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 증기 탱크················· 3
시튼 남매와 크레인················ 7
금속 X를 입수하다················ 9
눈치챈 듀켄··················· 15
이상한 폭발··················· 18
대물 컴퍼스의 공격··············· 23
납치된 도로시·················· 29
납치용 우주선의 운명·············· 32
스카이라크 호의 표류·············· 38
괴수의 행성··················· 43
우주전함···················· 47
황제의 계략··················· 52
적 속을 돌파하다················ 58
다나크 왕자의 걱정··············· 61
대공격····················· 66
그리운 지구로·················· 73
작품 해설 ··················· 79
날아간 증기 탱크
"앗,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까지 틀림없이 책상 안에 있던 네모난 증기 탱크가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젊은 과학자인 시튼은 깜짝 놀라 열린 창문 쪽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달려가 봤자 별수 없다. 그 증기탱크는 열린 창문으로 튀어 나가, 부웅 하고 벌써 하늘 저편으로 조그만 검은 점이 되어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똑바른 일직선이었다. 이 상태로는 떨어질 기미도 없다. 어, 어 하고 있는 동안에 그만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튼은 엉덩방아를 찧듯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곰곰 생각했다.
'가만 있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그래, 금속X의 액을 전기로 분해하려고 그 액이 든 병을 들고 있었어. 그러다가 액이 조금 증기 탱크 위에 쏟아졌던 거야.'
그 순간, 구리로 된 증기 탱크가 마치 우주 로켓으로 둔갑하기라도 한 것 같이 무서운 기세로 쌩하니 날아갔던 것이다.
"그럼, 금속 X의 액과 구리로 된 증기 탱크와 그리고 전기...... 음, 전기도 역시 작용하고 있겠지.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이상하게 작용해서 그 결과 증기 탱크가 날아간 모양이다. 하지만 증기 탱크는 혼자 들지 못할 만큼 무겁다. 그것이 그런 속도로 날아가는 걸 보면, 이건 원자 에너지 같은 굉장한 힘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시튼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하여간 실험을 해 보자. 또 한 번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지 해 보는 게 제일 빠르겠지."
시튼은 우선 1개의 동선을 금속 X의 액에 담갔다. 그리고 꺼내 보니, 동선이 하얗게 반짝거리는 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음에 몸을 뒤로 젖히고 조심조심 전선을 그 동선에 갖다 댔다. 그러자, 자잘한 불꽃이 튄 것만을 보았는데,
"앗, 사라졌다."
동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벽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짧게 난 것 같아서 벽 쪽으로 가 보았다. 그러자 한 곳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들여다보니 밖이 내다보인다. 그 벽은 두꺼운 벽돌로 되어있었다. 지금까지는 벽에 이런 구멍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음, 아까 그 동선이 벽을 뚫고 날아간 거야."
시튼은 눈이 휘둥그렇게 된 채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흘러갔다. 1시간...... 2시간...... 3시간........
창 밖이 어두워졌다.
"앗, 벌써 10시구나. 이거 야단났군. 오늘 저녁에는 일찍 돌아가서 누이동생과 저녁을 먹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는데."
시튼은 허둥지둥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자기 연구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니, 옆방의 같은 연구원인 듀켄의 방에서는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듀켄도 참 열심인 친구야.'
시튼은 금속 연구소를 나오자, 애용하는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코네티컷 거리를 누이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를 향해 달렸다. 그 동안에도 아까의 그 이상한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아주 그럴 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응, 그렇게만 된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되겠는걸."
시튼은 오토바이의 부르릉 소리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를 치면서 흥분하여 마구 속력을 냈다.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트 가까이 와서야 겨우 자기가 곡예사처럼 위험하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보 멍텅구리 중에서도 큰 멍텅구리야. 이제부터는 생각을 할 때에는 오토바이가 아닌 당나귀를 타야겠는걸. 내일부터는 금속 연구소에 내가 탈 당나귀를 한 마리 매어 놓아야겠어."
그런데, 시튼은 그 당나귀에 금속 X의 액을 묻혀서 전기를 척 갖다 대는 일을 이번에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서 오토바이를 내려 아파트 입구로 걸어가 계단에 발을 내디딜 무렵, 상상 속에서 그 당나귀는 씩씩한 천마로 변하여 별이 빛나는 우주를 날고 있었다. 그 말의 안장에 시튼이 올라타고 있었다. 그러나 깜짝 놀라 시튼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공상에 열중해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계단을 헛디딜 뻔했던 것이다. 6층의 자기 집에 들어가자 세수를 하면서, 테이블 앞에 앉아 뾰로통하게 화가 나 있는 누이동생 도로시에게,
"도로시, 미안 미안. 배가 고프구나.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만 정신없이 열중해 버렸던 거야. 네가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화내고 있는 게 아니어요.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어요.“
도로시는 기분을 돌렸다.
"곧 식사하도록 해요.“
"응, 그 전에 내 얼굴을 봐 주지 않겠니? 내 신경이 잘못되어 버린 게 아닌지, 눈 속을 좀 봐 다오."
도로시는 시튼의 눈을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오라버니 시튼은 제정신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무슨 큰 실수라도 저질렀어요? 코발트 폭탄으로 과학국을 꽝 해 버린 건 아니겠지요?“
"아니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사건인지도 몰라. 오늘저녁때, 내가 금속 X의 액을........."
"잠깐만요, 오빠. '금속 엑스'가 뭐여요?“
"아, 그렇구나. 금속 X란 백금이라는 반지 같은 걸 만드는 퍽 값비싼 금속인데, 광물에서 그 백금을 취하고 난 찌꺼기가 10년 내지 15년치나 쌓여 있었던 거야. 물론 내가 금속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부터의 것이지. 나는 그 찌꺼기에 가공을 해서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다시 백금을 취했던 거야.“
"찌꺼기에 백금이 약간 남아 있었던 셈이군요."
"그래. 그리고 백금 외의 금속도 조금 취할 수 있었어.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현대의 학문에서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금속이 뒤에 남았지 뭐냐- 나는 그것이 어쩌면 초(超)우란원소의 금속이 아닌가 생각해. 그것이 바로 금속 X야.“
시튼은 그 액체를 실험하고 있다가 그만 증기 탱크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건 아직도 어딘가를 날고 있을지도 몰라. 아냐, 틀림없이 그럴 거야. 소리의 6배, 7배, 8배나 빠른 속도로 말이야. 나는 내일 또 한 번 실험해 볼 생각이야. 어쩌면 내일 저녁도 늦어질지 모르겠어. 쓸쓸하겠지만 참아 줘."
"좋아요. 오빠가 즐거워 보이니까요."
도로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빠와 누이동생이 의좋게 지내고 있다는 깊은 행복의 한숨이었다.
시튼 남매와 크레인
시튼은 소년 시절을 북 아이다호의 산 속에서 자랐다. 그 곳은 눈 쌓인 높은 산과 원시림과 드넓은 목초지의 세계였다. 어머니는 도로시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숲가의 통나무집에서 시튼 소년과 갓난아기인 도로시를 누구의 도움도 빌지 않고 깊은 애정을 기울여 키웠다. 시튼 소년은 험한 산에 오르기도 하고, 골짜기의 개울에서 낚시질을 하며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자라면서 자연이 몹시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모르는 일이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으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지만, 네 엄마는 공부하기를 매우 좋아해서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은 고스란히 그대로 상자에 넣어서 소중하게 보관해 놓았으니 까, 네가 읽을 만한 것부터 읽어보도록 해라.“
시튼은 사막에서 물을 구하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열중해서 어머니의 책을 탐독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벽촌구석이기 때문에, 자기가 공부를 해서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하려고 유익한 책을 모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불행이 닥쳐왔다. 산불이 일어나 통나무집이 홀랑 타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통나무집 속에서 불에 타서 숨졌다. 고아가 된 시튼은 혼자 읍내로 나갔다. 어린 도로시는 아버지의 친구인 나무꾼이 맡아 주었다. 시튼은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공부도 뛰어나게 잘 했지만, 운동도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시튼은 요술의 명수였다. 시튼의 손가락은 길고 튼튼하며,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빨리 움직였다. 시튼은 친구들에게도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고 있었지만, 학예회 같은 때 발포하는 시튼의 요술 솜씨는 전문가도 못 따라갈 정도로 능란해서 항상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대학의 물리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시튼은 대학의 연구실에 초빙되어, 우란 등 극히 드문 금속을 연구하여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워싱턴에 있는 금속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젠 일류 학자였다. 시튼은 대학을 졸업하자 곧 누이동생 도로시를 자기 아파트로 데려와서 학교에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자 시튼의 친구인 변호사 사무소에 다니게 했다. 두 사람은 의좋은 남매였다. 시튼은 학자가 된 뒤에도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았다. 튼튼한 몸매에 키도 크고, 훌륭한 스포츠맨이었다. 틈만 있으면 테니스, 수영, 오토바이 타기 등을 하여 항상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테니스에서는 일류 선수였다. 아무튼 전 미국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권 결승전에서 유명한 크레인과 겨루었을 정도이다. 크레인도 좋은 청년이었다. 크레인은 뛰어난 스포츠맨일 뿐만 아니라, 탐험가, 고고학자, 그리고 억만 장자로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다가 로켓 기술자로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크레인은 시튼과 테니스 선수권 전에서 겨우 이겨 챔피언의 지위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시튼이 아주 좋아져서 둘이 테니스의 복식 팀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시튼은 곧 승낙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크레인은 궁전 같은 저택에서 살고 있고, 시튼은 지저분한 아파트의 6층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우정에는 아무런 변함도 없었다.
금속 X를 입수하다
예의 이상한 사건이 있던 다음 날, 시튼은 연구소에 나가자 곧 동료 연구원들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어제 나는 새로운 발견을 했어. 그걸 자네들한테도 보여 줄까 해."
그리고 동선 토막을 금속 X의 액에 담갔다.
"어.“
동선이 하얗게 반짝거리는 색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틀림없이 금방 색이 변했었는데. 그래도 시험삼아 전기를 갖다 대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 봐, 시튼. 어떻게 된 거야? 요즘 좀 지나치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 아냐? 그런 때는 흔히 꿈을 꾸는 법이지.“
연구원들은 실망을 하기도 하고 히죽히죽 웃기도 하면서 방을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시튼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어제의 실험과 어디가 달라진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시튼은 방안을 돌아다니며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렇다. 방법은 어제하고 변함이 없었어. 단지, 어제는 옆방에서 강력한 전자파가 나오고 있었거나 해서 그것이 사건이 일어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틀림없이 그렇다. 어제는 옆에 있는 듀켄의 방에서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 시튼이 거들어서 만들어 낸 금속의 구조에 안마 기계처럼 진동을 주는 기계였다. 처음 만든 기계이므로 정해진 이름은 붙어 있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익살스럽게 금속 안마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시튼의 얼굴은 다시 생기 있게 빛나기 시작했다.
'좋아, 듀켄이 그 기계의 스위치를 켤 때까지 기다리고 있자.'
한참 지나자 옆방의 금속 안마기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금속 X의 액에 담가 두었던 동선이 금새 흰색으로 변해 갔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다.“
시튼은 축전지에 연결해 둔 선을 그 동선 끝에 갖다 댔다. 그러자, 금새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남기고 동선은 사라져 버렸다.
"이걸 봐. 좋아, 듀켄은 아까 흐흥 하고 코웃음을 쳤으니까 끌고 와서 이걸 보여 줘야지. 아냐, 그게 아냐."
시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친구인 크레인만은 별도였다. 시튼은 점심 시간에 오토바이를 크레인의 집으로 몰았다. 역시 당나귀보다는 오토바이 쪽이 실용적인 것 같다. 으리으리한 크레인의 저택 현관에 오토바이를 갖다대자, 문을 연 것은 크레인의 비서로서 귀여움을 받고 있는 일본 소년 시로오였다.
"잘 있었니, 시로오. 크레인은 있니?“
"예. 하지만 지금 목욕 중이십니다.“
"괜찮아. 빨리 나오라고 그래. 급한 일이야."
시로오는 놀라서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크레인이 들어왔다.
"여, 미안하네, 미안해. 급한 일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놀라지 말게. 구리를 고스란히 백 퍼센트 에너지로 바꿀 수가 있어. 핵분열이니 핵융합이니 하는 그런 것이 아니야. 타 버린 찌꺼기도 남지 않거니와 방사능도 없어. 물질을 완전히 에너지로 바꾸어서 그 에너지를 조금씩 이용하는 장치를 만든다면 굉장할 거야."
시튼은 어제부터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연구소 친구들은 내가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 정도로 알고 있어. 하지만, 모두들 보는 앞에서 실험에 실패한 건 지금으로 봐선 오히려 잘 된 일이야. 하지만 자네한테는 꼭 보여 줘야겠어. 자네 눈이 아마 1미터는 튀어나올 거야. 자, 내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게. 연구소로 가잔 말야. 만일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면, 그 대신 오토바이를 타이어 째 먹어 보이겠어."
두 사람은 연구소에 도착했다. 시튼은 옆방인 듀켄의 방에서 금속 안마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예의 실험을 시작했다.
"잘 보게. 이렇게 색이 변한 동선관을 창문 쪽으로 돌려놓고........"
"아냐, 시튼, 벽 쪽으로 돌려 줘. 나는 벽에 구멍이 뚫리는 걸보고 싶단 말이야."
"그러지.“
크레인의 주문대로, 몇 초 뒤에 동선은 사라지고 벽에 구멍이 뚫렸다. 크레인은 신음 소리를 냈다.
