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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은유와 환유>
2018년 06월 01일 15시 29분  조회:2598  추천:0  작성자: 강려
김욱동 <은유와 환유> 민음사, 2004.
 
 예전에 김혜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이젠 은유의 시대는 갔고, 환유의 시대다, 라고 말씀하셨다.
(달리 기억하고 있을런지 몰라도) 친구들을 붙잡고 환유가 뭐냐고 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때때로 문학비평 용어사전이나 이론서에서 환유를 만나기는 했으나, 읽어도 어렴풋했다.
 이 책을 사서 읽은 것은 그 미심쩍음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김욱동이란 저자를 이래저래 만나게 된다.대학시절 논문을 쓰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 관련서를 읽다가 이 분을 만났다. 참 바지런한 분같다. 외국의 이론을 무작정 수입하는 오퍼상이 문제라고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겠다.
 여하튼, 훌훌 잘 읽힌 책이다. 일단 이분이 선생님이라 그런지 되도록 예를 많이 들어주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은유와 환유의 정체를 목격하지는 못 했어도 하반신 정도는 본 것 같다.
 지금 내 머릿속에 대강 그려진 상에 의하면 은유는 A는 B라 하는 것이고 환유는 A는 A' A''A'''A''''라는 것이다. 뭐야! 해도 일단 이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은유와 환유를 세계관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은유를 쓰는 사람의 세계관, 환유를 쓰는 사람의 관점은 다르다. 수사법을 가지고 세계관까지 짐작해본다는 점에서 여타의 수사학 책과는 다르다 할 수 있다. 
 
 이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 비유란 무엇인가?
 2. 은유란 무엇인가?
 3 환유란 무엇인가?
 4 은유의 정치학, 환유의 정치학.
 
 참으로 차분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1장, 비유란 무엇인가? 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웅변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냈단다. 그들에게는 말 잘 하는 능력이 무척 중요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사학'이 발달했다. 수사학이란 본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로서 생각을 좀더 뚜렷하고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능력은 타고 난 것이기도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얻어진다.
  키케로는 수사 담론이 제대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1)창안2)배열3) 양식4)기억5)전달의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창안이란 논거와 증명을 찾아내는 것, 배열이란 찾아낸 논거나 증명을 짜맞추는 것, 양식이란 짜맞춘 자료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낱말과 언어 패턴, 리듬 따위를 고르는 것이다. 키케로는 수사학의 양식을 1)웅장한 양식 2) 중간 양식 3) 소박한 양식으로 나누고, 이 세 양식 모두에 두루 적용되는 기준을 1)정합성(언어를 용법과 관습에 맞게 올바로 사용하는 것) 
2) 명확성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하는 법)3) 적절성(말하는 상황이나 맥락에 어긋나지 않게 언어를 구사하는 법) 4) 장식성. 이 중 장식성인 수사적 장치로 꼽혔다. 장식성은 처음에는 웅변 양식의 한 특징이었으나 차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수사학인가? 철학인가?
 
 논리학과 수사학의 싸움은 팽팽했다. 미국의 수사이론가 리처드 랜햄의 이론을 보자면, 인간은 크게 <호모 세리오수스(진지한 인간)>,<호모 레토리쿠스(수사적 인간)>의 두 갈래로 나뉜다. 진지한 인간은 중심적 자아와 확고한 동일성을 가진 반면, 수사적 인간은 배우같고, 그의 행동은 연극적인 데가 적잖다. "진지한 인간의 편에서 보면 모든 수사적 언어는 의심스럽고, 수사적 관점에서 보면 투명한 언어는 이 세계에 대하여 부정적하며 거짓말을 한다."
 
 이 두 전통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엎치락뒤치락 우열을 다퉈왔다.
 
