다.
마키타는 우주 패트롤 정에 구조되어 초광속(超光速)으로 날아 사흘만에 이 스루운에 도착한 것이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놀라운 사실들이었으나, 그는 그 놀라움을 끝까지 숨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행히 아무도 아직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지금의 그는 한시라도 빨리, 원래의 자기 몸으로 20세기로 돌아가고 싶었다.
"폐하(陛下), 그렇게 너무 화를 내시지 마십시오."
뚱뚱한 몸집에 훈장을 잔뜩 늘어뜨린 우주군 총사령관 코르브로가 옆에서 달랬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더어스를 빼앗기고 '파멸(破滅) 머신'의 비밀을 쇼르 칸에게 탐지 당할 뻔했단 말이야."
''파멸 머신'이란 무슨 소리일까?'
그러나 마키타는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더어스라면 알고 있는 것인 모양이다.
"게다가 리안나의 일도 있다. 포말하우트 왕국(王國)과 손을 잡지 못하면 은하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은하(銀河) 정복을 꾀하는 암흑 연맹(暗黑聯盟)이 바라는 대로된단 말야."
'리안나?'
아직도 마키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때였다.
"더어스 왕자님, 안녕하세요?"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날씬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마키타는 빨려 들어가듯이 그 눈을 지켜보았다.
앗바스의 얼굴이 환하게 풀어졌다.
"오, 리안나!"
'아, 그렇구나. 리안나란 이 여자를 말하는 것이었구나. 혹시 더어스의 아내인지도……."
"뜰이라도 산보하시지 않겠어요?"
그가 너무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리안나는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나무 인형처럼 잠자코 뒤를 따랐다.
"리안나, 당신은 정말 아름답군."
"어마, 더어스, 말씀이 느셨네요. 요전에는 그렇게 냉정하시더니……. 오늘밤의 당신은 마치 다른 사람같이 상냥하군요."
"아, 그야 당연하지 않아. 부부 사이니까."
리안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마,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이제 막 약혼한 사이인데……. 그것도 당신은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정략 결혼(政略結婚)인 걸요."
마키타는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아, 미안해. 난 정신이 좀 어떻게 된 모양이야. 그렇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니 그건 거짓말이야. 난 당신이…… 좋아!"
그녀는 깜짝 놀란 듯이 그를 지켜보았다.
마키타는 그 이상 질문을 받지 않도록 리안나를 끌어안고 빨갛게 물든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스파이 혐의
 
두 사람이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왕궁(王宮) 안이 소란해졌다.
"더어스 왕자님! 폐하의 명령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스파이 혐의입니다!"
"뭐, 뭐라고!"
마키타는 뭐가 뭔지 멍해졌다. 리안나가 그를 감싸듯하며 소리쳤다.
"더어스가 스파이라니, 그런……"
"리안나, 안됐지만 증거가 있으니 할 수가 없구나!"
앗바스가 침통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손에 얄팍하고 조그만 금속판(金屬板)을 들고 있다.
"이 통신판이 증거다! 조금 전 더어스의 방에 숨어들어 가려던 수상한 사나이를 사살(射殺)했더니, 이걸 가지고 있었단 말야."
그는 마키타를 노려보았다.
"아, 하필이면 내 아들이 배반자라니! 자, 잘 들어봐라, 이걸 해독기(解得器)에 걸 테니까……."
널찍한 방으로 끌려 간 마키타 앞에서 그 금속판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조그만 기계에 끼워졌다.
문득 목쉰 소리가 나왔다.
"쇼르 칸으로부터 더어스 왕자에게! 유괴(誘拐)로 가장하여 당신을 암흑 성운(暗黑星雲)으로 초대하는 작전은 불행히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곧 다음 수단을 강구했으니까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암흑 성운은 한시라도 빨리 당신으로부터 『파멸 머신』의 비밀을 들어 서로 힘을 합쳐서 은하계 정복을 달성할 날이 오길 고대하겠습니다. 그러면 부디 이상한 혐의를 받는 행동은 삼가도록 해 주십시오……."
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마키타는 외쳤다.
"거, 거짓말이다! 그건 모략(謀略)입니다!"
"닥쳐라!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변명이냐, 이 비열한 놈아! 네 처벌은 추후 결정한다. 위병(衛兵), 더어스를 옥에 가둬라!"
앗바스는 고인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뒤로 돌아섰다.
위병에게 끌려가는 마키타를 코르브로 총사령관과 리안나가 새파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밤,
죽은 듯한 고요.
마키타는 어두운 지하 감옥 속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차라리 약속을 어기고 진상을 모조리 자백해 버릴까? 그러면……. 아니다. 이제 그런다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살 것이다.'
그 때, 문득 쇠문의 자물쇠가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검은 그림자 둘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더어스, 말할 게 있어요……"
"리안나! 어떻게 여길?"
"이 코르브로 총 사령관이 당신을 살려 주신대요."
"뭐라고?"
총 사령관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왕자님의 결백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폐하는 몹시 노하고 계십니다. 잘못했다 간 내일에라도 왕자님을 배반자로서 처형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당장은 우선 이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왕자님의 결백은 꼭 우리들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 그렇지만 어디로 피한단 말이오?"
"우리 별, 포말하우트로 가요. 아버지가 지켜 주실 거예요. 앗바스 왕도 섣불리 손 댈 수는 없을 거예요. 두 나라 사이의 평화를 깨뜨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 그럼 한시라도 바삐 나가시죠! 부하를 시켜 벌써 배 (우주선)는 준비해 두었습니다."
 

