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 ․ 3
양준호
오늘도
나는
흑거미를 소리나게 밟아 죽였다
누군가
나의 눈빛을 읽고 가는 아직도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고요하다
오월이 숨찬 기氣를 내뿜고 가는
여기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고요하다
딸은 잘 있을까
고요.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
고요.
고요하다
<이선의 시 읽기>
양준호는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하이퍼시’ 동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하던 80년대부터 독특한 하이퍼시를 써 왔다. 양준호의 시는 상황시다. 실존적 단절과 절대고독을 <흩뿌리기 기법>으로 허공중에 단어를 던지며 의미를 함축한다. 시인의 시에는 대사와 반복어가 많다. 단어와 행이 짧다. 꼬리가 잘려나간 연 같다. 토막 난 단어들이 긴장감과 위기감을 준다. 축약된 연극 대본처럼 양준호는 설명을 버린다. 의미도 버린다.
양준호의 시를 읽으면 혼자 골방에서 울고 있는 소년을 보는 것 같다. 카리스마와 괴기스러움, 파격 속에 숨어있는, 어리고 상처받은 어린이가 보인다. 그 어리고 여린 것,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 그 도발과 반격이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단어와 단어는 단절되고, 연과 연도 단절된다. 단어들이 제각각 결합되고 사방으로 내던져진다. 그 단절된 것들의 구성 조합이 하이퍼시의 조건인 ‘리좀’을 충족시키고 있다.「積 ‧ 3」은 양준호의 작품 중에서 순한 편이다. 부사와 어미를 제목으로 쓴 시를 한권의 시집으로 엮을 만큼 역량 있는 시인이다.
시인은 희귀한 꽃 이름이나 사물 단어카드를 늘 가지고 다닌다. 7연의 ‘무늬산호수꽃’도 그런 열정으로 찾아낸 꽃일 것이다. ‘무늬산호수꽃’은 다른 꽃 으로 대체하여도 시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무의미 단어의 연결과 결합, 대체 가능한 단어들은 ‘무의미’와 ‘탈관념’을 주장하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무늬산호수꽃’은 시와 환상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는 무늬산호수꽃’에서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자율신경을 가진 시인의 감각을 본다. ‘무늬산호수꽃’은 ‘고요’와 만난다. 고요한 감성의 그림자를 만든다. 의도된 완벽한 계산이며 효과다.
양준호 시인의 ‘積’ 은 시집 한권 분량의 시리즈물이다. ‘흑거미’를 밟아죽이면 어떤 소리가 날까? 절대고요의 절대상황을 상상하여 보라, 시대를 잃어버린 고독한 시인은 칩거 중 거미 한 마리와 대적하게 된다. <흑거미 만나기-흑거미 바라보기- 흑거미와 놀기- 흑거미 죽이기> 일련의 과정과 단계는 실존적 절대상황이다. 절대고요가 먼저일까? 절대고독이 먼저일까?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부분에 주목한다. ‘어린놈’은 손자이거나 은둔시인에게 전화를 거는 행세하는 어줍잖은 시인일지도 모를 일. 양준호 시인은 세상을 향해 벽을 여러 번 두들겼을 것이다. 미련과 실망 뒤 마침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을 것이다. 침묵과 고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봉천동 어느 적막한 골방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을 상상해 본다.
‘딸은 잘 있을까?’
격리된 고요 속에서도 딸은 유일한 관심거리다. 자신의 분신에게만 소통의 의도를 갖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의 그림자, 시인의 속눈썹 위에 걸려 있다. 지친 고요가 심심하고 고단하다.
양준호 시인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 시인이다. 하찮은 세상을 비웃듯 세상과 섞이기를 거부한다. 시인의 필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길고 길쭉하다. 마치 세상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아가는 나비의 자유로운 날개처럼. ‘積’ 시리즈는 세상에서 밀려난 천재 시인이, 세상을 역으로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며 관찰하는 듯 고요로 침잠하는 詩다.
시인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어, 헛웃음 웃게 하고 싶다. 동료시인의 변변치 못한 시를 험담하며 반주 삼아 술 한 잔 마시게 해 주고 싶다.
나의 골방도 고요하다. 모기 죽이는 소리.
들린다. <끝>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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