 수사에 맨처음 의혹의 눈길을 보낸 것은 소크라테스다. 그는 수사를 "무식한 사람의 눈에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득하는 방법"이라 했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 파에드로스 역시 수사학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도 수사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사학에 대하여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 비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유기적 통일성을 중시한 플라톤은 <파에드로스>에서 "모든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루어져 있다."했다. 언어가 생물체라면 언어의 논리성 못지 않게 수사성도 중요하다. 이런 태도는 수사적 언어와 논리적 언어, 시어와 일상어를 굳이 구별하지 않으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진리란 문어체의 시어보다 오히려 구어체로 된 일상 대화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플라톤의 유기적 언어관은 훗날 낭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수사학에 대해 양면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수사학 자체에 잘못이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잘못 쓰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잘만 사용하면, 수사는 진리를 왜곡시키거나 숨기기는 커녕, 오히려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는데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그는 은유 구사력을 천재의 징표라 주장한다. "훌륭한 은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서로 이질적인 것들에서 직관적으로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구심을 버리지는 못하였는데 은유란 고기맛을 나게 하는 양념이며 지나치게 쓰면 곤란하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비유란 어디까지나 모방이론의 관점에서 의미를 지닐 따름이다. 더 효과적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방법 중에 비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진리의 상대성을 내세웠는데, 그들에게 진리는 개별적인 데다가 일시적인 것이어서 보편성과 영원성을 지니지 않았다. 한 마디로 어느 누구에게나 진리는 남을 확신시키거나 남한테 설득당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의 키케로, 호라티우스, 퀼틸리아누스도 수사학에 관심을 보였다. 키케로는 인간이 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수사학 덕이라 했고, 사상과 언어, <현명한 생각>과 <우아한 표현>은 영혼과 육체처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호라티우스는 문학의 당의정 이론을 주장하며 문학이란 쾌락적 기능, 실용적 기능, 미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가졌다 했다. 키케로는 수사학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심장처럼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했다. 그는 수사학을 옷에 견주는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만든 것처럼 언어의 부족함과 결핍 때문에 수사학이 필요하가 주장했다.
 언어를 <사상에 입히는 옷>에 처음으로 견준 사람은 퀸틸리아누스다. 몸에 안 맞는 옷이 볼품 없듯이 사상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논리학과 수사학의 싸움은 중세에 들어 소상상태를 맞는다. 이 무렵 수사학은 문법학과 논리학과 더불어 <트리비움>의 한 과목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론과 합리성이 대접받는 근대에 들어 수사학은 움추려든다. 수사학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자, 경험주의 철학자에게 뚜렷이 나타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들이 진지한 주제와 건전한 논의보다는 오히려 미사여구에 현혹된다 개탄했고, 로크는 수사학을 기만이나 사기 행위로 간주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역시 사물을 담아내는 그릇인 언어보다는 그 그릇 안에 담겨 있는 사물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철학적 입장에서 수사학을 반대했다면 청교도들은 종교적 이유로 그것을 업신여겼다. 밀턴을 비롯한 청교들에 의하면 교회의 색유리창이 빛을 차단하는 것처럼, 현란한 수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린다고 주장했다.  
 
수사학은 19세기 낭만주의자에게 큰 조명을 받았다. 독일 관념론자들과 장-자크 루소의 세례를 받은 영국 낭만주의자들은 수사학의 가치를 인정했다. 가령 루소와 마찬가지로 셸리는 언어란 본질적으로 은유적인 것이라 주장하고, 시인이 맡아야 할 임무는 바로 새로운 은유를 창조하여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라 했다. 수사학이란 궁극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하나로 결합하여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었다.
 이 무렵 수사학에 무게를 실어준 사람은 니체다. 그에게 진리란 기껏해야 <은유와 환유와 의인화의 이동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란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환상이요> <감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낡은 비유>라고 잘라 말한다. 니체는 절대적인 것을 믿는 모든 행동이야말로 병적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수사학과 논리학의 다툼은 20세기까지 지속된다. 크로체는 수사학이 내용과 형식, 주제와 표현을 엄격히 나누려고 한다는 점을 들어 <오염된 예술>이라 지적했고, 비엔나 실증주의자들도 비유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버마스는 수사성에 물들지 않는 <이상적인 스피치 상황>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수사학은 20세기 중엽 개화기를 맞았는데, 이에 대해 I.A 리처즈의 공헌이 크다. <수사학의 철학>에서 그는 "한 낱말이 실제 사용과 추상적으로 적절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종래의 주장을 그는 미신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언어의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 비유는 언어에 입히는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언어와 사상은 영혼과 육체의 관계라는 것이다. 또한 애매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애매성이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의 본질적 속성이요 의사소통의 필수적인 방법이다. 특히 문학과 종교처럼 언어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객관성과 논리성에 회의하는 포스트구조주의자도 이런 흐름과 연관 있다. 2차 대전 이후 새롭게 선보인 비평이론들이 흔히 <수사비평>이라 낙인 찍히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자크 데리다를 비롯한 해체주의자들은 수사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그와 오스틴이 언어의 수사성을 두고 벌인 논쟁은 유명하다. 스피치 행위이론을 처음 세운 오스틴은 언어행위를 술정적 행위와 수행적 행위로 나누고, 모든 언어 행위는 결국 수행적이라 결론지었다. (술정적 행위: 사실이나 정황에 대해 언급하는 것, 수행적: 질문, 약속, 경고, 명령을 하는 것 달리 말해 언어를 통해 무엇인가를 달성하려는 것 (김욱동 <문학을 위한 변명>에서) 그러면서도 오스틴은 문학어가 일상어에 대하여 '파생적'이고 '기생적'이라고 말한다.
 이에 맞서 데리다는 문학어는 물론이고 일상어조차도 수사성에 짙게 물들어 있다고 말한다. <언어의 부절적성은 모든 스피치가 감염되어 있는 질병>이며 수사성을 피해 아무리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나 상식 속에 숨으려한들 부질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나 상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분적이고 당파적이며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이상 수사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문학 텍스트를 해체하는 작업이란 궁극적으로 텍스트 안에 숨겨져 있는 수사성을 드러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폴 드 만 역시 수사학에 깊이 오염되어 있다는 점이 문학과 철학의 공통점이라 했다.
 
