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1 보들레르와 교감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어머니와 독재적인 양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문필가라는 직업에 대한 희망을 단념시키기 위해 가족은 19세의 그를 강제로 상선에 태워, 그는 모리스섬과 레위니옹섬을 유랑하게 된다. 파리로 돌아와 그는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져들고,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비참한 보헤미안 생활을 한다. 이때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느 뒤발과 악연을 맺었으며 이는 그가 관능적인 시를 쓰는 계기가 된다. 그는 1841년서부터 1857년에 발간될 <악의 꽃>의 시편을 쓰기 시작한다. 1848년 혁명으로 신문에서 정치적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다시 그는 문학 비평과 예술 비평을 쓰기 시작하고, 1860년에는 <인공낙원>이라는 산문시를 발행한다. 그러나 그의 <악의 꽃>은 발간되자마자 소송에 걸렸고 6편의 시는 종교와 풍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삭제명령과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반신마비와 실어증 상태에서 46세로 사망한다. <악의 꽃>은 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다룬다. 거대한 건축물처럼 일관된 의도로 구성된 이 시집은 원죄의식에 의한 고뇌, 순수미의 추구와 하강과 타락의 취미,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의 심리가 순수하고 에로틱한 사랑과 복잡하게 섞여있다 내밀한 정신성으로 일관된 <악의 꽃>은 근대시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현대를 열어주었다. 초판은 서시 외에 100편의 시를 수록하고 <우수와 이상>77편, <악의 꽃> 12편, <반역> 3편, <술> 5편, <죽음> 3편의 5부로 되어있다. 제목 자체가 악과 꽃을 결합시키며 모순어법을 택하고 있는 이 시집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상과 심연 사이에서, 쾌락과 추락의 유혹, 그리고 퇴폐와 증오와 고뇌 사이에서 보들레르의 내면이 겪는 모순의 아픔들을 그리고 있다. 삶이라는 커다란 악속에서 자아는 모순되게도 삶의 황홀과 '지고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타기를 한다. 간단히 말해 이 시집 전체는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이다. 보들레는는 이렇게 서구시에서 거의 최초로 심연, 즉 심층적 자아 속으로의 탐사를 시화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악의 꽃>은 "보들레르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것이다"라고(Maynial, 1973;317). 그러나 처절한 분열과 갈등과 모순에 찬 그의 삶과 시는 사실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보들레르는 에드가 포우의 훌륭한 번역가로서, 그에게서 언어를 구조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낭판파, 고답파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의 시는 베르렌, 랭보, 말라르메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무의식의 심층은 언제나 자신의 섬세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으며 언어와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와 추종 불가한 감각과 통찰력과 상상력과 미의식은 추상성과 관능성과 음악성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시의 지평을 열었다. 자연은 사원, 거기 살아있는 기둥들은 가끔씩 혼동된 말들을 쏟아낸다. 사람은 거기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가고 숲은 그를 친숙한 눈길로 물끄러미 보네. 멀리서 섞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밤처럼 빛처럼 광막하게,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지네. 어린아이 살갗처럼 풋풋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썩고 짙고 강렬한 향기도 있어, 용현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하네. <교감> 상징주의 문학이론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교감(交感 correspondance)'라는 개념이 있다. 조응 또는 만물조응(萬物照應)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실 만물 간의 조응에에서 출발한다기보다는,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이 여러 감각 간의 내밀한 경계를 허묾으로써 시작한다. 위의 시에서 "향기는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 무엇이 확산된다는 말이다. 감각들 사이의 의도적인 혼동은 이어서 언어의 관습 허물기, 마침내 인식 대상이나사물들 사이의 벽 허물기로 이어진다. 이 3단계는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이제 셋째 연에서향기는 촉감과 소리와 색깔을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공감각 작용을 통한통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틀에 박힌 사물인식법과 감각을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기존의 이미지나 인식이나 감각의 형식은 이 시에는 이미 허물어져있다. 이러한 교감에는 어떤 가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이는 현실은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상에 비하여 '거짓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징시는 이 가상을 허물고, 외면을 이루었던 원소들을 재조합하여 또 다른 차원이나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시에 나타난 외적 지지대, 즉 숲, 사원, 기둥 등은 이미 현실의 기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구조물들이다. 사물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뒤에 자리하는 이상적 형태들의 상징들로서, 거대한 '상징의 숲'을 이루어 낸다. 위의 시에 나타난 감각을 다루는 보들레르의 새로운 방식은 사물에 대한 다른 상상체계를 열어주었다. 사물 인식에 있어서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라는 낭만주의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사실은 감각들을 분석하고 통합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밀고나간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의 뒤섞임 등, 감각들의 통합과 융해와 감각 차원의 다양화는 대상들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도 동시에 감응하여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주적 유추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시인은관계들의 수수께끼를 읽어내는 '해독자'가 된다. 향기,색채, 음향 등 여러 가지 감각 내용들이 등가관계를 이루도록 '수평적 교감'이 즉 공감각이 이루어질 때, 시인에게는 다른 공간이 열린다. 세계의 광대한 열림이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열린 감각의 새 차원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시인은 예언가처럼 사상(事象) 뒷면을 읽어내고 우주를 해석해낸다. 삶은 이제 더욱 가까이 그 본질을 드러낸다. '혼동된 말'들은 울림과 깊이로 다가오며 그것을 이해하는 자는 '상징의 숲'을 자연스러이 가로질러 지나간다. 이 새롭게 형성된 공간은 존재감이 극대화될 수 있는 감각 능력에 도달했다는 말이며, 상징의 새로운 공간에 '사람'이 익숙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훈련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이해력이다. 시선의 힘에 의해서 공간은 확장되고 축소된다. 무한한 확산도 가능하다. 현상적 외관 저 너머 기호와 상징으로 변한 초자연적 세계- 감각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그 통로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소통의 열쇠는 은유와 '아날로지(유추類推)' 속에 있다. 이제 사람은 우주와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있다. '칠흑 속에 하나'라는 것은 무의식 심층까지도 통하는 통일이다. 시인은 하나의 작은 징조로 우주를 알아보게 된다. 이파리 하나로 우주만상을 알고 자연의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삶으 내려다보며, 힘들이지 않고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여. (상승) 여러 감각들 간의 교감이라는 보들레르 시학의 독창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시 <저녁의 조화>에서, 시인은 색채와 후각을 음악과 언어와 결합시키는 정교한 모험을 시도한다. 이제 다가오네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는 시간이 소리와 향기들은 저녁 공기 속을 떠도나니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고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냥 전율하네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이 슬프고 아름답네.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아 슬프고 아름답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죽었으니..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은 빛나던 과거의 잔해를 모두 거둬들이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 죽었으니,, 내 속에 그대 추억의 성체합처럼 빛나네! (저녁의 조화) 시인에게 오랜 도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정신적 여인 사바티에Sabatier 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시에서, 그는 내면 차원보다 현실 차원에서 만물조응이라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화(調和)'란 '소리와 향기들'이 섞여 떠돌면서 영상시키는 색채와 움직임과형태들('제단' '성체합')의 마술이 사랑에 대한 회한을 주문처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소리와 얗기들이 떠돈다'는 것은 소리와 향기가 형태들과 색채로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환기술같은 것으로, 이 환기술은 사랑에 대한 회한과 연결된다. '팡툼(pantonm)'은 보루네오 지방이나 말라카 반도의 토착적 양식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국적 색채와 지방색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해서 쓰던 4행의 시구로 이뤄진 시형을 말한다. 