 
"리안나, 당신은 어째서 같이 왔지? 공범자(共犯者)로 몰릴 텐데……."
우주 군함 마르카브 호(號)는, 지금 캄캄한 우주를 초광속(超光速)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여기는 그 선실(船室) - 마키타는 리안나와 단 둘이 있었다.
"이게 그 대답이에요"
리안나는 그의 목에 팔을 감자, 조용히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나를 사랑해 주는 거지, 리안나!"
"네, 지구에서 돌아오신 뒤부터의 당신이 무척 좋아졌어요."
마키타의 가슴이 갑자기 드높이 뛰었다.
"그럼, 당신이 사랑하는 건, 이전의 더어스가 아니라 지금의 더어스란 말이지!"
리안나는 고개를 까딱했다.
'그렇다면 리안나의 사랑을 얻은 것은 나다. 마키타다!'
그는 불현듯이 그 비밀을, 몸은 더어스지만 마음은 마키타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나는 더어스와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사나이의 약속은 어길 수 없다. 그리고 막상 고백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나는 예전의 시대로, 20만 년이나 과거로 돌아 갈 운명이 아닌가!"
그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면서 처음으로 사랑한 오직 한 사람의 여성을 굳게굳게 포옹했다.
그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창 밖으로 눈길을 던진 리안나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이 배의 진로(進路)가 이상해요. 포말하우트성(聖)이 아니에요."
"뭐라고, 함장은 뭘하구 있는 거야."
마키타는 급히 함장을 불렀다.
함장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탄로가 났다면 할 수 없지. 당신들의 추측이 맞았소. 이 배는 마수(馬首) 암흑 성운, 즉 암흑 성운 연맹의 본거지로 향하고 있소. 너무 나쁘게 생각 마시오."
"뭐라고? 그럼 네 놈은……"
"그렇소, 쇼르 칸의 일원(一員)이오. 저 코르브로 총사령관도……"
"으음, 그 충성스러운 것 같던 코르브로 놈이!"
그는 함장을 향해 돌진했다. 함장은 재빨리 끝이 뾰족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앗, 위험해요. 마취 (痲醉) 피스톨이에요."
리안나의 비명이 들린 다음 순간, 피스톨은 마키타를 향해 발사되었다. 총을 맞자 그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폭로된 정체
 
"잘 오셨습니다. 더어스 왕자."
눈을 뜬 순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굵직하고 목쉰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눈썹이 굵고 대머리가 까진 사나이가 마키타를 들여다보고 있다.
"네 놈은…… 쇼르 칸이구나!"
"맞았오. 당신을 일부러 여기까지 초대한 이유는 물론 아시겠지요"
"모르겠는데. 그보다도 리안나는?"
마키타는 일어서려고 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험실 같은 장소에서 그는 침대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부인께서는 별실에서 잘 쉬시고 계시니 안심하셔도 좋을 거요. 그런데 정말 비밀을 모르시오?"
"'파멸 머신'……의 비밀 말이로군."
"그렇소."
"사실 나는 '파멸 머신'의 비밀은 전혀 모른다."
쇼르․칸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안 가르쳐 주겠단 말씀이로군."
"안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거야, 안됐지만……"
"좋소, 과연 왕자답군. 그럼 각오는 단단히 되어 있으시겠지?"
"각오? 하하, 고문 말이로군."
"그런 원시적인 짓은 안하오. 이거요."
쇼르 칸은 곁에 있는 기계를 가리켰다.
"두뇌 수색기(頭腦搜索機). 즉 머리 속의 지식을 싫건 좋건 간에 끄집어 내는 기계요. 다만 나는 그다지 쓰고 싶지가 않소. 이 기계에 걸리면 심중 팔구는 바보가 돼 버린단 말씀이야."
마키타는 훅!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머리 속을 예리한 아픔이 꿰뚫고, 그는 암흑에 휩싸였다.
문득 정신이 들자, 숙취(宿醉) 같은 두통과 구역질이 몰려 왔다.
"기분이 어때, 존 마키타!"
쇼르 칸이 웃고 있다. 마키타는 깜짝 놀라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알고 있군?"
"두뇌 수색기를 중단한 것은 그 때문이지. 그렇지만 않으면 지금쯤 자네는 바보가 되어 있었겠지…… 그렇더라도 무척 놀랬는 걸."
"그러니까 '파멸 머신'의 비밀 따윈 모른다고 했지 않소. 그런데, 그 기계는 대체 뭐요?"
"상상할 수도 없이 무서운 기계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이 은하계가 마젤란 성운(星雲)의 생물에게 침략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더어스네 아룬 일족(一族)의 조상이 '파멸 머신'을 발견하여 마젤란 일당을 격퇴했네. 그런데 그 기계가 너무나 무서운 무기였으므로 조상들은 그 비밀을 공개하지 않고 대체로 자기네들 일족에게만 전했단 말야. 그렇기 때문에 중앙 은하 제국에 대항하는 자가 없는 거야. 더어스, 아니 마키타, 자 빨리 지구로 돌아가서 진짜 더어스를 불러내란 말야. "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지구의 주변에는 은하 제국의 우주군이 우글거리고 있지. 그런 곳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간 당장에 의심을 받을 거구…… 그렇지 유령선(幽靈船)을 쓰자!"
"유령선?"
"에너지를 너무 많이 먹는 게 흠이지만, 배 둘레에 특수 자력(磁力)을 쳐서 레이더나 빛이 통하지 못하게 하는 배지, 말하자면 '투명 망토'를 입는 셈이야."
마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다면 쉽사리 지구에 갈 수가 있겠군…… 그런데 리안나는 내가 함께 데리고 가겠소."
쇼르 칸은 한 순간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좋아, 만일의 경우 인질(人質)로 쓰지."
앞으로 이틀 후면 지구에 도착할 만한 거리까지 왔을 때. 갑자기 부저가 울리고, 창 밖의 진공(眞空)이 사라졌다. 유령선이 '투명 망토'를 입으면 안에서 밖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적이 가까이 왔다. 자, 선실(船室)로 들어가시오."
마침 그 때,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복도를 걷고 있던 마키타와 리안나는 감시병의 열선총(熱線銃)으로 떠밀렸다.
"선실로 들어갈 때, 기절한 척하고 쓰러지는 시늉을 해요."
마키타는 빠른 말로 리안나에게 속삭였다. 리안나는 잠자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문 쪽에서 리안나는 비틀거렸다.
"더어스, 나, 기분이 이상해요……."
"앗, 정신 차려, 리안나! 이봐, 좀 도와줘."
리안나를 부축하면서 그는 감시병에게 부탁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빌렸다.
그 순간, 마키타는 감시병에게 덤벼들었다. 총을 쳐서 떨어뜨리자마자, 바른 편 주먹에 전 체중을 실어 명치끝을 후려쳤다.
감시병은 축 늘어져 버렸다.
마키타는 재빨리 감시병의 검은 제복과 헬멧을 벗겨 자기가 입었다.
"이쯤이면 그럭저럭 적의 눈을 속일 수 있겠지, 리안나, 당신은 여기 계시오!"
그는 리안나에게 그렇게 명령하자, 복도를 달렸다. 에너지 발생 장치가 밑에 있는 것은 전부터 짐작이 되었었다. 그는 급히 트랙을 내려 추진 장치실로 뛰어 들어갔다.
감시병이 몇 사람 있었으나, 아무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둘러보니 구석에 방이 또 하나 있었다. '투명 망토' 에너지 발생 장치실은 그 곳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들켰다.
마키타는 잠자코 열선총(熱線銃)의 버튼을 눌렀다. 감시병은 뒤로 나가떨어지고 그 저쪽의 기계류에 섬광이 닿았다.
기계류가 무시무시한 불꽃을 뿜으며 폭발함과 동시에 유령선의 '투명 망토'는 깨어졌다.
 
