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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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문명과 마음문명 논고
2014년 07월 01일 15시 11분  조회:4351  추천:4  작성자: 김정룡



 요즘 신세대들은 아침에 “아이 러브 유!”를 외치고는 오후에 헤어지자고 통보한다. 며칠 전까지 아니 어제 “사랑해!”를 날리고는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혼서류에 도장 찍을 것을 요구한다. 이 세상 남녀들이 “아이 러브 유!” “사랑해!”를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지만 이혼율이 높다 못해 부부가 한 사람 건너 헤어지는 세월이다.

왜일까? 사랑이란 ‘애(愛)’자에 마음 ‘心’이 들어 있듯이 사랑은 머리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연애(戀愛)란 연자에도 마음 ‘心’이 들어 있다. 연애는 머리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평생 “사랑해!”를 입 밖에 번지지 않고 살아왔어도 금슬 좋게 잘만 지내왔다. 무슨 영문일까? 사랑을 머리로 입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들은 연애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고 스킨십도 사람들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통신이 발달하여 데이트도 쉽고 수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통신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사랑하는 상대와 데이트 한 번 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더욱이 그 당시엔 연애를 사람들 앞에서 내놓고 할 수 없어 ‘도둑연애’ 하느라 가슴을 조일 때도 많았다. 그토록 애타는 연애를 하려면 머리로 입으로는 절대 성사될 수가 없다. 진지하게 가슴으로 연애한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맺어진 인연이기에 쉽게 깨지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세대들의 연애는 너무 쉬워 쉽게 사귀고 쉽게 깨진다. 그 이유가 바로 남녀 사이 가슴으로 친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입으로 친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나 사랑을 하나 가슴으로 하는 것은 동양문명전통이고 머리로 입으로 하는 것은 서양문명의 영향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서양은 대개 사물을 가슴으로 대하지 않고 머리로 대한다. 연애도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 석학 임어당 선생은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서양인은 여자를 대함에 있어서 그냥 섹스파트너로만 여길 뿐이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서양에도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 있지만 대체로 서양인의 성향은 남녀 사이 머리로 입으로 하는 사랑이 많고 진정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 적다. 요즘 세대들이 “사랑해!”를 남발하는 현상은 역시 서양두뇌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이다. 서양은 여자를 연구함에 있어서 해부학적으로 생리학으로 호르몬이 어떻고 난소와 자궁세포조직이 어떻고 하면서 물건 연구하듯 세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가령 음모가 없는 여자를 서양에서는 생리학으로 체내 모(毛)를 생산하는 인자(因子)가 모자라 그렇다는 식으로 연구할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조금 부연하자면 음모에 균이 차 있을 확률이 높아 위생청결을 지키려면 음모를 제거해야한다는 식으로만 떠들 뿐이다.

중국인은 여성의 특징을 생산성에 포인트를 맞추고 여자의 음모는 대지의 초목과 같다. 대지에 초목에 없으면 곡식생산도 되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음모 없는 여성은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가꿔봐야’ 헛수고여서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이와 같은 여성관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관념의 문제인데 역시 마음문명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여자에 대한 연구는 단연 노자가 으뜸이다. 노자는 여자를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이 여인처럼 부드럽고 약하면서도 강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한 것을 공략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맞는 말이다. 돌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물방울에 뚫린다. 흙이 물보다 단단하지만 빗물에 쓸려간다. 노자는 유약한 물이 강한 돌을 이기는 것과 같은 이치로 부드럽고 유약한 여자가 강하고 힘이 센 남자를 이긴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기는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비하(卑下)’이다. 여자도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비하’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하’는 남존여비의 뜻이 전혀 없다. 노자는 남존여비를 주장한 적이 없고 오히려 여존남비를 외친 사람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비하’는 무엇일까? 바로 위치이다. 무슨 위치인가? 바로 남녀성교에 있어서 여자가 낮은 곳, 즉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상위에서 먼저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강해 보인다. 그러나 물 뺀 거시기란 속담이 있듯이 일단 파정하면 기고만장하던 태세가 서리 맞은 뱀처럼 온몸이 나른해 얌전해진다. 남자는 비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체력을 소진하고 최고급 단백질을 주는 ‘밑지는 장사’이다. 여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쾌락도 얻고 잉태도 가능하다. 노자의 생각을 빌려 말하자면 여자는 움직이지 않고 피동적이기 때문에 좋다. 여자는 누워서 남자를 기다린다. 노자는 이를 “고요하기 때문에 아래에 스스로 머문다. 천하의 성교는 암컷의 부드러움이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의 강함을 이긴다.”고 했다.

