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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요리법 / 로사리오 페레(Rosario Ferré) /박 병 규 옮김
2019년 01월 27일 16시 00분  조회:1287  추천:0  작성자: 강려
 
글쓰기 요리법
로사리오 페레(Rosario Ferré)/박 병 규 옮김
 
 
 
아리스토텔레스가 음식을 만들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글을 썼을 텐데.
― 소르 후아나
 
 
I
프라이팬에서 불길로 들어가는 방법
 
 
      오랜 세월에 걸쳐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썼다. 에밀리 브론테는 열정의 혁명적 특성을 보여주려고 글을 썼고, 버지니아 울프는 죽음의 공포, 광기의 공포를 이겨내려고 글을 썼으며, 조안 디디온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히려고 글을 썼다. 그리고 클라리세 리스펙토르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유를 알려고 글을 썼다. 내 경우, 글은 건설적인 동시에 파괴적인 의지의 표현이자, 성장가능성과 변화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다. 나는 내 자신을 한 글자 한 글자 구축하기 위해 글을 쓴다. 또한 비존재에 대한 공포를 물리치려고 글을 쓴다. 이런 의미에서, 모어(母語)라는 말이 최근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모국어라는 말의 의미는 약 이천년 전 요한이라는 유대인 작가도 분명하게 인식한 것 같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로 요한복음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사도 요한은 무엇보다도 먼저 작가였다. 그리고 후대의 신학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창조의 원리로서 말씀이란 문학적 의미였다. 요한이 말씀에 부여한 이 의미를 나는 언어,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말에 부여하고 싶다. 부어(父語)는 자동사일 수도 있고 타동사일 수도 있으며, 현재나 과거나 미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어(母語)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우리가 모어를 신뢰하면, 모어는 우리들만의 길을 개척하자고 틀림없이 손을 내밀 것이다.
 
      사실, 나는 말을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말 덕분이다. 따라서 말을 아주 신뢰한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보다 더 신뢰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인생이란 게 거친 바람 앞에 나부끼는 부조리극 같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말은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돌려주었다. 이러한 건설적 필요성은 사랑의 필요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내 자신을 재창조하고, 세계를 재창조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게 영원하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글을 쓴다.
 
      그러나 글을 쓰는 내 의지 속에는 파괴적인 의지도 있다. 내 자신을 멸절시키고, 세계를 멸절시키려는 의도이다. 말은 본성적으로 모르는 게 없다. 낡고 부패한 것을 일소하고, 새로운 것을 세울 때를 안다. 내가 이 세상의 부패와 관계하면 말은 나를 향해 칼을 겨눈다.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쓴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실망감 때문에 글을 쓴다. 이러한 실망감에서 삶을 재창조할 필요성이 움트며, 현실을 한결 인간적이고 살만한 곳, 마음속에 품고 있는 유토피아적 인간과 세상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싹튼다.
 
      이러한 파괴적인 의지는 내가 느끼는 증오의 필요성, 복수의 필요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현실에 복수하고 내 자신에 복수하려고 글을 쓴다. 나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고, 나를 그토록 유혹한 것을 영원히 보존하려고 글을 쓴다. 상처만이, 깊은 모욕만이(이 말은 결국 내가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날 내 가슴에 인간적 표현의 힘을 창출할지도 모른다.
 
      이제 건설적이고 파괴적인 의지를 내 작품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으로 단편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타자기 앞에 앉은 날, 글을 써서 집을 얻고, 연간 500파운드 남짓한 돈으로 독립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혼녀였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아무튼 그때는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자신의 지적, 정신적 공간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완전한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내 자신을 등져버리게 된 것이다. 통념에 따라 아내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게 되었고,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게 되었다. 
 
