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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쓰는 법 /문덕수
2018년 10월 28일 16시 45분  조회:1883  추천:0  작성자: 강려
쓰는 법 /문덕수


1. 詩란 무엇인가? 

1) 詩의 첫 모습 
-시의 맨 처음 모습;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짓기 이전, 곧 원시 시대에서 그들이 짐승을 발견하거나, 짐승을 추격하거나, 또 짐승과 싸워 이길 때 부르짖는 소리는 시의 최초의 모습 

-천지 자연에게 소원을 호소하고 , 그 소원을 들어 준다는 확신에서 종교적 풍습, 또는 추수 감사절 같은 의식이 발생(고구려의 동맹, 예 나라의 무천 ,부여-영고의 제천 의식) 
이러한 의식에는 춤(동작), 음악(노래), 시(말)의 세 가지가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서, 이 중에서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발달함에 따라 동작, 노래, 말이 서로 떨어져 나가 문학, 곧 시가 독립하게 된 것이다. 

-말이 기쁨의 부르짖는 소리라면, 시도 마찬가지로 기쁨의 부르짖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 라고 말하고, 모방한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흔히 시는 감정이나 의지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나 의지 이전에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알려고 하는 국면이 있음을 덮어 둘 수 없다. 
- 詩의 어원 
* 포위트리(poetry): <행동한다>, <만든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 詩: 한자로 <손을 움직여 일한다> 와 <뜻이 나아가는 바를 말로 나타낸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 

2) 최초의 시인 
-호머(Hommer): 기원전 10세기, 장님 
-17세기 영국의 시인 밀튼: 서사시 <실낙원>을 쓸 때에는 장님이 되어 있었다. 
-원시사회의 공동 생활체에서 노동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시인의 특별한 기능이 강조되어짐 

3) 민요와 민중 
-시의 한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민요의 지은이는 모든 민중이요, 따라서 민중 전체가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 특히 노동요에서 실제로 그것이 불리어지는 과정을 통하여 개작되어 가는 흥미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4) 현대와 시인 
-현대의 영국시인 루이스는 히브리의 많은 예언자들이 시인이었다. 시인의 영감이란 어떤 영혼이 외계로부터 시인의 마음 속으로 불어넣어진 것을 말한다. 
-우리말에 신명 들다, 신명 난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바로 신명 들린 사람, 귀신에게 홀린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예를 무당에서 들 수 있다. 무당이란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 그 중개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어쨋든 신을 불러내어 인간과 관계를 맺어 주고, 신의 말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구실을 맡아 하는 사람이 무당인데, 시인이란 바로 이러한 무당의 존재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무가(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는 바로 시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쓴 기록은 그대로 시임을 알 수 있다.( 시편) 
-흔히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성서, 불경, 시경 등을 읽기를 권유한다. 고대의 신화와 더불어 이러한 경서는 문학의 원천이므로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시의 예언적, 또는 문명사적 가능과 시의 존재 이유가 더욱 증대되어 가고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도 눈감고 넘겨서는 안 될 줄 안다. 

* 현대가 시를 요구하는 몇 가지 중요한 사항 

(1) 현대 사회의 분열현상을 들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콩트는 실증주의에 의거하여 <과학의 체계>를 세웠는데 그 체제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이다. 갈라져 나가고 있는 각 분야는 서로의 연관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같이 토막토막 갈라져 나가고 있는 문명 사회를 전면적으로 살피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통합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문학, 즉 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분열되어 가는 현대 문명사회를 전면적으로 관찰, 파악하고, 그것을 어떤 근원에서 서로의 관련성과 질서를 찾고 통합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학, 특히 현대시에 맡겨진 매우 중요한 구실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즉 현대 문명을 그 근원에서 떠받드는 튼 일을 맡고 잇다. 이것이 현대시의 문명사적 역할의 하나일 것이다. 

(2) 현대인간은 마치 기계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로 바뀌어 가고 있고, 현대 사회는 그러한 부속품으로 조직된 메카니즘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의 기능으로 유형화되면 그 기능은 그대로 물질적 가치로 계산될 수 밖에 없고, 모든 인간 관계는 물질적 관계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사람의 전인적인 인격을 파괴하게 되고, 생명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참된 인간 관계의 모럴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시가 인간 생명과 영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사회가 메카니즘으로 바뀌고 있고 인간이 물질주의의 한 원소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 자체의 위기이면서 , 시의 기능과 존재 이유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반증한 것이라고 하겠다. 

(3) 현대를 일컬어 단절의 시대라고 말한다. 
단절의 현상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인종 차별, 종교 분쟁, 개인간의 반목과 불화,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등 
단절이란 고립, 고독, 소외를 가져오고, 나아가서는 이것이 현대인의 불안, 고뇌,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대의 시가 단절의 시대를 극복하여 연속의 시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노력을 떠맡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시는 이쪽과 저쪽, 이 언덕과 저 언덕, 너와 나-모든 단절의 깊은 물위에 다리를 놓는 일을 하고 있다. 
-새로운 공동 운명에 직면: 핵전쟁의 위험, 인구의 폭발적 증가, 국제적 분쟁, 여러 가지 공해, 식량 문제, 빈부의 차이, 인종문제,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 현대시가 현대 문명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 따라서 현대시의 예언적 기능만이 아니라, 비판적, 통합적 기능까지 더욱 증대되었다는 점 

5) 현대시와 국어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언어란 국어이다./시인은 국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의 현대시는 우리가 쓰는 국어의 예술이므로, 민족 문화의 바탕이 되는 국어를 갈고 닦아서 아름다운 겨레의 언어로 창조할 책임을 현대 시인은 떠맡고 있는 것이다./시를 언어의 예술이라는 깨달음에서 국어의 순화가 아름다움을 중시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시문학파에서 부터 라고 하겠다.(정지용/ 김영랑 / 신석정 등의 시인이 의식적으로 시작을 통하여 국어 순화에 힘씀..이러한 국어순화의 노력은 서정주에게로 계승...정지용의 추천을 받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들에게로 계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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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처마 끝 곱게 느리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라르란 구슬빛 바탕에/자지빛 호장을 받힌 호랑저고리/호랑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니 밝도소이다./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열 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초마 끝에 곱게 감춘 雲鞋(혜) 唐鞋/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胡蝶/호접인양 사푸시 춤을 추라 蛾眉를 숙이고...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삶아 /눈 감고 거문곳 줄을 골라 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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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빛 호랑 저고리와 열 두 폭 긴치마를 차려 입고, 운혜와 당혜(唐鞋)를 신은 이 도전적 미인도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이 고전적 미인도와 국어의 조화는 국어 순화의 한 방향을 안내한다. 국어의 순화란 단지 아름답고 부드럽고 섬세한 말을 골라서 쓴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연, 새로운 풍속, 새로운 세계의 인식과 그 순화에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순화, 다시 말하면 현대의 풍속순화와 관련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 詩想 은 어떻게 잡는가? 

1)시의 종자 
-철이 덜 든 어린아이 때, 먼 낯선 곳으로 난생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거나 부모의 슬하를 떠나서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가정해 보자. 어머니의 손등이나 손수건은 하나의 충격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미지가 마음 속에서 언제나 지워지지 않고 갈수록 절실해질 때, 그것이 시상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시의 종자라고 할 수 있다. 

-예시문: 박 목월의 시 <청 노루>를 읽고 시의 종자가 어떤 것인지 찾아보자 
답: 청운사(마음의 자연지도/내 영혼의 자연-지은이의 서러운 이미지에 떠오르는 절),자하산, 느름나무 속잎 피는 열 두 굽이, 청 노루-네 이미지가 중심/꿈속의 한 자연을 연상케 함 -가장 중요한 이미지 :청운사/ 자하 의 청운사와 청 노루-조국을 강탈한 일제에 의하여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서럽고도 열렬한 그리움으로 창조된 세계는 지은이 자신의 삶의 유일한 근거요, 삶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자연이기도 하다. 
-마음 속에서 거의 완전한 상상의 지도를 그려놓고, 그 이미지를 언어로 다시 그려낸 작품이다. 
-마음 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것을 거의 완전한 하나의 세계, 또는 하나의 형태로 성숙할 때까지 창조 활동을 계속한다는 오랜 상상 속의 창작 과정을 거치는 지극히 중요한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는 하찮은 충격일 수도 있고, 약간의 파문과 같은 사소한 느낌일 수도 있고, 일상의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일 수도 있고,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신비스러운 느낌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것들이 모두 시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먼저 시의 종자를 붙잡는 일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혹은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훗날 어떤 계기에 다시 생각해 내고서는 새로운 경험을 덧붙여 서서히 가꾸고 풍부하게 하면서 키우는 것이다. 

