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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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의 망국은 중화사상 때문
2013년 05월 06일 10시 58분  조회:8127  추천:44  작성자: 김정룡



대청제국의 망국은 중화사상 때문

 

만약 대청제국이 조금만 융통성이 있었더라면 아편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8국 연합국의 침략도 없었을 것이며, 원명원이 약탈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러나 역사는 가설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국운명은 중국인이 스스로 빚어낸 결과였다.

중국, 중국이란 개념은 이렇다. 주나라 초기 중국이란 국호가 잠깐 등장했다가 그 후 청나라 말기까지 줄곧 중국, 중국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왕조호칭을 나라호칭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 서양이 중국을 침략하고 보니 역사와 문화가 유구하고 과거 지구상에서 가장 찬란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서 중국, 중국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 중국, 중국인이란 호칭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론 이민족이 통치하던 위진·남북조시대와 몽골족이 통치하던 원나라 및 만주족이 통치하던 청나라시기 모두 자신들이 중국을 차지하고 있다는 관념이 강했다.

중국이란 말 그 대로 세게 중심이라는 뜻인데 본래 “중원을 차지하면 천하를 얻는다.”는 역사적인 맥락에 의해 어느 역사조대에서든 자신을 중국이라 여겼던 건만은 사실이었다.

어찌되었든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중심 국가, 또 문화가 가장 앞서 있었기 때문에 주변 이민족을 모두 오랑캐로 취급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중원을 기준으로 동쪽 이민족을 ‘동이(東夷)’, 남쪽 이민족을 ‘남만(南蠻)’, 서쪽 이민족을 ‘서융(西戎)’, 북쪽 이민족을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주나라 시기부터 중원의 천자를 중심으로 주변이민족과의 외교관계는 조공과 책봉의 패턴으로 굳어져왔다. 즉 주변 이민족은 중원조정에 특산물을 바치고 중원조정은 주변 이민족의 통치자를 00상장군, 00대장군, 00중장군, 00소장군 혹은 00왕의 식으로 책봉하였다.

중원조정은 주변 이민족과 단순한 조공과 책봉의 외교관계를 뛰어넘어 대국으로서의 위엄을 주변국에 보여주기도 하였다. 수양제(隋煬帝)는 정월 대보름이 오면 주변국의 사신들을 불러들여 대형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의 규모는 악사만 8천 명, 횃불을 든 자가 만여 명이었다. 음악소리가 사방 십리에 울려 퍼졌고 불빛이 사방 십리를 비추었다고 한다. 연회 기타 상황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연회에 참석했던 외국 사신들은 아마 대제국의 스케일에 기가 죽어 있었을 것이다.

당나라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 및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 유학생이 2만여 명이나 장안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당시 주변국 유학생들이 당나라에 가서 배운 학문은 주로 사서오경, 노자철학, 주역 등이었으며 과목이 단조로웠다. 지금처럼 학과가 세분화된 시대라라고 가정하면 유학생의 숫자는 아마 20만 명도 넘었을 것이다. 당시는 현시대처럼 국가 간 서로 유학생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서 일방적으로 당나라로 몰려들기만 하였다.

당나라시기 때론 주변국에 유명 인사를 파견하여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에 도사(導師)를 파견하여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특강을 진행하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시 고구려의 실세였던 막리지 연개소문이 보장왕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을 올렸다. “폐하, 가마솥의 받침대가 셋이듯 나라를 받치는 기둥도 세 개여야 마땅하오나 우리 고구려는 유교와 불교는 있으나 도교가 없어 기둥이 두 개이니 온전치 못하옵니다. 그래서 당에 요청하여 도사를 모셔오는 것이 지당할 것이옵니다.” 허수아비인 보장왕은 실세 막리지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윤허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도사를 파견하고 도관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도사의 강의를 보장왕이 직접 경청하였다고 적고 있다.

주변국 유학생이 장안에 밀물처럼 몰려들었고 또 도사를 파견하여 자기네 문화를 주변국에 전수하고 있었으니 중화사상의 우월성에 들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청나라는 비록 만주족이 통치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한문화 중심 국가였으며 여전히 한·당·송·명의 중화사상의 우월성을 물려받았다.

서구는 그리스 도시국가시대부터 무역을 중시해왔다. 그들이 무역을 중시하게 된 것은 그리스는 땅이 척박하여 농경에 의해 생계가 곤란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무역에 의지하여 생존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의 무역은 전체 서구에 전파되었고 따라서 서구의 무역은 점차 자유무역, 평등무역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은 한나라시기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해외(중국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해외라고 표현함) 국가들과 무역을 많이 해왔으나 관방주도의 무역이었을 뿐 자유무역, 평등무역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 길을 열려고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영국의 왕은 “하느님이 중국 인구를 4억으로 만든 것은 우리 앵글로·색슨 민족에게 무역을 하여 부를 쌓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기뻐했다.