      아무튼 항상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온한 삶, 즉 위험도 없지만 그렇다고 책임도 없는 그런 삶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가정의 품안에서 살았다. 나는 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내 손으로 지식을 얻고, 예술을 하고, 모험을 하고, 위험을 맛보고 싶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얘기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은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는 일이었다. 삶을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인생은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기쁨과 공포의 공모자로 만든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종말로서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삶을 모르는 죽음, 아무런 경험도 하지 못한 죽음과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죽음은 너무 무자비하고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은 얘기로는, 순수한 사람들, 살아보지 않고 죽은 사람들, 자신의 행동으로 아무런 손익계산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은 림보로 간다. 천국은 선인의 몫이고, 지옥은 악인의 몫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선행을 하거나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림보에는 여자들과 아이들만이 있다. 우리들은 어떻게 림보에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른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타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단편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천국이나 지옥을 향해서 첫발을 떼어놓는다는 의미였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 흥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가 죽었다. 마치 내가 태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림보의 문을 빠끔히 열고 바깥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만약 그 목소리가 거짓이라면, 내 의지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동안의 희생은 헛고생이 되고 말 것이라고 되뇌었다. 착한 부인과 가정주부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내차버렸으니 프라이팬에서 불속으로 뛰어든 꼴이었다. 
 
      당시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복음의 전도사나 마찬가지였다. 두 작가에게서 글 잘 쓰는 법을 배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적어도 졸필을 면하는 방법은 배우리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두 작가의 책을 모두 읽었다. 건강한 사람이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약을 먹듯이 책을 읽었다. 그러면 예전의 여성작가들과 동시대의 많은 여성작가들을 죽게 만든 나쁜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독서가 여성작가로서 갓 출발한 나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손은 아직도 불 위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을 잡던 예전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불길 속에서 공격적으로 펜을 휘두르는 손이 아니었다. 시몬이나 버지니아는 여성작가들의 성취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들을 아주 가혹하게 비판했다. 시몬의 견해로, 여성작가들은 전통적인 주제, 이를테면 자신의 존재를 한정시켜버린 관습과 교육을 고발하거나 사랑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다. 이런 주제로 자신을 국한시켜버리는 것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역량을 적절하게 내면화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시몬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 문학, 철학은 새로운 자유, 즉 개별 창조자의 자유 위에 세상을 세우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야망을 성취하려면 여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위상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시몬의 견해에 따르면, 여성은 문학에서 건설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면적인 현실에서는 건설적일 필요가 없으며 외적인 현실, 주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에서 건설적이어야 했다. 시몬이 보기에 직관, 비이성적인 힘과의 접촉, 감성적인 능력은 매우 중요한 재능이지만, 어느 면으로 보면 부차적인 재능이었다. 세계의 작동원리, 즉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의 질서는 직관과 감성이 아니라 이성과 지식의 빛에 비추어 결정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앞으로 여성은 이러한 테마를 문학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버지니아는 객관성과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버지니아는 여성문학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객관성과 거리라고 말하면서 과거의 여성 작가들 가운데 오직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만 예외로 인정했다. 두 작가만이 셰익스피어처럼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글을 쓰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버지니아는 “자신의 성(性)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조금이라도 불만을 강조하거나, 비록 정당하고 할지라도 대의를 무시하거나 의식적으로 여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여성작가에게 치명적이다.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러한 여성작가들의 책에는 일탈과 왜곡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되면 건전한 판단력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반쯤 미쳐서 글을 쓰는 것이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할 뿐이다. 이는 자기 운명과 전쟁을 하는 것이니, 모순과 좌절 속에서 요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버지니아가 보기에, 여성문학은 파괴적이거나 격분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작품처럼 조화롭고 투명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세계였고, 문체는 완벽하게 중성적이고 차분한 언어였다. 시몬과 버지니아의 이러저러한 충고를 따라서 주제의 핍진성이 잘 드러나도록 매진하면 될 것 같았다. 이제 이야기의 단초를 찾는 일만 남았다. 헨리 제임스는 소설에 수많은 창이 있다고 했는데, 이 중에서 나만의 창을 찾아서 주제 속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나는 역사적인 일화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사탕수수 단작경제에 기초한 농업사회에서 도시화된 산업사회로 변화가 우리나라 부르주아에게 의미하는 바와 관계있는 일화 말이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그러한 변화는 기존 가치의 상실을 야기했다. 토지로부터 이탈이 있었고, 착취에 기초한 가부장적 행동양식은(때때로 이러한 가부장적 행동양식은 기독교적인 자선과 윤리 원칙에 기초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이제는 미국에서 유래한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법칙으로 대체되었다) 잊혀졌으며, 지방에 전문직 계급이 등장하면서 예전 지배계급 즉 사탕수수 농장주 중심의 과두세력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방향설정에 따라 선택한 일화는 어느 모로 보나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건설적이라거나 파괴적이라는 쓸데없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없었고, 신물 나는 여성작가 논쟁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이야기의 배경을 선택한 나는 타자기에 손을 올려놓고 글을 쓸 준비를 했다. 손가락 밑에서는 로마자 26글자가 웅장한 악기의 음표처럼 언제든지 튀어오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텅 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자료도 많이 준비하고, 그렇게 이야깃거리도 많았건만,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이 정도면 초보자라도 단편 정도가 아니라 소설 10권을 쓰고도 남을 분량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필요하다면 밤을 새울 각오도 했다. 그리고 익기만 기다리면 첫 단편이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집중만 하면 언젠가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겠지. 그런데 날아 밝아오기 시작했다. 서재 창문이 자줏빛으로 물들었을 때는 타자기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주변에 널려진 재떨이는 전사자의 납골함 같았고, 식어빠진 커피잔은 쓸데없이 포위한 도시의 성곽 같았다. 그렇게 처참한 밤을 보내고 나자, 단편을 쓰고 작가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눈물겨운 교훈은 얻은 게 다행이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며, 내가 창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소설을 애호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야기는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평소에 나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그게 문학인 줄도 모른다는 데 놀란다. 그와 유사한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어느 날 오후, 숙모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숙모는 식탁머리에 앉아서 찻잔에 꿀을 넣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20세기 초엽 멀리 떨어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여주인공은 숙모의 먼 친척으로 인형을 만들 때 꿀로 속을 채웠다. 그 여자는 남편의 희생물이었다. 술주정뱅이에 머리가 좀 모자란 남편은 부인의 재산을 탕진하고 막 나중에는 집에서 쫓아내더니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숙모 집안사람들은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척여자에게 집과 식량을 대주었다. 형편이 넉넉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사탕수수 농장은 몰락 직전이었다. 이렇게 뒤를 돌봐주자 친척여자는 보답으로 꿀을 채운 인형을 만들어 숙모집안 여자아이들에게 주었다. 
 