시에서 각 연의 2, 4행은 다음연의 1, 3행에서 반복되고, 다시 마지막 행은 시의 첫 행을 반복하며 시를 종결시키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 시는 팡툼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 첫 행이 마지막 행에 나타나지 않으며, 그 변형이라 하겠다. 겉으로 보면 이 시는 소박한 정경 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석양, 꽃향기, 바이올린 소리등의 몇 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사실 '빛나던 과거의 잔해'마지막의 "내 속에 그대 추억으니 성체합(聖體盒)처럼 빛나네!"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시 시는 시의 의미와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리듬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독자는 시인의 내적 춤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시에서 반복적 기법은 여타의 움직임에는 무관한듯 시인이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고 자족적인 움직임을 되풀이하게 하여, 생각의 원무(圓舞)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기증이 의식을 독점한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의식은 비틀거리지만 쉬지 못한다. 소용돌이치며 도는 양식 때문에 주의력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여러 움직임들에 이끌리고 어지러워져서 어디에 정착할지 헤맨다. 시의 마지막 행은, 계속 확장되며 피할 수 없는 어지러운 윤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대 추억'이라는 말로써 위의 모든 말들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중심을 만든 후에, 같은 생각과 말들을 시 전체로 되풀이하며 확산시키는 효과다. 시적 자아는 잠시 스스로의 생각을 확인함으로써 쓰러지지 않고 원무를 다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들의 음악적 배치는 시의 본질적 테마를 시행 전체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잃어버린 과거의 행복에 대한 인상을 후각, 청각, 시각을 복합하여 호소함은 자아는 이 세상에 잡혀있다는 상황을스스로에게나 독자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절망의 현기증 나는 되풀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로잡힌 자의 날개'라는 생각은 시인 속에 항상 자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으로 거대한 바다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여행의 무심한도행으로, 쓰디쓴 심연 위로 미끄러져가는 배를 따라가는 이 새를. (-----)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는다. 야유로 찬 땅 위에 그리하여 유배되나니, 거인의 두 날개는 걷지도 못하게 한다. (알바트로스) 현실에서 이상세계는 실현될 수 없고 시인은 '쓰디쓴 심연 위'를 줄타기한다. 조롱과 경멸 속에 세상과 유리되는 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인공낙원'을 통하여 위안 받고자 한다. 그의 시는 <교감>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의 심층을 내보여주기도 하고, <저녁의 조화>에서 처럼 정신의 불분명한 영역을 열어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알바트로스>에서는 현실의 불운을 시로 그린다. 시인은 또 현실과 자신에 대한 절망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내 청춘은 칠흑의 폭풍우, 여기 저기 빛나는 햇살 스쳐갔으나 천둥과 바람이 어찌나 휩쓸었는지 뜨락에는 몇 개 주홍빛 열매밖에 남지 않았네. (---) (적) 그러나 그에게는 개인적 상징주의보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그의 시들은 초월적 국면을 강조하고 현실을 넘어서 이상세계를 통찰하려 시도한다. <저녁의 조화>에서 그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잃어버린 천국을 비통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향수는 <여행초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집착은 찬란한 꿈이 되어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곳의 고요함과 화려함, 그곳의 맑은 하늘과 질서는 자주의 그의 시에서 언급된다. 이상세계는 마치 살아있는 나라인 듯그려진다. 시인은 이렇게 현실 너머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전달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은 '모어'를. 즉 "말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잇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이 지상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언어는 이 지상과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럽고 필요 없는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현실에서 무용하며 무상의 것이다. 그의 시집의 많은 부분은 이처럼 이상세계를 본 자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현실은 우울한 지옥과 푸른빛을 동시에 심연처럼 숨기고 있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2 베를렌, 회한의 선율 상징주의는 언어의 내용보다 '언어가 낳는 효과'를 중시하는 문학경향으로, 말을 의미있게 연결시키기보다는 말이 빚어낼 수 잇는 뉘앙스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폴 베를렌(1844-1896)은 <시법>이라는 시에서 언어의 결, 죽 뉘앙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말의 사용에 음악의 특징을 도입하려 한다. 음악의 섬세한 환기술과 유연성을 시에 도입하여 시어의 해방을 노림으로써, 그는 상징주의 언어를 풍요롭고 새롭게 한다. 관념 속에 머무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살을 지닌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그러기 위해서는 '홀수각'을 택하라. 더욱 모호하게 노래 속에 잘 녹아들며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 왜냐면 우린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이다.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 오! 뉘앙스만이 오직 결합시킨다네, 꿈과꿈을, 플릇과 뿔피리를! (---) 음악의 리듬과 환기력과 조화의 힘은 언어와 결합하여 사물과 영혼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영혼의 상태'를 조성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홀수각의 언어와 '회색 노래'는 모호한 미결정의 영역을 열어준다. 그리하여 시는 정형의 풍경이 아니라 풍경의 확산이 된다. 시인은 묘사와 인식의 기존 틀을 지움을써, 풍경을 극복하는 힘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다 베를렌은 더불어 상징주의자들은 시구의 해방을 위한 여려 실험들을 하게 된다. 홀수각의 시에 이어 시구의 다양한 '걸치기', 자유시, 구두점 없애기, 페이지 개념 바꾸기, 산문시 등, 그 시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베를렌은 '자유화시'에 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운문의 틀을 깬 것은 아니어서, 전통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는 대개 상징주의 작품처럼 난해하지도 않았고 일반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문학적 야망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이상'을 그려내는 능력에 뛰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현재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다. 밀착이라기보다 자신이 감정 속에 매몰되어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시를 썼다 하겠다. 베를렌의 삶은 랭보와의 일화를 포함하여 저주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있다. 베를렌의 알콜중독은 독주 압생트를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마틸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고운 노래>의 시편들을 쓰면서 안정을 찾은 듯하였다. 그러나 1870년, 17세의 마틸드와 결혼하였지만, 당시 17세였던 랭보가 여덟 편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내왔고 베를렌은 곧 그의 시에 매료된다. 그는 랭보를 파리로 부르고, 둘의 관계는 모두의 의심을 받게 된다. 그들은 벨기에와 런던에 일지 정착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까닭으로 시를 찾던 두 사람은 방랑 끝에 충돌하기에 이른다. 랭보는 베를렌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으로 쏘고 체포된다. 그들의 만남은 18개월만에 불화와 상처로 끝나고 베를렌은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 있게 된다. <그것은 도취...>라는 시가 씌어진 시기는 시인이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이혼문제와 화해의 시도 등으로 흔들리고 있던 기간이다. 이 시는 처음에는 '무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무언가>라는 동명 시집 속에서는 '잊혀진 아리에타'라는 제목의 9편으로 된 연작시 중 첫 번째 시로 실려 있으며, 무제이다. 들판에 부는 바람이 숨을 멎는다 파바르 Favart 그것은 나른한 도취. 그것은 사랑 뒤의 피로, 그것은 미풍의 애무에 일어나는 숲의 온 전율, 그것은 회색 가지들 쪽으로 퍼져가는, 작은 목소리들의 합창. 오 가녀리고 무후한 살랑거림 소리! 그것은 속삭이며 소곤거린다. 그것은 물결치는 풀밭이 내뿜은 작은 외침소리 같아... 마치 굽음 물길 아래. 조약돌이 소리죽여 구르는 소리 같아. 탄식소리 숨긴 채 비탄에 젖은 이 영혼, 그건 바로 우리의 넋이지 않니? 나의 넋, 그래, 너의 넋이지 않니? 거기서 온화한 저녁 아주 나지막이 초라한 송가가 새어나오지 않니? 랭보의 의도적 착란과 광기, 환각에 사로잡힌 방랑과 일탈과는 달리, 베를렌은 내부의 멜로디를 향해 간다. 랭보의 공격적 주제 선택과는 달리, 그는 석양, 안개, 달, 비, 추억, 노래, 회한 등 소박한 것을 즐겨 소재로 택한다.이 시는 대부분의 베를렌의 시처럼 여성적인 섬세함이 두드러지며, 시인이 말하는 "'미결정(미묘함)'이 '결정(선명함)'과 뒤섞이는 회색 노래"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이 불투명한 풍경으로 펼쳐지지만 그것은 별개의 시공간이 아니라 자아가 행복해하거나 아파하는, 자아의 서정이 투영된 극히 주관적인 풍경이다. 결코 풍경은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영혼의 상태'를 대신 그려낸다. 