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오 신문 연재: 시가 있는 마을>
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
박정원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내를 버린 남자가 커피 볶는 집에서 백석을 읽는다
소나무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드센 바람도 좋아라 유리창 밖에서 응앙응앙 울고
가는 눈이 간간이 뿌려지는 전봇대에 앉아 볶은 커피 향을 기웃거리는
직박구리 한 마리
강 건너 저편엔 천국행열차가 산 그림자를 끌어내려 굼벵이처럼 지나가고
서서히 지워지는 마을들
하나 둘씩 불이 켜지는 만주벌판의 집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세상한테 지는 길이라네 내가 좋아서 버리는 거라네
눈도 푹푹 나리지 않는데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이선의 시 읽기>
박정원의 시「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은 두 개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구도는 ‘백석’과 백석의 ‘애인’이고 또 하나는 ‘나’와 ‘그녀’의 구도이다. 두 개의 그림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된다. 시의 복합적인 이중구조는 시점과 관점을 흐트러놓음으로써 독자에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시가 평이하거나 싱겁지 않고, 현대적 감각의 맛갈스러움을 더해 준다.
1연의 현재적 상황은 ‘남편을 잃은 여자’와 ‘남편을 버린 남자’가 찻집에 앉아 있다. 과거 ‘백석’과 백석의 ‘애인’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만남이다. 일일 연속극 현장이며, 현대 대한민국 성풍속도이기도 하다. 불륜은 감미롭고도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는, 어느 시대에나 흥미있는 소재다. 시에 극적 긴장감을 준다.
위의 시는 8행의 시가 한 연을 이루고 있다. 1행부터 현재 → 과거 → 현재 → 과거,
과거 → 과거․현재 → 현재 → 현재로 짧은 8행은 사실과 사건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과 배경이 어우러진 박정원의 시가 하이퍼적 상상력을 갇는 것은 6연이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과거시점이다. 그러나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는 현재시점이다. 이 구절 때문에 불륜을 꿈꾸는 현대의 남녀가 극적으로 클로즈업된다. 남자의 ’그녀‘가 ’나타샤‘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흰당나귀‘가 사실적인 당나귀냐, 시의 구절을 사진 찍는 것이냐도 중요하지 않다. 독자는 이미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불륜남녀와 함께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마음속으로 초대한다. ’백석‘과 ’애인‘을 용서하였듯이, 이 남녀의 불륜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한편의 시가 갇는 힘이다. 도덕과 역사를 뛰어넘어 새 역사와 도덕을 쓴다. 흰 눈밭 위에.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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