      친척여자는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지 얼마 후, 아직 젊고 아름다웠는데 그만 이상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오른쪽 다리가 까닭 없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인근 마을 의사에게 진찰을 부탁했다. 외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의사는 첫눈에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치유불가능한 병이라고 허위진단을 내렸다. 그 돌팔이 같은 의사가 이상한 고약을 다리에 붙이는 바람에 친척여자는 불구자가 되어 한평생을 의자에 앉아 살아야했다. 이런 치료를 받은 동안 친척여자는 수중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돈마저 의사에게 다 털렸다. 의사의 행동은 두말할 필요 없이 비난을 받아 마땅했다. 그런데도 그 이야기는 내 심금을 울렸다. 날강도 같은 의사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20년 동안 착취를 당하면서도 체념하고 살아간 그 여자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숙모에게 들은 나머지 이야기는 여기서 되풀이 하지 않으련다. 내 첫 작품 「막내인형」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숙모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또 숙모는 순진하게도 이미 사라진 사탕수수 농장 시절을 찬양했으나, 농장의 일꾼들은 영양실조로 죽어 나가는데 농장주 딸들은 꿀이 든 인형을 가지고 노는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얘기하지도 않았다. 대충 들은 그 이야기에 내가 채워야 할 부분이 있었다. 한 계급의 몰락과 다른 계급의 대두, 가족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가치체계의 변모, 이기적이고 실용적인 세계관에서 유래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사취(詐取)가 그것이었다.
 
      드디어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그날 오후, 서재에 틀어박혀 내 눈앞에서 타닥거리는 도화선의 불꽃이 다 타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탈고하고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작품 전체를 읽어봤다. 객관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었고, 여성작가 논란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었다. 그때 내 우려가 모두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깨달았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두 번씩이나 착취당한 저 여자가 내 작품을 차지하고 앉아 비극적이고 완고한 베스타 여신처럼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었다. 주제는 내가 기획했듯이 역사적이고 사회정치적인 맥락에 잘 부합하였으며, 사랑과 불만과 복수까지도―그래, 이런 것도 알아야 했는데― 잘 드러내고 있었다. 피멍이 든 가슴을 안고 사탕수수밭을 내려다보면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저 여자의 모습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때까지 굳게 닫혀 있던 내 이야기의 창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그 여자였다.
 