당시 영국의 복장 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중국을 고찰하고 나서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중국인은 수의(睡衣 : 잠옷)을 입지 않고 있다. 만약 중국인에게 수의를 입는 법을 가르치고 일인당 한 벌씩만 사도 4억 벌을 팔 수 있지 않는가! 당장 인도의 수의옷감을 독점할 것이다.”라고 몹시 들떠 있었다. 마치 한국인이 수년 전에 중국에 진출하면서 “13억 인구의 중국시장은 우리한테 기회이다. 일인당 칫솔 하나씩 사도 13억 개의 칫솔을 팔 수 있으니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도 돈을 산더미로 벌어들일 수 있다.”는 자만에 찬 어리석은 판단과도 똑 같았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200년 전 영국인이 겪었던 착오적 판단을 한국인이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청나라 무역은 역시 관방의 주도로 통제하고 있었다. 영국 상인들이 청나라와 무역을 하려면 황제의 윤허를 받아야했다. 그래서 황제를 찾았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삼구구배(三叩九拜)’였다. 영국인은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예의가 없다. 그것도 한 번 아니고 세 번씩이나 머리를 조아리다니! 게다가 아홉 번씩이나 인사를 올린다는 것은 영국인에게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 한심하게 느껴진 것은 무역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뭔 뚱딴지같이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아홉 번 인사를 올리다니 말이다. 영국 상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기 서양은 바티칸의 교황이 천하 중심이었듯이 중국은 중국의 천자가 세계 중심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 상인이 결국 중국인의 중화사상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 상인은 절대 ‘삼구구배’를 올릴 수 없다고 뻗히고 중국 관리들은 만약 ‘삼구구배’를 거절하면 당신들이 바라는 무역은 죽었다 깨도 성사될 수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양쪽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결국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하는 ‘국제관례’의 정상 무역은 깨지고 남은 것은 영국인이 무력으로 중국 문을 여는 것이었다.

이렇듯 청나라 말기의 중국이 결국 중화사상 때문에 당하지 않을 침략을 당했고 결과는 참담하게 패배하여 반식민지국가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1840년 아편전쟁은 정확히 말하면 통상전쟁이지 아편전쟁이 아니다. 통상전쟁을 아편전쟁이라 표현한 것은 당시 영국의회 전쟁결의안에서 전쟁반대파들(262표)이 전쟁옹호론자들(271표)을 공격하며 비난조로 들먹인 데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남경조약을 살펴보면 오구(五口)통상, 홍콩 할양, 관세체결, 자유무역 등 거의가 경제에 관한 것들이다. 통상전쟁이든 아편전쟁이든 중국이 패배한 것은 서구의 선진과학기술과 민주정치에 무너졌고 그 전쟁을 계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중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당시 조정에 여전히 예부(禮部)가 존재해 있었고 여전히 중화사상을 토대로 형성된 동아세아 조공책봉의 외교질서를 서구인에게 적용하려고 들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외교부에서 담당하는 국제관계 사무도 예부에서 취급하였기 때문에 나라와 나라 관의 관계는 평등관계가 아니라 여전히 중화사상을 토대로 형성된 외교관례에 따라 움직이려 들었기 때문에 서구세력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청국 조정의 규정에 따르면 영국 관원들이 청 조정에 보내는 문건은 ‘품첩(稟帖 : 관청에 내는 신고서)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말기 중국의 사태는 바람 앞에 등화처럼 위태로웠으나 여전히 중화사상으로 무장된 수구파들에 의해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다. 엄복(嚴復)은 저서 《원강(原强)》에서 수구파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과거에 밝고 현재에 어두운 자는 하나는 얻고 둘을 잃은 것이다. 이들은 인류발전진화의 법칙과 서양 각국의 구체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외국과 중국의 우열에 대해 세상 사람과 다른 고상한 견해나 내놓으면서 예의가 바른 백성이고 우수한 민족이며 주공과 공자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고 예의로 다스려진다고 뽐낸다. 그들은 청일전쟁에서 여지없이 패하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이러한 형세를 낳은 근본원인은 백성의 힘이 이미 약해졌고 백성의 지혜가 이미 낮아졌으며 백성의 덕이 이미 엷어진데 있는 것이지 결코 중국민족의 본바탕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수천 년 동안의 중국의 전제정치와 사회풍속에 의해 조성되어 결국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엄복, 강유위, 양계초, 담사동을 비롯한 진보학자들이 서양의 자유와 민주, 데모크라시(민주)와 과학(사이언스)로 중국을 개혁하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이들은 중국역사는 문화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점을 밝히는 ‘의고풍(擬古風)’을 일으키고 서양문화를 따라 배울 것을 호소하였다. 이들과 반대로 어릴 적에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9개 나라 언어를 마스터한 인문학자인 고홍명(睾鴻銘)은 수구파의 입장에서 서서 공자의 인의예지야말로 인류역사 이래 가장 지극한 윤리도덕이며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최고 가치라고 주장하고 중국문화야말로 서양인이 배워야하는 모델이라고 역설하며 심지어 일부다처제를 찬양하고 부녀의 전족문화마저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중국인의 정신》이란 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먹은 진보파들이 아무리 목이 쉬도록 떠들어대도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굳어진 수구파들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보파는 재야인사들이고 수구파는 권력자들이었다. 전제국가에서 당연히 힘의 균형은 권력자들에게 절대적으로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보파의 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보파들의 노력에 의해 서구의 민주와 공화제가 폭 넓게 홍보되어 기울어져가는 청나라 군대는 더는 희망이 없는 청조정을 위해 싸울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다. 1911년 10월 10일 무한(武漢)에서의 한 방의 총소리가 268년 통치했던 대청제국을 무너뜨린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진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의 제국역사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참으로 비극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2천년 제국역사의 키잡이는 중화사상이었고 이 튼튼하고 견고한 키잡이로 만경창파를 헤가르며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제국역사를 창조해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키잡이로 세상에서 가정 먼저 부유한 나라로 되었으나 2천년 동안 단 한 번도 손을 보지 않고 사용해온 키잡이가 고장 나 세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전락하게 되었다. 먼 바다건너에서 밀려오는 ‘덕선생(데모크라시)’과 ‘사선생(사이언스)’의 파워에 밀려 속절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사라졌으나 강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거친 바다에서 훌륭한 뱃사공이 탄생한다는 속담이 있다. 5천년의 문명에 2천년의 제국역사는 거친 파도와 같았다. 중화사상이 독이 되어 2132년의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온 중화사상은 필경 신주인(중국인)의 귀중한 재부이다. 다시 재정비하여 신주대륙(중국)을 이끄는 처방으로 활용한다면 보약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별도의 글로 발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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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9 ]

29   작성자 : 중화
날자:2013-05-22 09:46:39
이 사람은 예전에는 조선족들에게 가치있는 뼈있는 글도 쓰고 상식적인 글도 써 존경스러워 했는데 왠지 인간이 무슨 변화가 생겨서 그런가 점점 행방없는 소리만 하는 것 같구만.