2) 詩想의 성장과정 
-사냥을 하여 먹고 살던 원시 시대의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노동을 할 수 없을 만큼의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들은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생각하기도 하고 공상에 잠기기도 하는 고독이 많았다. 
-너는 왜 시인이 되었느냐? 는 물음에 고독하기 때문에 또는 어리석고 약하기 때문 에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흔히 있다. 시인이 다른 보통 사람들 속에 끼이지 못한다든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든지, 매우 외로운 처지에 있다든지 하는 것은 오늘의 시인들에게도 많이 있는 일이다. 어쨌든 이러한 처지에 있거나, 적어도 사물이나 인생을 관찰하는 동안만이라도 이러한 처지로 돌아가야 하는 시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거나 약하거나 보통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하면, 그런 사람은 시와 소설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시상을 잡고 그것을 더욱 가꾸고 풍부하게 하고 키우는 능력은 바로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시인은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는 , 곧 시인의 재질의 특수성을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시: 김 남조의 아가에게 ) 

3) 이미지의 상호관계 
-맨 처음에 붙잡은 시의 종자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를 흔히 우리는 착상이라고 말한다. 
착상은 이제 겨우 시상을 붙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착상, 곧 하나의 이미지는 종자이므로, 심고 북돋우고 비료를 주고 손질을 하면서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의 종자도 그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시에서는 착상된 첫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여 과거에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이미지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여러 가지 이미지가 어떤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찾아 서로 관련을 맺고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비로소 한 편의 시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 시의 종자를 어떻게 붙잡고 어떻게 키워 나가는가? 
1) 먼저 시의 종자를 잡아야 한다. 
-시의 종자는 하나의 느낌일 수도 있고, 하나의 인상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일 수도 있고, 하나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의 생활 경험에서 이러한 종자를 붙잡아야 한다. 이러한 종자는 갑작스러운 우레 소리를 듣거나. 불시의 폭발로 인하여 번쩍하는 섬광을 보거나,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친구가 돌연히 찾아올 때와 같이, 어떤 충격이나 놀라움을 준다. 이것을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곧 靈感이라고도 하다. 그러한 종자는 갑자기 왔다가는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과 같으므로, 반드시 노우트에 적어두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그것을 한 편의 실 형상화하려고 서둘지 말고 한동안 마음 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다. 물론 당장에 쓸 수 있는 즉흥시라는 것도 있기는 있다. 

2) 마음속에 넣어 둔 시의 종자는 일주일, 한 달, 길면 일 년-이렇게 무의식 속에 묻혀서 잠잘 수 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 이를테면 여러 가지 생활 체험과 우연 혹은 의식적으로 결부되어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 성장하게 된다. 많은 생활 체험이 퇴토의 종자에 거름이 되고 , 물이 되고, 햇빛과 기온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처음 시의 종자를 붙잡을 때와 같은 어떤 충격이나, 놀라움을 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시의 종자를 가지고 왔던 맨 처음의 영감이 한동안 혹은 꽤 오랫동안 사라져 있다가 새로운 생활 체험과 결부되는 순간, 그 맨 처음의 영감에 불이 붙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일종의 흥분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영감이란 충격적인 계시나 암시와 같은 거인데, 그것이 상상력과 어울려 시의 맨 처음 종자를 성장시켜 서서히 시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다. 영감과 상상력은 불과 같아서 한 동안 뜨겁게 타오르다가는 이내 꺼지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것을 계속시켜 나간다는 것은 다소 힘드는 일이다. 

3) 이렇게 해서 성장한 이미지는 서로 연결되고 구성되어 한 편의 시의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이 때 우리는 처음 단순한 메모에 지나지 않았던 시의 종자는 비로소 한 편의 어느 정도 완성된 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을 보게 되고, 그것은 곧 언어에 의한 표현을 요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정신을 집중시킨 표현의 단계, 오랫동안의 산고를 일단 마무리 짓는 탄생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마치 만삭을 맞은 산모가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시의 탄생은 그보다 더욱 의식적이고 비판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도 크고 기쁨도 크다. 

4) 이렇게 해서 탄생된 한 편의 시는 다시 깍고 보태고 다듬는 단계로 들어간다. 한 편의 시가 탄생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후일 그러한 흥분이 사라지고 냉정한 객관적 태고로 돌아가서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듯이 보면 어떤 결함이나 어색한 점을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곧, 깍고 보태고 다듬는 퇴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3. 제목은 어떻게 정하는가? 

1) 제목의 중요성 
-시의 제목은 그 작품의 주제와 일치하거나 주제를 암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 단테의 신곡, 엘리어트의 황무지 등) 
ㅇ 작품의 주인공을 제목으로 삼은 것(예; 일리어드, 오디세이) 
ㅇ 작품의 중요 제목으로 삼은 것(예; 진달래꽃, 청노루 등) 
-시를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는 대충 다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제목을 미리 정해 놓고 작품을 쓰는 경우 
둘째; 작품을 써가는 도중이나 완성해 놓고 나중에 제목을 붙이는 경우 
셋째; 제목이 없이 그저 일련 번호를 매겨서 구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失題 >라는 제목을 붙이는 경우 
-명사, 명사형, 체언구 등의 제목이 있다(편지/생명의 서/내 너를 내우 노니 등) 

2) 제목을 정해 놓고 쓰는 경우 
-시인 김용호: 시가 먼저 생기느냐, 제목이 먼저 생기느냐 하면, 물론 시가 창조된 이후에 제목이 있어야 할 것은 순서상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상에 있어서 어떤 분은 제목부터 먼저 생각해 가지고 시작한 분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아이를 낳기 전에 이름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말 전도하고 할 것입니다. 곧 시를 먼저 다 지어 놓고 그 다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바른 순서라고 우길 수는 없다. 시인에 따라 제목을 먼저 정해 놓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고, 또 그렇게 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일은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에도 비유하여 나는 이러이러한 모양,이러이러한 용도의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제목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목은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좋은 제목은 주제와 일치하거나 주제를 암시한 것이므로 이 경우에 제목을 미리 정하는 일은 주제를 먼저 정해 놓고 쓰는 경우라고 하겠다. 
-시는 내용을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곧 그 내용을 어떠한 이미지로 만들고, 어떠한 형태로 조직해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3) 제목을 나중에 붙이는 경우 
-시를 다 써 놓은 다음에 제목을 붙이는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시의 내용이나 주제에 적합한 제목, 또는 시의 내용의 한 단어나 어구를 찾아서 붙이는 일이요, 또 하나는 내용이나 주제에 적합한 제목이 필요 없는 경우이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에는 무제 또는 실제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하고 <시 제1호> <시 제2호> 따위와 같이 작품 번호를 붙이기도 한다.(예; 김 춘수의 꽃밭에든 거북) 

4. 行은 어떻게 가르는가? 

1) 시행의 중요성 
-시의 행은 <운율적으로 짜여져 있는 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그 시의 운율과 밀 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시에서는 시행을 line하고 하는데 한 라인은 반드시 음의 강약, 약 강을 단위로 하여 음보의 일정한 수로써 구성된다. 시행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정형시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시행이 얼마나 중요시되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조는 3장 곧 3행으로 되어있다. 초장 중장 종장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각각 행을 이루어, 시조는 모두 3행으로 정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 시행구분의 실제(1)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시행 구분은 기초가 되기 때문에 시행을 구분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음에는 높낮이 외에 강약, 장단 등이 있다. 영시는 이 중에서 강약을 기준으로 운율의 단위를 결정한다. 

-7.5조의 정형시의 예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러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품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만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쳤습니다. 

그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 이야기 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 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렸습니다. 
-김소월, <옛이야기> 전문 
이 시는 7.5조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7.5조는 개화기 때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하나, 우리나라 전통적 운율인 3음보격도 7.5조로 된 것이 있다.한 행이 7.5조로 되어있고, 한 연이 4행씩 모두 4연으로 되어 있다. 한 시행은 7.5조보다 모자라서는 안 되고, 7.5도 보다 자수가 초과해도 안 된다. 그런데, 이 7.5조는 3(4),4(3),5(2.3 또는 3.2)-로 되어 있다. 
한 행이 4.3.5의 음수로 된 3박자, 3음보격의 행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의 박자나 음보의 단을 이루는 음수(자수)는 같지 않다. 특히 마지막 박자 또는 음보는 5음절로 되어있다. 어쨌든 정형시의 경우, 그 운율 형식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2음보격, 3음보격의 시행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3)시행구분의 실제(2) 
-리듬이 시행을 구분하는 요인 
-김춘추는 시의 행을 <의미의 한 단위>또는 <이미지의 한 단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리듬의 한 단위가 곧 의미의 한 단위라고 할 수 있다. 