      나는 시몬을 배신했다. 여자의 내적 현실을 다룬 작품을 또 썼기 때문이다. 버지니아도 배신했다. 분노에 이끌려 단편을 창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작품을 쓰레기통에 던지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시몬과 버지니아 견해에 비추어보면, 나는 형편없는 글을 쓰는 여성작가와 다를 바가 없었고, 그 작품은 이런 사실을 증명하는 물증이었으므로 없애버리고 싶었다. 다행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내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막내 인형」을 쓴 지도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단편을 쓴지라, 이제는 그날 배운 교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시몬 보부아르나 버지니아 울프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단편(또는 시나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나 그 밖의 사람들 조언을 따르고자 하는데, 그 결과는 대부분 상상력과 언어의 마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를테면, 사전에 외적 현실을 구상하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주제를 궁리하더라도 내적 현실을 먼저 구성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또 중성적이고 조화롭고 거리감을 둔 문체를 구사하려고 하더라도 우선 내적 현실을 파괴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작가가 작중인물을 묘사할 때도 항상 자기 자신을,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는 모습을 묘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존재에게 그 어떤 장점이나 단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내 인형」의 친척여자와 나를 동일시할 때, 다음 두 과정을 거쳤다. 한편으로는, 그 여자의 불행을 통해서 내 자신의 불행을 재구성하는 한편, 무엇이 그녀의 약점과 잘못(수동적인 태도, 안주하는 마음, 끔찍한 체념)인가를 깨닫고 내 이름으로 그 여자를 파괴했다. 그래서 그녀를 구하는 게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작품에서 여주인공들은 훨씬 용감하고 훨씬 자유로워졌으며, 훨씬 적극적이고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아마도 「막내 인형」의 잿더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 여자의 환멸 때문에 나는 프라이팬에서 문학의 불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II
불길 속에서 몇 가지를 건져내는 방법
 
 
      지금까지 첫 작품을 어떻게 썼는지 얘기했으므로 이제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첫 창작에서 오늘 내가 어떤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지 얘기하려고 한다. 문학은 모순적인 예술, 어쩌면 가장 모순적인 예술일 것이다. 문학은 한편으로는 창작에 온 정열과 지식과 특히 의지를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의지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예술이기도 하다. 작가가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작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문학은 풍성해진다. 그리고 작가가 느끼는 만족감의 원천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내 경우, 이러한 만족감은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와 즐거움의 의지이다. 
 
      첫 번째 의지(이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로 대체하겠다는 것으로 작품 주제와 관계가 있다)는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후적인 의지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여성작가의 글쓰기 논쟁에서 또 나와 관계가 있는 사회정치적 문제에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는 작품을 쓸 때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작품을 마치고 나서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러저러한 대의에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불가능했다. 이러저러한 종교적 믿음이나 정치적 혹은 사회적 신조에 집착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러나 창조적 언어는 거세게 불어나는 강물과 같았다. 강안(江岸)으로 밀려드는 물살은 충성심과 신념을 붙잡아버리며, 작가는 진실에 휩쓸려간다.
 