 
EMB00000dbc6514국왕 암살
 
모습을 드러낸 유령선은, 제국 우주 함대에 발각되어 치열한 공격을 받았다. '투명 망토'를 잃어버린 유령선은 무장한 함대의 적이 못되었다.
항복한 유령선의 승무원과 마키타들은 제국 우주 함대의 기함(旗艦)으로 연행되었다.
"아, 더어스 왕자님!"
유령선 선장의 뒤에서 나타난 마키타와 리안나를 보고 코르브로 총 사령관은 흠칫 놀라서 일어났다.
그는 제국 우주 함대의 층 지휘관으로서 이 기함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흠, 이 배반자야, 악운(惡運)이 다해서 붙잡혔구나."
코르브로는 태연한 태도를 가장하고 말했다.
"배반자? 그건 이 편에서 할 소리야, 네놈이야말로 제국(帝國)을 배반하는……"
마키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코르브로는 곁에 있는 사나이를 돌아다보고 소리친다.
"마르랑 함장(艦長), 이 배반자와 그 공범자인 저 여자를 구태여 스룬까지 보낼 필요는 없다. 곧 사형시켜 버려라."
"그, 그러나 우주법 (宇宙法)에 의하면 어떠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재판을 받을 권리가……"
"아,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지, 상관없어. 내 명령이야."
마키타는 코르브로를 노려보면서,
"마르랑 함장, 코르브로가 왜 나를 사형시키려는지 알겠지? 그것은 자기 자신이야말로 배반자이므로……"
"시끄럽다. 빨리 사형시켜라!"
"코르브로, 너는 여기 있는 유령선의 선장도 나와 함께 사형시킬 셈이냐?"
코르브로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 그렇다. 그 놈도 사형이다!"
선장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떠들기 시작했다.
"코르브로, 네 놈은 자기편까지도 죽일 작정이냐, 네놈도 암흑 연맹의 인간이면서……"
코르브로는 새파랗게 질렸다.
"멋지게 함정에 빠졌구나. 자, 그 배반자를 체포하라!"
마키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함장의 부하들은 코르브로에게 덤벼들었다.
코르브로는 끌려가면서 히스테릭한 웃음과 함께 씹어 뱉듯이 한마디했다.
"내 운명도 이것으로 다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앗바스의 생명도 지금쯤은 위태로울걸."
 
