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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 ― 시집 「실험실의 미인」을 중심으로 / 吳南球 (시인, 평론가)
2019년 01월 24일 16시 26분  조회:1172  추천:0  작성자: 강려
[하이퍼텍스트 시론 1]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
― 시집 「실험실의 미인」을 중심으로
 
 
吳南球 (시인, 평론가)
 
 
❙ 들어가며 ❙현대시가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고 있다. 해체된 언어(조각, 유니트)가  다시 통합되는 원리는 무엇인가?,'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종의 초현실로서 저절로 통합되어 자동기술 되는 ‘탈-관념'의 시 쓰기이다.
 
 
1976년, '시인의집' 모임에서 현대시의 ‘수학적 존재 증명’을 얘기하곤 했다. 모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할 무렵 한성례씨가 찾아왔다. 분위기가 갑자기 환하게 느껴지는 용모였다.
가까운 문우들에게 필자가 이 모임을 탈관념의 ‘실험실’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시를 살펴보니 ① 탈관념의 선언에 영향을 받은 존재론적인 것과 ② 탈관념의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 과정에서 비롯된 것과 ③ 탈관념 그 습작과정에서 쓰여진 것과 ④ 수학여행이라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시고(詩稿)들을 읽어보니 모던이스트 중에서도 모던이스트로 그 문명비평적인 쎈스의 풍자와 기지들은 많이 지나칠 정도여서 내게 씨(氏)가 시골사람이라는 걸 아조 잊어버리게까지 하고 있다.”
 
미당(서정주)이 한성례씨의 시집에 붙인 서문의 글이다. 이 말이 아니라 해도 시를 읽어보면 독자는 깨뜨려진 어떤 낮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시는 표백제로 얼룩진 물감을 탈색해서 이제 막 내어놓는 옥양목 같다고나 할까, 고정관념이 깨뜨려지고 있는 시어들은 낯설고 싱싱하다.
 
 
한 가름, 탈관념 선언에 영향을 받은 시
 
당시 탈관념의 실험을 시작하면서 모임에 내세울 새로운 이슈를 선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미당을 찾아가서 자문도 구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도 읽었다. 동경대전(東經大全)도 다시 읽었다. 숙고한 끝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한국적인 사상에 기초한 선언문을 작성한다. 그 해가 1980년 1월 무렵이었다.
후에 그 일부가 경구(警句)처럼 <시인의 집> 동인지 표지에 한동안 게재된다. 그 표지에 써 놓은 글은 이러하다.
 
“신은 시인 앞에 오면 한 낱의 낱말이다. 시인은 낱말을 죽이고 또 창조한다.”
 
이 같은 문구는 동인들 중 크리스천들에게는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시를 쓰는 ‘주체’에 대해서 ‘신이 아니라 사람, 즉 시인’이라는 등, 시의 본질이 되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담론해 갔는데, 물론 그 선언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바로 다음 항에서 말하는 탈관념의 논리를 구축해 가는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인데, 지적이고 논리적이던 한성례씨는 이러한 시론을 좋아했다.
이 무렵 그는 갈등하며 시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관념적 허구’로서 절대자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허무감’을 느꼈고, ‘막막한 신천지에 서듯’ 외로움을 타고, 불안・초조 등의 실존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다음의 시를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그가 드디어 동양적인 사고로 ‘직립’하여 바로 서는 자존적인 자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서구화된 우리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절망과 고뇌를 반복한다.
 
 
1.「무풍대에서」에 나타난 자아, 그 직립
 
「무풍대에서」그가 자아의 눈을 뜨고 바라본 진실은 무엇인가? 시를 보자.
 
종소리 속에서
느릿느릿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관성만 남은 일상
더듬이가 필요한 날에는
볕이 드는 쪽과 음지를
혼동한다.
 
낯선 바람
원점 향해 위치 변동
꽉 채우고 있는
물먹은 공기
빠져나갈 출구가 없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첫째, 사고가 신의 세계에 갇혀 “종소리 속에서 / 느릿느릿 /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그런 관성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정작 옳고 그름의 이성적인 ‘더듬이’의 가치 판단이 필요할 때마다 그 관성으로 인하여 그 판단이 혼동된다.
둘째, ‘낯선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곳이라고 파악되는 ‘무풍대’이지만 ‘낯선 바람’이 태동한다. ‘낯선 바람’이란 시인이 의식한 ‘새로운 것’ 즉 서구적이 아닌 동양적인 의식의 ‘새 바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현실이란 서구 정신문화가 포화된 상태로서, “꽉 채우고 있는 / 물 먹은 공기”로서, ‘새바람’의 출구도 없는 무풍지대로 인식된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
그 언저리는
꼭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다.
 
