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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 / 정연석
2018년 12월 24일 20시 47분  조회:837  추천:0  작성자: 강려
곤드레
 
정연석
 
 
해거름에 시장기가 돌아서 초지리草芝里
곤드레 밥집에 갔습니다.
'시장 갔습니다'란 쪽지 붙은 유리문에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이 얼비쳤습니다.
양념장에 쓱쓱 비빈
곤드레 밥그릇이 헛보였습니다.
곤드레만드레하였습니다. 
홍골레망골레하였습니다. 
마주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허기에 취한 저녁이 깊어갔습니다.
 
  * 홍골레망골레; 술이나 잠에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곤드레만드레"의 경상도 사투리.
 
 
<이선의 시 읽기>
 
   꿈이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 것은 ‘가난’이라는 씨앗에서 자라는 풀꽃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린 가난은 새싹과 같아서 꿈속에서도 자란다.
  정연석의 「곤드레」는  ‘시장기- 곤드레 밥집- 유리문쪽지- 핼쓱한 두 얼굴- 헛보임- 곤드레만드레 취함- 헛웃음’이라는 무의식의 흐름을 의식이 좇고 있다.   시는 비유다. 하지만 그 비유는 연상작용에서 발아된다.
  위의 시의 중심 행은 2-5행이다. ‘곤드레 밥집에 갔습니다./ '시장 갔습니다'란 쪽지 붙은 유리문에/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이 얼비쳤습니다. ’ 부분이다.
  시는 지워지지 않는 인물, 사건, 사물들의 풍경에서 발아된다. ‘매화마름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은 시인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다. ‘해쓱한 그 얼굴’은 시인의 심상에서 시심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는 사람이다. 
  프로이드는 무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던 기억의 덩어리들이, 꿈을 꾸거나 술을 먹었을 때, 의식의 통제가 풀려 무의식이 의식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시를 쓰는 행위는, 무의식의 흐름에 의식을 맡기는 일이다. 언어들이 마음껏 취하여 연상작용을 하도록 의식을 해제시킨다.
  5행의 ‘두 얼굴’을 ‘그’와 화자인 ‘나’의 과거 추억을 객관화한 장면으로 해석하여 보자. 사람이 쉰 살이 되면 인생의 분기점에 서게 된다. 살아온 날과 살 날이 선명하게 갈린다. 또한 원망하던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다. ‘두 얼굴’ 중 한 얼굴에 ‘아버지’를 대입하여 보자. 독자는 ‘어머니, 형제, 첫사랑’을 대입하여도 좋다. 문득 옛날을 현재에 불러오고 싶은 사람. 누구나 있다. 그 사람이 모질게 보고 싶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며 ‘그’를 식탁에 초대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곤드레만드레 옛 추억과 감정에 취하여.
  11행의 짧은 시가 독자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흔든다. 짧지만 강한 여운으로 과거회귀를 종용한다. 이 시를 읽으면.
  프로이드는 무의식 이론을 학계에 발표하였지만, 시는 무의식을 객관화하여 펼쳐 보인다. 이 시는 무의식을 현재에 실현시키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그리움처럼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 (4행) 한 송이 맘속에 피어올리고 싶어질 것.
  이 시를 읽으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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