전번에 어느 글에서는 팔로군이 6.25전쟁이 나갔다고 하지않는가 하면 또 지금은 중화사상이요,뭐요 떠들고 있으니..

중국이나,중국인들은 근본 중화사상이라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거니와 개념자체도 없다. 그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경계차원에서,위협논으로, 그들만의 중화에 대한 인식이나,의식으로 만들어 낸 것 뿐.


중화에 대한 간단한 해석은 한족의 전신인 화하족이 황하남북에 모여들며, 한족이 제일 처음 세력이 왕성하였던 지역이고,시기이며 그 것을 중심으로 중화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며 유구한 5000천년 역사와 함께 중화의 찬란한 문명과 문화의 시작.

여기에서 중화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관념으로 中國,華夏 중 한글자씩 버리고 中華로 합쳐진 것인데 여기에서 中은 天(자연)을 가르키는거고 華는 人(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화란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뜻이 내포되고 있음. 즉 아래 어느분의 말처럼 인간의 보편적가치관을 말하는거지.
그 것이 중화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면 있다는거야.

28   작성자 : 남이 못써내는 좋은책을 쓰시는구려
날자:2013-05-09 09:44:30
남이 못써내는 좋은책을 쓰시는구려:
물론 중국 동포들을 포함해서 중국민들은 중국의 미래와 한국관계에 가장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니 이 중국의 과거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심층분석이 가장 인기몰이입니다.
중국이 리더십으로 인솔하는 아시아질서가 되느냐?
아니면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가 중국체계와 한판 붙느냐? 아니면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병존하느냐?
한국은 어떻게 되고 한반도는 어떻게 되느냐가 매우 가슴을 죄이는 관심사일것입니다.
한국의 무게와 지혜,그리고 강도 높은 실질적 사고와 행동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움직입니다.정책변화도 빨라집니다.이것이 대단한 실력일가요 아니면 교묘한 파워일가요?
지혜롭고 현명하고 능란한 자는 한쉬 위이다.뛰는몸이 있다면 나는 놈이 있다 라는 말이 맞습니다그려.
진정한 학문도 심도있고 재미나고 진지한 토론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으니 저자도 토론에 참가합소서,꼭 도움이 되거든요!새로운 발상이 나오지유.


















27   작성자 : 나도한마디
날자:2013-05-09 08:03:00
23층에 가장 중요한 점을 빼놓았습니다.
(11)중화사상은 유아독존사고방식으로 극단민족주의와 선군정치를 유발할쁜더러 민족대융합이란 구호밑에 기존의 민족정책을 말살합니다.민족인재 간부 인사제도 자치 경제 문화 교육 전통 민속 농지 집단거주까지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소수민족 정책변화와 주변국과의 관계악화가 악순환으로 치닫습니다.즉 부속국 식민지로비하하며 내리보는 봉건제왕의 황권등급사상입니다.중국의 지성인과 보통 시민들에게도 모두다 존재하는 사상입니다.
26   작성자 : 연변네티즌
날자:2013-05-09 07:52:32
호들갑님의 인지수준은 중국의 일반 네티즌 그 역시 노좌 고정 경직 관점에 불과합니다.별로 새로운 느낌이 안가는군요.
24,25층님의 발언에 동감이 서는군요.중국의 발전엔 진짜로 도움이 가지요. 이 관점은 전번 홍콩티비에서에서 나오늠 세계경제학자의 발언에도 이러한 관점이었어요.
중국의 관상결탁경제(관리와 기업경영자) 즉 국가자본주의가 결국 중국의 발목을 잡는다던군요.
현 고위급관리 세대가 바뀌면 또 새로운 고위관리들의 자녀 형제 자매 친척들이 모든 국가희유자원 철광 석유 화학 통신 원자력 발전 주식을 거머쥐고 경영한답네다.경영부패가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보다싶이
알아듣기가장 쉬운 예로:
백성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국유공립독점병원 가보세요.하루 에 몇만명 모여 여름 해변가수욕장을 방불케하더군요.인산인해와 전쟁터이더군요. (1)국가의 재정지원 (2)특권계층의 재정지원과 규정(이직장인들은 꼭 이 병원에가 치료받아야 함) (3)시장원리 전국의 농촌에서까지 와 작은 병까지 보고있음,향촌병원은 사실상 붕괴.그러니 국가규정봉급은 5천원이지만 배달 적효월급상금을 합하면 2,3만원벌고있다는군요.그것도 대학졸업한지 1,2년되는 햇내기들 .
암초기에 수술만해도 될것을 병원의 규정대로 수술-방사선치료-중의치료에 줄을 달아서,병원전체가 산업화조직으로 탈변.수술 입원 간병 방사선 중의 약 모든 지불을 환자에게 안겨주어 결국 인차 나을 나의 좀 든 초기 환자가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 면역력이 급격히떨어져 재발해 1년되어 사망했다더군요.그러면서도 병원치료비가 몇십만원.
족점경영특성을 띤 관상곁탁경제가 중국을 망하게 만듭니다.
중앙정부에서 이를 잘알고 있어 지금 골머리를 앓고있다는군요.
25   작성자 : 두 단계의 중진국 소득 함정
날자:2013-05-09 07:10:12
중진국 함정을 요즘은 구매력으로 측정하고 있다.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두개의 중진국 소득함정을 벗어나야 되는데 첫번째 중진국 소득함정은 구매력 $11,000 단계, 이를 벗어나면 두번째 중진국 소득함정은 구매력 $16,000 단계이다. 이들 두개의 중진국 소득함정을 벗어나야 선진국 고소득 국가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진국 소득함정을 벗어나 고소득 선진국대열에 들어선 나라는 일본 이스라엘 한국 싱가폴 밖에는 없다(미국 포비스지 보도). 한국의 현재 구매력소득은 $32,272 일본은 $36,266 이스라엘은 $31,296 이다.