수사학은 철학 뿐만 아니라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몫을 한다. 도널드 맥클로스키는 <경제학의 수사학>에서 경제학의 방법론이 언뜻 객관적인 것 같지만 따져보면 "형이상학과 도덕과 개인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법학도 마찬가지다. 로버트 고든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신념 구조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발적인 것"이라 말했다. 과학 이론 역시 마찬가지. 토머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을 움직이는 동력은 참과 거짓을 증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확신이나 설득이라 말한다. 만약 과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릴 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공동사회의 합의보다 더 높은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에서도 수사학이 발전했다. 중국에서는 문학을 도를 싣는 그릇으로 보려는 '문이재도'가 크게 힘을 떨쳤지만, 못지 않게 문학의 형식적 측면에도 무게를 실었다. <시경>에서는 시육의 또는 육시로 일컫는 시적 장치가 기술되어 있다. 시육의란 부, 비, 흥, 풍, 아, 송 등 여섯 가지 방법을 말한다. 이 가운데 부와 비와 흥은 오늘날의 수사법에 속하고, 나머지 풍과 아와 송은 장르 이론에 속한다. 이렇게 세가지씩 두 쪽으로 나우어지는 것을 두고, 삼경삼위설이라 한다.
 삼경에서 부가 한 짝이 되고, 비와 흥이 다른 한 짝이 된다. <시대서>와 <문심조룡>, <시품서>의 풀이에 따르면 부는 다른 것에 빗대지 않고 사물을 직접 진술하는 직서법이나 포진법이다. 비와 흥은 간접적으로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방법이다. 비는 오늘날의 상징법에, 흥은 오늘날의 연상법에 가깝다.
 우리나에서도 문학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들이 있다. 김종직과 성현이 이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다. 김종직은 <경술을 하는 선비는 문장을 못하고, 문장을 하는 선비는 경술에 어둡다는 세인의 말이 있다. (...)문장은 경술에서 나오는 것이니, 경술은 곧 문장의 근본이다. 초목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없이 어찌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며 꽃과 열매가 곱고 빼어날 수 있겠는가? > 그런데 문장보다 경술을 강조하는 김종직의 글에는 비유가 무성하다.
 성현은 <문변>에서 김종직의 주장에 반박한다. 김종직은 뿌리(경술)이 튼튼하지 않고서는 가지와 잎사귀(수사나 비유)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고 했으나 성현은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랄 때 비로서 뿌리가 제대로 뻗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사학과 비유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비유를 뜻하는 말인 영어 트로우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트로페(구부러짐, 뒤틀림)'와 만난다. 똑바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완곡하게 말하는 방법을 뜻한다. 트로우프와 함께 쓰이는 '피겨'라는 영어도 형상이나 모습을 뜻하는 라틴어 <피구라>에서 나왔다. 이 말에서 비유가 흔히 가지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비유는 통상 둘로 나눈다. <의미에 따른 비유>, <형식에 따른 비유>가 그것이다. 전자는 축어적 의미와 다른 어떤 의미를 얻기 위하여 낱말이나 구를 구사(은유, 직유, 환유, 반어. 제유, 역설, 상징, 우화, 과장, 의인)하는 반면, 후자에서는 낱말의 의미보다는 낱말의 통사론적 순서나 패턴에 의지(병치, 도치, 대조, 점층)한다.
 
 비유는 생성하고 발전하는 단계에 따라 죽은 비유, 죽어가고 있는 비유, 살아 있는 비유, 다시 되살아난 비유로 나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일상어는 죽은 비유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비유를 비롯한 시어를 일상 표준어에 대한 일탈이나 전경화로 본다. 가령 체코 언어학자 앤 무카조프스키는 <시어의 기능은 발화를 최대한 전경화하는 데 있다. 시어는 의사소통을 위하여 쓰이지 않고 표현 행위, 곧 스피치 행위 자체를 전경에 내세우기 위하여 쓰인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경화되어 있지 않고 후경화되어 있는 일상적 표현이 바로 죽은 비유라 할 수 있다.
 
비유는 문화에 따라 성격과 의미가 달라진다. 바싸라는 언어를 쓰는 아프리카 서쪽 지방에 사는 부족은 무지개 빛을 오직 두 개로만 분류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남성과 여성>에서 문화에 따라 은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밝혔고, 레비-스트로슨느 <야만의 정신>에서 원시인들이 유추적이고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문명인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이 주위 세계에 반응하는 방법은 <브리콜라주>라고 보른다. 브리콜라주에서는 무엇보다도 신화 체계와 유추적 사고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은유적 관계가 중요하게 취급된다. 특히 원시인들은 자연 조건과 사회 조건 사이의 상동성을 문명인들보다 휠씬 쉽게 찾아낸다.
 미드도 자연의 질서가 곧 비유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먹을 수 없는 음식>의 대조는 흔히 자국인(원주민)과 외국인(이방인)을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프랑스인 '개구리를 먹는 사람' 아시아인 '개고기를 먹는 사람'
 
 비유는 어떤 구실을 하는가?
 
