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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태-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 2016년 가을호/ 가온문학- 명시 읽기/ 이선 평론
2018년 12월 26일 20시 43분  조회:1675  추천:0  작성자: 강려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
 
 
 
민용태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던 봉숭아는 서울에 시집와서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를 하다 그만 허리가 부러져 누워버렸다.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아파트에 아파 누워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의인화 기법을 사용한 상징 시
 
 
1. 서론
 
민용태의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는 다음과 같은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의 형태와 구성요소로 시의 외부적 요소로 보면 <의인화 기법- 사물시의 요소-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 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시의 내부적 요소로 시의 내용적 면을 분석하면, <서울 수도권 집중화와 도시 빈민층 노동자 문제- 질병과 소외, 노인문제> 등으로 요약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본장에서는 이와 같은 기준에 준거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하기로 한다.
 
2. 의인화 기법
 
위의 시는 봉숭아의 자서전 같다. 그 장치는 <의인화 기법>이다. 위의 시에서 인용한 아래 낱말과 문장은 ‘봉숭아’인 식물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패턴을 통한 <의인화 기법>의 실례이다.
 
<손톱의 꽃물- 첫사랑- 서울에 시집 옴-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를 하다- 허리가 부러져 누워버렸다-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시간 철인경기- 손톱 등 다 닳고- 허리마저 부러져 누웠다- 등을 기댈- 아파트에 아파 누워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웃는다>
 
 
3. 사물시의 요소
 
위의 시는 사물시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강렬하게 지니고 있다. 아래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2연-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위의 1연과 2연의 부분은 “봉숭아”의 관점에서 보면 참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시의 눈으로 보면 거짓 없는 참이다. 위의 시가 봉숭아의 자서전이라고 본다면, 객관화된 사물시의 형태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시는, 아래 부분 때문에 완벽한 사물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식물인 봉숭아는 객관적으로 ‘철인 3종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의인화 기법으로 재해석하면, 봉숭아가 당면한 환경 즉, 강한 햇빛과 건조한 기후, 폭우를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로 생각할 수 있다.
사물시는 철저히 사물의 관점에서, 사물이 말하고 행동하게 씌어야 한다. 그러나 2연에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라는 표현은 사물시의 요건에 맞지 않다. 봉숭아는 자기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봉숭아꽃에게 꽃물을 들여 주는 존재는 햇빛이거나 공기거나 토양일 것이다.
위의 시는 객관화된 사물시의 여러 요소를 함의하고 있지만, 100% 사물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위의 시가 시적 논리에 어긋난 잘못 창작된 작품인가? 절대 아니다, 독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2중 구조적 표현방식이 이 시의 매력 포인트다.
 
 
4.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
 
위의 시는 1연과 2연으로 된 짧은 시다. 그러나 각각의 연은 다초점의 모자이크 된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시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외적 요소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여러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의식화하고 있다.
1연은 ‘봉숭아’라는 사물과, 봉숭아와 대비시킨 ‘인간’이라는 두 개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1연 1행-4행, ‘첫눈 올 때까지~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인간이 주체다. 인간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다음 1연 아랫부분 4행-6행,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식물인 ‘봉숭아’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2연을 살펴보자. 2연은 ‘봉숭아’로 대변되는 어떤 ‘인간’의 삶의 배경이 노출되어 있다. ‘꿈-서울-막노동-병’ 패턴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고도의 위험군에서 일한 ‘봉숭아’로 대변되는 국민, 즉 노동자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해석하면 그 상징성이 증폭된다.
또한 제목이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라고 하여 주체가 여자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봉숭아꽃의 여성 이미지 때문에, ‘서울에 시집온’이라는 꽃을 주체로 한 사물의 관점으로 쓴 시로 해석해야 한다.
1연 5-6행은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은 노동자 관점의 시다. 노동자의 최고 행복은 삽, 톱, 망치를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서류로 일을 하는 것이다. 펜 노동은 몸을 사고로 죽게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또 다른 꿈은 화이트칼라의 여유다. 월급봉투는 일당이 아닌 빨간색 날 유급휴가도 포함된다.
위의 시의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은, 시에 긴장감과 해석의 묘미를 준다.
 
5. 서울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도시빈민층 노동자 문제
 
위의 시를 앞에서 외연적 측면, 즉 시적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제 위의 시를 내용적 측면, 즉 사회적 배경, 즉 환경적 측면에서 조명하여 보자.
시인이 시를 쓰는 동기는 정서적 자극이다. 행복한 나라에는 시인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시는 심성의 깊은 상처나 자극, 깨달음이 창작 동기가 된다. 창작욕구는 시인이나 시인주변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산된다.
1연 2-4행을 살펴보자.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위험한 육체노동에 노출된다. 위의 시에서 봉숭아는 노동자를 상징한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상징일 뿐이다. ‘지구에 온 인간’이거나, ‘외국에서 온 근로자’거나, 시골에서 서울에 온 봉숭아거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방인’으로 분류된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병든 노동자에 대한 연민이 문제제기의 골자다.
 
6. 질병과 소외, 노인문제
위의 시를 또 다른 측면으로 고찰하여 보자. 2연 1-2행을 살펴보면,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
 
위의 시는 ’봉숭아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전선에서 난투극을 벌이다가 허리를 다쳐 누워있는 샷시공, 건설현장에서 비계를 타다가 떨어진 노동자의 슬픈 뒷얘기다. 소외계층의 인권과 행복권, 생존권에 대한 사회고발적 시다..
‘나비’는 노동자의 이상주의와 꿈의 실현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런데 병든 몸은 이제 날고 싶은 의지가 없다. 아픈 노인은 자신을 찾아올 자녀의 전화벨소리에 예민하다.
그러나 2연 3행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처럼 허탈한 자조가 느껴진다.
한 편의 시는, 노인 소외문제, 장애우의 환경문제, 자녀에게 희생과 외면을 당한 부모 등, 당면한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호소하며 각성시키고 있다.
 
7. 결론
 
시의 세계에서는 사물과 자연, 인간과 동물이 물아일체를 이룬다. 시인은 사유와 관찰을 한 뒤 시를 써서 사회문제로 클로즈업하여 이슈로 만든다. 시인은 상상력과 이미지로 최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특허권자가 되기도 한다. 시는 웅변하지 않지만 데모군중보다 부드럽게 대중을 재빨리 흡입한다.
시인이 베란다 난간에 있는 허리가 꺾인 ‘봉숭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직면하고 아파하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생명권과 행복권에 관심이 없었다면?
 
그 사회는 아프고 병든 거다. 지성을 잃어버린 도시는 영혼이 죽은 거다.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병리현상을 고발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의 행복이 곧 국가의 힘의 원동력이다.
시는 짐짓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이다. 위의 시는 설명하거나 웅변하지 않는다. 재해석의 관점으로 ‘봉숭아’의 삶을 인간, 특히 병든 노동자의 사회적 소외로 치환한 것이다. 짧은 2연의 시로, 긴 대하소설 분량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 상징성이 있다. 단어와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 독자와 평론가에게 주는 시의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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