4) 시의 첫 행 
-시의 첫 행은 그 시의 출발이요, 시작이라는 점에서 시인 각자가 자기 체질에 맞도록 익히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다. 
-유치환, 깃발의 첫 행인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첫 행은 가장 중요한 이미지요 , 만약 작자가 이 대목을 붙잡지 못했다면 이 시는 영영 이루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시의 첫 행은 맨 처음 착상된 이미지거나, 그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의 한 토막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보오 에서 시의 첫 행은 대체로 그 다음에 시상을 전개할 전제적 구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첫 행은 마치 3단논법 중의 연역법의 대전제와 비슷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5) 산문시의 시행 
-산문시(Prose in poem)에서는 센텐스가 있기는 하나, 자유시나 정형시에서 보는 바와 같은 행 구분이 없음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산문시가 다른 시(정형시, 자유시)와의 겉으로 드러난 차이는 행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연구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산문이란 집중된 정신활동이 아니라 분산된 정신 활동에서 이루어진 글이라는 뜻이 된다. 현대 영국의 문예 비평가인 리이드는 시를 정신의 응축활동이라고 하고, 산문을 정신의 분산 활동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산문이라는 어원적인 뜻이 바로 리이드가 말한 본질적인 의미와 일치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영어의 프로즈(Prose)는 똑바로 가는, 솔직한 꾸밈이 없는 이라는 어원적인 뜻이 있다. 

-산문이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규칙적인 운율이 있는 문장인 운문과 반대되는 뜻으로서, 규칙적, 형식적으로 반복하는 운율이 없거나, 운율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안으로 은폐되어 버린 산문율을 가진 문장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시와 반대되는 뜻으로서, 있는 대로의 사실을 토의하는 문학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였던 몰톤은 시를 창작 문학이라 하여 서정시, 서사시, 극시를 , 산문을 토의문학이라고 하여 역사, 웅변, 철학을 여기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하나 산문시는 산문이 아니라 시라는 점을 도의시해서는 안 될 줄 안다. 

-絶頂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 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기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 철엔 흩어진 星辰처럼 爛漫하다. 산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 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정 지 용, <白鹿潭>에서 
한라산 백록담의 敍景, 다시 말하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산문시인데, 여기서는 리듬에서 거의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센텐스와 센텐스 사이의 의미의 단절이나 비약이 심하지 않고, 따라서 의미의 소통도 매우 자연스럽다. 이것이 산문시의 특징이 될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산문시를 행 구분을 하여 자유시로 바꾼다면, 아마도 김이나 맥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질 것이다. 


-산문시는 산문체로 씌어졌을 때, 곧 산문체로 조직되었을 때, 시로서의 凝縮感(응축감), 집중감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시로서의 보다 효과적인 통일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5. 詩와 素材는 어떻게 다른가? 

1)시와 소재 
-시를 처음 써보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시를 웬만큼 서본 경험이 있는 시인도 소재나 제재를 시라고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의외에도 많다. 

깊은 山谷 
외딴 草家 
사뭇 외롭다. 
-김 태오, <山家> 제1연 
이것은 소재, 다시 말하면 작자의 감정이 약간 반영된 소재를 헹가름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자기의 시집에 수록하고 잇는 걸 보면 작자는 일단 시라고 생각한 것 같다. 김춘수 시인은 이 대목에 대하여 山谷이니 草家니 하는 심상들이 상식적이고 따분하여 통속적인 느낌마저 주고 있기 때문에 시로서 지금의 우리에게 호소해 오는 힘이 거의 없다, 상상의 힘이 약했던 결과라 할 것이다. 
-김춘수, <<詩論>>에서 
여기서 필자가 소재라고 하는 것이, 바로 <깊은 山谷>, <외딴 草家> 따위와 같이 경험한 사물을 단순히 언어로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소재의 나열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이것을 다시 상상력의 용광로 속으로 넣어서 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가. 세계의 民主主義의 씨를 뿌리고 
세계의 民主主義 꽃에 물을 주는 
民主主義園丁 

나. 순이야. 영이야 .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는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느린 
차 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빰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서 정 주, <密語> 전문 
앞에 인용한 정치 구호 같은 似而非詩와 비교하면, <참된 시> 가 어떠한 것인가를 담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죽음의 문이 굳게 잠긴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시대를 상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늘가에 머무른 꽃 봉오리>,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 봉오리> 등은 광복을 맞이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감격과 기쁨울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가 광복에 대한 우릴 민족의 그지없는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 소재와 언어 
-소재의 素는 염색하지 않는 흰 비단을 의미한다. 시의 소재란 시를 구성하는 재료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를 언어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은 정지용이며, 그러한 사실을 되풀이하여 강조한 시인이 김기림 이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뜻을 가질 수도 있으나, 시를 구성하는 재료는 언어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시를 만드는 재료를 나무. 돌. 산. 냇물. 꽃등의 사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시의 재료는 그러한 사물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언어이다. 그런데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상어는 시의 언어가 될 수 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노만파 시인인 워즈워드가 일상어를 시어로 쓰기를 주장했고, 1930년대의 김 기림이 또한 일상어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일상어가 그대로 시의 언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테면 책상의 재료(소재)는 목재이지마는, 목재가 그대로 책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목재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기도 하고, 대패로 반들 밤들하고 매끄럽게 깍고 다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서로 잇고 맞추어 설계한 대로의 형태로 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목재 하나하나를 자르고 깍고 다듬는 단계와 그것을 잇고 맞추어 전재의 형태로 구성하는 두 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소재인 언어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하겠다. 일상어를 소재로 하지만 그 일상어를 깎고 다듬어야 하며, 그렇게 한 소재를 다시 의도한 대로의 형태로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물아 
쉬임없이 끝없이 흘러가는 물아 
너는 무슨 뜻이 있어 
그와 같이 흐르는가. 
이상하게도 나로 하여금 
애를 태운다. 
끝 모르는 지경으로 나의 혼을 
꾀이어간다. -오 상 순, <虛無魂의 선언>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정 지 용, <비> 제 5,6연 
A와 B를 비교해 보면 언어를 갈고 닦은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3) 소재의 시대적 변천 
-소재는 시대에 따라 또는 시인 개인의 기호에 따라 늘 바뀌고 있는 것이다. <소재가 바뀐다>는 것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소재의 종류라고나 할까, 소재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바뀐다는 뜻이 있고 , 둘째는 소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도 있다. 전자는 어떤 한 시대에는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이 쓰이었는데, 다른 시대에는 사회의 사건이나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이 쓰인다는 뜻이다. 후자는 같은 소재가 시대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인의 관심을 끌고는 있으나 그것에 대한 해석, 또는 의미의 발견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갑오경장(1894)~1910사이의 창가, 신체시-계화 계몽과 관계-조국의 자주 독립, 신문명의 예찬, 미신의 타파와 새 교육의 장려 
*1918년 김 억의 시,1919년 주요한의시-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은 서정시를 쓰기 시작함 
-봄날에 달을 잡으러/두른 그림자를 밟으며 갔더니/바람만 언덕에 풀을 스치고/달은 물을 건너가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금 물결 헤치고 저어 갔더니/돌 씻는 물소리만 적적하고/달은 들 넘어 재 넘어 기울고요/........................주요한, <봄달잡이> 

*1930년 전후부터<폐허>와 <백조>의 노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김기림 등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나 감정대신에 지성을, 음악성 대신에 회화성을 도입하기 시작한 모더니즘 시 운동은 도시와 문명에서 소재를 가져오게 되었다.(김광균-와사등: 방향을 잃은 도시인의 비애를 읊은 시) 
*1940년 전후-청록파-자연친화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박두진(1945년 해발표), 조지훈, 박목월등의 세 시인은 문장(1939)지를 통해 정지용의 추천을 받고 시단에 데뷔-자연을 소재로, 조 지훈의 고전적 불교적인 정서, 박목월의 토속적. 민요적 율조, 박두진의 기독교적 희구와 이상형의 동경 

4) 소재의 해석 
시대가 바뀌면 소재도 따라서 바뀌게 되지만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소재들이 얼마든지 있다. 옛부터 시의 제재가 많이 되어온 하늘.해.달.산.강.바다.꽃.바람등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시의 소재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인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소재를 해석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얼마든지 되풀이하여 계속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오, 보아라,푸른 하늘가를/읽어 버린 고운 노래의/나직한 가락처럼/흰 구름 둥실 떠 흘러감을!//오랜 여행의 途上에서/방랑의 온갖 슬픔과 기쁨/맛보지 못한 어떠한 가슴도/구름을 이해하진 못하리라.//태양 모양 바다와 바람 모양으로/희고 정처 없는 것이 나는 좋아라./그것들은 집 없는 것이 나는 좋아라./그것들은 집 없는 사람에게는 /누이이며 天使이기에. 
-헤르만 헤세,<흰 구름>전문 