미세한 소리들은 모두 숨죽여 영혼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들판이라는 공간 풍경 속에는 바람조차 숨 죽이고, 넋은 귀 기울여 존재에 대한 해답을, 즉 자신에게 남아있는 길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풍경에서 아무 것도 사실은 완전히 죽은 것도 완전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와 움직임은 하나가 되어, 완전한 침묵이 아니라 가녀리고 초라하게 떨고 있다. 소리에 대한 묘사가 특징인 이 시는 거의 침묵을 강요당한 영혼에 대해 소리 죽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 노래의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다. 베를렌의 시의 특징은 이렇게 회색 풍경 속에도 있고 회색의 노래 속에도 있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해 생각하게 할뿐 아리나. 각각의 시어 또한 소리와 음악에 연결되어 있다. 시인이 영혼의 상처는 그대로, 소리의 풍경으로 전이된다. 영혼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바로 옮겨간다. 이렇게 그의 시의 기본 요소는 소리라 하겠다. 마치 랭보에게 색깔이, 보들레르에게 향기가 그러하듯이. 그가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이라고 외쳤을 때의 뉘앙스란 새깔보다 소리의 뉘앙스이다. 랭보의 색깔과 그의 소리 사이에서 두 시인의 기질의 차이를 읽을 수 있겠다. 랭보와의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뒤 베를렌은 과거를 지우기 위해 <예지>의 시편들을 쓴다. 하늘은, 지붕은 위로, 너무 푸르고, 너무 고요해! 나무는, 지붕 위로, 종려잎을 흔드네. (----) 아니 , 이런, 삶이란 저런 것, 단순하고 평온한 것을. 평화로운 웅성거림 도시에서 들려 오네. - 오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한 없이 울어대며, 말해 봐, 거기 잇는 너, 넌 무얼 하였지, 너의 젊음을 가지고? <하늘은 지붕 위로..1,3,4연> 몽스에서 출감한 시인은 신앙을 엿보기도 하지만 결국 여전히 폐인상태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시에서 종교적 신앙의 자취를 찾아내지만, 우리는 종교적 회한보다 오히려 가슴 치는 통한과 마주하게 된다. 시의 전반 3연들을 모두 마지막 4연에 대비시킴으로써 회한은 거의 오열이 된다. 1연의 나뭇가지의 고요한 흔들림. 여기에는 생략된 2연의 종소리, 3연의 웅성거림 소리는 모두 4연의 울음소리와 대비된다. 시인의 모든 신경은 이 시에서도 소리에 집중되어있다. 1,2,3연의 억제된 리듬은 마지막 연의 파격으로, 강렬한 아픔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도 랭보이 것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다. 나약하다 할 정도로 그의 시는 결 고운 비단과 같다. 랭보가 자신의 열로 인하여 스스로 불타고 연소하는 형이라면, "베를렌의 것은 더 밀도 있고 관대하며 역광의 아름다움 같은 휘귀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랭세,1984;158) 그는 랭보처러럼 강한 자아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 하나 하나에서 '영혼의 상태'가 실려있지 않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어들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마음의 풍경이어서, 좀체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못한다. 랭보처럼 풍경을 이끌거나, 보들레르처럼 풍경 속을 드나듦이 아니라. 풍경을 아파하는 것이다. 힘 잃은 여명은 들판으로 쏟아붓는다 지는 해의 우울을. 우울은 달콤한 노래로 내 마음을 흔들어 석양에 나를 잃다. 모래톱 위로 저물어가는 태양빛처럼 이상한 꿈들, 진홍빛 유령들이 펼쳐진다, 쉬임 없이 (----) <지는 해> 그의 공간이란 두 시인들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고, 장식있는 배경도 아니며, 자신을 고요히쏟아붓는공간인 것이다. 소리, 색, 미세한 떨림이나 움직임, 빛의 변화 - 이 모두가 오직 하나만을 향하고 있다. 풍경 속에 자아는 반복되어 투사된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빛에 따라 자아도 변한다. 페이르는 이런 베를렌을 '인상주의 시인'이라 하였으며 마르셀 레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베를렌은 그 자체가 송두리째 하나의 자연이다. 매우 섬세하고 복합적인 자연, 여러가지 영향들을 이용할 줄 알지만 즉각적으로 주어진 자연, 근원적이며 삶 그 자체에서 직접 자양을 섭취하는 독창성의 자연이다. (Raymond, 1983;31) 따라서 베를렌의 시는 상징주의의 다른 거성들의 작품들과는 다리 난해성을 거의 띠지 않는다. 소박하고 꾸밈없으며 친밀하고 서정적인 특성들은 그의 구어체 어조에서 가장 빛난다. 그는 많은 상징주의자들처험 초월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결여되있다는 점은그의 시의 결함으로 볼 수 있다. 보들레르에게서 볼 스 있는 천국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결여는 그에게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의 개인적 상징주의의 특성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의 명성은 시형의 완벽성이 아니라 가사 없는 노래의 더듬거리는 시들로 더해졌다. 독자에게 호소력 있었던 것은 리듬의 근저에 있는 끝없이 상처 입은 영혼, 그것의 리듬 있는 넋두리였던 것이다. 모험이란 그에게 숭고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었으며, 문학은 사실은 그의 계획 밖의 것, "소위 문학이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파격시와 그의 음악은 언어의 논리보다 내적 표현을 따르는 형식이었다. 그것은 어떤 유파의 논리에 머물지 않았다. 내면을 따라간 후에야 그의 이론이 있었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 (----) 그대의 시는 운 좋은 모험이기를, 박하와 백리향을 꽃피워가며 아침 찬 바람 속에 퍼져가는 모험... 소의 문학이라는 것은 나머지 것이다. <시법> 베를렌이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택하라고 하는 것은 운문을 형식의 제약들에서 해방시키라는 말이다. 언어의 무용한 중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홀수각을 택하는 것이고, 종래의 문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렌의 거부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몸짓이었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상징주의에 기여한 공헌이며 프랑스 시를 자연스럽게 전통에서 해방시키는 길이었다. 그는 각운을 완전히 폐기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3. 랭보와 '견자'의 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871년 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갔지만, 그들의 관계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랭보는 결국 1873년 브뤼셀에서 만취한 베를렌의 총에 맞게 된다. 어머니의 농장이 있는 로슈로 돌아온 랭보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지옥의 계절>을 쓴다. 그러나 베를렌과의 작별에 이어, 1875년경부터는 문학과 작별하며 네덜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을 유랑한다. 상아밀매, 무기상, 모피상을 했으며, 이미 문학과는 절연한 것이었다. 1880년에는 일자리를 찾아 홍해의 모든 항구들을 찾아다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에 종사한다. 1891년 관절염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며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 채 마르세유에서 37세로 사망한다. 나는 떠나갔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지르고 외투는 다 해져 거의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하늘 아래를 갔지,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신도였다네. 오 랄라! 찬란한 사랑을 얼마나 꿈꾸었던지!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어. - 꿈꾸는 엄지동자처럼 나는 길목마다 시를 뿌려두었지. 숙소는 큰곰자리에 두었고 - 내 별들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사르락거렸어. 그래 나는 길 가에 앉아 별들이 소리에 귀 기울렸지, 구월 그 아름다운 저녁에, 그때 이마에는 생명수 같은 이슬 방울들이 떨어졌어. 그 저녁, 나는 환상 같은 그림자에 싸여 운을 맞추며 터진 신발 끈을 잡아당겼네 칠현금인양,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대고서! <나의 방랑> 발을 칠현금에 비유하고 있다. 걸어가며 엄지동자처럼, <헨젤과 그레텔>에서 처럼, 시를 길 어귀에 쏟아둔다. 칠현금 같은 발의 걸음마다가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가장 자주 회자되는 랭보의 시 중 하나로서, 이미 랭보의 분방한, 인습을뛰어넘는 자유로움과 공격적 성향이 보인다. 베를렌 같은 조심스러움이나 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베를렌이 그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하였듯이 거침없는 그의 행보와 꿈의 뒤를, 시는 자연스레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풍경 속에 각인된 슬픔이라든가풍경과의 갈등의 조짐은 없다. 이 방랑기는 1870년 말에씌어졌는데, 랭보의 글쓰기는 16세가 되기 전인 1870년에 시작되어 1875년에 끝난다. 최초의 시를 발표하고 6개월도 되지 않은 1871년 5월에 랭보는유명한 <견자의 편지>를 썼는데, 거기서 그는 프랑스 시를 '운을 지닌 산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그의 시는 이처럼 반항으로 시작한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을 꿈꾼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옛날,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포도주들이 흘러내렸던 축제였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 그리고 그것은 쓰디쓰다는 것을 알았다. - 그래서 그것을 모욕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서시> 지옥의 계절) 계속되어 이어지는 반어적 문장들의 속도는 시인의 저항과 파괴의 강도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기존의 가치와 원칙들의 거부에서 출발하며 온갖 신성모독과 잔혹과 거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반항은 맹목의 것은 아니었으며, 랭보는 부정의 끝에 하나의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나는 타자다. Je est un autre'라는 유명한 선언으로 제시된 해법이다. '이다'라는 불어 동사는 1인칭 'suis'가 아니라 3인칭 'est'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시인은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뜷어볼 수 있는 '견자見者'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파괴를 통해 객관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파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시인은 모든 감각들이 오래고도 광범위하여 논리있는 착란에 의하여 스스로 견자가 된다. 