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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해외 동시산책

사계절에 관한 동시바구니
2017년 02월 26일 15시 44분  조회:2107  추천:0  작성자: 강려
<봄에 관한 동시 모음> 손동연의 '봄에는 온통' 외

+ 봄에는 온통 

실비 오고, 
실바람 불고, 
실햇살 내리고.... 

봄에는 
온통 
가느다란 것뿐이야. 

새싹, 
제비꽃, 
보드라운 나비 날개..... 

고 작고 여린 것들 
다치면 
큰일일 테니 말이야.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선물    

추운 겨울 지나면
누가 해마다
택배로 보내 주는 선물
'새봄'

상자를 뜯고 포장지를 벗기면
하나같이 예쁘고 눈부신 것뿐

잎눈, 꽃눈, 새싹, 하늘, 햇빛, 구름, 비, 바람…… 
빛깔도 모양도 무늬도 향기도
전에 것이 아닌 새것, 신제품

올해도
올 때가 되었는데 하며
택배 오길 기다립니다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 봄소식

꼬리가 짧은 
2월의 버들강아지들이
연기가 나는 강 언덕을 바라보며
멍멍멍
짖고 있습니다

누가 오는가 봅니다
(이창건·아동문학가, 1951-)


+ 이른 봄

암탉이 알을 품듯 
봄님이 
온 세상을 품고 있다. 
안개 낀 아침. 
  
닭의 체온으로 
보송보송한 예쁜 
병아리가 깨이고, 
  
봄님의 품안에서 
병아리처럼 고렇게 예쁜 
연둣빛 새싹들이 깨일 테지. 
  
조올졸 내리는 비는 
새싹의 젖줄. 
  
새싹이 눈을 감고 
강아지처럼 젖줄을 빤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작은 약속

봄은 땅과 약속을 했다. 
나무와도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싹을 틔웠다. 
작은 열매를 위해 
바람과 햇빛과도 손을 잡았다. 
비 오는 날은 
빗방울과도 약속을 했다. 
엄마가 내게 준 작은 약속처럼 
뿌리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행복했으면 좋겠다

봄은 
행복을 주는 계절 
네 곁에 늘 
봄만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있어 
내가 행복하듯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윤보영·아동문학가)


+ 봄을 그리는 붓 

봄에 
들판에 나가면 
여기저기 붓이 솟는다. 

봄을 그리는 붓 

먼저 풀잎부터 그리고는 
마을도 
길도 그리고, 

새도 
산도 
강물도 파랗게 그리고 
지난겨울 지워진 개울도 다시 그린다. 

그래, 
봄은 
들판 가득 솟은 붓이 그리는 
한 장 
그림이다. 
(제해만·아동문학가, 1944-1997)


+ 봄

겨우내
시냇물과 조약돌
말 안하고 지내다 
어느 날부턴가
쉬지 않고 도란거리는 걸 보면

겨우내
옷 벗은 미루나무에 
잠시 눈길도 주지 않고
씩씩 지나치던 바람 
미루나무 연초록 잎새에 매달려
온종일 반짝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 앞
산수유나무를 시작으로
꽃들
다투어 피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상순·아동문학가)


+ 봄볕은 씨앗 하나도

조기
조기
씨앗 하나

봄볕이 
시멘트 틈을
들여다봅니다

빨리 일어나
봄이 왔어

씨앗 하나를
깨워 놓고 바삐 갑니다.

또 다른 씨앗들 
깨우러 가나 봅니다.
(안영선·아동문학가)


+ 아무리 숨었어도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 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 낼 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 낼 걸.
(한혜영·아동문학가, 1953-)


+ 떡잎에게 

나라도 
그랬을 거야.

캄캄한 땅 속에 묻혀 있었다면
겨우내 따뜻한 햇볕을 
그리워했다면

너처럼
여린 두 손으로
흙을 헤집고 나왔을 거야.
아무리 단단한 흙이라도 기어이
뚫고 나왔을 거야.