"틀림없군. 이 구멍도 진짜다. 벽의 벽돌 이상으로 진짜다. 자넨 요술의 명수인데, 이건 요술이 아니겠지. 이 힘을 조금씩 사용해서 우주선의 추진력으로 해도 좋겠고, 공장의 동력으로 해도 좋겠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어도 좋겠어. 정말 이건 대단한 발견이야.“
"그래. 하지만 내게는 이 일에 필요한 장치나 공장을 세울 힘이 없어 그래서, 자네가 꼭 좀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네.“
"좋아, 시튼. 자네가 나를 한패에 끼워 준 데 대해 감사한다 둘이서 <시튼 ․크레인 연구소>를 만들자. 그런데, 중요한 건 이 금속 X의 액이다. 이건 대체 정식으로는 누구의 것이지?“
"응, 이것은 보통 백금을 취하고 난 뒤에는 하수도에 내버리는 거야. 다만 내가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남겨 두었을 뿐인 거야."
"하지만 시튼, 그것만으로는 뚜렷하게 자네 것이라고 말할 수 없쟎나."
"그렇지. 하지만 좋은 수가 있어. 연구소에서는 매주 금요일 연구소에서 필요 없어지게 된 걸 불하하거든. 그 때에 금속 X의 병을 하나 팔러 내보내도록 하겠어, 한 병밖에 없지만 말이야. 그러면, 아무도 이런 하수돗물보다도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걸 살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걸 우리가 싸게 사면 돼."
"좋아, 그렇게 하세. 그런데 시튼, 자네가 이 연구소를 그만두겠다면 그만두게 해 줄까?“
그러자 시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좀 돌아 버린 걸로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니까 이삼 일 진짜 미친 사람 흉내나 내고 있어야지 뭐. 그런 다음, 그만두겠다고 하면 잘 됐다 하고 그만두게 해줄 것 아니겠어?"
"그럼 모든 것이 결정되었어. 즉시 행동 개시다.“
크레인과 시튼은 싱긋 웃으며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그 주 금요일, 한 병의 금속 X의 액이 경매에 붙여졌다. 경매 담당이 된 연구원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병을 받침대 위에 놓고는,
"폐액이 한 병 있습니다. 누구든지 흥정을 해 주시지요. 살 사람이 없다면 이런 건 내버려........."
크레인이 느릿하게 별로 마음에 없는 목소리로 흥정을 붙였다.
" 5센트.“
경매 담당자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예, 5센트 불렀습니다. 5센트........ 그밖에는 5센트 가지고는 사탕 한 개도 못 사니까, 적어도 연구원들의 간식대라도 될 만큼 기부를 해 주시지요."
"10센트.“
시튼이 소리 쳤다.
"예, 10센트. 유리병 값보다도 싼값이지만 드리도록 하지요. 딴 사람도 아닌 시튼 박사니까요. 시튼 씨도 참 별난 분이십니다.“
다른 연구원들도 킬킬 웃었다. 천재 시튼도 드디어 정신 병원 행이구나, 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날 시튼은 금속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눈치챈 듀켄
크레인이 50만 달러를 마련하여 드디어 <시튼 ․크레인연구소>의 공장 건설에 착수했을 무렵........ 시튼이 근무하고 있을 때 시튼의 옆방 연구실에 있던 듀켄만은, 시튼의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튼은 머리가 돌지 않았어. 제정신을 가진 괴짜일 뿐이야.“
듀켄은 다른 연구원이 시튼에 대한 말을 할 때 내뱉듯이 말하고는 날카로운 눈을 번쩍거렸다.
듀켄도 시튼과 마찬가지로 박사로서, 나이는 서른을 갓 넘었으며 물리 화학 분야에서는 가장 뛰어난 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몸도 시튼과 비슷해서 키가 크고 튼튼하다. 머리는 검고 약간 곱슬곱슬했다. 짙은 눈썹이 미간까지 나서 이어져 있고, 코는 매부리코다. 수염이 많아서 항상 말끔히 면도질을 하고 있는데, 그 자국이 파랗게 보이기 때문에 얼굴 전체가 파랗다. 시튼이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어, 듀켄은 세계 철강 회사의 워싱턴 지사장 실에서 연방 지껄여 대고 있었다. 지사장인 브루킹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유명한 학자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자네는 지금도 우리 회사하고는 깊은 관련이 있어. 그러나........."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건가, 브루킹즈. 자넨 이익을 위해서라면 백 명이건 천 명이건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한 사람 아닌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지 않았나. 그런데 단 한 사람을 죽이고, 단 한 병의 액체를 훔쳐낼 뿐인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건가. 내가 짐작한 바로는, 시튼은 원자력을 쉽게 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 한 거야. 그 비밀은 금속 X의 액체에 들어 있단 말야."
"그렇다면 듀켄, 그 금속 X의 액이 있으면 세계 제일 가는 원자력 발전소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구태여 사람을 죽여 가며 도둑질까지 하지 않더라도, 우리도 백금을 취한 찌꺼기의 내버리는 액에 서 금속 X의 액을 만들면 되쟎는가."
"안 돼. 시튼이 가지고 있는 액은 여러 가지 가공을 해서 다른 액과는 전혀 틀리는 것이 되어 있을 거란 말이야. 시튼을 죽이고 액을 빼앗아야만 돼. 그밖에 다른 방법은 없어. 자네 회사의 폭력단원을 두 명만 빌려주게. 그러면 내가 오늘 밤 깨끗이 처치하고 오겠어."
브루킹즈는 퉁퉁하게 살찐 얼굴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가,
"안 되겠는데, 듀켄 박사. 그런 위험한 일엔 가담할 수 없어."
하고 말했다. 듀켄의 이마에 신경질적인 시퍼런 힘줄이 불룩 솟아올랐다.
"나는 진심이란 말일세. 나는 지금까지 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누구에게도 말못할 나쁜 짓을 수차 거듭해왔어. 얼마 안 되는 보수로 말일세. 그러나 이번만은 원자력에 대한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았어. 꼭 내 말대로 해줘야겠네. 안 그러면, 나도 그렇지만 자네나 이 회사의 간부들 모두가 전기 의자의 사형감이다. 내 정체가 드러날 것을 각오하고 회사의 정체를 폭로하고 말겠어."
브루킹즈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그 금속 X의 액인지 하는 것은 시튼의 고물 아파트보다는 크레인의 집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군."
하고 중얼거리더니, 손목 시계 같은 작은 기계를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입에 갖다 댔다.
"퍼킨스, 일이 생겼어. 억만 장자인 크레인의 집에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이 있을 거다. 그 액체를 조금 훔쳐내라. 액체가 줄어든 몫은 물이라도 부어서 채워 놓도록 해. 알았나 ? 빨리 해라."
지령을 내린 뒤에 듀켄에게 말했다.
"사람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우선 그 액의 힘을 시험해 보자고. 자네가 말한 대로의 힘이 있다면 그 뒤에 시튼을 죽여도 늦지 않네."
듀켄은 빙그레 웃으며,
"아주 신중하군. 그래도 좋겠지. 그러나 실험할 땐 조심하도록 하게. 아주 소량만 해야 하네."
이 무서운 학자는 그렇게 말하고 발소리도 요란하게 방을 나갔다.
이상한 폭발
시튼과 크레인은 공장 건설지에서 밤낮 없이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도로시는 퇴근길에 현장에 들렀다가, 야구장도 몽땅 들어가 버릴 것 같은 공장의 커다란 철근 골조를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크레인 씨, 이렇게 큰 공장에서 무얼 만들 거여요?“
"시튼의 위대한 발견을 근거로 해서 멋있는 것을 만들 겁니다.“
"그럼, 증기 탱크가 날아갔다는 그것 말이군요. 하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 같아요."
도로시는 킥킥 웃었다. 크레인은 진지한 얼굴로,
"동화가 다 뭡니까. 나는 그 증기 탱크가 지금쯤 어디를 날고 있는지, 좋은 탈것만 있다면 쫓아가 보고싶을 정도랍니다. 아니, 우리는 그걸 쫓아갈 수 있을 만한 우주선을 만들 겁니다. 시튼에게는 재능이 있고 내게는 다행히 자본이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 지구를 떠나 먼 여행을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절대로 비밀히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 도로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 눈이 빛나고, 발걸음도 가볍고, 시튼이 아파트로 돌아오지 않아 혼자 있어도 명랑하게 노래 같은 것을 부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4,5일 지난 어느 날 밤, 악질 학자인 듀켄은 파크로드의 자기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듀켄은 흑인 노부부를 하인으로 부리며 혼자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듀켄은 뉴스를 끝낸 텔레비전 스위치를 탁 끄며,
"바보같이...... 주의를 해 두었는데."
불쾌한 얼굴로 테이블을 쳤다. 그러자 곧 세계 철강 회사의 브루킹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듀켄인가? 날세. 지금 그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겠지. 실은......"
듀켄은 퉁명스럽게 가로막으며,
"변명하는 건가. 뉴스로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벙커힐 마을이 날아가 버렸다지 않아. 2백 명의 마을 사람이 모두 죽고 시체조차 없다는 얘기 아닌가. 땅에 지름 3킬로미터의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는데, 훔친 금속 X로 실험을 했겠지."
"그렇다네. 극히 소량만 써야 한다고 주의를 해 두었는데, 기사가 엉뚱한 실수를 해 버렸던 걸세. 뉴스에서는 '방사능이 없으니까 원자 폭탄이 아닌 것만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성능 폭약이 일시에 폭발한데 대해 과학자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실험한 기사도 풍지박산이 되어 저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 어쨌든 지금 곧 자네 집에 가겠네."
전화가 끊겼다. 30분도 채 안 되어서 자동차로 브루킹즈가 찾아왔다. 듀켄이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맞아들이자 브루킹즈는 달래듯이 말했다.
"자네 말이 옳았어. 우리 회사는 자네한테 막대한 돈을 낼 걸세. 그러니까 자네도 기분을 돌리고, 회사를 위해서......"
그러나 듀켄은 여전히 노려보며 브루킹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브루킹즈, 금속 X의 액은 어느 정도나 훔쳐왔나?"
"여기 가지고 왔어."
브루킹즈는 작은 병을 내주며 말했다.
"퍼킨스가 크레인의 집에 있던 것의 반을 훔쳐 온 거야. 나머지는 물을 섞어 감쪽같이 해 놓고 왔대."
"뭐, 이게 반이라고? 시튼은 반 리터 정도를 가져갔단 말일세. 이거로는 20분의 1도 안돼. 실험에 쓰려고 나누어 놓은 병의 것을 훔쳐 온 거겠지. 그러니까 맡겨둘 수 없단 말일세. 지금 시튼을 죽여버려."
"내 생각은 달라. 시튼과 크레인을 좀더 이용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이 무얼 하려하고 있는지 그 계획도 우리가 빼앗자는 말일세."
브루킹즈는 즉시 전화로 퍼킨스를 불러, 더 큰 병을 숨겨 놓았을 테니 그 병과 그밖에 노트나 설계도가 있으면 그것도 전부 훔쳐내도록 명령했다. 바로 그 무렵, 시튼과 크레인은 반쯤 지어진 공장의 대낮같이 밝은 조명 아래서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곁에서 도로시도 미소를 지으면서 듣고 있었다. 시튼이 손바닥에 동글납작한 기계를 얹어 놓고,
"이건 우주선에 달 계기의 하나야. 대물 컴퍼스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것은 말이지, 지구를 출발해서 어디를 가든 항상 지구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기계야. 그리고 다음에는 우주 오토바이야. 우주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 성능을 여기서 보여 주겠어. 이래봬도 여차하면 지구의 중력을 뿌리칠 정도의 힘은 나오지."
시튼은 잠수용 옷에 산소 봄베 같은 것을 짊어지고, 허리에도 밴드로 이상한 장치를 비끄러맸다. 왼손에는 손전등 같은 것을 쥐더니, 크레인에게 부탁하여 공장 한구석에 있는 금속 안마기의 스위치를 넣게 했다. 그리고 손전등 같은 것을 움직였다. 그러자 금세 시튼의 몸은 50미터 정도나 총알처럼 공중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딱 멈추고 몇 초 동안 그대로 있다가 다음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이윽고 시튼은 도로시 곁에 보기 좋게 착륙하였다.
"재미있지? 누구라도 조금만 연습하면 날 수 있게 돼. 금속 X를 이용하면 이런 힘이 나오니까 말이야. 큰 발전소를 만들어서 아주 싼 전력을 사람들에게 이용하게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역시 우주선 쪽이 먼저야. 우주 개발을 해서 근사한 자원을 찾아내자."
도로시는 가슴 앞에 두 손을 깍지끼고 말했다.
"그 우주선에 어떤 이름을 붙일 거여요? 전 <스카이라크(우주의 종다리) 호>라는 이름이 좋아요. 크레인 씨는 어떠셔요?"
"응, 그것 참 좋은 이름이야. 어때, 시튼."
"그건 두 사람한테 맡기겠어. <각기병 걸린 참새>같은 이름만 붙이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니, 시로오가 달려오고 있잖나.“
시로오가 공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오는 도중에 신문을 샀더니 벙커힐이라는 고장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고 나 있지 않겠습니까. 과학자들도 원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크레인이 읽은 다음에 시튼이 읽었다. 시튼은 말했다.
"금속 X야. 틀림없어. 하지만, 그걸 어디서........."
"내가 맡아 가지고 있는 병을 한번 조사해 보자."
시튼과 크레인, 도로시와 시로오는 크레인의 자가용 헬리콥터로 크레인의 집으로 급히 갔다. 지하 금고의 큰 병에는 이상이 없었다. 조금씩 쓰기 위해 작은 병에 나누어 둔 것은 병마개와 양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보였으나, 시튼이 조사해 보니 농도가 반으로 희석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반을 훔쳐가고 물을 채워 둔 모양이다."
"자네가 금속 연구소에서 실험을 해 보이겠다고 했을 때 누가 있었나?"
"음, 스콧, 스미스, 펜필드, 듀켄, 로버츠 다섯 사람이었는데, 스콧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는 일체 흥미를 갖지 않는 사람이야. 스미스는 수학의 전문가니까, 이 사람도 의심 안 해도 될 것 같고. 펜필드는 자기 것도 남의 것으로 보일 만큼 마음이 약한 사람이야. 듀켄은 글세, 듀켄은...... 듀켄은......"
