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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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지명유래 해석 오류
2013년 10월 11일 13시 58분  조회:6470  추천:1  작성자: 김정룡

연변지명유래 해석 오류

 

 

요 몇 년래 연변에서 지명유래와 유적유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역사문화에 연구에 심히 취미를 갖고 있는 필자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김호림 선생은 고구려유적부터 시작해 연변역사유적에 대한 연구가 깊고 넓으며 또 지명연구에도 기여가 크다. 개인적으로 일면식조차 없지만 이 기회를 빌어 경의 인사를 전한다.

역사유적과 지명연구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고고학지식, 역사문화지식, 인류사회학지식, 민속학지식 등 세상만사 지식을 갖춰야 한다. 가령 숱한 고생을 쏟고 연구해내도 사회적으로 인기가 별로이다. 인기 없는 일에 매진한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이 없이는 해낼 수 없다. 그래서 이 분야의 지식인들을 탄복하고 존경한다.

유적연구와 지명연구는 워낙 어려운 일이기에 가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유래를 정확히 짚지 못하면 세밀한 이성적 학문이 그냥 감성적인 개인 느낌에 의해 견강부회의 억지 해석이 될 수 있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요즘 조글로에 실린 김호림 선생의 연변지명유래 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필을 들게 되었다.

김호림 선생의 <지명으로 읽는 연변100년 역사> 본문 중 한 단락이다. “연변의 많은 지명은 이처럼 이민들의 주거지 환경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용정이라는 이름은 19세기 말 이곳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옛 우물을 발견하면서 작명되었고 도문은 도문이라는 이름 먼저 워낙 석회 가루가 날리는 동네라는 의미의 회막동(灰幕洞, 일명 회막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벌을 찾아 또 샘물을 찾아 이삿짐을 풀었던 조선인들은 간평間坪처럼 골짜기 사이에 들 평坪을 넣어 지명을 만들었고 또 약수동藥水洞처럼 샘물가에 삼수변의 동洞을 넣어 감칠맛 나는 이름을 지었다.”

위 문장에서 동(洞)에 대한 해석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洞의 유래가 설명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지명에서 나타난 洞은 감칠맛 나는 삼수변이 붙은 동이 아니다. 한반도 행정구역 나눔을 보면 道, 郡, 面, 里와 市, 區, 洞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洞은 원시인류가 산에서 대지에 내려와 거주할 때 일정기간 동굴에서 살았던 데서 유래되었고 里는 동굴 속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선 里를 마을 리라 해석한다. 洞과 里가 합쳐 洞里이며 우리 말 동네는 土話이고 표준어로 洞里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류가 무리지어 거주하는 곳이 洞里라는 뜻에서 오늘날까지도 동네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원시인류 생활모습에서 유래된 洞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사용하고 있을까? 현대인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 원시적 어휘 잔재가 굉장히 많은데 일례로 驛은 본래 말을 쉬우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는데 오늘날 기차역이나 버스역은 말이 쉬는 곳이 아니나 원시적인 문화유래 때문에 세금 변인 金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馬변인 驛을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의 힘을 馬力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를 비롯해 한국 도시사람들이 동굴 안에서 살고 있어 禿山洞, 大林洞, 加山洞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고 또 洞마다 洞長이 있는데 동굴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개 최소행정구역인 洞을 관리하는 직급이다.

한반도의 인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을 洞里라 부른 것이 유래가 깊기 때문에 만주에 이주한 초기에 조선인 마을을 이루면 洞을 붙여 부른 사례가 많았을 것이고(실제로 해방 전에는 洞이 붙은 지명이 많았으나 해방 후 중국식 행정구역 나눔에 따라 洞이 사라지고 村이라 부르게 되었음)연변지명에 나타난 洞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을 거슬러 살펴보아야 정학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식 행정구역엔 洞이 없기 때문에 중국에서 살아온 조선족은 洞, 里, 洞里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할 수 있어 애매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유래를 연구하는 것은 학문이며 학문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근거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개인의 감성적인 느낌에 의해 해석한다면 견강부회 억지해석이 되어 학문적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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