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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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청말의 일본본토 습격계획
2016년 03월 29일 16시 03분  조회:4007  추천:28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79)

청말의 일본본토 습격계획

김문학

 

  근대 동아시아 백년사를 회고할 때 동아시아 동쪽 끝머리의 작은 섬나라 일본이 거대한 대륙 중국과 조선반도를 침략, 점령, 지배의 력사적사실은 있으나 대륙 중국과 반도가 섬나라 일본을 한번도 침략, 습격한적이 없는 중대한 사실이 눈에 뜨인다.

  중국의 근현대 사학자들은 말한다. 사실 1937년부터 45년사이의 항일전쟁, 특히 1945년 일본 패망의 8월에 중국이 일본 본토까지 진군하여 일망타진할 기회는 있었다고.

  당시 일본침략자를 중국 대륙에서 몰아내는데 결정적 작용을 한 요소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중국, 로씨야, 미국, 일본의 립장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로정하고있다. 일본인은 중국군에게 패북당한것이 아니라고 고집하며 중국인학자는 중국군, 공산당군대의 력량을 높이 평가하고있다. 물론 로씨야학자는 쏘련군의 참전을 과대평가하고 미국측 학자는 미국의 원폭투하를 최대한 결정적인소로 단정하고있다.

  필자는 이 4국의 요소가 서로 종합하여 일본의 신속한 패망을 초래했다고 보는편이 타당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싶다.

  그런데 단 한가지 의문만은 여전히 전승국 국민들의 뇌리속에 남는다. 왜 당시 승승장구로 일본군을 무찌르던 중국이 일본 본토까지 침습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복단대학 국제관계 및 공공사무학원의 교수 곽정평(郭定平)은 “기실 당시 쏘련이 일본 본토까지 습격하려 했으나 미군의 작전이 너무 신속했기에 관두었다”고 밝힌다.

  이미 물먹은 담벼락처럼 무너진 일본에 대해 전면습격작전은 무의미하며 일본 역시 촨황만 보류하면 무조건 투항하겠다고 승낙했기때문에 미국과 장개석이 상담결과 일본 본토 전면 침공을 중지했다는 학자(팽훈후)의 해석이 있다.

  결과 미군의 GHQ가 일본을 7년간 점령하면서 미국식 민주국가로 일본을 개조시켜버렸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글에서 쓰려는것은 100여년전 청조말기에 1894~95년 청일갑오전쟁기간 일본 본토 습격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단서는 당시 청나라의 외교관인 송육인(宋育仁, 1858~1931)이 “일본 본토 습격계획”을 청조정부에 제출하는것으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선 송육인이란 인물은 누구인가로부터 실펴보기로 하자.  

  《송육인 사상평전》[황종개 등 저(黃宗凱 等著)]에 따르면 송육인은 사천성 자공시 출신의 청말 “신학거자(新學巨子)”로서 유신사상가, 지식인, 외교관이였다. 그의 사상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출판, 군사, 외교, 법률 등 폭넓은 령역에 미쳤다. 1886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 서길사로 승급했으며 북경에서 유신사상을 접촉하고 황준헌 등 개량파지식인과 친분을 쌓으면서 의식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
  1887년, 그는 중국 근 30년의 양무운동의 파탄에 따른 반성을 했으며 양무파를 비판하고 유신변법을 주장한 《시무론(時務論)》을 집필해 중국이 개량의 길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송육인 사상평전》[황종개 등 저(黃宗凱 等著)]에 따르면 송육인은 사천성 자공시 출신의 청말 “신학거자(新學巨子)”로서 유신사상가, 지식인, 외교관이였다. 그의 사상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출판, 군사, 외교, 법률 등 폭넓은 령역에 미쳤다. 1886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 서길사로 승급했으며 북경에서 유신사상을 접촉하고 황준헌 등 개량파지식인과 친분을 쌓으면서 의식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

  1887년, 그는 중국 근 30년의 양무운동의 파탄에 따른 반성을 했으며 양무파를 비판하고 유신변법을 주장한 《시무론(時務論)》을 집필해 중국이 개량의 길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시무론》은 경제면에서는 민족공업을 발전시켜 외국경제의 침략을 막아야 하며 정치면에서는 유럽의 군주립헌제를 따라 배워서 군민공치(君民共治)의 제도를 실시할것을 창안했다. 뿐만아니라 군사, 문사 등 분야에서의 개량을 소리높이 주장했다.

  1889년 한림원의 검토로 되였으며 혈기왕성한 그의 문장은 뭇사람의 시기를 사기도 했지만 광서황제의 사랑을 받기도 했으며 거물급 학자 옹동화에게 소개시키기도 했다.

  1891년 과거시험관으로 광서를 시찰하면서 청국개혁의 절박성을 감수했다. 1892년 공친왕에게 경제개혁, 신문개방, 교육발전 등 개혁안을 제출했다.
  1894년 공사를 수행하여 유럽에 출사한 그는 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정을 적극 조사, 접촉했으며 그 경위를 《채풍록(采風錄)》 4권으로 출판하여 서양의 정치, 풍습, 문화를 소개하면서 유신변법사상을 강도높게 진술한다.

  청일갑오전쟁 발발 당시 런던에서 중국 주 영, 불, 이, 벨기에 4국 공사참찬으로 있던 송육인은 청나라 조정에 상서를 올려 구체적인 전략을 진술했다.
  황해해전 실패후 송육인은 즉시 파격적인 전략을 구상했다. 즉 영국 등 군함을 구매, 어뢰쾌속정 10척에 외국수병 2천명을 모집하여 수군려단을 무어 외국상업단체로 가장해 일본의 나가사키와 동경을 습격하는 방안이다.

  이 모략을 송육인은 청나라에 보고하여 비준을 바랐으며 당시의 실력자인 장지동, 류곤일(劉坤一)과 련락하여 지원을 청원했다. 그리고 미국, 영국 등 은행가들에게 차관하여 군함과 병사를 사고자했다. 그의 피타는 노력으로 군함, 무기와 병사모집이 이미 성사되였으며 강유력한 해군을 형성시켰다. 이를 북양수사 제독 랑위(琅威)에게 주어 인솔하게끔 했다.

  그러나 당시 패북한 청나라는 이미 일본과 강화할 타산을 확고히 하고있었기에 리홍장은 송육인들의 기습작전을 철저히 부정해버렸다. 서태후 역시 송육인이 “사단을 일으킨” 죄를 문책해 송을 귀국시켰다. 1895년 3월 청나라와 일본은 굴욕적인 “마관조약”을 체결했다. 송육인은 관직이 4품직으로 떨어지고말았다.

  그뒤 송육인은 《차주기(借籌記)》를 집필하여 뜻을 성사시키지 못한 울분을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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