이와 같은 성교관계를 역중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좋다. 아래가 위보다 좋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이는 것보다 좋다.” 노자는 이를 보편적인 진리로 여기고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치국이나 군사 외교적인 측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큰 나라는 마치 강의 하류와 같아서 부드러운 암컷의 위치에 있다.” 따라서 노자는 국가도 여인처럼 자세를 낮추고 겸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대해 자신을 낮추면 작은 나라를 끌어 모을 수 있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스스로 낮추어 큰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 노자의 방중술로 천하의 이치를 보는 세계관에 대해 역중천 교수는 멋들어지게 개괄하고 있다. “노자는 그저 한 걸음에 방중술에서 제왕술(帝王術), 음도에서 패도(覇道)까지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여자를 생리학적으로 연구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도의 원리로 연구하였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두뇌문명과 중국의 마음문명의 차이이다. 서양의 머리로 세상을 사는 두뇌문명과 중국인의 가슴으로 세상을 사는 마음문명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서양인은 ‘정확성(精確性)’이 강한데 비해 중국인은 ‘정확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지적한 이는 100년 전 미국 선교사 아더 스미스였다. 아더·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중국인이 정확성을 무시하는 폐단을 설명했다. 중국인은 상대가 나이를 물을 경우 똑 부러지게 정확한 나이를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먼저 물어온 상대에게 얼마 되어 보이는 가고 되묻는다. 그러고 나서 겨우 하는 대답이 “불혹의 나이요, 환갑이 지났소, 고희에 가갑지요.”라고 대충 나이를 말한다. 노인들은 흔히 61세이면서도 “올해 60~70 먹었어요.”라고 나이를 말한다. 만약 61세를 정확히 똑 부러지게 말한다면 그것은 머리의 나이이고 60~70 살은 마음의 나이인데 중국인과 한국인은 흔히 머리의 나이를 말하지 않고 마음의 나이를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마음문명의 표현이다.

중국인은 일반 사물에 대해 정확성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자적인 것에까지 정확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렇지만 남이 나의 흉을 보면 용납 못하듯이 중국지식인들은 아더·스미스의 중국인이 정확성을 무시하는 폐단을 지적하자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아더·스미스는 중국인에 대해 유(流)만 말했을 뿐 원(源)을 짚지 못했으니 편견이다.”라고 비판하고 나서 “중국인이 정확성을 무시하는 이유는 모든 사물을 머리로 따지지 않고 맘으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인의 정신》의 저자인 고홍명(辜鴻銘)은 “중국인이 정확성을 무시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심령미를 추구한 까닭”이라고 받아쳤다. 서양인은 사람의 나이를 매개인의 생일을 기준으로 따진다. 동양에서는 모든 사람이 춘절을 기준으로 한 살 더 먹는다(요즘에는 양력설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음). 한반도 사람들은 엄마 뱃속의 나이까지 계산한다.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세 살일 경우가 많다. 머리로 따진 나이가 아니라 역시 가슴으로 먹는 나이이다. 사람의 나이를 정확히 계산하듯 모든 것이 정확(正確)하고 또 정확(精確)하기 때문에 머리를 잘 쓰는 서양에서는 과학을 발명 발전시킨데 반해 중국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보니 과학은 발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서양인이 ‘정확성’에 집착한 결과 과학이 발달하고 중국인은 고대에 사대발명을 비롯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발명으로 인류문명에 기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 전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충지(祖充之)의 원주율 계산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섰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중국인은 화약으로 기껏해야 폭죽을 만들었는데 비해 서양은 중국의 화약을 도입해 총포를 만들었다. 서양인의 정확성은 상무문화(商貿文化)와 큰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상무문화는 주고받는 장사이기 때문에 신뢰가 우선이고 다음 모든 것이 정확(正確)하고 또 정확(精確)해야 한다. 서양의 과학이 발달한 것은 물론 이 세상 너머 미지세계에 대한 동경을 추구하는데서 창의성이 발달한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정확성이 과학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양의 과학이 인류역사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너무 두뇌문명에 치중하다 보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우스꽝스런 사건도 있었다. 되지 귀에 황금 귀걸이를 걸어 넣고 항문에 온도계를 꽂아 체온을 측정한다. 체온이 올라가면 되지가 흥분되어 있다는 증거라나. 참 이상한 과학도 있다. 왜 이와 같은 우스꽝스런 과학이 나타나는가? 두뇌문명에 너무 집착한 결과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고대에 서양에 비해 훨씬 앞서 있다가 근대화시기에 들어 밀리기 시작한 것은 과학과 철학과 법률이 낙후돼 있은 탓이었다. 고대 중국에 철학이 있어나? 물론 음양철학도 철학이니 철학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은 논리추리를 추구하는 철학인데 비해 중국철학은 인간 삶의 생활 철학이며 서양철학에 비해 논리성이 매우 미약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인은 논리적사유가 발달되지 못했을까?