6. 이미지는 어떻게 만드는가 

1) 想像의 기능 
-사람은 누구나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 특히 시인은 강력한 상상력(imagination)이 없으면 아무것도 슬 수 없다. 상상력은 시를 쓰는 시인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상상은 과거에 보고 듣고 겪었던 사물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서 다시 생각해 내는 일이다.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은 감각적 模象 또는 인상인데, 이것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임즈는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이라고 하여, 생산적 상상(productive imagination)과 구별하고 있다. 곧 재생적 상상이란 지난날에 겪었던 이미지가 변화 없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생산적 상상은 지난날에 겪었던 이미지들에서 선택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상상이라고 할 때에는 주로 후자를 두고 이르는 것이다. 
-상상의 주된 기능은 과거에 겪었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통일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것이 편리하다. 
첫째,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결합하는 단계, 곧 다르거나 관계가 먼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거기서 어떤 유사점을 찾아 결합하는 단계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觀念 聯想이란 바로 이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상상을 연합적 상상(associative imagination)이라고 이른다. 둘째, 이와같이 이미지들을 결합함으로써 그 모습과 의미가 바뀌어 새로운 이미지들의 단계를 우리는 창조적 상상(creative imagi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이 이미지를 결합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창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기계적을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상상력에는 시인의 情緖와 思想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고래가 이제 횡단한 뒤 
海峽이 天幕처럼 퍼덕이오 정 지용, <바다>의 1연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김현승, <절대신앙> 전문 
에서는 고래,해협,천막의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신선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해협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사물들의 밖에서 되도록 그 사물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려는 객관적 태도를 보여 주고 있으나, 그러나 이 시인만이 보는 마음의 눈에 의하여 신선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해협의 이미지가 창도되어 있다. 그리고 인해의 어떤 의미나 사상은 배제되어 있다. 
반대로 에서는 이미지에 대한 사상적 추구가 더욱 치열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단지 불꽃과 눈송이의의 연결이지만 불꽃은 신의 뜨거운 사랑을, 눈송이는 믿음이 식은 약한 신앙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신앙이라는 정신적 가치, 또는 의미를 깨달아서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들어 있는 대상을 표현한 것이다. 곧, 사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러한 상상을 해석적 상성(interpretative imagination)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연합적 상상, 창조적 상상, 해석적 상상을 대충 알게 되었다. 연합적 상상은 관념이나 이미지들을 어떤 유사점에 의하여 결합하는 것이고, 창조적 상상은 그러한 결합에 의하여 이미지의 전일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해석적 상상은 정신적 가치나 의미를 깨달아 그것이 들어있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비평가인 윈체스터가 분류한 것이다. 
상상 또는 상상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시론이나 시 짓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리처즈는 상상력의 여섯 가지의 의미를 들고 있으나 그 중 세가지만 들면, 첫째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 둘째는 직유나 은유와 같은 비유를 만들어 내는 것, 셋째는 통합적,마술적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 중에는 비유 없는 것도 있으나, 대체로 대부분의 이미지는 은유 또는 직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리처즈는 상상력의 여섯 가지 의미 중에서 여섯째의 통합적,마술적 상상력을 가장 중요시한다. 
2) 시상과 이미지 
앞에서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 바 있다. 
상상력(imagination)과 이미지(image)는 그 어원도 같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여 다시 상상과 공상(fancy)과의 다름이 실제의 작품에 있어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 지를 살펴보자. 
오후 두 시 
머언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어서는 
휘파람을 불며 불며 
검은 조수의 떼를 몰아가지고 
항구로 돌어옵니다. 
-김 기림, <潮水>에서 
빛이 잠드는 
따 위에 
라일락 우거질 때, 
하늘엔 무엇이 피나, 
아무 것도 피지 않네 

산을 헐어 
뚫은 길, 
바다로 이을 제, 
하늘엔 무엇을 띄우나, 
아무런 길도 겐 보이지 않네 

바람이 수러대는 
아름다운 깃발들 
높은 성을 에워쌀 제, 
하늘엔 무슨 소리 들리나, 
겐 아직 빈 터와 같네. 
-김 현승, <무형의 노래> 전문 

우리는 우선 이 두 편을 비교하여 그 이미지의 차이를 살펴보자. 그리고 이 차이를 깨닫는다는것은 자기의 시짓기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을 따라 자기의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김 기림의 작품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6행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먼 바다의 바람이 검은 조수를 몰아 항구로 불어오는 광경을 그림과 같이 단순히 쾌적하게 묘사한 것이다. 
심원한 감정, 어떤 인생의 의미, 어떤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상상력이 아니라 팬시로 만든 이미지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현승의 시는 그렇지 않다. 감각적인 눈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육체와 영혼 곧 지상과 턴사의 상반 대립되는 이미지들의 통합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김현승 시인의 시는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시임을 알 수 있다. 

3) 이미지, 그 순수성과 관념성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경험한 사물들은 어떤 관념, 어떤 사상으로 기억 속에 남기보다 감각적 이미지로 더 많이 남는다. 논리나 관념은 잊어버리기 쉬우나 이미지는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갑자기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려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서 무척 당황할 때가 있고, 그릐 얼굴의 이미지는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나 이름은 더 오르지 않아서 애를 먹는 일을 흔히 경험한다. 좋은 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시, 절실한 감동을 주는 시도 생생한 사상이나 논리보다 그러한 이미지로 구성된 시일 것이다. 
시에 있어서 이미지,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 하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즘 운도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파운드는 수많은 작품을 쓰는 것보다 일생동안 단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좋다.(It is better to present one IMAGE in a lifetime than to produce voluminous works)라는 유명한 말을 한 바 있다. 

포탄으로 뚫은 듯 동그란 선창으로 
눈썹까지 부풀어 오른 수평이 엿보고 

하늘이 한폭 나려 앉아 
크낙한 암탉처럼 품고 있다. 
-정지용, <해협> 의 제 1.2연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 광균, <외인촌>에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팰지어의 손수건 
-유치환, <깃발>의 첫 3행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대낮> 중의 1연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의 제1연 
우리는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이러한 이미지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이미지를 만든는 일이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미지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미지란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가장 쉽고 일반적인 대답은 <언어로 그린 그림>, <언어의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비유 있는 이미지>만이 시의 절대적 요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시는 비유 있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고 또 그렇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에는 비유 없는 이미지들이 있다. (예:진달레 꽃, 엄마야 누나야) 
현대에 와서 시를 사물시(physical poetry)와 관념시(Platonic poetry)로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사물시라는 것은 사상이나 어떤 의지를 배재하고 사물의 이미지를 중시한 시인데, 이미지즘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반대로 관념시라는 것은 사물의 이미지보다 어떤 관념 서세계를 드러내어 독자로 설득 시키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인생이나 세계를 어떤 고난으로 파악하여 표현한 시가 관념시이다. 의지의 시라고도 하는데 노만주의 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구별은 현대 미국의 신비평가인 랜슴이 처음 말한 것인데 이후 시론의 주요한 술어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현대시의 주요한 경향으로 논의된 바 있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 끊임없이 /열마리씩/스무마리씩/신선한 물고기가/튀는 빛의 꼬리를 몰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가장 신나게 시퍼런/파도의 칼날 하나를/집어 들었다. 
전 봉건,<피아노> 전문 
이 시는 사물 이미지로 구성된 사물시라고 할 수 있다. 
교회당/십자가에 못박힌/ 음산한/겨울/-마침내는 눈이 내린다/바람이 햝고 간/감기 든 골목에/코 먹은/저음./-나직이 기침하는 우수의 숲 
조 영서,<비음> 
이 시도 역시 사물이미지로 구서오딘 사물시다. 제 1연은 눈이 내리는 음산한 겨울 날씨를, 제2연은 싸늘한 겨울 바람이 골목을 휩쓸고 간 광경를 각각 묘사한 것이다. 
이상 말한 작품등은 모두 사물이요, 이미지즘 계열의 작품이다. 흄이 말한 공상에 의하여 창조된 순수 이미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 깊고/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논개>에서 
논개의 애국 순절이라는 관념 세계를 읊은 것이다. 관념시는 사상과 더불어 격렬한 감정, 어떤 의지, 병적인 감상 등을 표현 하나 그 사상에서 벗어나서 그 사상을 다시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 밤이 다하기 전에/이 무한한 벽을 뚫어야 하는 囚人/또는/허무를 데굴대는 쇠똥구리. 
-유치환,<나> 전문 
관념시로서 성공한 작품인 것 같다. 이 시는 벽 속에 갇힌 죄수나 허무 속에 데굴대는 시똥구리와 같은 자아의 존재 상황이라는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인생과 관련된 관념시이다. 