파멸 머신은 어디에
 
스룬으로 달러간 마키타와 리안나는 그러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국왕은 최후의 순간에서 생명을 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나쁜 뉴스가 들어왔다.
암흑 성운 연맹이 마침내 중앙 은하 제국에서 선전 포고(宣戰布告)를 한 것이다.
쇼르 칸은 중앙 은하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게 다음과 같이 통고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적은 오직 한 나라, 중앙 은하 제국뿐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은하계를 마음대로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문명은 다한 것이다. 우리 병력은 적보다 훨씬 우세하다. 그들이 믿는 유일한 무기 '파멸 머신'도 이미 그들을 구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을 쓸 줄 아는 인간은 이미 없기 때문이다. 앗바스는 중상(重傷)을 입고, 더어스는 그 사용법을 모르는 것이다. 왜냐 하면, 더어스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마키타는 마침내 궁지에 몰렸다.
동요하는 우방(友邦)을 가라앉히고, 적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파멸 머신'을 써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지구로 돌아가서 진짜 더어스와 교환할 시간은 없다. 최후의 희망은 중상을 입고 신음하는 앗바스로부터 어떻게 해서라도 그 사용법을 들어야 하는 것뿐이다.
그는 의식이 몽롱한 앗바스를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아버지, '파멸 머신'에 대해 뭐든지 좋으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더어스, 너는 알고 있을 텐데……"
"네, 그렇지만 쇼르 칸의 두뇌 수사기(頭腦搜査機)에 걸려서 거의 기억력이 없습니다!"
"…… 그렇구나…… 최하층의 지하도로 가라…… 너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네 몸을 조절해 왔다. 사용법은 가보면 안다…… 빨리 가 보아라."
아직도 잘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하층의 지하도로 달려갔다. 입구로부터 뛰어든 순간, 파란 광선이 확 내리 비쳤다. 뒤에서 따라온 호위병이 외쳤다.
"저희는 여기서부터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희에겐 그 광선은 살인 광선이나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몸의 조절이란 이걸 말하는 것이었구나. 더어스의 일족(一族)만이 어릴 적부터 이 광선에 면역되도록 조절을 받는 거구나!"
마키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달렸다. 막다른 곳에 도어가 있었다. 도어를 열자, 눈앞에 거대한 렌즈를 조립한 기계가 있었다.
"이거구나. 이것이 '파멸 머신'이다!"
머리 위에 금속판이 붙어 있고, 그 곳에 사용법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마침내 그것은 일어났다
 
'파멸 머신'의 투시(透視) 스크린이 암흑 성운 연맹의 대 함대를 중앙에 포착했다.
마키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멸 머신'의 스위치와 버튼을 차례로 조절해 간다.
여섯 개의 계기(計器)의 빨간 바늘이 스크린의 중앙을 가리킨 순간, 메인 버튼을 누른다. 그것으로 일은 끝나는 것이다.
사용법은 무척 간단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마키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절대로 잘못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은하계 전체의 운명을 쥐고 있는 그는 이 장치가 어떤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빨간 여섯 개의 바늘이 천천히 스크린의 중앙을 가리키는 위치로 다가간다.
다음 순간 중앙을 똑바로 가리켰다. 파란 램프가 켜졌다.
"발사!"
마키타는 메인 버튼에 대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꽉 눌렀다.
스크린 위에 비친 대 함대의 광점군(光點群)이 어렴풋이 흔들린 것 같았다.
그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틀렸다. 실패다. 이젠 틀렸다……"
갑자기 대 함대의 광점군 복판에 검은 점이 쑥 나타났다. 점은 맥박치면서 차츰 확대되어 간다.
"아앗!"
마키타의 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이건 정말 가공할 기계로구나! 이번에는 공간이 줄어든다!"
대 함대는, 공간 그 자체를 소멸해 버리는 '파멸 머신'에 의해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갔다.
 
육체 환원기
 
"더어스, 들리나, 더어스!"
마키타는 의식 교환기(意識交換機)의 중앙에 누워 열심히 불렀다.
암흑 성운 연맹은 무너지고 은하계에 다시 평화가 돌아온지 벌써 닷새째.
그는 지금 사랑하는 리안나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이 지구의 히말라야 산 속으로 돌아왔다.
그는 끝내 리안나에게 이 비밀을 고백하지 않았다. 고백하면 도리어 마음의 상처를 깊게 할 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잠자코 리안나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더어스, 들리면, 대답을 해 주시오!"
"오, 마키타, 기다렸오. 대체 어찌된 일이오!"
어렴풋이 더어스의 대답이 들려 왔다.
"미안하오. 여태까지 아무래도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오."
그는 간단히 여태까지 일어난 일을 얘기했다.
"그렇군, 당신은 약속을 지켜 주었군."
"그리고 은하계까지 구해 주었군! 고맙소!"
"자, 준비는 다 되었소?"
"음, 좋소. 자……"
"그럼 스위치를 넣겠오."
머리 속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금속음이 차츰 높아졌다.
다음 순간, 마키타는 암흑 속으로 어디까지나 멀어져 갔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마키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다시 그 눈익은 방의 눈익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운 뉴욕의 낡은 아파트다.
그는 침대에서 나오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있는 얼굴은 존 마키타였다.
더어스의 마르고 흰 얼굴이 아니라, 길고 네모진 얼굴이었다.
그는 창가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리온 성좌(星座)가 분명히 보였다. 저 성좌의 어느 곳엔가 마수(馬首) 암흑 성운이 있는 것이다.
혹성(惑星) 스룬이 있는 카노오프스는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 밑에 있는 것이다.
눈물이 흐릿하게 밤하늘을 가렸다.
"리안나! 리안나!"
끝없는 시간과 공간의 심연(深淵)이 그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를 영원히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그는 그 추억만을 가슴에 간직하고 영원히 덧없는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침대에 드러누워 얼마 후, 얕은 잠에 빠졌다.
"마키타, 존 마키타!"
그는 곧 알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리안나!"
"아, 마키타. 저예요."
"하지만 어떻게 나를……"
"더어스가 가르쳐 주었어요. 그래서 분명히 알았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마키타, 당신이라는 걸."
"리안나, 고마워. 그럼 적어도 작별 인사만은 할 수 있겠군."
"아니, 아니에요. 마키타, 기다려 줘요!"
리안나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더어스는 마음이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육체도 초월할 수가 있을 거래요. 그는 지금 육체 환원기 연구를 시작했어요. 연구가 성공하면, 마키타, 저한데 와 주시겠어요?"
희망의 불꽃이 가슴에 확 피어올랐다.
"가지, 가구 말구!"
"그럼 기다려 줘요. 마키타. 더어스는 꼭 성공할 거예요. 그럼 그 때까지 안녕!"
그는 가슴이 철렁하여 침대에서 뛰어 일어났다.
"지금 그것은 꿈이었을까. 아니, 아니다!"
그는 창가로 달려가 깜박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
우주 여행
 