얘,
파릇한 네 손을 
잡아 봐도 되겠니?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실수한 후          

봄도  
처음엔 
자꾸만 실수한다. 

촉촉한 비 
훈훈한 바람 
꺼내야 하는데 
눈발 꺼냈다가 
찬바람 꺼냈다가 

몇 날 실수하더니 
드디어 
봄비 뿌리고 
봄바람 날린다. 

푸른 잎사귀 
분홍 꽃잎도 
꺼내 놓는다 

―잘했어 
산과 들이 
일어선다.
(박소명·아동문학가)


+ 온실 

봄은 큼직한 온실을 만들었다. 
집보다도 
공원보다도 
산보다도 더 큰 온실이다. 

유리로는 덮개를 할 수 없다. 
하늘도 
파아란 뺑끼칠한 하늘로 덮었다. 

때맞추어 물을 준다. 
새순이 다치지 않게 
고이고이 보슬비로 물을 뿌린다. 

엄마젖 같은 단 빗물 
싹이 튼다. 
촉이 솟는다. 
아가도 덩달아 큰다.      
(김진태·아동문학가)


+ 나비

들길 위에 혼자 앉은
민들레.      

그 옆에 또 혼자 앉은       
제비꽃.

그것은
디딤돌. 
          
나비 혼자
딛              
고     

는      

봄의     
디딤돌.
(이준관·아동문학가)


+ 봄 풍선

봄이
풍선을 분다.

잎눈에
후-

꽃눈에
후-

터진다.
터진다.

겁먹은 찬바람
부리나케 도망쳤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봄 이야기

노랑나비 나비야 
꽃핀 없는 내 머리 
귓가에나 앉아주렴 
너도 귀엽고 나도 귀엽게 
꽃은 혼자도 어여쁘단다 

하양나비 나비야 
무늬 없는 내 윗옷 
가슴께나 앉아주렴 
너도 예쁘고 나도 예쁘게 
꽃은 그냥도 눈부시단다  
(홍우희·아동문학가)


+ 봄이 하는 일            

나비와
벌과
개미에게
밖에 나가 놀아도 된다고
알려 주어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봄과 나무 

봄이 새들을 앞세웠다.

이가 반짝이듯 나뭇가지에서 
노래가 반짝인다.

어디야,
어디지! 

흙 속에서 꽃씨들이 귀를 조금씩 내민다.
(남진원·아동문학가)


+ 봄이 오는 길 

고개 넘어 가는 길 
봄이 오는 길 

봄길 쪼르쪼르 
눈이 녹는다. 

길은 진흙 길 
산으로 가는 길 

나무하러 차박차박 
짚신 신고 가는데 

봄길 쪼르쪼르 
눈이 녹는다. 
(임인수·아동문학가)


+ 봄 잔디

잔디는 겨울에도 
살아서 숨을 쉬나? 

눈 녹은 풀밭에서 
모락모락 뿜는 입김. 

햇빛도 몰려와 노는 
이른 봄 잔디 풀밭. 

씨앗도 곤충들도 
곤히 잠든 이불 속. 

슬그머니 바람도 
손을 집어넣어 보고 

따스한 이야기들이 
곰실대는 잔디 풀밭. 
(조두현·시인, 1925-1989)


+ 새싹

봄비 그친 텃밭은
일학년 교실

햇살이 사알짝
스쳐만 가도

저요
저요
저요

왁자하게 손 내미는
새싹
새싹들.
(공재동·아동문학가)


+ 새순이 돋는 자리

새순은
아무데나
고개 내밀지 않는다.

햇살이 데운 자리
이슬이 닦은 자리

세상에서
가장
맑고 따뜻한 자리만 골라

한 알 진주로
돋아난다.
(김종순·아동문학가)


+ 시집오는 봄

산등성이 진달래
빨간 볼연지

산자락에 개나리
노랑 저고리

들판에 새싹들
연초록 치마

길가에 벚꽃
하얀 면사포

꽃단장하고서
새봄이 와요
(이임영·아동문학가)


+ 개나리 

아장아장 
봄나들이 나온 
우리 아기. 