4) 形而上詩의 이미지 
사물시나 관념시는 보는 관점 특히 형이상시의 입장에서 보면 각각 한 쪽으로 치우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랜슴 같은 이는 바람직한 제 3의 타입으로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를 내세운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네 마음은/네 안에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 안에/있다./마치 달팽이가 제 작은 집을 /사랑하듯...//나의 피를 뿌리고/살을 찢던/네 이빨과 네 칼날도/ 내 마음의 아득한 품속에서/어린아이와 같이 잠들고 만다./마치 진흙 속에 묻히는 납덩이와도 같이./............이하중략...... 
이 시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사상을 감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상을 감각화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7. 비유는 어떻게 만드는가 

1) 비유의 발생 

비유(Figure of speech)는 詩作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지만, 시만이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담화나 산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교통전쟁, 입시지옥, 등은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찌 뿌린 날씨라는 말도 예사로 쓰고 있다. 책상다리, 시계 바늘, 싸늘한 목소리 등과 더불어 시적 비유로서는 죽은 비유, 곧 死比喩(Dead Metaphor)라고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이나 산문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언어는 음성, 의미, 대상의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표현의욕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비유를 쓰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감정을 아주 압축하여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시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 봉에 落落長松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 청청하리라」라는 시조도 알고 있다. 까마귀, 백로, 소나무 등이 상징하는 의미는 조선조 사회의 윤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징이 가능한 것이다. 까마귀를 「逆臣」,백로를 「忠臣」, 소나무를 「節槪」로 보는 상징은 그러한 윤리의 반영이다. 
일상적인 언어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전달하지만, 비유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은 우리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한 가지 일이며, 이것은 천재의 표시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은유는 천재의 표시이다. 

2) 성공한 비유와 실패한 비유 

비유를 흔히 기교의 한 가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수사법 전체를 기교하고 보는 이가 있으므로 비유를 기교라고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으나, 정신이나 상상력이 거으 고려되지 않는 기교는 손재주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비유를 기교라고 의식적이건 무의식이건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비유, 참신하고 발랄하고 매력 있는 비유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연면 4천년의 역사를 꿰뚫어 흐르는 「민족혼」위에 터를 닦으라. 
불같이 뜨겁고 샘같이 정한 「동포애」의 갸륵한 마음씨로 주춧돌을 놓으라. 
독립 자주의 굵고 둥글고 미끈한 대리석 기둥을 화려하게 다듬어 세우라. 
이 시는 그 나름대로의 건축적인 뼈대는 가지고 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라>는 것이다. 민족혼 위에 터를 닦으라, 불같이 뜨겁고 샘같이 정한 동포애, 독립 자주의 굵고 둥글고 미끈한 대리석 기둥을 등은 모두 비유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상을 자극하는 것도 별로 없고, 미적 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비유들은 결코 성공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유란 원래 설명을 줄이고 압축하여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키는 데서 매력과 생명감을 느낄 수 있는 데, 여기서는 비유자체가 너무도 논리적이어서 그것을 느낄 수 없다. 제목이 <새 나라의 구도>인데 이 주제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 같다. 민족혼, 동포애, 독립 자주 등의 관념어를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생략하거나, 은밀화해야만 비유로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옛 시인들은 은유, 직유, 같은 비유를 전혀 몰라도 그들의 작품에서 뛰어난 비유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黃眞伊의 「동짓 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라는 시조도 그런 보기의 하나이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 밤새 울었다. 
-서 정 주, <문둥이> 전문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비유는 「꽃처럼 붉은 울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교를 일부러 부려서 만든 조각의 티가 조금도 없는 깨끗한 이미지이다. 天刑의 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문둥이의 자기 운명에 대한 처절하고 도 참혹한 슬픔의 울음임을 알 수 있다. 성공한 비유의 일례이다. 언어나 언어로 이루어지는 비유는 사물이나 세계의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직유와 은유 

비유는 언어 자체가 가지는 본질적 기능이다. 언어는 그 수나 그 의미에 있어서 한계가 있으나, 비유에 의하여 무한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직유(Simile)나 은유(Metaphor)등의 비유를 성립시키는 근거라고 할까, 조건이라 할까 그런 
것을 좀 살펴보자.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나 대체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비유에는 두 가지 사물, 두 가지의 의미의 비교가 있어야 한다. <風船 같은 달><농부의 얼굴같이 불그레한 달>에서 보는 바와 같이, <風船과 달>, <농부와 달>이라는 두 개의 사물이 연결되어 비유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천지 창조, 에덴 동산,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에덴에서의 추방, 이러한 신화도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으로서의 비유와 상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모든 비유는 두 가지의 다른 사물, 다른 의미의 비교에서 성립된다. 이질적이며 상반되는 두 사물 사이에서 어떤 유사점이 발견되어 그 유사점을 근거로 연결되어야 비유가 효과적으로 성립된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 논개 > 


이런 경우에는 비유가 되는지, 얼른 대답하기가 어렵다. 비유가 된다면 직유인데, 강낭콩 꽃과 물결, 양귀비꽃과 마음의 단순한 비교하고도 할 수 있고, 직유라고도 할 수 있다. 보통 우리가 직유라고 할 때에는 「처럼」「듯이」「같이」등의 연결어로 본의와 유의가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보다도」와 같은 차이 보조사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꽃 같은 꽃> <사람다운 사람> 등은 형식적으로는 직유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직유가 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비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본의와 유의는 「이질적」인 것이라야 한다. 이질적이라 함은 종류의 차원을 달리 한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 생물과 무생물, 천국과 지옥, 신과 악마, 밝음과 어둠, 슬픔과 기쁨 등, 서로 다른 종류거나 모순 상반되거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갈대가 아니다」라는 부정이 전제되어 이 비유는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와 같이 이질적인 두 개의 사물에서 어떤 유사성 또는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가령「내 사랑은 빨간 빨간 장미꽃 같다」라는 유명한 시구에서 「사랑」과 「장미꽃」과의 유사성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님이 입고 있는 의상, 또는 님의 얼굴이 장미꽃과 같다는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님에 대하여 느끼는 아름다움의 정서와, 장미꽃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정서-말하자면 정서의 유사성을 기초로 연결된 직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곧 비유 구조의 요소는 (1) 본의(本義) (2) 유의(喩義) (3) 이질성(異質性 (4) 유사성(類似性)의 네 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네 요소가 어떻게 결합되고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보아서, 직유.은유.상징 등으로 크게 구별 된다. 

백악관 앞/ 휑한 거리에/호머의 싯귀 같은 낙엽이/ 바람 따라 휘몰려 가는 거리./그들의 몸집같이/세계 제일 큰 로마식 건물이며/돔식 국회 의사당/그 돔처럼 뚱뚱한 경비원이 지키는/상하양원은 비어 있고/ 관광객 코리아의 발자국 소리가/ 한 동안 복도를 울린다. 
-김 규 화, <수도 워싱턴의 초겨울>에서 

이 시에서는 직유가 네 군데 있다. 이 중에서 「그 돔처럼 뚱뚱한 경비원」이라는 직유를 분석해 보자 <본의=경비원, 유의=돔, 이질성=처럼(돔과 경비원), 유사성=뚱뚱한> 등의로 분석되는데, 보는 바와 같이 비유 구조의 네 요소가 다 겉으로 드러나 있다. 직유의 경우에는 대체로 네 요소가 다 표면으로 드러난다. 
다음에는 은유를 분석해 보자. 
<사람은 갈대다 >는<본의=사람, 유의=갈대>의 두 요소는 표면에 드러나 있으나, 이질성과 유사성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해석에 의해서 그것을 찾아 낼 수 는 있으나, 어쨌든 안으로 숨겨져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상징(Symbol)의 경우에는 「유의」만이 표면에 드러나고, 본의.이질성.유사성 등은 모두 숨어 버린다. 흔히 비둘기는 평화를, 여우는 교활성을, 십자가는 죽음과 같은 희생을, 까마귀는 음흉성을 각각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 표명에 드러나는 것은 <비둘기><여우><십자가><까마귀> 들뿐인데, 이것들은 모두 유의이다. 

4) 의인법, 제유, 환유 

의인법(Personification)은 앞에서 설명한 은유의 특별한 한 종류이다. 보통 활유(活 )라고도 말한다. 수사학자들 중에는 일찍이 은유를 나누어,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표현하는 은유와, 반대로 생명이 있는 것을 무생물로 만드는 은유의 둘로 구별하고 있다. 이를테면 로마시대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가 그렇게 나누고 있다. 이 경우 앞에 것이 이른바 의인법이다. 