한동수 교수의 타임머신
 
내가 아무리 놀랬다고 해도 큐크롭스 성좌(星座)의 한 혹성, 아마울로피아에 갔을 때처럼 놀란 적은 없다. 거기서 경험한 갖가지 사건은 모두가 한동수 교수의 덕택이다.
한동수 교수는 항상 연구에만 골몰하는 과학자이며 발명광(發明狂)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박사는 불쾌한 생각을 씻어 없애는 특수 세제(洗劑), 구름을 마음대로 물들이거나 적당한 모양으로 굳히는 약품 등을 만들어 냈다.
또한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는 개구쟁이들의 낭비되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도 발명했다. 핸들, 손잡이, 도르래 따위를 집안의 여기저기에 장치해 놓으면 아이들이 놀다가도 심심하면 이러한 장치에 손을 대고 누르거나 잡아당기게 된다. 그러면 어느 새 빨래가 되고 잔디에 물이 뿌려지고 발전(發電)이 되기도 한다.
나는 며칠 전 한 교수의 최근의 발명품을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무쇠로 만든 난로였다.
한 교수는 이것이 자기의 발명품 중에서 제일가는 자랑거리라고 뽐냈다.
"우병진 박사, 이것으로 인류의 오랜 꿈이 실현되게 되었오. 나는 타임머신을 드디어 만들어 냈단 말이오. 즉 시간을 자유자재로 늘일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소. 내 계산이 틀림없다면 이 타임머신 속에서는 1분이 2개월 정도로 연장될 수가 있소. 어디 의심스러우면 한 번 시험삼아 들어가 보시지."
나는 무슨 일이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오기가 있다.
"그렇게 해 봅시다."
나는 즉석에서 승낙하고 그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한 교수는 문을 확 닫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콧구멍이 간질간질했다. 문이 닫히면서 난로 속에 쌓였던 먼지와 검정이 휘날렸기 때문이다.
"에에치!"
재채기가 한 번 크게 나왔다. 그 순간 스위치가 들어온 모양이다. 시간이 마이너스의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따라서 나의 재채기는 밤과 낮이 다섯 번 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5주야가 지나 난로의 문이 겨우 열렸을 때, 나는 늘어진 문어처럼 축 처져서 뻗어 있었다. 한 교수는 이상스럽다는 듯이 한참 나를 들여다보다가 내력을 알고서는 껄껄껄 웃었다.
"허허참, 내 시계는 이제 겨우 4초가 지났는데, 그렇다면 내 타임머신이 쓸 만한 물건이란 말이군."
나는 어이가 없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약간 실망한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엄청난 기계를 나에게 선뜻 내던져 주었다.
나는 몹시 지쳤기에 이 훌륭한 발명품의 두 번째 실험, 즉 시간을 플러스 쪽으로 돌리는 테스트는 우선 사양키로 하고 집으로 옮겨다 놓기만 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타임머신의 사용법도 모르고 별로 관심도 없고 해서 헛간 한 구석에 내버려두었다. 타임머신은 한 반 년쯤 거기서 낮잠만 자고 있었다.
 
