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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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2-4. ‘미완’의 사상
2013년 01월 12일 10시 12분  조회:3819  추천:30  작성자: 김문학
김문학《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4. ‘미완’의 사상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한 글도 있을 수 없다.”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 왔으며, 그래서 나는 자신이 쓴 글이 비록 쓸 당시에는 흡족한 글이었더라도 수성상이 지나고 다시 再讀해 보면 구석구석에 흠이 보이고 그때 좀 더 잘 썼을 것을 하고 지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리, 상식상의 오유가 아니라면 나는 거의 지난 글에 손을 대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과거의 얼굴 사진이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수정하지 않듯이.

 

“미완(未完)”의 결함, 그것이 다음은 좀더 잘 하지고 자신을 밀어주게끔 약속한다. 미완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글쓰기에 있어서도, 그리고 인간의 행동양식의 내면에 있는 의식세계로서의 사상에 있어서도 하나의 결함적인 우정이 아닐까.

 

나는 자신을 미완성의 인간, 미성숙의 남자라고 자안한다, 내 심성의 발로인 글과 달리 실생활의 나는 少年같은 치기와 童趣에 머물러 있다. 소년과 같은 “미성연”의 치졸함과 동심은 내가 글쓰기에 충실하여 스스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영구히 즐겁게 뒷받침해 주는 에너지로 되고 이는 것이다. 당연히 연령적, 육체적 의미의 미완성 뿐 만이 아니다. 나는 내 행동양식의 총설계사인 내면의 思想 역시 항구히 “未完”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나는 너무 성숙되고 완벽하고, 완성된 모든 事象에 대해 천연적으로 거부감과 위압감을 느낀다. 차라리 흠이 많아도 독특한 뭔가를 지닌 것에 더 공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학생들 작문, 레포터의 채점도 사려가 없고 멋있고 완성된 구성의 문장보다도 미숙하고 결함이 있는 글이라도 그 중에 독특한 사고, 기발한 견해, 관점이 있다면 높이 평가한다. 노란 자위가 없는 계란은 아무리 크고 빛깔이 화려해도 영양가는 평가하기 어렵지 않은가.

 

술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다. 酒香 이 있으면 나는 그런 술이 더 좋다. 유명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의 유니크한 개성이 있는 물건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쪽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성도 그러하다. 너무 완벽한 미인, 너무 똑똑한 (체하는) 여성에게서는 오히려 모종의 고압감이 있어서 마음이 부담스러워진다. 오히려 썩 미인은 아니더라도 어딘가 독특한 품위와 멋, 센스가 풍기는 知的향이 있는 여자가 나는 좋다. 내가 20,30대에는 용자단려한 미인을 선호했으나 40대에 들어서니 좀 철이 들었는지 “용모보다 마음”의 미인을 선호하게 되어가고 있다.

 

흠이 있어서 아름답다. 세상은 추가 있어서 미가 더 돋보이듯이, 사람들은 흔히 “옥에 티”라고 흠을 꺼리는 경험이 있으나 오히려 과히 깨끗하고 미끄러질 듯 매끈한 옥보다도 미인의 아래턱에 점이하나 붙어 있듯이 그런 “티”가 있어 더 섹시하고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洪自誠의 <菜根譚 채근담>에서도 “花看半開, 酒飮微醉” 즉 “꽃은 절반 핀 꽃이 좋고, 술은 약간 취함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구절 뒤에는 “영만(盈滿)”을 바라는 자는 심사국려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 꽉 차지 않고 어딘가 빈 칸이 있고 결점이 보이는 미완의 사상, 이것이 나의 삶을 지배하는 主義중의 하나이다. 만약 내게 사상이 있다고 한다면, 나의 사상은 늘 변하는 흐름의 과정에 있다고 해야 함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변하는 프로세스, 언제 어떻게 어떤 方向으로 바꿀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내 사상을 “미완”으로 규정해도 좋을 만큼, “미완”그것을 즐기기도 한다. 무릇 사물이나 인물이나 그 사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도중에 있을 때가 보람 있고 멋있게 보인다.

 

완숙한 사물은 결국 종식을 의미한다. 죽음의 종식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나는 완숙한 紅柿가 무르익어서 땅에 떨어져 완숙의 죽음을 구가하는 기껍고도 애달픈 모습을 목격했다.

또 대학 근처의 은행나무 잎들이 샛노랗게 물들고 빨갛게 단풍이 든 가로수의 잎사귀들이 우수수 낙엽으로 떨어지는 풍경을 보았다.

이처럼 자연의 만물들도 완숙의 고봉 기에 달하면 곧 그것으로 해서 사라짐의 그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짐이 죽음이 아니 더 라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존시가 그렇게까지 병상에 누워 한 잎 남은 나뭇잎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려준 베어면의 마음씨도 아름답거니와 사라질 때 사라지는 낙엽들도 아름답다. 낙엽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자신의 죽음으로 봄이 오면 신록이 피는 희망을 묻었기 때문이리라.

