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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신문 연재- 이인선의 힐링 문학산책 2호/ 이인선 평론가
2019년 12월 19일 16시 17분  조회:1213  추천:0  작성자: 강려
앵무새 죽이기
채수영
 
흰색을 색이라 말하는 것은 슬프다.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푸르게 젖을 수 있는 여백조차
지워야 하는 물감, 구부러진 세상에
곧은 길을 가는 사람의 그림자는 길고
고독의 함량이 더해진 슬픔 앞에 당당이라는
리듬이 얼마나 아픈가는 누구나 외면하는 색
단맛을 익히는 고통보다 성찬을
생각하는 화려함의 행방은
열정없어 무미한데도 거긴 붐비는 길, 땀을
심어 길을 개척하는 용기와 아름다운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하얗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는, 흰색의 상징성
이인선

무지개는 빛의 스펙트럼이 빚어내는 신기루 같은, 곧 사라지는 꿈의 판타지다. 큰길 건너, 아파트 건너, 먼 산 위에 걸려있는 무지개 구름마을을 찾아 떠나지만 무지개는 만질 수가 없다. 꿈의 완성체로 무지개가 상징성을 갖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물방울이 모여서 태양광선이 반사 굴절되어 나타나는 반원들의 집합이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는 7가지 색깔이 조금씩 겹쳐진다. 그러나 각각의 색깔은 스펙트럼 효과를 나타내며 빛낸다.
채수영의 시 「앵무새 죽이기」를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는, 흰색의 상징성’으로 해석한 이유는 흰색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흰색이 흰색이기를 고집하면 흰색은 다른 색으로부터 고립된다. 그러나 독창적인 예술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주장과 독립성을 필요충분조건으로 한다.
『좀머씨 이야기』를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ϋskind)는 세상과 단절하고, 수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자전적 소설을 집필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문명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연의 원시적 삶을 살면서, 그의 예술세계는 독특함과 창조성을 획득하였다.
위의 시는 11-12행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하얗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라는 구절이 주제다. 하얗게 살아남은 예술을 위하여, 시인은 1-10행의 아픈 통점을 거쳐야 했다.
위의 시 1행 ‘흰색을 색이라 말하는 것은 슬프다.’ 라는 명제를 분석하는 일은 채수영 시의 흰색의 상징성을 분석하는 기본 틀이다. 흰색을 흰색이라고 말하기 겁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반반 양념통닭처럼, 빨강색과 파랑색이 분명하게 반반으로 나누어진 태극기처럼 우리는 좌파, 우파라는 2분법적 사고로 분류당하고 있다. 반반의 경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집단적 불신은 개인의 존재적 불안감을 야기시키고 있다.
흰색의 삶을 사는 사람은 무향무취의 삶을 산다.
흰색을 주장하며 하얗게 살았기 때문에, 앵무새는 항상 먼저 죽어야 했다.
흰색의 이미지를 분석하여 보자. 흰색은 ‘순결하고 깨끗함’을 상징한다. ‘연약하고 고상하며 슬픈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백의민족이라 표현되는 집단 이미지도, 역설적으로 저항을 인내하는 순종의 착한 이미지를 대변한다.
백색 이미지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목련의 백색 이미지는 화사하고 찬란하며 고귀하다. 예부터 조상들은 흰색을 청백리의 상징으로 존귀하게 여겼다. 그러면 위의 시 1-10행에서 흰색을 지키기 위해서, 시적화자인 시인이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 분석하여 보자.
흰색을 유지하는 것은 안과 밖, 경계를 긴장하며 지키는 수고가 따른다. 흰 색 옷을 입고 외출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된다. 흰색의 청결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사에 조심한다. 혹 음식을 먹다가 김칫국물이라도 튀면, 흰색 옷에 붉은 얼룩이 진다. 얼룩은 순수하지 않다.
흰색은 얼룩을 거부한다. 순백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시인은 백색의 본질을 지키는 청렴결백 이미지에 자신을 가둔다. 흰색은 흰색을 고집한다. 흰색은 흰색에게는 절대 선이다.
흰 옷에 튄 김치국물 같은 얼룩은 경계선 안의 영역에 속한 자아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경계선 밖에서 파생된 타자의 침략이 원인이 되기도 하다.
본질과 원인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흰색인 자아는 슬프다. ‘구부러진 세상에서 곧은 길을 가’려니 시적화자는 고독하다. 흰색을 고집하며 사는 일은 외로운 ‘개척자’의 길이다. ‘당당이라는/ 리듬이 얼마나 아픈가는 누구나 외면하는 색’(5-6행)으로 살아 본 사람만이 안다. 당당하게 의협심이라고 우기곤 하지만, 가끔 도발하는 눈빛을 만나면 확신이 의심이 되며 풀이 죽기도 한다.
‘단맛을 익히는 고통보다 성찬을/ 생각하는 화려함의 행방은/ 열정없어 무미한데도 거긴 붐비는 길,’(7-9행)이다. 늘 구부러진 세상(3행)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끌벅적 재미있게 산다. 이상주의를 버리고 현재에 자족한다.
‘땀을/ 심어 길을 개척하는 용기’(9-10행)로 흰색은 산다.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푸르게 젖을 수 있는 여백조차/ 지워야 하는 물감’(1-3행)이다.
홀로 고독한 도전과 실험을 하는 흰색은 빛의 삼원색. 밝고 큰 파장을 지향한다. 역경과 억압에 구속당하기도 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으로 산다. 궁극에는 흰색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펼쳐는 황홀한 절정이 기다리고 있다. 무지개는 손에 확실히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하는 대상이다. 그 무지개 마을에 당도하기 위하여 몇 개의 무지개 씨앗을 시인들은 기르고 있다. 그것은 땀과 용기있는 개척자 정신이다.
시를 쓰는 일은 구도의 길이다. 참 시인이 되는 길은, 매일 매일 걷는 ‘좀머 씨’처럼 흐트러짐 없이 쉬지 않고 정진하는 일이다.
놀고 마시고 춤추는 자, 세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자 누구인가?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기 위해, 시인은 에너지를 과잉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의 창조자로서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에 힘써야 진정성 있는 개척자다. 흰색이 무지갯빛 스펙트럼 효과를 발현하기까지, 어쩌면 시인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저당잡힐 지도 모른다.
위의 채수영의 시를 읽으면 시의 도를 깨치기 위하여, 세상을 등진 은둔자의 고독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그것은 형벌 같은 아름다운 고행이다. 앵무새가 붉은색, 초록색, 노랑색 털을 부리로 모두 뽑아버리고, 흰색 털만 키우는 잔혹한 아픔이 묻어난다. 흰색은 무념무상의 색이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영원한 이상주의다.
채수영은 상흔을 들추며 고백록처럼 시를 적어나간다.
탈색된 잠재력의 무의식이 표출된, 표백된 그림 같은 시다. 순수라는 그물로 짠 천사의 흰 날개도 휴식을 필요로 한다.
하늘에서 추락하거나, 나무 위에, 달의 옆구리에 비상착륙하는 천사의 흰 날개를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주름살 없는 순백의 맑고 투명한 아기피부,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듯 푸른 눈은 예지를 관통한다. 원망이나 불평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채수영의 시는 비상하는 흰색 날개다.
인간과 신의 경계에서, 흰색 스펙트럼 무지개를 관리하는 시인의 시창작 과업은 고단한 희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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