창유리에 등을 비비는 노오란 안개 
창유리에 주둥이를 비비는 노오란 연기 
밤엔 나무도 잠이 든다. 
-T.S. 엘리어트, 에서 

잠든 나무의 고른 숨결소리 
자거라 자거라 하고 자장가를 부른다. 
-이 형기, <돌베게의 詩>에서 

안개와 연기, 그리고 나무를 의인화 또는 생명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의인법은 위로는 신에서부터 아래로는 나무나 돌에 이르기까지 다 가능하다. 의인법은 감정적 오류라고도 하고 , 감정이입이라고 일컬어져 왔던 것이다. 감정적 오류는 감정이 없는 무생물에 감정이 있는 것처럼 인식한 다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말하는 것 같고, 감정이 없는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대상에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투영하여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생명을 생명 없는 사물로 만들어 표현하는 은유는 의인법과 반대적인 것이다. 이것을 어떤 이는 결정법(結晶法)이라고도 말한다. 「사람은 갈대다」도 일종의 결정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에 물들지 않고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 치 환, <바위> 

흔히 의지를 드러낸 시라고도 말한다. 그 의지란 인간적인 생명, 모든 감정, 모든 생각, 모든 소리, 다시 말하면 인간에 속하는 모든 것을 버리거나 없애거나 잊어버리고 「바위」같은 비정적인 사물이 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존재, 곧 실존을 초월하여 사물 자체의 존재, 즉자 존재(卽自 存在)가 되고자 의지한 것이다. 
이 작품이 암흑 시대인 일제식민지 시대에 씌여진 작품임을 생각할 때, 오히려 현실과의 단절을 의지하는 작자의 처절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의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으나 자세하게 나누면 약 250가지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비유를 인접의 비유(Figures of contiguity)와 유사의 비유(Figures of similarity)로 나눌 수 있다. 유사성이란 본의와 유의의 유사성을 말한다. 본의와 유의의 관련성을 가진 비유를 인접의 비유라고 하고 인접의 비유의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제유와 환유이다. 제유에 있어서는 유의가 나타내는 의미나 사물이 전체의 한 부분인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부분이(유의) 그것의 전체(본의)를 나타내는 것을 제유라고 한다. 따라서 제유는 본의와 유의와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 혹은 유(類)와 속(屬)의 이른바 양적 관계이다. 미국 대통령을 백악관, 임금을 왕관, 또는 금관, 한국의 대통령을 청와대, 미국이나 미국정부를 워싱턴, 일본이나 일본 정부를 토오쿄오 라고 부르는 것도 환유이다. 

8. 상징과 알레고리는 어떻게 만드는가 

1) 象徵 

비유의 방법을 설명할 때 상징(Symbol)도 은유나 직유와 마찬가지로 본의와 유의가 있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다만 상지의 경우, 비유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곧 본의, 유의, 유사성, 이질성 중에서 오직 유의만이 겉으로 드러나고 나머지는 모두 숨어 버린다는 것도 설명하였다. 이를테면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볼 때, 비둘기라는 유의만이 겉으로 드러나고, 나머지는 모두 숨어버리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노만파 시인인 워즈워드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와 같은 시에서 무지개를 상징으로 본다면 그 의미(본의)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워즈워드 자신도 무지개는 무엇을 상징한다고 미리 마음속에서 정해 놓고 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상징주의 시인이라고 하면, 예이츠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예이츠는 시의 상징 외에 회화의 상징을 들고 있다. 시의 상징에서는 정서 상징과 지성상징으로 나누어서 보고 잇는 것 같다. 정서를 환기하는 것은 음조, 색채, 형식 등이 서로 음악적인 관련을 가질 때 정서를 환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얀 달은 하얀 물결 뒤로 지고 
시간은 아 나와 더불어 지는 구나! 

로버트 번즈의 시로서, 이른바 정서 상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수의 정서를 환기하는데, 햐얀 이라는 수식이 특히 그러한 역할을 다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얀 달, 하얀 물결, 그리고 시간이 <지고 있다>와의 관계는 지성으로서는 그 정서를 음미할 수 있다. 이 대목은 따라서 은유적이라기 보다 상징적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상징주의의 두 경향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사상을 사상 그대로, 감정을 감정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가장 서투른 방법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표현은 시가 되지 않으나, <내 마음 속 장미꽃을 우지끈 꺽어 보내 놓고, 그날부터 번뇌가 자라다>는 표현은 시가 된다. <장미꽃을 꺽어 보낸다>는 것은 사랑의 고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구체적 이미지>이다. 구체적 이미지는 마치 이미지즘 시처럼 거기서 사상이나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 그것은 어떤 사상이나 감정을 환기한다. T.S 엘리어트는 그것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말한다. 
가령 

3) 풍유 

이제 우리는 풍유, 곧 흔히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하는 비유법을 살펴봅시다. 현대 시에서는 옛날 시만큼 알레고리를 많이 쓰고 있지는 않지만, 많이 씀으로써 현대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레고리는 직유, 은유, 상징등과 마찬가지로 원래 나타내고자 한 뜻과, 그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비유로 끌어들인 뜻-곧 본의와 유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감장새 작다 하고 大鵬아 웃지 마라./ 구만 리 長天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一般飛鳥이니 네오 긔오 다르랴. -李 澤- 

감장새와 대붕을 등장시켜 사람을 함부로 깔보고 멸시해서는 안 되는 뜻(본의)을 나타내고 있다. 풍유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이와 같이 동물, 식물 등을 의인화한 이야기, 곧 일종의 우언(寓言)이라고 하겠다. 이솝의 우화, 신약성서의 탕아의 비유(마태 13장~9절) 등은 모두 이러한 우언이다. 그런데 <탕아의 비유>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우화는 알레고리와 구별하기도 하고 , 알레고리 속에 포함시켜서 보는 경우도 잇다. 굳이 구별 한다면, 우화는 거의 동식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유의를 이루고, 교훈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으나, 알레고리는 사람도 등장할 수 있으며, 반드시 교훈적인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현대시에서는 알레고리가 직유, 은유 만큼 즐겨 쓰이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오늘의 문학작품은 그 시인, 그 작가의 개인의 사상 감정이나 세계관을 표현한다는 생각, 둘째는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현상만이 진실한 세계라는 생각-이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같다. 그리이스 로마의 신화, 성서의 많은 비유담이 모두 알레고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살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신소설인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등도 모두 알레고리 소설이다. 흔히 우리는 현실의 부조리를 들먹거리고 현실 비판이니 참여 문학이니 하는 말을 쓰고 있다. 부조리라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노골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표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한 사건을 구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현실의 보조리한 어떤 단면을 암시할 수 있다. 
ㅡ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알레고리는 결코 죽은 비유법이 아니라, 현대시의 새로운 영역과 방법을 열어 주는 중용한 분야임을 알게 될 것이다. 


9.감정은 어떻게 표현하는가 

1) 感情과 情緖 

우리는 흔히 知, 情, 意라는 말을 쓰는데, 감정은 이 중의 정(情)에 해당하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미묘하고 복잡하고, 다양해서 일일이 다 들 수는 없으나, 우리가 느끼는 심정의 모든 움직임은 다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은 주관성과 개별성을 가지고 있음이 그 두드러진 특징이다. 
감정이라는 말의 영어(Feeling) 나 독일어(Gefuhl)는, <접촉한다>는 뚯의 동사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또 프랑스어의 감정도 추위나 더위를 느낀다는 듯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감정이 일어나는 원인은 사물과의 접촉, 곧 본다든지, 듣는다든지, 맡는다든지, 만진다든지 하는 감각적 자극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이러한 감각적 자극에서 형성되는 자기의 기분, 자기의 느낌, 자기의 심정 등이 감정이다. 그러나 사물의 자극을 깨닫거나 인식하느 感性이나 知覺과는 다른 것이다. 시에서는 감정이라는 말과 정서(Emotion)라는 말이 섞이어 쓰이고 있다. 근래에는 정서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정서란 감정 주에서 격렬하고 육체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情動이라는 말을 대신해서 쓰고 있다. 아이들이 운덩에서 우승을 했거나, 상을 탔거나 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깡충깡충뛰면서 기뻐한다. 그 때의 기쁨도 몸짓을 동반한 정서다. 정서란 일시적 현상이긴 하나, 이와 같이 몸짓을 동반한 격렬한 감정인 것이다. 

내 마음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혀 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김영랑, <동백잎> 전문 

감정 중에는 情操(Sentiment)라는 것이 있다. 학문, 도덕, 종교와 같은 일정한 문화 가치를 가진 사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통합된 것을 가리키거나, 인간 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변함이 없고 계속적인 것이면 그것도 정조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계속적인 애정은 정조이다. 또 우리는 시에서 어버이의 사랑을 읊은 시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시에 표현된 감정도 정조이다. 부부의 사랑도 계속적이며 변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도 정조이다. 백제 가요인 <정읍사>는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남편의 신변을 염려하는 심정을 읊은 것인데, 여기에 표현된 애정도 일종의 정조이다. 