현재 약 35개 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 중국의 구매력소득은 현재 $9,161 로 첫번째 중진국 함정인 구매력소득 $11,000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진국들이 첫번째 소득함정인 구매력소득 $11,000 단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일부 국가가 이를 벗어나더라도 두번째 중진국 소득함정인 $16,000 단계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려워 일본 이스라엘 한국 싱가폴이 성공한 국가로서 찬양받는 것이다.

중국이 위의 두 단계 중진국 소득함정을 벗어나 선진국 고소득 국가 대열에 들어서느냐는 정치와 경제 두 개혁에 달려 있는데 중국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을 극복해야 되는 것이 관건이다. 중국의 개혁은 기득권층의 희생이 요구되는데 그들에게는 개혁이 없는 현상유지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24   작성자 : 원유
날자:2013-05-08 21:47:14
호들깝님의 지식이 묻어나는 글 잘읽었습니다. 저가 아는 상식선에서 호들깝님의 글에 몆자 의문을 적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국가 총 GDP를 성사시킨 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지금보다 2배반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럴경우 국민 개인당으로 따질경우 $15,000 정도 예상됩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 개인당 GDP는 약 $50,000 이며 중국경우 $5800 거의 8배 이상 입니다.

많은 학자들과 연구소에서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가 염려 하는 이유는 위에서 보시다시피 현 중국이 미국의 국가총 GDP 추월 한다고 해도 국민 개인당의 GDP 는 $15,000 선으로 중진국에 머문다는 수학적 이론이 성사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경제는 하나의 실로 역여져 있습니다. 중국이 위와 같은 경제성장을 하기위해선 세계다른 국가들이 같이 성장을 해야지만 수출지향적인 중국경제가 성장을 합니다. 물론 13억이 넘는 국민을 소유한 중국은 내수시장으로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국민 개개인 GDP $15,000 으론 턱 없이 부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국을 아끼시는 마음은 이해를 하겠으나 지금 중국의 실정은 첨담산업이 전무한 실태입니다. 20~21세기 산업의 꽃이라고 하는 자동차, 비행기, 조선, 전자 ... 이 어느 하나도 세계에서 유수 기업들과 경쟁이 가능한 산업은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역" 으로 생각하시면 좀더 쉬운 해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서 선의의 경제을 합니다. 왜 세계최대 시장의 미국과 유럽이 아무거리낌없이 중국제품을 수입을 하는것 같습니까. 중국이 이뻐서 그럴까요?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수입 함으로서 국가적 골치거리인 물가 인상 조절이 가능하기때문이며 또한 중국이 발전을 해야지만 선진국들의 고가제품이 역으로 중국에 팔수 있기 때문입니다.
23   작성자 : 나도 한마디
날자:2013-05-08 21:13:52
중화사상이란 매개인 머리속에 잔존되어 있는 봉건제왕사상 혹은 황권사상이다.그 위해성은 전세계에 이미 다 알려진바이다.감출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5.4운동때와 개방개혁초기에 민주와 과학정신으로 줄곧 비판을 해왔다.
(1)자아중심 자고자대 유아독존의 낡은 봉건 제왕 봉페사상이다. (2)중국의 현대화국가 건설을 저애한다. (3)중국의 현대 공민사회 시민사회 형성을 저애한다.(4)황권 특권계층을 조성하여 사회분렬을 조성하고 당과 군중 정부와 군중 간부와 군중관계르 악화시키고 사회양극화를 초래한다. (5)사회주의 민주법치제도건설을 저애한다.(6)애국주의 개방개혁의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도 어긋난다.(7)과학 교육 문화건설발전을 저애한다.(8)주변국가와의 우호관계 및 발전을 저애한다.(9) 중국의 경제글로벌화에 걸림돌로 된다. (10)국제관계를 악화시키고 평화발전의 국제환경견실 저애한다.
그러므로 현대의식구조개혁과 공민사회의식 민주법치의식 문명예의의식 국제질서의식 세계문명의식 재정립이 꼭 필요하다.
22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3-05-08 14:23:49
한국의 공업화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을 빼놓을수 없다.
만약 박정희가 구테타로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민주를 부르짓으며 국회서 온종일 논쟁만 일삼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야당들때문에 정책을 만들어 추진할수 없었을것이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라든지 월남파병이라든지 그리고 포스코,현대 등 거물급기업 육성 모두가 일정한 독재가 없이는 가능성이 적었다. 물론 백태준,정주영 등 거물들의 추진력 또한 큰 작용을 했다.
사회적 토대면에서 일제의 식민지시기 절대적인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로 사회변혁을 이루어 낸것도 큰 작용을 했다. 지방할거세력도 종성제도도 종교적 갈등이 없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심각한 내부적인 사회모순과 혼란이 없었다. 해방후 잠간 좌익활동 등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외부의 힘 미국에 의해 재빨리 해결되였다. 6.25의 동란을 겪었지만 미국이란 절대적인 힘에 의해 재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다시말해서 해방후의 한국은 절대적인 외부의 힘에 의해 이른바 불순세력들이 다 제거되여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없었다는 거다. 한국에서 가장 경계하는 문제가 종북에 의한 사회적 혼란인데 이것도 미군의 주둔과 관련법으로 확실하게 억제되고 안정이 확고히 담보되였다.
이것들은 그후 한국이 경제건설에 매진할수 있는 튼튼한 토대와 조건을 마련했다.

