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
김 명 인
낮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꽃소식이 당도해 있다
만선에 실려 오는 꽃나무 한 시절들
그대가 약속을 지키려 근근하듯이
꽃은 제철의 두근거림으로 한 해를 갱신한다
상청 이불 덮고 누웠으니
어디서 산비둘기 구구거리는 한낮
꽃 타래들, 다비에 든 듯 화염 사르는구나!
공손한 꽃아, 피고 지는 건
네 일이지만 나는 너를 빌려 쓰고 내일로 간다
연년세세로 물든 분홍 새 날개 펴니
거처 없이도 견디는 깃발처럼
혼곤한 신생의 새봄 안간힘으로 울뚝하다
오늘은 오늘 꽃, 수만 송이로 허무는 탑
버림받을 사랑이니 돌보라고
이 환(幻), 나에게 흘려보내는 건 아니겠지?
<이선의 시 읽기>
꽃은 ‘여성성’과 ‘미’의 상징으로 대표되며 시와 노래, 무용, 영화의 표상이 되어왔다. 김춘수의「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대에나 시인들은 꽃에 대한 이미지를 부둥켜안고, 새로운 표현을 고민하였다. 지금까지 발표된 시보다, 더 좋은 시를 쓰지 않으려면 ‘꽃시’는 이제 그만 쓰라고 선배시인들이 권고할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지금도 시인들은 여전히 ‘꽃시’를 쓰고, 독자들은 ‘꽃시’를 사랑한다.
김명인의 「꽃들」은 어떤 새로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표현기법을 살펴보자. 1행 ‘낮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꽃소식이 당도해 있다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피동형 표현기법이 감각적이며 젊고 신선하다.
둘째, 구조를 살펴보자. ‘꽃 이미지’를 상상력을 확장하여 < 낮잠- 개화- 꽃소식- 화염- 낙화(버림받은 사랑)- 환(幻) >이라는 ‘시 구조’를 전개한다. ‘꽃’이라는 사물을 인간의 ‘사랑’으로 치환하였다.
셋째, 사유와 철학, 직관을 살펴보자. 꽃을 환(幻)으로 해석하였다. 젊은 시절 불타는 ‘화염의 사랑’을 ‘다비식’으로 은유하고 있다. 오랜 직관과 사유로 얻은 철학이다.
넷째, 현재진행형 시 구조에 주목하여 보자. ‘혼곤한 신생의 새봄 안간힘으로 울뚝하다/ 오늘은 오늘 꽃, 수만 송이로 허무는 탑/ 버림받을 사랑이니 돌보라고/ 이 환(幻), 나에게 흘려보내는 건 아니겠지?’(12-15행) 부분이다. 대화와 질문 형식의 사실적 표현은 진정성을 갖는다. 시인과 시적화자의 사랑에 대하여 독자들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시가 작가의 무의식의 발현이라면 시인의 사랑은 진행형이다.
15행의 짧은 시가 갖고 있는 확장된 공간이 넓다. 감각적 표현기법과 미의식. 철학과 사유. 진정성까지.
‘사랑은 환(幻)이다’라는 깨달음에 젖어― 뿌리는 줄기를 그리워하고, 꽃은 나뭇잎을 그리워한다. 나무테처럼, 반지의 둥근 원처럼.
어렵거나 재주를 부리지 않은 단어와 문장. 지하철에서 만나 하루 종일 가슴에 담고 싶은 시. 생각과 사념에 젖어 지혜를 얻는 시.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 그 넓은 시 공간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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