"좋아, 그럼 다섯 번째의 로버츠는 어떨까?"
"로버츠가 나쁜 짓을 하게 된다면, 워싱턴 시의 시계가 전부 멈춰 버릴 걸세."
크레인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프레스콧 부장 형사인가? 나 크레인일세. 잘 있었나? 가끔 좀 놀러 오게나. 그런데, 부탁이 있네. 금속연구소의 듀켄 박사에 대해 급히 조사 좀 해 주게. 그리고 민완 사복 형사를 두세 명 빌려주지 않겠나? 응, 그럼 부탁하네."
대물 컴퍼스의 공격
시튼과 크레인은 우주 여행용 X총도 만들었다. 금속X의 폭발력을 이용한 강력한 것이었다. 시험삼아 깊은 산골짜기에 가서 멀리 있는 큰 바위를 쏘아보았더니, 그 바위는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증발해 버렸다. 그 뒤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방사능은 조금도 없었다.
시튼과 크레인이 새로운 일을 열심히 계속하고 있는 동안, 크레인의 친구인 프레스콧 부장 형사와 그 부하 및 크레인의 비서인 시로오는 공장과 크레인의 집을 엄중히 감시하며 지키고 있었다. 시로오는 수상한 자가 다섯 명 온 것을 권총으로 세 명 쓰러뜨렸다. 그 자들은 세계 철강 회사의 브루킹즈가 보낸 퍼킨스의 부하였다. 퍼킨스는 실패만 자꾸 하기 때문에 브루킹즈에게 욕을 먹었고, 브루킹즈는 듀켄에게 비아냥거림을 당했다. 듀켄은 냉소를 머금고 브루킹즈에게 말했다.
"자네가 실패할 것은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하겠어. 난 프레스콧 부장 형사의 부하에게 줄곧 감시당하고 있지만, 그 따위 녀석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그로부터 두 시간 후, 크레인 집안의 헬리콥터 발착장에 한 대의 헬리콥터가 내려왔다. 크레인의 승용기 표지인 방패 그림에 독수리가 새겨져 있었다. 기체의 빛깔도 크림색으로 똑같았다. 그리고 그 조종석에서 몸매며 복장이 시튼인 듯한 사람이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손을 흔들며 뭐라고 목쉰 소리로 외치더니 푹 고꾸라져 버렸다.
시로오와 두 명의 형사가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갑자기 소음기를 단 둔한 총소리가 나더니, 시로오와 두 명의 형사는 쓰러졌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사람은 듀켄이었다. 조금 전의 행동은 듀켄의 연극이었다.
듀켄은 장갑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왔을 때에는 설계도며 연구노트를 안고 있었다. 금속 X의 액이 든 작은 병은 발견했지만 큰 병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듀켄은 헬리콥터에 돌아오자 곧 날아가 버렸다.
크레인과 시튼이 헬리콥터로 집에 돌아와서 사건을 안 것은 해가 진 뒤였다. 세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달려갔으나, 두 명의 형사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고 시로오만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전화로 연락을 받고 의사와 경찰관과 프레스콧 부장형사가 달려왔다. 시로오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시튼과 크레인은 이를 갈며 분격했다. 시튼이 말했다.
"듀켄의 소행이다. 갈가리 찢어 주고 싶군."
그러나, 프레스콧 부장 형사가 듀켄을 감시하고 있던 형사에게 무선 연락을 해 보니,
"듀켄은 오늘은 집에서 한 발짝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대답이었다. 시튼은 펄펄 뛰었다.
"그런 이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 감시를 하고 있습니까?“
"어디서든지 알 수 있도록 집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시튼은 곰곰 생각하고 있다가, 이윽고 대물 컴퍼스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이 컴퍼스의 바늘을 듀켄에게 한 번 맞추어 두면, 그 자가 어디로 가건 언제까지나 듀켄이 있는 방향을 계속 가리킵니다. 이것을 써 보도록 하십시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 빌리기로 하지요. 한데 이상한 기계군요.“
그 날 밤, 부장 형사는 직접 듀켄의 집으로 갔다. 몇 명의 형사가 이미 잠복 감시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부장 형사는 조금 전 듀켄이 창가에 나타나 커튼을 쳤을 때, 대물 컴퍼스의 바늘을 듀켄에게 맞추어 두었다. 그 바늘이 천천히 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듀켄이 지하실에라도 갔단 말인가?"
그런데 바늘은 점점 회전하여 바로 밑의 땅을 가리켰다. 지하에 터널이라도 있어서 듀켄은 그 속을 걷고 있는 것일까. 바늘이 가리키는 대로 프레스콧이 따라가니, 듀켄의 집이 있는 언덕을 내려가 공원 곁으로 나가서 긴 다리 쪽을 향해 가게 되었다. 듀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물 컴퍼스의 바늘만 의지할 따름이었다. 다리 가까이 까지 가니 저 쪽에서 승용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부장형사는 옆에 있는 나무 뒤에 숨었다. 차가 다리 위에서 멈췄다. 그러자 다리 밑에서 듀켄인 듯한 사나이가 올라왔다. 그 사나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는 달려가 버렸다. 부장형사도 차를 수배하여 뒤를 쫓았다. 추적은 간단했다. 바늘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차를 몰기만 하면 된다. 따라가니 세계 철강 회사의 브루킹즈 지배인 집에 닿았다. 그 곳에서 4시간 가량 감시하고 있으니까 듀켄이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부장 형사도 차를 몰아, 앞질러서 아까 그 다리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듀켄의 차가 왔다. 듀켄은 둑을 내려가 콘크리트 교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그 뒤 회중 전등으로 조사해 보니, 교각에 언뜻 보아서는 모르지만 비밀 문이 있었다. 문 위에서 듀켄이 누른 버튼도 발견되었다.
'들어가 볼까? 아냐, 오늘밤은 그만두자. 하여간 듀켄이 감시자의 눈을 속이고 자유로이 집을 출입하고 있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듀켄이 세계 철강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
어쨌든 세계 철강이라 하면, 겉으로는 회사지만 이면에서 전세계의 갱들을 조종하여 대규모적인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프레스콧 부장 형사가 다음 날 이 사실을 시튼과 크레인에게 알리자, 크레인의 얼굴이 싹 흐려졌다.
"뭣이! 듀켄과 세계 철강이 일당이라고? 이거 야단났군. 스카이라크 호의 강철 재료는 세계 철강이 만들기로 되어 있단 말일세. 그들은 알 수 없는 곳에 흠이 있는 위험한 제품을 일부러 보내 줄 게 틀림없어."
"프레스콧 씨, 듀켄과 브루킹즈를 체포해 버릴 수는 없을까요?“
시튼이 말하자 부장 형사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증거가 불충분합니다. 그들이 악당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어도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기가 어려워서 체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크레인이 끼여들었다.
"체포할 수 없다면 이 쪽도 듀켄 일당의 허점을 노리도록 연구해야 해."
시튼과 크레인들이 궁리를 하고 있을 무렵, 듀켄 쪽도 나쁜 계략을 짜고 있었다. 갱 우두머리인 퍼킨스가 명예 회복을 위해 지독한 수단을 짜냈다.
"듀켄 박사께서 훔쳐 낸 시튼의 우주선 설계도를 근거로 해서 이 쪽도 우주선을 급히 만드는 게 어떨까요. 그걸로 시튼의 누이동생인 도로시를 납치하는 겁니다. 자동차로 유괴하면 이 부근에 사는 자의 소행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우주선 같으면 어느 곳의 누가 했는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리고 상대가 우주선이어서는 누가 보고 있건 덤벼들진 못할 겁니다. 도로시는 어디다가 감금해 두는 겁니다. 그리고는 금속 X의 액과 바꾸는 조건으로 도로시를 돌려주겠다고 통지를 해 주는 겁니다.“
"좋은 착상인데, 도로시는 누가 돌볼 건가?"
듀켄이 말하자 브루킹즈가
"그건 세계 철강의 타이피스트인 마거릿에게 시키겠어. 그녀는 세계 철강의 다른 일 쪽을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니까 처리를 하는 것이 좋아. 그러나 우주선이란 썩 좋은 생각이다. '우주선이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납치해 갔습니다.' 해도 경찰은 믿지 않을걸. 좋아 즉시 시작하자.“
납치된 도로시
주문해 둔 철재가 세계 철강에서 운반되어 왔다. 이것을 시험해 보고 시튼은 소리쳤다.
"이런 걸로 우주선을 만들면, 지구의 인력을 뿌리치기도 전에 부서져 버린다. 불합격이라는 이유로 돌려보내 버리자.“
그러자 크레인이, "가만있게. 그보다도 나쁜 재료라는 걸 눈치 못 챈 채하고 저 쪽을 안심시켜 두자고. 그 재료로 듀켄 일당을 속이기 위해서 그럴 듯한 우주선을 만드는 거야 그래놓고 내 친구가 하고 있는 작은 제철소에서 몰래 재료를 따로 사는 거야. 그걸로 스카이라크 호를 친구의 제철소공장에서 비밀리에 만들도록 하자."
나쁜 재료를 쓴, 듀켄 일당을 속여 두기 위한 우주선은 <늙다리호>라고 불리게 되었다. 늙다리호도 스카이라크 호도 지체 없이 만들어져 나갔다. 한편, 듀켄 일당의 납치용 우주선도 부랴부랴 제작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시가 퇴근길에 테니스 코트 옆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동글동글한 커다란 구체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 구체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괴상하게 생긴 사람 크기의 생물이 뛰어나와서 도로시를 구체 속으로 납치해 들어갔다. 구체는 급상승해 갔다. 듀켄 일당의 납치용 우주선이었다.
도로시를 납치한 것은 듀켄이었다. 듀켄은 도로시를 안아들고는 퍼킨스에게 소리 쳤다.
"제기랄, 삵쾡이같이 날뛰는구나. 좀 거들어."
퍼킨스가 도로시의 발을 잡으려 했을 때, 도로시는 힘껏 퍼킨스의 복부를 찼다. 퍼킨스는 비틀비틀하다가 뒤의 조종반에 세게 부딪혔다. 그리고 쓰러지는 바람에 동력 레버를 꽉 내리고 말았다. 우주선은 순식간에 최대의 속력을 내어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나갔다. 켄, 퍼킨스, 도로시, 그리고 또 하나 세계 철강의 타이피스트인 마거릿의 네 명은 중력을 뿌리치는 무서운 가속도 때문에 바닥에 깔린 채 정신을 잃어버렸다. 우주선은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으로 곧장 날아갔다. 20분 가량 후, 도로시가 우주선에 납치되어 간 일이 시튼의 귀에 들어왔다. 시튼은 곧 대물 컴퍼스를 보았다.
"범인은 듀켄이다. 이 기계를 프레스콧 부장형사에게 빌려 준 그 때부터 바늘을 듀켄에게 맞추어 놓은 채로 인데 바늘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어. 듀켄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거야. 우주선의 속도는......"
시튼은 계산기의 스위치를 켜고,
"크레인, 5억 2천 킬로미터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태양계에서 뛰쳐나가 버리겠다. 매초 1광속이나 가속하고 있어."
"그럴 리가 있나. 아인슈타인 박사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그러지 않았어."
"이론은 그렇지만, 그 이론이 실제로 어떠냐 하는 것을 확인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거든. 그런데 사실 도로시를 납치한 우주선은 광속 이상의 속도로 날고 있어. 그건 우리의 설계도를 훔쳐 가지고 만든 우주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구잡이로 날고 있는 것은 어딘가에 고장이 생겼기 때문일 거야."
"따라잡을 수 있을까7"
"뭐라고 말할 수 없어. 하지만 크레인, 쫓아가세."
두 사람은 스카이라크 호의 격납고로 급히 갔다. 스카이라크 호는 완성되어 있어,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연료가 되는 구리 막대기가 4개 밖에 없었다.
"이것 가지고는 모자라. 즉시 사 모아야 해. 크레인,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주게."
그런데, 어느 금속상에도 구리는 없었다. 세계 철강이 손을 써서 먼저 매점을 했는지도 몰랐다. 전선 같은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의 양이 금방은 입수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교회 지붕의 동판이라도 사 가지고 벗겨야겠어."
크레인은 직접 금속상에 부딪쳐 보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억지로 모은 구리를 우주선의 동력으로 쓸 수 있도록 녹여서 모양을 만드는데 이틀이 걸렸다. 대물 컴퍼스로 도로시를 납치한 우주선과의 거리를 재어 보니, 이미 235 광년의 간격이 나 있었다. 빛의 속도로 날아서 235년이나 걸리는 먼 거리이다.
시튼이 크레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크레인, 지금까지의 자네 우정에 감사하네. 나는 꼭 돌아오고 싶어. 자네와 만날 날이 오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겠어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튼. 나도 같이 가겠어."
"아냐, 이건 단순한 시험 비행이 아닐세. 죽는 것은 한 사람으로 충분해.“
"농담하지 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갈 거다.“
"그래, 크레인. 자네가 가 준다면 백만 명의 군사보다도 마음 든든하네.“
시튼과 크레인은 다시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스카이라크 호는 지름 15미터의 둥글둥글한 구체이다.
두 사람은 스카이라크 호를 타고 출발했다. 내압 의자에 나란히 앉아, 시튼이 동력 레버를 잡고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알려 주게. 속력을 내겠어."
"자꾸자꾸 속력을 내라고. 그래, 그래. 뭘, 이까짓 걸 견뎌내지 못......할......라......고......“
납치용 우주선의 운명
납치용 우주선은 동력로 속의 구리를 다 써 버리고 없었다. 그래도 우주 공간을 날고 있었다. 속력을 줄일 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주선 안의 네 사람은 정신이 들었다. 듀켄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공간으로 떠올라 가볍게 천장에 부딪혔다. 듀켄은 다른 별에서 온 괴물로 보이게 했던 괴상한 옷을 벗자, 천장을 누르며 천천히 바닥 쪽으로 돌아왔다.
