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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이선 시해설

詩 / 박수현
2018년 12월 24일 17시 58분  조회:697  추천:0  작성자: 강려



박수현


당신은 뒷골목 담배가게 한켠에서
나를 훔쳐보는 치한
온 몸을 훑는 눈길에
내 피돌기는 화들짝 빨라지지


당신은 상한 통조림에서 뽑아낸 신경독
이마며 눈가의 주름
다림질하듯 펴준다며 반평생 나를 홀리지


당신은 나의 배후가 된 저녁 종소리
세상 가장 구석진 곳까지 따라온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이선의 시 읽기>


  시인과 詩(시)는 어떤 관계일까? ‘시 쓰기’에 대한 ‘시’작품을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편쯤은 써 보았을 것이다. 또한 아직 못 써 보았다면, 시인 자신이 시를 쓰면서 체험한 나름의 시론에 입각한 감각적인 ‘시’를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시인과 시는 천형의 무속인과 영매처럼 ‘운명적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詩(시)와 설레는 연애질을 하든, 중독증에 걸렸든, 집착 증후군을 앓든 간에 스스로 행복하여 택한 천형임에 분명하다. 김기림에게 어느 시인이 “그 나이에도 아직도 철이 안 났느냐?”고 놀렸듯이, 시는 어린 마음에서 싹이 튼다. 늙고 병든 마음에서는 시의 싹이 트지 않는다. 아직 덜 여물고 약한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가 발화한다.
  시인은 홀린 듯 평생을 시에 애착을 갖는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신경쇠약에 걸릴 지도 모른다. 릴케는 ‘젊은이여, 잠 안 오는 밤에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밤’에 시를 쓰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프로이드는 ‘사회화에 실패하여 부적응을 겪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과 갈등을 예술로 ‘승화’하여 표현한 것이 ‘시’라고 하였다. 독자가 작가의 사회화의 부조화로 인한 내면의 상처에 공감하는 과정을 ‘감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을까?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황홀한 마법의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무당이 공수를 받듯, 시인은 영감을 받아 언어의 직조를 짠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돈이 적게 드는 예술행위다. ‘가난한 시인’이란 말은 훈장처럼 명예롭게 현재까지 전수되어 오고 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직접적이고 싸게 비용이 지불되는 ‘자가 정신(정서)치료’ 수단이다.
  위의 3연 3행처럼 시는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임에 분명하다.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박수현의 시를 읽고, 위의 몇 가지 시론을 전개해 보았다. 성실하게 묵묵히 시만 쓴 박수현 시인에게도 시의 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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