그 원인은 바로 중국인은 이성적 사고가 부족하고 대신 정감과 심미적 사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 법률이 있었나? 법은 있어도 법률은 없었다. 고대 중국의 법은 주로 형법이 위주였고 법이 완벽한 ‘율’로 이뤄진 ‘법률’로 자리매김 되지 못했다. 중국에서 법이 법률로 흐르지 못했던 것은 사람 위에 법이 있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법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역사는 진 제국 이 후 명유암법(明儒暗法)의 형식으로 흘러왔지만 실제로는 인치, 덕치였고 인간세상을 지배한 것은 예치(禮治)였다. 법치는 인간이 죄를 범하면 처벌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예치는 범죄예방 역할이 강하다. 어찌되었든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말은 법치사회에서 생겨난 것이고 예치사회에서는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할 수가 없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 병폐가 많이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법치는 두뇌문명의 산물이고 인치, 덕치, 예치는 마음문명의 산물이다. 머리로 살아가는 서양인은 성격이 대체로 강인해 보이는데 비해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온 중국인은 성격이 온화한 편이다. 공자는 주공의 혼인으로 이뤄진 가정을 나라와 연관시켜 국과 가가 합쳐진 개념인 ‘국가’의 관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예와 의를 겸비하게하고, 조상숭배를 근간으로 하는 제사제도를 완벽하게 함과 동시에 이를 천자에 대한 충성에 이르게 하고, 부모에 대한 효와 노인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고, 인의예지신이 겸비된 인간이 되는 군자의 도를 제시했으며, 대의명분을 지켜 사회질서에 따를 것을 호소함과 아울러 이 모든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량시민이 되기를 호소했다. 공자는 또 군자의 도는 부부생활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서 부부, 부모자식, 형제, 친척, 친구, 나아가서 모든 사회구성원은 맘(정:情)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을 호소했다. 공자는 이러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중국인의 인간타입을 형성시켰다. 따라서 중국인의 인간타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곧 ‘온화함’이다.

고홍명은 저서《중국인의 정신》에서 중국인의 ‘온화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한 중국인은 간혹 거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저속하지는 않다. 간혹 못생긴 느낌이 없진 않지만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추하지는 않다. 간혹 덤벙거려 비속함이 없진 않지만 방자하거나 오만하지는 않다. 간혹 무딘 면이 없진 않지만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다. 간혹 성격이 원만하고 영리한 면이 없진 않지만 남을 해칠 정도로 사악하지는 않다. 진정한 중국인의 마음이나 품행에 나타나는 결점이나 흠집을 굳이 말한다 해도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점은 없다. 중국의 구식학교에서 성가신 사람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데 설령 그 사람이 사회의 최하위 계층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공자는 타인에게만 온화함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온화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는 제자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나의 문중에 들어오려면 세금 거두는 공무원은 두말없이 장부정리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고 오라하고, 고기잡이는 고기그물을 당장 집어던지고 오라고 닦달하였다. 공자는 나의 문하에 들어오겠으면 적당히 부모와 밥도 먹고 인사도 깍듯이 나누고 오라고 타이른다. 예수는 사랑하겠으면 나보다 못한 자의 발을 씻어주라고 한다. 극단적인 사랑법이다. 공자는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만큼만 사랑하라고 주장하며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이른다. 예수와 공자를 비교해 보면 여러모로 예수는 머리로 세상을 대하고 공자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자는 마을과 마을 사이 개가 짓고 닭의 울음소리가 서로 들리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제창하면서 인위적인 도시문명을 극구 반대하였다.