"듀켄 씨, 우리는 어디를 날고 있는 겁니까?“
퍼킨스가 물었다. 듀켄은 벽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잡고 조종반으로 가서 계기를 보면서 말했다.
"지구에서 237광년 떨어진 곳을 날고 있어."
"히야, 그렇다면 이제 지구에는 못 돌아가겠구나."
퍼킨스는 이렇게 소리치고 도로시에게,
"네년 때문이야."
그러면서 덤벼들려 했다. 그 때, 듀켄이 손잡이를 쥐고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퍼킨스를 때렸다.
"바보 같으니, 함부로 행동하면 용서 않겠어."
퍼킨스의 몸은 방구석 쪽까지 휭하니 날아갔다. 듀켄은 차갑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너 같은 녀석은 최선을 다하기 전에 미쳐서 아무 것도 못 하게 되는 하찮은 벌레나 다름없다. 구리는 아직 2개 남아 있어. 그 1개를 써서 우주선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린다. 다음에 또 1개를 써서 난다. 날면서 알고 있는 별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우주선의 위치를 알고, 우리들의 태양계나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단 말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뭐 그렇게 자기편을 때릴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벽을 붙잡고 퍼킨스가 돌아오더니,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몸이 온통 땀으로 끈적거려 죽겠군요. 물로 좀 씻고 오겠습니다."
하더니 옆방으로 들어갔다. 벗어 던진 윗도리가 둥둥 떠 있었다. 도로시는 듀켄을 보았다. 듀켄은 조종반 쪽을 보고 있었다. 도로시는 잽싸게 떠 있는 저고리 호주머니를 뒤졌다. 권총이 두 자루 나왔다. 도로시는 그것을 자기 옷 속에 숨겼다. 퍼킨스가 옆방에서 나오자 도로시는 마거릿에게,
"우리도 시원하게 세수나 하고 와요."
한 다음, 여전히 조종반을 보고 있는 듀켄에게 말했다.
"당신이 듀켄 박사님이시지요. 세수를 하러 가도 괜찮을까요?“
"갔다 와요.“
듀켄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세면실에 간 다음 도로시와 마거릿은 서로 인사를 했다. 마거릿은 도로시보다 손위인 예쁜 아가씨로, 스무 살 가량이었다.
"나는 세계 철강 회사의 브루킹즈 지사장의 타이피스트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발명가였는데, 브루킹즈는 그 발명을 가로챈 뒤에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어요. 나는 그 증거를 잡으려고 브루킹즈의 비서가 되었던 거여요. 하지만 증거도 제대로 모으기 전에 붙잡혀서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이젠 틀렸어요."
"기운을 내요. 좌절해서는 안 돼요."
도로시는 좀 전에 가로챈 권총을 한 자루 마거릿에게 내주었다.
"나, 또 한 자루 가지고 있어요. 이제부터 우리 친구가 되어요, 네?"
두 사람이 세면실을 나오니, 벽에 부딪힌 팔꿈치의 상처를 보고 있던 퍼킨스가 도로시를 노려보았다.
"너를 머지 않아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
그러자 듀켄이 말했다.
"입 닥쳐, 퍼킨스. 도로시한테 손대지 마라.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그럼, 마거릿 쪽은 어떻게 할건가요?“
"그건 자네가 브루킹즈한테 부탁 받은 일이다. 나는 모른다."
퍼킨스는 눈을 번득이며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러나 그 때, 마거릿의 손에는 권총이 겨누어져 있었다.
"퍼킨스, 바지 주머니에 있는 나이프도 버려요. 셋 세는 동안에. 하나...... 둘........."
퍼킨스는 항복을 하고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자 내던졌다. 도로시가 그것을 받았다. 퍼킨스가 불평했다.
"듀켄 씨,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겁니까?“
듀켄은 아까부터 엷은 웃음을 머금고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시가 자네 옷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 몸 간수도 못 하는 작자의 몸을 돌봐 줄 생각은 난 없어."
"쳇, 박사님, 위험한 권총을 적의 손에 맡겨도 괜찮은 겁니까?“
"괜찮지 않고. 나는 이 우주선을 다를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무도 내 목숨을 위협할 자는 없을 테니까."
방안은 조용해졌다. 듀켄이 말했다.
"승부가 난 모양이다. 그럼, 우주선을 돌릴 테니 다들 자리에 앉아.“
지구 시간으로 말해서 1백 시간이나 지났을까. 식사하는 동안과 잠자는 동안 말고는 조종반에 달라붙어 침착하게 냉정한 표정을 유지해 온 듀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종반의 각 계기를 확인했다.
"진로가 빗나가고 있다. 별의 인력에 끌려서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도로시와 마거릿, 퍼킨스가 당황해서 엉거주춤 일어나자 듀켄은 조용히 말했다.
"자리에 앉아. 어마어마하게 큰 별 같다. 동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별에서 벗어나려 해 봤자 소용없다. 다들 자리에 앉아 있어."
"그럼, 드디어 마지막인가요?"
도로시가 이렇게 묻자 듀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직 희망은 버리지 않겠어. 별에 충돌하기까지 앞으로 48시간 정도는 있어. 최후의 동력용으로 약간 구리를 남겨 두어야 해.“
그 때 퍼킨스가,
"듀켄 박사, 난 결국 당신 같은 사람한테 놀아나서 이런 곳까지 ........."
야수 같은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듀켄은 훌쩍 뒤로 물러서자, 권총 개머리판으로 퍼킨스의 머리를 갈겼다. 퍼킨스는 죽은 물고기처럼 옆으로 떠서, 벽 한구석으로 둥둥 떠갔다.
"조만 간에 모두 너와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듀켄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48시간........ 그 동안에 오빠가 구출하러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도로시가 눈을 감고 기도하듯이 말하자 듀켄은 차갑게 웃었다.
"스카이라크 호는 지구를 떠나자마자 산산조각이 나버렸을 걸.“
"아니어요. 재료가 나쁘다 그 말이겠지요. 듀켄 씨처럼 교활한 사람도 그걸 모르셨군요. 오빠는 그런 계략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당신이 전혀 모르는 우주선을 건조했단 말이어요.“
"그랬군.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추적할 수 있어요."
"어떤 방법으로?“
"몰라요. 그리고, 설사 알고 있더라도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나는 시튼이 추적해 오고 있다면, 이 거대한 인력을 갖고 있는 별을 빨리 알아차리고 피해 주길 바랄 뿐이야. 나는 시튼을 죽일 작정이었어. 하지만 내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시튼이 살아 있어 주길 바래.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큰 손해를 보니까."
"나도 오빠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죽게 된다면, 우리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요. 하지만 오빠는 우리를 발견하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출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여요. 아, 나는 오빠가 이 우주선을 발견해 주기를 빌어야 할까, 발견하지 않기를 빌어야 할까."
그 동안에도 납치용 우주선은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앞쪽에는 거대한 죽음의 별이 있었다. 속력은 1초마다 빨라져 갔다.
스카이라크 호의 표류
시튼과 크레인은 대물 컴퍼스의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스카이라크 호를 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12시간 교대로 조종반에 붙어 있었다. 시튼이 큰 소리로 크레인을 불렀다.
"어이, 이리 와 봐. 코스가 구부러져 가고 있어. 앞쪽에 어마어마하게 큰 별이 있는 모양이다. 듀켄의 우주선도 그 쪽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 같아.“
"상대방과의 거리는?“
"이 속도로 가면 10시간하고 몇 분이면 돼. 하여간 조심하기 위해 스카이라크 호의 꽁무니를 그 별 쪽으로 돌려 두자.“
토하고 싶은 기분 나쁜 흔들림이 일어났다. 스카이라크 호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시튼이 소리 쳤다.
"크레인,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별을 관찰하게."
"알았어.“
크레인은 천체경을 들여다보았다.
"시각 반도, 11시의 공간. 상당히 높아. 검은 천체다. 시커먼 행성이야. 앗, 행성 가장자리 조금 안쪽 4시 반 지점에 작은 점이 보인다. 듀켄의 우주선인 모양이다.“
"그놈을 붙잡아서 이 인력권에서 벗어나야 해. 한순간만 잘못해도 풍지박산이야. 계속 관찰을 부탁하네.
자세히 보고해 주게.“
수초 후, 두 우주선은 서로의 선체를 육안으로 알 수 있을 정도까지 접근했다. 크레인은 조사등의 스위치를 켰고, 시튼은 스카이라크 호에 장치한 자력 흡인기를 듀켄의 우주선으로 돌렸다. 그리고 기관총에 총알을 장전하자 이상한 간격을 두고 상대방 우주선을 향해 쏘았다. 듀켄은 깜짝 놀라 왼쪽의 둥근 창으로 눈을 보냈다. 눈부신 광선이 비쳐들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주선 외벽에 부딪치고 있는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소리를 알아차렸다. 듀켄은 일어서서 창을 내다보았다.
"저건...... 저건........ 그리고 기관총 쏘는 방식은......모스 신호다. 모,두,살,아,있,느,냐."
"오빠다.“
도로시는 소리쳤다. 도로시와 마거릿은 얼싸안고 기뻐서 울었다. 듀켄은 회중 전등을 들고 조사되고 있지 않은 창으로 가서 SOS 신호를 했다. 스카이라크 호는 신중하게 접근하여 납치용 우주선의 에어 록과 자기 쪽 에어 록을 연결했다. 몇 분 후, 시튼과 도로시는 서로 얼싸안았다. 크레인은 마거릿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혀 주었다. 듀켄은 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크레인이 물었다.
"듀켄, 자네 혼잔가?“
"또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아."
그러자 시튼이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작자는 우주선 밖으로 내쫓아 버리자. 몸이 폭발해서 죽어 버리게 말이야.“
"안 돼요, 오빠. 듀켄은 저 우주선 속에서 나를 감싸주었어요. 그리고 비록 듀켄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빠까지 똑같은 사람이 되어서 보복할 건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듀켄, 우주 여행 동안 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하겠나?“
시튼은 그렇게 말하면서 똑바로 노려보았다. 듀켄은 침착하면서도 차가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알았네. 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행동을 하지. 내가 자네들한테서 도망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말일세.“
"분명한 태도다. 마음에 들었어. 그럼 듀켄, 우리 우주선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당장이라도 엔진에 열을 가할 것. 상태는 아까보다 훨씬 나빠져 있어."
"좋아, 출력을 내지. 크레인은 계기에, 듀켄은 천체경에 붙어라.“
당장 시튼, 크레인, 듀켄은 활동을 시작했다.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갔다. 스카이라크 호는 검은 행성의 인력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주선 안은 지구를 나설 때보다도 더 무서운 중력이 내리 덮치고 있었다. 가슴은 처지고 눈알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납치용 우주선은 벌써 따로 떨어져 나가, 죽은 거대한 별을 향해 곧장 떨어져 갔다. 1시간이 지났다. 도로시와 마거릿은 엎드린 채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돌볼 여유는 없다. 스카이라크 호도 낙하하고 있었다. 거대한 별이 끌어당기는 힘은 강하다. 그러나 시튼, 크레인, 듀켄 세 사람의 계산으로는, 그럭저럭하는 동안 우주선의 코스는 곡선을 그리며 어느 한 지점에서 상승으로 바뀔 것으로 추측되었다. 48시간 지났다. 58시간이 지났다. 68시간이 지났다.
스카이라크 호는 마침내 상승하기 시작했다. 차차 속력을 내어 빛의 속력이 되고, 그것을 넘어 더 빨라져서 우주 공간의 끝의 끝인 진공의 바다를 뚫고 날아갔다. 시튼이 제일 먼저 깨어났다. 크레인의 뺨을 때려 제정신이 들게 했다. 시튼은 도로시에게, 크레인은 마거릿에게 인공 호흡을 해 주었다. 마거릿 다음으로 도로시가 되살아났다. 도로시가 말했다.
"살아 있을 수 있었군요. 용케 충돌을 안 했군요."
"그래, 무사히 날고 있어. 우리가 둥둥 떠 있지 않는 것은 선 내에 인공 중력을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야."
"이봐, 시튼. 중력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아 주게, 듣기만 해도 까무러칠 것 같다.“
크레인이 익살스럽게 머리를 싸안아 보인 후 물었다.
"그런데 시튼, 대악당 듀켄은 어디로 갔을까?"
"아까 깨어나서 조종반을 구경한 다음, 부엌의 엎어진 것들을 정리하는 김에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
"어마,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도 대담하고 넉살이 좋을까."
도로시가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감탄한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듀켄이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넉살이 좋은지 모르지만, 대원의 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손이 빈 사람이 식사 준비를 끝내 두었어. 그리고 지구에서의 거리도 계산해 두었네. 내 계산으로는 4627광년이야. 검산해 봐 주게."
시튼과 크레인은 놀라서 계기를 읽어보고 계산했다. 그 숫자에 틀림은 없었다. 스카이라크 호는 1분간 1광년의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크레인, 구리 남은 것이 몇 개였지?“
시튼이 말하자 듀켄이 대신 대답했다.
"남은 것은 4개야. 우주선을 정지시키기에는 충분하지. 그러나 지구로 돌아가기엔 조금 모자라."
크레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4개밖에 없어. 지구로 돌아가기에는 모자란다고. 그럼 어떻게 하지, 시튼?“
"어느 행성에 착륙해서 구리를 구하는 수밖에 없지."
시튼이 대답하자 듀켄이 말했다.
"분광기를 이리 줘봐. 행성의 빛을 분석해 보자."
듀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웃음도 짓지 않으면서도 매우 힘이 되는 옛날부터의 친구처럼 행동했다.
괴수의 행성
마거릿이, 시튼에게 퍼킨스가 죽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때도, 듀켄은 남의 일처럼 딴전으로 들으며 분광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거릿은 말했다.