"김치---."             
사진기 앞에서          
활짝 웃는다.  

아,          
너희들도
봄나들이 나왔구나!     

아기 등뒤의
노란
개나리.

활짝활짝 
고운 웃음
웃고 있구나!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꽃들의 노크

"문 열어 주세요."

냉이꽃이 똑똑똑
텃밭 한 귀퉁이가 밝아 온다.

제비꽃이 똑똑똑
개구리들도 문을 열고 나온다.

할미꽃이 똑똑똑
할머니께 봄 인사를 한다.

냉이꽃 제비꽃 
내가 지나갈 때마다
까딱까딱 봄 인사를 한다.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벚꽃

겨울 내내 
기다려도 
내리지 않더니

영롱한 봄 햇살에 창문 열고
가지마다
아롱아롱 손 흔드는 
하얀 눈꽃

봄 산
봄 들판 가득
꽃망울 터지는 소리.

살랑
춤추는 바람결 따라
하얗게 날아오르며

이제야
우리들 가슴마다
메아리치는 싱그러운 함성.
(손월향·아동문학가)


+ 봄날

오래 앓으셨던 엄마가
일어나 마루에 나와 앉으셨다.  
눈이 부신 듯 실눈 뜨고 앞마당을 보신다.
        
앙상하던 목련나무에
어느새 하얀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이 세상 햇살이란 햇살은 모두
우리 집 목련나무 위에 와 앉았다.
집이 온통 환하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벚꽃 지는 날

벌써 몇 달 째
일이 없어
마당가에 세워놓은
아빠의 낡은 짐차

오늘은
차 지붕에
짐칸에
꽃잎이 소복소복 쌓인다.

머리에 꽃잎 쓰고
흐뭇하게 웃는 짐차

흠흠, 꽃향기 맡으며
아빠가
오랜만에
방에서 나오셨다.

이제 곧
봄을 배달하러 나가시겠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이른 봄에

나무에 새 움이 튼다.
풀빛 눈이 뜨인다.

나무 껍질을 뚫고
연둣빛 고운 부리를 내어놓는다.

바람하고 종일 지줄거릴,
햇빛하고 종일 지줄거릴.

아버지는
지난겨울
눈 오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끝내 돌아가셨다.

누군가
따스한 손끝으로
'외롭다'
라고 써 놓았던
병원 복도 유리창.

길가 나무마다 
새 움이 튼다.

풀빛 부리가 돋는다.
아, 아
아버지도 그렇게 다시 오시면
좋겠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여름에 관한 동시 모음> 이해인의 '바다 일기' 외 

+ 바다 일기 

늘 푸르게 살라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 굽은 마음을 곧게 

흰 모래를 밟으며 
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위를 바라보며 
내 약한 마음을 든든하게 

그리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갈매기처럼 춤추는 마음 

늘 기쁘게 살라 한다. 
(이해인·수녀, 1945-) 


+ 매미네 마을 

매미는 
소리로 
집을 짓는다. 

머물 때 펼치고 
떠날 때 거두는 
천막 같은 집 

매미들은 
소리로 
마을을 이룬다. 

참매미, 쓰름매미, 말매미 모여 
온 여름 
들고나며 
마을을 이룬다. 

여름에는 
사람도 
매미네 마을에 산다.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약수터 가는 길 

약수터 가는 길, 
푸른 숲속 길. 

매미소리를 이고 갑니다. 
매미소리를 안고 갑니다. 
매미소리를 밟고 갑니다. 
매미소리를 끌고 갑니다. 

