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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 심상운
2018년 12월 20일 15시 19분  조회:663  추천:0  작성자: 강려
엔지오 신문 연재 1호
 
<시가 있는 마을>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이선의 시 읽기>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 기능으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건너뛰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심상운이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디자인의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이론으로 정립한 시인이다.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심상운의 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고대미이라 목관 사진’과 ‘고대숲’에서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새들이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울고 있다.
  시인은 그림 한 장을 감상하다가 상상력의 줄기를 우주까지 뻗어서 한편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1연, 2연, 3연이 각각 다른 그림이다. 1연의 병원 응급실과 2연의 냉장고 밥과 3연의 미이라 목관은 각각 다른 그림이지만 링크되어 연관성을 갖는다. 과거면서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심상운은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하이퍼시에서 문제로 지적되었던 시의 ‘진정성’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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