사랑과 고통과 광기의 모든 형태들, 그는 스스로를 탐색하고, 자신 속에서모든 독들을 다 소진시켜, 그 진수만을 간직한다. 이는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필요로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벌이다. (---) 왜냐면그는 미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폴 드므니에게>,1871.5.15)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미지未知'란 보들레느나 말라르메도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도달 가능하다. 미지에 도달하는 것은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경작하여' '이미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영혼의 단련과 스스로에게 의도적인 형벌을 가함으로써, 즉 모든 감각들의 미리 계획되 의도적인 착란에 의하여, 이미 이곳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감각과 내적훈련을 통한 정신의 해방은먼저 스스로 '불량소년(voyou)'이 됨으로써, 즉 종교나 기존 사유체계 등,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주저 없는 파괴와 항거로써 가능하다. 질서와 그것의 구속, 기성의 행복과 사랑, 윤리, 종교, 요컨대 인간 정신의 그 어떤 산물이라도 내적 혁명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나의 광기들에 가운데 하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래 전서부터 가능한 모든 풍경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부하였고, 그림과 현대시의 명성은 하찮은 것이라고 여겼다. <언어의 연금술> 반항과 거부에 의하여 공간은 변모될 수 있는 것이다. 베를렌처럼 그 속으로 파묻히거나 사라지는 풍경이 아니다. 자아는 풍경을소유하거나 버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파괴에는 이를 명령하는 논리가 우선된다. 견자가 되는 것은 의도적 광기와 감각과 정신의 훈련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중성적이고 몰아적인 상태에 도달한다. '나는 타자다'라는 말은 주관과 객관적 진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통일된 경지이며, 인식의 장애물들이 정신의 힘으로 극복된 상태를 말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다. 그래서 랭보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코기토(cogito)에 맞서는 코기토를 제안한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on me pense'(1871년 5월, <이장바르에게>)다. '사람들은 나를 생각한다'이거나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이처럼 나는 타자다. 타자인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 전개를 성찰한다. 이 몰아적 정신과 감각의 상태에서 , 시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게 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랭보에게서 이 부분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견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한 단계지 견자가 시인은 아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끝에 마치 무병을 앓은 후처럼 견자, 즉 '최고의 현인'이 되지만그것으로 시인은 아니다.시인은 모음의 탄생을 체득한 자여야 한다. 랭보가 "나는 모음의 색깔들을 만들어내었다"라고 하며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라고 하였을 때 랭보가 꿈꾸는 것은 언어를 감각적으로 재현하겠다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그는 창안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빚어질 정신과 언어의 우주, 즉 새로운 창조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따라서 '잠재된 탄생'을 연금술로써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는 '모든 감각에 적용될 수 있는 시어'이다. 이 '보편적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야말고 연금술사의 소명이다. 랭보는 그러니까 자아의 문제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었던 베를렌의 개인적 상징주의와는 달리, 그 너머의 상징주의, 초월적 상징주의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베를렌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 쓴 그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 <취한 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개인적 모험으로 시작하는 여행담이나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배로 의인화시킨 표류의 이야기나 꿈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시인이 그리는 천국에 대한 인상이기도 한 것이다. 랭보의 천국은 모험과 광기 후으 움직이는 공간이지, 보들레르식의 '평온과 호화 그리고 관능'의 도피적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랭보는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 심연을 동시에 암시하기도 한다. 모험은 지속되지 못하고 단념 속에 다시 바다의 이면으로, 현실 속의 어두운 물로 돌아온다. 나는 항성 같은 군도를 보았네! 또 착란하는 하늘을 표류자에게 열어주는 섬들을 보았네. - 네가 잠들고 유배되는 곳은 바닥 없는 그 밤들 속인가. 수많은 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기운'이여? 그러나 사실 나는 너무 울었다! '새벽들'은 가슴 에인다. 모든 달은 잔인하고 모든 해는 가혹하다. 쓰라린 사랑은 내게 취할 듯한 무기력을 불어넣었다. 오 나의 용골이여 깨어져라! 바다로 가야겠다!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향기로운 저녁 무렵 웅크린 채 슬픔에 찬 아이가 오월 나비처럼 덧없는 배를 띄우는 검고 차가운 물웅덩이다. (<취한 배>) 랭보는 당시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보들레르처럼 인생 경험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았다. 상상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이었다. 시인은 감각의 훈련으로 절망의 심연을 뜷어보는 능력에도 도달한다. 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착란으로 스스로를 견자로 만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들'을 경험하여 흔히 감지되지 않는 '사물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초감각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 -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 (---)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연구였다. 나는 침묵을, 밤들을 썼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였다. 나는 현기증들을 고정시켰다. (---)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사원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 (<언어의 연금술>)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어떤 신비로운 탄생, 즉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재현될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란 침묵 뒤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세계, 우주적 본질들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세계이다. 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언어는 모든 감각에다 적용될 수 있다. 새 언어에 의해서 착란은 질서로 안착된다. 그가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 사원을 보았다."라고 했을 때, 환각 만들기라는 행위는 거부하고 파괴하였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능력이다. 시란 이제 부정이 아니라 초월을 위한 방법이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신비로운 도취 속에서 우주의 원초 속으로 환원되게 하는 말 - 이를 위하여 자아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모험을 자청하였었다. 이 모두가 관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교란의 정도는 가히 파괴적이었고, 모험을 가능하게 한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부정되었던 현실이 현실을 되찾는다. 현실이 '미지'가 된다. 랭보는 이 모든 실험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치웠으니, 그의 반항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시인은 '불을 훔쳐온 자'라는 것은 '모든 감각에 적용되는 언어'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이 '보편적 언어' 또는 '우주적 언어'는 향기, 소리, 색채 등 모든 것을 융합하며,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달된다. 영혼을 끄는 영혼의 언어를 갖고서 '보편적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적 감각은 예언적 감각이 되고, 신비로운 발견의 수단이 되며, 무의식까지 탐사하는 정신의 섬세한 도구로 변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행해진 이 모든 실험들은 말라르메도 지적하였듯이 인내심의 결여를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그의 모험의 크기는 사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의 일화까지 포함하여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감각과 언어 조합력과 추진력은 아직도 신화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4. 말라르메와 구도의 여정 말라르메(1842 - 1898)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의 재혼, 이어 여동생 마리아의 죽음 등 가정적으로 이미 어려서 불행을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메리 로랑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후의 삶은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여, 시인 스스로가 <자전>에서 '일화가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포우를 더잘 읽기 위해' 런던에 머문 적도 있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영어 교사로 지냈다. 