"퍼킨스는 미친 야수 같았어요. 듀켄 박사님은 할 수 없이 퍼킨스를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박사님은 냉혹한 과학자여서 도로시를 감싸 준 것도 다 계산하고, 살려 두는 게 덕이라고 생각했던 걸 거여요. 박사님은 기계처럼 차가운........."
이 때 듀켄이 손을 약간 들어 신호를 했다.
"저 작은 행성은 어떻겠나. 그러나 접근하려면 저 행성의 태양 --- 즉 항성에게 끌려가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새카만 우주 속에 반짝거리고 있는 작은 별들. 그 중에서 특히 빛나고 있는 것은 항성----태양이었다. 행성은 그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마거릿은 시튼 곁에서 창을 내다보았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군요."
다시 지구 시간으로 말하여 며칠인가가 지나갔다. 그 동안 시튼과 크레인이 천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으면, 마거릿과 도로시가 그것을 기록하는 일을 거들었다. 듀켄은 진로의 계산을 기계처럼 계속하고 있었다. 목표하는 행성에 다가감에 따라 흥분은 높아져 갔다. 냉정한 것은 듀켄뿐이었다. 행성은 점점 커졌다. 관측으로 공기가 있고, 지구의 공기와 거의 같으며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카이라크 호는 대기권에 돌입해 갔다. 지표는 식물로 덮여 있었지만, 지표가 드러나 있는 곳도 여기저기에 있었다. 스카이라크 호는 노출된 지표의 한 곳에 조심스럽게 착륙했다. 시튼과 크레인이 밖으로 나왔다. 이어서 듀켄, 마거릿, 도로시가 나왔다. 우선 가까이 있는 나무가 눈에 띄었다. 높은 곳일수록 가지가 길게 뻗고, 가지에는 긴 가시가 있었다. 잎은 넓적하고 칙칙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착륙 지점의 주위는 이 나무하고는 다른 양치식물의 밀림이었다. 바람은 없고 찌는 듯이 더웠다. 풍경 전체가 뜨거운 공기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시튼은 땅위의 바윗돌을 구둣발로 차 보았다. 바윗돌은 굴러가지 않았다.
몸을 구부리고 집어들려고 하니, 양다리를 벌리고 발에 힘껏 힘을 주고서야 겨우 들어올릴 수가 있었다.
"이거 굉장하군. 귀금속 덩어리다. 듀켄, 나이프 가지고 있나."
듀켄은 나이프를 꺼내 바윗돌의 표면을 긁어 보았다.
"음, 백금 종류인 모양이다. 만일 이것이 금속 X라면, 이 바윗돌만으로도 지구의 발전소 전부를 1만 년은 움직일 수 있다. 우주선에 들고 가서 조사해 보자."
듀켄이 바윗돌을 안고 끙끙거리며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듀켄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어이, 조심해라. 괴상한 짐승이다."
스카이라크 호 뒤에서 괴상한 짐승이 불쑥 나타났다. 4개의 짧고 굵은 다리. 몸통은 길어서30미터 이상이나 되었다. 퉁퉁하게 살찐 몸통. 그 끝에서 뱀 같은 목이 뻗어 나와 있고 끄트머리에 조그만 머리가 붙어 있었다. 그 머리는 흡사 입뿐인 것 같았다. 육식 짐승의 날카로운 이빨이 가지런히 보였다. 시튼은 X폭약탄의 권총을 거머쥐었으나,
"쏠 수가 없어. 선체를 부숴 버리겠어. 숨자. 소리를 내지 마라."
하여, 네 명은 바위 뒤에 숨었다.
스카이라크 호에서 굉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듀켄이 괴수에게 기관총탄을 퍼부었던 것이다. 괴수의 외침 소리가 주위의 공기를 갈랐다. 괴수는 몸부림치며 버둥거리다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우주선에 돌아가자, 여기는 위험해."
시튼이 소리쳤다. 정신없이 달음질쳐서 스카이라크 호에 뛰어들어가 듀켄이 문을 닫았을 때는, 주위는 이미 소름이 오싹 끼치는 괴물들로 꽉 차 있었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파충류가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호랑이 같은 어금니를 드러내고 스카이라크 호에 덤벼들었다. 전갈의 괴물도 있었다. 그놈은 도로시가 내다보고 있는 창에 뛰어올라, 날카로운 침으로 수정 유리에 독액을 뿌려댔다. 도로시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전갈이 땅에 떨어지자 전갈 위에 거미의 괴물이 덤벼들었다. 이 거미는 털이 없고, 머리는 커다란 턱뿐인 것 같았다. 전갈과 거미의 대군에 다시 바퀴벌레 괴물이 덤벼들었는데, 이 바퀴벌레는 죽은 괴수의 시체를 굉장한 속도로 먹어치워, 금방 뼈만 남기고 말았다. 그러자 거기에 공룡 같은 것이 한 마리 나타났다. 어깨까지의 높이는 5미터 정도, 날카로운 어금니는 1미터나 되었다. 그것이 시체를 게걸스레 먹고 있자, 커다란 악어 같은 괴물이 기어 나와서 공룡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 두 마리는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꼬리로 쳤다. 땅이 울릴 만큼 무섭게 싸웠다. 갑자기 가까이 높이 서 있던 나무줄기가 확 구부러지더니, 무성한 가지가 두 마리의 괴수 위에 떨어져 덮였다. 괴수는 가지의 뾰족한 가시에 찔리어 몸부림쳤다. 그러자 넓적한 잎사귀들이 모여들어 괴수의 몸을 싸버렸다. 잎자루 옆에서 나오는 흐물흐물한 손 같은 것이 괴수 쪽으로 뻗어 나갔다. 그 손 같은 것의 끝에 눈이 한 개씩 달려 있었다.
그 나무가 다시 똑바로 섰을 때에는 뼈만 흩어져 있었다. 크레인이 말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구리를 못 찾겠다. 그런데 듀켄, 주운 금속은 뭐였나?"
"틀림없이 금속 X다. 놀라운 재산이야."
듀켄이 대답하자 시튼이 기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금속 X가 있으면 싸울 것도 없겠군."
듀켄은 빤히 시튼을 보면서 말했다.
"이 쪽은 싸움을 그만둘 생각은 없어.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어. 우주선에 있는 동안은 충실한 일원으로서 행동하겠다. 하지만 자유로운 몸이 되는대로 자네들 두 사람에게 대항할 생각이다. 죽여 버리겠어."
"음. 지금 수많은 괴수를 보았지만, 듀켄, 자네도 무서운 괴수로구나."
시튼은 싱글싱글 웃으며 호주머니에서 바위 조각을 꺼내어 늘어놓았다.
"이 금속 X들을 아까 우주선으로 도망쳐 올 때 주워왔지."
그러자 크레인이 고개를 천천히 내둘렀다.
"그 괴수를 발견한 뒤에 말인가? 시튼, 자네도 상당한 괴물이군 그래."
우주전함
스카이라크 호는 다른 행성을 찾아서 날았다. 행성은 많아도 공기나 물이 없거나, 뜨거워서 접근할 수 없거나, 얼음에 싸인 세계이거나 해서 어떤 행성이라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시튼과 듀켄이 적당해 보이는 별을 발견했다. 대기도 있고 온도도 지구인에게 맞을 것 같았다.
다만 중력은 지구의 10분의 4밖에 안 되었다. 스카이라크 호가 그 별의 바다 위를 날아서 대륙의 해안에 내리려하자, 꽝, 꽝, 광. 연달아 대포 소리가 들려 왔다. 창으로 내다보고 시튼이 소리 쳤다.
"어이, 저기를 봐. 우주 전함이 여덟 척 보인다. 네 척은 케케묵은 옛날 비행선 같군. 날개가 없는 건 멋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걸. 그러나 나머지 네 척은 이상한 모양이다."
그 이상한 4척은 하늘을 나는 괴수임을 알았다. 전함과 싸움을 하다니, 대단한 자신을 가진 동물들이다.
동체는 거대한 어뢰 모양인데, 수십 개의 문어발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날개가 10개 정도. 동체의 양쪽에 몇 개의 눈이 나란히 붙어 있다. 부리는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몸통은 투명 유리 같은 비늘의 갑옷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투명한 갑옷의 비늘은 거대한 전함이 쉴 새 없이 쏘아 대고 있는 대포알을 퉁겨 내고 있었다. 유유히 전함에 대항해 간 한 마리가 한 척의 옆구리에 부리를 찔러 넣어 커다란 구멍을 뚫고는 푸드득 홰를 쳤다. 그러자 전함의 갑판에 있던 것은 모두 납작하게 묵사발이 되었다. 다리 같은 것이 문어발처럼 뻗어 나와 대포를 뺏고, 승무원을 파리처럼 죽여 나갔다. 전함은 7천 미터 아래의 황야에 추락했다. 괴물도 한 마리 급소를 얻어맞은 듯, 거꾸로 곤두박질 해 떨어져 갔다. 전함은 잇달아 추락해 갔다. 하늘의 거대한 짐승도 두 마리 처치되었지만, 전함은 마침내 전멸했다. 한 마리. 남은 거대한 짐승은 날개를 퍼덕이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스카이라크 호의 다섯 명은 그 뒤를 눈으로 쫓았다.
그러자 도로시가 소리쳤다.
"오빠, 작은 우주정 한 편대가 저기 도망치고 있어요. 저것도 곧 전멸되겠어요. 오빠, 꼭 구해 주셔요, 네?"
"알았어. 이 별에 도착한 인사 대신의 서비스다.“
스카이라크 호는 부르릉 소리를 내며 속력을 냈다. 괴물 뒤로 바짝 다가가서 크레인이 X총을 한 방 발사했다. 명중...... 공기가 희박한 상공이어서, 선 내에 있는 모두의 귀가 더한층 멍멍해질 정도로 폭발음은 굉장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괴물도 하늘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스카이라크 호가 지상에 천천히 내려오자, 우주정의 편대도 주위에 착륙했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스카이라크 호는 수많은 별나라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별나라 사람들은 남자도 여자도 있었다. 지구인과 똑같았다. 엄숙한 생김새와 큰 덩치를 하고 있었다. 시튼도 크레인도 듀켄도 지구에서는 매우 큰 편인데, 여기서는 표준형이었다. 별나라 여자들도 크다. 도로시와 마거릿은 별나라 여자들에 비하니까 꼬마가 되어 버렸다. 남자들은 넓적한 금속을 칼라처럼 목에 두르고 있었다. 또 금속제 장식을 몸에 걸쳤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허리띠와 어깨에 이상한 모양의 무기를 달고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고 그 대신 보석으로 전신을 장식하고 있었다. 머리는 검은색, 녹색으로도 보였다. 피부색은 거무스름하며, 그것도 녹색으로 보였다.
눈빛도 검다. 검다기보다도 그런 색은 많은 색이 섞인 것이므로 무슨 색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이 행성에는 17개의 태양이 있어서 그 각각의 빛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색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스카이라크 호의 다섯 사람은, 문을 열기는 했지만 내려가는 것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별나라 사람의 우두머리인 듯한, 특히 두드러지게 훌륭한 차림새를 한 거한이 별나라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별나라 사람들은 1백 미터 가량 뒤로 물러서고 그 사람만 남았다. 사나이는 무기를 모두 땅 위에 놓자, 두 손을 번쩍 들고 스카이라크 호를 향해 걸어왔다.
"그럼, 이 쪽도 저렇게 해야 되겠지."
시튼은 스카이라크 호에서 내리자 늠름한 별나라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 사이가 3미터 정도 되자, 별나라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싱글싱글 웃고는 자신을 가리켜 가슴을 두드리며 부드럽고 나직하게 말했다.
"나르분.“
시튼도 싱긋이 웃고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흉내를 냈다.
"시튼.“
그러자 상대방 사나이가 또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도마크 고크 마르도나레."
이 별나라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자기가 대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튼도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튼 우주선 우두머리."
별나라 사람은 동료들을 돌아보자 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보아하니 시튼을 소개한 것 같았다. 시튼도 스카이라크 호 쪽을 돌아보았다.
"어이, 듀켄, 내 담뱃갑 좀 갖다 주게.“
듀켄이 연극적인 태도로 정중히 담뱃갑을 들고 왔다. 시튼은 장기인 요술을 부려, 그 담뱃갑을 오른손에서 감쪽같이 없애고 왼손에 탁 나타내고는, 다음에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집어내자 손바닥을 한번 흔들 때마다 담배의 수를 늘려 나갔다. 그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귀로 불붙은 성냥개비를 내어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고는, 불붙은 담배를 입에 집어넣고 덥석 씹어서 귀로도 연기를 낸 다음, 아까의 그 불붙은 담배를 호주머니에서 내 보였다. 그 요술은 별나라 사람들 전부의 넋을 빼놓아, 모두가 공손하게 절을 했다. 시튼은 생각했다.
'이렇게 내 요술이 인기를 모은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한테서 우리가 필요한 구리를 얻게 되면 좋겠는데. 하여튼 이 별나라 사람들의 수도에 가 보자.'
우주정은 다시 편대를 짜고 날았고, 스카이라크 호는 그 뒤를 따라갔다. 도시가 보였다. 건물은 어느 것이나 같은 높이이고, 지붕은 평평했다. 건물의 모양은 정방형, 장방형, 삼각형 등 가지가지이며, 도로는 없고 건물과 건물 사이는 모두 공원으로 되어있었다. 교통은 모두 공중을 이용했다. 괴상한 모양을 한 것이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일행은 수도의 변두리에 있는 거대한 빌딩 옥상에 착륙했다.
황제의 계략
그 빌딩은 아무래도 이 나라의 궁전인 듯했다. 나라라고는 하나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시튼과 아까 인사한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황제였다는 데에 시튼들은 놀랐다. 황제는 몸짓과 손짓으로 말을 걸었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방심하면 안 돼."
시튼이 말했다. 크레인이 약간 당황했다.