직립한 바람은 직립한 바람끼리
손잡고 있는
무풍대에서 
 
껌딱지로 도배된
기지촌의 포도처럼
사인 코사인의 귀를 맞추며
덕지덕지 하품으로 이어 놓는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셋째, 그는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절망을 느낀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을 본다. 또 죄지은 듯이 “꼭 /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고, ‘기죽은 초라한 자아’ 그 실존의 위기를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시인으로서 ‘직립’ 하여 ‘바로 서는’ 자의식의 입지(立志)를 한다. 물론 ‘기지촌’, ‘껌딱지’의 서구적 극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의지로 견디어야 하는 숙명이다. 이제 그는 무풍대에서 직립한 바람의 존재로서 홀로 서 있다.
 
 
2. 「벼랑 끝에서」의 춤
 
신을 ‘관념적 허구’로 파악하고 ‘절대자’를 부정했으나, 그는 아직 확고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실로 한성례씨는 두려움 속에 있다. 신천지에 서듯 막막함과 불안・초조의 벼랑에 서게 된다. 이때 ‘춤’을 추게 되는데, 불안・초조로부터의 극복과 탈출을 위한 몸짓이다. 이 절대 고독상황에서 손잡아 주는 것은 새로운 의식의 ‘어설픈 바람’ 뿐이며, 그 절실한 모습에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낭떠러지에 서서
춤을 춘다.
동작보다 언제나 한 템포 느린 음악
 
아래로부터 걷어 올라온 바람이
어설프게 손잡아 준다.
 
언제부터였을까 
엄청난 배반의 현실에도
때때로 풋풋한 여명을 맛보곤 한다.
 
내 가슴 속에 출렁이는 배 한 척
무거운 방황은
젊은 날의 피를 낭비하는 것이라 해도
음울한 예정론에 기대를 걸고
출항을 서둘렀다.
 
이제 나이 드는 것이 타락의 나이테라면
차라리 돌아가지 말아야지
 
벼랑 끝에서 느릿느릿
춤을 춘다.
─「벼랑 끝에서」전문
 
 
3.「불완전 명사의 저녁」에 나타난 존재
 
눈을 뜬 자아, 그래서 막 태어난 '불완전 명사'로 나타난 존재! 그 직립에 의한 행보는 방황과 갈등이다. 벼랑에서 새로운 출항을 하게 되지만 이는 불안한 항해로서 익숙지 못한 실존주의자의 삶이다. 좌절과 불안과 머뭇거림의 연속이다. 그의 사상은 불투명한 상태로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리는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갈등 한다.
 
터널로 빠져 드는 녹슨 연기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린다.
철분의 붉은색 앙금으로 가라앉히고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자맥질처럼 움직인다.
<중략>
 
퇴색된 석양 언저리에서
태우며, 
가늘게 남은 내 생의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
 
줄자로 잴 수 없는
문화의 어정거리는
습성 
그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
 
터널로 빠져드는 녹슨 연기
아우성으로 떠는 흐느낌이다.
─「불완전 명사의 저녁」 중에서
 
그러면서, “가늘게 남은 내 생의 /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으로 그의 존재(存在)를 확인하며, “줄자로 잴 수 없는 / 문화의 어정거리는 / 습성”을 꼬집어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스스로 질타한다.
존재자의 갈등! 바로 진실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 그 인간다움이다. 이러한 그는 「도편수의 노래」에서 스스로의 배-새로운 출항을 위한 도편수가 되기도 하고, 줄타기 하는 삶의 곡예사로서 ‘땅에 발 디디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두 가름,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에서 비롯된 시
 
이렇듯 그가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그것은 ‘최면을 통한’ 자동기술(自動記述) 훈련이었다.
그 한 가지 내용을 보면,
 
“자,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편안히 호흡을 고른다. 깊이 숨을 들이 마신 후에 아랫배에 지긋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숨을 쉰다. 1초, 2초, 3초…….
이제 감각여행을 떠난다. 태양!
태양을 마음에 그린다. 태양을 향해서 몸이 둥둥 떠간다. 경비행기 속도로 간다. 빛의 속도로 간다고 생각한다. 1초, 2초, 3초…. 태양! 태양이다! 느껴본다. …뜨겁다. …탄다!…… 눈을 뜬다.”
 