그 외에는 오직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2년 전 '시인들의 왕'으로 뽑힌 것, 그리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문학모임 <화요회>를 가졌다는 외에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정말 랭보식의 일화나 사회적 야망은 거의 없이 평온한 삶을 살다가, 퐁텐느블로 인근 발뱅의 시골집에서 삶을 조용히 마감한다. 그는 보들레르를 읽고 <현대고답파>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삶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고답파에서 언어 형태의 완벽성을 배웠고 <악의 꽃>에서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비극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창천(蒼天)', 즉 이상에 대한 꿈은 보들레르의 이상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도덕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그의 시학은 본질적이며 관념적인 어떤 실체를 찾기를 향하여 열려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의 시적 경험은 대개 모험이 주는 영감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란 우연스런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삶의 우연과는 무관한 언어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일화는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의 삶은 여러 문학적 시도들로 가득 찼다. 말년의 <주사위 던지기>라는 작품은 그의 모든언어 실험들의 종합편이자 정수들을 모아놓은 걸작으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시언어의 혁명을 촉발시켰다. 사망할 때까지 시인은 절대의 '책(Livre)'을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과 1898년 사이에 쓴 몇 편의 시는 대단치 않은 것들이며 시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오랜 동안 말라르메를 보는 시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시언어의 체계를 정립시킨 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는 보들레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말라르메의 절대적 상징주의는 본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유래되어 나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말라르메의 절대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의 문학을 '절대적 상징주의'라고 불리게 하였지만, 그 출발은 자아와 서로 분리된 이원성의 인식에서부터다. 아래에 실은 <바다의 미풍>은 보들레르의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꼽히는 시이다. "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를 외쳤던 보들레르처럼, 그도 또한 도망치라고 외친다. 현실이 아닌 이국의 자연이 보들레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계속 '여행 초대'를 하고 있었다. 오! 육체는 슬픈 것,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달아나자! 저기로 달아나자! 새들은 알 수 없는 물거품과 하늘 사이 있음에 취해있음을 나는 느낀다! 아무 것도, 눈에 비치는 낯익은 정원도 바닷물에 젖어가는 이 마음을 붙들지 못하리 오 밤들이여! 백색이 지켜주는 빈 종이 위에 쏟아지는 램프의 고적한 빛도 아이에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겠다! 기선이여 돛을 흔들며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잔인한 희망들에 낙담하고도 '권태'는 손수건 흔드는 최후의 작별을 아직도 믿네! (---) 여기까지 보들레르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권태'는 보들레르의'우울(spleen)'과 색깔이 다르다. 이미 백지에 대한 고뇌가 언급되고 있으며, 생략한 시 뒷 부분에 나오는 파선(破船)의 이미지는 말년의 <주사위 던지기>에 중요한 장치로 다시 등장한다. 1864년 그는 이상세계에 대한 꿈 속으로 단순히 도피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는다. 현실을 대체할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논리를 갖는 것이야 하겠다. 그리하여 1864년과 1865년 사이에 그는 <에로디아드> <반수신의 오후>를 포함하는, 절대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때 시인은 '정신의 도구인 언어'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와 구분되는데, <알바트로스>와 다음의 <백조의 소네트>를 비교해보면 두 시인이 얼마나 다르게 각자의 세계를 펼쳐갔는지 알게 된다. 순수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이루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서성이는 잊혀진 이 굳은 호수를 취한 날개짓으로 우리에게 찢어줄까! 옛날의 백조는 기억한다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였을 때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노래하지 못한 까닭에 모습은 찬란하나 벗어나려 하여도 희망 없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새는 온 목을 빼고 떨쳐버릴 것이다. 공간을 부정하나 공간이 안겨주는 이 하얀 번민을. 그러나 깃털이 묶여있는 땅에 대한 혐오는 떨치지 못한다. 자신의 순수 광휘가 이곳에 부여하는 유령이란 모습, 무용한 유형 중에 자신을 감싸는 모멸어린 차가운 꿈 속에서 굳어져간다. '백조'는.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이며, 프랑스 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로 조사된 바 있다. 앞의 시에서 '백색이 방어'해주던 원고지는 이 시에서는 '하얀 번민'으로 나타난다. 하얀 번민이란 원고지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이 느끼는 창조의 고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번뇌가 아니라. 자아의 위기. 글쓰기의 부정 등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번뇌다. 시인은 글쓰기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꾸준히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번뇌를 시화(詩化)하겠다는 생각은 잃어버린 창조의 의미를 되찾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꿈은 낡거나 늙지 않도록 빙하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는 절망적 모멸이 어려있다. 그것은 대중의 모멸이며 동시에 불모인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또한 현실 공간에 대한 모멸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멸이다. <알바트로스>에서는 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현실에서의 무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백조의 소네트>에서는 '이곳(celieu)'이라는 공간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망설임이 지배한다. 공간의 무의미 때문에 번뇌가 이어진다. 공간은 삶의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며 여기에 글쓰기의 공간이 겹쳐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긍정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백조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고 한다. 백조의 몸은 호수의 물과 마침내 함께 얼어붙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 빚어지게 된다. 목숨은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로만 남아야 한다. 완전한 거울이란 개인이 사라져야 생성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노래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시는 백조를 뜻하는 대문자의 'cygne'라는 단어로 끝난다. 백조은 '기호'를 뜻하는 불어 'signe'와 같이, 발음이 모두 /싸인/이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시인 자신이 언어의 존재론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기호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아래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로잡힌 날개짓'이다. 그러나 백조의 모습으로 재현된 기호는 상징이자 노래이다. 시인 자신이자 인간의 언어다. 오, 꿈꾸는 여인이여, 다할 길 없는 순수한 환희 속에 내가 빠져들 수 있도록, 나의 날개를 정묘한 거짓으로 그대 손 안에 간직하고 있어주오. 황혼의 서늘함이 부채질할 때마다 그대에게 밀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개짓은 지평선을 살짝 밀어낸다. 현기증! 이제 공간은 큰 입맞춤처럼 전율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태어나려 몸부림치나. 공간은 분출하지도 진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느끼는가 야생의 낙원이 또한 묻혀버린 웃음이 당신 입가에서 나와 전면적인 주름 밑바닥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것을! (말라르메양의 다른 부채) 시의 외적 동기는 부채질하는 단순한 움직임을 뿐이다. 이 시에는 신비나 애매한 장치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부채질이 공간의 전율을 일으킨다는 것은 시인의 관찰이다. 부채질에 따라 지평선이 물러나거나 다가오며 공간이 전율하는 듯하지만, 이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인 공간, 태어나지 못하고 분출하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현상과 내면에 대한 극사실적 형용이다. 부채질이라는 흔한 움직임 속에 지평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곧 매몰되어 없어질 무의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사실 공간이 전율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헛된 소망이 전율을 일으켰을 뿐이다. 이 모두 '사로잡힌 날개짓'이며 관념의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다. 2연에서는 지평선을 상상하였다가 3연에서는 이는 현실화될 수 없는 공간임을 확인하다. 