당신은 신앙이 있습니까? / 사나이의 영혼이 북극성처럼 빛났다. 
당신의 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전도사가 다시 물었다. / 사나이는 묵묵히 돌아서서 
어머니가 묻힌 청산을 가리켰다. -임병호, <신의 거주지>전문- 

이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읊은 거이다. 돌아가신 후에도 신앙처럼 변함이 없는 이 애정은 분명히 정조하고 할 수 있다. 

2) 감정과 센티멘탈리즘 

19세기 영국의 노만파 시인인 워즈워드는 시를 정의하여, <시는 평정한 상태에서 환기된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범람(氾濫)이다. > 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감정이 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19세기 노만주의 시인들은 지성이나 시의 형태보다도 특히 감정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러니까 노만주의 시는 힘차고 풍부한 감정을 아무런 제한이나 구속이 없이 자연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주정주의(主情主義)의 태도하고 할 수 있다. 19세기는 감정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 특히 감정이 중시된 시대는 1919년 전후의 일, 특히 장미촌 ,폐허, 백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 그 자체의 역사적 의의는 크나 이 운동의 실패로 인한 실망, 좌절, 불안, 근심, 울분, 허무, 고독등의 시대적 분위기, 일본을 거쳐 들어온 유럽의 세기말의 사조, 당시의 시인들이 대부분 20대의 젊은 나이라는 점-이러한 조건 때문에 당시의 시들이 감정 표현을 위주로 노만주의적 경향으로 달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현실을 잃은 감정의 무한한 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는 바로 이러한 센티멘탈리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3) 지성과 감정 

감정의 과잉에서 마침내 센티멘탈리즘으로 빠진 노만주의 시에 대한 비판이 1930년 전후부터 불길처럼 일어 나기 시작했다. 모더니스트로 자처한 시인은 시와 이론의 양면에 걸쳐 1920년 대의 센티멘찰리즘의 시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우리 나라의 시사(詩史)를 지성 중시의 모더니즘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몫을 떠맡았던 것이다. 1935년 <詩苑>지에 발표한 김기림의 <감상에의 반역>이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또한 시를 감정에 맡겨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감정은 늘 혼돈하려고 하고 비만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감저으이 비만이 다시 말하면 감상이다. 시를 이러한 비대증에서 건져내서 그것에게 스파르타 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이 오늘의 시인의 임무다. 

이와 같이 모더니스트는 노만주의, 특히 감상적 노만주의를 배척하고, 지성을 내세우면서 시의 명랑성과 건강성 및 회화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김 기림이 배척한 것은 물론 노만주의만이 아니다. 노만주의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조, 이를테면 휴머니즘, 톨스토이적인 인도주의, 무의식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기록하는 초현실주의, 영감, 시의 애매성, 자연만을 읊고 문명과 도시를 외면한 시-이러한 것들을 모두 배척한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의 이론적 업적으로는 (1) 시에서 감정보다는 지성을 중시한 점 (2) 시의 음악성이나 시간성보다는 이미지의 조형을 중시하여, 시의 명랑성, 회화성, 건강성을 회복하려고 한 점, (3) 시의 방법이나 기교등에 무관심했던 종래의 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주장한 점 (4) 자연이나 개인의 감정마을 읊던 종래의 태도에서 도시와 문명으로 눈을 돌리게 한 점, (5) 현실을 등진 상상의 무한한 비상에 제동을 걸고 정확하고 한정된 이미자를 창조하는 상상력을 곧 지적 상상력을 내세운 점 등이다. 

(A) 바다는 다만 / 어둠에 반란하는/ 영원한 불평가다. 
바다는 자꾸만/ 헌 이빨로 밤을 깨문다. 

(B) 보라빛 구름으로 선으로 두른/ 회색의 칸바스를 등지고/ 
구겨진 빨래처럼/ 바다는/ 산맥의 첨단에 걸려 퍼덕인다. <김기림의 장미촌에서 > 
1920년대의 황석우, 박종화, 이상화, 박영희 등의 노만파 시인들의 작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만파 시인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어둠, 눈물, 꿈, 한숨, 죽음, 허무 등의 감정을 볼 수 없다. 감정의 노출보다는 그러한 감정을 되도록 제거하고, 대상을 그림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센티멘텔리즘을 거부하고 건강하고 밝은 명랑성을 통제하고 계획된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라고 하겠다. 

4) 지성의 기능 

흔히 지성(Intellect, Intellegence) 이라고 하면 인틸렉트아 인텔리전스는 구별할 수도 있다. 사고 나 사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지성이란 <모든 지적 기능>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이 속에는 사고 나 사색도 포함될 수 있고, 비판이나 판단 작용도 포함될 수 있다. 이미 모더니스트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지성은 감정과 상상력을 통제하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방향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과 상상력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지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생각된다. 

10. 기법은 어떻게 향상되는가 

1) 기법의 다양성 

<머리는 텅텅 비어 있고 손재주만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머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시에 사상이 없다는 뜻이요, 손재주란 이른바 기법(Technique)에만 능숙함을 이르는 말이다. 시의 기법은 삶과 존재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그런 근원에서 의식적으로 확립된 것이라야 할 것이다. 
리듬, 이미지, 시어, 시의 구조 은유, 직유, 상징, 알레고리 등의 비유-이 모두가 기법이라면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먼저 기법을 익히는 과정으로서 (1)정형시에서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정 (2) 언어에 대한 감각의 훈련 (3) 시의 발상 차원의 단계 (4) 객관적 상관물 (5)중층 묘사 (6) 자동 기술법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2) 정형시에서 자유시로 

시를 처음 써보는 사람은 <희곡>을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정형시에서 자유시의 순서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희곡에서 먼저 그 구조와 구성의 엄밀성을 배워 두는 일은 시작의 기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먼저 정형시를 익혀야 할 이유를 좀 알아보기로 하자. 시조를 먼저 써보라는 것은 반드시 시조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조가 가지고 있는 정형적 구조를 익혀, 그 형식적 규제를 터득하는 것이 자유시의 전제적 토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김 상옥, <봉선화> 전문- 

이것을 숫자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3 4 4 4 (4음보) 
3 4 4 4 (4음보) 
3 5 4 3 (4음보) 


이것은 기준이 되는 자수율이고, 실제의 작품은 이 기준에서 다소 오르내리고 있다. 
시조 짓기에 있어서 종장 초구 3자는 반드시 , 그 다음의 5자는 되도록 지키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자수율의 통제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시의 형식적 구조의 체득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 절구는 起, 承 , 轉, 結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시상의 전개과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기는 시작이요, 승은 그것을 이어받아서 부연(敷衍)전개하고, 전은 전개된 시상을 한 번 크게 전환시키며, 결은 끝 맺는 것이다. 시조의 시상 형성 과정도 대체로 이와 같으나 종장은 전결을 포함한다. 정형시부터 먼저 써보고 그 다음에 자유시로 넘어가는 것이 바른 순서인데, 이러한 순서를 밟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율격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율격이라는 것은 음수의 제한이 있다. 리듬의 제한 속에 들어감으로써 사상 감정과 리듬의 조화 , 사상 감정이 리듬에 미치는 영향, 반대로 리듬이 사상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러한 두 요소의 구조적 관계를 유기적으로 터득하게 된다. 

둘째, <압축과 생략>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압축과 생략은 산문과는 다른 시의 본질적 측면인데, 이런 측면은 은유나 상징과 같은 비유에서도 가능하지만, 율격에서 받는 형식적 통제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사상 감정이 풍부하더라도 리듬을 지키려고 하면 부득불 감정이라는 것은 형식적 통제를 받을 때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셋째, 운율의 묘미를 체득함으로써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자유시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의 밝음을 알 수 있다. 리듬의 구속, 제한 , 통제의 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은 자유시의 내재율을 깨닫게 되는 터전이 된다. 자유시를 써 보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을 끊고, 행을 모아서 연을 만드는 형식적 구속이 따르는 것이다. 내재율의 적절한 조화도 요구된다. 자유시라고 해서 리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시는 형식적 구속과 그것에 저항하는 정신과의 갈등에서 창작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3) 언어에 대한 감각 

시는 언어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직공(職工)이다. 시인은 언어를 매만져 시를 만드는 사람이다. 마치 요술사(妖術師)와 같이, 언어를 마음대로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언어에 대한 감각적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떤 언어가 부드럽고 아름답고 어떤 언어가 거칠고 투밖하고 아름답지 못한가, 어떤 언어가 감각적이고 생채가 있고 어떤 언어가 관념적이며 어두운가, 하는 것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의미와 음성과 이미지의 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세 요소로 이루어진 복합체는 실제로 천차 만별의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언어는 흔히 살아 있다고 한다. 빛깔, 음상, 무늬, 감촉, 무게, 리듬...이러한 여러 가지의 미묘한 감각을 식별할 줄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언어 감각에 대한 훈련이 모자란다는 증거이다. 
언어는 의미, 음성, 이미지의 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 요소로 이루어진 언어도, 그 언어를 쓰는 사람, 그 언어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 지역적 배경, 역사적 배경 등에 따라서 그 의미와 어감도 다양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 길 위에 
오날 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詩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얕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싶다. 