푸른 숲속 길, 
약수터 가는 길. 
(한명순·아동문학가) 


+ 초여름 

하늘과 산이 손잡고 
초록 손수건 흔들고 있네요 

강과 들판이 어깨 기대고 
초록 꿈을 키우고 있네요 

새들과 바람이 입 맞추고 
보리밭에서 춤추며 
사랑을 노래하네요 
(조용원·아동문학가) 


+ 여름  

해는 활활 
매미는 맴맴 
참새는 짹짹 
까치는 깍깍 
나뭇잎은 팔랑팔랑 
개미는 뻘뻘 
꿀벌은 붕붕 
모두모두 바쁜데 
구름만 느릿느릿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 여름 

산 위에 오르면 
내 생각이 산처럼 커진다 

바다에 나가면 
내 가슴이 바다처럼 열린다 

파아란 산 위에서 
바다에서 
내 키가 자란다. 
내 생각이 자란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여름 냇가 

꼴 먹이러 
소 끌고 나간 냇가 
모래밭엔 
여름이 햇살과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은 와- 와- 
소리치며 
금빛 목욕을 하고 

한 뼘이나 더 처진 무게로 
머리를 감는 
더위 먹은 갯버들 

그늘 밑 소 한 마리 
끔벅이며 
더위를 되삭임할 때면 

한 움큼씩 
햇살을 주워 담는 
사과나무 

주렁주렁 
여름이 열린다. 
(송남선·아동문학가) 


+ 여름  

여름은 이른 물놀이에 
파래지는 아이들 입술로 
찾아들구요. 

여름은 귀신 이야기에 
오싹하는 아이의 등줄기로 
지나가구요. 

여름은 파랗게 채워지던 
아이들의 도화지 위에 
남겨지구요. 

여름은 뒷마당을 채우는 
귀뚜라미의 노래를 
들으며 떠나갑니다. 
(김현·아동문학가) 


+ 여름 낮 

꽃들이 덥다고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비가 
펄럭펄럭 
부채질해요. 

새들이 덥다고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뭇잎이 
살랑살랑 
부채질해요. 
(서정숙·그림책 평론가) 


+ 미루나무 그늘 

땡볕 따가운 날 
미루나무 그늘 품속에 
아기가 자고 있다 
고추밭에 엄마는 
보이지 않고 
서쪽으로 바삐 가는 해님 

차마 미루나무 그늘은 
잠든 아기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엄마를 부르고 있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모기향 

퍼런 
사과 껍질을 
깎아 놓았다. 
모기는 배가 아프다고 
방바닥에 뒹군다. 
나방은 두드러기가 나 
가렵다고 날개를 부빈다. 
오호, 덜 익은 풋사과를 먹었지 
배탈이야 배탈 
잘 됐지 뭐 
선생님이 열 번은 말했을 걸 
헤헤헤 
껍질의 냄새만 맡고도 
참지 못하는 너. 너, 너 
배운 것도 죄 까먹는 
너. 너. 너 
(안영훈·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가을에 관한 동시 모음> 박소명의 '기다려주기' 외

+ 기다려주기

할 일 못다 한
여름 뒤에서

가을은
가만히 걸음을 멈추어요.

매미 울음 걷느라 이리저리
훗훗한 바람 담느라 허둥지둥
급해진 여름을 위해

가을은
살며시 언덕에 걸터앉아요.

"찬찬히 해."
가을은
뒤돌아보는 여름에게
보오얀 쑥부쟁이 한 송이 꺼내 흔들어 주어요.
(박소명·아동문학가)


+ 맑은 날

가을은 저 혼자서도
잘 논다.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선 옥수수들에게
-어디 보자,
뻐드렁니가 났나
안 났나?

치과 의사 같은 햇볕이 찾아가
들여다보기도 하고
심심하면
아무 곳에나 고추잠자리 떼를
풀어놓기도 한다.

가을은 그렇게
가을끼리 잘 논다.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새 손톱

한여름 무더위가
물러갑니다.

설렁설렁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손톱에 들인 발간 봉숭아 꽃물이
물러납니다.

초승달 하얀 세 손톱이
돋아납니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가을 하늘

토옥
튀겨 보고 싶은,

주욱
그어 보고 싶은,

와아
외쳐 보고 싶은,

푸웅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 하늘.  
(윤이현·아동문학가)


+ 가을 하늘

옹달샘에
가라앉은
가을 하늘.