도둑의 종족
 
그 즈음 우병진 교수는 유명한 ‘우주 동물학’의 제 8 권을 집필 중에 있었는데, 아마울로피아에 사는 생물에 특히 관심이 있다.
한 교수는 자기의 위대한 발명품인 타임머신의 실험에는 이 혹성의 생물이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한 교수의 여러 가지 플랜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 연료와 식량을 충분히 준비하고 곧 떠났다. 아마울로피아까지 여행하는 데는 적어도 30년이 더 걸릴 것이므로 어정어정 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우선 은하(銀河)의 중심 구역에서 만난 비곤트 종족에 대해서는 부득이 말해야 하겠다.
그들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방랑족이다. 원래는 자기네 소유의 행성이 있었으나 너무나 욕심이 많은 종족이라 땅을 한없이 파헤쳐 모든 지하 자원을 다 다른 혹성의 세계로 수출해 버리고 자기들의 혹성을 벌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속속까지 다 파낸 그들의 혹성에는 발을 디딜 곳도 없이 커다란 구멍만 남게 되었고, 제 집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은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생겼으며, 결국 자기들의 혹성을 떠나 우주를 방랑하기 시작했다.
비곤트 종족이 밀어닥치면 어떤 혹성에서나 야단법석이 일어나며, 그들이 떠난 뒤에는 폐허만 남는다. 이를테면 그들이 스치고 간 다음에는 공기의 일부가 부족해지거나, 강물이 갑자기 말라 바닥이 드러나거나, 혹은 섬이 몇 개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아르테눌리아라는 혹성에서는 그들이 커다란 대륙 하나를 통째로 훔쳤다. 다행히 얼음덩이의 아무 쓸모 없는 땅이었으므로 아르테눌리아 행성으로서는 큰 손해는 입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 훔친 대륙을 애써 개척하느라고 법석을 떠는 것이 꼴 사나왔다.
나는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그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정착지를 마련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는 잠시 여행을 중지하고 그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요행히 나는 아직 쓸모 있어 보이는 위성 하나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위성을 손질하여 행성으로 승격시키고, 비곤트족이 살도록 했다. 물론 거기에는 공기가 없었다. 나는 공동 투자를 제의했다. 이웃 행성에서 쾌히 승낙을 했기에 공기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방랑족과 헤어졌다.
아마울로피아까지는 이제 6킨틸리온km 밖에 남지 않았다. (1킨틸리온은 Ix168이다. )
나는 단숨에 날았다. 목적지 아마울로피아가 보이자 천천히 착륙 준비를 했다.
 
타임 머신의 위력
 
나는 브레이크의 단추를 눌렀다. 그러나 기계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로켓은 아마울로피아의 지표를 향해 총알처럼 내려갔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브레이크 장치가 송두리째 보이지 않았다. 손버릇 나쁜 그 비곤트족의 소행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의 로켓이 공기의 마찰로 인해 점점 뜨거워져서 금방 불길에 쌓일 것만 같았다. 앞으로 1분 이내에 나는 통닭구이처럼 익어져 숯검정처럼 타 버릴 것이다.
순간 나는 타임 머신이란 위대한 기계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시 스위치를 눌렀다. 착륙하는 데 3시간 이상을 끌면서 내가 무사히 이 아마울로피아 혹성에 착륙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민첩한 판단의 덕택이었다.
 
내가 탄 로켓이 내린 곳은 넓다란 빈터였으나 사방은 청백색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반투명의 나무 사이로 에머럴드 빛깔의 기묘한 생물들이 부산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기괴한 생물들은 나를 보자 숲 속으로 도망쳐 숨어 버렸다. 살갗의 색이 고운 옥색으로 반짝이는 것만 다를 뿐 사람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들에 대해서는 이미 한 교수에게서 예비 지식을 얻은 바 있으나,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우주 소백과 사전을 꺼내 보았다.
『이 혹성의 주민은 미크로세팔이라고 하는, 사람과 비슷한 생물의 하나로 지능이 아주 낮음. 그들과 의사를 통해 보려고 해도 성공한 예가 없음』
과연 소백과 사전의 설명은 틀림이 없었다. 미크로세팔은 네 발로 기어다니지만, 없을 때는 쪼그리는 것이 별났다. 내가 가까이 가니 에머럴드 빛깔의 눈을 크게 뜨고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그러나 행동은 무척 얌전한 편이다.
이틀 동안 나는 청백색의 숲과, 그 숲 너머 넓은 평야를 탐사하고 돌아왔다. 나는 문득 타임 머신의 생각이 나서 몇 시간 동안 가동시켰다가 내일 그 효과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무거운 타임 머신을 로켓에서 꺼내 우거진 숲 속에 감춰 두고 플러스 쪽으로 핸들을 돌려놓았다.
 
