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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 황 학 주
2018년 12월 25일 15시 03분  조회:773  추천:0  작성자: 강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황 학 주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 했지만 
 
 
 누가 있다 방금 자리를 뜨자마자 
 누가 있다 깍지 속에서 풀려나와 눈보라 들판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이란  
 매번 고드름이 달리려는 순간이나 녹으려는 순간을 훔치던 마음이었다  
 또한 당신의 그림자와 마주 보고 달려 있었다   
 
 
 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 
 언젠가 빈집에선 
 일생 녹은 자국이 남긴 빛들만 열리고 닫힐 것이다  
 
 
 그때에도 겨울은 더 있어서 
 누가 또 팽팽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자유를 춥게 배우며 
 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이선의 시 읽기>
 
 
 
   시에서 제목은 반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황학주의「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멜로 영화처럼 달콤한 제목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가진 제목이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단어 속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사랑하면 살아야 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 ‘사랑’과 ‘죽음’은 반어적이고 상대적인 언어조합이다. 두 단어는 불안전하고 미지정적인 위기감이 충돌하고 있다. 또한 극적 요소를 잉태하고 있는 사건을 유발시키는 갈등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예술은 자유를 추구한다. 시인은 무의식의 자유까지 확인하려 한다. 황학주의「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어떤 시점과 관점의 자유를 추구하는 지 살펴보자. 시는 확대해석이 가능하고, 그 확대의 범주가 넓을수록 좋은 시다. 그러나 독자와 평자는 무한대적 범위를 가진 확대경으로 작품을 감상하지는 않는다. 자유를 위하여 죽은 6월의 젊은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이 땅, ‘자유’와 ‘죽음’은 엄숙히 검토되어야 할 주제다. 
 
 
  위의 시를 1980년대 ‘자유’를 위하여 희생된 젊은이들 목숨에 바치는 추모시로 해석하여 보자. 온 몸에 신나를 끼얹고 자살한 서울대 어린 대학생들. 학업을 중단하고 3D 산업 노동자로 숨어든 대학생들. 그 시대 자유를 위하여 데모 한 번 하지 못하고, 도서관에 숨어 공부만 하던 젊은이는 아마 죽을 때까지 친구를 향한 죄책감을 지니고 살 것이다.
 
 
  오늘의 풍요와 자유는 80년대에 빚진 자유다.
  매일 매일 ‘당신의 그림자와 마주 보고 달려 있’(3연 3행)는 이 땅의 양심과 지식은 고뇌한다.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 했지만’(1연 1-3행) 그 겨울을 기억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4연 1행) 너도 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을 잊지는 않는다. 뇌와 눈과 손과 발에, 온 몸에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각인되어 있으므로.
 
 
  그 <겨울 공화국>은 자유와 목숨을 맞바꾸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젊은 목숨을 고드름처럼 매달고 위험하게 떨어지거나 녹았다. 음식문화와 명품백과 아이돌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젊은 자유를 위하여 그들은 겨울을 춥게 보냈다. 건국대 높은 창가에서 꽃잎처럼 젊은 목숨들이 낙화하였다.
 
 
  선각적 지식인은 예지한다. ‘누가 또 매달리는 것이다/ 자유를 춥게 배우며’ (5연 2-3행). 방만한 자유의 시대에 시인은 긴장감을 느낀다. 게으른 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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