쪽박으로

마시면

쭉---
입 속으로
들어오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해바라기꽃

벌을 위해서
꿀로 꽉 채웠다.

가을을 위해서
씨앗으로 꽉 채웠다.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 얼굴로
꽉 채웠다.

해바라기 꽃

크으다.  
(이준관·아동문학가)


+ 무

가을볕이 따갑다.
모자 위에 흰 수건을 덮어 쓴 아주머니들이
쑥쑥 무를 뽑는다.
그 동안 아프지 않고
얼마나 싱싱하게 잘 자랐는지
목이 말라도 얼마나 잘 참고 참다운 무가 되었는지
아주머니 한 분이 쓰윽 흙을 닦고
한 입 베어먹고는
살짝 웃으신다.
(정호승·시인, 1950-)


+ 가을 숲

"엄마 내려가도 돼요."
열매들이 나무에서 묻고 있어요.

"단단히 익었니?"
"예!"
"예!"
"예!"
대답 소리 들려요.

"뛰어내릴 자신 있니?"
"예!"
"예!"
"예!"
대답 소리 들려요.

-톡!
-톡!
-톡!
......
열매들이 뛰어내려요.

"겨울 동안
콜콜 잠자야 한다."

열매를 덮어 주려
지는 나뭇잎.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가을 나무

잎도 열매도
떠나 보내고
이제 할 일이 없어 조용하겠다.
나를 쳐다보는
모든 이의 눈빛이 그랬습니다.

허나, 잎이 떠난 자리에
열매가 떠난 자리에
햇볕이 화안하여
더욱 허전한 그 자리

둘레 둘레
싸늘한 바람이 일어
아픔이 더해지는 그 자리에

겨울이 오기 전
꼭꼭 바느질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빛은

가을빛은
녹아서
단맛이 된다
사과 속에서.

가을빛은
녹아서
향기가 된다
국화 속에서.

어머니 눈빛은
녹아서
사랑이 된다
내 가슴속에서.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가을 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혼자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기러기떼 날아간 뒤
잠든 하늘에
둥근 달님 혼자 떠서
젖은 얼굴로
비치어도 비치어도
밤은 안 깊어.

지나가던 소낙비가
적신 하늘에
집을 잃은 부엉이가
혼자 앉아서
부엉부엉 울으니까
밤이 깊었네.
(방정환·아동문학가, 1899-1931)


+ 절간

암자는
구름을 이고
조는 듯 한가롭고

가을빛은
너무 고와
타는 듯한 노을인데

뽀르르
다람쥐 한 마리
놀다 간 빈 뜨락

부처님
닮으신 스님
부처님처럼 앉았다가

착한 아기
왔다면서
주시는 머루 한 송이

까아만
알알에 서린
전설 같은 산내음.
(정석영·승려 시인)


+ 풀벌레 핸드폰

가을 풀숲에
풀벌레가 핸드폰을
숨겨 두었다.

찌르르 찌르르
호르르 호르르
삐리리 삐리리

핸드폰을 받으려고
가만 다가가면
뚝 끊어버리는

번호도 알 수 없는
풀벌레 핸드폰
언젠가 꼭
통화하고 싶은.
(이경숙·아동문학가)


+ 풀벌레 소리

풀벌레들이 숙제를 한다

구구단을 외우고
동시를 외고
애국가를 사절까지
부르고, 또 부른다

밤새도록 저러다간
낼 아침 지각하겠다
(고미숙·고전 평론가, 1960-)


+ 수북수북

길가에
가랑잎이 수북하다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발 밑에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무릎까지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귓속까지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온몸에 수북수북하다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겨울에 관한 동시 모음> 강소천의 '눈 내리는 밤' 외 

+ 눈 내리는 밤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강소천·아동문학가, 1915-1963)