 독일의 철학자, 작가인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글에서 원시인들이 상징을 통하여 생각하였다고 말하면서 비유를 언어의 시작과 연관지었다.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언어는 <영혼의 사전>으로 이 사전에서는 비유와 상징이 서로 결합하여 신화와 서사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비코는 원시인들이 본능적으로 <시적 지혜>를 지니고 있었고 그 지혜는 비유와 상징과 신화를 통해 표현되었다고 주장했다. 에머슨은 모든 낱말이 한때는 시였기 때문에, 언어는 곧 <화석이 된 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비유는 일단 말과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구실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란 다름아닌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과 언어 유희는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연관되어 있다.
 -비유는 직접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고 에둘러 넌지서 말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비유는 관념을 생생하게 그리고 힘있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비유는 이미저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비유는 어떤 진술을 전보문처럼 압축하거나 응축하여 짧게 표현하는 기능을 맡기도 한다.
 -비유는 이질적인 것에서 유사성을 찾아내어 무질서와 혼돈에 질서와 통일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추장에 따르면 악마는 세계를 될 수 있으면 작게 쪼개려고 한다. 곰팡이 균이 어둡고 습진 곳에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듯이 악마도 갈가리 갈라지고 쪼개진 세계에서라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로 힘을 합치면 그 덩어리가 너무 큰 탓에 잡아먹을 수가 없지만 일단 생각과 의견이 서로 엇갈려 작게 쪼개지면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단다.
 비유란 이 세계를 계속 유지하고 인간을 악마로부터 보호하는 힘이 된다.
 더 나아가 비유는 갈등과 반목을 화해시키고 불화와 불균형 사이에서 조화를 꾀하기도 한다.
 -비유는 이 세계를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깨뜨리고 새롭게 보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낯선 말은 단순히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일상어는 오직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전달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은유를 통해서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 < 예술이 존재하는 것은 삶에 대한 감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예술은 우리가 사물을 느낄 수 있도록, 돌을 돌처럼 만들기 위하여 존재한다.>
 -비유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맡기도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보태는 식으로 어휘를 생성한다.
-비유는 웃음과 해학을 자아낸다.  
-부정적인 면은 고루하고 인습적인 생각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내자','안사람' 여성을 집안에서만 가두려는 속셈.
 <마누라> 마루 하
-비유는 진실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감추거나 숨기는 기능을 맡기도 한다.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무엇인가를 빼놓아야 하는 것이 언어의 속성이다. (작가가 의도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작품 속에 남겨놓은 빈공간이나 침묵에 눈길을 돌리려는 정신분석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빌 클린턴 성추문 사건 "부적절한 관계" "친근한 성접촉"/ "잠자리는 같이 하였지만 속살은 섞지 않았다."
 
비유와 세계관
 
 인식론적 관점에서 비유를 처음 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인간이 비유를 통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고 했다. 폴 리쾨르는 철학적 관점에서 비유를 인식 작용과 연관시키고, 존 설은 스피치 행위이론의 관점에서 그것을 발전시킨다. 폴 드 만은 <개념의 인식론적 함축을 깨닫게 되자마자 개념은 곧 비유가 되며 비유는 곧 개념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철학자 마크 존슨은 인간의 사고구조란 본질적으로 은유적이라 했다. 인지 심리학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의식 세계 뿐만 아니라 무의식 세계도 비유와 연관이 깊다. 프로이트는 꿈의 의미가 어떻게 숨겨지고 변형되는가를 말하면서 <동일시>와 <치환>의 기능을 지적했다. 동일시에는 한 관념이 동일한 의미구조 안에서 다른 관념과 관련을 맺는 반면에, 치환에서 의미는 연상 작용에 따라 한 관념이나 대상으로 바꾸어진다.
 
<제망매가> 나뭇가지의 비유, 삶과 죽음의 순환성을 설명하는데 적절.  
 
비유는 궁극적으로 인식론과 맞닿아 있다. 실재를 그저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실재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구실을 맡는다. 이 점에서 비유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유리창이라 할 수 있다.
 
 2 은유란 무엇인가?
 
 니체는 신이 저지른 첫번째 실수가 인간을 창조한 것이오, 두번째 실수는 여자를 창조한 것이라 했다. 이에 덧붙여 호세 오르세가 이 가세트는 세번째 실수를 지적했는데, 멍청한 외과의사가 수술을 한 뒤 환자 뱃속에 수술 도구를 하나 남겨두고 봉합해버린 것처럼, 신도 그만 어이없는 실수로 인간의 머리에 창조 행위에 필요한 도구를 하나 남겨 놓았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은유>다.
 미국의 영문학자 마크 터너는 <은유는 일상적 사고와 언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은유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고 유형으로써는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언어학자는 은유를 어떻게 보는가?
 