"왜? 무슨 위험스런 증거라도 있는 거야?“
"아니야, 우리가 먹을 만한 음식이 나올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 거야. 아무튼 나만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해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시튼은 이렇게 이상한 말을 하고 히죽히죽 웃었다. 궁전은 모두가 금속으로 되어 있고 나무는 아무 데도 쓰고 있지 않았다. 커다란 테이블도 금속이었다. 듀켄이 시튼에게 속삭였다.
"구리다. 식사는 필요 없으니 이 테이블을 얻어 가지고 갔으면 좋겠군."
수많은 하인이 음식을 자꾸자꾸 날라왔다. 어느 것이나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나이프와 포크는 없고, 단검같이 날이 얇고 넓적한 칼이 하나 나왔다. 이것이 먹는 도구인 모양이다.
"도로시, 너한테는 좀 무리겠지. 좋은 걸 빌려주지."
시튼은 도로시의 머리에 손을 뻗쳐 냉큼 스푼을 꺼내고, 이어서 마거릿의 머리에서 포크를 집어냈다.
다음에는 크레인의 코끝에서 후추 병, 듀켄의 귀에서 소금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자기 접시에 치고는 황제에게 빌려주었다. 황제는 무서워하면서도 우선 후춧가루를 조금 손바닥에 부어서 핥아 보았다. 그리고, 나쁘진 않군, 하는 얼굴을 했다. 다음에 소금을 핥았다. 그러자 갑자기 큰 소리로 대신인 듯한 점잖아 보이는 사람을 하나 불렀다. 점잖아 보이는 사나이는 마찬가지로 소금을 핥아 보고, 넋 나간 사람처럼 시튼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소금이 짜서 놀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뒤, 황제는 소금에 대해 아무런 몸짓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분이 몹시 좋아진 것만은 확실했다. 시튼 일행은 나란히 붙은 방 다섯 개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노예를 열 네 명이나 보내 주었다. 방밖의 복도에는 병정이 엄중하게 보초를 섰다.
'우리는 소중한 손님일 텐데, 포로가 된 것 같군.'
시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러나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남자 노예가 시튼에게 네 명이나 딸려 있어서, 시튼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태양이 17개나 있는 탓에 밤이라는 것이 별에는 없다. 할 수 없이 시튼도 네 명의 노예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예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잘 생겼고, 그 중 하나가 노예장인 듯했다. 노예장은 이윽고 세 명의 노예에게 지시를 했다. 그러자 세 명은 방구석의 맨바닥에 드러눕더니 잠이 들어 버렸다. 노예장만은 자지 않고 있었다. 시튼과 같은 나이 또래의 퍽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다. 시튼은 손짓해 불러서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식사 때 했던 요술의 재료를 노예장에게 주었다. 나이프, 스푼, 후추 병, 소금 병........ 노예장은 소금 병을 받자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나서 조금 핥아 보더니 당장 바닥에 꿇어 엎드려 시튼에게 큰절을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시튼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일을 그대로 덮어두면 좀이 쑤신다. 어차피 잠을 자기는 틀렸다 싶어 시튼은 몸짓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예장은 시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나서, 자고 있는 노예 세 명에게 뭐라고 속삭여서 깨웠다. 노예들은 벌떡 일어났다.
'모두들 참 잠귀가 밝군.'
시튼이 감탄하고 있자, 노예장과 세 명의 노예는 시튼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연방 몸짓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시튼은 수첩을 꺼내 스카이라크 호의 그림을 그려 보였다. 이런 식으로 그림으로 이야기하자는 뜻이었다. 노예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수첩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그림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몸짓 손짓이랑 낮은 목소리도 섞었다. 시튼은 차차 노예장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게 되었다. 그 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시튼은, 앞으로 몇 시간 지나서 지구에서 말하는 아침이 되어 다른 네 사람과 만나게 되면 이 이야기들을 동료들에게 말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윽고 지구에서 말하는 아침이 되었다. 네 사람이 시튼의 방에 오더니, 모두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어. 밤새도록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으니 잘 수가 있어야지."
시튼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실은......."
거기에 식사를 가득 차린 테이블이 운반되어 왔다. 다행히 식사 담당이 물러갔으므로, 시튼들은 자기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노예들에게 먹게 했다.
"실은 자네들에게 은밀히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어."
시튼이 네 사람에게 말을 꺼내자,
"저도요, 오빠. 전 밤새도록 제게 딸려있던 여자 노예와 그림을 그려서 얘기를 했어요."
도로시가 말하자, 크레인도 마거릿도, 듀켄도,
"나도야. 굉장한 소리를 들었어."
"나도요. 빨리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나도 그래.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시튼은 웃음을 터뜨렸다. 시튼들은 저마다 같은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 이야기란...... 이 나라는 마르도나레라고 하고, 노예들의 나라는 콘달이라고 했다. 노예장은 콘달 나라의 왕자로서, 다나크라는 이름이었다. 다른 열 세 명은 콘달 나라의 귀족들의 아들딸들이었다. 이 열 네 명이 사냥을 나갔다가 마르도나레 나라의 우주정에 습격 당했다. 그리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가스를 맡고 쓰러져 열 네 명 모두 포로가 되어 마르도나레 나라로 끌려와서 노예가 되고 말았다. 콘달 나라와 마르도나레나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몹시 사이가 나빠서 역사에 의하면 6천 년 이상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남의 별의 싸움 소동으로 구태여 시튼들이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튼들의 활약으로 카를론이라는 하늘 괴물의 습격으로부터 구출된 마르도나레의 황제 나르분은, 당장 스카이라크 호가 탐나 견딜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시튼들 다섯 명을 죽이고라도 스카이라크 호를 손에 넣을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르분 황제가 눈독을 들인 것은 소금이었다.
소금은, 이 오스놈이라는 행성에서는 지구에서의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시튼이 테이블에서 내놓은 소금은 오스놈별에 있는 소금 전부 보다도 많을 정도였다. 이 소금이 특히 귀중한 것은, 이 별에 있는 어떤 매우 단단한 금속을 만들어 낼 때, 아주 적은 양의 소금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행성에도 바다는 있다. 그러나 바다에서 소금은 나지 않았다. 이 곳 바다의 성분은 유산동의 액체였다. 나르분 황제는, 스카이라크 호 속에는 소금이 많이 비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사 때에 소금을 쓰는 딴 별에서 온 다섯 사람의 몸을 녹여도 소금을 많이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노예장인 콘달 나라의 다나크 왕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신들 다섯 사람은 즉시 스카이라크 호로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좋다. 가능하다면, 우리들 열 네 명도 함께 콘달 나라로 데려가 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겠는지. 생명의 은인으로서 거국적으로 환영하며, 구리는 얼마든지 제공하겠다. 어떤 소망에도 기꺼이 협력하겠다. 그리고, 만일 내가 한 말이 의심스럽다면 이 방을 나가서 복도를 빠져나가려고 해 보면 알 것이다. 복도에 대기하고 있는 1개 중대의 병사가 시튼들에게 덤벼들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글쎄, 어쩐지 복도에 있는 병사들이 수상쩍었어.“
시튼이 말하자 듀켄이,
"아마, 이 노예들의 말이 맞을 거야. 난 자네들처럼 호인이 아니니까 말이야. 황제가 그런 생각으로 있는걸 알 것만 같아.“
크레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험삼아 복도를 돌파해 보기로 할까. 그 뒤는 이판사판이다.“
적 속을 돌파하다
시튼을 선두로 다섯 사람이 이어져서 복도로 나갔다. 그 뒤에서 노예들이 뭉쳐서 따라왔다. 병사들은 시튼들에게 절을 하며 다가왔다. 몹시 무서워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튼이 돌아가라고 손으로 신호를 하자, 병사들은 잘 됐다는 듯이 긴 복도를 줄줄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대장인 듯한 자만은 돌아가려 하지 않고 길을 막았다.
"방해하지 말아.“
시튼은 한 손으로 대장의 가슴을 슬쩍 밀었다. 지구에서도 힘이 센 시튼이니까 중력이 작은 별 위에서는 더 힘이 세어진다. 대장은 뒤로 휭 날아가서 돌아가고 있던 병사들에게 부딪혀 세 명이나 넘어뜨리고 말았다. 대장은 벌떡 일어나 칼을 빼 들자 고함을 지르면서 시튼을 향해 돌진해 왔다. 시튼은 몸을 피하며 오른쪽 주먹으로 대장의 턱을 쥐어박았다. 대장은 공중으로 붕 떠서 두 번 공중제비를 돈 다음 바닥에 떨어졌다.
"위험해요, 오빠.“
도로시가 소리쳤다. 병사 몇 명이 기묘한 총을 들고 겨누고 있었다. 시튼은 번개같은 솜씨로 X총알을 장전한 권총을 쏘았다. 떼를 지어서 있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었고, 게다가 긴 복도 저 편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무섭게 흔들리면서 건물의 한 모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시튼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다나크, 스카이라크 호가 있는 옥상으로 안내해라. 드디어 시작되어 버렸으니 말이야."
노예 왕자는 시튼이 말한 뜻을 알아들은 모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달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설치된 스피커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분명 다섯 사람을 죽이라는 긴급명령일 것이다.
앞쪽에 두 명의 병사가 나타나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빨리 시튼의 발이 바닥을 차고 있었다. 휘익 공중을 날아간 시튼의 몸이 두 병사들을 부딪쳐 쓰러뜨리자, 그 둘을 시튼은 벽에다가 내동댕이쳤다. 둘은 완전히 뻗었다. 그들의 총을 노예들이 빼앗았다. 지붕으로 나가려 하니, 보초 선 네 명의 병사가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빼앗은 총이 다나크의 허리에서 짤깍짤깍 하고 몇 번 작은 소리를 냈다. 네 명의 병사는 금방 쓰러져 버렸다. 듀켄이 감탄하며 말했다.
"무음총이구나. 그것은 역장 발사라는 이론인데, 그 수학의 식은........"
"듀켄, 생각하는 건 나중에 해. 옥상에 적이 잔뜩 모여서 기다리고 있어.“
시튼이 말하자 듀켄이,
"크레인, 권총을 이리 내. 쌍권총의 빠른 솜씨를 보여주겠어. 상대가 1분간에 천 발 쏘는 속사포를 갖고있더라도, 빨리 쏘는 쪽이 이긴다.“
크레인이 권총을 듀켄에게 내주자, 시튼이 출입구 문을 발로 찼다. 듀켄의 권총과 시튼의 권총이 옥상을 향해 불을 뿜었다. 보통 권총이 아니다. 큰 바위라도 한순간에 연기로 만들어 버리는 X총탄이 장전되어 있다. 천지를 울리게 하는 대 음향과 함께, 속사포, 기관총, 파괴 광선 엔진, 무음총, 백 개가 넘는 병기와 별나라 사람이 1초도 안 되어서 연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옥상 면적의 4분의 1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시튼은 다른 사람들에게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빨리, 빨리, 스카이라크 호로 달려가라."
옥상 가장자리에 스카이라크 호가 우뚝 서 있었다. 하늘에 우주 전함 편대가 나타났다. 선두의 전함이 발사한 총알이 아까 그 출입구에 명중하여 위에 있는 탑을 무너뜨렸다. 다음의 총알이 달려가는 일행의 머리 위를 스쳤다. 모두들 스카이라크 호에 올라탈 때까지 시튼은 레버를 쥐고 기다리고 있었다.
"끝났어요, 다 탔어요."
마거릿의 목소리와 동시에 스카이라크 호는 힘차게 하늘로 뚫고 올라갔다. 그 바로 뒤 스카이라크호가 지금까지 있던 장소에, 전함의 거대한 포탄이 쏟아졌다. 전함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스카이라크 호의 속력에는 도저히 따르지 못한다. 스카이라크 호는 높은 속도로 대양 위로 나갔다. 노예 왕자 다나크가 스카이라크 호의 무전기를 사용하여 자기 나라의 무선국을 불러내어 지금까지의 경위를 보고하고 있을 때, 크레인이 시튼에게 속삭였다.
"또 한 번 결사의 탈출을 해야 하는 꼴이 된다면 배가 고플 테니, 다나크들을 내려 주고 나거든 스카이라크 호에 있으면서 상태를 보기로 할까?"
"상태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이 스카이라크를 보라고. 아까 옥상에서 적을 꽝꽝 해치운 건 좋았지만 그 바람에 고물이 다 되어 버렸어. 지구에 두고 온 엉터리 우주선 늙다리 호보다는 그나마 낫지만 말이야. 시간을 들여서 수리하지 않으면 지구에는 못 돌아갈걸."
스카이라크 호는 바다를 건너 콘달 나라로 들어갔다. 도로시와 마거릿이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시튼과 크레인은 얼굴을 마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지구의 아가씨도 우주인이 되면 꽤 배짱이 생기는 모양이다.