이른바 도시문명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규칙과 법칙, 원칙 및 이러저런 룰이 소털처럼 많다. 인간이 도시에서 살자면 이런저런 일에 신경을 쓰면서 사노라면 자연스레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노자는 인간이 조물주가 만들어준 대로 생긴 대로 세상을 살아갈 것을 제창한다. 이것이 바로 노자철학 핵심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장자는 노자보다 한 술 더 떠 공자를 심하게 비판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인’이니, ‘의’이니, ‘예’이니, ‘지’이니 하는 따위가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임어당 선생이 저서 《중국인》에서 “중국인은 문화적으로는 유교를 숭상하고 본능적으로는 도교를 받든다.”고 지적하였다. 중국인이 왜 질서 없는지?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중국인이 ‘도’가 제창한 ‘무위자연’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쯤해서 왜 서양인은 머리로 세상을 살아왔고 동양인은 왜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오게 되었을까? 이를 밝힐 필요가 있다. 서양은 전통적으로 유목문명이다. 유목문명의 특징은 이동이다. 어디로 이동하는가? 풀을 따라 이동한다. 풀을 발견하는 자가 구세주이다. 그것이 어린 아이, 즉 목동이든 노인이든 상관없다. 노인은 이동이 불편하여 풀을 발견하는 확률이 낮은데 비해 목동은 생기가 넘쳐 이동성이 강해서 풀을 발견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서양문명에는 노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예(禮)’와 ‘효(孝)’ 문화가 없다.

서양의 상업문명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는 땅이 척박하여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 먹고 살기 굉장히 힘들었다. 다행히 지중해를 끼고 있고 아프리카, 아세아 쪽에 가는 교통이 편리했다. 고대그리스인은 편리한 교통의 장점을 발휘하여 무역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무역은 신뢰가 필요하고 계약이 필요하고 상도의 룰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가슴으로 대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무역은 정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되는 머리로 해야 한다. 고로 서양인은 머리로 하는 두뇌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역사를 보면 은나라 시기 공(工)과 상(商)이 발달하여 그 시기 문화를 ‘공상문화’로 명명한다. 은나라 시기 상업이 발달하여 은나라를 商나라라고 부르며 오늘날까지 장사에 종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 부른다. 만약 은나라 공상문화가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면 중국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흘러왔을 것이다. 허나 역사는 가설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방송도 없다. 오로지 생방송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3천 년 전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체함에 따라 공상문화가 자취를 감추고 농경문화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 후 진 제국부터 청 말까지 2천 년 제국역사는 농경문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가령 송나라 초기처럼 시장이 발달하고 지폐가 등장하여 자본주의맹아가 싹튼 시기도 있었지만 제국의 수장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고 줄곧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을 실시해왔다. 그래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농경문명의 기본 특징은 정착과 경험이다. 농경문화는 이동하면 농사를 망친다. 한 곳에서 꾸준히 정착하며 지어야 한다. 정착문화는 낯선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매우 적고 아침에 만난 사람 점심에 만나고 저녁에 또 만난다. 자주 얼굴을 맞대게 되면 자연스레 정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들면 머리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 농사는 목동이 풀을 발견하면 메시아가 되듯 그런 문화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경험을 쌓아야 한다. 24절기를 잘 파악하는 것은 물론 3일 개이고 3일 비 내리는 기후 규칙부터 시작하여 책에 없는 경험을 많이 습득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농사는 경험을 수요로 하고 따라서 경험을 많이 쌓으려면 나이를 먹어야 한다. 나이가 지긋할수록 경험이 더 풍부하다. 농경문화에서 노인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양학자들이 중국고전을 번역할 초기에 ‘예’와 ‘효’를 서양언어로 어떻게 옮길지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서양은 유목문화 전통이기에 ‘예’와 ‘효’와 같은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논의가 있었듯이 은나라시기에 공상이 발달했다가 주나라에 들어 전면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머리로 살아가던 패턴이 가슴으로 살아가는 패턴으로 전이되어 마음문명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두뇌문명과 마음문명을 연구하면서 확실하고 정확한 근거를 찾아보려고 신화자전을 뒤적여 보았다. 한문은 편방부수(偏旁部首)가 붙어 이뤄진 문자이다. 재미나는 것은 그 많은 편방부수 중 마음 ‘心’을 뜻하는 수심(竪心) 변(忄)이 붙은 글자가 가장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문은 뜻글자로서 문자는 문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문명에서 마음문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나의 연구가 부질없는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확실하고 정확한 근거를 찾은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마음 ‘心’이 붙은 글자가 가장 많은 것은 중국문명은 마음문명이고 따라서 마음문명은 ‘정의 문명(情文明)’이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서양은 유목문명이고 유목문명의 특징이 이동이기 때문에 늘 이동하여 낯선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정이 존재할 겨를이 매우 적다. 이에 비해 농경문화의 특징은 정착이고 정착문화의 특징은 만난 사람을 늘 만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관 인간 사이 자연스레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로서 농경문화의 특징을 ‘정의 문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뿐 아니라 한반도문명도 ‘정의 문명’이라 말할 수 있고 아울러 한반도의 ‘정의 문명’은 중국에 비해 훨씬 농도가 짙었다.