그리하여 4연에서는 낙원에 대한 가정을 거두어들였는데. 생략된 5연에서는 비상의 의지는 '하얀 도약'이었으며, 그것은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바람과 숨결의 미세한 움직임이며, 욕망이나 시선의 이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어떤 희망이, 입술 가장자리로 스미듯 사라지는 웃음처럼 사라질지라도 순수한 낙원에 대한 가정은 정당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임을 알고 있음으로 처음부터 '정묘한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연에서 다시 부채는 팔찌 옆에 접혀져 놓인다. 집요한 것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의지다. 거짓된 희망에서 지평선으로, 빈 공간으로,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공간 양상 - 여기에 상징의 모두가 들어있다. 공간 자신은 태어나지 못하고 전율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시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치는 상징의 미학을 묘하게 숨긴다. 숨김으 미학은 상징의 맛이 두드러지게 한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생각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언어의 효과'를 통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언어 외적인 것은 시에서모두 배제시켜 전적으로 '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비인칭 상태 즉 자아를 지워 텅 빈 상태를 미리 마련해놓고 암시의 기법을 그 위에 사용함으로써, 언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칭화 혹은 탈인성화란 고전주의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의 지우기다. 이것을 그는 "시인의 화술적 사라짐"이라 한다. 앞에서 본 백조의 죽음은 시인의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죽음, 즉 인성의 사라짐에 의해 언어의 기능이 진정 생성되는 것이다. 탈인성화는 또 한편 내면의 '공(空)'을 만들어내면서, 백지상태 위에 정신 스스로가 펼쳐지게 한다. 나는 끔직한 한 해를 보낸 참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순수개념'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이 오랜 번민 중에 나의 존재가 겪었던 모든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이도 나는 완전히 죽었다.(---) 다시 말해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비인칭이 되었다는 것, 나는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나였던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 발전해가는, 정신의 '우주'가 지니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카잘리스에게>, 1867.5. 14; Barbier,1977,341) 이상이라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은 먼저 세계 저편에는 "무(無)'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상세계는 '허무' 뒤에 있다. '무'안에 무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긍정적 전환은 불교와 헤겔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현실의 모든 '거짓된 외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상과 자신을, 다시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발적으로 비운다. 그 텅 빈 '무' 위에 새로운 긍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완전히 죽어, 몰아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답파의 엄정한 중립주의에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고답파의 객관성과도 다른 것이다. 몰아의 '공' 상태에서 정신과 우주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 전개를 바라보는 하나의 보는 '능력' 즉 시선이다. 시선은 매개체일 뿐, 인칭이 없다. 시인이 이 편지를 쓰고 몇년 후인 1871년, 랭보는 '나는 타자이다'라고 말한다. 두 시인은 모두 주체의 위기에 대해 설파한다. 그런데 이 위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다. 위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상징주의의 이상은 이처럼 의도적 위기와 자아의 정화 후에야만 진정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상징과 상징체계란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스스로를 비우는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자아의 부정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겨냥한다. 그리하여 거미줄처럼 사물들의 관계 요소들이 섬세하게 그물망을 이루도록 관계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 혹은 레이스처럼 논리의 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 - 이처럼 탄탄한 체계들만이 무한한 확산력을 지닐 수 있다. 보를레르의 <교감>은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는"확산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확산을 위하여 랭보에게는 광기와 착란이 필요하였다. 말라르메는 확산을 위하여 감각을 우선 안으로 응축시킨다. 사물에 대한 말들은 겉으로는 모두 지워진다. 아래의 시에서도 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죽었거나 몰아상태일 것이다. 이 시는 1868년에 '자신에 대한 우화적 소네트'라는 제목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정하다가 20년이 지난 1887년에야 무제로 출판한다. 완전히 상징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상징주의의 난해성을 대표하는 시로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주석이 가해졌던 시이다.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자정에 고뇌가 횃대를 떠받치고 있다 골호(骨壺)가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조'에 타버린 저녁의 꿈 몇을 빈 방, 제기단 위에는 아무 소라도 없다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은, ('허무'가 자랑하는 유일한 이 물건을 갖고서 '주인'은 '삼도천'에 눈물 길으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텅 빈 북쪽 유리창 가까이 물의 요정과 싸우며 불을 내던지는 아마 일각수 장식을 따라.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요정은 벗겨진 채, 죽은 자로 거울 속에 있다 거울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망각 속에 섬광의 북두칠성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고 있지만.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시에서도 여전히 공간 창조의 고뇌가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빈 방과 선반 하나, 그리고 열린 창문의 덧창밖에 없는, 그야말로 텅 빔의 미학적 풍경 자체다. 주인은 삼도천(三途川)에 눈물 길으러 갔으므로, 실제로 그가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거울 테두리에는 금빛이 죽어가고 잇다. 그러니까 빛도 모두 스러져가고 있다. '불사조에 타버린 꿈 몇'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이 작품 모두를 불태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라'를 가리키는 "소리 울리는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이란. 악기이자 글 쓰는 도구이다. 삼도천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갔다는 부분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려진다. 서양의 시에서 이처럼 비어있음만을 주제로 삼고 그것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극도의 텅 빔이 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열린 북쪽의 덧창을 통해 보일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어떤 희망을 시사한다. 그것은 어떤 조화로운 탄생일 것이다. 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시는 말라르메식의 오르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대작'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때기 위해 자기 집 가재도구와 지붕의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버릴 용의를 가지고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언제나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습니다. 어떠한 대작일지? 말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아무리 경탄스러울지라도 우연히 부딪치는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건축적 구성이며 미리 계획된, 책이랄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나아가 나는 (대문자로) '책(Livre)'라고 하겠습니다. (---)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 이야말로 시인의 단 하나의 의무이자 더할 나위 없는 문학 작업입니다. 왜냐면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의 리듬 자체는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자전>, 베를렌에게, 1885년 ; 말라르메, 1974, 662-663) 오르페우스는 말라르메의 꿈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업은 노래하는 것이다. 꿈의 방정식은 오드라고 한다.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이 꿈의 방정식의 해(解)인 것이다. 대문자 '책(Livre)'이다. '오드'를 통하여 '책'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Huret, 1984;80) 말한다. 시인의 꿈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었지만 정말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꿈은 절대의 책을 완성하겠다는 크나큰 야심이다. '책'은 그에게 언어와 정신과 삶이 어우러져 용해된, 인식론적이고 존재적인 어떤 총체, 어떤 '하나'였다. 