 은유는 현대 언어학에게 이론적 뒷받침을 받는다. 그 중 통사론과 화용론이 끼친 영향이 크다. 통사론 쪽에서는 변형-생성 문법의 기틀을 마련한 노엄 촘스키가, 화용론 쪽에서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모델을 세운 H. 폴 그라이스가 언어학적으로 은유를 살핀 대표적인 이론가라고 할 수 있다.
 촘스키는 언어의 심층구조를 밝힌 언어학자로 평가받는다. <통사이론의 양상(1965)>에서 그는 이른바 <선택 제약>의 관점에서 은유를 설명한다. 선택 제약이란 한 어휘 항목이 다른 어휘항목과 다른 어휘 항목과 결합하는 방식을 규정짓는 규칙을 말한다. 한 주어는 아무 낱말이나 술어로 삼을 수 없고 오직 여러 낱말 가운데에서 특정한 낱말만을 술어로 선택하게 마련이다.
 촘스키는 선택 제약을 위반한 본보기로 <색깔 없는 푸른 관념이 맹렬하게 잠을 잔다>라는 문장을 예로 든다.
 화용론도 은유이론에 한 몫을 하는데, 화용론자 H. 폴 그라이스는 대화 격률 이론에서 은유를 언급한다. <논리와 담화>에서 종래의 기호학적 모델과는 전혀 다른 추론적 의사소통 모델을 제안한다. 모든 의사소통을 메시지로 기호화하고 그 기호를 해독하는 것으로 보는 기호학적 모델과는 달리, 추론적 모델에서는 의사소통은 어디까지나 추론적 증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그라이스는 <협조의 원리>라고 부른다.
 그라이스는 협조의 원리는 1)양의 격률 (정보의 양과 관련한 것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의 목적에 꼭 필요한 양만큼의 정보 제공)2) 질의 격률(대화에서 그릇되다고 믿는 것을 말해서는 안 되며 꼭 진실된 것만을 말하고 적절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만을 말한다)3)관계의 격률(적합성과 연관성을 중시. 오직 대화와 직접 관련된 것만을 말하도록 규정) 4) 방법의 격률(명료성, 될 수 있는 대로 모호하거나 애매한 말을 피하고 간결성과 논리적 질서를 추구한다) 로 나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그라이스도 말했듯이 이상적인 규범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말라가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모호하고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대화에 협조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라이스는 은유가 협조의 원리 가운데 질의 격률을 어긴 것으로 본다. 은유는 정보를 간결하게 전달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분명하게 전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촘스키나 그라이스에게나 은유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언어규칙에서 벗어난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인지 화용론 분야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적합성 이론에서는 은유는 더 대접을 받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축어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을 뚜렷이 구분했다. 은유적 해석은 어디까지나 축어적 해석을 전제로 삼고 그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댄 스퍼버와 데이드르 윌슨 같은 적합성 이론가들은 축어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항대립보다는 연속체의 관점에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적의 적합성을 얻을 수 있는 한 축어이든 비유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축어적 발화가 흔히 최적의 적합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정보를 처리하여 얻는 소득이 그것을 처리하는 데 드는 노력에 미치지 못할 때 축어적 발화는 최적의 적합성을 지니지 못한다. 최적의 적합성은 <적합성 원리>를 따를 때 얻을 수 있다. 적합성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은 <맥락 효과>와 <처리 노력>이다. 상정 내용이 한 맥락 안에서 갖는 적합성의 정도는 그 맥락 효과의 정도와 비례하고 처리 노력의 정도와 반비례한다. 이를테면 우수리 단위까지 정확히 말하면 언뜻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그 노력에 비하면 오히려 효과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적합성 원칙은 최소의 노력이나 자재로써 최대의 효과를 노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경제 원칙과 비슷하다.
 적합성 이론가들은 최적의 적합성을 얻기 위하여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은유를 보려 한다. <이 방은 돼지우리이다>는 은유는 그 방이 매우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더러움과 지저분함의 이미지 같은 것도 같이 가져다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합성을 추구하려는 나머지 은유가 지니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였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은유는 환유나 제유를 비롯한 다른 비유법과 그성격과 본질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은유를 어떻게 이론화할 수 있는가?
 