      내 세계관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관심사는 사회가 여성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며, 사생활이나 공생활에서 여성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 가운데 여기에서는 여성문학의 외설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몇 달 전, 후안 라몬 히메네스 백주년 기념 만찬회에서 백발이 희끗희끗한 유명한 비평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음식을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작품을 언급했다. 그 사람은 짓궂은 웃음을 띠고,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이 한쪽 눈을 찡끗하더니 저의가 있는 어조로 물었다. 내가 외설적인 단편을 썼다고 하던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한번 읽어보게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에는 젊잖게 나무랄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희끗희끗한 머리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으로는 희끗희끗한 게 아니라 초록색 같기도 하다. 아무튼 쉽게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울적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비평가들 사이에 내 작품은 『오양의 이야기』의 예술적 모사라는 소문이 도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물론 그 저명한 비평가에게 내 작품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쾌한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자 여성문학에서 외설의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다짐했다. 그 초로의 비평가는 문학을 마치 남성적이고 사적인 영지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 노골적인 성차별 비평가의 전형이라고 확신이 섰다. 그러나 이런 비평가들은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일을 잊기로 하고, 이번 기회에 외설의 문제를 천착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여성문학의 외설을 다룬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현재 여성문학을 다룬 대부분의 비평은 여성이 쓴 것으로, 이들은 마르크스, 프로이드, 성 혁명 등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다양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성비평가들은 ―예를 들어, 산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 메리 엘런 모어즈의 『여성 문인』, 패트리샤 메이어 스팩스의 『여성의 상상력』, 에리카 종의 다양한 글― 한 가지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즉, 폭력, 분노, 상황 부적응은 오랜 세월 동안 여성문학을 가능하게 만든 에너지원이었다는 것이다. 17세기 래드클리프의 고딕소설로 시작해서 브론테 자매의 소설과 매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조지 엘리어트의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을 거쳐 진 리스, 이디스 워튼,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이르기까지(『델러웨이 부인』은 사회적 안주인의 냉엄한 생활에 대한 승화된 해석, 시적인 해석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아이러니와 비판적인 시각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여성문학의 특징은 공격적이고 고발적인 언어였다. 모두들 분노하고 반항했다. 물론 다른 여성작가들에 비해서 좀더 아이러니하고, 좀더 현명한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 비평가들은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현대 문학에서 외설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여성문학에서 성적으로 금지된 언어의 사용은 수세기 동안 지속된 폭력적 경향의 필연적인 귀결인데도 불구하고 외설이라는 주제를 다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성작가들이 그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33년 미국에서 『율리시즈』의 외설 논쟁이 막을 내린 이후 출판된 소설 가운데 외설적인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는 아이리스 머독, 도리스 레싱, 카슨 맥컬러스가 있다. 이 작가들은 처음으로 ‘fuck’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했다. 한편, 에리카 종은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저속한 어휘를 구사했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 페미니즘 문학을 다룬 고상하고 수준 높은 비평은 이에 대해서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외설의 사회학적 정치학적 함의까지 고려하여 깊이 천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문제를 꺼낸 목적은 다름 아니라 작가로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의 일예였다. 아무튼 그날 연회에서 저명한 비평가가 나를 가리켜 외설문학의 옹호자라고 했을 때까지도, 나는 어떤 목적으로 작품에서 외설적인 언어를 사용했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현대 여성비평이 이 난처한 주제를 끈덕지게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내 의도는 바로 칼끝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우리 여성들에게 휘둘러온 성적 굴욕과 낯 뜨거운 모욕이라는 칼끝으로 사회를 겨누고, 수용할 수 없는 낡은 편견을 겨누는 것이었다. 
 
      외설이 전통적으로 여성을 굴복시키고 비하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여성을 구출하는 데 이중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단편 「여자들이 남자들을 사랑할 때」나 「네 곁에서 천국으로」 같은 작품에서 외설적인 언어는 여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불의 앞에서 작중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나를 포르노 작가로 간주해도 상관없다. 이로써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내 의지가 완전히 실현되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한다.
 
      그러나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는, 건설적이고 파괴적인 의지와 마찬가지로, 양면을 지니고 있다. 이 양면은 제3의 필요성 때문에 떼어낼 수가 없다. 동전 옆면에서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이 제3의 필요성란 바로 즐거움의 의지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텍스트의 몸에 대한 앎이며, 동시에 지적인 앎이다. 오직 즐거움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특수한 것―일반적인 것의 경험―의 증언을 우리 역사와 우리 시간에 대한 증언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네루다가 잘 알고 있었듯이(네루다에게는 점잖은 말도, 비속한 말도, 위선적인 말도 없었다. 오로지 사랑받는 말만 있었다) 즐거움을 통해서 몸의 피부에서 ‘피부’라는 단어를 용해시킬 때, 이러한 텍스트의 몸에 형태를 부여할 수가 있다.
 