누군가가 몹시 흔들어서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미크로세팔들이 둘러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몇 시간 전만 해도 네 다리로 기어다녔는데, 지금 내 주위의 미크로세팔들은 두 다리로 서서 무엇이라 지껄여 대며, 신기하다는 듯 내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팔을 빼려다가 하마터면 어깨가 빠질 뻔했다.
그들 중에서 제일 몸집이 큰 꺽다리 하나가 내 입을 억지로 벌리게 하더니 이빨의 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은 신기한 동물을 발견했다는 듯이 나를 요리조리 돌려 가며 들여다보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거인의 손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으나, 결국 바깥으로 끌려나와 로켓의 꽁무니에 단단히 묶여 버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미크로세팔들은 로켓에서 모든 물건과 장치들을 죄다 들어내고 있었다. 너무 커서 꺼내기 어려운 것은 조각조각으로 깨뜨려 운반하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이제 지구로 돌아 갈 것도 단념하고, 일생을 아마울로피아의 흙에 외로이 묻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고 한동수 교수가 원망스러웠다.
이 때, 난데없이 돌맹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로켓에도, 서성거리는 미크로세팔들에게도, 그리고 묶여 있는 내 머리에도 사정없이 명중했다. 나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영문을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한참 동안 치고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를 사로잡았던 미크로세팔들이 뿔뿔이 도망치고 다른 미크로세팔들이 몰려와서 나를 풀어 주더니 공손하게 EMB00000dbc6515인사를 하고서는 나를 어깨에 메고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이르러 행렬은 멈춘다. 통나무로 만든 오두막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나를 그 오두막에 밀어 넣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면서 꽃과 과일을 나에게 바쳤다. 그리고선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부락민의 신(神)이 되었다. 무당이 와서 나의 얼굴빛을 보고 점을 치기 시작했다. 점괘가 나쁘면 향을 피웠다. 나는 매일 원치 않은 한증을 몇 차례씩 하게 되었다.
3, 4일이 지나자 처음에 나를 사로잡았던 미크로세팔의 일당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시 쳐들어 왔다. 그들의 두목은 나의 이빨을 헤아리던 그 거인이었다.
싸움이 치열하게 계속되는 동안 나는 이쪽 편에서 저쪽 편의 손으로 몇 차례씩이나 내왕을 거듭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神)이 되었다가 금새 노예가 되기도 한다.
전쟁은 공격 부대의 승리로 끝났다. 나는 그들의 노획물이 되어 마을로 끌려갔다.
높다란 장대 꼭대기에 매달고 힘 센 놈이 어깨에 메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이 장대를 매고 행진했다. 나를 깃발의 대용품으로 삼은 것이다. 편한 노릇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구박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 미크로세팔의 말에 익숙해지자 나는 두목에게 그들이 이렇게 빨리 진화(進化)한 것이 다 나의 덕택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좀처럼 타임 머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설명을 알아들을 때쯤 되어서 아깝게도 두목은 여자 무당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즉 미크로세팔의 세계에도 무혈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여자 무당은 지금까지 원수로 지내 오던 두 미크로세팔을 통합했다. 경축 잔치 때 나는 음식에 독이 들어 있나없나를 일일이 음식을 먹어서 확인하는 고역을 맡았다.
그 때 무당이 나를 쳐다보더니 소리쳤다.
"저런 미남자가 우리 부락에도 있었던가"
무당은 나를 억지로 자기 남편으로 삼았다. 나는 기회는 이 때다 하고, 미크로세팔에 대한 나의 위대한 공적을 이 여자 무당에게도 설명했으나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집안 싸움이 벌어졌다. 나의 아내, 즉 미크로세팔의 두목은 살해되고, 나는 간신히 그들의 소굴에서 도망쳐 나왔다.
나는 타임머신을 감춰둔 숲으로 달려가서 핸들을 다시 돌리려고 했으나, 미크로세팔들이 좀더 민주적인 제도와 발달된 문명을 가지게 될 때까지 한번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숲에서 나무 뿌리를 뽑아 먹으면서, 며칠을 지냈다. 밤이 되면 마을로 살짝 내려가서 그 마을이 어느 사이에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마을에 사는 미크로세팔들은 농사에 힘쓰지만 도시의 미크로세팔들은 마을을 습격하며 재물을 빼앗고 저항하는 마을 사람을 내쫓았다. 이러는 북새통에서도 상업이 발달하고 종교가 생겼다. 그런 탓인지 나의 로켓이 어느 사이에 도시의 광장으로 옮겨져 있었다. 즉 그들은 로켓을 새로운 신(神)으로 모시고 있었다.
이윽고, 이 도시의 농민의 일단이 여러 번 습격하여 폐허로 만들었으나, 그 때마다 도시는 금방 재건되었다.
이러한 난리를 평정한 사람이 사르세파노스 왕이다. 왕은 마을을 불태워 없애고 농민을 추방했다.
나는 갈 데가 없어져 도시로 방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전에 나의 아내였던 무당의 시녀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를 왕의 안마사로 취직시켜 주었다.
나는 우선 밥벌이가 되어 안심이었다. 나는 정성껏 왕을 모셨다. 왕은 나를 특별히 여겨 벼슬을 하사하였다. 즉 왕실의 전속 사형 집행인이란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왕의 총애는 감사했지만 이런 벼슬을 맡기니 난처했다.
틈을 엿보다가 타임 머신이 있는 숲으로 도망쳐 나왔다. 시간을 더욱 빠른 방향으로 돌렸다. 하루 속히 미크로세팔의 나라가 질서 있는 문명한 세계로 바꿔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날 밤으로 왕이 과식으로 배탈이 나서 죽고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나는 타임머신의 속도를 가장 빠른 쪽으로 당기려고 핸들을 획 돌렸다. 그랬더니 '우지직' 나사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2, 3일이 지나니 희한한 일들이 생겼다.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동 묘지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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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점점 젊어지고 아이들은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었다. 왕의 장례식 행렬이 뒷걸음질치며 물러난 뒤 사흘만에 왕은 관 속에서 기어 나와 먼지를 털고 있었다.
타임 머신이 고장나서 시간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북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몸이 자꾸 젊어져 가는 것이다.
여하한 나의 로켓이 신주처럼 숭배되고, 내가 그들의 신(神)처럼 모셔질 때를 기다려 그 위세를 몰아 로켓으로 숨어 들어갈 수가 있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시간의 속도가 너무나 빠른 것이 오히려 걱정이었다. 만일 시기를 놓치면 나는 영영 지구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매일매일 나무에 내 키의 변화를 표시해 보았다.
상당한 스피드로 내 키가 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나는 7, 8세의 소년으로까지 젊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구로 되돌아 갈 때까지 먹을 양식을 마련하느라고 밤마다 몰래 로켓을 들락날락했다. 몸집이 점점 작아지니 일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외에도 몹시 난처한 것은 괜스레 딱지 놀음이나 구슬치기가 하고 싶어지고 손가락을 자꾸 빨게 되었다.
이럭저럭 출발 준비가 다 되었기에 날이 새기 전에 로켓으로 잠입해서 출발의 핸들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키가 너무 작아져서 손이 닿지를 않았다. 의자를 갖다 놓고 기어올라 겨우 핸들을 돌렸다. 나는 하도 힘이 들어 홧김에 소리를 질렀더니 그 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으에엥'하는 갓난아이의 소리로 들렸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도 서서 걸어다닐 수가 있었다. 그러나 타임머신의 작용은 그 후에도 잠시 계속되는 것 같았다. 왜냐 하면 아마울로피아 혹성이 한 점의 빛으로 보일 만큼 멀리 떠나 왔을 때, 나는 허기를 느껴 식량 저장고까지 가까스로 기어가서 우유병을 집어 들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반 년쯤 나는 우유로 자랐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아마울로피아의 비행에는 근 30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지구에 되돌아 왔을 때, 나는 출발 당시의 나와 비슷한 청년으로 성장했으므로 친구들은 아무도 내가 왕복 60년의 긴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온 줄은 몰랐다.
 