시인에게 세상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교감이라는 사물 인식법으로 새로운 문학을 열어 낭만주의와 고답파를 버리게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그를 계승하면서 언어형식의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그 결과의 하나가 <주사위던지기>라는 시다. 시인은 절대의 책을 가정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페이지라는 형식을 버린다. 대신에 펼쳐지는 책의 (우좌가 아니라) 좌우 페이지를 합쳐서 한 '장'이라고 한다. 이 하얀 화폭 위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물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보들레르가 초대받고 싶어하였던 여행을 그는 거의 마지막 시도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그것에는 미학과 철학과 음악과 문자가 하나가 되어 있다. 베르나르는 <주사위 던지기>를 '시와 산문의 종합'으로 보고 있다.(Bernard, 1988;311). (---) <주사위 던지기>는 산문시라고는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나누는 칸막이를 깨고 '통합' 예술의 시도에 상응하는 총합의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시인들이 시도하였던 언어 탐구들에 대한 의미있는 증언이다.(Bernard, 1988;328). <자전>에서,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인 동시에 생생한 '책'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주사위 던지기>가 어쩌면 실험에 그칠지 몰라도, 우선은 절대의 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의 질서이자 우주의 질서이며 언어의 질서이다. 인간은 말을 통하여 우주적 신비에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속의 신비'를 구현하려는 이 다중의 언어 프로젝트를 통하여, 시인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두텁게 싸여진 상징체계를 생의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언어를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는 언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화가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시인의 단 하나 의무란 이 땅에 대한 오르페우스식의 설명일 뿐으로, 삶의 '일화'는 모두 그 속으로 묻히면 되었던 것이다. 발뱅의 시골집에서 후두경련으로 사망하는 시간에까지 그는 아름다움 '책'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언어에 몸을 맡긴 그의 이 모든 여정은 사제의 삶에 근접하였다. 여기서 '시라는 종교', 그리고 '언어의 사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세기 후반세기의 위대한 시인들 중 가장 진정한 상징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Peyre,1976;37), 과작의 실패한 시인이라는 평이 1950년대까지도 주류였다. 과작은 그가 나태하거나 황폐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의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한계였다. 얼핏 보아도 동양적 성찰에 많이 닿아있는 말라르메의 공간학은 발레리의 것과 색채와 향기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과 가닿는 길은 달랐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5. 발레리와 지중해의 명증 폴 발레리(1871-1945)는 지중해에서 태어나고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1890년대 초부터 시를 발표한다. 이 시기의 시는 후에 <구시첩, 1920년>으로 발행된다. 그러나 발레리는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고 불리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위기를 겪고 시를 포기한다. 그는 1894년부터 말라르메의 화요회에 참석하며, 시는 쓰지 않고 철학과 수학, 과학 등에 매혹되면서, 과학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결합의 상징이었던 다 빈치에 대한 글(<네오나르도 다 빈치 방법서설>,1895년)과, <텍스트씨와의 저녁>을 발표한다. 1896년, 오래 글쓰기를 중단하게 할 두 번째의 위기를 겪은 후에 발레리는 시로 돌아온다. 기나긴 침묵은 <젊은 파르크>를 발표함으로써 깨어진다. 그는 1912년 앙드레 지드와 갈리마르사의 강력한 권유에 의하여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고, 5년 뒤인 1917년 발표된 <젊은 파르크>는 시인에게 확실한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사이의 침묵의 20년은 개인 비서로 일하면서 삶을이어갔다.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에 몰두할 때 그는 시인은 건축가가 사원을 짓듯이 시작업으로 시를 건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는 영감이 아니라 '구성(cmposition)''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포우의 훌륭한 번역자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따른 것이다. 20세기 시에 고전적 원칙을 복원시켰다는 평을 듣는 그는 수학적 정밀함과 우연을 배제하는 명확성과 객관성과 순수함을 갖춘 시를 쓰고자 하였다. 그의 지적이고 심미적인 시는 건축의 견고성과 음악성과 순수한 시적 이미지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는 또 뛰어난 성찰력으로 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된다. 발레리는 1945년 사망하여 고향 세트의 해변의 묘지에 묻힌다. 그가 1917년과 1922년 사이에 쓴 시집 <매혹> 속에 발표된 <해변의 묘지>가 가장 사랑받은 작품으로 꼽힌다. 발레리는 제노바의 체류 중 번개 치는 어느 '하얀 밤'에 여럿으로 분열된 자아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감수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 무의식과 명철성 사이로 갈라진 심연을 보게 된다. 이 위기 이후 발레리는 지적이고 엄격한 사유를 막는다고 하여 예술활동을 중단한다. 영감이나 정념 등을 버리고 지적 활동과 내적 성찰 속에 침잠하였던 오랜 내성기간을 지낸 후에야 발레리는 심연에서 돌아온다. 그는 조금씩 시를 쓰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현실세계가 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인다. 발레리는 인간은 감각과 현실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지적 자아는 감각적 자아를 밖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매혹> 안의 모든 시는 감각 세계와 지적 세계 사이에서 시적 세계를 전개시키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자아를 보여준다. 알갱이들의 과잉을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여, 나는 자신의 발견들로 파열한 지고의 이마들을 보는 듯하다! 너희가 견뎌온 햇볕들이 비록, 오반쯤 벌어진 석류들아, 자존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의 간막이들을 부수게 하였더라도, 또 껍질의 메마른 금빛이 비록 어떤 힘의 요구를 따라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트린다 하더라도, 이 빛나는 파열은 옛날의 내 영혼에게 자신의 은밀한 구조를 그리워하게 한다. (<석류>) 말라르메의 부채 연작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 시는 공허한 이상세계에 대한 그림이 아니다. 시어는 막연한 암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질긴 관찰이 있은 뒤, 바로 그것에 의해서야 그 위에 상징체계를 축조할 수 있다. 그 탄탄한 구조를 읽어내려면 독자들은 축조과정을 따라가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의 묘(妙)는 여기에 있으며 해독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위의 시도 사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구체성 없는 것은 시가 아니라는 듯이 석류 알갱이의 벌어짐을 천천히 묘사한다. 그러나 시의 1연에서는 '지고의 이마들'이 언급되고 마지막 연은 '은밀한 구조'라는 단어로 끝남으로써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금빛껍질의루비빛 파열 등은 객관적 묘사일 뿐 아니라, 그의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발레리는 <다 빈치 방법서설>에서 다양한 지식들의 관계와 우주체계를 과학적으로, 즉 최상의 정신력으로 파악한 다 빈치를 모범으로 그리며, 우연으로 찬 외적 세계의 논리를 거부한다. 또한 내면 의식을 탐구하여 인간 정신의 법칙을 발견하고자한 테스트씨라는 가상의 인물처럼, 스스로 의식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저력을 갖고자 하였다. 테스트씨는 감각적 인식을 부인하고 자의식과 지적 인식만을 인정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발레리의 사상과 작품 속에서 이원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 다 빈치와 테스트씨가 '자기 사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적 훈련의 표상들이라면, <젊은 파르크>와 <해변의 묘지>에서는 이 극단성은 화해를 향한다. <젊은 파르크>는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와 함께 시인의 내면 성찰을 시화한 작품이다. 어느 섬에서 여명에 눈을 뜬 파르크는 방금 꾼 악몽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과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순수와 관능 사이의 갈등을 회상하며 살아보려 하지만 또 다시 광란에 빠져들게 된 파르크는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며, 영혼의 각성에 전율하게 된다. 많은 이미지들과 풍부한 상징의 망, 음악성 관능의 제시와 그 극복 등은 이 시를 최고의 상징시의 하나로 불리게 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의 파르크는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로 탄생의 신 클로토Clotho를 가리키는데, 생명의 실을 짜는 것이 임무다. 다음은 이 시의 시작으로, 젊은 파르크가 한밤에 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한밤에 일어나니 모든 삶이 다시 살아나서 자아에게 말을 하고"있다. 저기 누가 울고 있는가. 단지 바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혼자서, 지고의 금강석들과 함께?... 아니 누가 울고 있는가 이토록 나의 가까이서 내가 울려는 순간에? 여기서 화자나 화자가 들여다보는 대상 모두 나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어있다. 울고있는 것은 바람과 금강석들, 그리고 나이다. 관찰자인 나는 막 울려고 하는 순간이지만 울지 않고, 울고 있는 자연과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깨어나 이렇게 자아와 주변을 분석하려 한다. 