+ 상장 

성명: 겨울

위의 겨울은 봄다운 봄, 여름다운 여름,
가을다운 가을을 세상에 내놓으려
호되게 추운 날씨와 맵게 차가운 바람을 견디어
봄엔 민들레, 여름엔 잘 익은 수박,
가을엔 높은 하늘 흰 구름,
코스모스 들길을 바람 따라 걷게 하고
끝으로 흰 눈을 흩뿌려 포근포근 감싸주어
그 따뜻한 마음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

사계절 초등학교 교장 지구

짝짝!
(조하연·아동문학가)


+ 나무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 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고 높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정완영·시인, 1919-) 


+ 겨울 들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해가 미끄럼을 타요 

바람마저 웅크린 겨울 저녁 
바다는 꼭 얼음판 같아요. 
넘어가는 해가 
쭈 
르 
륵 
미끄럼을 타지요. 
(김희정·아동문학가)


+ 겨울새·26

하늘을 나는
새를 봐.

질서 공부
끝!
(윤삼현·아동문학가, 1953-)


+ 입김 

미처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추운 겨울날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 치다가
문득, 너랑 마주쳤을 때
반가운 말보다 먼저
네 입에서 피어나던
하얀 입김!
그래, 네 가슴은 따듯하구나.
참 따듯하구나.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벙어리장갑 

나란히 어깨를 기댄 네 손가락이 말했지. 
"우린 함께 있어서 따뜻하단다. 
너도 이리로 오렴!" 

따로 오뚝 선 엄지손가락이 대답했지. 
"혼자 있어도 난 외롭지 않아 
내 자리를 꼭 지켜야 하는걸."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하얀 눈과 마을과

눈이 덮인 마을에
밤이 내리면
눈이 덮인 마을은
하얀 꿈을 꾼다.

눈이 덮인 마을에
등불이 하나
누가 혼자 자지 않고
편지를 쓰나?
새벽까지 남아서
반짝거린다.

눈이 덮인 마을에
하얀 꿈 위에
쏟아질 듯 새파란
별이 빛난다.
눈이 덮인 마을에
별이 박힌다.

눈이 덮인 마을에
동이 터 오면
한 개 한 개 별이 간다.
등불도 간다.
(박두진·시인, 1916-1998)


+ 겨울 이야기 

겨울은 
아이들 때문에 찾아온다. 

알밤처럼 
단단하게 여물어 가는 
목소리. 

딱 벌어진 
가슴으로, 
눈싸움하는 
개구쟁이들이 좋아 

겨울은 
언제나 눈송이를 터뜨린다. 

불꽃처럼 
사방에서 터뜨리는 
그 눈밭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깔깔대며 자란다. 

제 키보다 
큰 눈사람 만들 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그 겨울을 혼자서 굴릴 때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눈에 관한 동시 모음> 김소운의 '싸락눈' 외


+ 싸락눈  

하느님께서  
진지를 잡수시다가 
손이 시린지 
덜 
덜 
덜 
덜 
자꾸만 밥알을 흘리십니다. 
(김소운·시인이며 수필가, 1907-1981)


+ 눈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시인, 1917-1945)


+ 꽃눈

벚나무에서 사락사락
꽃눈 내린다.

땅에 닿아도 팔랑팔랑
하나도 안 녹는다.

꽃눈으로 눈사람 만들 수 없어도
뽀드득, 발자국 생기지 않아도

하루 종일 꽃눈 맞고 싶다.
그 위를 맨발로 걷고 싶다.
(유은경·아동문학가)


+ 눈 오는 날 

아, 아, 아, 소리치고 싶다.
날뛰며 까불고 싶다.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
강아지 꼬리보다
더 바쁠 것이다.
더 설레일 것이다.
더 나부낄 것이다.

꼬리가 있대도
마침내는
붙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생일 같은 날.
(박경용·아동문학가, 1940-)


+ 눈이 오시네

야, 눈이 온다
눈이 와
눈 오는 날 나는
눈싸움할까 눈사람 만들까
흥이 저절로 나고

아버지는 어허
길이 꽤 막히겠는걸
하늘 보고 큰 걱정을 하고

눈이 이제야 오시네
기다리는 손님이 오셨다는 듯
깍듯한 존댓말로 인사하시는
우리 할머니 
(고광근·아동문학가, 1963-)


+ 안녕, 눈새야 

첫눈이 내린 아침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날이다. 