 

“희망”은 죽음에서도, 미완에서도 괴어나는 것이다. 내가 자신의 연구, 글쓰기에서 부지런히 꺾기지 않고 견지할 수 있는 굵은 심(芯)이 있다면 그 어떤 관념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완성된 완숙이 아닌 미숙, 미완의 사상이다. 아직 부족하다. 아직 모자라다. 아직 골똑 차지 못한 빈구석이 너무 많다. 그러니 좀 더 잘 쓰고 좀 더 많이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연구하고 독서하고 글쓰기를 해왔다.

빈칸의 계단, 그 계단의 공백을 매우면서 한층 한층 위로 오르는 희열, 변하고 또 변하는 자신, 왜 변해야 하는가고 물으면 나는 변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준비해 둔다.

나는 “코스모폴리탄”, 한중일 3국을 다 조국으로 사랑하는 인간이다. 협애한 민족, 국가관의 애국주의의 포로가 아닌 이념의 좌우를 넘어선 티브를 깨고 벌거벗은 왕님을 벌거벗었다고 하는 어린이와 같은 진실을 말하는 인간이다.

 

아마 나 같은 左와 右를 넘어서, 조국을 3개 갖고 있다는 말에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왜곡하는 것은 나는 싫다.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보지 않고 꼭 무슨 이념의 색깔로 보는 그런 것이 말이다.

 

또 한해의 무르익은 성숙의 가을이다. 5층 서재의 창가에 서면 울긋불긋 늦가을의 색깔을 장식하는 단풍잎이 보인다. 그리고 탐스럽게 익은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성숙하는 가을 풍경은 눈요기에도 너무나 풍요롭기만 하다. 익어 떨어진 감들의 시해들이 무참하게 시야에 안겨온다. 인간의 시해라면 백골화된 참경(慘景)이겠지....

릴케는 꽃이 만발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 꽃이 지는 열매가 맺는 “완숙”의 봄을 슬퍼했던 것일까. 그가 가장 좋아한 꽃은 화왕이라 불린 장미꽃이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장미엔 가시가 돋혀 있었다. 장미에게도 무서운 흠이 있었던 것이다. 그 가시에 찔려 릴케는 죽는다. 그의 시처럼 그 죽음도 수많은 소녀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는 릴케처럼 죽으면서도 소녀들을 울린 그런 시도 쓸 줄 모른다. 더구나 나는 완숙을 거부하는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이 人間的으로 미숙한 자신을 알고 있다.

이것저것 허울을 다 벗기고 나면 나는 앙상한 명태와 같은 마른 사람이다. 아니 피 흐르는 미이라이다.

 

성격은 오팍 한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혼자 있기를 즐기고, 나긋나긋 말랑말랑해 보이면서도 땅땅 할 때는 땅땅해서 자기 줏대를 아니 굽힌다. 인정이 박하고 냉정하며 생긴 얼굴같이 새 차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게다가 자중(자기중심)적이며 표현옥이 왕성하고 자존심, 자부심이 강해서 자찬으로 에스컬레이트 하는 면이 많다.

생활에서는 자유분방, 방종형이지, 먹는 데는 입이 발아서 까다롭지, 몸이 또 유년시절 때부터 병약해서 약골인 주제이니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다. 그래서 굳이 우익(右翼)이니 좌익(左翼)이니 하는 날개가 따로 필요 없다.

한마디로 결점 투성의 인간이다.

이런 나는 한곳에 오래 있으면 아니 된다. 여기저기 경계에서 살아야 내 특성을 발휘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미완인”이기에 자기에 대해 자부하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自信하면서도 不滿型 사나이다. 자부는 있되 자족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미완의 공백, “빈칸메우기”라는 말을 즐긴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놀트 겔렌은 <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1904)에서 “인간은 생리학적 결함을 文化的行動으로 메우고 있는 존재로서, 원숭이 태아가 문화적으로 훈육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결함動物”의 인간은 누구나 그 결함에 메우는 행동을 하도록 숙명을 타고 난 생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빈칸 메우기”의 설법 같이 나는 자신의 미완의 “빈칸”을 한 칸 또 한 칸씩 메우는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한 칸 한 칸씩 사상은 바뀌고 인간은 변한다.

 

빈칸은 많터 그래서 할 일은 많다. 조급히 우물에서 숭늉 찾는 성급함보다 나는 “Festina lente”(천천히 서두는) 행동원리를 준수한다.

준비 안된 성급함은 금물이다. 거북이 같이 “서서히”, 토끼같이 “서두는”나 자신만의 미완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결국 그 한마디다.

완숙한 紅柿가 되기보다는 떫은 미완의 靑枾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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