<끝>
 
작품 해설
 
4차원의 전쟁, 서광운
 
지구의 인류가 우주인의 공격을 받는다면 일치단결해서 이와 싸워야 한다. 모든 인류가 서로 합심해야 되는 사실은 요즘 공해(公害) 대책이나 식량 문제에서도 엿볼 수 있게 됐다. 그러한 내부의 위협과 외부의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지 않겠는가.
일부 기상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시피 오늘날의 기상 이변은 혹 새로운 빙하 시대(氷河時代)로 접어드는 조짐이 아닐까. 아직은 아무도 이를 부정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바닷물이 하루에 1센티씩 불어가는 현상을 설정하고 이는 새로운 빙하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그런데 어째서 바닷물이 불어가느냐 하는 원인을 과연 어디서 캐낼 수 있을까. 지구 위에서 인공적인 변화가 없는 한, 혹 외부 세계에서 어떤 작용이 일지나 않을까. 외부 세계의 작용이 있다면 그것을 우주인, 여기서는 안드로메다 성운인으로 설정해 보기로 한 것이다. 왜냐 하면 우주인들이 태양계까지 원정해 올적에는 우리 인류보다 훨씬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은 금성(金星)을 점령하고 거기에 정찰 기지를 두고 지구를 넘어다보는 것, 우주선에서 지구의 북극을 향하여 층자선이라는 빛 다발을 내리쏟는 사슬에 북극의 얼음이 모짝모짝 녹아 나는 것이 아닐까. 김민수를 대장으로 하는 한국의 특공대는 우주의 이러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로켓탄을 발사해 봤으나 아무 소용도 없지 않는가. 재래식(在來式) 무기가 쓸모가 없다는 것은 지구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신경총(神經銃)으로 우주인들을 물리치게 되는데 그들의 이마에 돋은 외뿔은 진화(進化) 과정에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력을 상징하는 외뿔일까? 또는 우주 방사선에 의한 돌연 변이(突然變異)를 뜻하는 것일까. 어쨌든 우주인의 모습이 인류와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외뿔 우주인이지만은 그들은 3차원의 세계 - 가로, 세로, 높이 그러니까 부피가 있는 세계 - 를 넘어선 4차원의 로봇을 지니고 있다. 인류가 막아 놓은 벽을 마치 귀신처럼 소리 없이 침투할 수 있는 실체(實體)를 보통 4차원의 생물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아인시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一般相對性理論)을 수식으로 설명했을 적에 3차원의 X, Y, Z 축(軸) 외에 시간이라는 차원을 덧붙여 4차원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데서 비롯한다.
『4차원의 전쟁』에서는 우주인이 만들어 낸 4차원 로봇를 광선이나 자력선의 조작으로 보고 이들 침투력을 반사, 격퇴하기 위한 민들렁이라는 액체를 등장시킨다.
과학이나 기술의 경우 적용에 대한 반작용이 있듯이 어떤 새로운 장치가 발명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저지력이 있을 수 있는 증좌를 제시하려는 시도라 하겠다.
그러나 지구 전체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지역 사회에서만이 이를 막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 작전 본부를 한국, 미국, 호주, 소련 등지에 설정하고 합동 작전을 펴게 한 것이다. 히말라야의 기슭 카라코람 일대는 아직도 지구의 비경(秘境)이기에 거기에 안드로메다 성운인들이 침공한 것으로 가상해 보았다.
합동 작전에서 우리의 특공대가 용감한 까닭도 우주 로봇을 격파할 수 있는 무기가 뒷받침됨을 알 수 있으리라.
1970년의 작품임을 밝혀 둔다.
 
 
4차원의 전쟁
서 광 운 작
아이디어 회관 과학 문고
224p. 19cm
 
 
초 판     1978년 4월 25일
재 판     1981년 2월 10일
작 자     서 광 운
오프셋 인쇄    삼정 인쇄소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동서 제본소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서울 특별시 중구 을지로 5가 19-29
     등 록 제 2-213 호
     전화 (266) 1975․(260) 2000
 
<판권 본사 소유> 값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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