      남여작가와 말 간의 백열하는 즐거움은 한 번의 시도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욕망은 저기 있는데, 즐거움은 우리를 피해 달아난다. 말의 베일에 들어붙어 우리 손에서 빠져나간다. 말의 간극 사이에 매달려 있다가 손끝만 대도 미모사처럼 오므라든다. 처음에는 말이 작가의 요구를 외면하고,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므로, 작가는 앞이 깜깜한 절망 속에서 억지로 말을 깎고 끌어내리고 사랑하고 함부로 다루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말은 점점 온기를 회복하고 움직이고 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맥박이 뛰고, 마침내 작가의 욕망을, 지겹도록 끈질긴 작가의 요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때 말은 폭군이 되어 작가의 생각과 음절을 지배하고, 밤낮없이 작가의 시간을 독차지하고 앉아 자기를 내팽개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말 속에서 잠을 깰 정도가 되고, 말 또한 직감을 갖게 되면 육화에 이른다. 텍스트의 몸에 대한 앎이라는 신비는 마침내 즐거움의 의지 안에 있게 되며, 작가는 이러한 의지로 다른 의지, 즉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나 세계를 구축하고 파괴하겠다는 의지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앎은, 내 생각에 텍스트의 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지적인 앎이다. 이는 텍스트의 욕망이 나를 백열상태에 이르도록 채근한 결과이다. 모든 남녀작가들은, 모든 예술가들은 육감을 통해서 작업을 해오던 몸이 언제 결정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지 알고 있다. 이러한 순간에 도달하면, 단 한 마디의 말(단 하나의 선線이나 해설)이라도 더하게 되면 작가와 작품 사이에 사랑스러운 씨름의 결과로 생겨난 미의 상태, 미의 불꽃은 즉시 꺼져버리게 된다. 그런 순간은 항상 경이롭고 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순간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를 제빵공이 언제 반죽이 다 되었는지를 아는 신비한 순간과 비교했으며,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텍스트의 몸을 통해서 피가 한 방울씩 흐르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단편을 끝냈을 때 이러한 앎이 내게 주는 만족감은 문학의 불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구해냈다는 것이다.
 
 
III
불길을 지피는 방법
 
 
      이제 모든 문학의 불길을 지피는 데 필요한 저 신비한 연료, 상상력이라는 연료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련다. 이 문제를 얘기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가끔 상상력의 존재에 대해 일반적으로 대중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상한 회의주의 때문이고, 둘째 문학 전공자와 일반인들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까운 지인들에게나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은, 어떻게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폰세(내가 태어난 곳이다)의 유명한 포주 ‘이사벨 라 네그라’에 대해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과 상상적 현실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학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언지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질문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매리 셸리가 제네바 호숫가의 산책로를 걷다가 키가 10피트나 되는 괴물을 정말로 만났을까하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내가 어렸을 때 『프랑켄슈타인』을 읽었고, 메리 셸리는 이미 백년도 더 전에 죽은 탓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순진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많은 비평가들이 ‘이사벨 라 네그라’하고 안면이 있느냐, 그 여자가 운영하는 사창가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이렇게 넌지시 물어오면 도리 없이 내 얼굴은 빨개진다) 물을 때는 상상력에 대한 인식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비평은 작가의 생애 연구를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철면피하게 자전적 요소를 이야기에 삽입했다는 끈덕진 믿음은 이러한 우려가 사실이라고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오늘날 생애 연구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작가의 생애가 어떤 식으로든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에도 말이다. 아무튼 작품은 일단 탈고하고 나면 절대적인 독립성을 획득한다. 그 후 작품이 작가와 관계를 맺을 때는 작가의 삶에 크고 작은 의미를 지닐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작품 해설은 오늘날 남성문학 연구에서도 흔하지만, 여성 문학의 연구에서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자면, 버지니아 울프나 브론테 자매의 생애를 다룬 최근 저작물의 분량은 이 작가들의 소설 전집을 능가한다. 여성작가의 생애에 대한 이러한 관심의 근원은 여성의 상상력이 남성보다 못하며, 작품 또한 남성작가와 비교할 때 잡다한 일상사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상상력의 존재에 대한 인식 부재는 근본 원인은 사회에 있다. 상상력이 함축하는 바는 유희, 기존의 것에 대한 경시, 현존 질서보다 상위에 있는 가능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감성이다. 이 때문에 상상력은(문학작품처럼) 항상 전복적이다. 옥타비오 파스도 말했지만, 현대 정신에는 끔찍할 정도로 천박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실생활에서는 갖가지 무가치한 거짓말과 갖가지 무가치한 현실”을 용인하면서도 정작 허구는 배격한다. 이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항상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문학을 주로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교육기관에서는 수천가지 방법론으로 작품을 분석한다. 구조주의, 사회학, 문체론, 기호학 등이 그 예이다. 작품 구석구석을 뒤적거려 분석을 끝내고 나면, 작품은 산산이 쪼개져 형태소와 의미소의 구름만이 우리 주변을 떠다니게 된다. 마치 문학작품이 시계라도 되는 듯이 와셔와 너트 같은 부품들을 분해하여 메커니즘을 밝혀내려고 하는데, 이는 시계의 작동원리보다는 시간 표시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문학교육은 오로지 비평가의 관점만 용인된다. 전문가가 되어야, 문학의 분해자가 되어야 품위도 있고 보람도 있는 지위를 얻는다. 그러나 작가가 된다는 것, 변화가능성과 논다는 것, 상상력과 논다는 것은 전복적인 작업일 뿐, 품위도 보람도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교육기관에서 문학창작과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작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생활을 하려면 부업을 할 수밖에 없다. 말로는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쓰기를(문학비평이 아니라) 배운다는 것은 마술적인 일이다. 그러나 매우 특수한 일이기도 하다. 주문에도 비법이 있으며, 주술사는 필요에 따라 주술의 정확한 양을 재어 말의 그릇에 넣는다. 단편이나 소설이나 시를 쓰는 방법, 전혀 비밀스럽지 않은 방법은 비평가들이 고대 콥트인의 컵에서 건져놓았다. 그러나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작가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 
 
