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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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성욕연구”라는 이름의 학문
2014년 01월 08일 10시 23분  조회:6393  추천:12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42)

"성욕연구"라는 이름의 학문

김문학

     

  동양3국의 성과 에로스에 관한 전통은 주로 소설, 시 등 문학이란 장르를 통해 근대에도 방대한 작품을 양산하면서 면면히 이어져왔다. 그런데 《금병매》, 《홍루몽》이나《겐지물어(源氏物語)》 등 기서(奇書)들을 탄생시킨 동양에서 성, 특히 인간의 “성욕”에 대한 연구는 근대에 들어 1910년경에야 시작된다.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백년전 “성욕”을 연구한 시대에 대해 살펴보자. 1907년 일본의 자연주의문학의 대표적 소설가 타야마 카다이(田山花袋)가 유명한 소설 《이불》을 발표한다. 작가자신의 모델로 실재했던 녀제자에게 성충동을 느끼는 고백적소설로서 대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불》이 일본 근대의 성욕력사에 결정적이였던것은 성욕이란 억압된것을 ‘발견’했기때문이다. 그전에 ‘색정’은 있어도 ‘성욕’은 없었다.” 성욕을 고백하고 내면의 진리로 말할수 있었다고 일본 인류학자들은 지적한다.  “성욕연구”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은 자연주의문학이 표방한 “성욕만족주의” 등을 야유했던 1910년 대쇼기에 들어서서였다.

  사실 일본의 성 및 성과학에 관한 연구는 명치이전부터 성행했으며 방대한 연구업적을 쌓아왔다. 그중에서도 1910년대의 사와다 쥰치로, 하부토 등이 대표적이다. 사와다는 그의 저작 《성욕론강화》(1912년)에서 “성욕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세인들도 역시 지대한 취미를 가지고 그 학설을 잘 듣는것은 기본 사회현상이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성욕연구가 성병방지, 불륜, 청년남녀의 타락과 자살방지, 국민의 건강, 경제적빈곤을 구제하는 색정에서 생기는 범죄예방”으로 그 의의를 갈파한다. 성욕을 사회와 결부시킨 《성욕에 의한 사회범죄사》(1914년)도 흥미로운 저작이다.

  조금 지나 하부토가 《일반성욕학》(1920년)을 출간한다. 목차를 보면 “성욕과 성욕학, 성욕학 총론, 련애론, 매음론, 결혼론, 성욕심리론, 응용성욕학, 성욕교육론”이 망라되였으며 “생식기” 역시 새론운 “발견”이였는지 그에 대한 론술이 많이 보인다. 이 책은 당시 일반의 성적관심사를 집대성시킨 량서로 호평이였다고 한다.(이시하라 치아키)

  왜 “성욕”을 연구하는가에 대해 하부토박사는 “성욕은 생물계의 량성의 본능이며 량성간의 감정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연구하는 대상으로 한다고 밝힌다. 지금까지 성을 쉬쉬하며 금욕했던 유교의 성억압에 대한 “해방”이기도 했다.

  《남녀의 연구》, 《자연계의 량성의 비밀》, 《남녀성의 결정론》, 《일반성욕학》, 《량성의 성욕과 그 차이》 등 많은 저작이 홍수같이 “성욕학”의 계보를 이루며 쏟아지였다. 남녀의 성차이와 성욕차이를 분석비교하면서 “어떤 성욕을 갖추어야 하는가”고 설문하고 그에 답안을 제시해간다.

  일본인으로서 규범의식을 만들어내려고 한 시대인만큼 성욕 역시 그 틀안에 규정시켜서 연구해석하려고 한것이 당시의 연구자들의 기본 자세였다.
  “남성은 발동적이고 녀성은 수동적이다”는 성차이에 립각하여 “적당한 성교를 해야 하며 과도한 성교는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은 당시에 있어서도 “상식”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1920년대에 학교교육의 성교육과 결부시킨 “성욕교육론”이 성행하며 《최신성욕교육》(1921), 《성욕교육의 연구》(1925) 등이 간행되였다. 당시 “성교육”이란 말은 “성욕교육”으로 되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례는 1905년 일본의 “성욕론”이 청조의 상해에 진출한 일본인에 의해 “미개한 청국의 개명을 위해” 한문으로 쓰여진 《남녀위생신론》이 간행된다. 흥미로운것은 그 책에는  “도리에 어긋나는 음사”로 “수음”,  “계간”,  “수간” 등을 론하며 “과도한 오나니가 남녀의 불임을 자초한다”고 지적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성모럴을 대륙 청국에까지 수출시키고저 한것이다.

  중국에서 성욕연구 및 세소로지(성과학)이 본격적으로 탄생하는것은 1920년대이다. 중국의 에로스문화를 돌이켜보면 청조와 중화민국시대에 정신적금욕주의가 전반 사회에 침투되여 성을 추악한, 부끄러운것으로 터브시했으며 그런 분위기가 농후하게 양성되였다.

  이런 와중에 장경생(張竟生)이 프랑스의 박사학위를 따고 1920년대 귀국하여 북경대학에서 당시 백안시했던 성행위 및 성심리, 성욕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였다. 당시 이는 파격적인 “성욕연구”였다.

  1926년 그는 《성사(性事)》란 타이틀의 중국근대 첫 성연구리포트를 출간한다.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원래 남녀의 성기란, 성적충동이란 사상(事像)은 과학적인 사연이다. 성기는 우리의 체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서 그 구조를 리해하면 인체생리학의 다수를 해명할수 있다. 또한 성의 인체에 대한 영향을 연구하는것은 인간의 여러 행동원리, 우생학 등과 관련된다.”

   본문은 일반 민간인의 성체험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저자가 조언을 하는 매우 생동한 문체로 되여있다. 본문에서 장경생은 “우리 나라에서는 수천년래 낡은 도덕을 중시하였는바 남녀성기는 장애물로 간주하여 모두 생기를 잃고있다. 성기의 퇴화, 성에 대한 흠미의 저하는 태여나는 어린이의 체력과 지능저하로 통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1948년에 발간된 미국 성과학의 유명한 《킨제이 보고서》보다 22년이나 앞서며 세계 최초의 성체험연구리포트로서 세계적명성이 높다. 일본에서는 수차례나 번역, 번안하기도 하여 장경생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1926년 《성사》의 출판으로 구식도덕에 연연하는 당시 사회풍조하에 벌금처분을 받게 되고 저자 역시 북경대학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뒤 상해로 탈출한 장경생은 상해에서 서점을 설립하고 월간지 《신문화》 편집, 발간하는데 성적 번뇌의 상담, 성체험리포트도 게재했으며 당시 최대부수의 《생활주간》을 추월하여 환영받는 잡지로 일약 성장한다. 그러나 상해 관헌의 눈은 의연히 엄했으며 가정적인 일로 결국 상해에서의 활동은 2년여로 좌절당한다.

  근대 중국의 탁월한 성심리학자, 교육자인 장경생은 만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다가 1970년 82세로 절명한다. 현재 그의 고향 요평현에는 성과학연구의 선구자로서 그를 기념한 묘비가 세워졌고 그의 전집이 1998년 광주출판사에서 출간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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