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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현상現像 · 4 / 최진연
2018년 12월 25일 16시 03분  조회:876  추천:0  작성자: 강려
가을 현상現像 · 4
 
 
최진연
 
 
누런 벼메뚜기들이 펄쩍펄쩍 뛰고 있는 들판
그 위에 아득한 코발트빛 하늘
하얀 줄을 긋고 은빛 반짝이며 사라지는 비행기
콜로라도의 강물에
누군가 발을 담갔다가 얼른 들어올린다
아이들은 아직도 더러 풀잎 물레방아를 돌리고
종이배 하나가 얄랑얄랑 흐르다가 빠지는
마리에나 해구보다 깊은 바다엔 하얀 섬 하나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흐르고 있다
곤돌라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끌려온 베네치아의
바다는 그 사막도시의 발등도 묻지 못하고,
저절로 떠가는 배에서 남녀가 어깨를 안고 부르는
아라리 같은 곡조의 사랑 노래 소리
갑자기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들
스산한 노래에서 검은 시베리아 바람을 보았을까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조각품처럼 굳어지고,
콜로라도 강물보다 찬 동강을 건너
김삿갓이 햇살 설핏한 산등을 넘어가고
병 속의 메뚜기 몇 마리가 꼼작거리고 있다
 
 
 
 
 
<이선의 시 읽기>
 
 
최진연의 「가을 현상現像 · 4」는 하이퍼시의 여러 조건들을 함의하고 있다. 그 중 하이퍼시의 <모자이크 기법>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모자이크 기법은 각각의 다른 이미지들을 사각형 구도 안에서 모자이크 그림처럼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그 특징은 각 연들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다. 위의 시에 나타난 모자이크 기법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자.
 
 
첫째, 내용 중심의 <중심어- 모자이크 기법>
 
각 행에 나타난 ‘중심어’를 요약하여 ‘중심어- 모자이크 기법’을 살펴보자. 위의 시는 샤갈의 그림처럼, 이미지 덩어리들이 낱개로 뭉쳐 있다. 시 한 편에 매우 많은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겹쳐 있다. 필자는 이 기법을 ‘겹쳐 그리기 기법’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1행: 벼메뚜기 들판
2행: 하늘
3행: 비행기
4행: 콜로라도 강물
5행: 발을 담그다
6행: 풀잎 물레방아
7행: 종이배
8-9행: 바다의 섬 하나
10-11행: 곤돌라,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아 바다
12행: 배 위의 남녀
13행: 아라리 사랑노래
14행: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
15행: 스슨한 노래, 시베리아 바람
16행: 울긋불긋 물든 잎
17행: 콜로라도 강물보다 찬 동강
18행: 김삿갓
19행: 병 속의 메뚜기
 
자동기술기법으로 각 행들은 바로 위의 행을 이어 받아서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하는 구조다. 현대시의 자동기술기법의 특징이다. 각각의 다른 작은 모자이크들을 합성하여 한 개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위의 시는 행마다 각각 다른 사물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그러나 한 개의 모자이크 그림처럼, 각각의 행들 안에 있는 단어들은 각각 독립적이다. 한 단어도 밀리거나 소외되지 않고 선명하다.
 
 
둘째, 색깔 중심의 <색깔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
 
2행: 코발트빛 하늘
3행: 하얀 줄, 은빛 반짝이며 사라지는 비행기
6행: 풀잎 물레방아(녹색)
8행: 하얀 섬 하나
15행: 검은 시베리아 바람
16행: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색깔 이미지는 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준다. 위의 시는 단편적인 한 가지 색깔을 벗어나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반짝이는 모자이크 이미지를 만들었다.
 
 
셋째, 동사 중심의 <운동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
 
1행: 펄쩍펄쩍 뛰고 있는 벼메뚜기
2행: 아득한 하늘
3행: 사라지는 비행기
5행: 발을 담갔다가 얼른 들어올린다
6행: 풀잎 물레방아를 돌리고
7행: 얄랑얄랑 흐르다
8-9행: 섬 하나가 흐르고 있다
10행: 곤돌라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끌려온 베네치아
11행: 바다는 사막도시의 발등도 묻지 못하고
12행: 저절로 떠가는 배, 어깨를 안고 부르는
13행: 사랑 노래 소리
14행: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들
15행: 세베리아 바람을 보았을까
16행: 조각품처럼 굳어지고
17행: 찬 동강을 건너
18행: 햇살 설핏한 산등을 넘어가고
19행: 메뚜리 몇 마리가 꼼작거리고
 
1-19행까지 모든 행에 동사를 사용하여 운동감을 주고 있다. 동적 움직임은 시에 생기를 주는 역할을 한다. 시에 현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생동감 있고 펄쩍펄쩍 시가 살아 있다.
 
 
넷째, 상상력의 시간이동, 공간 이동 중심의 < 상상력- 모자이크 기법>
 
위의 시의 특징은 상상력이다. 하이퍼시는 여러 번 필자가 주장한 ‘상상력의 시간 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행과 연은 동시에 공간과 시간을 벗어났다가 다시 ‘순간접속’ 한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의 예는 <들판- 하늘- 비행기- 콜로라도 강- 바다- 섬- 베네치아- 사막도시- 배- 시베리아- 동강- 김삿갓- 병속의 메뚜기> 다. 시의 스케일을 크게 한다.
또한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한 예는 <메뚜리를 잡는 아이들- 들판- 사라지는 비행기- 콜로라도 강물에 발을 담갔다 들어올린다- 풀잎 물레방아를 돌리다- 종이배가 흐른다- 섬 하나 흐른다- 곤돌라와 라스베이거스에 끌려온 베네치아-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들-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동강을 건너- 김삿갓이 산등을 넘어가고 - 병속의 메뚜기가 꼼작거리고>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모자이크 그림이다. 상상력의 시간적거리가 멀다. 먼 거리의 사물과 행위를 <순간 접사>하여 동시에 펼쳐 보인다.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위의 시는 복잡한데 선명한 것이 장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난해한 기법이나 문장이 없다. ‘하이퍼시’ 시 구조를 가진 자립적이며 독립적인 모자이크 이미지가 선명하다. 하이퍼시의 ‘ 중심어 모자이크 기법’은 샤갈 그림의 이미지 덩어리들의 집합과 같다. ‘색깔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은 몬드리안 그림의 구성과 같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시간이동과 공간 이동은 시에 감각적 미의식과 운동감을 준다. 중첩 이미지의 복합적 구도는 파도와 강물의 물결과 반짝임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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