다나크 왕자의 걱정
콘달 나라 수도의 궁전도 마르도나레 나라의 것과 아주 비슷했다. 수백 문의 대포가 위세 좋게 꽝! 꽝! 축포를 쏘아 올렸다. 전에 마르도나레 나라에 들어갔을 때도 하늘을 나는 괴수를 쏘는 대포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아주 비슷하군,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마지막에 도망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튼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우주 함대의 편대가 당당하게 일렬로 날며 스카이라크 호를 환영했다. 스카이라크 호가 궁전 옥상에 닿자, 왕가의 사람들이 시튼들을 크게 반기며 영접했다. 시튼들 다섯 사람에게는 우선 금관이 씌워졌다. 그런 것을 씌워 줘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귀찮을 따름이었다. 거절하려고 했으나, 보통 관이 아니었다. 이것을 쓰면 상대방의 말을 알 수 있는 대단히 편리한 관이었다. 이 이치는 상대방의 머리에 흐르고 있는 뇌파라는 전파를 관이 포착하여, 그것을 이쪽 머릿속에 전파로 흘려보내면, 전파가 이쪽 뇌파에 작용해서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뜻을 알게 된다는 장치였다. 시튼들이 이 편리한 관을 쓰자, 그 순간부터 다나크 왕자가 아버지인 로반 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아버님, 이분들이 우리를 구출해 주었습니다. 시튼 씨, 크레인 씨, 도로시 씨, 마거릿 씨, 그리고 듀켄 씨. 이 듀켄 씨는 시튼 씨의 적이어서 지금 시튼 씨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만, 참 이상합니다. 마르도나레 나라의 궁전을 빠져 나을 때, 크레인 씨가 듀켄 씨에게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권총을 두 자루 빌려주었습니다. 시튼 씨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튼 씨와 듀켄 씨는 궁전 옥상의 마르도나레인을 깡그리 해치워 버렸습니다. 하지만 듀켄 씨는 시튼 씨들을 내친 김에 해치워 버리고 달아나려고 들지를 않는 겁니다. 태연하게 여전히 포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으음, 이 다섯 사람들의 별에서의 풍습이 그런 모양이겠지. 그리고 결국은 우리들하고 그리 다르지 않아. 정의라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되겠지. 그런데, 시튼 씨와 듀켄 씨는 원한이 쌓인 적인가? --- 흐음, 알 수 없군. 그러나 나는 이 다섯 분들이 좋구나.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렇다. 너를 구해 주셨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시튼이 웃으며 끼여들었다.
"저희들도 당신의 아드님인 다나크 왕자에게 구출되었습니다. 마르도나레 국왕의 계략을 알려 주었으니까요."
시튼이 말한 뜻도 왕이 쓰고 있는 관으로 이 나라 말이 되어 왕의 머릿속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왕은 기쁜 듯이 웃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소. 자, 함께 식사를 하십시다. 그리고 편히 쉬도록 하시지요."
식사를 마치고 훌륭한 방에서 쉰 다음, 감사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다음 날은 왕자들이 돌아온 축하 파티가 있었다. 그 다음 날은 환영의 파티였다. 파티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에 시튼들은 이 나라의 대신이며 귀족들에게 소개되어 감사의 인사를 받고, 궁전 안을 죄다 안내 받아 구경했다. 우주 전함이나 우주정, 가정용 소형 비행기 등도 구경했다. 스카이라크 호를 도크에 넣고 시튼들이 점검하고 났을 때, 다나크 왕자가 시튼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르도나레 나라에 잡혀 있을 때, 마르도나레 나라가 콘달 나라를 쳐부수기 위해 착착 준비를 하고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르도나레 나라의 우주 전함은 무서운 신 병기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우주 전함이 그것에 질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쪽은 상대를 쳐부술 준비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그것이 걱정입니다. 어쩐지 근간에 들어올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뭘요, 그렇다면 빨리 스카이라크 호를 수리해서 이 쪽이 먼저 마르도나레 나라로 날아가 그 황제를 궁전에서 납치해 오는 겁니다. 그렇게 포로로 해 두면 쳐들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한테 맡겨 두시오. 그 황제 이름이 무엇이더라? 음, 나르분이었지. 나는 그 자를 잡아 단단히 혼을 내주고 싶소. 몹시 불쾌한 놈이었으니까요.“
"서둘러 스카이라크 호를 수리하십시다. 우리 나라에는 우수한 기술자가 많이 있습니다. 지휘를 해 주십시오. 구리도 곧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나크 왕자는 눈을 빛내며,
"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스카이라크 호를 아레낙 금속으로 고쳐 만들면 어떨까요. 아레낙 금속과 여기 사용하고 있는 금속을 비교하면 그 단단함이나 버티는 힘이 강철과 판지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아레낙 금속은 그만큼 훌륭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 금속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소금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나 마르도나레 나라는 소금이 귀하기 때문에, 우주 전함의 선체의 두께를 큰마음 먹고 한다 해도 4센티미터 정도로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점에 착안해 주었소. 소금은 1백 킬로그램 정도 가지고 있으니까 당신네 나라에 20킬로그램쯤 기부를 하지요. 크레인, 괜찮겠지?“
"그래. 대단한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까 사례의 뜻으로 제공하는 게 좋겠군."
다나크 왕자는 좋아서 어절 줄 몰라 하며, 그 사실을 로반 왕에게 알렸다. 왕도 곧 달려와서 인사를 했고 20킬로그램의 소금을 50명이나 되는 병사가 지키며 운반해갔다. 시튼은 크레인과 의논했다.
"이보게 크레인, 이 나라에 스카이라크 호의 형제선을 만들게 해 놓는다면 마르도나레 나라가 쳐들어오더라도 끄덕 없을 걸세. 안 그런가? 금속 X는 그 괴상한 행성에서 많이 주워 가지고 왔겠다, 그 작은 토막 하나만 나누어주어도 다 써 내지 못할 정도의 원동력이 될 테니까 말야."
크레인은 찬성했으나, 이번에는 다나크 왕자가 말을 듣지 않았다.
"소금을 주셨는데, 거기다가 소중한 금속 X까지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받도록 해요. 그 대신 하루 속히 스카이라크 호를 완성시켜 주시오. 그것으로 서로 교환합시다.“
시튼은 금속 X의 주먹만한 덩어리를 스카이라크 호에서 가져와 다나크 왕자에게 주었다. 콘달 나라의 기술자들이나 기계공은 밤낮없이 일을 해주었다. 새로운 스카이라크 호에 사용될 아레낙 금속이란 무색 투명한 것인데, 투명하면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불편하다. 창문이 되는 곳 말고는 칠을 하기로 했다. 선체의 두께는 1미터 20센티미터로 했다. 시튼은 이 별에 살고 있는, 하늘을 나는 괴수의 투명한 비늘에 대한 것이 생각났다. 그 비늘은 우주 전함의 포탄을 퉁겨 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다나크 왕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렇습니다. 하늘의 짐승인 카를론은 아레낙 금속 광산에 있는 가루를 몸에 묻히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이, 카를론의 몸에 지니고 있는 소금의 작용으로 그렇게 단단한 갑주가 되는 겁니다. 아레낙 금속은 원래는 가루랍니다. 그래서 가루인 동안은 찰흙으로 무엇을 만들듯이 어떤 모양으로도 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시튼은 아레낙 금속이란 투명한 플라스틱 같은 것인데, 그것이 강철의 몇백 배나 단단한 것이라고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별에서는 백금이나 이리듐이나 은은 넘칠 정도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새 스카이라크 호의 내부 곳곳에 철 대신 백금을 쓰게 되었다. 백금은 지구에서는 금보다도 귀중한 금속이다. 백금을 쓰기로 결정되었을 때, 듀켄의 눈이 이상스럽게 기분 나쁜 빛을 띄며 반짝거렸다.
대공격
새 스카이라크 호가 완성되어서 이제부터 시험 비행을 하려고 할 때, 재미있는 뉴스가 들어왔다.
"SOS, SOS........ 카를론에게 추적 당하고 있습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날고 있는 수송기로부터였다. 카를론이란, 예의 하늘을 나는 괴수이다,
"시험 비행을 하려는 김에 좋은 일거리가 생겼군.“
시튼 일행 다섯 명은 용기 백배하여 스카이라크 호에 올라타고 이륙했다. 스카이라크 호는 눈 깜짝할 사이 현장에 당도하여 카를론과 수송기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 카를론은 특별히 큰 놈이었다. 카를론이 독수리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면, 스카이라크 호는 완전히 그 이름대로 종달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종달새에게는 종달새의 좋은 점이 있다. 열 개 정도나 되는 날개의 한 뿌리께에 파고 들어가서 착 달라붙어 번개처럼 전기를 방사해 주었다. 카를론이 아레낙 금속의 갑주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를론이 어느 정도 찌릿찌릿한 전기를 견뎌 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 그러나 이 신식공격에는 몹시 놀랐던 모양이다. 쩔쩔매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도 경쟁으로도 스카이라크 호를 당해 낼 까닭이 없다. 카를론은 난생 처음으로 자기보다 빠른 것을 만났을 것이다. 정신없이 바다 위까지 도망쳤다. 그래도 아직 구체는 쫓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곤두박질쳐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스카이라크 호는 대물 컴퍼스를 카를론에게 맞추고 있으므로 보이지 않게 되어도 문제가 없었다.
"자, 우리도 들어간다. 바닷속이든 어디든 마음 대로란 말이야."
시튼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대고 있다. 크레인은 계기를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시험 비행의 성적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크레인이 옆에 있기 때문에 시튼은 카를론과의 술래잡기를 즐길 수가 있다. 바닷속에 들어가자 즉시 조사등의 스위치를 켜고 카를론을 뒤쫓았다. 하늘의 거대한 짐승은, 이번에는 바다의 괴물이 되어 바다 밑 깊숙이 들어갔다. 조사등으로 비추어진 바닷속에서는 수많은 기묘한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도망쳐 다녔다. 깊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도깨비 꿈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튼이 물었다.
"어느 정도 내려왔나, 크레인?"
"약 6킬로미터 반 정도야. 이 정도 내려와도 선체는 끄떡도 없군."
카를론은 해저에서도 달아날 수 없다고 단념했는지, 이번에는 마구 올라가 바다를 뛰쳐나가자 하늘 높이 날개를 퍼덕이며 달아났다. 스카이라크 호는 여전히 쫓아갔다. 마침내 공기가 아주 희박한 높이까지 올라가 버렸다. 카를론은 숨을 헐떡거리며 급강하했다. 밑에는 진흙탕의 수렁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카를론은 그 곳으로 철퍼덕 파고들어 갔다.
"덕택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되는군."
스카이라크 호도 수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대물 컴퍼스를 의지하여 추적하고 있자, 무전기를 조종하고 있던 마거릿이 큰 소리로 시튼에게,
"큰일났어요. 궁전에서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마르도나레 나라의 우주 함대가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튼은 상승 레버를 당기고 있었다. 스카이라크 호가 수렁에서 날아올랐을 때에는, 크레인과 듀켄은 벌써 기관총의 점검을 시작하고 있었다. 궁전의 상공에 닿았을 때, 저 편 하늘은 이미 마르도나레 나라의 우주 전함 편대로 메워져 있었다. 궁전 옥상에는 스카이라크 호의 형제인 콘달호가 있었다. 다나크 왕자들 4, 5명이 콘달 호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날아오르지를 않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직 조종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적의 우주 전함으로부터 비오듯 포탄이 쏟아져 내려왔다. 포탄은 스카이라크 호에 맞고, 콘달 호에 맞아 궁전 옥상에서 작렬되었으므로, 사방은 연기와 부서져 내리는 파편으로 뒤덮였다. 시튼들도 이게 마지막인가 하고 눈을 감았으나, 그렇지가 않았다. 1미터 20센티미터 두께의 아레낙 금속은 포탄을 모조리 퉁겨 내고 있었다. 이만하면, 콘달 호가 날지 못하더라도 안에 있는 다나크 왕자들은 무사할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까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하자. 시튼은 스카이라크 호를 우주 함대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크레인과 듀켄은 우주 전함에 X총탄을 퍼부었다. 그 한 방마다 전함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하지만 포탄은 위에서도 밑에서도 날아왔다. 스카이라크 호는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적은 유도 미사일까지 발사해 왔다. 스카이라크 호 주위에서는 포탄이나 미사일이 작렬하여 번개와 불바다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스카이라크 호가 설쳐대는 바람에 적도 반수로 줄어들었다. 갑자기 포탄의 폭풍이 멈추었다. 하지만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적함의 살인광선 투광기가 일제히 스카이라크 호에 보라색 광선을 퍼부어 댔다. 그 광선을 정통으로 받게 되면, 빛은 눈을 태우고 뇌 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이것도 아레낙 금속의 투명한 창문 덕택에 상당히 힘이 약화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놓을 수 없었다.
"탐험용 검은 안경을 쓰라고."
듀켄이 소리치며 기구 상자에서 시튼들에게 안경을 획획 던져 주었다. 스카이라크 호가 행성 탐험용의 우주선이 아니었다면, 이런 안경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쪽도 카를론에게 했을 때처럼 전기를 방사해 보았지만, 효력이 있는 낌새는 볼 수 없었다. 빨리 쏘기 명수인 듀켄은 잽싼 겨냥으로 전함을 1백대 이상이나 공중에서 연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 총열이 새빨갛게 달아서 마침내 백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 이상은 쏠 수 없다. 크레인 쪽의 총열도 이미 새빨갛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겠군."
듀켄이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적함은 아직도 6, 70척 남아 있다. 시튼이 소리쳤다.
"도로시, 내 짐 상자 속에 우주 오토바이가 한 대 들어 있을 거다. 그걸 꺼내 다오. 크레인, 조종을 부탁한다. 듀켄, 나는 스카이라크 호를 뛰어나가 우주 오토바이로 콘달 호에 가서 그것을 조종하겠다. 그 동안 엄호를 부탁한다. 크레인의 총은 조금은 더 쓸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도로시가 우주 오토바이를 꺼내 오자 시튼은 재빨리 그것을 몸에 걸치고는 문을 열고 지상 3천 미터의 공중으로 뛰어나가 총알처럼 빨리 허공을 날았다. 몇 분도 안 되어서 콘달 호는 전선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시튼이 다나크 왕자에게 말했다.
"자, 잘 보도록 하시오. 조종 방법은, 먼저 스위치를 켜고 나서 발진 단추를 누른 다음 곧 레버를 잡고."