      문학 연구자가 우리 대학에서 배워야하는 첫 번째 교훈은 상상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모든 문학의 불길을 지피는 가장 강력한 연료라는 점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서 작품의 주요한 채석장인 경험, 자전적 경험을 예술로 변형시킨다.
 
 
IV
음식에서 진정한 지혜를 성취하는 방법
 
 
      이제는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냄비 밑바닥에서 뱅뱅 돌고 있던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테마는 오늘날 가장 뜨겁게 끓어오고 있는 주제가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이 주제를 여러분 식탁에 올려놓기가 두려웠다. 어쨌거나 여성적인 글쓰기라는 게 존재할까? 남성문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여성 문학이라는 게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여성문학은 버지니아 울프가 바랐던 것처럼 감정과 감각에 기초를 둔 직관적이고 열정적인 문학일까, 아니면 시몬 드 보부아르가 바랐던 것처럼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문학,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서 영감을 얻는 문학일까? 오늘날 우리 여성작가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여성가치를 옹호해야만 하고, 조화롭고 시적이고 세련되고 외설적인 데가 없는 문학을 창작해야만 할까, 아니면 현대적인 의미의 여성가치를 옹호하여 전투적이고, 고발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실적이고 또 외설적이기까지 한 문학을 창작해야 할까? 우리는 코딜리아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맥베드 부인이 되어야 할까? 도로테아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메데아가 되어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글은 항상 여성적이었다고, 여성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용어를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했다. 버지니아의 이론은 여러 가지로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여성작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글을 잘 써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기 기법에 통달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소네트는 14행으로 구성되며 규정된 음절과 운율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중성이다. 여성적이지도 않고 남성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여자도 남자처럼 완벽한 소네트를 쓸 자격이 있다. 릴케가 말했듯이, 완벽한 소설이 되려면 무한한 인내심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려야 한다. 이런 일에도 성은 관계가 없다. 남자가 완벽한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여자라고 못 쓸 까닭이 없다. 그러나 여자가 글을 잘 쓰려면 남자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일곱 번 고쳐 썼으나 버지니아 울프는 『파도』를 14번이나 고쳐 썼다. 여자이기 때문에 플로베르보다 두 배나 더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비평이 두 배나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말에서는 이단의 냄새, 코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는 고약한 음식 만드는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 글은 어쨌거나 글쓰기 요리법이다. 내가 주부에서 작가로 변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요리를 종종 혼동한다. 사실 글쓰기와 요리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일치할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나는 여성의 글쓰기는 남성의 글쓰기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성의 본성과 상이한 여성의 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논리적인 설명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경험에서 찾는 것이다. 만일 여성의 본성이나 남성의 본성이 존재한다면, 이는 예술 작품의 창작에서 여성과 남성의 능력이 다르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과 여성의 능력은 동일하다. 이러한 능력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불변의 여성 본질, 성에 의해서 영원히 정의된 여성의 정신은 여성 문체의 불변성을 정당화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체는 과거와 현재 여성들이 쓴 작품의 연구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언어와 작품 구조의 특징이라고 한다. 오늘날 그와 관련된 이론이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측면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논리적이며, 구성 또한 면밀하고 찬란하다는 점에서 열정적이고 신비하고 악마적인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과 정반대된다. 