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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섹스 / 김용오
2018년 12월 24일 18시 10분  조회:761  추천:0  작성자: 강려
시와 섹스
 
김용오
 
나에게 있어서의 시는
본능적으로 즐기는 섹스와 동일하다.
정갈한 저녁상을 물려놓고
감미로운 서정의 음악을 들으면
조금씩 발기하는 나의 남성.
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을
한순간 따뜻한 어둠 속에 엎드려 맛보는
알몸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의 섹스는
정신적으로 즐기는 시와 동일하다.
질척거리는 일상의 골목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조용히 앉아서 마시는 한잔의 블랙커피,
수도하는 선승처럼
불켜진 한밤의 집중의 침실에서
꼭 다문 침묵의 혀를 빨면
조금씩 밝아오는 영혼.
온몸을 끌어안고 뒤척이는 여자들의 신음소리나
부르르 흐느끼는 허벅지의 짜릿함을
한순간, 하얀 종이 위에 엎드려 느껴보는
언어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 시와 섹스는
서로 두 손 잡고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
 
<이선의 시 읽기>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는 쾌락과 배설을 시의 효용성으로 정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배설이다”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Horace)― “시는 심미적 쾌락과 교훈을 준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다간 두 석학은 다르지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작년에 작고한 김용오 시인의 ‘성담론’을 화두로 ‘성’과 ‘시’의 상관관계를 논해보자.
   물리적 배뇨작용과 ‘성’적 배설작용은 모두 카타르시스를 준다. 시에서 느끼는‘심미적 미의식’과 ‘감각적 흥분’도 카타르시스를 준다. 창녀와 연애를 하든, 수녀나 승려를 짝사랑하든 사랑의 본질은 같다. 호기심과 쾌감이다. 손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눈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담론 ‘시’가 성공하는 이유는 만유공통의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교묘하게 섹슈얼리즘을 은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시 쓰기’에 대한 ‘성적 환타지’는, 정절을 내세우며 음탕하게 숨어서 읽는 <춘향전>처럼 은밀한 쾌락의 극점이 있다. 발가벗은 시어들은 오감을 자극한다. 심미적 자극과 쾌감을 준다.
  필자도 잘 생긴 육체보다는, 샤프한 지성에 오르가즘을 느낀다. 육체를 가진 이성보다, 자기중심적이고‘자기애’가 강한 시인들의 기질 탓일 것이다. 암수 한 몸의 ‘달팽이’처럼. ‘시 쓰기’는 자위행위의 고급스런 변형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강한 것을 아름답다고 정의한다. 힘은 아름다움이다. 고대 선사시대부터, 여자들은 동물과 싸워 먹이를 잘 구하는 사내를 추켜 세웠을 것이다. 힘은 어느 시대에나 삶의 근본이며 가장 큰 효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강렬한 물리적인 힘은, 무용가나 미스코리아처럼 자기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적이며 강렬하다. 배우도 자기 몸이 기업이다. 그 다음 부류가 손가락을 이용하는 미술가다. 그런데 시인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생각이 많다. 언어유희는 가장 추상적인 ‘생각놀이’다. 지치지도 않고 혼자 숨어서 논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면 당연히 육체가 약해진다.‘육체’가 죽고, ‘생각’을 키운다. 위의 시의 화자 ‘나’는 시를 쓰면서‘알몸의 정사’(9행)‘언어의 정사’(22행)를 맛본다.
  미식가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찾아다니듯이, 시인은 ‘맛있는 언어’를 먹으려고 숲과 바다를 찾고, 바람과 비를 맞는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부족함이다. 결핍은 배고프다.‘욕구’를 숨기고 있다가, 가장 안전한 기회를 갈구한다. 그것이 혼자 노는 성이다. 아니, 사실은 ‘성’이 아니고 ‘성놀이’다. ‘유사 성행위’다.
  관능과 성에 탐닉한 김용오 시인은 사실은 성에 가장 약한 남자였을 수도 있다. 강렬한 욕구는 결핍과 불만족에서 발기되기 때문이다.‘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6-7연) 은 거세된 가장 정갈한 유사 성행위다. 승려나 신부의 섹스와 같다. ‘욕구’와 ‘배설’이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마지막 행) 갈등이 성욕을 자극한다. 지치지 않고 시에 흥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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