눈에 보이는 모두가 
눈으로 가득하다. 
눈으로 아늑하다. 

아이들은 일부러 
눈 속에 발을 빠뜨린다. 
뽀드득 뽀득 
눈의 인사를 
크게 듣고 싶어서다. 

지붕 끝에 살짝 앉은 
한 마리 새 
안녕, 눈새야! 

머리에 눈을 얹고 섰는 
측백나무 
안녕, 눈나무야! 

눈이 내린 아침은 
눈으로 빛나는 인삿말이 
하얗게 쌓여 간다. 
(정두리·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47-)


+ 첫눈 

첫눈은 첫눈이라 연습 삼아 쬐금 온다
낙엽도 다 지기 전 연습 삼아 쬐금 온다
머잖아 함박눈이다 알리면서 쬐금 온다

벌레알 잠들어라 씨앗도 잠들어라
춥기 전 겨울옷도 김장도 준비해야지
그 소식 미리 알리려 첫눈은 서너 송이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눈꽃 

소나무에 피어도 
눈꽃 

싸리 가지에 피어도 
눈꽃 

억새 줄기에 피어도 
눈꽃 

색깔도 하나 
이름도 하나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똑같이 피는 겨울꽃 

눈꽃. 
(이경애·아동문학가)


+ 눈이 내린다

머언 먼 나라에서
은빛 반짝이며
온 세상 가득 눈이 내린다.

지금
산너머 초가지붕
고향집이 내게로 찾아온다.

뿌옇게
잊혀졌던 얼굴들이
되살아 날아온다.

망울망울
날아오르는
비누방울처럼.
(윤이현·아동문학가) 


+ 눈 잎

나풀나풀
눈 잎이 내려온다.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골고루 보내주는
크리스마스 
카드.

소복소복
하얀 봉투에 담은
하늘 나라의 
축복.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순 없어도
왠지 
설렌다.
왠지 
즐거워진다.

산과 들이
축복 속에 묻힌다.

교회의 
종소리도
하얗게 묻힌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눈사람

눈덩이를 굴리면
흙도 묻어오고
검불도 묻어오고
발자국도 묻어온다

눈사람 속에는
길 한 자락이
돌돌돌 감겨 있다.
(곽해룡·아동문학가)


+ 눈 내린 날 

소복히 눈 모자 쓴
공중전화실로

소복히 눈 모자 쓴
꼬마가 들어간다.

소복히 눈 내린
거리를 내다보며

소복히 눈 내렸다고
전화 하려나 보다.
(문삼석·아동문학가, 1941-)


+ 눈

자장
자장

하늘이 불러주는
하얀 자장가

풀잎 머리 위에
나무의 팔 위에
산의 어깨 위에

자장
자장

지붕이 하얗게 잠들고
들이 하얗게 잠들고
(박두순·아동문학가)


+ 눈 덮인 아침 

마을은 
일어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눈을 덮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걸 보면. 

강아지는 
놀고 싶어 못 견뎠나 보다 
눈밭 가득 
발자국이 뛰어다닌 걸 보면. 

새들은  
노래하고 싶어지나 보다 
해도 뜨기 전에 
자꾸만 지저귀는 걸 보면. 

냇물은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들을 깨우는 얘기를 
아침에도 재잘대고 있는 걸 보면. 

온통 
마음이 설레는 때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눈 오는 날

누구인가
살며시
하늘의 빗장을 뽑아 내자

갇혔던
백조 떼들이
하얀 초롱불을 들고 와
나뭇가지에
밤내 켜 걸어 두더니….

산이
학처럼
나래 펴고 선
아침 

꺼칠하던 나무들이
숨죽이고
새하얀 말씀을
받들고 섰네. 
(박두순·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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