또 한국이 자체 시장이 작고 자원이 결핍한 열세가 플러스로 작용한 것이다. 선진국들의 노동집약형산업 이전시기와 맞물려 수출주도형 경제를 발전시킬수 있었다. 자체시장도 작고 자원도 없다보니 인력에 의거할수 밖에 없고 필사적으로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일수밖에 없었다. 자원이 없는 낙후한 농업국의 “우세”는 바로 인건비가 매우 싸다는 거다. 개발할 자원이 있고 팔아 먹을 자원이 있으면 기술개발보다도 자원에 의지해 살려하며 결과 인건비까지 상승하게 되여 제조업의 위축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후발국의 공업화를 저애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네덜란드병이다. 성장할려면 수출을 해야하고 수출을 많이 하려면 품질,성능,가격 즉 성가비에에서 우세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자연히 브랜드육성에 힘을 쏟게 된다.

독재와 민주를 극단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특히 후발국가에서 일정한 독재는 필요하며 너무 일찍 소위 민주를 도입하면 의사결정이 더디고 국가의 힘을 집중할수 없다. 부작용이라면 독재자의 잘못된 결정에 제동을 걸수 없고 부정부패가 만연될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정한 집중과 적당한 민주가 필요하다. 발명창조라는 것이 꼭 민주조건하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과거 나찌독일이나 구소련에서도 허다한 세계적인 발명창조가 일어 났고 경제가 거족적으로 발전했다. 다만 민주가 너무 없다보니 체제가 경직되여 점차 사회와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도 박정희 독재통치시절에 민주가 전혀 없은 것이 아니다.

자원이 풍부한 허다한 후발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자원개발기업을 국유화했다. 기실 원래는 초시기 개발기술과 능력이 없다보니
서구 자본기업에 의해 개발되여 경영권과 이익의 대부분을 외부에서 가져가는 구조였는데 후에 국가의 힘으로 이런 기업들을 회수하였는데 이것이 이런 나라의 국유기업 시초다. 이런 국가들중 상당수가 독재를 실시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서방의 이른바 자유민주평등 사상이 물을 먹은 민중의 반독재 민주화투쟁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빚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회,경제발전정책 제정하고 추진해나갈수 없었다.

반대로 개혁개방후의 중국은 일인 독재가 아닌 집단적인 지도체제이며(중국의 엘리트들은 그들만의 양성반인 당교하는 곳에서 체계적으로 정치,사회,경제,문화 방면에서 교육을 받았다. 모든 지도급 엘리트는 당교수업을 거쳐여한다)
또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민중의 공산당에 대한 신뢰와 충성이 민중들로 하여금 공산당의 정책을 잘 믿고 따르게 했다.
일당집권으로 하여 의사결정이 신속하고 올바른 정책들을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추진할수 있었다.
토지개혁을 하여 토지국유화를 하여 많은 농민공들이 토지를 상실하지 않고도 도시에 들어와 일할수 있었다.(물론 일종의 성향차별이긴 하지만 기타 서구열강들의 공업화에 비하면 이것이 일정하게 사회모순을 완화시키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게한 중요한 원인으로 되기도 했다)
한국같은 나라는 아무리 발전한다해도 미국의 잠재적 적수가 될수 없고 따라서 세계질서에 도전할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거대하고 잠재적으로 미국에 도전할수 있는 적수이기에 좀 뾰족하게 앞서나가는 것이 있으면 금방 경계의 눈길로 바라본다.대표적인 예가 중국기업의 미국기업 인수다. 화웨의 미국 통신장비시장 진출도 가로 막고 있다.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결론 내리기엔 이르고 또 그럴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중국은 사실 최첨단 기술집약형에서부터 하위 노동집약형 산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서 골고루 다 갖추고 있고 자체의 시장도 거대하다. 하지만 모든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고 개척하고 피땀흘려 일할때 이룩되는 것이다.
21   작성자 : 중진국 함정에 빠진 중국
날자:2013-05-08 12:46:13
후발 공업국이 중진국 함정의 덫에 걸리고 선진국으로 도약 못하는 이유는 세가지이다.
1. 많은 국영기업을 민간기업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2. 세계적 브랜드 기업을 육성하지 못했다.
3. 사회를 민주화시키는데 실패했다(민주화가 되어야 사회역동성이 이루어지고 정보와 아이디어의 흐림이 자유로워지며 부정부패에 대한 견제가 된다. 민주화는 혼란이라는 과도기를 거치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나라가 이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타협이 아루어져 진정한 민주화를 포기한다. 민주화 때문에 중진국 덫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완성 못시켰기 때문에 중진국 덫에 걸리는 것이다)

한국이 특수한 것은 위의 셋을 다 성공시킨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위의 1,2,3이 다 앞으로의 과제이다.
20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3-05-08 12:19:30
아래 19층에게

나는 중화사상이란 표현의 발원지 내지 출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 이른바 중화사상에 대해 가장 많이 떠드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라고만 말했다.
독해력을 제고하자
19   작성자 : 지나가다가
날자:2013-05-08 12:10:55
호들갑의 문장을 보니 정치구호식 도리는 잘아는 데 역사나 학술이나 기본상식조차 잘 모르는 분이시구만.
하나만 수정해드립니다.
중화사상이란 말과 표현은 몇십년전 일본학계에서 나온말이 올시다.
애매한 한국이 아니고.
일본은 점점 멀어져가지만 한국은 중국에 정말로 가까워지는구만 동맹국으로 될것도 같구만.
우리동포들에겐 좋은 기회올시다.
18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3-05-08 11:27:39
오늘날 후발국가들이 공업화를 실현하는데는 우세와 열세가 병존하고 있다.
우세란 원발국가들이 걸었던 좌절이나 실패한 경험과 성공한 경험을 거울로 삶을수 있어 굽은 길을 적게 걸을수 있고 그들의 기술을 직접 이용할수 있다는 것이다.
열세란 시작부터 이미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출발했고 ,또 이미 이른바 도덕적 고지를 선점한 그들이 인권이요 빈부격차요 농약투성이요 발암물질이요 하면서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바로 맞는 말이기에 이러한 간섭과 한편으로 불공정한 국제경제질서속에서 한 국가가 사회가 안정적으로 공업화를 실현하여 과학기술,교육,문화가 전면발전하고 선진국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난도가 매우 크다.