 은유에 대한 이론을 크게 넷으로 압축할 수 있다. 1) 치환 이론 2) 상호작용이론 3) 개념 이론 4) 맥락이론
 *치환이론 : 아리스토텔레스 " 은유는 어떤 사물에 다른 어떤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의 전이는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유로, 종에서 종으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유추를 근거로 이루어진다." <시학>
 은유란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대상이나 개념으로 바꾸어놓는 비유법이다. 치환이론에서 은유는 바로 암호를 해독하거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환이론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비교 이론, 유사성 이론 이다. 유사성이론이란 서로 다른 대상이나 개념을 서로 비교하여 유사성을 찾아내는 비유법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란 그 밑바닥에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폴 리쾨르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은유를 전이로 보는 태도에 비록 묵시적이나마 이미 유사성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전이가 일어나도록 서로 다른 두 관념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교가 필요하고, 무엇인가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유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것에서 유사성을 찾아내는 수단은 다름 아닌 유추 작용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비유적 의미는 어디까지나 축어적 의미를 달리 변형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호 작용 이론: 이 이론은 치환이론, 비교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I.A 리처드는 은유의 구성요소를 크게 <주의(테너)>,<매체(비히클)>,<원관념>과 <매체관념>의 두 갈래로 나눈다. 주의나 원관념은 어떤 것에 견주거나 빗대는 원래 대상을 말하고, 매체나 매체 관념은 그 주의나 원관념을 표현하는 보조 관념을 가리킨다.
 리처즈는 원관념(축어적 관념)과 매체 관념(비유적 관념)이 서로 작용하여 은유가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은유적 의미란 축어적 관념도, 비유적 관념도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생겨난 제 3의 관념이다.  <은유를 쓸 때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사물에 대한 두 관념이 함께 작용하고 한 낱말이나 구의 지지를 받는데, 그 의미는 두 관념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매체 관념과 원관념이 공존하여 한 의미를 가져오는데, 그 의미는 이 둘의 상호작용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이 두 관념이 함께 지니고 있는 특징을 <은유의 기반>이라고 부른다. 이 두 관념을 연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은유와 관련하여 그가 <차용>이나 <교섭>이니 <거래>니 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처즈가 말하는 의미의 상호작용은 두 물질이 분자나 원자 구조를 바꾸어 제3의 물질로 변하는 화학 작용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리처즈의 상호작용이론을 맥스 블랙이 좀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블랙은 리처드가 만들어낸 원관념과 매체 관념이라는 용어 대신에 <초점>과 <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초점은 은유적 표현을, 클이란 은유적 표현이 쓰이는 맥락, 즉 문장을 말한다. 치환이론이나 유사성 이론에서는 은유는 얼마든지 축어적 의미로 옮겨놓을 수 있지만 상호 작용이론에서는 은유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지 ㅇ낳고서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 없다.
 블랙의 이론은 은유의 창조성에 무게를 싣는다. <은유는 이미 존재해 있는 어떤 유사성을 공식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사성을 창조해 낸다.> 한마디로 은유는 삶의 실재를 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블랙은 은유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세 단계를 밝혔는데, 첫째. 일차적 주제는 청자로 하여금 이차적 주제의 특성 가운데 몇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일차적 주제는 그 주제에 부합될 수 있는 해당 함축-복합을 만들도록 한다. 셋째, 서로간에 이차적 주제에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개념이론 조지 레이코프, 마크 존슨, 마크 터너. <우리는 일상적 개념 체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 개념 체계는 본질적으로 은유적 성격을 지닌다> 은유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적인 인지 방식이며 수사학의 역할은 바로 인지과학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이들은 리처즈가 상호작용이론에서 의미변화가 쌍방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데 반박한다. 은유에서는 의미변화가 오직 일방적으로밖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생의 나그네길>이란 은유에서 <인생은 나그네길>이란 은유는 성립해도, <나그네길은 인생>이라는 은유를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맥락이론: 은유가 쓰이는 맥락을 은유이론의 가장 중요한 범주로 삼으려는 입장을 말한다.  이스리얼 셰플러, 필립 스탬보브스키. 메리 버그먼 <은유가 일어나는 맥락과 그 은유를 사용하는 장본인이 누구인지 모르고서는 그 은유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란 어렵다>
 
  은유는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메타포>의 어원 <메타페레인> 메타는 <위로, 너머로> 페레인 <옮기다, 나르다> 메타포한 한 말에서 다른 말로 그 뜻을 실어옮기는 것을 뜻한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의미의 전이'라 한다.
 환유, 제유와는 달리 은유에서 의미의 전이는 서로 다른 두 개념 영역, 의미 영역 안에서 일어난다. 은유란 다른 두 대상이나 개념 사이에 유사성이나 차별성을 찾아내는 비유법이라 할 수 있는데, 유사성이나 차별성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나 개념이 서로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환유가 인접성에 이론적 기초를 둔다면 은유는 유사성에 바탕을 둔다. 은유를 깨닫는다는 것은 곧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아내는 일과 다름없다. 그러나 그 유사성이 직접 드러나면 비유의 힘을 그만큼 약화된다. 이와는 반대로 그 유사성이 넌지시 암시되어 있으면 비유적 힘을 더욱 커진다.
 차별성도 중요하다. 스티븐 울만은 <원관념과 매개관념 사시에는 어떤 거리감이 있다는 것은 은유의 중요한 특징이다. 원관념과 매게관념의 유사성은 괴리감을 수반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고 영역에 속하게 마련이다.>
 
 은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명사은유 2) 형용사 은유 3) 부사 은유 4) 동사 은유
 
1 )명사 은유에서는 두 명사가 결합해 하나의 은유를 만들어낸다. '황금의 팔'
 그러나 속격 조사 <의>로써 명사와 명사를 결합하는 표현을 단순히 명사 은유로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황금이> 등은 명사보다는 형용사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법에서 흔히 동격이라 부르는 것도 명사은유다.
 
2)형용사 은유 : 명사와 그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서로 결합하여 은유를 만들어낸다. <영원한 잠> 호라티우스가 죽음을 <뗏목을 타고 떠돌아다니는 영원한 유배>에 빗댄 것.
 
3)부사 은유 : 동사와 부사가, 형용사와 부사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은유.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백석 <삼천포>  
 4) 동사은유: 묘사와 행동을 결합하기 때문에 의미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다. 동사는 그 성격에 따라 연계 동사와 변형 동사, 서술동사로 나눈다. 연계 동사란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대상이나 개념과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하는 동사를 말한다. <~이다>처럼 존재나 상태를 가리키는 동사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연계동사는 한 대상이 다른 대상과 같은 것임을 밝히는 구실도 맡지만 한 대상의 속성을 다른 속성으로 바꾸는 구실도 맡는다. 이렇듯 연계동사로 이루어지는 은유에서는 동일성과 치환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에서 조지훈은 <하얀 고깔은 나비이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낸다. 연계동사로 된 은유 가운데서 <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변형동사는 <만들다> <되다>처럼 한 대상을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어놓는 동사를 가리킨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서술동사는 연계 동사와 변형 동사의 한중간에 속하는 동사로 걷다, 날다처럼 한 대상을 서술하고 묘사하는 구실을 맡는다. <안개와 몸을 섞으며 /이홍섭 <자야곡>) <전등불빛이 여기저기 돋아난다. /고은<저녁 논길>
 
은유에는 어떤 갈래가 있는가?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이 명시적으로 드러났나, 묵시적으로 드러났나에 따라 4형식으로 나눈다.
 첫째,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이 모두 명시적으로 드러남.
 소녀의 마음은 봄잔디 풀! (황석우 <풀>)
둘째, 비유적 관념은 명시적으로 드러났으나 축어적 관명이 암시적으로 드러남.
 