관찰자인 자아의 눈뜸은 뱀에게 물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아의식과 욕정의 상징인 뱀에게 물림으로 인하여 파르크의 관능적 자아와 성찰적 자아는 동시에 인식된다. 나는 '명철한 정신'으로서, 이들에 대한 관찰자이다. 물 굽이치듯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고, 시선에서 시선으로 내 깊은 숲들을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나를 막 문 뱀을 쫓아가고 있었다. 욕망들의 이 무슨 꿈틀거림인가. 뱀의 기는 모습이란?... 내 탐욕에서 빠져나오는 보석들의 이 무슨 혼란, 또한 명철에 대한 이 무슨 어두운 갈증! ( <젊은 파르크>) 관능적 아에 가까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자아'와 성찰적 자아, 이를 지켜보는 자아 사이에서 자아의 갈등과 분열은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화자인 나는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말라르메의 앞서 본 편지에서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부분을 상기시킨다. 발레리는 그 자아를 더욱 분석한다. 말라르메가 금욕적 자세로 '공(空)'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아의 분열을 체험하였다면, 발레리의 분열은 관능적 자아의 문제가 전면화되어 더욱 미묘하다. '의식하는 의식'은 자아를 점점 의식의 심연으로 밀어넣고, 그리하여 나는 "오 위험하게도 그의 시선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라고 외친다. 의식이 깨어남과 분열의 고통은 마침내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사라진 나의 시선이 보고 있는 바를 안다. 검은 내 한쪽 눈은 지옥의 거소로 난 문턱이니! 나는 생각한다, 시간들은 산들바람에 내맡기고 영혼은 쓰디쓴 관목 숲에서 돌아오지 않은 채 (---) 죽음은 그러나 실제 죽음이 아니라 허구적인 죽음으로, 파르크가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을 때, 모든 것은 존재론적 고뇌였음이 밝은 빛 속에서 밝혀진다. (---) 내가 옷 벗은 채, 두려움 없이 이 바닷가에 와서, 치솟는 거품 들어마시고, 드넓고 웃음 띤 쓰라림을 눈으로 마신다면, 바다의 부름을 얼굴로 맞아들이며, 가장 생생한 대기 속에, 존재는 바람을 마주한다면(---) (<젊은 파르크>) 자아가 죽음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 풍경은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삶을 초월한 논리적 결론이, 비록 우연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삶의 의지를 이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인의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파르크의 유혹과 망설임은 시인의 자아 부정과 자아를 되찾는 과정의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자아는 이제 지적 탐구의 고뇌를 극복하고, 변화로운 감각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각성을 따르고자 한다. 다양하고 시간적인 현상과 안정적이고 비시간적인 상태 사이에서 흔들림도 시인의 사고의 두 축에 기인한다. '타고난 시인' (레몽, 1984;200)이었으므로 '지적 유혹과 감성적 자질'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었던 발레리에게는, 이처럼 이원적 문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화두로 제시되었다. 발레리의 시간의 이원성에 대한 생각은 무한에 대한 관조의 세계로 다시 재현된다. 1920년 발표된 <해변의 묘지>는 그의 고향 세트의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일생 중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끌어다 쓴 최초의 시"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였던 맑고 고요한 감각을 명상 속에서 회상한다. 비둘기들이 걷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펄럭인다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엄정한 자, 정오는 거기 불로써 빚어낸다 바다를, 언제고 새로 시작해있는 바다를! 오 생각 하나에 따른 보상이여, 신들의 평온을 오래 관조하는 시선이여! 여기서 비둘기는 바다에 떠있는 삼각돛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붕은 평화로운 바다를 지칭한다. 이 시에서 내적 리듬은 <젊은 파르크>에서 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구속을 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시인의 사유의 발전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인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 '순수 자아'의 힘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것에 의한 영구불변의 창조를 기다린다. 공허 속에서 본질과 영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오 나만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 감, 나 자신 속에서, 마음 곁에서,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 사건 사이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위대함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린다. 항상 앞날에 다가오는 공동(空洞)이 영혼 속에 울리게 하는, 쓰라리고 어둡고 소리 울리는 저수조여! 그럼에도 바다 앞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시인은 거부할 수 없이 변화를 인정한다. 인식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던 시인은 고향의 해변 묘지를 배경으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리듬이 살아남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시인의 인성이 가장 많이 드러난 시라는 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하늘이여, 진실된 하늘이여, 변화하는 나를 보라! 그토록 대단한 자존 끝에, 이상하나 힘에 찬, 그토록 대한한 무의의끝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나를 맡긴다 (---) <젊은 파르크>가 변화와 불변 사이, 추상과 구상 사이로 찢겨진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라면, 이 시는 드라마의완결편이라 할 정도로 상대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파르크도 구체적 현실을 수용하고 삶의 의지를 인정하려 하였지만, 자아는 쉽게 변화를 수용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유사한 장면이지만 수용이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계속되는 시대 속에! 부숴라,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틀을! 마셔라,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이 내게 나의 혼을 돌려준다...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생생하게 솟아오르자! (---)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 광막한 대기는 나의 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파도는 가루로 부서져 바위 위에 용솟음치려 하네! 눈부시게 하얘진 책장들이여 날아가라! 부숴라 파도여! 기쁨을 되찾은 물로써 부숴버려라 비둘기들이 모이 쪼던 그 고요한 지붕을! (<해변의 묘지>) 앞에서 글쓰기는 불변의 진리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화와 현실을 수용하는 글쓰기를 인정한다. 여기 책은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책장들은 날아간다. 현실을 버리는 글쓰기는 없는 것이다. 무한은 현실을 포용하고 펼쳐질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시의 첫 연에 등장하였던 비둘기에 대한 묘사로도 드러난다. 비둘기는 이제 명상의 평화를 깨는 속된 호기심을 가리킨다고 한다. 비둘기든 돛이든 사실 무의미하며, 생각을 흔들 수 없다. 시가 비둘기에서 시작하여 비둘기로 끝난다는 사실은 닫힘을 말하는 것 같지만, 폐쇄를 넘어선 자존감을 마침내는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의 불안한 고요가 아니라 이제 파도와 마주할 힘을 자아는 되찾는다. 간단히 말해 파르크는 바다 앞에서 격리냐 해방이냐를 가슴 에이도록 번뇌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묘지와 바다를 앞에 두고 해방의 여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젊은 파르크는 인생의 매혹을 알게 되어 거기에 굴복하는 과정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고, <해변의 묘지>는 영구불변에 매혹되었다가 이에 저항을 느끼는 과정을 기록한다. 결국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순수와 절대에 대하여 시인이 오랜 시간 쌓아왔던 물음이 <해변의 묘지>에서 어느 정도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해변의 묘지>와 <젊은 파르크>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택하면서, 시인은 바다의 정화력과 포용력, 재생력을 미리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격리된 상태 속에 도피하고자 하는 파르크의 자의식적 태도는 말라르메의 <에로디아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격리보다 중요한 것은 돌아와 자신의 동질성을 되찾는 일이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해변의 묘지>서두에 시인이 다음 같은 핀다로스의 일 절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오 나의 영혼이여, 영혼불멸을 꿈 꾸지 말고, 다만 가능성의 영역을 다 소진시켜라." "말라르메와 같은 곳에서 출발하였지만 두 사람은 이처럼 다른 곳에 도달한다. 발레리의 시가 발레리의 사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시를 비교해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사물과 관념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추상화 단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면, 그리하여 고유한 상징체계를 축조하는 변함없는 장인의 인내를 보였다면, 발레리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발레리는 사물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 시인이었다. 그는 사물의 매혹을, 그 구체적인 힘을 이길 수 없었고 이기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말라르메가 더 관념적인 시인이라 하겠다. 상징주의의 완성에 그가 더 가까이 있는 이유이다. 발레리는 새로운 시의 형식을 연 개척자는 아니었다." (레몽, 1984;21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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