대강 이런 식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성취는 괄목할 만 했다.
눈을 떴을 때는 대체로 들뜬 상태가 아니면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공통점은 한결같이 마음이 가벼워졌고 바라보는 사물들이 움직인다고 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느낌을 말한다. 몇 분 전만 해도 무심히 무감각하게 보아 넘겼던 커피잔, 스푼, 화분, 의자 등이 새로운 정서로서 움직인다.
그 성취 정도는 사람들마다 각기 달랐다.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강렬하고 빠른 반면에, 서구적인 종교와 철학, 지식의 깊이가 강한 사람은 그 성취가 느렸다.
그의 시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는 그 즈음 겪은 갈등과 실험을 꾸밈없이 쓰고 있는데, 드디어 관념이 깨어지는 그의 꿈꾸기(Image-Dream)는 ‘황홀한’ 첫 시적 경험을 한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
 
 ─ 타버린다 ─
는 감각은 없어지고
경비행기로 출발한 우주여행은
그저 행위로만 남았다
 
기착지는 태양
뜨거움보다는 
황홀한 색채에 질식당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전문
 
당시 그는 자동기술의 감성훈련에 적응이 늦었던 것 같다.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지적인 서구적인 합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곤혹스런 입장을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늘 도로(徒勞)의 작업이던 ‘꿈꾸기’가 첫 느낌을 얻게 된다. 자연스러운 “기착지는 태양”으로서, 첫 시적(詩的) 체험인 “황홀한 색채에 질식” 당하는 희열을 맛본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인 감각의 시 쓰기가 익숙해진다.「구의역에서」,「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등의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고, 또한「방」,「장마」에서는 빗줄기의 기하학적인 선(線)이 꿈처럼 펼쳐지며 새로운 시세계를 열고 있다.
 
 
1.「구의역에서」의 우주적인 시점
 
이러한 ‘탈관념의 꿈꾸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우주적 감각인 둥둥 떠가는 ‘느낌’이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구의역에서」는 시점의 ‘일상성 벗기’라는 ‘감성훈련’으로 빚은 큰 성과다. 그가 바라보는 사물(역, 길, 사람 등)이 둥둥 떠다니며 지구의 자전에 따라 시각이 바뀐다. 낮에 바로 서 있던 물건이 밤이면 거꾸로 처박히는 모습이 된다. 이 시는 바로 우주적인 시각에서 본 움직임인데, 탈관념의 꿈 중 하나이다. 한성례씨에게는 그녀 인생의 무대, 그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바로 서기도 하고 거꾸로 서기도 한다.
 
둥둥 떠가는 구의역
내 앞에 누워 있는 길.
뱉어낸 사람들
물살로 흘러 흘러서
무시로 흩어져 간다.
 
질주하던 길이
문득 산 밑에 가서 머문다.
시선 끝으로 길 한 줄기 붙잡으면
녹음이 앞서 무질러 오고
밀려드는 차 물결
 
쏟아질 듯 곤두박힐 듯
가로수 함께 일렁이다가
몇 개로 틀어지고 조각난 풍경
판토마임의 내가
거꾸로 서서 자막 속을 걸어간다.
─「구의역에서」중에서 
 
그는 우주적인 감각이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무한하게 시의 세계가 확장된다. ‘가로수와 함께 일렁이기도’ 하는 판토마임 속의 자신을 확인하면서 눈을 뜬 현실로 되돌아 와서 다음과 같이 ‘구의역’을 직시한다.
 
 
잠시 눈 뜬 플랫폼,
흘러 흘러서    
투사되듯 입력(入力)되는 곳
구의역. 
─「구의역에서」 중에서
 
 
2.「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의 전전반측
 
전전반측(輾轉反側)하는 시인의 정(情)은 무엇일가? 그는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러면서 갈증 같은 향수를 느끼고, 그때 “기지개 켜는” 의식이 꿈꾸기를 한다.
 
 
산과 들, 강물
걸어 넘는다.
 
그 끝은
평행선 한 가닥 분실된
몇 낱 낯선 어둠에 섞여
보이지 않고
─「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중에서
 
몽롱한 의식 상태의 그의 ‘꿈꾸기’는 비몽사몽간 눈앞에 고향산천을 그려보지만 원근 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돼가서 끝이 보이지 않고, 다만, “멍든 석양의 조각들이 / 도시 꼭대기에 차양처럼” 매달린 메커니즘의 현대문명 속의 삭막함만이 남는다. 현대인의 짙은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다. 
 