오스틴과 브론테의 소설은 열린구조와 편린구조와 심리적인 미묘함을 천착하고 있는 리스펙토르나 엘레나 가로의 현대 여성작가의 소설과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만약 문체가 남성이라면, 문체는 여성이기도 하다. 문체는 근본적으로 남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문학과 여성문학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집착하는 주제이다. 우리 여자들은 과거에는 정치적 과학적 모험적 세계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 이런 상황은 변했다. 우리 문학은 종종 우리 몸과 직접적인 관계에 의해 한정된다. 우리 여자들은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먹여주며, 생존의 문제까지 걱정해준다. 자연이 우리 여자들에게 부여한 이러한 운명은 역동성에 걸림돌이 되고, 감정적 필요성과 직업적 필요성을 조화시키려고 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힘과 접촉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여성 문학은 과거에는 남성 문학보다 훨씬 더 내적 경험을 천착했다. 역사, 사회, 정치와 그다지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여성문학은 남성문학보다 훨씬 더 전복적이었다. 종종 금지된 영역, 비합리적인 사건, 광기, 사랑, 죽음과 관련된 영역으로 잠수했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런 영역은 존재자체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위험해진다. 그러나 여자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다. 여자의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섬세하고 참을성 있게 수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남성의 경험과 마찬가지도, 어느 정도는 변할 수 있다. 더 풍부해지고 확장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여성 글쓰기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은 오늘날에는 비본질적이고 무용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여성작가들이 열린 구조를 사용하는지 아니면 닫힌 구조를 사용하는지,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는지 아니면 외설적인 언어를 사용하는지, 머리로 쓰는지 아니면 가슴으로 쓰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머니들에게, 초창기 여성작가들에게 배운 기본적인 교훈을 적용시켜 불에 달구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있다. 글쓰기의 비밀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비법처럼 성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오로지 재료를 조합하는 지혜에 달려 있다.◇
 
 
옮긴이 주
1) 출처: Rosario Ferré, "La cocina de la escritura." Sitio a Eros. México: Joaquín Mortiz, 1980, 13-33.
2)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Sor Juana Inés de la Cruz, 1648-1695): 스페인 식민시대의 멕시코 여성 시인. 최초의 페미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3) 조안 디디언(Joan Didion, 1934):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소설로는 『강물아 흘러라』(1963),『화이트 앨범』(1979)이 있다. 
4) 클라리세 리스펙토르(Clarisse Lispector, 1920-1977): 우크라이나 태생의 브라질 작가. 언어의 문제, 여성의 문제를 천착함으로써 현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으로는 『야성(野性)의 마음에 다가서서』(1944), 『가족의 유대』(1960), 『어둠 속의 사과』(1961), 『살아 있는 물』(1973) 등이 있다. 
5) 림보는 가톨릭교회에서 천국이나 연옥 또는 연옥 그 어느 곳에도 가지 않은 죽은 자들의 거처 혹은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6) “초록색 같다”는 말은 음탕하다는 뜻이다.
7) 에리카 종(Erica Jong, 1942- ): 미국의 작가이자 교수. 1973년에 출판한 첫 소설 『날기가 무서워』 (Fear of Flying)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을 대담할 정도로 솔직하고 다루고 있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8) 진 리스(Jean Rhys, 1890-1979): 카리브 해에 위치한 영연방 도미니카에서 출생. 대표작은 1966년에 출판한 『드넓은 사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
9)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 1862-1937): 미국 소설가. 소설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1920)로 1921년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0) 도로테아(Dorotea):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선량한 여성.
11) 엘레나 가로(Elena Garro, 1920-1998): 멕시코 소설가. 작품으로는 소설 『미래의 기억』(Los recuerdos del porvenir, 196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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