"아닙니다, 시튼 씨. 지금 당신은 조종에 대한 선생님이 아니라 전투 사령관이 되어 주셔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하입니다. 무엇을 하면 좋은지 명령해 주십시오. 즉시 배치에 임하겠습니다.“
다나크 왕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명령하겠소. 잘 들어요. 다나크 왕자는 제1총좌. 도아드 대신은 제 2총좌. 무레이드 대신은 총알 나르기. 데팔 고관은 계기의 바늘 읽기요. 자, 시작 적에게 5백 미터 가까이 까지 접근하면 잘 겨누어서 쏘아야 해요.“
크레인, 듀켄들의 스카이라크 호는 다른 전술을 발명하여 대단한 기세로 적함을 꽝 꽝 해치우고 있었다. 적함에 직접 부딪쳐 가는 방법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카이라크 호에 쓰인 아레낙 금속의 두께는 1미터 20센티미터이며, 적함은 덩치는 커도 선체의 두께는 3센티미터였다. 스카이라크 호가 포탄보다도 빠른 속도로 힘차게 부딪치면, 전함의 선체를 종잇장처럼 뚫고 나갔던 것이다. 우주 전함은 차례차례 산산조각이 나서 추락해 갔다. 거기에 시튼이 조종하는 콘달 호가 끼여들었다. 겨냥은 서툴지만 무서운 X총탄을 퍼부어 댄다. 전함은 마구 추락해 갔다. 살아 남은 약간의 전함이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시튼이,
"하나님, 제 탓이 아닙니다.“
라고 말한 뒤,
"이쯤에서 이제 봐 주도록 할까. 그런데 다나크 왕자님, 정신없이 싸우느라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만, 아군의 우주 전함은 도대체 땅 속에라도 파고 들어가서 숨어 버린 겁니까 ? 아무 데도 모습이 보이질 않는군요."
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시튼 씨. 반대편 국경에서 쳐들어온 적 우주 전함과 대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쪽으로 쳐들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우주 전함 모두를 그 쪽으로 돌렸다가, 이 쪽에서 허를 찔리는 바람에........ 시튼 씨들이 안 계셨더라면 수도는 전멸해 버렸을 겁니다.“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콘달 호는 적함을 또 하나 추락시켰고, 스카이라크 호는 마지막 세 척을 격추시켜 버렸다.
"그럼, 우주 전함끼리 싸우고 있는 곳으로 응원하러 갑시다.“
그러자, 서툰 솜씨로 총을 쏘고 있던 도아드 대신이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시튼 씨, 그 쪽은 응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르난 지휘자가 무전으로 연락해 왔습니다. 거의 무찔러 버렸다고 합니다.“
안도의 숨을 내쉰 시튼은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렇다면 착륙합시다.“
그러나 밑을 내려다보니, 적 우주 함대의 습격으로 궁전 여기저기가 날아가 버려, 무참한 광경으로 변해 있었다. 이쪽도 심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콘달 호는 포탄으로 파 뒤집혀진 적토 위에 착륙했다. 스카이라크 호도 천천히 내려왔다. 공병대가 허둥지둥 길을 치우기 시작했다. 로반 왕이나 왕족들이 시튼들을 포옹하러 달려왔다. 넘어져도 무릎을 다치지 않도록 해 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운 지구로
로반 왕은 다섯 명의 지구인과 마주 섰다. 로반 왕 뒤에는 다나크 왕자도 있었고, 그밖에 많은 왕족, 대신, 고관이나 장군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주위를 수도의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로반 왕이 말했다.
"위대한 지구인이여, 당신들의 포로인 듀켄 씨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것을 허락해 주시겠소? 듀켄 씨는 우리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일에 크게 이바지해 주셨소."
"좋습니다.“
시튼과 크레인이 대답하자, 로반 왕은 가까이 걸어가 듀켄에게 묵직해 보이는 자루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리고 듀켄의 왼쪽 손목에 보석을 박은 팔지를 끼워 주며 말했다.
"지구인 듀켄 님은 우리 나라의 최고 귀족이 되어 주시길 바라오."
다음에 왕은, 크레인의 손목에 루비 같은 빛깔의 팔찌를 끼웠다. 여기에도 많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지구인 크레인 님, 나는 당신이 이 콘달 나라에서 나와 같은 영광을 갖는 분임을 이에 발표합니다.“
귀족들은 크레인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 왕은 시튼에게 다가가자, 7개의 커다란 보석이 박힌 팔찌를 내밀며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보이도록 쳐들었다. 귀족들은 무릎을 꿇었고, 도성 사람들은 땅에 납작 엎드려서 절을 했다.
"지구인 시튼 님, 나는 당신을 이 콘달 나라의 대군주임을 여기서 선포합니다. 나는 당신의 신하로서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도로시와 마거릿은, 언제 어느 때 콘달 나라에 오더라도 최고의 귀빈으로서 맞아들이겠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묵직한 자루를 하나씩 받았다.
"우리도 이것저것 선물을 받았으니 모두 함께 절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이제 슬슬 지구로 돌아가자."
시튼이 이렇게 속삭였다.
그 날로 스카이라크 호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연료인 구리도 충분하게 실었다. 콘달 나라의 우주 함대가 전송의 예포를 울리는 속을, 스카이라크 호는 천천히 상승해 갔다. 듀켄은 즉시 얻은 자루를 열고 내용물을 조사했다. 보석이 가득 나왔다. 지구에 돌아가면 억만 장자의 백 배 정도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듀켄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시튼, 나는 그 콘달 호도 갖고 싶었어. 그것의 내부는 거의 백금이니까 말이야.“
듀켄은 시튼이나 크레인이 없었다면 콘달 호를 태연히 빼앗아 버렸을 것이다. 시튼과 크레인은 자기네가 받은 보석을 자본으로 하여, 지구상의 어느 나라 소년이나 청년이라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충분한 돈을 대주자고 의논했다. 며칠인지 지나서 우주를 나는 스카이라크 호의 창으로 그리운 모양의 성좌가 보였다. 시튼은 춤을 출 듯이 기뻐했다.
"어이, 오리온 별자리다. 기분 좋구나.“
얼마 안 되어 지구의 우두머리인 태양도 보였다. 지구도 보였다. 지구는 포근한 빛으로 쌓인 연두색 반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표는 솜 같은 구름에 둘러싸여 있었다. 조종을 하고 있는 시튼 곁으로 듀켄이 왔다.
"자네들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했나?“
시튼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거기 대한 의논은 하지 않았어. 나도 결심이 서질 않아. 하지만 나는 자네하고 전투 시합장 위에서 힘껏 싸워 자네를 녹아웃 시키고 그것으로 모든 걸 용서해 주고 싶은 생각도 들어. 자넨 이번 표류 여행 중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듀켄, 자네는 무서운 악당이니까 앞으로도 그 악당 짓을 그만두진 않겠지."
"틀림없이 그럴 거야. 나는 내 쪽에서 어떻게 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그러나 한 마디만 하겠네. 나는 이 여행에서 상당한 재산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후 세계철강의 앞잡이가 되어서 어물어물하는 일은 필요 없어지게 되었어. 다만 유리한 좋은 얘기가 있을 때는 별도지만 말이야. 나는 여전히 시튼과 크레인의 적으로서 대해 갈 작정이야. 이 말만은 분명하게 해 두겠어 자네들을 죽이는 편이 내게 이롭게 될 때에는 사정없이 죽이겠네.“
듀켄은 느릿한 말로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농담으로 하고 있는 말은 아니었다. 차가운 눈으로 시튼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튼도 마주 노려보았다.
"자네는 괴상 망측한 지구의 괴물이다. 자네는 흡사 <전쟁> 같은 인간이다. 전쟁이라는 것을 인간의 모양으로 만든다면 꼭 자네 같은 것이 만들어질 걸세."
"마음대로 말해, 나는 특별히 반대는 하지 않겠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했고, 자네도 하고 싶은 말은 다했으니까."
듀켄은 제 방으로 들어갔다. 스카이라크 호는 지구로 차츰차츰 접근하고 있었다. 지구의 표면은 구름에 싸여 있었는데, 이쪽 편은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지표의 모양을 어슴푸레 알 수 있었다. 스카이라크 호는 파나마 운하의 서쪽 끝 바로 위에 있었다. 시튼은 계속 스카이라크 호를 하강시키다가 정지하고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항로를 정했다. 한편 듀켄은, 방안에서 자기가 납치용 우주선에 탔을 때 입었던 괴물별 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장 속에서 시튼의 우주 오토바이를 꺼냈다. 듀켄은 그것을 자기 물건 속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듀켄은 우주 오토바이를 착용하자, 악마 같은 엷은 웃음을 머금고 에어 록에 들어가 문을 열고, 고도 3천 미터의 대기 속으로 뛰어나갔다. 시튼과 크레인이 이 사실을 안 것은 워싱턴 상공 가까이 이른 뒤였다.
"아차, 그 친구는 우주 오토바이를 노리고 있었구나. 하지만 달아나도 어차피 어디 있는지는 알게 돼. 또 하나의 대물 컴퍼스가 아직도 듀켄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말이야. 워싱턴에서는 또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없게 되었는걸.“
시튼은 싱글싱글 웃었다. 크레인도 싱긋이 웃었으나, 도로시와 마거릿은 듀켄을 체포하여 경찰에 끌고 가지 못한 것이 못내 불만인 것 같았다. 크레인의 집 상공에 가니 착륙장에 불이 켜져 있었다.
"대관절 몇 주일이나 지났을까? 9주일쯤 되었을까? 도무지 모르겠군. 지구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나 시로오는 비록 9년 동안이라도 착륙장의 불을 켜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크레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카이라크 호는 천천히 착륙했다. 시로오가 달려왔다. 크레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로오의 손을 잡고 그리고 얼싸안았다. 그런 다음 시튼, 크레인, 도로시, 마거릿이 각각 번갈아 서로 포옹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포옹이 끝나자 시튼은 싱글벙글 웃었다.
'음식은 지구 것이 뭐라고 해도 맛이 좋다. 제일 먼저 무엇을 먹을까.'
- 끝 -
작품 해설
우주여행과시간여행- <우주의초고속선>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라는 미국의 아저씨가, 스카이라크 호라는 등근 우주선과 소탈하고 좀 성급한 데가 있는 젊은 과학자 시튼, 시튼의 최대의 적인 듀켄 박사가 등장하는 통쾌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1928년의 일이었습니다. 등근 우주선이라고 하면 요즘은 이상한 모양으로 여겨질 것 같지만, 그 무렵엔 여러 이야기에서 활약한 형이므로 미국의 오래 된 SF 잡지의 표지에도 이따금 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명한 영국의 H.G. 웰즈의 작품 <달세계 탐험>의 우주선도 둥근 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주의 초고속선>은 스카이라크 호 시리즈의 첫작품에 해당합니다. 이 첫 작품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대단한 평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미스는 부탁을 받고 두 번째 작품, 세 번째 작품을 계속 써 나갔는데, 첫 작품에서 계산하여 6년 반이 걸려서 세 번째 작품을 끝냈습니다.
그 후 만 30년이 지난 1965년에, 스미스는 시튼의 적인 악당 듀켄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새로이 썼습니다. 그것을 포함해서 스카이라크 호의 시리즈는 네 편이 되었습니다. 듀켄이라 하면 여러분은 '아, 그 얄미운 악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리즈가 진전되어 나아감에 따라 악한은 악한 나름대로 인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팬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지요. 스미스는 이 네 번째 작품을 끝낸 1965년 9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스카이라크 호 시리즈도 네 편으로 끝났습니다. 그 때 스미스는 75세였습니다. 앞서, 이첫 작품은 1928년에 완성되었다고 썼는데, 그 때 벌써 작가인 스미스는 원자력 이용의 에너지를 작품 속에서 쓰고 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비행가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무착륙 비행을 단엽 프로펠러기로 해내어 국민적 영웅이 된 것이 그 1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알 것입니다.
이 첫 작품은, 휴고 건즈백이 인정을 하고 자기 잡지에 실었습니다. 이 건즈백은 과학 기술자로서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건즈백도 <스카이라크 호의 모험>의 원자력 이용에 대한 이야기에는 놀랐던 모양입니다. 그는,"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지만, 몇십 년인가 뒤에 인류가 원자력의 수수께끼를 풀어 원자력엔진 같은 것을 갖게 되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원자력 이용에 대한 이야기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서 읽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는 상당히 유별난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하는 착상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음으로 언급해 두어야 할 것은 우주 모험 이야기 속에서 이 스카이라크 호가 태양계 밖으로 날아나간 최초의 우주선이었던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념할 만한 작품입니다. 그 때까지는 달이나 화성이나 금성 등, 우리들의 태양계 별로 여행하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인류가 태양계 밖으로 최초로 날아간 것은 시튼 들이었다는 것이 됩니다.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는 1890년에 미국의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미스 가는 영국에서 이민해 온 집안이었습니다. 스미스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는 워싱턴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으나 곧 아이다호로 옮겨 개척농민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시튼이 산이나 숲에서 놀고 통나무집에서 지낸 일이 있다고 씌어 있는데, 아마 소년 시대의 스미스의 추억일 것입니다. 스미스는 도로나 다리를 만드는 기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광산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형인 대니얼이 그것을 보다못해 마침 손에 들어온 3백 달러 이상의 돈을 스미스에게 선뜻 내 주며 공부를 하도록 권했습니다. 그 때 누나들도 각각 돈을 보태 주었다고 합니다. 스미스는 아이다호 대학에 들어가 화학 공부를 하여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아직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점도 주인공인 시튼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스미스는 1915년경부터 직장에 다니는 한편, 우주의 모험 이야기를 친구와 의논하여 쓰기 시작, 2년간 계속해서 썼으나 곧 흥미를 잃고 도중에서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수년 후 스미스는 갑자기 생각나서 이야기를 계속해 써서 1920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이 스카이라크 호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완성은 했지만 이번에는 출판사가 상대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원고를 그대로 놓아 둔 채 8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스미스는 우연히 책방에서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잡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잡지는 자기 이야기를 발표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하고 곧 잡지사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원고를 받은 사람이 앞서 말한 건 건즈백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잡지에 실리게 되자 대단한 평판을 불러일으켜, 제 2작으로 계속이 되었을 뿐 아니라 SF의 고전으로서 지금은 프랑스어, 에스파니아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어 온 세계에 애독자를 가지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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