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년을 잡아라
박재릉
저년을 잡아라.
정신 나간 저년이다.
나를 노려보는 춘향이 같은 입술이
뱀처럼 달큰히 징그럽게 날름거리는 저년이다.
삼도천서 멱감던 저년이
도솔천서 깔깔거리던 저년이
이승 어느 낭자에 실려
내 입술이 지그시 닿으면
소름끼치게 펄쩍 뛰는 저년이
미친 저년이
이승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
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머구리를 먹은 듯 울렁거리는
질갱이를 씹은 듯 메스껍게
체한 울음을 토할 듯 미친 저년이
칠성당서 웃는 저년이
양천 우물가에서 뒤보는 저년이
감악산 약수터를 휘휘 돌아서
깔깔깔깔 달아난다. 달아난다.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내 혼비백산 타는 앓는 숨결속에서
주름살이 울고 바람이 울고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전문
* 시왕각시: 이승에서 한 맺힌 젊은 여자
* 칠성당七星堂):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인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집
박재릉의 시는 원초적 관능미와 리듬감, 색채이미지가 급박하게 어우러져 달려간다. 한용운의 가슴 서늘한 ‘문둥이’ 시와 서정주 시의 관능적 ‘뱀’ 이미지가 무속과 어우러져 낯설고 섬뜩한 새로운 미의식을 만들고 있다.
박재릉의 「저년을 잡아라」는 서정주의 「춘향의 말」을 패러디한 작품처럼 보인다. 당대 유명한 시인의 작품을 자존감을 걸고 더 관능적이고 더 격조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만들어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뱀, 도솔천, 춘향’ 등 서정주 시에서 보여주는 낯익은 단어들 때문이다. 또한 서정주의 「춘향의 말」은, 1연 ‘향단아, 그네 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라고 시의 첫행을 대사로 치며 리듬감과 운동감을 주고 있다. 1연, 2연, 3연 모두 끝행에서 ‘나를 밀어올려 달라’고 계속 다그치면서 달리는 이미지, 운동감을 계속 증폭시키고 있다.
위의 시는 「저년을 잡아라」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달리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또한 낯설고 무섭고 에로틱한 표현. ‘춘향이 같은 입술’이나 ‘뱀처럼 날름거리는 저년’ ‘도솔천서 깔깔거리는 저년’ ‘체한 울음을 토할 듯 미친 저년’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 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우물간서 뒤 보는 저년’ 등의 표현에서 자유분방하고 거리낌 없는 토속적 관능과 에로티시즘이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박재릉 시는 관념이 전혀 없다. 행위와 리듬과 원초적 관능이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년을 잡아라’는 연극적 모티브를 갖고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 노래로 재구성할 수 있는 매력을 한가득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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