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티네이션 4
-조용한 증인
김해빈
빛을 삼켜버린 전시실
창백한 남자 그리고 나
거리는 1m도 되지 않았다
두근거리며 피를 내뿜던 심장과 날카롭던 시신경 그를 둘러싼 미세한 세포들
모두가 한 발 건너 조용한 증인으로 섰다
웃음이 빠져나간 텅 빈 두개골과 횡간막 사이
남자의 목소리는 납덩이로 굳어있다
어느 기억을 가리키는지 손끝은 하늘을 향하고
중추신경과 말초신경마저 끊어버린 몸짓은 완전한 균형이다
수만 번 손끝으로 요일과 날짜를 새던 그의 네트워크
쏟아지는 정보를 찾아 시신경보다 빠른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지도 몰라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
* 플라스티네이션: 인체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은 1977년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 박사에 의해서 처음 연구 개발되었다. 시체에서 수분과 지방을 깨끗이 제거하고 실리콘 고무 에폭시나 플라에스테르 합성수지 등을 주입해 통통하게 살아있는 듯 그 상태로 영구 보존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선의 시 읽기>
김해빈의 시는 구조화에 집중하고 있다. 1-5연의 시들이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객관화되어 있다. 또한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에 주목하여 보자. ‘사물’과 ‘사실’ 사이에 객관화된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1m 거리’(1연)방경 내에서 대치하고 있는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증언한다. 혹은 변명하고 싶은 것일까?
시인의 무의식은 ‘창백한 남자’(1연 2행)의 현존했던 삶을 재생시켜 구조화하고 있다. 그 남자가 살아있을 때의 실재적인 몸- 피, 심장, 세포(2연), 두개골, 횡간막, 중추신경, 말초신경(3연), 시신경(4연), 껍질(살갗), 근육을 상상력은 재현한다.
또한 그 남자의 생활도 복원해 본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 손끝’(4연 1-2행)과 ‘자유에너지’(5연 1-2행)를 인지한다. 5연에서 화자인 ‘나’의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향한 욕망을 읽는다.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5연 1-2행)
과학이 재현한 인물, 즉 ‘대상’에 대한 관찰과 관심은 시의 본질이다. 또한 죽은 남자를 향한 연구와 분석은 시인의 ‘대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다. 여기에 ‘욕망’과 ‘욕구’를 결합하여 주면 ‘시적 에너지’가 증폭된다. 비록 ‘주검’으로 변한 인간, 무생물화하여 단지 ‘사물’인 인간도 관심을 받으면 ‘생명력’과 ‘에너지’를 갖고 힘을 얻는다.
뼈대가 단단한 김해빈의 시를 읽으면 남성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리하지 않은 수사가 ‘현실’과 ‘현재성’을 강조하며, 생장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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