허다한 제3세계국가들이 바로 바로 상기와 같은 열세를 극복못하였기에 비록 형식상 민주제도를 도입하였지만 공업화를 실현하지 못했거나 중진국함정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좀 특수한 예로 중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걸터앉았다.(한국의 경우 박정희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이 큰 역활을 한것 외,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선시대의 신분관계가 강제적으로 허물어 지고 일본식 자본주의 사회관계가 확립된것이 그후 미국식 민주를 쉽게 도입하고 경제를 발전시킬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일제침략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말은 아니다)

중국에는 전략적기회라는 말이 있다. 사실 중국이 30년동안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수 있었던 건 내부적인 원인외에도 외부적으로 평화와 안정이 담보되엿기 때문이다. 80년~90년 사이 미국이 냉전의 적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밀월관계를 보냇고 90년~2000년까지는 미국이 소련붕괴후의 대응과 관리에 정신이 팔려 중국에 신경을 안썼고, 2000년~20010 소련이 붕괴후 미국한테 중국의 가치가 떨어지고 오히려 잠재적인 적수로 첫째로 견제할 대상이였는데 911사건이 터지면서 미국의 정력과 관심이 테러와의 전쟁에 쏠려 있었고 와중에 금융위기까지 터지고… 하여튼 중국한테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일우의 호기였다. 이제 미국이 거대해진 중국에 화뜰 놀라 아태복귀를 선언하고 이른바 중국포위니 뭐니 하지만 너무 늦었고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당장 망하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면 경제규모가 미국의 5배정도는 되여야 한다. 단시기내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질서를 쥐락펴략하면서 독주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강대해지는 중국에 대해 일부 주변국가들은 두려움과 초조감을 드러내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며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여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아태복귀전략을 빌어 중국이 더 강대해지기 전에 중국과의 국경문제,영토문제를 해결하려고 서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과 전면전을 선포할까? 핵대국사이의 전면전은 지구의 궤멸뿐 승자가 없다.
시간은 중국편이다. 표면상 중국이 외교적 및 주변환경이 좋지않은 듯이 보이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별거 아니다. 중국자체가 자기의 내부모순 내지 내부문제를 잘 처리하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발전하면 된다. 이것이 중국이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도경이고 방법이며 열쇠이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이 서방민주를 도입하면 외교적 내지 주변환경이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한다.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러시아의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미국의 잠재적 적수가 될 여건을 갖춘 대국이 순조롭게 발전하게 미국이 가만두지 않는다. 민주를 실시하든지 안하든지를 막론하고 말이다. 물론 경제적,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국민들의 감독과 참여가 필요하며 또 일정한 민주를 실시해야 됨은 중국 자체의 내재적인 필요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은 자체의 실정에 맞게 자체의 절주대로 이문제를 풀어나갈것이며 절대 서방의 요구대로 그들의 구미에 맞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가 “중국인이 미국인과 같은 생활을 한다면 이는 지구의 재난이다”라고 한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이들의 인권이요 자유평등이요 하는건 진짜 중국인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다. 중국인이 영원히 못살기를 바란다. 중국뿐만아니라 인도를 비롯한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이 전부 현상태로 못살기를 바란다. 아프리카가 잘살아도 미국한테는 재난으로 된다.
17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3-05-08 11:27:11
다시한번 말하지만 중국에는 중화사상이란 말 자체가 없으며 중화사상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이른바 중화사상에 대하여 가장 많이 떠드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사람들이다. 까놓고 말해 한국인들이 가장 시끄럽게 떠드는 원인은 별게 아니라 바로 그들자신들의 두뇌속에 “중화중심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수천년동안 중화질서속에 중화문명의 세뇌를 받아 살아오다나니 무의식간에 머리속에 중화중심관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이 강제로 일본화 미국화 탈중국화는 했지만 역사든 문화든 의식이든 확고히 뿌리내린 중화문명의 흔적을 철저히 지울수는 없었다. 이것을 깡그리 지운다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조상,역사,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되고 민족허무주의로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개방 30년을 거쳐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강대해짐에 따라 일종 중국에 대한 두려움도 하나의 원인이다. 중국이 갑오전쟁에서 일본에 패하고 조선이 일본에 의해 형식적인 독립국가로 되였다가 다시 식민지를 거치는 과정에서, 당시 중국은 째지게 가난한 반식민지반봉건의 사분오열된 동아병부의 나라로 전락되여 오히려 황국신민으로 된 조선인들에게는 멸시의 대상으로 되였고 황국신민들한테서 중화사상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은 튀여나올리가 없었다.

쩍하면 자유,민주,평등 하면서 세계보편적 가치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자유,민주,평등 등 이른바 세계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이 자유,민주,평등의 가치를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진정한 자유민주평등은 원시 공동체사회 또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국가가 존재하는한 진정한 완전한 자유,민주,평등이란 존재할수 없다. 그렇다면 인류사회에는 자유,민주,평등 의 가치만 존재하는가? 잘먹고 잘입고 잘살아 보자는 것도 하나의 인류의 보편적 정당한 욕망이요 가치라면 가치다. 일정한 물질조건에 기초하지 않은 자유,민주,평등이란 빗좋은 개살구이며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할수 없다.

