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
최창순
한겨울 밭에서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귀 기울이면
개구리의 겨울잠 자는 소리
쑥 달래 냉이 다리 뻗는 소리
그뿐이랴
땅속에 움츠린 풀씨들
봄을 기다리는 소리
자연의 소리는
시기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공생하며 살아간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는
언제쯤 봄이 올까?
* 최창순 시집, 『아내와 그네』 중에서
<이선의 시 읽기>
시는 한 뿌리에서 두 개의 나뭇가지를 뻗는 신기한 나무다. 그 뿌리의 속성은 둥글다. 그 줄기의 속성도 둥글다. 자양분을 전달하기 위하여. 둥근 원통 기둥에 물과 햇빛과 맑은 공기를 품고 산다.
그러나 모든 詩의 뿌리와 줄기가 둥근 것은 아니다. 가시를 가진 시의 줄기는 더러 납작하거나 뾰족하기도 하다.
모든 나뭇가지는 뾰족하다. 詩 나뭇가지의 끝도 뾰족하다. 앞으로, 위로, 옆으로, 더 뻗어나가 더 좋은 열매를 만들기 위하여.
최창순의 시는 둥글고 부드러운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 시에는 ‘시기’와 ‘미움’이 없다. 위의 시와 대조하기 위하여 다른 시를 한편 소개한다. 필자가 급히 쓴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겨울 뿌리’에 대한 시다. ‘봄 원형’의, 봄소식을 기다리는 시점은 같다. 그러나 시의 관점이 다를 때, 절망과 희망은 다른 시 이미지를 만든다. ‘시’라는 한 뿌리에서 뻗은 다른 ‘줄기’를 비교하여 보자.
바람 불고
눈 내리고
생장점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겨울밤
줄기, 잎새, 온몸 추위에 버리고
―누워있는 자리
발목만 댕강, 캄캄한 땅에 갇혀 있다
눈을 꼭 감고
귀를 막고
숨도 쉬지 않고
혼자 애타게 기다리는, 봄얼굴
어디쯤, 봄 꽃바람 불어오고 있는가?
늦가을부터 봄까지 한 계절을 숨죽이고 기다리며 시는 성장한다. 더러는 다시 몇 계절을 순환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도 먹을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하여 주인에게 밑동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어떤 시작 과정과 역경을 견딘 ‘시 나무’든, 시는 희망을 주는 ‘밝은 시’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지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어두운 시’로 나눌 수 있다. 즉 ‘슬픈 시’와 ‘아름다운 시’가 존재한다.
최창순의 시를 읽으면 행복하다. 부드럽고 감동적이며 희망적이다. 필자의 시를 읽으면 자연의 이치를 파헤쳐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지만 그 ‘톤’은 슬프다. 항거와 억압이 있다.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유를 이끌어낸다.
‘공생’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최창순의 ‘봄소식’은 세상에게 주는 선물이다. 독자에게 주는 행복이다. 지하철역에서 자주 만나고 싶은 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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