 난지도 부근에서 하늘을 본다
 벌써 서산
붉은 감이 뚜우뚝 지며
황혼은 붉다
                                              김승희 <난지도 부근>
 저녁해와 붉은 감.
 
셋째 갈래에서는 축어적 관념만이 명시적으로 드러났고 비유적 관념은 암시적으로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 다한 말
못 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달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문정희 <가을 노트>
 
 축어적 관념은 <나의 가을>이고, 비유적 관념은 <우수수 몸을 떨었다>
 
넷째 축어적 관념도 비유적 관념도 모두 암시
-수수께끼 시, 정의 시
은유를 쓰는 시인은 어떤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독자는 그 정의를 알아맞히도록 요구받는다.
 
 가녀린 몸매
 허공에 나붓대며
 실성한 여인처럼
 하얀 웃음 까르르
말라 바스러질 때까지
 연신 히득거리며
모음으로만 쏟아놓은
오 백치
                                                           이희선 <안개꽃>
 
 은유는 기능이나 역할에 따라 <장식적> 은유와 <기능적> 은유로 나눈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는 장식적 은유는 좀처럼 찾기 어렵고, 은유는 거의 기능적이고 유기적으로 쓰인다.
 
 <구체적>은유란 너무 막연하여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은유를 말한다.
<물환론적>,<유생론적>은유란 생명이 없는 대상이나 개념을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은유를 말한다.
 <확장 은유>란 여러 행이 결합하여 하나의 은유를 만들거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은유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임영조 <비누>
<혼합은유>란 하나 이상의 은유가 한데 뒤섞여 있는 은유를 말한다.
 
직유와 은유 사이
 
 직유는 서양이나 동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쓰인 수사장치다. 은유와 직유를 같은 계통으로 보는 태도와 엄격히 구분하는 태도가 다른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와 직유를 같은 차원에서 보려고 한 최초의 이론가였다. 보조수단 <-처럼><같이><인 듯>같은 보조수단을 제외하고는 은유와 같다는 것이다. 키케로 역시 은유를 직유의 축약된 형태로 보았다. 새뮤얼 존슨은 은유를 아예 <한 낱말로 응축한 직유>라 규정지었다. 필립 윌라잇은 <은유와 실제>에서 "어떤 표현이 본질적으로 은유인가 은유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문법 형식의 규칙보다는 의미변화의 질에 달려 있다." 그에 따르면 비유는 비교를 통하여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고, 병치와 통합을 통하여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윌라잇은 비유를 은유와 직유로 나누는 대신, <에피퍼>와 <다이아퍼>로 나눈다. 에피퍼란 비교를 통한 의미 확장을, 다이아퍼란 병치와 통합을 통한 의미확장을 말한다. 한 이론가는 이를 쉽게 풀어 과거에 깨닫지 못하였거나 어렴풋하게 깨달은 통찰을 표현하는 것을 에피퍼로, 유사성을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상물 사이의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강조하는 것을 다이아퍼로 보았다.
 
은유와 직유의 차이는 그 말의 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메타포는 의미의 전이를, 직유를 뜻하는 영어 <시밀리>는 그저 비슷하다, 닮았다라는 뜻의 시밀리스라는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은유와 달리 직유에서는 -처럼, -와 같이 또는 -인 듯, -보다 와 같은 보조수단을 써서 의미의 전이를 제안하거나 설명하려고 한다. 직유는 전이 과정의 뼈대를 보여줄 뿐 그 과정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은유를 화학적 반응에 견주고 직유를 물리적 반응에 견준 이유가 여기 있다. 직유를 두고 <은유의 가난한 친척>이라 부르는 까닭도 여기 있다.
 헨리 리 스미스나 위니프릿 노워트니는 문학어와 일상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특히 노워트니는 문학어란 어디까지나 일상어를 확장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은유가 일상어를 <충분히 확장시킨 언어>라면 직유는 아직 그러한 확장이 일어나지 않은 언어다. 노워트니의 주장을 밀고나가자면, 은유는 운문적 (시적) 특성을 지녔고, 직유는 산문적(소설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은유는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을 서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직유와는 크게 다르다. 이러한 현상을 이론가들은 비균형성과 역전성이라고 부른다. 은유에서는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위치를 역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유에서와 달리 은유에서 이 두 관념을 저울에 달면 그 무게는 늘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사랑은 한떨기 장미> 그러나 <한떨기 장미는 사랑>
 