 
3.「장마」에서의 기하학적인 선
 
1980년대의 답답한 현실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실을 탈출하려는 꿈꾸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기하학적인 선으로 나타나는 빗줄기는 대단히 시원하고 자유분방하다.
 
 
빗줄기 속에서 뻗어 내린
흰 꼬리 화살
화살은 내게 일제히
달려든다. 
몸짓으로 털고
몸짓으로 도망하고
또는 몸짓 거부로 넘어지는 행위
 
<중략>
시대의 재채기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
─「장마」중에서 
 
그의 시는「장마」에서 안정(安定)되고 한 단계 더 세련되었다. 빗줄기로 시작한 ‘꿈꾸기’가 “시대의 재채기 /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로서, 현실과 이어져 있다.
 
 
세 가름, 탈관념의 자동기술된 시
 
1. 수학적 시론의 전개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데 있어 새로운 질서의 공감각과 방향이 있어야만 망상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그 질서는 ‘자연’에서, 그 방법은 ‘직관’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실험에 의한 체험적 소신이었다.
고정관념의 ‘깨뜨림’은 습작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서 상당기간 대화법으로 실험을 도왔다. 그때 집약된 내용이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이었다. ‘쓰레기통 문답’은 이러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신인들에게 보인다.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다. “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때 필자는 쓰레기통에 꽃을 던진다. 그리고 “쓰레기입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그 얘기를 듣고 와서 “쓰레기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이게 왜 쓰레기통입니까? 꽃이죠!”라고 무안을 주었다.’
 
이 쓰레기통 문답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첫째,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게 하고 둘째, ‘꽃’이라는 이름이 쓰레기통(박스) 속에 들어가면 순간 ‘쓰레기’가 됨으로써 허무하게 관념(의미)이 바뀌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청각이나 시각 등 오감으로 느낀 사물에 대한 정서와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각기 다른 언어로 표출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가 각기 다른 ‘의식의 함수 f(x)다’ 라는 가설로 유도시킨다.
당시 한성례씨는 이러한 수학적 시론의 전개를 신선한 충격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였다. 필자는 보다 체계적으로 시론을 정립해 가며, 그 가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설명했다.
 
“시인의 삶이 f(x)면 시는 그 도함수(기울기)이다. x는 ‘만남(사물)’의 변수, y는 의식 공간이다.”
 
         
2. 의식의 단면
 
어느 날 좌표평면 상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순간변화(의식의 단면)를 발견했다. 수학적 시론의 가설을 구체화시켜 x축과 y축으로 하는 평면좌표를 그렸는데, x축은 시간의 만남(시간적인 흐름 속에서의 만남)이고, y축은 그때그때의 ‘의식 공간’으로 구성했다.
다음은 한 ‘시인(한성례씨)’과 남산’의 ‘만남을 함수관계’로서 그 의식(체험)을 나타내 보았다.
 
[예] 만남의 요소-남산
 
① 20대의 한 시인이 1974년 1월 처음 남산을 보았다. 이후 계속 보게 된다. 그 높이를 300m쯤으로 직감한다. 이를 y축 3에 표시한다.
②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동진강변의 평야지대에 살았다. 그가 산을 보아온 일상적인 의식체험은 100m 쯤의 야산들이었다. 이를 y축 1에 표시한다
 
 



 
 
 
 
 
 
 
 
 
 
 
 
 
 
 
 
 
 
 
 
 
 
 
 
 
 
 
 
 
 
 
 
탈-관념의 꿈꾸기는 우주적(하이퍼) 공간이다. 그의 시「구의역에서」에서 보이는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고,「태양을 향해 날아갔다」에서도 현실감각이 사라진 공간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시적 꿈꾸기는 사이버세계의 ‘경로’로 이해할 수 있다. 별과별을 잇는 상상의 ‘링크’가 있고, 그 링크를 계속 따라가는 궤적과 같은 그런 경로다. 은하계의 ‘북두칠성’을 보자. 하나하나는 멀리 떨어진 별이다. 우리의 상상은 일곱 개의 별을 이어 놓고 이 별자리에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의 시를 이처럼 우주 공간의 ‘경로’로 이해해도 되고, 봄날에 꽃과 꽃을 옮겨다나며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나비의 ‘경로’에 비유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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