잘먹고 잘입고 잘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바로 이에 필요한 물질적인 재부를 창조하고 만들면 된다.
재부를 창조하고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공업화의 길로 나아가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물론 특정된 나라와 지구는 자원,또는 지리적 위치 등을 우세로 잘먹고 잘사는 나라도 있다) 서방의 이른바 민주체제를 그대로 도입하면 자유,민주,평등이 실현되고 공업화가 실현되고 경제가 발전하는가? 아니다. 이에 대한 실례는 너무도 많고 많다. 그렇다면 왜 안되는가? 뻔한 도리다. 오늘날 서방의 민주제도는 과거 수백년의 공업화를 거쳐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과학기술,교육,문화,국민소질 등 모든 면에서 기타 나라보다 크게 앞선 기초상에서 건립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공업화도 실현 못하고 농경경제가 위주고 축적된 부도 없으며 과학기술,교육,문화,국민소질 등 면에서 많이 낙후된 나라에 이런 제도를 도입하여 선진국처럼 제대로 굴러가고 그들처럼 자유,민주,평등이 실현되는 걸까? 50년대 말 중국이 공산주의를 실현한답시고 농민들을 식당에서 큰 가마밥을 먹게하고 집단화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사실 공산주의 의념도 매우 훌륭하며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보편적 가치로 되기에 손색없다. 하지만 농업경제가 위주고 과학기술,교육,문화,국민소질 등 모든 분야에서 낙후한 사회에 억지로 이런 사상과 의념 내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발전을 퇴보시킬수 있다.