미국의 인지 심리학자 에미머스 트버스키는 직유의 관습을 심리적 측면에서 밝힌 최초의 이론가로 꼽힌다. 트버스키에 따르면 두 관념 가운데에서 좀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좀더 원형에 가까운 것을 지시대상으로 택하고, 덜 뚜렷하거나 원형이 아닌 것을 주제로 택한느 경우가 있다. <터키 사람들은 호랑이처럼 싸운다>라고 말하여도 <호랑이가 터키사람처럼 싸운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직유는 은유보다는 오히려 환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직유에서와 마찬가지로 환유도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은유도 직유처럼 삶의 단면을 다루지만, 이러한 특성은 은유보다는 직유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이렇게 삶과 언어와의 관계를 직접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아닌 보조수단이다. 영국의 비평가 데이비드 롯지는 <은유와 환유의 차이는 언어의 은유 축과 환유 축 사이의 좀더 완전한 차이에 상응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은유는 한 사물과 사물, 한 개념과 다른 개념 사이의 내적 유사성의 관계에 기대는 반면, 직유는 외적 인접성의 관계에 기대는 것이다. 리처드 랜햄도 직유는 차별성에서 유사성의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은유와 비슷하지만 선택보다는 결합의 축을 따른다는 점에서 환유와 더 많이 닮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은유는 동일성에 무게를 싣지만 직유는 오직 근사성에 무게를 둔다.
 노스롭 프라이는 리얼리즘은 직유적 성격을, 신화는 은유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다. 프라이의 이론은 낭만주의를 은유와, 리얼리즘을 환유와 연관짓는 로만 야콥슨의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코올리지는 <상상력>과 <공상>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상상력이란 대립과 갈등을 통합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상상력이 유기적이라면 공상은 기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기적 상상력은 은유에 가깝고 기계적 공상은 직유에 가깝다.
 
직유는 때로 비교 이상의 기능을 맡는다. 축어적 직유란 감정에 좀처럼 호소하지 않고 서로 다른 대상이나 관념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비유를 말한다. 이 직유는 사실을 좀더 명료하게 전달하거나 정보를 주기 위해 자주 쓰인다. 한편 비유적 직유란 이렇다할 공통점이 없는 대상이나 관념을 서로 비교하되, 문법적 구성보다는 감정의 강렬함이나 창조성에 좀더 무게를 싣는다.
 
은유에서 비유적 의미는 때로 너무 추상적이어서 막연하다. 그러나 직유는 은유와 비교해볼 때 의미를 통제하는 힘이 훨씬 크다.
 
리처즈의 은유이론을 보자면, 그는 애매성을 <옛 수사학>과 <새로운 수사학>을 구분짓는 잣대로 삼는다. 더 나아가 비유가 가능한 것은 다름아닌 애매성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시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고 막연하게 이해될 때 가장 큰 기쁨을 준다>는 코울리지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환유란 무엇인가
 
환유와 제유는 서자 취급을 당했었다. 환유가 주목받은 것은 1950년대 로만 야콥슨의 뒤를 이은 몇몇 학자들 때문이었다. 최근의 인지 언어학자들은 은유보다 환유에 무게를 싣는다. 인간의 언어, 사고, 태도, 행위의 구조를 밝히는데 환유가 은유보다 더 걸맞기 때문이다.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은유보다 환유가 더 많이 자주 쓰인다.
 
은유인가 환유인가
 
 은유와 환유는 그것이 쓰이는 역사적 맥락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한 시대에는 환유로 취급받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은유로 취급당한다. 이를테면 <창백한 죽음>이라는 표현은 요즘 은유로 쓰인다. <지치다>라는 말은 원래 설사를 한다는 뜻으로 환유적 표현이었으나 요즘에는 은유적 표현으로 쓰인다.
 은유와 환유는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기도 한다. 역사 철학자 지암비스타 비코는 <새로운 과학>에서 은유를 비롯한 환유, 제유를 단순히 비유의 차원을 넘어 언어사와 문화사를 재는 잣대로 삼았다. 신의 시대에는 어느 비유보다 환유가 지배적으로 쓰였고, 영웅의 시대에는 제유가 압도적이어서 이 무렵 인간은 곤잘 주피터 신의 아들로 자처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어떤 비유보다도 은유가 가장 널리 쓰였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에코는 심층적인 면에서 은유와 환유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은유적 메커니즘과 환유적 메커니즘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마련이다. <모든 은유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호 체계를 구성하고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모든 의미장의 구조가 기초하는 일련의 환유적 연관성과 만난다>
 축어적 관념과 비유적 관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이 둘이 환유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비유는 은유로 봐야 할지, 환유로 봐야 할 지 경계선이 모호하고 애매하여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한 이론가는 아예 <은환유(메타프토노미)>라는 용어로 부른다. 메타프토노미란 바로 메타포(은유)와 미토노미(환유)를 합하여 만들어낸 합성어다.
 
 은유가 한 사물의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한 개체를 그 개체와 관련 있는 다른 개체로써 말하는 방법이다. 은유의 기능이 주로 사물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다면 환유는 사물이나 개념을 지칭하는데 그 기능이 있다. 은유가 이해를 위한 장치라면 환유는 지칭을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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