한반도는 산이 75%이고 평야가 25%이며 가장 북쪽에 있는 백두산이 산세가 험악하고 웅장하여 남성형(男性型) 산인 외에 그 밑의 묘향산부터 남쪽에 이르는 모든 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아늑하고 온화하여 여성형(女性型) 산이다. 여성의 특징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포용성이 강하다. 그래서 한반도문화를 아기자기한 보자기문화로 표현한다. 보자기문화의 핵심이 바로 ‘정의 문화’이다. 따라서 정은 한반도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우리생활에서 사용하는 정과 관련한 어휘를 보면 유정, 무정, 격정, 열정, 온정, 냉정, 동정, 역정, 진정, 위정, 상정, 비정, 순정, 사정, 다정, 세정이 있는데 이는 한문에서 온 것이다. 이 외에 우리말로 된 덧정, 속정, 옛정, 잔정, 풋정, 미운 정, 고운 정, 정들다, 정겹다, 정을 두다, 정을 붙이다, 정을 떼다, 정을 주다, 정을 뺐다 등등은 우리민족의 생활문화정서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여타 다른 민족에게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이란 말이 있듯이 한반도는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인간의 심리에 투영되어 한반도 사람은 멋을 추구해왔다.

또 옛날 한반도 마을은 절대다수가 방곡이었는데 방곡이란 산 밑에 샘물이 있고 샘물이 내를 이루고 내가 양 옆에 나지막한 산맥이 있고 그 산 아래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그러한 거주 환경을 방곡이라 불렀던 것이다. 방곡의 자연환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사람들은 서로 정이 좋게 살아왔으며 멋을 추구하고 살맛나게 살아왔다. 요즘 중국인 관광객이 밀물처럼 한국에 밀려드는데 그들은 한국의 화장품, 복장, 성형수술에 가장 관심이 많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멋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한국인이 멋을 발전시켜온 결과이다. 맛이란 것도 우리민족의 특유한 문화인데 음식문화에서 말하는 맛 외에 사람 살맛이 난다는 뜻이 말해주듯 멋과 맛은 인간의 심미적인 정감에서 생겨난 것이고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역시 마음문명의 산물이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특징을 구분 짓자면 서양인은 두뇌문명에 의해 과학, 철학, 법률 및 상무업이 발달하여 사회 전반에 이르러 정확한 것이 많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잘 지켜져 민주화가 잘 되어 선진국에 먼저 진입하였지만 인간세상이 너무 딱딱하고 삭막하여 사람 살맛이 매우 적다. 이에 비해 동양은 서양에 비해 과학, 철학, 법률 및 상무업이 발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빈곤하였으나 인간사회는 정이 많아 사람 살맛나는 사회였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어느 문명이 우월하고 어느 문명이 비천하다는 판단은 맞지 않으며 서로 각자 장단점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같은 유교와 한문을 공통분모로 하는 중화문명권에 속하는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에 비해 문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일본열도는 땅이 척박하여 농사가 잘 되지 않고 지진이 많고 태풍이 많아 삶이 각박하고 메말라 있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세상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2천 년 전 농사를 시작한 것은 서부 나라지역인데 그곳은 진(津)과 포(浦)가 많았으며 그 변두리에서 자그마한 땅을 개간하여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 진과 포는 모두 못이며 못의 특징은 유동이 아닌 고인물이다. 일본인의 성격은 마치 고인 물처럼 고독하다. 아울러 고인 물이 서로 교류가 없듯 일본인은 친구 간 외식해도 식비를 똑 같이 분담하는 ‘와리끼리’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총적으로 말해서 일본인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정의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정의 문명이 발달하지 못하고 머리로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 서양과 비슷한 두뇌문명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동양 삼국 중 일본이 가장 먼저 서양문물에 눈을 뜨고 받아들여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일본에서 생활해본 중국인과 한국인은 모두 일본이 여러모로 발달하여 좋긴 하지만 기계처럼 너무 딱딱하여 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어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미사회나 일본은 두뇌문명이 강해 사람 사는 맛이 부족하고 중국은 비록 한반도와 같은 문화에 속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 마음이 허전하게 느껴지는데 비해 한반도는 아기자기한 자연환경에 정의 문명이 발달하여 사람살기 좋은 고장이라 말하고 싶다.