아시다싶이 서양은 영국의 제1차산업기술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수백년에 걸쳐 공업화를 완성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업화는 착한 공업화였을까? ( 아래에 영국과 미국은 대외침략을 하지않고 평화적 굴기를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무개념 댓글도 보이더만) 영국은 어땟는가? 공업화에 필요한 토지를 이른바 울치기운동을 통해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약탈하여 토지를 잃은 수많은 농민들이 염가노동력으로 전락하여 자본가에게 고용될수밖에 없었다.또 식민확장을 하여 많은 원자재,에너지 자원을 염가로 약탈고 대량의 흑인노예를 부려먹는 등 수단으로 아주아주 “착하게” 자유,민주,평등 속에서 공업화를 실현하고 부를 쌓고 기술을 발전시켰다??? 미국은 또 어땠는가? 아메리카대륙에 백인들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미국의 국토가 처음부터 그렇게 넓었는가?? 서양의 공업화는 가혹한 노동력 착취와 심각한 환경오염속에서 완성된 것이다. 또 서양의 공업화는 공정하고 청렴한 환경에서 진행되였는가? 아니다. 이것도 역사를 보면 서양의 공업화 과정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사기와 협잡이 살판쳤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제기되는 식품안전 및 발암물질이든 제품문제를 놓고보면, 일부 채소에서 발견되는 극독농약문제와 의류나 완구등 제품에서 발견되는 발암물질….사실 이런 농약이나 발암물질은 중국인이 발명한 물건이 아니다. 근원적으로 따지면 다 서양인들의 발명품이다. 그들도 한때는 이러한 물질을 마구 사용하고 그러한 채소와 제품을 실컷 먹고 사용했다. 다만 후에 과학기술 의학의 및 발전과 부유해짐에 따라 이러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였을 뿐이다. 후발 공업화나라들은 과학기술도 발전하지 못했고 부유하지도 않기에 부득불 이런 염가 물질을 사용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진국들은 이미 도덕적인 고지에 서서 후발 공업화나라들을 보고 이렇쿵 저렇쿵 한다. 그러면서 오염이 심한 산업은 못사는 나라에 이전시키고 자기들 산업쓰레기도 낙후한 나라에 갖다 버린다.
16   작성자 : 정영년(郑永年)교수의 글:중국의 현실과 미래
날자:2013-05-08 07:25:39
어제 "싱가폴조보"(新加坡早报)에 정영년(郑永年)교수의 글이 실렸는데 참 볼만했다.대륙출신이고 대륙문제연구의 최고권위자이다.그의 관점과 분석으로:
(1)중국은 현대화의 발전에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놓여있다.일시 분풀이로 "날카롭게 맞서서 한치의 땅도 양보못한다"식으로 일개전술에 끌려다니며 중국의 현대화란 장원한 거폭의 전략과 목표을 상실하고 있다.
(2)평화발전은 평화굴기이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1,2차세계대전시의 독일과 일본처럼 군사와 전쟁으로 굴기한다면 필연코 실패한다.됴위도나 남해 중인국경에서 충돌이나 국부전쟁을 하면 상방이 모두 상하거나 패망하고 이를 피하기위해 중국에대한 국제포위망이 형성될 수 있다.미국과 영국은 평화굴기로 성공한 나라이다.
(3)국제적 큰 책임을 다하는 대국이여야지만 책임을 지려도 안하고 그럴 능력도 없다면 국제관계에서 무시당하고 미움을 사게되며 협력하려는 나라나 동맹도 있을 수 없어 대국굴기에서 실패할 수 있다.
15   작성자 : 김문학의 첨예한 조선족에 향한 글
날자:2013-05-07 21:51:31
지금 베이징시에서 붉은 등을 무시하고 건느면 벌금하기로 했.이 무식한 늠들이 목숨을 걸고 붉은 등을 무시하고 건너가는 중국늠들한테 이같이 정부에서 강력한 제재를 했다는 것은 얼마나 중국늠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생각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떠 오른다.
이런 최저의 질서도 모르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글로벌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겠는가 하는 것이 퍼그나 의심스럽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교육의 선진이요 하는 중국조선족이 지금 하는 추태를 잘 반성해야 할 것이다.지금 중국조선족은 중국사회에서도 환영밭지 못하는 군체요,한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군체요 더 나아가서는 조선에서도 그렇게 달갑게 만나는 군체가 아니다.
왜 이러냐?김문학 씨의 첨예한 지적을 알아야 할 것이다.
14   작성자 : 중화사상의 거울은?
날자:2013-05-07 20:45:06
중화사상의 거울은 인류의보편적 가치관이다.이를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않다.공개적으로 비판하려하다가 주눅이 들어갔다.
개방된 세계의 환경속에서 세계의 발전대세에 자신도 그렇게하면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인민들이 알게되면 더 피동적으로 흔들리며 좌절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국내서는 물론 해외의 99%의 나라와 국민들은 인류의 공동한 문명가치관 즉 세계문명을 모든 기준과 좌우명으로 삼기 때문이다.이에 어긋난 억지 주장과 판다른 문화는 전세계의 어느나라도 찬성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며 억지로 강요하면 어떤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것이다.
현명한 나라 정부와 인민들은 인류의 보편적 문명가치관에 부합되고 적응되고 잘 융합된 자국 자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와 정신 사상 철학 예술을 민간의 경로와 지혜로 세계에 부드럽고 친절하게 알리려 노력하고 공유할 것이다. 이것이 선진문화의 발전방향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이고 소프트파워이다.이 도리를 잘 알고 잘 실천하는 나라와 민족의 경제와 문화가 세계의 각광을 받을 수 있을것이다.
이 도리를 모르는 구소련 동유럽 이라크 세르비아 리비아 이집트의 권력자들은 총부리와 거액의 돈은 거머쥐고도 스스로 망해갔다.
역사는 현실과 미래의 거울이다.
13   작성자 : 영국신사와 미국사나이
날자:2013-05-06 20:04:08
영국신사와 미국사나이 앞에 그릇 두개 놓여있다.영국신사는 좀 남겨놓고는 잘먹엇다는 듯이 신사답게 앞치마로 입을 살짝 닦았다.미국사나이는 배가 너무 고팠던지라 소리내며 게걸스레먹고나서 트림을 하며 사라를 들어 혀로 말끔히 닦아 즙마저 다 먹어버렸다.
점잖게 틀만 차리다보니 영국신사는 저물어가는 제국의 신세를 막을 수 없었지만 미국사나이는 웃통을 들어내놓은 채 올리 뛰고 내리 뛰며 언제를 쌓아 밀려드는 홍수를 막아버렸다. 미국은 재앙을 막고 쇠퇴를 면하며 새로운 활기를 띠군했다.
한국은 제자랑을 두려워하고 자아폭로 자아비판정검에만 몰돌하는 미국을 따라 배워야 할 것이다.베트남 참전에서 미군이 베트남인을 살해하고 마을에 불지르고 여인을 강탈하는 장면은 미국영화에서만 볼 수 있다.이처럼 미국의 문화는 자아비판과 자아수정이었다.미국이 더 잘하고 강해줄 수 있게 약점 결함과 범죄도 여지없이 스스로 폭로한다.
12   작성자 : 핵심을 배우지않는 결과
날자:2013-05-06 18:18:35
중국이 제일 근심스러워했고 싫어했던 말이 일본의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내세운 정치이념- "탈아입구"(낙후한 아시아에서 탈출해 선진문명을 갖춘 유럽그룹에 가입,기실은 탈아가 아니라 탈중화이었다.중국인들이나 한국인들도 잘 모르고 있다.)
힝없고 가난해 보잘할 것 없는 약소주변소국들은 늘 비굴하게 제국의 그늘아래 쪼크리며 살아가는 것 보다 그늘에서 벗어나 허리를 펴고 자신의 지혜와 부지런함으로 굴기해 주대있게 살아보세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고 선진국에 들어섰다.
청나라의 리홍장도 민비를 보고 미국은 신사이자 믿음성있는 나라이므로 도움을 받으려면 미국과 사귀고 도움을 청하는게 좋다고 권고하였다.
미국의 문물과 제도를 전반적으로 체계적으로 완벽히 도입하고 소화하며 새로운 창조와 혁신을 해가는 한국은 대성공을 이루었다.다른 나라들은 배아파하지만 할수 없는 일이다. 만약 중화사상이 한국에서도 작간해서 제도는 예전의 낡은 봉건황권특권관료부패제도에 기계와 군함만 수입했더라면 청나라의 운명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11   작성자 : 정직하자
날자:2013-05-06 18:12:34
중국의 최대 약점은 인구이다..
15억이라는 인구는 인간이 다스린다는게 불가능하다..

지금의 빈부 격차는 물론 환경오염,정치,사회문제등등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고쳐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할 것이다..

중국이 진정한 최강대국이 될려면 최대 3억 ~ 5억이 적당하다 하겠다...
지금 미국이 3억5천 정도이니..

10   작성자 : 정직하자
날자:2013-05-06 17:55:11
현재 중국은 개혁개방전 중국과 다른게 아무것도 없다...
단지 틀린것은 더욱 고약한 새로운 지주가 공산당으로 바뀐것 말고는 없다...
권력과 부의 손바뀜이 일어났을 뿐이지 어차피 대다수 농공민들의 삶은 변한게 없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남아나는 빈대가 없다고 그러더니먼..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줄 모른다고 하고...

기득권층들이 과연 자기 발등을 찍을까???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자기 스스로의 개혁은 없다..
더욱이 일당체제하에서는 더더욱 힘들다..

항상 민중들의 힘으로 사회는 변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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