-김 영 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전문 

언어감각이 얼마나 셈세하고 세련되어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시다. 맑고 고운 정서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감각, 미묘한 음악성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음성적 어감은 절묘하다고 하겠다. 

4) 발상차원의 단계 

일본의 현역 시인인 이토오케이이치의 말에 의하면 자기의 작시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하여는 <보이는 것을 보는 것>에서부터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보는>단계에까지 나아가기 위하여, 시의 발상의 차원을 높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보는 차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 가를 본다. 
(4)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 속에 승화(昇華)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 관계에서 생기는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본다. 
(8) 나무를 매체(媒體)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이 차례는 이토오 케이이치 시인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나무를 보는 차원이 한 단계 한 단계 차례대로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에서 (4)까지는 나무를 눈에 비치는 그대로를 보고 있을 따름이다.(객관적 관망) 
그러나 (5)와 (6)은 단지 그것뿐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고 한다. (7)과 (8)은 그것을 더욱 깊이 추구하고 있다. 


5) 객관적 상관물 

시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이 될는지 모르나, 여기서 엘리어트가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 살펴 보아야 할 것 같다. 앞에서 일본시인 이토오 케이이치가 말한 발상의 과정을 예로 들었거니와, 그 중의 마지막 단계인 (8)의 <나무를 매체로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는 것은 , 바로 나무가 상징성을 띠거나, 엘리어트가 말한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야 가능한 단계이다. 곧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의도했던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다. 암시하여 놓음으로써 독자가 그 수수께끼를 서서히 풀어나가듯 점차적으로 의도했던 세계로 들어가는 데서 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엘리어트가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란 자기가 의도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접 표현할 수 없다고 보아 추상적인 관념이 많은 관계로 그대로 드러낸다면 시가 될 수 없다.이러한 추상 관념을 서서히 환기할 수 있는 다른 구체적, 감각적 사물이나 사건을 가져와야 한다. 서 정주의 <密語>에서는 해방된 겨레의 환희와 희망이라는 추상관념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리 라는 구체적 이미지로 암시한 것이다. 이것이 엘리어트가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이요 말라메르가 말한 바와 같이 서서히 대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6) 중층 묘사의 방법 

객관적 상관물과 더불어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서, 중층 묘사(Multipul description) 라는 것이 있다. 증층 묘사는 우리 현대시에 있어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우리 현대시의 중요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감각과 사사이 통합된 시가 발전되어야 하겠고--김 현승의 시가 대체로 이 방향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그러자면 자연히 객관적 상관물과 더불어 중층 묘사의 방법이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층 묘사란 한 가지 대상이나 사상에 대한 구체적 표현(감각적 표현)과 추상적 표현(사상적 표현)을 교차시켜 서술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감각적 레벨에서 묘사하고 , 다시 그것을 추상적 레벨에서 관념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한 가지 대상이나 사상이 이미지와 관념 작용이 교차되어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있었을 법한 것은 한 抽象이다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 
영구한 가능으로 남는, 
있었을 법한 것과 있은 것은 
한 끝을 지향한다. 그런데 그 끝은 언제나 현재한다. 
발자취들이 기억 안에 反響한다. 
우리가 통하지 않는 복도를 내려가 
우리가 통 열지 않은 문을 향하여 
장미원 속으로. 


-엘리어트, <네 四重奏(1943)>에서 


<여기서 있었을 법한 것은 추상이다>는 추상 표현이다. 
이러한 관념만으로 일관되어 있다면 산문이지 시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발자취들이 기억속에 반향한다.>라는 구체적 이미지로 반복되어 입체적 표현을 보여 주고 잇다. 추상과 구체가 교차된 중층 묘사를 하고 있다. 

7) 가동기술법 

초현실주의의 방법은 자동 기술법(Automatisme)만이 아니지만, 자동 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고안해낸 방법이다. 심리주의 소설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 의식의 흐름과 거의 비슷한 자도 기술법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방법을 응용하여 정신병 환자에게서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을 자기 자신에게 들으려고 시도한 데서 고안해 낸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의 이미지가 아니라, 무의식의 이미지, 꿈의 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음성의 회상이 나무에 머물었는데 
나의 육체는 나의 사상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부딪힌 돌멩이가 정오를 알렸다. 
-필립 수포, <길>의 전문 

이러한 시는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심층의식 속에서의 우연한 접촉 또는 폭력적인 강제 결합에 의한 이미지의 무리들을 느낄 수는 있다. 

11 詩壇에는 어떻게 데뷔하는가 

1) <신춘 문예>-의 관문 


제한된 일정한 편수의 작품을 신문사의 문화부에 보내면 거기서 위촉한 심사 위원에게 심사를 맡긴다. 당선이 확정되면 기성 시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천 편이상이 넘는 시에서 당선자 한 두 사람을 고르므로 당선 확률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추천제>를 통과하는 일 
-각 문학지마다 심사 위원이 내정되어 있어서 투고자들이 심사 위원을 미리 알고 있다. 
심사 위원은 투고자의 작품을 보고 재능이 있고,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서신으로 지도하는 일이 가능하다. 지도를 할 수있고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추천제 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추천제는 2회 내지 3회를 거쳐야 되는데 그 기간은 1년에서 2년 정도는 걸린다. 그 동안에 투고자는 수십 편 내지 백여 편을 써서 보내야 하므로 추천제란 일종의 훈련 기간을 가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2) 동인 활동이나 시집 간행으로서도 가능하다. 

-기성시인의 충고나 지도를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단 시집을 내거나 동인지를 통해서 문단에 ㅣ나오면 그대의 자기 역량이 그대로 고정되어 버리는 일이 많다. 끊임없이 자기 성장은 자기 역량과 작품의 성과에 관해서 항상 자기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다. 
특히 선배나 동료의 비판이나 충고를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떠한 경향의 시, 어떤 방법의 시를 쓰는 것이 좋을까 
이 문제는 우리 시의 몇 가지 방향을 앞에서 예시하였다. 
곧 (1) 전통적 서정주의 (2) 이미지즘 또는 사물시 (3) 노만주의 경향의 관념시 (4)메시지나 사상 전달을 위주로 한 현실적의적 관념시, (5) 심리주의(초현실주의) 시, (6) 형이상시-이러한 방향들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방향을 개별적인 측면이나 통합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여 자기의 좌표를 성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부록- 읽어야 할 주요 詩작품 

1.빗소리-주요한 / 2. 님의 침묵-한용운 / 3.복종-한용운/ 4.사의 예찬-박종화/ 5.산유화-김소월 


6.초혼-김소월 / 7.봄은 고양이로다-이장희/ 8.백록담-정지용/ 9.비로봉-정지용/ 10.구성동-정지용 


11.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12.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13.성북동 비둘기-김광섭 


14.마음-김광섭/ 15.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16.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신석정/ 17.광야- 

이육사/ 18.절정-이육사/ 19.오감도-이상/ 20.거울-이상 / 21.꽃나무-이상/ 22.깃발-유치환/ 23.울릉도-유치 

환/ 24청춘-유치환/25.생명의 서-유치환/26.국화 옆에서-서정주/27.귀촉도-서정주/28.동천-서정주/29.설야 

-김광균/30.추일서정-김광균/31.뎃상-김광균/32.눈물-김현승/33.가을의 기도-김현승/34.프라타나스-김현 

승/ 35향현-박두진/36.해-박두진/37.고풍의상-조지훈/38.승무-조지훈/39.봉황수-조지훈/40.나그네-박목월 

/41.청노루-박목월/42.또 다른 고향-윤동주/43.십자가-윤동주/44.초토의 시11,12-구상/45.백련-구상/46.귀 

향-김춘수/47.꽃-김춘수/48.향수와-김춘수/49.부재-김춘수/50.목숨-신동집/51.얼굴-신동집/52.악수-신동 

집/ 53.송신-신동집 


이 내용은 문 덕수 저; <시 쓰는 법>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가져온 곳 : 
카페 >가을그날
|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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