동포문학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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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ㅎㅎㅎ
날자:2014-07-04 19:18:25
이런 글은 마당쇠가 보는 글이 아닙니다.또 마당쇠는 이런 글을 보고도 모릅니다.
2   작성자 : 무슨내용인지
날자:2014-07-04 15:42:48
너무 란설이다,무슨 내용인지 ,짜집기식 문장은 의미가 없고
너무지루한 동네방네 발싸개 같은 내용디다.어처에 구니가 없다
이것도 문학지에 낸단 말인가??
1   작성자 : 서울에 취하다
날자:2014-07-01 17:11:19
6월에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놀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1.서울의 공기가 무척 좋아졌다. 하루종일 서울시내를 돌아다녀도 매연냄새를 거의 맡지 못했다. 이는 미국의 대도시 아니 인구 50만 정도되는 미국의 중간 규모 도시보다도 서울시내거리의 공기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도시는 인구 50만 정도되는 도시도 운전 중 차창을 열어놓으면 매연냄새가 난다. 서울은 공기가 좋으니 하루종일 서울시내를 다녀도 목도 안아프고 코가 검어지지 않았다.
2.서울을 흐르는 한강물의 색깔이 초록빛으로 변했다. 이전의 서울의 한강물은 황토색 이였으나 이제는 건강한 자연의 색깔인 초록색이다. 초록색 한강물을 처음 보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이전에는 북한강에서나 볼 수 있던 초록빛이다. 충청도 금강에 가서도 초록빛 강물이 너무도 맑아 깜짝 놀랐다.
3.전국적으로 산마다 나지막한 동산마다 거의 밀림같이 꽉 들어찬 녹색삼림에 경탄을 했다.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조그만 동산들도 예외가 없이 밀림같은 삼림이 형성 되있었다. 내가 외국을 다녀보며 한국처럼 도시안까지 녹색삼림이 꽉 들어찬 나라는 본 적이 없다.
4.경복궁 옆길에서 삼청공원에 이르는 삼청동길은 엘에이의 로데오길을 훨씬 능가하는 품격과 멋을 지니고 있었다.
5.경복궁 뒤 북악산 공원은 아마도 전 세계 대도시공원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북악산 공원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은 그야말로 탄성을 불러 일으키는데 특히 북악산에서 내려보는 평창동의 경치는 엘에이 부촌인 베벌리힐의 경치를 단연 압도한다.
6.한강의 "선유도 공원"과 상암동 "하늘공원" "노을공원"은 그야말로 명품공원이었다. 엘에이만해도 이런 정도의 멋진 공원이 하나도 없다.
7.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면서 뿅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전세계 대도시 중에서 북한산 둘레길같은 장거리 삼림산책로를 갖은 대도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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